군주론 / 정략론 동서문화사 월드북 9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황문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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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거기서 삶을 마감한 피렌체 토박이였다. 그래서 피렌체의 역사는 마키아벨리의 생와와 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피렌체는 봄의 도시이자 꽃의 도시다. 토스카나 주의 북방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알바노 산맥을 끼고, 서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아르노 강이 피렌체를 적신다. 이 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에트루리아가 세력을 떨치던 곳인데, 수세기 동안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대한 도시국가였던 그들도 결국 BC 4세기 무렵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만다.


피렌체는 흔히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라는 이름이 붙는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절은 인간의 정신이 바야흐로 '중세의 미망'에서 막 깨어나던 시기였다. 고대 로마가 멸망하고 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확고하게 다져 놓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에 비로소 사람들이 질문을 품고 강력하게 반기를 들던 때였다. 르네상스에 도화선을 붙인 건 페트라르카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 단테가 마중물을 부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단테는 처음으로 '고대'를 문화생활의 전면에 힘차게 밀어넣었던 인물이었다. 페트라르카는 고전들을 예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았다. 중세 학자들이 고전들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통합하려 애썼지만, 그는 고대의 시나 역사, 철학 등을 그 자체로 고대 문명의 '빛나는 본보기'로 이해했던 것이다.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보는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관이 '1천 년 동안이나' 맥이 끊겨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도 페트라르카였다.


마키아벨리가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이어받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니 온갖 고전 작가와 작품들이 그를 자극했음은 당연했다. 1486년 그의 나이 17세 때,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제본했는데, 그 우연한 일 때문에 그는 리비우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는 뛰어난 문헌학자였던 포조 브라치올리니가 1417년에 발견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직접 필사할 정도로 고대 로마의 철학에 매료되기도 했다. 바티칸 국립 도서관에 현재 남아 있는 그 책의 필사본은 마키아벨리가 쓴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다. 피렌체 공국도 공화정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로, 다시 소델리니 정권에서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으로 여러 차례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주변의 강대국들인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침입도 잦았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동향을 예민한 감각으로 살필 수 있게 만든 건 그가 피렌체 정청에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는 서기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정치 현장'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로마 교황청 등으로 동분서주했으며, 14년 동안 공화정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체사레 보르자와 만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궁정에서 머물기도 했다. 특히 그가 열정을 쏟은 분야는 '군사위원회'의 사무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피렌체는 군사력을 '용병부대'에 의존했는데, 그는 언제나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할 것을 끊임없이 주창했다.


그가 『군주론』을 집필한 동기는 소델리니 정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자신의 면직이었다. 18년 만에 메디치가가 정권을 되찾게 되자 새 정부는 마키아벨리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시켰다. 로마 근교의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서재 책상 앞에서 고대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겪고 관찰해 왔던 현실 정치와 접목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지리멸렬한 조국의 현실과 찬란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과의 간극이 너무나 컸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구체화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훌륭한 타개책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사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쓴 책은 『로마사론』(일명『리비우스에 관한 담론』)이었다. 그 책을 통해 그는 로마 공화정의 온갖 훌륭한 법률과 제도와 군대와 인물들을 무수히 살폈다. 또한 로마가 멸망한 이후 여러 나라로 쪼개진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깊이 생각한 온갖 책략들을 현실에 투영시키기 위해서도 자신이 '활약할 무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군주론』이라는 더없이 솔직하고도 대담한 책을 써서 권력을 잡고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 전하를 위해 바쳤다. 그 짧은 책에는 국가의 성격, 그 종류, 유지 방법, 상실 이유 등에 대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권력'이라는 마신(魔神)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 책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합리주의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정치가의 냉혹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개념이나 '정치학'의 원리는 상당 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었지만, '근대 국가의 탄생'을 재촉시킨 마키아벨리즘이 오래된 전통적 국가관을 한 순간에 쓸데 없는 소리에 가깝도록 몰아부친 셈이었다. 이 책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1532년에 인쇄된 이 책은 로마 교황청이 서둘러 금서에 올릴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다. 혹자가 말한 대로,『군주론』이 겪은 역사가 그대로 유럽 정치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였다.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 군대'를 강화하고, 무력을 앞세워 이웃 약소국가들을 강제로 삼키기 시작하였고, 서유럽 열강들은 멀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손길을 뻗쳐 식민지 확대에 열을 올렸다. 모스크바까지 점령했던 나폴레옹에 뒤이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겪었던 것도 마키아벨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마키아벨리의 영향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군비 경쟁과 군사력의 극대화에 기반한 열강들의 세력 다툼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일 뿐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다. 『군주론』의 끝부분만 보더라도 그런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야만적 지배는 누구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 높은 당신 일가가 정의의 싸움을 일으킬 때의 그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 책무를 담당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이 내건 기치 아래서 조국이 고귀하게 빛을 발하고, 당신의 편달 아래서 페트라르카의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미덕은 광포에 대하여 무기로써 맞서지 않느니. 싸움은 조용히 그만두라."고 썼으니 말이다.

