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팔을 주물러주는 동작을 시도했다. 여름이면 좋았을 걸 하며 아쉬워하는 나. 스킨십은 무릇 스킨 대 스킨이어야 제격이거늘, 당신의 스킨을 가로막는 나의 내복을 원망한다. 그렇다고 안방에서도 패딩 입는 클라스에서 나시 입고 팔뚝을 들이미는 건 심히 앞뒤가 안 맞는 장면이라, .

 

왕자님처럼 왼쪽 무릎을 구부린 당신이 뒤에서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고, 나는 그의 왼쪽 허벅지에 왼쪽 팔을 떠억 걸치고 팔을 천천히 굽혔다 정강이쪽으로 최대한 닿게 했다 하는 운동도 있다. 처음에 도수치료 샘이 해주셨을 때, 어멋? 했던. 등 뒤로 상대의 단단한 가슴 근육이 살짝 느껴진 달까. 그 순간 속으로 중얼거렸다. ! 샘이 박보검이었다면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배운 운동 중에 단위 면적당 작용하는 힘이 가장 작다. , 접촉 면적이 가장 넓은 동작이다. 한마디로 백허그 짝퉁? 드라마 <닥터스>에서 김래원이 박신혜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백허그 그거 좋더라.” 조만간 당신을 타켓으로 시전해볼 작정이다. 음흉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흐흐흐.

 

팔씨름 3회씩 3세트는 이제 기본이다. 수영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준비운동 같은 맥락이랄까. 우훗. 요가 동작을 배우는 기분이다. 도수치료 샘에게서 전수받은 동작들을 속속들이 시도해볼 예정이다. 최대한 접촉 면적이 넓은 것으로 엄선하면 도파민이 뿜뿜 샘솟을 것이고 운동과 호르몬의 이중 효과를 겨냥하자는 것이 나의 빅 픽처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듬뿍 담긴, 그 옛날 태워버린 일기장을 생각한다. 점점 가물거리는 기억들을 더듬어보며 아쉬워한다. 다시 그런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이 공간에 조금씩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김민철의하루의 취향에서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언급하면서 이런 장면이 묘사된다.(p84~85) 매일 아내가 샤워할 때마다 찬물을 한 번씩 쏟아 붓는 장난을 해온 남편. 아내가 남편의 곁을 떠나는 날, 남편은 고백한다. “우리가 늙으면 내가 매일 이 짓을 해왔다는 걸 고백하려고 했어. 당신을 웃게 해주려고.” 나도 언젠가 웃으면서 사실은 이런 의도였어라 얘기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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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넘었는데.” 꿈결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줄 알았지만 현실이었다니. 으헉! 푸드덕 거리면서 일어난다. 75. 망했다!

630, 최소한의 기상 시간이다. 쿠쿠가 맛있는 백미 밥을 완성하도록 세팅을 하고, 냄비의 물을 올려 토마토를 데쳐 갈고, 반찬 한 가지를 하고, 세탁기 버튼을 누르면 650. 씻고 로션 바르고 출근복 입고 머리 말리고 간단히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면 730. 출근을 한다. 715, 그가 씻는 시각, 740, 미니의 등교 시각. 그런데...

 

토마토는 갈지 않아도 돼.”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내게 당신이 말한다.

뇌는 급할수록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쿠쿠가 맛있는 백미 밥을 쾌속으로 완성하는 동안 욕실을 향한다. 바디 워시를 바르고 전자레인지에 든 국 대접처럼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헹굼과 양치질을 동시에 한다. 세수하고 머리감기까지 5. 반찬은 뚝배기에 계란찜. 세탁기는 어젯밤에 돌렸으니 생략. 수분크림 바르고 옷 입고 나서 시계를 보니 717. 으하! 제게는 아직 13분의 여유가 더 있사옵니다. “토마토 갈까요? 시간 되는데.” 씻으러 들어가는 당신, “.” 1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어제 병원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이다. 어제따라 1시간 반 정도를 대기하고 15분 진료 받고 돌아온다. 개 피곤했다는 말이다. 미니의 방학 보충이 시작되어 저녁을 집에서 먹는 바람에 오자마자 저녁 준비를 한다. 고등어구이를 하고, 감자를 갈아 감자전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고독한 독서가들미션을 가까스로 완료하고, 일기를 쓴다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침대 한구석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2시 반에 깬다. 새하얀 빈문서1을 바라본다.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한다. 잠깐 누워있다 세수하고 양치하리라 결심만 한다. 잠결에 주섬주섬 일어나 불을 껐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하아~ 고작 이게 늦잠의 원인이라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구나.

