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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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휴식도 하지 못한 인간들은 이쪽이나 저쪽에서, 아직도 서로 죽여야 하나? 하는 의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두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보이고, 모두의 마음에 의문이 일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나는 죽이고, 죽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죽이고 싶은 자는 죽이란 말이다. 멋대로 하란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싫다!’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모두의 마음에 이와 같은 생각이 익어갔다. 지금도 이들 모두가 자기네들이 한 일에 대해 겁을 먹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달아나고 싶은 것 같았다.(1126쪽)



무서운 사태


그러나 전투가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자기들 행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기꺼이 전투를 중지하고 싶어 했는데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 아직도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포 3문에 한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은 포병들은 땀에 젖어 화약 냄새와 피를 뒤집어쓴 채 피곤해서 발이 걸려 휘청거리거나 숨을 헐떡이면서도, 탄약을 운반해 장전하고 조준을 맞추어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포탄은 여전이 재빨리 잔혹하게 양쪽으로부터 날아가 인간의 육체를 망가뜨렸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서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러시아 군의 후방을 본 사람은, 프랑스군이 조금만 더 밀고 나갔더라면 러시아군은 소멸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 프랑스군의 후방을 본 사람은 러시아군이 조금만 더 힘을 썼다면, 프랑스군은 멸망했을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군도 러시아군도 더 밀지 않고 전투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1126-1127쪽)



봄이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일부 역사가는 나폴레옹이 남아 있는 옛 근위대를 투입하기만 했다면 전쟁은 승리로 끝났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만약 근위대를 투입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은, 봄이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근위대를 내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군의 장군, 장교, 병사는 모두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저하된 사기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로지노에서 받은 치명상 때문에


무서운 힘으로 추켜든 손이 맥없이 늘어지는 꿈과도 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던 것은 비단 나폴레옹만이 아니었다. 전쟁에 참가했건 안 했건 간에 프랑스군의 모든 장군들과 모든 병사들이 느끼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전투를 경험하면서 (이제까지는 이 10분의 1의 노력에도 적은 도망가 버렸다) 병력의 반을 잃고 전쟁이 끝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와 마찬가지로 무섭게 버티고 있는 적에 대해서 나폴레옹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하는 프랑스군의 정신력이 소진된 것이다. 빼앗은 천 조각, 군기라고 불리는 막대기 끝에 단 헝겊 조각이나 군대가 서 있던 또는 서 있는 공간 등에 의해 결정되는 승리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정신적 우월과 상대방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정신적인 승리가 보로지노에서 러시아군에 의해서 쟁취되었다. 러시아를 침공한 프랑스군은 세차게 달리는 동안에 상처를 입어 미처 날뛰는 짐승처럼, 자신의 파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것은 전력이 반으로 약해진 러시아군이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격을 받은 후에도 프랑스군은 모스크바까지 굴러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러시아군 쪽에서 새로운 힘을 가하지 않아도, 프랑스군은 보로지노에서 받은 치명상 때문에 많은 피를 흘리고 멸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로지노 회전의 직접적인 결과는 모스크바로부터의 이유 없는 나폴레옹의 도주, 구(舊) 스몰렌스크 가도를 통한 귀국과 50만 침입군의 괴멸, 그리고 보로지노 전에서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압도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의 괴멸이었던 것이다.(1127-1128쪽)



총사령관의 입장


전쟁이나 전투 계획은 지휘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서재에서 지도를 바라보면서 이러저러한 전투에서 자기라면 어떤 식으로 지휘할 것인가, 또 어떻게 지휘를 했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왜 꾸뚜조프는 퇴각할 때 이런 식으로, 또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는가, 왜 그는 필리(모스크바 교외의 마을)에 도달하기 전에 진지를 잡지 않았는가, 왜 그는 곧 깔루가 가도로 퇴각하지 않고 모스크바를 포기했는가 등등. 이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항상 모든 사령관이 행동을 취할 경우의 필연적인 조건을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령관의 행동은, 우리가 서재에 한가하게 앉아서 일정한 수의 군대가 쌍방에 있고, 일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지도 위의 전투를 분석하여, 자기의 생각을 일정한 시점에서 시작할 때에 공상하는 행동과는 전혀 다르다. 총사령관은 우리가 항상 그 어떤 사건을 관찰할 경우처럼 그 사건의 발단의 시점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총사령관은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일련의 사건 속에 있는 것이며, 어떠한 순간에도 절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의미나 전체를 생각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 사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시각각으로 부각되어 그 뜻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연속적으로 끊어지지 않고 사건이 부각되는 개개의 시점에서 총사령관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책동, 음모, 심로, 종속, 권력, 제안, 조언, 협박, 기만의 와중에 있으며, 자기에게 제출되는 항상 서로 모순된 무수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1135-1136쪽)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이미 한 말은 은이지만, 하지 않은 말은 금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다.(1160쪽)



그렇다, 바로 저것이 모스크바다!


