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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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기운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으스스함. ‘죽음이란 글자는 매번 이런 분위기로 찜찜함을 전해주는 말이었다. 막연함이 불러오는 공포와 존재의 마침표라는 느낌이 주는 허무함이 뒤섞여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죽음에서 풍기는 강렬한 두려움은 아침이 쏟아내는 환한 햇살을 가려 개기일식이라도 된 양 어둠을 건네었다.

자주 가는 독립서점의 주인장이 포스트잇에 메모해놓은 추천사가 없었더라면 손길조차 닿지 않을 책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다는 그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과 사람들이 좋다 말하는 책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판단기준은 하나다. 생각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나아가 몸을 들썩이게 만드느냐는 거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 ‘좋은이란 극히 주관적인 말이니. 사상의학에서 체질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의 궁합이 존재하듯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도 독자와의 궁합이 분명 존재하리라. ‘좋은 책이라는 말 앞에는 두 글자가 생략되어있다고 여긴다. (내게) 좋은 책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들썩였다. ‘우리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살게 되겠지. 그래, 근심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다.(p6)’ 지금까지와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어졌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관점이다.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p39-42)에서는 설거지를 담당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촌철살인의 문장에 통쾌했다. 독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라는 걸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잖아요.(p317-318)’ 글을 통해 전하는 소리 없는 말을 소리 없이 들어주는 독자를 상상하니 숙연함조차 느껴졌다.

둘째, 기발한 비유이다. ‘이 달걀은 암탉이 될 운명이었을까, 수탉이 될 운명이었을까.(p339)’ 몇 십 년 동안 달걀을 보고, 먹고, 사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을 누군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하는 거다. 세상은 넓고 창의적인 인간들은 그보다 더 많구나. 겸허해져야겠다. ‘황사처럼 닥칠 식후의 피로(p339)’라든지, ‘복날 쉬는 삼계탕집처럼(p341)’이라든지, ‘임플란트를 거부하는 코끼리처럼(p341)’, ‘네덜란드를 떠난 풍차처럼 촌스러워서(p341)’, ‘목도리도마뱀이 목도리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p342)’등의 표현이 쓰나미처럼 몰아닥쳤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발한 비유다 싶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난 아직도 멀었구나. 고수의 세계를 접하며 그동안 너무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셋째, 표현 방식이다. ‘저는 글에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p307)’라 말한 대로 그의 글은 리드미컬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유머가 섞인 글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마음이든 지식이든 글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언가를 전달하는 거라면,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웃음은 심장을 몰랑몰랑하게 만든다. 쉽게 마음을 열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가 권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도 읽고 싶어졌다. 나와 비슷한 코드를 지닌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니 결코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기대하지 않고 펼쳤던 책이라 즐거움은 더욱 컸다. 웃음이 곁들여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음이 좋았다.

 

커피숍에서 글을 쓰다 보니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머! 참 좋다! 기타 전주가 너무 좋아 노래를 검색해본다. Car Seat Headrest ‘High To Death’이란다. 우연일까. 자세한 가사는 당연히 모르지만,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도 이런 느낌일 수 있구나 싶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p5)’ 이전보다 담담하게 죽음이란 삶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p125)’ 오래 머무르게 되는 문장이다. 어찌할 수 없는 소멸 여부를 두고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간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밋밋하게 사드라드는 불씨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다른 이들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며 활활 타는 모닥불이거나 환하게 부스러져 밤하늘 같은 이들의 눈동자에 순간적이나마 작은 기쁨이라도 담아줄 수 있다면 그런 삶도 괜찮겠다.

 

 

p136, 1째줄: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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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내 차례가 되자 머릿속은 문서 1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만나서 이토록 가슴 뛰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숨결 안에 두근거리는 소리가 섞여 나올 것만 같았다. 목소리와 눈빛이 유효한 해상도로 그분의 사정권 안에 포함되었을 때, 바로 앞 한 사람만을 남겨둔 순간에는 손바닥까지 콩닥콩닥 뜨거워졌다. 아이돌 팬 사인회 줄을 선 중딩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할까.

 

과학 특별강연회. 몇 주 전, 따뜻한 관심과 많은 참가를 바라는 공문이 왔다. 두루두루 홍보할 생각에 강연자 명단을 확인하는 순간, ! 마이! ! ! 1회 강연자는 서..!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한다고 해도 갈까 말까 가고 싶다 고민할 참에 대전교육과학연구원이라니! 이건 신의 계시야!

