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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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현듯 달리다 잠시 멈췄다 다시 돌아가서 멈췄다 또다시 뛰쳐나와서 달리다 멈췄다 다시 달리는 주인공의 이야기. GoStop을 반복하는 이 인물은 쓰리고를 지나도 멈출 줄을 모른다. 보통 달려라라는 동사에는 경쾌함이 묻어 있건만. 두 눈 반짝이며 달리는 하니도, 날아가는 태권브이도 힘차게 달리지 않는가. 하다못해 <런닝맨>조차 뭔가를 찾기 위한 스릴과 반전으로 활기찬데 말이다. ‘어딘가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알다시피, 가기 전에 어디에 갈지 미리 생각하는 거요.(p45)’ 어디에 갈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리던 주인공 래빗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어딘가에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다시 달려갔다. 비겁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면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 가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달리기가 처음부터 목적 없이 암울했던 것은 아니다. 꽤 잘나가는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시기이다. 20대 중반의 래빗은 그 순간을 수시로 복기한다. 그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결혼과 동시에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서부터이다. 현실의 그는 불안함과 답답함이 공존하는 공기로 둘러싸인 일상을 보낸다. 잡화점에서 주방용품을 시연하는 일을 하고, 장인 덕분에 그의 수입에 어울리지 않는 차를 소유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허구한 날 TV만 들여다보는 임신한 아내. 거실 옷장 앞에 있어 문을 절반밖에 못 열게 만드는 TV는 어린 아내의 상징물이다. 옷장을 열 때마다 TV와 부딪히는 마찰음은 그들 부부의 관계처럼 건조하고 삐걱거리며 불안하다.

 

첫 번째 달리기의 계기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 보인다. ‘부인이 어쨌기에 집을 나가신 겁니까? 담배를 한 갑 사오라고 했지요.(p151)’ 담배 사 오란다고 뛰쳐나갔겠는가. ‘뭘 가져오고 날라오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p151)’다는 그에게는 사소한 담배 한 갑이 목까지 차오르다 화르르 타오르는 발화점이었던 거다. 깎이다 깎이다 마지막에 남은 뾰족한 심지 모양의 모래 놀이에서 툭 건드리면 우르르 무너지는.

어쨌든 그는 가출을 했다.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 갑자기 빠져나가는 게 사실 얼마나 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걸어나가면 되니까.(p151)’ 하지만 막상 발은 디뎠는데 목적을 잃은 그의 달리기는 헛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인 양 허무하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미 목적이 달성되었으므로 다음 목적지가 모호해진 거다.

 

왜 이렇게 방황했을까. 그의 안과 밖의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는다. ‘옆집의 샐리나 조니나 프레드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그냥 너 자신으로 살라는 거야.(p18)’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던 순간에 잠깐 반짝이다 매번 맞지 않는 환경에 던져진 그는 이상과 현실의 불균형을 견디지 못한 거다.

주인공이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 뒤의 어딘가에 (중략) 내가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p183)’ 뭔가를 찾기 위해 이 모든 것 뒤의 어딘가로 틈만 나면 달려갔던 듯하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방향 설정이 잘못되어있다. 목표점이 등 뒤에 있었으니까. 앞으로 달리는데 무엇을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뒤에 두고 온 무언가로부터 늘 달아나는 선택을 한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도 모순되는 불균형이 엿보인다. ‘세상은 어차피 거미줄이다. 줄이 떨리면서 그냥 모든 것이 전달된다.(p185)’ 퍼진 소문을 놀라워하는 이 문장에서는 불교에서의 인드라망이 연상된다. 이런 말을 했던 그는 다음의 문장을 로망으로 품고 있다. ‘그는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원소가 아닌 어떤 것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것.(p205)’ 깨끗하고 싶었던 걸까. 그 어떤 환경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 이상을 꿈꾸었던 걸까. 앞 문장과 뒤 문장을 동시에 느꼈던 그에게 세상은 온통 불균형투성이였으리라.

 

래빗이 느낀 진실이 어쩐지 서글펐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도시 밑에, 이 냄새와 이 목소리들 안에, 영원히 그의 뒤에. 우리가 자연에 몸값을 내면, 자연을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 충만함은 끝이 난다. 그러면 자연은 우리와 관계를 끝낸다. 처음에는 우리의 안이, 다음에는 밖이 쓰레기가 된다. 꽃의 줄기들(p322)’ 꽃을 언급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식물의 일생이 떠올려보았다. 열매를 맺고 나면 꽃잎은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적이 종족 보존이라면 열매 안의 씨를 만들어낸 것으로 최종 목적은 달성된 것이니 불필요한 꽃잎은 가차 없이 져버려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꽃잎이 진 다음에는 몸통이 사그라든다. 이다음은 없는 것처럼. 그러다 이듬해가 되면 새로운 생명이 씨앗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냉정한 자연의 섭리와 주인공의 상황이 겹쳐져서 마음이 짠했다.