『군주론』과 그 책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는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논쟁 거리였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일반 사람들이 살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독자들이 마키아벨리와『군주론』을 둘러싼 오해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도 있다. 그가 쓴『로마사론』을『군주론』과 함께 읽는 일이다. 오랜 시간의 연구와 노력끝에 완성한 그 책을 읽어보면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놀랄만큼 성실하게 티투스 리비우스의『로마사』를 공부했다. 아쉽게도 리비우스의 방대하고도 탁월한 역사서인『로마사』는 지금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와 리비우스의 책과 함께 읽으면서 서로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로마사론』만 읽어도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은 물론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다. 『로마제국쇠망사』라는 불후의 대작을 남긴 에드워드 기번이 마키아벨리를 그토록 칭송했던 이유 또한 그가 남긴『로마사론』때문이었으리라.

마키아벨리가 쓴『로마사론』은 전3권(제1권 60장, 제2권 33장, 제3권 49장)에 이른 방대한 저작이다. 그 책의 핵심 주제는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정 체제의 수립 및 발전 전략'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는 이미 『군주론』에서 군주정 체제에 관한 이론과 책략들을 충분히 서술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전공 분야인 '로마 공화정'을 바탕으로 '공화정 체제의 우수성'과 '저해 요인 및 발전 전략'을 더없이 치밀하고도 풍성하게 펼쳐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역사를 이끈 숱한 인물들에 대해서라면 마치 그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훤히 꿰뚫는 듯한 마키아벨리의 명민(明敏)한 관찰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숱한 장(章)에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서』를 인용하는 대목들은 마키아벨리의 칼날처럼 예리한 분석 포인트와 절묘하게 결합한다. 수많은 군대지휘관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명연설'은 전장의 생생한 현실로 거듭 독자들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성을 얻는 법, 평판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법, 위험에 대처하는 법,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법, 상황에 대한 오판이 초래하는 영향들은 훌륭한 처세술을 전수받는 느낌도 갖게 만든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긴 장인 <음모에 대하여>를 읽으면 마치 제갈공명을 앞에 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군대의 규율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주 자신의 태만과 통찰력 부족을 한탄해야 할 때는 언제인지, 나가서 싸울 것이냐 적을 끌어들여서 싸울 것이냐의 선택 문제, 진지의 구축과 요새의 필요성, 대포의 효용 등등은『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를 훨씬 더 능가할 정도로, 그가 얼마나 탁월한 전술가요, 책략가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로마사론』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공화정에 대한 뜨거운 옹호'와 '민중의 자유 수호'였다. <민중의 잘못은 군주의 잘못에서 생긴다>는 주장이나,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는 표현을 마주하면 그가 과연 『군주론』을 쓴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로마가 발전을 거듭했던 이유도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집정관으로 뽑히는 구조와 민중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호민관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군사령관의 지휘권 연장'을 로마 공화정 붕괴의 '시발점'으로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다. 임기 1년의 두 집정관 체제가 '현장의 필요성' 때문에 '지휘권 연장'을 편법으로 용인함으로써 그 지휘관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는 장교들이 등장하게 되고, 결국 군대의 사병화가 시작되었다. 마리우스와 술라가 집정관을 맡게 된 이후에 나타난 결과는 참혹한 내전이었다.