 

보통 때와 별반 다름없이 출근하는 차 안에서 이제껏 당신에게 했을지도 모를 두 가지 오해를 깨닫는다.

첫째, 당신의 알람 시간이다. 630분경부터 10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알람. 715분에 씻을 거라 그 시각에 일어나지도 않을 거면서 쓸데없이 알람만 이르다했다. 늦잠을 자는 일도 드물고, 벌떡 일어나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혹시 나와 미니를 챙기기 위한 것이었을까.

둘째, 당신이 아침 대용으로 마시는 토마토를 갈지 않아도 된다고 한 적이 가끔 있다. 예전의 나는 그 말을 직역으로 받아들였다. 오늘은 먹을 생각이 없나보다 하고. 그런데, 오늘 아침을 더듬어보니 그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토마토는 갈지 않아도 돼.(배고픔은 나의 몫이니 늦었으니까 당신 힘들게 하지 마.)” 그동안 나는 당신 말에서 생략된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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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그가 출장을 갔을 때, 전화를 했어요.”

! 참 잘하셨어요!”

씹혔어요.”

잠시 멈칫하신 물리치료 샘.

또 전화해보셨어요?”

아뇨.”

에이, 두 번은 해 보셔야죠.”

사실 자존심이 좀 상해요. 어떨 땐 그가 먼저 다가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노력하려 구요.”

오늘도 이따 해보세요. 두 번은 해보시구요.”

 

어제는 왼쪽 통증 부위를 마사지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어깨 부위의 동그란 뼈다귀를 제외하고 손으로 굳어진 부위를 마구마구 주무르는 것이다.

출장에서 오시면 이 동작, 남편 분께 해달라고 하세요.”

하지만 이건 제 오른손이 할 수 있을 법한데요?”

하도 해서 오른손 아파서 혼자 못하겠다고 하세요. 파이팅하세요!”

어째 환자와 치료사 샘과의 공모 스멜이 풍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팔운동을 해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감사하게도 이리 과제를 내주시니 저절로 성... 환자가 되어가는 나.

 

어제 저녁 시간에 맞춰 또 전화를 했다. 씹혔다. 이번엔 된..을 외치지 않는다. 신이시여! 저에게는 아직 한 번의 시도가 더 남아있사옵니다.

한 시간 정도 뒤, 2차 시기.

여보세요!”

! 순간 멈칫한 나.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할 말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휘리릭 훑는다. ! 2주 뒤에 있을 친정아버지 생신 모임에 당신의 해외여행 일정이 겹치나 물어봐야겠다. 다음 날 집에 왔을 때 물어봐도 전혀 지장이 없을 이야기를 굳이 전화를 건 이 시점에서.

저녁 먹었어요? 어제도 전화 했었는데 어쩌구. 다다음주 토요일에 친정 저쩌구. ”

지금 사람들과 먹는 중이야. 어제 전화한 건 아침에 봤어. 다다음주면 어쩌구.”

 