 

그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이렇듯 옳은 길이 처음에는 그른 길로 보이곤 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p53)’,‘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 거야. 불행을 막기 위해.(p397)’ 작가는 옳음과 그름에 대한 판단을 각자에게 맡긴다.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무너뜨린다. 왔다갔다 줏대로 없이 방황하는 주인공이 틀린 선택을 했다며 한심해했는데 이 문장을 곱씹어보니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밍밍한 고구마를 꾸역꾸역 먹고 난 기분이었다. 호박고구마는 맛있기라도 하건만. 답답한 분위기가 줄기차게 이어지는 문장들과 버무려졌다. 대체 이걸 왜 읽고 있는 거지. 지리한 문장들이 먼지처럼 모여들어 전체적인 메시지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는 소설이라 후다닥 읽는다고 줄거리 파악이 되는 책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빛깔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스러웠다. 작가가 묘사하는 풍경들이 생명력을 지닌 음습한 덩굴손이 되어 꿈틀거리는 듯했다.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긴 산토끼는 오르막에선 날쌔지만, 내리막에선 젬병이다. 그래서 토끼몰이를 할 때에는 산 위에서 아래로 쫓아간다고 한다. 어떤 의도로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래빗과 토끼의 습성이 겹쳐졌다. 앞다리와 뒷다리의 불균형으로 언덕을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산토끼처럼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는 원하는 모습과 현실의 상황과의 불균형에서 나온 게 아닐까. 목적 없이 향했던 곳이 하필 언덕 아래라서 내내 비틀거리고 제대로 걷지 못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부분적으로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어 짜증이 나면서도 꾸역꾸역 토끼의 뒤를 좇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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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4-0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까 제목부터 훼이크군요 ㅋㅋㅋ 갈곳도 안정해졌는데 달리라뇨... 어쩐지 해리가 개츠비 급의 허망함을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집을 나가서 감독을 찾아갈때 은근히 기대가 되었는데 갑자기 매춘부의 동거동락으로 빠지면서 당황스러움이ㅋㅋㅋㅋㅋ 이게 왜 고전이야? 하면서요 ㅋㅋㅋ

해리를 보면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갇힌 사람은 얼마못가 미쳐버린다고 하죠. 그만큼 환경의 영향이 큰데, 알콜 중독의 와이프는... 답이 안보이네요... 해리를 커버쳐줄 마음은 없지만, 집안 사정도 참 거시기하더군요. 평안한 가정이 목적지인 사람은 가정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래서 그토록 방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나비종님의 리뷰를 보며 전혀 불쌍치 않던 주인공이 불쌍해보이는건 왜일까요 ㅋㅋ이렇게 막돼먹은 주인공에게서도 동정과 연민을 캐치하시는 달란트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러고보니 왜 별명을 토끼로 정했는지 생각못해봤는데, 내리막길에 쥐약인 토끼의 약점이 해리에게서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어요. 전체적으로 짜증 한가득이긴 했지만 역시 책보다 더 재밌는 리뷰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ㅎㅎㅎ 3월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비종 2020-04-01 22:29   좋아요 1 | URL
제목이 간단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겉표지에 나온 원제가 ‘Rabbit, Run‘ 이거든요. 래빗과 런 사이에 쉼표가 있잖아요. 그게 묘해요. 쉼표가 없다면 토끼 지가 알아서 달린다는 의미일텐데, 쉼표 하나 때문에 번역판 제목도 명령어가 되었잖아요. 누군가가 달리게끔 한다는 거죠. 등떠밀듯이ㅋㅋ
맞아요. 갑자기 전개되는 그 사건은 또 뭐래요. 거의 개츠비각이었습니다.ㅎㅎ 그러다 집으로 되돌아갔을 때는 등장1도 하지 않았던 매춘부에게 다시 달려가고. 감독이 무슨 역할을 하나 했더니 소개팅시켜주고 옷 하나 빌려준 다음 사라지고.ㅋㅋ

음, 저는 알콜 중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시선이 가더라구요. 결과값이 나오기까지의 시간들 안에는 많은 서사가 압축되어 있었겠죠?
평안한 가정이란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역시 가화만사성^^;

