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


피렌체의 신국가 조직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완벽한 계획안은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친 건의서에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군주론』을 헌정받은 우르비노의 공작 소(小) 로렌초 메디치가 죽은 뒤(1519년) 씌어진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가 제안한 수단과 방법도 모두 도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화국을 세워 메디치 가를 계승시키고자 한 것, 그것도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한 것을 관찰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교황과 그의 특별한 추종자들과 피렌체의 각종 이해관계에 대해 이보다 더 정교히 만들어진 방책은 생각하기 힘들다.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153쩍)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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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그밖에 그가 피렌체를 위해 제안한 많은 원칙과 세부적인 설명과 비유와 정치적인 관측은 『로마사론』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예컨데 그는 단속적이나마 진보를 계속하는 공화국의 발전법칙을 인정하면서, 국가는 유동적이고 변신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갑작스러운 사형선고나 추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 따라, 다시 말해 개인의 폭력과 외국의 간섭("모든 자유의 죽음")을 차단하려면 미움받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법상의 고소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렌체에는 지금까지 그 자리를 대신해 비방만이 있었다. 그는 또 공화국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큰 역할을 하는 부득이하고 때늦은 결단도 빼어나게 기술한다.(153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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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위대함


마키아벨리가 날카로운 관찰가라는 것, 그것은 그의 사무가 기질이나 재능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영국의 시인 비평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T.S. 엘리엇(1888∼1965)은 마키아벨리의 진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견유가(세상을 비꼬고 냉소적으로 보는 것)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에게는 견유주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생활이나 성격에는 그의 견해의 명석한 거울을 흐리게 할 만한 한 점의 약점이나 결점도 없다. 분명 세세한 점에서는 언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면 의식적인 냉소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그의 견해 전체는 그와 같은 감정적인 색채로 더럽혀져 있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같은 인생관은 순진한 상태라고 표현해야 할 영혼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의 정직성과 일반적으로 인간의 심정이 지니는 허위, 부정직,변절 등과 비교해 보고 그 차이가 막대하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의 보기 드문 위대함을 깨닫는 것이다."(《다른 신을 찾아서》) (60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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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편지들 가운데 1513년 12월 10일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요즘은 아침에는 태양과 함께 일어나서 늘 나무를 하는 나의 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럭저럭 2시간가량을 어제의 일을 정리하거나 나무꾼과 시간을 보냅니다. 숲을 나서면 나는 샘으로 갔다가 전에 장치해 두었던 새 올가미로 갑니다. 반드시 단테나 페트라르카의 시집을, 때로는 티브루스나 오비디우스 그 밖의 시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뭔가를 들고 가서 그들의 연정과 사랑을 읽고, 그리고 나의 경험과 함께 떠올리면서 한동안 즐거운 추억에 잠깁니다. 그런 다음 길가의 주점에 가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 나라의 진기한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인간의 다양한 취미와 발상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덧 식사시간이 됩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 누추한 별장과 나의 보잘 것 없는 재산이 제공해 주는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주점으로 돌아가지요. 해가 저물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갑니다. 입구에서 먼지와 진흙이 묻은 평상복을 벗고 예복으로 갈아입어 위엄을 갖춘 다음 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맞아줍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이고 나만을 위한, 나에게 익숙한 음식을 나에게 줍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취했던 행동의 동기를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4시간 동안 나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도 않고 고통도 잊고, 가난을 두려워않고, 죽음마저도 개의치 않게 되어 이 사람들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고 마는 것입니다."(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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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을 특징짓는 '포르투나' '네체시타' '콰리타 디 템피' '비르투' 등은 반드시 엄밀한 개념구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곳저곳의 문장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체로 '시류'라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대응하는 방식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즉 일반법칙을 세우기가 어렵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한편으로는 포르투나와 네체시타, 다른 한편으로는 콰리타 디 템피와 비르투가 있어서 그것들이 함수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통찰한 것은 무척 독창적인 생각이다. 독창적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의 역사철학자가 말하는 그런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서재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면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이론구성과 분석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럴 짬이 없다. 그의 사색은 항상 현실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론 따위는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의 《군주론》25의 맺음말은 그의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인생관에 가깝다.


"나는 용의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과단으로 흐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그녀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때려눕히거나 들이받거나 할 필요가 있는데 운명은 냉정한 방식으로 가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게 되는 것 같다. 요컨대 운명은 여성과 비숫하고 젊은이의 벗이다. 즉 젊은이는 사려는 깊지 않고, 거칠기 짝이 없으며, 지극히 대담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64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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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가 전제 권력을 유지하려고 사용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수단 가운데서도 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는 교활하게도 자기가 인민 측을 편들고 있는 사람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가 이런 짓을 한 것은 십인회에 재선을 노렸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를 귀족을 반대하는 측의 우두머리로 추대시키기 위해서도, 또 자기를 뜻대로 지지하는 여당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 특유한 수법이 빈틈없이 사용되었다.


여기까지는 아피우스도 잘해 냈으나, 내가 이미 말해 둔 경위로 갑자기 성격을 확 바꾸고, 평민의 벗에서 평민의 적으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263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1장 <겸양에서 오만으로, 동정에서 잔혹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은 생각이 얕고 무익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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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


십인회를 둘러싼 이상과 같은 문제를 검토해 보면, 사람이란 제아무리 선량하게 태어나고 제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해도, 아주 쉽게 타락해 버리고 또 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아피우스가 자신의 신변 호위를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은 청년들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약간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다는 조건만으로 참주 정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판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십인회의 멤버였던 퀸투스 파비우스도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도 본래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사소한 야심 때문에 분별을 잃은 데다가 아피우스의 악덕까지 물들어서 타고난 미덕도 내동댕이치고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게 되어 아피우스와 똑같이 되고 말았다.(263∼264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2장 <인간이란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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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2-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저 또한 저렇게 행동했던 적은 없었는가, 흠칫 놀라게 됩니다. 헌데 진화심리적학적 시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저러한 추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화는 도덕, 윤리, 양심적 측면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고 동시에 부도덕, 비윤리, 비양심, 교활함, 간교함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니까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두 범주 간의 길항작용 때문에(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번식하고 생존해왔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번식과 생존에 불리하더라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매사를 조회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변신과 변절의 치밀한 계산과정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역설에 마주치는군요. 정말 딜레마 중의 딜레마 같습니다.

oren 2017-02-25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저 대목을 인용했던 이유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변신 과정‘이 생각나서였답니다. 어느덧 탄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내내 지켜보면서, 어느새 ‘가면‘이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만 여러 정치인들의 추악한 몰골도 함께 떠올랐고요. 그런데, 그런 변신 또한 개체의 생존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처절하기도 하더군요. 사태가 어쩔 수 없이 파멸로 다가갈 때 온갖 추악한 자구책을 총동원하는 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그게 결국은 자신의 명예만 더 더럽히는 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