'그러나 보라, 모스크바는 금빛 둥근 지붕과 십자가를 햇살 속에서 반짝이고 떨면서 내 발 아래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녀석을 용서해 준다. 야만과 전체의 낡은 비석 위에 나는 정의와 자비의 위대한 말을 새겨 주겠다 …… 알렉산드르는 누구보다 이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것이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지금 생기고 있는 일의 가장 큰 의의는 자기와 알렉산드르와의 개인적인 싸움에 있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느끼고 있었다). 크레믈린의 꼭대기에서 ㅡ 그렇다, 저것이 크레믈린이다. 그렇다ㅡ나는 그들에게 정의의 법률을 가르쳐 주고, 나는 그들에게 참된 문명의 의의를 보여주겠다. 나는 러시아 귀족들의 자자손손까지 정복자의 이름을 사랑의 마음으로 상기시키도록 하겠다. 나는 전권 대표단에게, 나는 전쟁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고 지금도 바라고 있지 않다, 나는 너희들 궁정의 잘못된 정치와 싸운 데에 지나지 않다, 나는 알렉산드르를 경애하고 있다, 나는 나와 나의 국민에게 어울리는 강화 조건을 모스크바에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해 주겠다. 나는 존경하는 황제를 모욕하기 위해서 승리의 행운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귀족들이여, 하고 나는 말해주겠다. 나는 전쟁을 바라지 않고 평화와 나의 신하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고. 하여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놈들이 눈 앞에 있으면 기분이 용솟음쳐서 여느 때처럼 명쾌하고 당당하고 훌륭하게 말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모스크바에 있다는 것은 정말일까? 그렇다, 바로 저것이 모스크바다!'(1197-1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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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살육이 있을 뿐


전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한 것은 연이어 계속되는 살인이었고, 러시아측에서도 프랑스측에서도 쓸데없는 살육이 있을 뿐이었다. 나폴레옹은 말을 멈추고, 베르쩨에 의해 방해된 명상에 다시 잠겼다. 그는 자기 앞과 주위에서 생기고 있는 일, 자기가 지배하고, 자기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결과로서 이 전투가 그에게 처음으로 쓸데없는, 무서운 것으로 여겨졌다.(1109쪽)



파악할 수 없는 힘


죽음과 싸우고 있는 10만이 넘는 인간을 단 한 사람이 지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다년간에 걸친 전쟁 경험과 노인의 지혜로 알고 있었다. 그는 전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총사령관의 지시도, 각 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대포나 죽은 자의 수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대의 사기라고 하는, 파악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래서 그 힘을 주시하고,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 힘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다.(1110쪽)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은 보다 더 완강한 자


"그렇다면 자네는 다른 사람처럼 아군이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지?"


"반대입니다, 각하. 승패가 정해지지 않은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은 보다 더 완강한 자입니다." 라에프스끼가 대답했다. "제 의견으로는 ……."


"까이사로프!" 꾸뚜조프는 자기 부관을 불렀다. "앉아서 내일의 명령을 써 주게. 그리고 자네는" 그는 또 다른 한 부관에게 말했다. "전선을 돌아다니며 포고해라. 내일 우리 군은 공격한다고 말이야." (1113쪽)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


안드레이도 이야기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눈을 반짝이며 상대방을 바라보고 마음이 위로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저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 세상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어째서 나는 이렇게 인생과 헤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는가? 이 인생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1119쪽)