그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경쟁하게 되었고, 소(小) 카토나 브루투스와 같은 고결한 인물들이 나타나 '공화정 수호'를 위해 분기했지만, 끝내 카이사르에게 무너지고 만 것도 결국 시대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진단이다. 카이사르야말로 마키아벨리에게는 '로마 인민의 자유'를 끝장내고 로마를 '노예 상태'로 전락시킨 원흉이었던 셈이다.("이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첫 번째 참주가 되고, 그에 따라 로마의 자유는 다시 되살아나지 않게 되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어찌보면 '권력의 진실'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합리적이고 덕성 높은 사람이었으며, 인간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권모술수와 음모와 책략의 대가로만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발견한 많은 전공자들이 그 점에 대해 억울해 해도 충분한, 그런 인물이 마키아벨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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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3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는 사리분별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군주론>을 쓴 것조차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본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뇌물로 아부 떠는 것보다는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상부에게 어필하는 마키아벨리의 선택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oren 2017-03-03 15:27   좋아요 2 | URL
마키아벨리처럼 철저한 현실주의자도 보기 드물겠지요. 피렌체 공화정청에서 14년간 밤낮 가리지 않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죄밖에 없는데, 하루 아침에 피렌체에서 추방당했으니 그때 그의 심정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어요.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불과 서너 달만에『군주론』을 후다닥(?) 완성해서 출사표를 냈지만 그게 ‘전달‘조차 되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런 불운들이 도리어 불후의 명저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으니, 후세 사람들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3-04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분열되었던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단기처방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주된 사상은 <로마사론>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같이 읽어야겠습니다. 한편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다시 생각하니, 케인즈가 생각나네요. ‘유효수요‘ 창출을 위해 ‘정부의 재정확대‘를 주창한 그의 경제관을 생각해보면, <군주론>과 <로마사론>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Oren님 좋은 책과 독서법 소개 감사합니다.

oren 2017-03-04 13:42   좋아요 1 | URL
『군주론』과『로마사론』의 관계를 잘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 첩경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두 작품에서 다룬 ‘군주정‘과 ‘공화정‘은 어쨌든 서로 모순되는 사상이니까요. 사실 그는『로마사론』을 먼저 집필하다가, 사정이 다급한 바람에 그 책 가운데 ‘군주정을 논한 부분‘만 따로 떼어내어 『군주론』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추론하는 학자들도 많은 듯합니다.(그래서 마키아벨리는『로마사론』의 여러 곳에서 ‘군주정‘에 관한 부분은 이미 ‘다른 책‘에서 충분히 언급했다는 말을 자주 내세우고 그냥 넘어갑니다. 『로마사론』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구조를 갖춘 건축물 같은 느낌이, ‘군주정‘을 다루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텅 빈 공간‘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때처럼 휑한 느낌으로 뒤바뀌는 건 저만의 느낌일까요?) 어쨌든『군주론』은 ‘격동하는 정세‘ 탓인지 몰라도 그 논조가 매우 격렬한데 비해,『로마사론』은 ‘리비우스의『로마사』를 바탕으로 로마의 흥망을 마치 커다란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듯이‘ 유려하게 논하고 있어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마키아벨리를 만나는 느낌도 강하게 든답니다^^
 


(밑줄긋기)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


피렌체의 신국가 조직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완벽한 계획안은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친 건의서에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군주론』을 헌정받은 우르비노의 공작 소(小) 로렌초 메디치가 죽은 뒤(1519년) 씌어진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가 제안한 수단과 방법도 모두 도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화국을 세워 메디치 가를 계승시키고자 한 것, 그것도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한 것을 관찰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교황과 그의 특별한 추종자들과 피렌체의 각종 이해관계에 대해 이보다 더 정교히 만들어진 방책은 생각하기 힘들다.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153쩍)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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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그밖에 그가 피렌체를 위해 제안한 많은 원칙과 세부적인 설명과 비유와 정치적인 관측은 『로마사론』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예컨데 그는 단속적이나마 진보를 계속하는 공화국의 발전법칙을 인정하면서, 국가는 유동적이고 변신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갑작스러운 사형선고나 추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 따라, 다시 말해 개인의 폭력과 외국의 간섭("모든 자유의 죽음")을 차단하려면 미움받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법상의 고소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렌체에는 지금까지 그 자리를 대신해 비방만이 있었다. 그는 또 공화국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큰 역할을 하는 부득이하고 때늦은 결단도 빼어나게 기술한다.(153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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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위대함