주인공 걔 불쌍한 거 맞아요.ㅎㅎ아내도 불쌍하고, 매춘부도 불쌍하고, 감독도 불쌍하고, 아들도 불쌍하고, 딸도 불쌍하고, 부모들도 불쌍하고, 목사님도 불쌍하고, 온통 불쌍투성이네요. 등장인물 중 불쌍하지 않은 이들은 엑스트라밖에 없군요. 처음에 뛰쳐나갔을 때 가다가 기름 넣은 주유소 주인 정도랄까요.
저 역시 물감님의 리뷰와 댓글 덕분에 그나마ㅎㅎ 역시 같이 까야 제 맛이라니까요.ㅋㅋㅋ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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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역사는 젬병이었다. 문장의 끄트머리만 살짝 변주해도 어김없이 대놓고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 그 말이 그 말 같고 당최 뭔 차이가 있는지 알쏭달쏭했다. 안면인식장애라도 있는 인간처럼 도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성적이 안 좋아서 싫어하게 되었는지, 싫어해서 성적이 나오지 않았는지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결론은 좋아하지 않던 분야라는 거다. 이미 지나간 일을 알아서 뭐 하누? 절도 아니고 절터를 찾는 게 무슨 의미람? 대충 이런 마음이었다.

한데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달라지듯 취향도 변하나. 역사라는 분야에 차츰 시선이 간다. 과거의 서사에서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경험이 조금씩 쌓이는 만큼 흥미도 쌓여갔다. TV에 들어갈 준비가 된 드라매니아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밍숭맹숭함을 지나 담백한 맛을 음미해가는 중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역사가 주는 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경복궁, 순천 선암사, 달성 도동서원, 거창합천, 부여논산보령 등 다섯 군데의 문화유산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작가는 미학과 미술사와 동양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문학의 비전공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나 관심 분야에 대하여 적은 글에는 독특한 매력이 존재한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달까. ‘쌩떽쥐뻬리, 씨즌2, 씨드니등 된발음으로 표기된 외래어가 신경쓰였지만, 단어의 표현방식이나 문맥의 유려함은 차치하고라도 신이 나서 활기차게 걸어가는 이를 보듯 책장을 넘길 때마다 땀방울이 훅훅 끼얹어졌다. 학창 시절 교과서로 접했던 용어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산지직송의 해산물을 맛보는 기분이 들었다. 박새로이의 마지막 술맛처럼 달았다. 책상 위에서의 상상이나 교과서 안에서 납작하게 눌린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발로 뛰고 뱉어낸 문장들이 팔딱거렸다. 접사로 사진을 촬영하듯 숨을 죽이며 책장을 넘겼다.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경복궁 근정전에 얽힌 일화 중 임금의 부지런함을 말하는 정도전의 문장에 반해버렸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p30)’ 깔끔하고 명료한 행동지침이다. 정도전은 이 문장 하나로 시험용 인물에서 존경할만한 인물로 격상되었다. 보는 순간, !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임금도 아닌 것이 임금이 되고자 하는 역모를 꾀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시간이 정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흐트러져있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경복궁에 대한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나머지 네 군데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록된 옛 지도를 대조해가면서 위치를 찾아보고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고 생소한 건축용어를 일일이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아까 찾아봤던 건데 뭐였지? 금세 잊어버리고 또 찾고 찾아보다 보니 몇몇 용어들이 머릿속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옥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도 된 양 배워가는 기쁨을 느꼈다. 서까래와 대들보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던 무지몽매한 눈이 탁 트였다.

공부하고 사진을 다시 보니 온통 그것만 보였다. 예컨대 한옥 지붕의 양식은 우진각지붕, 맞배지붕, 팔작지붕 등 크게 세 가지 양식이 있는데, 근정전의 지붕은 팔작지붕이라고 한다. 맞배지붕은 옆에서 보면 ㅅ자 모양, 흔히 집을 그릴 때 그리는 지붕의 형태이다. 우진각지붕은 ㅅ자의 옆구리에도 지붕 뼈다귀가 있는 형태이고, 팔작지붕은 맞배지붕과 우진각지붕의 콜라보다. 지붕의 왕은 팔작지붕이다. 괴도 루팡 모자의 납작 버전 모양이다. 지식백과와 이미지를 몇 번이나 왕복한 끝에 이 세 가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경복궁 전경 사진에서 몽땅 똑같아 보이던 지붕들이 다르게 보였다. 구분할 수 있게 된 거다. 3개의 문을 지나, ! 저기가 근정전이로군! 멀리서도 군중 속에서 내 아이를 금세 찾을 수 있는 지붕의 엄마가 된 거다. 이후로 한동안은 다른 장소 다른 건축에서도 온통 지붕만 보였다.