새롭고 뜻하지 않은 추억


'그렇다, 바로 그 사나이다. 저 사나이와 나 사이에는 무엇인가 밀접한 괴로운 관계가 있다.' 안드레이는 자기 눈앞의 사실을 아직 뚜렷이 이해하지 못한 채 생각하였다. '이 사나이와 나의 유년시대, 나의 인생과의 연관 관계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문득, 어렸을 때의 깨끗하고 사랑에 찬 세계 깊숙한 곳으로부터 새롭고 뜻하지 않은 추억이 안드레이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는 1810년의 무도회에서 처음 본, 가는 목과 가는 팔을 하고 한껏 생기에 넘친 행복스러운 얼굴을 한 나따샤를 상기하였다. 그러자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의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지금 그는 울어서 부은 눈에 넘쳐흐르는 눈물을 통해서 멍청하게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사나이와 자기와의 관계를 상기하였다. 안드레이는 모든 것을 상기했다. 그러자 이 사나이에 대한 감동에 찬 연민과 사랑이 그의 행복한 마음에 넘쳤다.(1121-1122쪽)



그러나 이제는 이미 늦었다


안드레이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람들과 자기의 미망에 대하여, 또 남과 자기에게 상냥한 사랑에 찬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동정, 동포에 대한, 사랑해 준 사람에 대한 사랑,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적에 대한 사랑. 그렇다, 하느님이 지상에서 설교하신 마리아가 나에게 가르쳐 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저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에 미련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거다, 아직 남겨진 것은. 만약 내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늦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1122쪽)



세상의 절반이 칭찬하고 있는 자기 행위를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사건에 관계된 다른 그 누구보다도 답답하게, 이 사건의 모든 중압감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있던 이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흐려진 것은 이날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생애가 끝날 때까지 선도 아름다움도, 진실도 자기 행위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행위가 선과 진실과 너무나 대립하고, 또 모든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의 절반이 칭찬하고 있는 자기 행위를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진실과 선과 모든 인간적인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자(死者)와 폐인이 된 사람들(그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그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로 가득 찬 전장을 돌아보면서 그가 이들 인간을 보고, 프랑스 병사 1인당 러시아 병이 몇 명이 되는가를 계산하여, 프랑스 병 한 사람에 대해서 러시아 병 다섯 명이 된다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고 기뻐할 이유를 발견한 것은 이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전장에 5만의 시체가 있다는 이유로 '전장은 휼륭하다'고 파리에 편지를 쓴 것은 이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독거의 정적 속에서까지도 역시 그러했다. 그는 거기서 한가한 시간을 자기가 한 위대한 사업을 기술하는 데에 바칠 작정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썼던 것이다.


'러시아 전쟁은 현대에서 가장 민의에 합당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양식과 참된 이익을 위한 싸움이자, 만인의 평안과 안전을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전히 평화적, 보수적인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었고, 우연한 일들의 끝이자 평안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지평, 새로운 사업이 만인의 복지와 번영으로 가득 차서 열릴 것이고 유럽 체제의 기초가 놓였을 것이며, 문제는 다만 그것을 어떻게 짜맞추느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파리는 세계의 수도가 되고, 프랑스 사람은 온갖 민족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내 아들이 제왕 교육을 받는 틈을 타서, 황후와 함께 진짜 시골 부부처럼 내 말을 타고 여행하며 여가와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국내 방방곡곡을 두루 방문하여 민원을 듣고 부정을 바로잡고, 전국 곳곳에 기념 건축물과 선행을 베풀었을 것이다.'


여러 국민의 사형 집행인이라고 하는, 비참하고 부자유한 역할이 섭리에 의해서 정해져 있던 이 사나이가 자기 행위의 목적은 여러 국민의 복지이며, 자기는 수백만 명의 운명을 지배하여 권력을 사용해서 선행을 베풀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1123-1125쪽)



어, 그만, 충분하다, 인간들이여


아까까지 그토록 명랑하고 아름답고 아침 햇살에 총검이 반짝이며 연기가 피어오르던 들판에 지금은 습기와 연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끼어 있고, 초연과 피의 이상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비구름이 모여들어 전사자와 부상병과 겁먹은 자, 그리고 녹초가 된 자,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위에 후두둑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젠 됐어, 그만, 충분하다, 인간들이여, 그만 …… 제정신을 차려라. 대체 너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1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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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코감기

더욱이 전투의 경과를 지배한 것은 나폴레옹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작전 명령서 중에서 그 어떤 것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고, 전투 중에도 그는 자기 앞에 생기고 있는 일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죽였느냐 하는 것도 나폴레옹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와는 관계없이 전투 전체에 참가한 수십만의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폴레옹은 다만 모두가 자기의 의지에 의해 행하여졌다고 느껴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나폴레옹이 코감기에 걸려 있었느냐의 여부는, 역사상 최하급 수송병의 코감기 문제 이상의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물며 나폴레옹의 코감기 탓으로 그 작전 명령서와 전투 중의 지시가 종전의 것에 비해서 좋지 않았다는 문필가들의 말은 전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므로, 8월 26일의 나폴레옹의 코감기 같은 것은 더욱더 의미가 없는 것이다.(1084쪽)