마키아벨리가 날카로운 관찰가라는 것, 그것은 그의 사무가 기질이나 재능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영국의 시인 비평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T.S. 엘리엇(1888∼1965)은 마키아벨리의 진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견유가(세상을 비꼬고 냉소적으로 보는 것)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에게는 견유주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생활이나 성격에는 그의 견해의 명석한 거울을 흐리게 할 만한 한 점의 약점이나 결점도 없다. 분명 세세한 점에서는 언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면 의식적인 냉소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그의 견해 전체는 그와 같은 감정적인 색채로 더럽혀져 있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같은 인생관은 순진한 상태라고 표현해야 할 영혼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의 정직성과 일반적으로 인간의 심정이 지니는 허위, 부정직,변절 등과 비교해 보고 그 차이가 막대하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의 보기 드문 위대함을 깨닫는 것이다."(《다른 신을 찾아서》) (60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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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편지들 가운데 1513년 12월 10일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요즘은 아침에는 태양과 함께 일어나서 늘 나무를 하는 나의 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럭저럭 2시간가량을 어제의 일을 정리하거나 나무꾼과 시간을 보냅니다. 숲을 나서면 나는 샘으로 갔다가 전에 장치해 두었던 새 올가미로 갑니다. 반드시 단테나 페트라르카의 시집을, 때로는 티브루스나 오비디우스 그 밖의 시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뭔가를 들고 가서 그들의 연정과 사랑을 읽고, 그리고 나의 경험과 함께 떠올리면서 한동안 즐거운 추억에 잠깁니다. 그런 다음 길가의 주점에 가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 나라의 진기한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인간의 다양한 취미와 발상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덧 식사시간이 됩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 누추한 별장과 나의 보잘 것 없는 재산이 제공해 주는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주점으로 돌아가지요. 해가 저물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갑니다. 입구에서 먼지와 진흙이 묻은 평상복을 벗고 예복으로 갈아입어 위엄을 갖춘 다음 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맞아줍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이고 나만을 위한, 나에게 익숙한 음식을 나에게 줍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취했던 행동의 동기를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4시간 동안 나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도 않고 고통도 잊고, 가난을 두려워않고, 죽음마저도 개의치 않게 되어 이 사람들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고 마는 것입니다."(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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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을 특징짓는 '포르투나' '네체시타' '콰리타 디 템피' '비르투' 등은 반드시 엄밀한 개념구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곳저곳의 문장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체로 '시류'라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대응하는 방식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즉 일반법칙을 세우기가 어렵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한편으로는 포르투나와 네체시타, 다른 한편으로는 콰리타 디 템피와 비르투가 있어서 그것들이 함수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통찰한 것은 무척 독창적인 생각이다. 독창적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의 역사철학자가 말하는 그런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서재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면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이론구성과 분석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럴 짬이 없다. 그의 사색은 항상 현실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론 따위는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의 《군주론》25의 맺음말은 그의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인생관에 가깝다.


"나는 용의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과단으로 흐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그녀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때려눕히거나 들이받거나 할 필요가 있는데 운명은 냉정한 방식으로 가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게 되는 것 같다. 요컨대 운명은 여성과 비숫하고 젊은이의 벗이다. 즉 젊은이는 사려는 깊지 않고, 거칠기 짝이 없으며, 지극히 대담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64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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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가 전제 권력을 유지하려고 사용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수단 가운데서도 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는 교활하게도 자기가 인민 측을 편들고 있는 사람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가 이런 짓을 한 것은 십인회에 재선을 노렸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를 귀족을 반대하는 측의 우두머리로 추대시키기 위해서도, 또 자기를 뜻대로 지지하는 여당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 특유한 수법이 빈틈없이 사용되었다.


여기까지는 아피우스도 잘해 냈으나, 내가 이미 말해 둔 경위로 갑자기 성격을 확 바꾸고, 평민의 벗에서 평민의 적으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263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1장 <겸양에서 오만으로, 동정에서 잔혹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은 생각이 얕고 무익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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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


