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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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반복되는 고리에 담다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다. ‘하루는 1년의 축소판’(p445)이라면 이런 모습으로 재미없게 살면 안 되었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아야겠어. 작년 11, 나 홀로 여행을 꼭 떠나리라! 서재 블로그에 공표했다. 그랬건만, 야심차게 주먹 불끈 쥔 결심이 무색하게도 1231일의 나는 스스로 한 발자국도 떼어보지 못한 채 1년을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왜 떠나지 못했을까? 직장 일이 바빠서, 부양가족을 챙겨야 해서, 막상 혼자 떠나려니 겁이 나서. 떠나야 할 이유보다 떠나지 못한 변명은 분분했다. 지키지 못한 계획에 갖가지 핑계를 매달고 있었다.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괜스레 혼자 껄끄러웠다.

빠른 여행자란 자기 발로 가는 사람’(p85)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곱씹다보니 깨달아지는 것들이 생긴다. 스스로의 한 걸음이 지닌 무게를, 한 걸음이 담고 있는 수많은 망설임의 시간들을, 그것이 품고 있을 순수한 용기를. 가지 않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얼마나 커다란 힘이 필요한지 한참을 생각했다.

 

지난 명절에는 두 종류의 전을 부쳤다. 빈대떡과 동태전. 이 두 가지는 제조과정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빈대떡은 녹두를 갈아 당근, 김치, 숙주, 양파, , 찹쌀가루 등을 넣고 잘 버무린 뒤 프라이팬에 부친다. 반면, 동태전은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을 입힌 다음 부쳐낸다. 이런 이유로 동태전을 먹다보면 알맹이가 부침 옷과 분리되어 쑥 빠져나오기도 한다. 소로우의 삶은 이를테면 빈대떡 같다고나 할까. 겉과 속이 분리되지 않는 삶.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히 버무려져 하나 된 삶 말이다. 월든 호수 주변에서의 소박한 삶이 다른 이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중략)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p141)을 말하며 말한 대로 실천하던 사람. 참 홀가분하겠지 싶었다. 무소유의 삶이란 이런 모습이겠지.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p171)는 말이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문장들이 붓이 되어 수묵화와 닮은 삶을 그렸다. 그 삶이 품고 있을 드넓은 시간과 공간이 너른 마당처럼 펼쳐졌다.

 

책 자체로 판단하면 각주가 해당 페이지의 아래에 있다는 점은 친절하고 좋았으나 나는 ~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와 같은 유형의 번역은 읽기에 편하지 않았다. 존댓말과 반말이 뒤죽박죽 섞인 문장을 접한 듯 거부감이 들었다. 원문의 맛을 모르니 감히 문체를 언급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중간 중간 지루한 구간이 웅덩이처럼 나타났다. 사막을 꾸역꾸역 걸어가는 사람인 양 중간에 그만 멈추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삶에 적용해도 될 만큼 싱싱한 내용의 문장들을 붙들어가며 느린 속도로 걸었다. 무사히 끄트머리에 도착하니 담백한 맛이 나는 글들이 묵직한 위력을 발휘했다. 변화를 원하는 내 마음의 외피에 더께로 덮여있던 망설임들을 조금씩 날려 보냈다.

 

요즘은 버리는 중이다. 입지 않아도 아까워서 옷장 한 구석에 몇 년씩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옷을, 언젠가 쓸지 몰라 몇 년을 벽지처럼 머물던 물건들을 찾아 버린다. 버리는 만큼 마음은 점점 개운해지고 있다. 벌레가 무서워 자연에서의 삶은 엄두내지 못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계속 버린다. 며칠 전에는 사무실 책상과 사물함을 정리했다. 각종 서류와 물건들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지닌 물건의 70%는 쓰레기라는 말이 맞구나 싶었다.

가지 않던 공간, 가지 않던 길을 조금씩 가보면서 바라보는 풍경의 변화를 체험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커피숍은 몇 달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장소이니. 한동안 쓰지 않던 일기도 가끔 쓰며 마음을 재정비한다.

하지 않던 일도 해본다. 독립서점의 주인장이 운영하는 고독한 독서가들이란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하루 30페이지 이상씩 책을 읽는 중이다. 처음 계획은 1월과 8, 두 달만 참여하려 했지만 1월말에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무사히 과속방지턱을 넘은 지 두 달째다. 이런 추세라면 학기 중에도 무난히 해낼 수 있겠다. 자신감이 생기니 독서 속도도 조금씩 빨라진다.