꼭 필요한 용건이었으면 다시 했겠지. 아침에 부재중 전화 목록을 보고도 내게 전화하지 않은 것은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거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정말 두 번은 해야 하는 거였구나. 한 번 해보고 안 받았을 때 그만 두었으면 또 된장을 찾을 뻔했다. 당신의 손가락이 나의 전화번호를 향해 저절로 움직일 때까지 나는 두 번의 시도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나의 감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화가 날 일이 아니라 나는 단지...서운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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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정성스레 대접하면 마음은 알아서 따라옵니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에는 몸을 깨끗하고 좋은 곳에 데려다 놓고...” 낮에 들었던 라디오 멘트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 주고, 행복해지는 콘서트 장으로 데려가고, 초록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야겠다고. 그동안 내몸에 너무 무심했다고. 이제부터라도 나를 돌보아야겠다고.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여러 유형의 사랑을 배웠다. 아가페, 에로스, 플라토닉. 당시의 나는 몸과 마음이 별개의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육체보다 정신이 우위에 있다고. 한동안 플라토닉 러브에 매료되었다. 정신적인 사랑이라니! 내게 플라토닉이란 맑은 호수처럼 깨끗한 고고함이었다. 이성을 사랑한다면 이런 사랑을 꿈꾸고 싶었다. 사랑을 잘 몰랐던 시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사랑의 차원에만 해당되는 생각은 아니었다. 존재의 본질에까지 닿을 수 있는 문제였다.

 

플라토닉 러브가 불완전하고 에로스적인 사랑이 완전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랑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음을, 내가 바라는 사랑이 달라졌음을 말하고 싶은 거다. 30여년의 시간은 내게 몸과 마음은 하나이고, 육체와 정신은 동등하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내가 원하는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이었다.

 

몸은 마음을 따라간다. 역의 문장도 성립한다. 마음은 몸을 따라간다. 쌍으로 존재하는 작용과 반작용과 비슷하다 할까. 이런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도 몸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눈이 바라보는 곳, 손이 맞닿아있는 곳, 발걸음이 향하는 곳, 나의 몸을 담고 있는 공간에 마음이 머문다고.

 

커피숍에 있는 지금, 내 마음이 원하는 공간은 이곳이다. 기타 소리가 좋다. 작은 비스킷 한 조각 베어 문 듯 향긋한 선율이다. 거실 신발장 옆에 오도카니 세워진, 머나먼 당신이 치던 기타가 떠오른다. 공간에 흘러드는 커피 향처럼 당신 생각이 마음으로 흘러든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이 당신을 향한 글을 쓴다. 그래서 저절로 알게 된다. 내 마음이 원하는 사람이 보이는 글로 새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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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운동을 가장한 손잡기. 어제 2차시기도 무난했다. 무릇 운동이란 조금씩 양을 늘려가야 하는 법. 첫날, 3번씩 3세트, 9회를 했으므로 이번에는 10회로 늘인다. 갑자기 확 늘리면 허술함이 표 나므로 주도면밀하게 횟수를 증가시키기로 한다. 얼추 동작은 비슷하니 어떤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든 얼떨결에 조금은 운동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번에는 당신의 손톱이 보인다. 첫날은 손의 온기와 감촉이 느껴지더니살짝 건조한 느낌이지만 나보다 더 손톱이 예쁜 사람. 자그마한 내 것보다 훨씬 길고 예뻐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심장의 움직임이 조금 빨라진다.

오늘부터 출장 갔다 일요일에 돌아오는 당신. 내 팔은 그세 굳어질 예정이다. 무려 2,880분이나 운동을 멈추었으니 이건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천여분의 시간이다. 따라서 밀린 양을 반드시 보....... 물리치료 샘께서는 내일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 샘 말씀대로 샘을 열심히 팔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무척 성실한 환자이니까요. 내일 하실 말씀까지 마련해놓았어요.

 

너무 많은 시간의 지우개가 당신이라는 존재를 지워버렸나. 당신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려 해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눈은 어땠더라? 귀는? 발가락은? 새삼 애틋해져서 출장 간 당신에게 전화를 건다. ‘저녁은 먹었어요?’ 라 말하고 그냥이라고 읽으려 했다. 깔끔하게 씹혔다. .. 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기특하게도 나는 잘 도착 했나 궁금해서 전화 걸었었어요.’ 라는 말을 건넬 빌미를 마련해놓았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하산한다.

 

당신의 몸부터 조금씩 기억하려고 한다. 엊그제는 왼손, 어제는 왼손 끝 다섯 개의 손톱들을.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인 듯 바위를 깎아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인 듯 서두르지 않고 정성껏 내 삶 가까이 끌어안으려 한다. 몸 안에 머무는 그 마음에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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