 

우리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을 자연스러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의 어울림을 염두에 두고 산조차 건축의 일부로 활용한 우리 선조의 대범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접과 종지는 각기 제대로 쓰였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위대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자금성과 우리의 경복궁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움은 건축 밖에서도 드러났다. 뺀질뺀질하고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졌다고 완벽한 바닥재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정전 앞마당은 박석이라는 돌로 깔려있는데 빛을 난반사하여 눈부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 자연 박석이 어떤 모습으로 아름다운지 배우고 나니 아파트 단지의 바닥을 밟을 때마다 박석의 자연미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구들과 굴뚝의 과학에도 감탄했다. 자연의 섭리를 적절하게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에 고개가 수그러졌다.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저자의 마음이 우리 건축의 이미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 건축 자재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금강송의 보호림 조성에 관한 협약 이야기에 뭉클했다. 150년 후까지 내다보며 2155년에 개봉하기를 바라는 타임캡슐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후세를 생각하는 애틋함이 느껴졌다.

자연의 특성을 고려하고 염원을 담은 이름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에 실린 경복궁 전도에서 잘 구분하기 어려운 한자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가며 찾았다. , 여기가 그거 옆이니까 이거 맞는구나. 하나하나 짚어가며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 두어 번 서울로 올라간 기억이 있다. 그때는 기대하던 공연을 본다는 설렘에 광화문 광장을 무심코 지나쳤다. , 참 넓구나. 이게 끝이었다. 그 광활한 공간이 절로 만들어져 처음부터 거기에 존재했다고 무심코 생각했던 걸까. 광화문 광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숨겨진 노력을 상상조차 해보지않았다. 현판의 글씨체 하나에도, 재건 기간의 가림막조차 설치 미술로 고민한 흔적들을 보며 벅찬 감동에 잠시 멍했다. 광화문의 역사는 또 어떠한가. 지었다 불에 타고 또 지었다 부서지고 다시 옮겨졌다 결국엔 우뚝 선 왕궁의 대문. 피고 지고 또 피는 우리의 꽃을 닮아있다.

경복궁의 역사에서 빠져나오니 내가 알던 경복궁이 아닌 것처럼 생경했다. 고난과 역경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품은 고대의 왕궁이 새로운 공기를 품은 채 마음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p120, 쌩택쥐뻬리)’ 작가의 답사기는 성공적이었다. 당신의 걸음을 좆다 보니 실제로도 그 장소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간다면 광장조차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바닥에서 지붕의 곡선까지 건축물 하나하나, 곳곳에 새겨진 작은 무늬까지 보듬으면서 눈에 담아올 것 같다. 그리움 같기도 하고, 애틋함 같기도 한 향수가 마음 가득 흐드러졌다.

 

문화유산이 있는 장소에 다녀와 자유롭게 쓴 기행문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역사책을 읽고 난 기분이 들었다. 역사는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문화유산으로부터 시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답사란 결국 건축을 보면서 한 시대를 읽어내는 일이다.(p366)’ 시절을 호령하던 왕들과 이 땅을 살아가던 민초들은 공중으로 흩어졌지만, 까마득한 그들과 함께한 흔적들이 우리 곁에 남아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채 묵묵히 머물고 있었다. 왕궁이나 사찰과 같은 건축에서부터 절터, , 성곽, 유물, , 정자, 누각, 관아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숨결은 곳곳에 소리 없이 깃들어 있었다. 가만히 건드리면 손끝에 향기를 전해주는 허브처럼 어떤 역사서보다도 생생하게 우리의 역사를 전할 준비를 하며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 <반의반>에서는 주인공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립다고 음성 갖고 싶어하는 거 이해 가요?

-사진을 간직하든 음성을 보관하든 차이 없다고 보는데요.

사진으로든 음성으로든 그리움을 간직하는 방법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역사를 품는 대상도 마찬가지이리라.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어떤 형태로든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p104)’하니 그 오랜 시간을 건너온 이야기라면 맑은 향기가 날 것도 같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느낌이다.

 

 

p102, 사진 설명 : 명성황후가 기거하던 장안당의 안채 ~ 곤녕합의~

p103, 1번째 단락 마지막 줄 : 옥호루 옥곤루

(조선일보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 17.10.27.일자, 명성황후 시해 장소로 알려진 옥호루(玉壺樓)는 옥곤루(玉壼樓)의 잘못이다)

p221, 그림 : 오르내리는 거북이 ~ 다람쥐

p446, 1번째 설명 : 낙양읍성 낙안읍성

(낙안읍의 성은 낙안읍성. 낙양은 상주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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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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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상대라 여겼던 사람이나 매력적인 이들을 발견했을 때 종종 생각했다. ‘당신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참 다행이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행복한 공기처럼 스며들 때면 마음은 풍선인 양 두둥실 부풀어 올랐다. 그들과 나는 같은 세상을 살았던 걸까. 의외의 책에서 답을 찾았다.

