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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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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가까이 한 곳에 앉아 책 한 권을 읽었다. 몸은 한 곳에 멈춰있었건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이 묵직하게 일렁였다. 작가가 초반에 언급한 말이 떠올랐다. 보이는 장면과 경험하는 느낌과의 차이, 이건 분명 멀미였다. 차멀미와는 달리 몸과 마음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11일의 계획에 야심차게 들어갔다가 1231일이 되면 어김없이 실패로 끝나곤 했던 혼자만의 여행’ . 몇 년 동안 포기하지도 않고 패턴처럼 반복되다보니 차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 여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는 한 걸까. 매번 실패하면서도 잊은 듯이 매번 바라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의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자꾸 나를 끌고 가는 걸까.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이유는 뭘까. 동네책방에서 진행된 <심야책방>에 신청을 해서 편 김에 끝까지읽고 싶은 책으로 여행의 이유를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실은 그 이유를 거울삼아 내 이유를 보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소소한 사은품이라며 주인장이 동네책방 에디션으로 나온 이 책의 표지와 같은 컬러풀한 엽서 네 장을 건넨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빛. 엽서를 써본 지가 언제였더라. 오랜만에 바라보는 POSTCARD의 여백에 시선이 머문다. 여행을 떠나 낯선 장소에서 엽서를 적어 내려가는 상상을 한다. 엽서, 여행을 다니는 종이다. 그것처럼 가볍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설레었다.

낯선 사람들이 배치된 공간에서 열 명 남짓한 이들이 각자 자신의 이유로 선택한 책을 소리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들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여행에 관한 책을 읽는 나는, 낯선 여행을 하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혼자같이가 공존하는 묘한 시간이 여행이 건네주는 그것과 비슷할 것 같았다. 한 마디 대화도 없었지만 책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여행의 동반자인 것만 같아 마음이 내내 따뜻했다.

 

노아 루크먼이 했다는 말, ‘프로그램에 대한 정의가 매우 신선했다.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p58) 이라는. 내게도 여행을 향한 프로그램이 있기에 이리도 자주 여행을 떠올리고 갈망하는 걸까.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p64)’는 문장에 반해버렸다. 무방비 상태로 순식간에 공격을 받은 듯 심장이 철렁했다. 이 짧은 문장이 의미하는 깊고 날카로운 의미에 베일 것 같아서, 그 느낌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와서 홀린 듯 문장을 씹고 또 씹었다.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p67)’ 는 문장 앞에서는 뭉클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다른 이의 문장으로 보는 말은 스스로를 향하는 말과는 달랐다. 많은 위안을 받았다. 적어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가끔은 모든 것을 놓고 홀연히 떠나는 것도 괜찮다며 토닥이는 듯했다.

9편의 소제목이 담긴 그림은 여행과 묘하게 어울렸다. 테두리만 있는 단순한 도형에 불과한 그것이 여행과 관련된 상상력을 자극했다. 비행기이거나 배이거나 혹은 기차의 창문과 비슷할 때도 있었고, 도로나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이정표 같기도 했다.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p71)’는 문장 앞에서 나의 경험들을 생각했다. 땅속 깊이 고여 있는 마그마처럼 어딘가에 기쁨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행스럽다가도, 슬픔이나 아픔도 어느 구석인가에는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자 심장이 따끔거리기도 했다.

 

여행을 망설이며 자주 들썩이다 멈추곤 했던 나에게 적절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여행을 향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내 마음과 공명하는 문장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p132)’,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p189~180)’ 여기까지 읽고 알게 되었다. 나는, ‘노바디로 떠나서, 스스로에게 썸바디가 되고 싶은 거라고. 그토록 여행을 떠나고 싶던 이유는 내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이었다. 자기만의 이유라 일컬어지는, 그건 자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실패조차 재미로,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내내 뭉클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의 여행지수는 99의 물이 될 때까지 계속 온도를 높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00의 수증기로 날아가지 못하던 1의 에너지를 어쩌면 이 책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엽서처럼 훌훌 떠나서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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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속도로 흐르던 삶에

쉼표 같은 옹달샘 하나

만들어지는 일이다

 

같은 인물 같은 풍경

같은 공간을 바라보며

다른 느낌 다른 생각

다른 감성을 공유하면

 

그대의 세상 나의 세상

작가의 세상 책속의 세상이

넘실대는 물결이 되어

푸른 바다로 펼쳐진다

 

책을 사이에 두고

마음의 손을 잡고

점점 넓어지는 세상을

두근거림으로 안는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화음을 맞추는 일이다

위안이 되는 따뜻한 울림을

한껏 품게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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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중앙선을
오른편에 붙들고
터벅터벅 시간을
옮기는 날이 있어

마주 오는 빛들이
공기의 늪을 만들면
흐읍! 숨쉴 때마다
심장이 화끈거리는

˝나랑 별보러 가지 않을래˝
이불같은 음성이
희미한 저 편에서
잠시 발걸음을 붙들면

망막에 쌓여있던
체할 것 같은 빛들이
순식간에 주르륵
심장으로 떨어지는 날이

그래, 봄
가느다란 물빛으로
세상이 갈라지는 밤
커피 한 잔의 창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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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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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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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1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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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1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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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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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 하늘 풍경이
저리도 비슷한 이유는
저울의 끝과 끝
반대편에 있을 지라도
서로를 바라보라는
그런 의미일거다 아마

아침엔 저녁을 생각하며
마지막의 절실함을
저녁엔 아침을 생각하며
처음의 두근거림을

나의 아침이었다
순식간에 저녁이 되는
내 삶의 저울 끄트머리
저만치에 머무는 사람아
그대를 바라보는 마음도
이런 의미일거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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