십인회를 둘러싼 이상과 같은 문제를 검토해 보면, 사람이란 제아무리 선량하게 태어나고 제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해도, 아주 쉽게 타락해 버리고 또 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아피우스가 자신의 신변 호위를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은 청년들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약간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다는 조건만으로 참주 정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판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십인회의 멤버였던 퀸투스 파비우스도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도 본래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사소한 야심 때문에 분별을 잃은 데다가 아피우스의 악덕까지 물들어서 타고난 미덕도 내동댕이치고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게 되어 아피우스와 똑같이 되고 말았다.(263∼264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2장 <인간이란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 것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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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2-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저 또한 저렇게 행동했던 적은 없었는가, 흠칫 놀라게 됩니다. 헌데 진화심리적학적 시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저러한 추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화는 도덕, 윤리, 양심적 측면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고 동시에 부도덕, 비윤리, 비양심, 교활함, 간교함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니까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두 범주 간의 길항작용 때문에(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번식하고 생존해왔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번식과 생존에 불리하더라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매사를 조회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변신과 변절의 치밀한 계산과정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역설에 마주치는군요. 정말 딜레마 중의 딜레마 같습니다.

oren 2017-02-25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저 대목을 인용했던 이유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변신 과정‘이 생각나서였답니다. 어느덧 탄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내내 지켜보면서, 어느새 ‘가면‘이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만 여러 정치인들의 추악한 몰골도 함께 떠올랐고요. 그런데, 그런 변신 또한 개체의 생존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처절하기도 하더군요. 사태가 어쩔 수 없이 파멸로 다가갈 때 온갖 추악한 자구책을 총동원하는 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그게 결국은 자신의 명예만 더 더럽히는 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동서문화사 월드북 245
플루타르코스 지음, 박현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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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정의로움


모든 미덕 가운데에서도 으뜸은 정의로움이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용감한 사람을 존경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감탄하지만,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그것 말고도 사랑과 믿음이 더해진다. 사람들은 뻔뻔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영악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용기와 지혜는 타고나는 성품에 속하지만, 정의는 그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자기 의지로 정의를 선택한 사람은, 부정한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죄악이라 생각하며 혐오하는 법이다.(1403∼1404쪽)


 - <소(小) 카토 편>


 * * *


법을 잘 지켜라


본디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공포'뿐만 아니라 '죽음'과 '웃음', 그 밖의 다른 감정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두었다. 그들이 '공포'를 숭배하는 것은 그 초자연적인 힘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공포로 법과 질서가 유지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책을 보면, 에포로스는 관직에 취임할 때 사람들 앞에서 '모든 시민은 수염을 깎고 법을 잘 지켜라. 그러면 법은 어느 누구에게도 가혹하지 않을 것이다' 선언했다고 한다.(1449쪽)


 - <클레오메네스 편>


 * * *


수치와 불명예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


옛날 사람들에게 용기란, 단순히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닌, 수치와 불명예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었던 듯하다. 법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전쟁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우며, 정당한 비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속담은 진리라 할 수 있다.


존경에는 언제나 공포가 뒤따른다.


호메로스 시에는, 헬레네가 프리아모스에 대해 노래한 다음 대목이 있다.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또한 존경할 것입니다.


(1449∼1450쪽)


 - <클레오메네스 편>


 * * *


더 중요한 것


의사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질병에 대해 연구해야 하듯이, 음악가는 아름다운 화음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먼저 불협화음에 대해 충분한 연구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최고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절제, 정의, 지혜 등을 분별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선과 정의 또는 좋은 수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악과 불의 그리고 나쁜 수단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한 번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순수한 고백만을 칭찬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것은 그저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롭고 명예로우며 유용한 것과 사람들에게 해가 되고 정의롭지 못하며 부끄러운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1598∼1599쪽)


 - <데메트리우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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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1-1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오늘 글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수사 논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기에 맞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7-01-17 10:32   좋아요 1 | URL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까마득한 옛날에도 당연히 ‘법대로‘ 처리해야 할 일들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법보다 다른 사정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아직까지도 태연하게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문명화된 국가 가운데 어디에서 과연 이런 ‘뇌물죄‘를 ‘다른 사정 때문에‘ 봐줘야 한다고 버젓이 주장할 수 있는지 그게 도리어 궁금할 지경입니다.
 
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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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매장하는 거다. 우리는 카이사르를 매장하러 왔소. 그의 3월인지 6월의 재앙일(災殃日). 그는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지.