 

포르투갈 작가의 문체는 생소했다. 재미는 둘째치고 481개의 텍스트를 지나오는 동안 몇 번씩 뒷걸음질을 치며 되돌아갔다. 당최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 되는 문장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양손으로 덩어리를 쭉 늘렸는데 탄력이 없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랄까. 긴 문장을 꾸역꾸역 따라가다 주어가 뭐였더라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영어의 관계대명사를 배울 때가 생각났다. 어디까지가 주어인가를 끊어내는 게 문장 해석의 열쇠였지. 중간에 훅 들어온 그노무 문장 덩어리가 핵심 내용을 파악하려는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군데군데 찍혀 있는 쉼표는 오히려 문맥을 파악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불안의 책.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불안 불안했다. 중간에 집어 던져버리지 않을까 심히 불안했으니 제목은 참 적절하다 싶었다. 뭐 어쨌든 읽기는 다 읽었다.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이니. 하하하. 가려진 커텐 틈 사이로 인간 내면의 심오한 성찰이 숨어있는 책이던가. 늪에서 건져 올린 양 음습하고 칙칙한 포스를 뿜어내는 문장들이 불안한 냄새를 풍기며 펼쳐졌다. 무기력, 공허, 불안, 무능, 절망, 권태. 온통 마이너적인 색채의 문장들을 접하며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방황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 속에서 어느 순간 텅 비는 허허로움을 보았다. 음지에 자리한 인간의 감성을 생각했다. 영혼에도 깊이가 있다면 햇빛이 닿지 않는 심연에서 건져 올리는 인간의 본성이 이와 닮았을까.

 

609페이지를 건너 작가의 연보까지 읽고 잠시 멍해졌다. 묘한 꿈을 꾸고 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꿈을 꾸는 것이다.(p294)’ 페소아에 끌려 꿈을 꾸다 온 걸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만 일어나는가, 아니면 모두에게 일어나는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면 전혀 새로울 게 없고, 오직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p26)’ 나의 무의식에도 그가 느낀 감성이 담겨있는 걸까. 그렇다면 익숙해야 할 텐데 생경한 느낌도 있다. 작가만이 느낀 감성이라면 이해하기 불가능할 텐데 또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익숙한 맛, 생소한 맛이 섞여 있는 반반 치킨 같다. 익숙함과 생소함의 적절한 배합이 독자를 이끄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내면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마주한 감성을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까. 내용의 절반이나 제대로 이해했나 싶다. . 몰이해투성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압도하는 묵직함과 인상 깊은 정서는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의 책을 읽은 후로 나와 타인과 시와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도 바라보게 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페소아는 그 중 으뜸인가. 47년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십 명의 다른 이름을 통해 복수의 존재를 추구했다는 사람이다. ‘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이지 내 키의 크기가 아니라네.(p64)’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본 것들을 떠올려본다. 작가가 본 것은 얼마나 컸을까. 보는 것이 많아 글을 통해 그렇게 다양한 인격을 구현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배우 지성이 연기했던 다중인격이 과연 특이한 사례일까. 온종일 같은 감정으로 사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쁘고, 슬프고, 설레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256색상환 같은 감정들은 무수한 조합으로 나의 일상을 채운다. 페르소나 속에 나를 숨기기도 한다. 제어 가능한 탄력성으로 언제든 디폴트값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다중적인 인격들을 조금씩은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독특했다. ‘타인이란 우리에게는 그저 풍경일 뿐인데, 대체로 너무 익숙한 거리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풍경이다.(p397)’ 스스로가 가구처럼 느껴졌던 때가 떠올랐다. 그저 방 한구석에 물끄러미 놓여있어 새삼 찾기 전까지는 시선이 가지 않는 대상. 정서적인 교류 없이 공간을 차지하는 사물처럼 말이다. 그저 풍경,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풍경은 이런 느낌 비슷할까.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할까. 한 사람에 대하여 무엇을 알아야 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일상적인 접촉과 대화를 통해 나를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p51)’이란 문장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아는 사람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감각이 강아지풀의 솜털처럼 민감해졌다. 흑백 사진 같은 정서가 느리게 흐르는 그의 글을 따라가며 의 본질을 감각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 서서 온 감각을 동원하여 빛깔, 소리, 냄새, 감촉, 맛을 구현한다. 순간의 느낌을 선명하게 남기고 싶은 마음이 찰칵! 셔터를 누른다. 나름대로 정의해본다. 시란, 글로 찍는 스냅 사진이라고.