살기 위한 기계

" …… 우리들의 몸은 살기 위한 기계다. 몸은 살기 위해 만들어져 있다. 그것이 몸의 본성이다. 몸 안의 생명을 좋을 대로 내버려 두면 돼, 생명이 스스로 자기를 지키도록, 그렇게 하면 약으로 방해를 해서 속박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일을 생명이 해준다. 우리의 몸은 일정한 시간 일을 하도록 의무가 지워진 시계와 똑같다. 시계방은 그것을 열 수가 없고 눈을 가린 채 손으로 더듬어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들의 몸은 살기 위한 기계다, 그것뿐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좋아하는 정의(定義), 프랑스어로 말하자면 디피니시옹의 연쇄로 들어간 것처럼 그는 갑자기 새로운 정의를 하였다. "알고 있나? 랏프, 전술이란 무엇인가?" 그는 물었다. "어느 순간에 적보다 강해지는 기술이다. 그것뿐이다."(1087쪽)



가장 좋은 수를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기분이 무거웠다. 그것은 무턱대고 돈을 퍼부어 언제나 돈을 따온 항상 운이 좋았던 노름꾼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승부의 온갖 가능성을 생각하여 써야 할 가장 좋은 수를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더욱더 돈을 잃을 가능성이 확실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군대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고, 장군들도 변함없었다. 전투 준비와 작전 계획도 이전과 다름없었다. 포고도 마찬가지로 간결하면서 힘차고, 그 자신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이전에 비해서 훨씬 경험이 풍부해졌고 노련해진 것도 알고 있었다. 적도 아우스터리츠나 프리틀란드 때와 똑같았다. 그런데, 무서운 기세로 내리친 손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힘없이 풀린 것이다.


모든 것이 항상 성공을 거두었던 이전과 같은 방법이었다. 포병대의 한 지점에 대한 집중도, 전선 돌파를 위한 예비대의 반격도, 강철 같은 기병대의 공격도, 그러한 모든 방법이 이미 다 사용되었는데도 승리를 얻을 수가 없을 뿐더러, 사방으로부터 장군의 사상(死傷)이나 증원의 필요, 러시아군 격파의 불가능함이나 군의 혼란 등이 보고되었다.(1107-1108쪽)



꿈속에서 악한의 습격을 받아


돌각 보루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이 이제까지의 자기 전투에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같은 기분을, 전투의 기분을 쌓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침울하고 모두의 눈이 서로를 피하고 있었다. (⋯) 나폴레옹은 전쟁의 오랜 경험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여덟 시간에 걸쳐 모든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측이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거의 진 전쟁이고, 극히 사소한 우연이 지금에 와서는 - 지금 전투가 처해 있는 극한에 이른 긴장점(緊張點)에서는 - 자기와 자기의 군을 파멸시킬 염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승리를 거둔 전투는 하나도 없었고, 두 달 동안에 군기도 대포도 군단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이 기묘한 러시아 원정 전체를 여러 가지로 머리에 떠올리고, 주위 사람들의 슬픔을 감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폴레옹은 꿈속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무서운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를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갖가지 불행한 가능성이 머리에 떠올랐다. 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의 좌익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한 가운데를 돌파할지도 모른다. 유탄이 자기 자신을 쏴 죽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다. 이제까지의 전투에서 그는 오직 승리의 가능성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무수한 불행의 가능성이 떠오르고, 더욱이 그는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꿈속에서 악한의 습격을 받아, 반드시 상대방을 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손을 들어올려 악한을 내려쳤을 때, 그 손이 넝마처럼 힘이 빠져, 비참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공포가 무력하고 무원(無援)의 인간을 사로잡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1108-1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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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나이의 마음 속에 있는


"…… 전쟁의 승리라는 것은 절대로 과거에 있어서나 장래에 있어서나 진지나 장비나 병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진지 같은 것은 가장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럼 무엇으로 결정됩니까?"