 

그런데 저쪽 비옷 입은 홀쭉하게 보이는 녀석은 누구야? 글쎄 누군지 알고 싶군. 글쎄 돈을 몇 푼 주어서라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으면. 꿈에도 결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녀석이 언제나 불쑥 나타나거든.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내내 혼자 외로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자신이 무덤을 팔수는 있어도 죽은 다음에 그를 묻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게 아냐. 우리 모두가 묻어주지. 단지 인간만이 매장하는 거다. 아니야, 개미들도 그래.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 죽은 자를 매장한다. 예컨대 로빈슨 크루소는 인생에 충실했다 지. 글쎄 그런데도 프라이디가 그를 매장했지. 그걸 생각해 보면 모든 금요일(프라이디)은 언제나 목요일을 매장하는 셈이다.

 

 

오,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

어떻게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런데, 죽음은 너무나 긴 휴식이야.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지. 느끼는 것은 단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아. 경치게도 불쾌한 순간임에 틀림없어. 처음에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틀림없이 잘못일 거야: 다른 사람일 거야. 맞은편 집을 알아 봐. 가만있자. 난 살고 싶었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자 어두컴컴해진 죽음의 방. 빛을 그들은 원한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사제를 불러올까요? 그러자 떠들어대며 우왕좌왕. 한평생 감추었던 정신착란이 온통 쏟아진다. 죽음의 투쟁. 그의 잠이 순조롭지 못하다. 아래쪽 누꺼풀을 눌러 봐요. 코가 불쑥 나오고 턱이 내려앉고 발바닥이 노랗게 되었나 살펴보는 것이다. 운명(殞命)했으니 베개를 빼버리고 마루 위에 반듯이 눕혀요. 죄인의 죽음을 그린 저 그림 속에 악마가 그에게 한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셔츠 품속에 그녀를 포옹하고 싶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루치아>의 마지막 장면. "나는 그대를 더 이상 볼 수 없나요?" 쿵! 그는 숨이 끊어진다. 마침내 가버렸다. 사람들은 당신에 관해서 조금 이야길 한다: 잊어버린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당신의 기도 속에 그를 기억해요. 심지어 파넬도. 담쟁이 날은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어 그들이 뒤따른다: 구멍 속으로 떨어지며. 차례 차례로.

 

(9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27일에 엄친의 무덤에 성묘하러 가야지. 묘지기에게 10실링. 그는 묘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해주지. 그 자신도 늙었어. 두 겹으로 몸을 구부리고 가위로 풀을 깎는 것이다. 죽음의 문 가까이. 죽어버린 자. 이승을 떠나버린 자.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나 한 것처럼. 떼 밀렸던 거다, 그들 모두. 목숨을 빼앗긴 자. 만일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를 스스로 말한다면 한층 재미있을 거야. 모모(某某) 차바퀴 목수올시다. 나는 코크 리놀륨을 주문 받으러 다녔지요. 나는 한 파운드 당 5실링을 지불했어요. 또는 소스 팬을 든 한 여인. 저는 맛있는 아일랜드 스튜를 요리했어요. 시골의 교회묘지를 읊은 송시(頌詩)는 당연히 그런 시(詩)여야 할거야 누구의 시더라 워즈워드였던가 아니면 토머스 캠벨이던가. 영원히 잠들면 신교도들은 시(詩)를 쓰지. 노(老)머렌 박사의 무덤. 위대한 의사(神)가 그를 집으로 불렀던 거다. 그렇지 여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땅이야. 참 좋은 시골의 주거. 새로이 벽토와 페인트칠을 했군.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교회시보(敎會時報)』를 읽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혼인 광고를 사람들은 결코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아. 손잡이 위에 걸려 있는 녹슨 금속 꽃다발, 청동 빛 금박 화환. 돈으로 따지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지. 하지만, 생화(生花)가 한층 더 시적이야. 전자가 오히려 싫증이 난단 말이야, 결코 시들지 않으니. 아무 표정도 없고. 불사(不死)의 것들.


(9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여기는 누가 누워 있지? 로버트 에머리의 유해가 놓여 있다. 로버트 에메트는 횃불에 의해 여기 매장되었지, 그렇잖아? 저놈의 생쥐가 빙빙 돌고 있군.

 

방금 꽁지가 사라졌다.