모든 행동의 이유는 하나다. 내 마음은 지금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p172) 책을 통해 숲에서 살아가는 소로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만으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는다. 몸이 서서히 들썩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향한다.

 

처진 달팽이<말하는 대로>를 들으며 소로우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발견한다.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중략)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새삼 뭉클해지는 가사에 잠시 코끝이 찡해진다.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런 것 아닐까. 자연에서의 삶이 무조건 좋다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당신의 길을 가라고.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482)’ 내 심장의 북소리를 따라가려 한다. 마음이 말하는 대로 심장이 뛰는 대로 그런 공간으로 나의 몸을 데려다 놓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이 낯선 발걸음들을 계속 내딛으려 한다. 간절하고 순수한 동기가 흘러넘쳐 홀로 떠나는 여행의 첫걸음에 닿을 때까지. 그 안에서 나만의 자유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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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을

교집합으로 안는 것은

두 삶의 파동이 만나

두 배의 진폭으로 출렁이는 것

 

같이 놀고

같이 밥을 먹는 일

같이 웃고

같이 우는 일

같이 걷고

같이 떠나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

 

두 글자를 붙드는 순간

일상은 특별해지고

당신의 심장을 향하는 영혼은

붉게 물들어 한 걸음씩 나아가

적색편이를 나타내는 별빛인 듯

나의 우주는 팽창한다

 

얼마나 어려운 글자를

꿈꾸고 있는 걸까,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나는

얼마나 벅찬 의미를

품고 있는 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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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인식)

지난 21, 나비종은 물음표가 담긴 한 문장과 마침표 두 문장, 말줄임표 한 문장을 당신에게 투척하여 두 문장의 답변을 얻어내는 쾌거를 이룬다.

다음날, 신이 난 나비종은 두 장의 컬러풀한 사진과 마침표, 말줄임표, ㅎㅎ이 담긴 세 문장을 당신에게 날린다. 결과는 무참한 실패.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의 썰렁함을 몸소 체험한다.

샤워를 하면서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머릿속에서 면밀히 대조하여 드디어 차이점을 발견한 나비키메데스! 25시간 30분 동안 의기소침했던 기억을 씻어버리고 실패 원인을 매의 눈으로 분석하여 다시 한 번 답톡 구걸하기에 도전한다. 그래! 그거였어! 그녀는 이 모든 공이 물음표에 있다고 판단, 심증을 입증할만한 탐구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우기로 결심한다.

 

(가설설정)

물음표가 담긴 문장을 카톡으로 보내면 당신에게서 답변이 올 것이다.

 

(변인 통제 및 탐구 설계)

밥을 잘 먹었는가 묻는 문장을 하나라도 더 보태기 위해 저녁 시간이라 짐작되는 타이밍을 노려 당신에게 세 문장의 카톡을 투척한다. , 물음표로만 끝나는 문장이어야 한다.

 

(실험과정)

물음표 1 : 거기 날씨는 어때요?(의역 : 뭐라도 좋으니 답을 보내요1.)

물음표 2 : 여름 기온이라도 바닷물이 차갑지는 않아요?(의역 : 뭐라도 좋으니 답을 보내요2.)

물음표 3 : 밥은 잘 먹고 있어요?(의역 : 뭐라도 좋으니 답을 보내요3.)

 

(실험결과)

8분 뒤, 답톡이 온다.

- 식사는 잘 나와서 괜찮은데 비가 계속 내려서 좋진 않네

 

(예상에 없던 경거망동한 추가실험과정)

으흠~ 나쁘지 않아. 이 여세를 몰아 나는 다시 한 번 대화의 고리를 연결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 저런.. 1월은 건기라던데 하필.. (의역 : 1월이 건기라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았겠어요.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당신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고요.)

- 물속에 들어가기 힘들겠네요ㅡㅡ; (의역 : 나 떼어놓고 혼자 가더니 쌤통이에요. 크크)

- 너무 무리하지는 말구요.(의역 : 난 기특하게도 이렇게 당신 걱정을 하고 있어요.)

- 열대과일 많이 먹고 와요~ (의역 : 열대과일 혼자만 먹지 말고 말라비틀어진 거라도 들고 와요. 격려금 준 거에 조금이라도 리액션을 취해 봐요. 당신 생각하기 쉽게 힌트를 주는 바람직한 아내예요.)

 

(실험결과)

없음

 

(결과분석) 

1. 처음 세웠던 가설에 대한 실험

으헉! 소오름! 물음표의 법칙이 통.....