"기분이지, 나나 이 사나이의 마음 속에 있는." 그는 찌모힌을 가리켰다.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1069쪽)



클라우제비츠


장교들은 일어났다. 안드레이는 부관에게 마지막 명령을 주면서 장교들과 함께 헛간 뒤로 나갔다. 장교들은 가버렸다. 삐에르는 안드레이 곁으로 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려고 한 순간 헛간의 가까운 길에서 세 마리 말의 말굽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흘끗 엿보고, 안드레이는 그것이 까자크 병이 딸린 볼쪼겐과 클라우제비츠(프러시아 장군, 러시아 군에 근무하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잡담을 하면서 옆을 지나갔는데, 삐에르와 안드레이는 본의 아니게 다음과 같은 대화를 들었다.


"전쟁은 넓은 공간으로 옮겨져야 해. 이와 같은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하네." 한 사람이 말했다.


"그래." 다른 사람이 말했다. "목적은 적을 약하게 하는 데에 있으니까, 개인의 희생을 문제 삼을 수는 없어."


(나의 생각)


혹시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에 클라우제비츠도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소설을 읽는 도중에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이 전쟁에 실제로 참전했던 숱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걸로 미루어 '그의 등장'을 살짝 예감할 만했다. 역시 그가 이 대목에서 등장했다. 『전쟁론』으로 유명한 그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직접 체험하고 나서 '승리의 한계 정점'이라는 유명한 '전쟁 이론'을 수립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이며 절대로 놀이가 아냐


전쟁은 애교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깨닫고 전쟁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해. 이 무서운 필연성을 엄격하고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 요컨대 이렇게 되어야 해. 거짓을 버려야 하네.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이며 절대로 놀이가 아냐.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란 할 일이 없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가장 좋아 하는 놀이가 되어 버린다…… 군인이라는 계층은 가장 존경을 받는다. 그렇지만 대관절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군인 사회의 기풍이란 어떠한 것인가? 전쟁의 목적은 살인이 아닌가. 전쟁의 수단은 스파이 행위, 배반이나 배반의 장려, 주민 생활의 황폐, 군의 물자 조달을 위한 약탈이나 도둑질이다. 군사 상의 책략이라고 불리는 거짓말과 기만이다. 군인 계급의 기풍은 자유가 없다는 것, 즉 규율, 무위, 무지, 잔인, 방탕, 음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모두 사람의 존경을 받는 최고의 계급인 것이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황제나 군복을 입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죽인 자일수록 큰 상을 받고 있어……(1072-1073쪽)



나폴레옹의 영향은 단지 표면적인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다른 대답을 생각할 수가 있다. 세계적 사건의 흐름은 미리 하늘에 의해서 정해져 있고, 이들 사건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전체 의지의 총합에 의해 결정된느 것이며, 이들 사건의 흐름에 대한 나폴레옹의 영향은 단지 표면적인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샤를르 9세가 명령을 내린 성 바르톨로뮤의 학살은 그의 의지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것을 하도록 명령했다고 착각한 데에 지나지 않았고, 보로지노 평야에서의 8만 학살은 나폴레옹의 의지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전투 개시나 전투의 흐름에 대해서는 그가 명령을 내렸지만) 자기가 그것을 명령했다고 착각한 데에 지나지 않았다는 추측은 언뜻 보기에 기묘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위대한 나폴레옹 이상의 인간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보다 이하의 인간도 아니라고 나를 향해 말하는 인간적 존엄의 마음이, 지금 말한 것과 같은 문제의 해결을 인정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의 여러 가지 연구 결과가 이 추측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1083쪽)



'마개를 뺀 술을 마셔야 한다'고 느낀 것


프랑스군 병사가 보로지노 전투에서 러시아 병을 죽이기 위해 앞으로 나온 것은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희망에 의한 것이었다. 전군이, 해진 군복에 굶주리고 행군에 지친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 독일인과 폴란드인들은 자기들로부터 모스크바를 지키고 있는 군대를 보고, '마개를 뺀 술을 마셔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만약 나폴레옹이 그때 러시아군과의 전투를 금지했다면, 그들은 나폴레옹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러시아군과 전투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것은 필연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10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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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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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

 