절호의 기회를 득템한 나, 입이 찢어져라 히죽거리다가 날짜를 확인하면서 급격하게 절망한다. 으헉! 하필 목...이라니! 자유학년제 주제 선택 시간이 목요일 6,7교시로 고정이 되어있어서 강연을 들으러가려면 7교시에 보강을 넣어야 한다. 일반 시간표라면 1,2,3,4교시라도 기꺼이 교체해놓고 달려가겠지만, 이런 된...은 주제 선택이란 동아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학생들이 우르르 섞이는 시간이라 본의 아니게 다른 선생님들께 폐를 끼치게 된다. 필히! 란 글자가 투명한 레몬 글씨로 깔린, 강요성 공문이 아니었기에 굳이 출장을 내고 가기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4시 반 퇴근하자마자 바로 갈까. 3시 반부터 6시 반까지 진행된다니, 5시쯤 도착하면 절반이라도 들을 수 있을 텐데. 중간부터 들어가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해보니 몹시도 뻘쭘하다. 기회가 주어져도 잡지 못하다니. 그분의 실물을 보고 목소리도 직접 듣고 싶었다. 전체적인 모습이 면봉처럼 보이는 장소에서라도 먼 발치에서 꼭 뵙고 싶던 분이었건만. 며칠을 질질 끌며 고민하다 자료집계에 해당없음으로 보고하던 날은 온종일 우울했다.

지난 22일에 있던 독서모임에서 강연회 얘기를 꺼냈다. 추장 언니 왈, 조금 늦게라도 와요. 우리 모임에서 같이 읽었던 책 가지고 가서 사인도 받고. 우리 다음 주에 다시 모여요. 나도 어차피 내가 진행하는 발제가 있어서 나와야 해요. 그럴까요, 언니? 용기를 낸 나는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 355분의 7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올 수 있도록 4시부터 조퇴를 냈다.

 

무슨 옷을 입을까? 며칠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후져 보이지 않으면서,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면서, 기억에 남으면서, 시크하고 자연스럽게 안 꾸민 듯 보기 좋은 룩이 되어야할텐데. 이리저리 고민하다 봄 느낌이 나는 코디로 결정을 했다. 아이들이 커튼 뜯어 만드셨냐고 말하곤 하는, 퀼트 느낌 나는 롱 치마. 목련과 개나리를 주서기에 넣고 돌린 듯한 빛깔의 카디건. 거울을 보며 그분의 글들이 나에게 건네주곤 하던 봄빛을 닮은 옷이다 했다.

린스도 평소보다 한 번을 더 짜서 처발처발했다. 부들부들 찰랑찰랑 머릿결을 휘날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이건 망했다. 30분 일찍 나가는 공백을 메우려 여기저기 오르락내리락 일하다보니 사자 갈기가 되어버렸다. ..

5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교장 교감 선생님께 7교시 끝나자마자 나의 사라짐을 미리 예고해 올렸다. 6,7교시는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 설레서. 아니, 관점을 바꿔본다면 너무나 평화로운 수업이었던 듯하다. 평소보다 업 되어서 학생들의 발표에 대한 코멘트도 1.3배쯤 과한 찬사를 날려주었다. 수업을 들어가는 길, 복도에 있는 커다란 거울 속 나는 바라볼 때마다 괜히 히죽거렸다. 누군가 물어주길 바랐다. 좋은 일 있으세요, ? !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 강연을 들으러 갈 거거든요.

7교시 1분 전에 학생들의 활동 결과물도 걷어놓고, 컴퓨터도 미리 꺼놓았다. 종이 울리자마자 급식실로 내달리는 급식 인간들에 빙의해서 4층 계단을 다다다 내려 2층 내 자리로 갔다. 후다닥 책상 위 물건을 정리하고 책상을 잠그고 차 시동을 걸자 4. 매의 눈으로 신호등을 깜빡을 스캔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밟았다. 15분 조금 안되어서 무사히 도착! 주차장에서 내려 강연 장소까지 부지런히 뛰었다. 앞부분 30분가량을 놓쳤지만,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 강연이라 공백에 대한 아쉬움은 그나마 덜했다.

 

그분의 모습은 상상했던 장면과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키는 컸고, 샤프한 느낌도 조금 강했으며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내 눈에는 멋진 분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목소리였다. 도착한 이후부터 눈을 떼지 않고 교수님 몸에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집중했지만 강연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분 목소리의 높낮이와 울림을 클래식 음악처럼 감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톤으로 선호하는 높이의 음성이 계속 흘러나오는 동안 이런 게 행복이구나 젖어드는 느낌에 벅차올랐다.

조금 있으니 잠시 쉬는 시간을 주었다. 독서모임 언니, 동생과 함께 앞으로 가서 <서민교수의 의학세계사>에 사인을 받았다. 정신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의 펄떡임을 느꼈다. 아까 너무 뛰었나. 숨이 찼던 게 지금껏 이어지나 했다. 나의 이름을 말하며 앞표지 안쪽에 사인을 받았다. “책과 더불어 맺은 인연처럼 좋은 게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쭉 이어갑시다!” 정성껏 멘트를 써주신다. 혹시 아실까, 아셨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비종임을 조심스레 밝혔다. ! 기억을 하고 계시다니! 교수님께서는 매우 쑥스러워하셨다.