2. 예상에 없던 경거망동한 추가실험

예상에 없었으나 예상할 수 있었던 답변은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 고리는 개뿔. 여기에서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물음표의 법칙을 시전 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던 거다.

 

(결론 도출 및 일반화)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데이터가 몹시 부실하다. 위 실험이 지난 주 수요일에 시행되었으니, 나비종에게는 5일의 기회가 있었으나 실험은 잠시 중단된다. 그녀 안의 투덜이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어 냉철하고 이성적인 뇌를 잠시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투덜이의 방해 1 : 톡의 마지막이 너에게서 끝났잖아. 그도 답변을 해야 할 거 아냐?

투덜이의 방해 2 : 어째 너만 카톡을 보내? 한 번 쯤은 그도 보내야지.

투덜이의 방해 3 :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권유할 정도였는데, 네 어깨는 괜찮은지 물어보는 톡을 그가 보내야 하는 거 아냐?

 

(후기)

어제, 당신에게서 톡이 오기는 했다.

- 인천에 도착했어 8시차로 내려갈거야

! 지극히 건조하고 사무적이야. 업무보고 하세요? 나비종 안의 투덜이의 기세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기에 그리 반갑지는 않다. 그래도 드넓은 마인드를 소유한 나비종은 답변을 한다.

- 비가 살짝 왔어요. 조심히 내려와요. 난 이제 물리치료 가려는 중 (의역 : 감성적인 멘트를 조금이라도 투척해 봐요. 내가 소스를 제공하고 있잖아요.)

바람직한 답변의 예는 다음과 같다. (그래? 여기는 비 안 오는데.. 알겠어. 병원 잘 다녀와.) 여기서 앞 문장에 괄호 처리를 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답변은 없었다. 예상대로.

 

11시 조금 넘어 도착한 당신에게 나는 물음표가 담긴 문장을 음성으로 출력한다.

밥은 비행기에서 먹었어요?”(의역 :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줘요. 선물은요?)

거기 날씨는 계속 흐렸어요?”(의역 :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줘요. 선물은요?)

어디 아픈 데는 없었어요?”(의역 :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줘요. 선물은요?)

자격증은 언제 나와요?”(의역 :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줘요. 선물은요?)

바닷물은 맑았어요?”(의역 : 나에게도 안부를 물어줘요. 선물은요?)

당신에게서 꾸준히 음성 마침표는 나오고 있었지만, 물음표는 나오지 않는다. 선물, too. ..

 

! 미니한테는 하리보 세...나 사왔으면서. 당신이 나간 사이 하리보를 연달아 뜯어 질겅질겅 씹는 나비종, 투덜이가 다시 고개를 내민다. 하다못해 그 중 가장 큰 봉지만이라도 내 것으로 수취인 변경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투덜투덜투덜투덜.

바람직한 답변의 예는 다음과 같다. (어깨는 좀 어때? 당신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는데 마땅한 것이 없더군.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하리보 왕 봉지. 이건 흔한 슈퍼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하리보가 아니야. 당신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은 성.물.이지. 오늘은 내가 어깨운동 많이 도와줄게.) 워워, 나비종! 웹소설을 너무 많이 보았어! 이런 멘트를 날리는 인간이었으면 애초에 탐구과정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지.

 

(현재 상황)

너무 많은 물음표를 남발한 나비종은 물음표 과다증에 걸린다. 물음표만 보면 슬금슬금 체온이 올라가는 휴유증이다. 물음표에 지쳐서 잠시 말줄임표로 휴식 중이다. 팔을 들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저려오거나 아픈 증상과 같은 원리이다.

지금은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무소유의 삶을 생각하고, 내려놓는 마인드로 릴렉스 하는 중이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나비종은 아마도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진구 오빠(미니는 자식보다 어리다며 놀리지만, 잘생기고 목소리 좋으면 무조건 오빠라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진리이다.)의 흐뭇한 비주얼과 음성, 다수의 웹 소설을 통해 에너지를 서서히 충전한 후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그래, 처음부터 뭔가를 바라고 격려금을 준 건 아니잖아? 선물을 주면 좋았겠지만 의무적인 건 아니니까. 투덜이의 방해 1,2,3의 공통점을 분석해봐. 다 '그가' 뭔가 해주기를 원하는 거잖아. 그의 행동은 그가 결정하지, 나비종 네가 뭐라 할 순 없어. 이건 단지 서운한 감정일 뿐이야. 눈앞에서 멀쩡하게 걸어 다니니 건강은 그것으로 확인되는 거지. 굳이 말로 하기를 원했지만 속으로는 생각했을 지도 모르잖아?