 

세상은 여러 가지 사물을 품는다. ‘세 가지 요소가 서로 교차하여 한 사물을 이루는데 이는 물질의 양,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 사물이 놓인 환경이다.(p81)’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변수가 되는 요소는 해석하는 방식일 터이다. ‘모든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이로운 것이 되거나 방해물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길이 되거나 문제가 될 수도 있다.(p124)’,‘삶이란 본질적으로 정신 상태이기에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길 때 가치 있는 것이고, 가치 평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p126)’ 엘리베이터 안이 설렘의 공간이 될 수도, 공포의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사물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온통 다른 의미로 채워진 세상을 같은 세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비눗방울로 그려졌다. 한 통 안에 있는 비눗물이지만 후~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순간, 그들은 각기 다른 공간을 유영하며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p333, 2번째 단락 2째 줄 : 내 조국은 포르투갈어다. ~ 포르투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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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법
메리 파이퍼 지음, 서유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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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격변이라 할 만한 일들이 몰아쳤다. 막내가 다른 지역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 3월부터 집에는 오롯이 부부만 남게 되었다. 지난주에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정기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근무처로 발령이 났다. 남편은 6개월 무급 휴직을 냈다. 새로운 학교에서 5년 만에 담임을 맡게 되었다. 맡아본 적 없던 생소한 업무도 하게 될 예정이다. 여러 가지 준비와 정리들로 마음이 덩달아 복잡했다.

눈길 닿는 곳에 두었건만 책 한 장 들여다볼 여유가 나지 않았다. 이사 후 일주일가량 집 정리를 하다 문득 이러다 안 되겠다 싶었다. 집안 곳곳 자리를 잡지 못해 쌓여있는 짐들을 뒤로하고 무작정 낯선 커피숍을 향했다. 중요한 시기에 이 책을 펼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점점 떨어지는 체력을 몸으로 감지하며 업무능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것만 같아 자신감이 조금씩 낮아지는 중이었다. 신학년 준비를 위해 새로운 학교로 가서 교과협의회를 하면서 4명 중 가장 연장자임을 깨닫고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이들도 동료들도 나이 든 교사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겠지. 젊었을 때는 쉽게 할 수 있던 일도 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뒷걸음질을 쳤다. 기억력도 점점 예전 같지 않다. 하아! .

메리 파이퍼가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라고 말한 이유가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50대 초반에도 나이의 무게감이 부담스러운데 70대 작가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제목으로 드러낼 만큼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원제는 <Women Rowing North>로 북쪽으로 노를 젓는 여자들이란 뜻이다. 북두칠성이 죽음을 상징하듯 북쪽은 죽음을 의미하는 방향이다. 태양이 지나지 않는 방향이라 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했나. 노를 젓는 행위는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고 죽음을 향해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의지를 표명한다. 일러두기에는 이 제목이 긍정적인 태도와 방향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적혀있다.

나는 ‘Getting Older Getting Better’라는 부제도 좋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좋아진다니. 얼마나 희망적인 메시지인가. 숙성될수록 깊어진다는 와인의 맛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지혜로워진다는 인디언 추장처럼. 낡아가는 게 아니라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시각이 좋았다.

임상심리학자로서의 경험을 녹여낸 이 책은 420장으로 구성된다. 본인과 주변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져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한데 속도감은 묵직하고 느리다. 여러 사람의 모습과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현재의 나를 짚어보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시간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나이 듦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민과 갈등을 넘어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보여준다. 각 부의 제목 옆에 있는 4개의 문구를 차례로 연결하면 저자가 말하는 핵심에 닿는다. ‘비록 이 여행이 쉽진 않을지라도,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함께 노를 저을 사람이 있다면, 우린 언제든 좋은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지

 

사람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자극을 받으면 반응을 한다. 이때 자극은 외부에서 주어지므로 선택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 하지만 자극에 대한 반응은 선택 가능한 영역이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자극-반응의 세트로 삶의 무늬가 그려진다면, 반응 양상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 반응을 태도로 해석한다. 똑같은 사건이 발생해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 태도가 누적되면서 삶이 고유성을 띠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 태도에 대한 언급이 유난히 많은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와 계획이다.(p34)’,‘올바른 태도와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낯선 상황에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다.(p39)’,‘태도는 상황을 이긴다.(p166)’,‘태도는 의식을 바꾼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p200)’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알았다. ‘한 사람의 철학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선택을 보는 것이다.(p164, 엘리너 루스벨트)’ 가까운 친구들이 했던 선택들이 떠올랐다. ! 이 친구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새삼스러웠다.

이 문장은 나에게도 의미가 깊었다. 지금까지 했던 선택을 돌아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참 멋진 선택이었어! 우쭐하다가도 이건 좀 비겁했어! 소심해지기도 했다.

요즘 나의 최애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도 생각났다. 드라마의 선택 상황을 복기해보니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문장이다 싶었다. 그 멋진 남자의 철학은 매번 소신 있는 선택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가락을 살짝 벤 적이 있다. 물에 닿을 때마다 쓰라려서 밴드를 감고 다녔다. 겨우 손가락 끝인데 그 이물감이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 멀쩡한 손가락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 며칠이었다. 어깨가 아파 팔을 들지 못했던 몇 달 동안은 무심코 외치던 만세 액션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더랬다. 아플 때마다 당연한 몸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음을 반성하게 된다.