 

저따위 놈 같으면 시체 하나쯤은 얼른 해치울 거야. 그것이 누구든 간에 뼈를 깨끗이 추린단 말이야. 그들에게는 보통 먹는 식사지. 시체는 상한 고기야. 그렇지 그런데 치즈란 건 뭐야? 밀크의 시체지. 나는 저 『중국 항해기』에서 중국 사람들이 백인(白人)한테서 시체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걸 읽었어. 화장(火葬)이 보다 나아. 사제들은 그걸 한사코 반대하지. 다른 화장회사의 하청을 맡아 일하는 거다. 도매 화장회사와 네덜란드식 가마(釜) 상인들. 페스트가 만연할 때. 페스트를 소독해 버리는 생석회 열갱(熱坑). 무통치사실(無痛致死室). 재(灰)에는 재. 아니면 수장(水葬)을. 그 배화교(拜火敎)의 침묵의 탑(塔)은 어디에 있는고? 새들에게 먹힌 채. 흙, 불, 물. 익사가 최고 안사(安死)라고들 하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전(全)생애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공중에다 매장을 할 순 없잖아. 비행기로부터. 새로운 시체가 떨어질 때마다 뉴스가 사방에 퍼질지 몰라. 지하 통신. 우리는 그걸 두더지들한테서 배웠지. 놀랄 것도 없어. 저놈들에게는 규칙적인 맛있는 식사야. 사람이 채 북기도 전에 파리가 먼저 찾아오지. 디그넘을 냄새 맡는다. 저놈들은 시체 냄새를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 소금기 하얀 후물거리는 연한 시체 덩어리: 하얀 생(生) 순무 같은 냄새, 맛.


(94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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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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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말들이 장례의 침묵을 뚫고 화강암 덩어리 하나를 실은 삐걱거리는 마차를 끌면서, 핑글라스로부터 힘들고 터벅거리는 걸음걸이로 지나갔다. 그들의 선두에서 행진하는 마부가 인사를 했다. 이제 관(棺)이다. 죽은 몸이지만, 그는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도착한 셈이다. 장식 깃을 비스듬하게 꽂은 말이 관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흐리멍덩한 눈: 목에 꽉 낀 테, 혈관 또는 그 무엇을 세게 억누르고 있다. 말들은 자신들이 매일 무엇을 여기에 운반해 오는지 알고 있을까? 매일 스무 번이나 서른 번의 장례가 있음에 틀림없어. 당시 신교도들을 위한 마운트 제롬 묘지. 전 세계 매순간 어디서나 장례가. 짐차에 한꺼번에 가뜩 실어 재빨리 삽으로 갖다 묻는 것이다. 한 시간에 수천 개를, 세상에는 너무나 많아.


(8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로다.' 이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감동시키지요.

 

──── 그렇소, 블룸씨가 말했다.

 

아마 당신의 마음을 그러나 발가락을 실 국화에 묻은 채 6자(尺)에 2자 관속에 누워 있는 저 친구에게는 무슨 상관이랴? 그건 감동(感動) 금지지. 애정의 좌(座). 깨어진 심장. 결국 심장은 펌프야, 매일 수천 갤런의 피를 퍼내고 있으니. 어느 날 심장의 마개가 막히는 날에는: 너도 이제 끝장. 수많은 죽은 자들이 여기 사방에 누워 있다: 허파, 심장, 간. 낡고 녹슨 펌프들: 경칠 그 밖의 것. 부활이며 생명이라. 한번 죽으면 죽고 마는 거야. 최후의 날에 대한 착상. 모든 죽은 자를 무덤에서 두들겨 깨우는 거다. 나오너라, 라자로여! 그런데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일을 놓치고 말았지. 일어나! 최후의 날이야! 그러면 사람마다 자신의 간과 폐장(肺腸) 그리고 그의 나머지 부품들을 찾아 헤맬 테지. 저 아침 자신에게 속하는 모든 것을 다 찾는다. 두개골 속에 든 1페니 무게의 분말(粉末). 12그램 1페니의 무게. 트로이 치수로.