 

(참고문헌) 네이버

지난 주 필리핀 세부 날씨, 기온, 기후, 특산물 열대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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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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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맘을 먹어야 했다. 기저귀, 분유통, 보온병, 물티슈, 여벌의 옷, 딸랑이, 분통, 가제수건, 아기 띠. 아이가 어렸을 때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은 족히 아이의 두 배도 넘는 부피의 짐들을 감당해야함을 의미했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커다란 기저귀 가방과 보조 가방 안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집을 떠나는 일이었다.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부모의 손을 필요로 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싸는 것까지 한시도 나의 손을 멈추면 안 되었다.

 

고작 바퀴라니! 수년 전 과학 뉴스를 검색하다 인류의 3대 발명품 중 하나가 바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상에 기가 막힌 물건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무려 인류라는 타이틀이 붙은 내용에 바퀴라니요. 하지만 뒤따라온 설명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들의 시초였다. 너무나 오랜 세월 거슬러 내려왔기에 공기나 물처럼 처음부터 있었다고 여겨진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인데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 세상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아이와 함께 딸려가던 짐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그래서 결국 몸만 가뿐하게 나설 수 있던 순간으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오면서.

 

나는 참 쉽게 살고 있었구나. 화성에 홀로 남겨진 과학자의 긴박한 생존기를 따라가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숨 쉴 때마다 굳이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산소부터 집안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까지. 가까운 슈퍼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음식에서부터 살고 있는 공간, 사소한 종이와 펜, 공구들에 이르기까지.

수소와 산소를 이용해서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사선의 위험을 무릅쓰고 난방을 위한 열을 얻는 과정에서, 토양과 박테리아를 이용해서 감자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무선통신으로 지구와의 연결을 꾀하는 과정에서, 태양전지판을 이용하고 모래폭풍을 피하고 위성으로 방향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새삼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껏 잊고 있던 것들이 삶에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신호 감지(p186)’라는 네 글자가 이토록 울컥할 일이더냐! 어느 순간 와트니의 시점에서 와트니에 빙의된 듯 황량한 화성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나를 발견한다. 1970년대, 외계인을 향한 갖가지 메시지를 금속판에 실어 허공에 날려 보낸 인류의 염원을 떠올린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형이상학적 문양을 어떻게 알아차릴까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더랬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책도 아니건만 이 책을 읽으니 어쩌면 먼 미래에는 소통에 대한 답변도 날아오지 않을까 꿈꾸게 된다. 우주여행 상품이 과학 뉴스에 등장하는 요즘이다. 소설 속 화성 유인탐사가 구현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주인공이 죽는 법은 결코 없을 테지만, 돌발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궁금했다. 감자를 심어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것으로 식량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식량이나 물이나 산소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해결되는 법이 없다. 수시로 뒤집어지면서 전개되는 상황이 아슬아슬하다. 이 책이 매력적인 건 툭툭 튀어나오는 황당한 사건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상황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낙천적인 기지에 있다. 그는 무너진 환경을 베이스로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게 될까 싶으면서도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언젠가는 실제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지 어떤 결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틈이 나는 대로 책을 펼쳤다. 흡인력 있는 서술 덕분에 598쪽의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을 사흘 만에 덮었다.

 

주인공의 독백에는 작가의 인간관이 잘 드러난다.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p597)’ 그가 시도한 방법들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타당성이 있고 실제로도 가능한가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싶지는 않다.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만한 요소는 과학성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방법이 소설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건 수단일 뿐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인간이라 생각한다.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생존본능, 낙천적인 기질의 중요성,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순간적인 판단력, 주인공과 동료들과의 끈끈한 동료애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이란 존재 말이다. 특히 화성으로 되돌아간 헤르메스에서 이들이 도킹하는 장면은 찡함과 더불어 생존본능을 넘어선 인간 사이의 신뢰를 생각하게 한다.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서술이 긴박한 상황과 잘 버무려진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유쾌하고 행복했다. 과학적인 요소가 묻어있는 행복 바이러스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묻어나왔다. 이 책은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린 채 살아온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존재가 살아간다는 것은 온 우주를 배경으로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요소들이 담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기쁨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뭉클했다.

 

 

p522, 2째줄 : 로비 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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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화번호 주소록의 당신 저장명은 내사랑 **’이다. 당신 전화번호 주소록의 내 저장명은 미니의 말에 의하면 ‘***’(내이름)이라지. 사실 뭐, 나도 거창하게 내사랑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당신 앞에 바른 말, 고운 말, 아름다운 말을 놓으면 마음도 그리로 향할까 해서 자꾸 자꾸 부르려는 거란 말이다. *** 이 뭐냐고요! 출석 부르세요? 한 글자만 빼고 이름으로라도 저장해놓으면 얼마나 좋겠느냔 말입니다요. 내 마음이 그렇단 말이지요. 투덜투덜.