고통을 말하는 작가의 문장은 삶으로의 확장 버전이다. ‘고통이 없다면 인생의 모든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p40)’,‘많은 것을 빼앗아갈수록, 공감과 감사를 담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은 더욱 넓어진다.(p41)’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마음의 고통까지도 기꺼이 깊은 의미로 수용해야 함을 시사한다.

 

삶을 단순하게, 빼는 것이 중요하다는 팁까지 장착한 나는 행복한 기억 하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어나지도 않은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하느니, 차라리 매일 행복한 기억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p81~82)’

글자 하나가 키보드 버튼 하나 만한 동화책과 큰아이가 남기고 간 인터넷 소설을 처분하기로 했다. 어둠의 장소 구석에서 먼지로 연명하던 책들이다. 알라딘 중고에서도 매입 불가로 뜨는 녀석들을 과감하게 처분하기로 했다. 대략 15kg였다. 캐리어를 펼치고 꾸역꾸역 넣었다. 오다가다 발견한 고물상에 팔기로 했다. 이렇게 묵직한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나?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며 기대에 부풀었다. 음하하! 버리면서 돈도 생기니 일석이조로군!

빈 캐리어를 통통 끌고 오며 또 웃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한 대가는 천 원이었다! 처음에는 아저씨가 계산을 잘못하셨나 했다. 다시 보니 조그만 화이트보드에 종이의 가격이 50, 70원 등으로 적혀있다. 집에 와서야 인터넷 검색으로 폐지 대란을 알았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눈물 등 관련 기사들을 읽다 보니 천원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삶이란 참,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알려주는구나. 세상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엿보면서 내가 복에 겨운 삶을 누리고 있구나 싶었다.

 

나비인 듯 가볍게 흩날리는 보랏빛 꽃잎. 표지에 코끝을 들이대면 향긋한 라벤더 향이 날 것 같다. 이 책을 만난 것은 나에게 날아든 라벤더와 같은 행운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무엇이 내게 중요한지,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제쳐 두니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이 바로 우리의 미래다.(p185)’ 오늘만 생각하기로 했다. 미래까지 들고 있으려니 삶이 그리 무거웠던 거다. 공감했던 문장이 가장 많았던 10장의 제목처럼 좋은 하루 만들기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환경이 한꺼번에 바뀌어서 멘붕이 올 만했건만 따뜻한 손길 같은 문장들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그저 하루 치의 용기만 내면 되는 거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환경을 마주할 담담한 용기가 생겼다.

 

 

p101, 마지막 단락 : 나를 그에게 나는 ~

p178, 3번째 단락 : 무엇인 필요한지 무엇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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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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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를 연상시키는 기다란 모자, 애꾸 안경, 쾌감까지 투척했던 괴상한 도둑이 마음을 훔치는가 하면 담배 파이프를 비스듬히 물고 베레모를 쓴 탐정이 맞불을 놓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옛날의 나보다 훨씬 더 자란 아이와 시리즈물로 극장판까지 등장한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았던 기억까지. 추리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모리스 르블랑, 코난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아오야마 고쇼에 이르기까지 사건과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은 어린 나에게 동화책처럼 친숙한 장르였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추리 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안 했다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길이 아니면 가지도 않는 인간처럼 나는 의지를 갖고 그 방면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청난 다작이 놀랍기만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유일하게 사람이 죽지 않는 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 했던가. 대가리보다 큰 다이아몬드나 미술 작품을 순삭하는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추리 소설에는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피 질질 흘리며 엎어져 널브러진 장면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음산한 BGM이 귓가에 윙윙 울리는 듯하다. 추리물은 껍데기부터 무서웠다. 책을 들고 다니면 표지에 그려진 거무스름한 데다 얼굴도 없는 인간이 슬금슬금 깨어나 질척질척 들러붙을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보다 귀신 될 날까지가 더 짧을 나이이건만. 으헉! 시뻘건 표지가 불안하다 싶더니 <모래 그릇1>에는 머리, 모가지, 어깨에 총구멍 뻥뻥 뚫린 인간이, <모래 그릇2>에는 열 손가락 다 벌려 유리창에 갖다 대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액션 인간이 있는 거다. 태양을 피하고 싶은 인간에 빙의하여 시뻘건 표지를 피하고 싶었다. 읽다가 덮어둘 때면 회색 바탕의 뒷면이 보이도록 책을 뒤집어놓았다.