1812년에 프랑스군이 괴멸한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지금 그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괴멸한 원인은 겨울철 원정 준비도 없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러시아 안쪽 깊숙이 침입했다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모든 도시를 불태워 러시아 민중에게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 전쟁의 성격에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반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지휘관에 의해 통솔된 세계 최고의 80만 군대가 경험이 없는 지휘관들에 의해 통솔된, 반밖에 되지 않는 러시아군과 충돌해서 괴멸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러한 경과를 밟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는 것을(지금은 명백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 꿰뚫어본 사람이 없었다. 누구 한 사람 꿰뚫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 쪽에서 한 모든 노력을 러시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방해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갔고, 프랑스군 쪽에서는 나폴레옹의 풍부한 경험과 이른바 군사적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은 모두 여름이 끝날 무렵 모스크바까지 전선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을 틀림없이 멸망시키게 되는 일을 하는 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945쪽)

 



우리는 보리가 필요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들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보리가 필요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던지라는 거죠? 싫습니다, 정말 싫습니다……. 찬성할 수 없습니다. 아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가세요, 혼자 떠나가시란 말입니다. 혼자서……." 군중 속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이 군중의 모든 얼굴에는 같은 표정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확실히 호기심과 감사의 표정이 아니라, 적의에 찬 결의의 빛이 있었다.(1007쪽)


(…)


"찬성할 수 없습니다. 적이 빼앗으려면 빼앗으라지! 당신 보리 같은 것은 필요없습니다. 찬성할 수 없습니다!"


마리야는 다시 군중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그녀에게 집중되고 있는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눈도 분명히 그녀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쑥스럽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봐, 제법 설교를 잘 하고 있군 그래. 자기를 따라와서 노예가 되라는 거야. 집을 버리고 노예가 되라는 거야! 어이가 없군. 보리를 준다지 않아!" 군중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1007-1008쪽)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해서 셰바르지노와 보로지노 부근에서 전투가 시작되어 여기에 응전했는가? 무엇 때문에 보로지노 전투가 있었는가? 이 전투는 프랑스군이나 러시아군에 아무런 뜻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 전투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긴 일, 또 당연히 생겨야 했던 일은, 러시아군에는 모스크바의 파멸이 가까워졌다는 것(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던 일)이고, 프랑스군에는 전군의 파멸이 가까워졌다는 것(이것도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그 당시 이미 너무나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이 전투를 걸어왔고, 꾸뚜조프는 여기에 응전했던 것이다.


만일 쌍방의 사령관이 이성적인 이유에 따라서 행동을 했더라면, 2000㎞나 깊이 들어와서 전군의 4분의 1을 잃을 공산이 큰 전투를 벌인다면 틀림없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쯤은 나폴레옹도 명백히 알았을 것이다. 또 싸움에 응해서, 역시 전군의 4분의 1을 잃을지 모를 모험을 감행한다면 틀림없이 모스크바를 잃게 된다는 것도 명백했을 것이다. 꾸뚜조프에게 이것은 수학적으로 명백한 일로, 그것은 마치 장기를 둘 때 내 쪽 말이 상대방보다 하나 적은데도 서로 빼앗기를 하면 반드시 진다, 따라서 빼앗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말이 열여섯 개이고 이쪽이 열네 개라면 이쪽은 상대방보다 8분의 1이 약할 뿐이지만, 만약 열세 개의 말을 서로 빼앗아 버린다면 상대방은 이쪽보다 세 배나 강해지는 것이다.


보로지노 전투가 있기 전까지 아군과 프랑스군의 병력은 거의 5대 6이었지만, 전투 후에는 1대 2가 되고 말았다. 즉 전투 전에는 10만 대 12만이었던 것이, 전투 후에는 5만 대 10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현명하고 경험이 풍부한 꾸뚜조프가 전투에 응했던 것이다. 한편 천재적인 지휘관이라고 일컬어지는 나폴레옹은 전쟁을 걸어 군의 4분의 1을 잃고, 게다가 더욱 자군의 전선을 확대해 가면서 도전했다. (⋯)


보로지노의 전투를 걸고 이 전투에 응함으로써 꾸뚜조프와 나폴레옹은 자기의 의지에 의하지 않고 무의미한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세계 여러 사건의 의지를 갖지 않은 도구 중에서 가장 노예적이고 자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인 지휘관들의 선견지명이나 천재성을 증명하는 증거를 교묘하게 날조하여, 이미 생긴 사실에 그것을 후에 적용시키고 있다.(1041-1042쪽)



우리는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고대 사람들은 영웅 서사시의 전형(典型)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 속에서 영웅이 역사의 모든 흥미를 형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현대의 인간적인 시대에 이런 종류의 역사는 뜻을 갖지 않는다는 것에 우리는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1042쪽)