강연 내용 중에서는 어쩌면이란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학 발전의 과정에 있던 숭고한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의 말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앞뒤맥락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핸드폰 메모장에는 딸랑 두 줄을 적어놓았으니까. ‘어쩌면.. 목소리 좋다.’^^;;

 

독서모임 언니, 동생은 바쁜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가고 나는 끝까지 강연을 들었다. 막상 끝나고 나니 너무 아쉬워 사인 행렬에 다시 합류를 했다. 이번에는 나비종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고 싶었다. 무슨 말이든 주고받는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건넬 말을 머릿속으로 썼다 지우다 반복했다. 나는 원래 오랜 시간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어야 치명적인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인간이건만, 짧은 시간에 임팩트 있게 어필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분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먼지만큼이라도 자리 잡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 하고 싶은 말은 선명했지만 뜬금없이 건네면 어색해하실 각이라 뭔가 바리케이트를 쳐야했다. 앞에다 작가로서를 붙여보자. 그래, 결심했어! ‘작가로서 좋아합니다!’ 너로 정했다!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아까의 두근거림이 물리적인 뜀박질의 결과물이 아님을 알았다. 이건 온전히 심리적인 뜀박질의 결과물이었다. 긴장감에 호흡도 흐트러졌다.

 

책의 뒷표지에 나비종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았다. “저는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예요.” 시인이란 말에 잠시 주춤하신다. 제가 생각하기에 시인은 타고 나야하는 것 같은데.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그럼, 작가로 할게요. “책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하죠.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런 위험한 일이더라고요. 가급적 많은 이의 삶을 바꾸는 위험한 작가가 되시길!” 책을 건네받았다.

, 이제 얼른 준비한 멘트를 해! 선뜻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용기가 되어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밀어내었다. “작가로서 좋아해요!” 그분은 다시 어색해하시더니 저는 작가가 아니에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쓸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작가와 시인과 삶을 주제로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고 싶은 아쉬움을 안고 몸을 돌렸다.

 

시인작가의 의미를 내내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심장도 차분해졌고, 모습도 희미해지고, 목소리도 선뜻 기억나지 않는데, ‘시인작가란 말이 자꾸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시인은 타고 나는 것일까. 하긴 글을 잘 쓰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니 타고 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시인이 될 만한 자질이 있는 걸까. 글을 쓴다고 해서 전부 작가라 불릴 수는 없다. 과학적인 연구 뒤에 발표하는 논문들도 일종의 글이니, 수많은 글들을 써야하는 일상에서 작가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내 삶도 종종 버거운 내가 감히 다른 이의 삶을 바꾸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시인과 작가의 의미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가진 꿈이, 내가 하려는 일이 훨씬 넓고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담긴, 기억하고 싶은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남기고 싶었다. 오늘의 공기, 오늘의 햇살, 오늘의 두근거림, 오늘의 벅참, 오늘의 땀, 오늘의 소리, 오늘의 웃음, 오늘의 문장, 오늘의 생각, 오늘의 느낌들을 심장에 새기고 싶어서. 당신께 감사한 마음이 참으로 커서. 내 생각을, 삶을 조금씩 바꾸어주시는 걸 보면, 서민님! 당신은 분명 작가이십니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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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0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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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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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안아주는 건 감히

바라지 않아요,

시린 품으로 그대 온기

빼앗게 될까봐

 

두 손 잡아주는 것도 감히

바라지 않아요,

무거운 손끝이 고리가 되어

놓고 싶지 않아질까봐

 

허공으로 흩어질 말들만

받아주실래요, 그대

따뜻한 가슴에 닿았다

가볍게 날아갈 수 있도록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

, 조금만 기댈 게요

심장이 몰랑거릴 때까지

잠시만 머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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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7 14: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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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7 14: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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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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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나이와 표정이 짐작될 때가 많다. 뒷모습의 무엇이 그를 그런 모습이게 하는 걸까. 읽기도 전에 며칠 동안은 책표지만 바라보았다. 오도카니 앉아있는 뒷모습이 많은 말들을 담고 있었다. 제목과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구나 싶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죠? 그걸 증명하려고 마구 걸어갔던 인간이 마젤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선 끝을 쭉 연장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자신의 뒤통수도 볼 수 있겠네요? 지구가 둥근 이유를 설명하며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다.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언제 슬프더라. ‘슬픔이란 글자를 바라보며 나의 슬픔을 더듬는다. 슬픔과 가깝다고 여기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순간적인 즐거움으로 찢어진 마음을 기워내며 걸어왔다.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콕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내 안 깊숙이 존재감을 나타내는 감정이 따끔거렸다. 그것은 종종 표면으로 떠올라 온몸을 감싸는 피부처럼 영혼을 감쌌다. 삶의 바닥에 머무르며 중력이라도 되는 양 즐거운 순간들을 끌어당겼다. 단편적인 서운함이나 쓸쓸함 같은 거 말고, 가슴 깊은 곳에서 느리게 흐르는 묵직한 감정. 차마 떨치지 못하고 지그시 내리누르는 느낌을 그러안은 채 그렁그렁 서성이는 발자국 같은 것. 이 감정의 정체를, 슬픔이려니 했다.