 

월요일, 당신은 카톡을 꺼놓는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보내본다.

감기는 좀 어때요? 물속 왔다 갔다 할 때 조심하구요. 자동차검사 받으러 왔어요. 당신 생각이 나네..’(의역 : 당신에게 기특하게도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해요.)

앞 문장의 포인트는 쩜쩜이다. 그 안에 감정이 여운처럼 담기는 흘김 기법이랄까. 쩜쩜은 그냥 평범한 쩜쩜이 아니다. 빙산으로 말하면 바다에 잠겨있는 90%의 그것이다.

13시간 남짓 지났을까. 몇 번을 들여다봐도 빌어먹을 1은 사라지지 않는다. ! 정말로 꺼놓았는가 보다. 포기하려는 순간, 답문이 온다.

알았어 감기는 괜찮아’(의역 : 알았어. 감기는 괜찮아.)

이 부분에서 나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세 글자 ...’로 잠시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런 된장 같은 서술어는 목적어 내지는 주어가 없다.

해석 1. 물속 왔다 갔다 할 때 조심하라고? 알았어.

해석 2. 자동차검사 받으러 왔다고? , 그래. 알았어.

해석 3. 내 생각이 난다고? 됐어. 알았어.

문장의 순서대로 답한다면 감기는 괜찮아 알았어가 바른 순서이다. 질문을 먼저 했으니. 그랬다면 알았어는 해석1일 가능성이 크다. 한데 왜 헷갈리게 도치법을 쓰냔 말이다. 해석1,2,3을 알았고, 새삼 물음표가 있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 성의를 보인 걸까. 이런 미스터리한 남자 같으니.

 

화요일, 저녁 시간이 되길, 그래서 카톡을 보내기에 적절한 때를 도모하고 있었다.

저녁 610. 으흠! 이제 보내야겠군. ‘저녁 먹..’을 쓰는 중에 그만... 식탁 앞에서 같이 저녁을 먹은 미니가 선수를 친다.

엄마! 아빠 저녁 먹었냐고 카톡 보내니까 지금 5시래.”

으헉! 고딩의 손가락은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는 동시통역 수준임을 잠시 잊었다. 카톡에 답문이 왔었다는 자랑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5시라는 말은 아직 저녁을 먹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먹을 때도 되지 않았는데 내가 또 저녁 먹었어요?’ 미니와 같은 내용을 보내면 짜증날 것이다.

, 다른 내용으로 전환을 해야겠어! 큰딸이 보낸 아이스크림 케잌 사진을 찍는다. ‘**가 아이스크림 케잌을 보냈어요. 당신 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조금만 먹을 게요ㅎㅎ’(의역 : 맛있는 것을 볼 때마다 바람직하게도 당신 생각을 해요.)

작은 딸의 톡이 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확인은 한 모양인데 21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답이 없다. ! ... ..! 꿍시렁거리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 톡의 오류가 눈에 들어온다. 아뿔싸! 내가 보낸 세 문장 어디에도 물음표가 들어가 있지 않았구나! 확실한 질문이 담긴 문장이 없었다는 말이다. 에잇! 마지막 문장 하나만이라도 의문문으로 전환했으면 답문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미 숟가락 들고 스탠바이는 하고 있었지만, ‘조금만 먹어도 되어요?’라고만 물어봤어도, ‘안 돼! 나 올 때까지 6일 기다려!’라는 긴 문장을 보내지는 않을 테니, ‘이라는 한 글자라도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는 딱히 아빠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은근히 잘 챙겨.” 지난 번 시아버님 생신 선물을 같이 고르는 길에 당신 것까지 덩달아 사는 엄마를 보고 큰 딸이 하던 말이다. ! 엄청나게 좋아하지는 않는 거, 티 났음? 그래도 열심히 노력 중이니 응원해주길 바람.

 

오늘 저녁에도 나는 당신에게 카톡을 투척할 작정이다. 공을 던진 사람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그 공을 굴러가게 흘려버릴지, 받아서 다시 건네어줄지, 잠시 간직할지 그건 공을 받는 상대의 몫이니.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줄 수 있는데 주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지 않으려고. 적어도 자존심을 앞세워 그런 후회가 남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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