집단에서는 반대로 두 번째 소리에 따른다
 
적이 모스크바로 가까이 옴에 따라, 자기들의 상황에 대한 모스크바 시민들의 생각은 심각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닥쳐오는 큰 위험을 눈앞에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항상 볼 수 있는 것처럼 한층 경박(輕薄)해지고 말았다. 위험이 닥치면 반드시 두 가지 목소리가 다 같이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법이다. 한쪽 목소리는 위험의 성격 그 자체와 그것을 피하는 수단을 잘 생각하라고 실로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 다른 한쪽 목소리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전체의 흐름에서 빠져나오기란 인간의 힘에 겨운 일이고, 위험이 닥쳐온다는 것을 생각하기란 괴롭고 쓰라린 일이므로, 따라서 괴로운 일이 닥쳐올 때까지 그것으로부터 딴 데로 눈을 돌리고 즐거운 일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한층 더 이치에 닿는 말을 한다. 혼자의 경우에는 인간은 대체로 첫 번째 소리에 따르지만, 집단에서는 반대로 두 번째 소리에 따른다. 지금 모스크바의 주민들의 경우가 그러했다. 이때처럼 모스크바에서 사람들이 즐겼던 일은 오랫동안 없었다.(1030-1031쪽)



인생 전체가


내일의 전투를 위한 명령은 이미 내려졌고, 그는 이미 그것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단순명쾌하고 그 때문에 무서운 생각이 그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는 내일의 전투가 이제까지 자기가 참가한 어느 전투보다도, 틀림없이 가장 무서운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난생 처음으로 실생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또 그것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생각도 없이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영혼에 대한 것으로 생생하고 거의 의심할 여지없이 노골적으로 무섭게 떠오른 것이었다. 이제까지자기를 괴롭히고 붙잡고 있었던 모든 것이 이 상상의 절정에서 갑자기 차가운 백일(白日)에 노출되어, 그림자도 원근도 윤곽의 구별도 없어지고 말았다. 인생 전체가 이제까지 오랫동안 렌즈를 통해서 인공적인 조명 아래에서 보고 있던 환등처럼 그에게는 느껴졌다. 지금 그는 갑자기 렌즈를 통하지 않고, 밝은 대낮의 광선 밑에서 조잡하게 마구 그려진 그림을 본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 이것이 내 마음을 흔들고 기쁘게 하고 괴롭현던 환상인 것이다.' 그는 자기 인생의 환등의 주요 장면을 하나하나 회상하고는, 지금은 그것을 죽음에 관한 명백한 생각이라고 하는 밝은 낮의 햇볕에 대고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말했다. '이거다, 조잡하게 그린 바로 이 그림인 것이다. 무엇인가 훌륭하고 신비스럽게 여겨졌던 것은 명예, 공공의 복지, 여자에 대한 사랑, 조국 그 자체였다. 이러한 영상이 나에게는 실로 위대하게 여겨졌었다. 실로 깊은 뜻에 차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밝아오기 시작하는, 아니 밝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아침의 차가운 백일을 받으면 그것은 모두 매우 단순하고, 퇴색하고, 조잡한 것이다.' 그의 인생의 세 가지 큰 슬픔이 특히 그의 마음에 걸렸다. 여자에 대한 사랑, 아버지의 죽음, 러시아의 반을 빼앗은 프랑스의 침공. '사랑!…… 신비스러운 힘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나에게 여겨졌던 그 아가씨. 용케도 내가 그런 아가씨를 좋아하게 됐던 거야! 나는 사랑과 그녀와의 행복에 대해서 여러 가지 로맨틱한 계획을 세웠었다. 참 귀여운 철부지다!' 그는 증오스러운 듯이 입 밖으로 외마디 소리를 냈다. '용케도, 나는 내가 없는 만 1년 동안 나를 위해 그녀가 틀림없이 정절을 지켜줄 것이라고, 무엇인가 이상적인 사랑의 힘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상냥한 작은 비둘기처럼, 그 아이는 나와 헤어져 있는 동안에 야위었어야 했어. 그러나 이런 일은 모두 훨씬 단순하다…… 이런 일은 모두 무서우리만치 단순하고 추잡한 일이다!'(1063-1064쪽)


(나의 생각)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스며든 대목이자, 결국 작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안드레이를 통해 작가의 내면을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아주 인상깊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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