왜 슬펐던 걸까. 책의 말미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길어 올린다. ‘한때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은 대상이 이제는 내 삶의 무의미를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의 그 비감(p407)’ 글자들이 나의 시선을 타고 올라와 심장에 담기는 순간, 몇 주 동안 어떤 글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내 슬픔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흐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흐릿하던 슬픔의 실체가 선명해졌다. 많은 장면들 속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 무의미였구나, 무의미였어. 꽤 오랜 시간, 삶의 목표로 생각해왔던 사랑이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에 나는, 이미 깨어져버린 파편들을 꼭 쥐고 그 허무함에 아팠던 것일까.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p27)’ 이 문장을 보며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슬픔이라고.

 

저자가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85편의 글들을 슬픔, 소설, 사회, , 문화등의 내용으로 분류하여 실은 산문집이다. 문체나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진지한 글들을 읽다보니 건조해진 피부처럼 마음이 푸석하게 당겨졌다. 문장의 대구를 이루기 위해 작위적으로 삽입한 듯 느껴지는 문장 앞에서는 거부감이 일기도 했다. 나에게 재미있는 글은 아니었다. 마음을 훅 당기는 매력적인 유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문장들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단지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옷이었을 뿐, 충분히 높은 수준과 깊은 사유와 내공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5>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에 나온 세 가지 내용에 특히 공감했다.

첫째,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중략)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p331)’ 이토록 정확한 정의가 있을까. 내게로 다가오는 마음에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 경우, 상대가 누구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나를 향하는 상대의 마음으로 나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이런 종류의 갈망은 욕망에 가깝다. 한참을 거슬러 나의 결여와 그의 결여가 만나던 순간도 떠오른다. 과거형이지만 무의미 이전의 한 순간이나마 사랑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둘째, 휴대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원래 당신은 하나의 얼굴이었다. (중략) 전화가 발명된 이후에 당신은 하나의 음성이 되었다. (중략) 휴대폰 덕분에 당신은 마침내 글자가 되었다.(p351~352)’ 언젠가부터 가까운 지인들과 주로 카카오 톡으로 대화하고 안부를 주고받게 되었다.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대부분 꽤 오래전의 것이다. 휴대폰을 열어 대화창의 글자들을 휘리릭 되짚어본다. 글자가 되었다는 말이 손끝으로 와 닿는다. 차가운 액정 아래 존재하는 친구들이라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셋째,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한 내용이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극도로 천천히 말한다는 것이다.(p385)’ 슬픔이 담긴 책을 읽으며 나의 슬픔에 한 걸음 다가갔다. 먹먹한 마음에 이번 달은 거의 글을 쓸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일어나 떠오른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했다. 퇴근 후 커피숍에 와서 천천히 문장을 다듬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 한 편을 썼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며칠 째 붙들고 있던 이 리뷰도 오늘은 마무리하려 한다.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 가다보니 천천히 내딛는 산책처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노트북 옆에 놓인 책표지에 다시 눈길이 머문다. 뒷모습이 전해주는 느낌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투영되는 조명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그림 속 인물의 삶이 번져 보인다. 인간의 삶은 그의 몸집보다 묵직하고 커다란가.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p55)’ 말도 안 되는, 그 말도 안 될 상상이 이 문장을 본 순간 떠오른다. 내 시선의 끝이 투명하고 가느다란 화살표로 뻗어나가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뒷모습에 닿게 되는 상상이. 궁금해졌다. 나의 뒷모습은 어떤 삶을 담고 있을까.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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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왔다갔다

망설임이 밀어낸 한 걸음

글자로 쌓은 집을 짓다 허물다

간절함이 남기는 기둥 서너 개

 

후두둑 듣는 외로움이

그대 손끝이라도 적실까

맑은 나날 거닐다 떠올린 척

숨 멈추고 꺼내는 시린 한 마디

 

가벼움은

묵직함이 흘리는 눈물

미소는

슬픔이 쏟아내는 햇살

 

무심코 지나치다 생각난 듯

그대에게 건네던 한 마디는

한껏 늘어난 그리움의 풍선에서

툭 떨어진 아픔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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