(87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블룸씨는 묘지관리인의 건장한 체구를 감탄했다. 모두 그와 친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점잖은 사람, 존 오코넬, 정말 착한 이야. 열쇠들(키즈): 마치 키즈 점의 광고처럼: 아무도 밖으로 나갈 염려 없지. 아무런 통과증 검열도. '하베아스 꼬르뿌스(인신보호).' 나는 장례 뒤에 저 광고에 관해 알아봐야지. 내가 마사에게 편지를 쓰는 걸 그녀가 방해했을 때 그걸 감추기 위해 내가 사용했던 봉투에다 볼즈브리지라 썼던가? 희망컨대 불명우편물취급소에 방치되지 않았으면. 그가 수염을 깎는 것이 한층 보기 좋군. 하얗게 솟아난 턱수염. 그것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솟는 최초의 징조지. 그리고 성질이 까다로워지는 거야. 백발 속의 은발.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상상해 봐. 그는 처녀한테 프로포즈할 적극성을 갖고 있는지 몰라. 와서 공동묘지에서 함께 살아요. 그녀 앞에 매달리는 거다. 처음에는 그녀의 몸을 오싹하게 할 거야. 사신(死神)에게 구혼하다니. 사방에 뻗어 누운 모든 사자(死者)들과 함께 이곳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밤의 망령들. 묘지가 하품을 할 때의 무덤의 그림자들 그리고 대니얼 오코넬은 한 사람의 후손임에 틀림없지 상상컨대 그가 어둠 속의 거인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위대한 카톨릭 교도로서 괴상하게도 생식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늘 하곤 하던 사람은 누구였지. 도깨비불. 무덤의 가스. 임신하기 위해 여인의 마음을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끊어 버릴 필요가 있지. 특히 여자들은 아주 과민하니까. 그녀에게 귀신 얘기를 해서 잠재우게 하려고 해봐요. 당신 여태껏 귀신을 본적이 있소? 글쎄, 나는 있어요. 때는 한밤중이었어. 시계가 12시를 치고 있었고. 그런데도 만일 적당하게 흥분이 되면 여자들은 마구 키스를 하지. 터키 묘지의 매음부들. 젊었을 때 경험하면 뭐든지 배우기 마련. 이런 곳에서 젊은 과부를 하나 주울 수도 있지. 사내들은 그런 걸 좋아하거든. 묘비 사이의 사랑. 로미오. 향락의 양념. 죽음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생활하고 있는 거다. 양극(兩極)은 서로 만나기 마련. 애태우는 것은 불쌍한 사자(死者)야. 굶주림에 구운 비프스테이크 냄새. 자신의 활력을 파먹고 있는 거다. 사람들을 흘분시키고 싶은 욕망. 창가에서 그걸 하고 싶어하던 몰리. 아무튼 저 묘지관리인은 아이들을 여덟 명이나 갖고 있지.


(88-89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러나 시체는 매우도 많은 구더기를 키워낸단 말이야. 흙이 그들로 오직 소용돌이치고 있음에 틀림없어. 그걸 생각하면 머리가 빙빙 돌지요. 저 사랑스런 바닷가의 소어녀들. 저이는 아주 쾌활하게 묘지 위를 바라다보고 있군. 모든 다른 이들이 먼저 땅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에게 힘의 감각을 주는 거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몰라. 농담도 잘 걸면서: 사람의 마음속을 훈훈하게 하는 거다. 사자(死者)에 대한 게시판. 스파지온은 오늘 오전 4시에 천국으로 출발. 오후 11시(마감시간). 아직도 미착(未着). 베드로. 죽은 사람 자신들이 남자라면 어쨌든 야릇한 농담을 듣고 싶어할 게고 부인들이라면 요사이 유행하는 것이 뭔지를 듣고 싶어할 거야. 즙 많은 배(果) 또는 귀부인용의 뜨겁고, 독한 그리고 달콤함 펀치 술, 습기 없는 곳에 보관할 것. 자네도 틀림없이 가끔 웃음이 나올 거야 그러니 저런 식으로 해보는 게 좋아요. <햄릿>에 나오는 묘굴인(墓堀人)들. 인간의 마음의 심오한 지식을 보여 주는 거다. 적어도 죽은 지 2년 동안은 감히 죽은 사람에 대해 농담을 해서는 안되지. '데 모르뚜이스 닐 니시 쁘리우스(죽은 자에 대해 악담하지 말라).' 우선 슬픔에서 벗어나는 거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기는 힘들지. 일종의 장난같이 보일 테니까. 자기 자신의 사망 광고를 읽으면 더 오래 산다고들 말하지. 당신에게 두 번째 입김을 불어넣어 주는 거다. 생명의 계약갱신(契約更新).

 

──── 내일은 몇 구(具)나 됩니까? 묘지관리인이 물었다.

 

──── 둘요, 코니 캘러허가 말했다. 10시 반과 11시.


(89-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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