이런 노력이 뻘짓이었음은 두 권을 다 클리어하고 나서야 드러난다. 올레! 드디어! 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껍데기. 꼬랑내 나는 양말을 최소한의 손가락으로 집다가 스르륵 껍데기의 봉인이 풀린다. 온통 시.... 미적으로 세련되기까지 했다. 한 꺼풀만 벗겨보았으면 간단히 해결되었을걸. 추리 소설을 읽는 마당에 사소한 디테일을 놓쳐버렸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세이초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추리 소설을 접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추리 소설은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라 내용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한 줄 요약을 하면, 증거가 사막의 물처럼 감질나는 살인 사건을 중년의 형사가 열 받지 않고 놀라운 인내심과 집요한 추적으로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으로 재미는 없다. 속도감은 걸어가다 다리 아플 때쯤 자전거를 타는 정도이다. 맛으로 치면 오래 씹는 밥맛 같다. 느려터지고 헛다리 짚는 전개에 밋밋한 맛이 나다가 2권부터는 사건의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살짝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진다. 통쾌한 사이다 결말이나 조마조마한 긴장감은 없지만 생각할 거리는 있다.

 

모든 살인의 동기는 결국 욕망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도 욕망이고, 우발적인 범죄도 중심에는 욕망이 자리한다. 그런 범행의 동기를 어떤 요소와 접목하느냐에 따라 다른 작가와의 차별성이 결정된다. 세이초는 사회적인 테두리에서의 접근을 시도한다. 그는 집합적 무의식에 비판적이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두 군데에서 드러난다.

첫째,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범인의 배경이다. 최초의 살인 사건 이후, 추가로 발생하는 살인은 자신의 민낯을 가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약간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뮈지크 콩크레트의 도입이다. 뮈지크 콩크레트는 2차 세계대전 후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전위 음악이다. 구체음악이라 불리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소리를 녹음한 다음 기계를 통해 변형하여 구성하는 작품으로 음향의 배열에 가까워 대중에게는 생소한 장르이다. ‘대중은 언제나 선구적인 난제에 난처해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에 익숙해지지. 그 순응이 이해로 이끌어주는 거야.(1, p326)’

 

주인공 형사가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경외심을 갖게 한다. 희미한 증거, 증거인 듯 증거 아닌 증거 같은 증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흘려보내지 않고 답답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경찰은 언제나 사건이 일어난 뒤가 아니면 수사권을 발동할 수 없다. 경찰은 범죄예방 차원에서는 완벽히 무력하다. 피해가 생겨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예감만으로는 수사할 수 없다.(2, p84~p85)’ 우연이 겹치는 단서들의 나열이 다소 억지스러워 살짝 거북했지만, 추가로 발생한 살인 사건에 무력함을 느끼는 마음에 공감하며 응원하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추리 소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았다. 피 질질을 피하고 육하원칙으로 정리되는 기사문과 같은 사실에 집중했던 어릴 때와는 달리 범행 동기와 사건 해결 과정에 눈길이 갔다. 삶을 지나온 시간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걸까.

 

내가 해석해본 이 책의 주제는 상처와 욕망이다. 표지를 다시 보니 이토록 적절한 그림이 없어 보인다.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가리고 싶었던 인간이 유리창 너머에 있다. 유리는 차별이라는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고 쉽게 깨진다. 그를 적나라하게 비춰 감추고 싶은 이에게는 상처로 작용하는 벽이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인간이 도시의 고층 건물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도시를 품고 싶다는 욕망을 연상케 한다.

제목이 품고 있는 의미에 놀란다. 와르르 무너지기 쉬운 모래 그릇. 대략적인 의미는 감이 온다. 하지만 모래의 속성을 생각하니 깊은 의미가 더해진다. 모래는 0.02mm~2mm의 크기의 입자를 말한다. 이보다 크면 자갈, 작으면 실트나 점토라 불린다. 자갈로 그릇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릇은 고령토를 이용해 도자기를 굽듯 미세한 흙으로 형상을 만든 후에 불가마에 구워야 한다. 모래 만든 그릇을 상상해본다. 모래성처럼 형상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불에 구워낼 수는 없다. 단단하지도 못한 것이 단단하게 보이고는 싶고, 불에 구워지는 순응도 하기 싫다. 모래의 입장이라면 상당히 불안한 상황에 처한 욕망덩어리인 거다.

 

대부분의 시작은 사소하다. 마침표가 찍힌 후에 과정을 돌아보면 이토록 사소할 수 없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소함은 말의 뉘앙스와는 달리 결정적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인생이란 사소한 일을 계기로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알 것 같아요.(1, p57)’ 추리 소설에서의 사소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소한 증거들을 차곡차곡 적립했기에 전체적으로 구슬을 꿰어낼 수 있었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에서는 주인공 박새로이의 운명은 사소한 일을 계기로 확 뒤집힌다. 사소한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아 퇴학을 당하고 감옥을 간다. 이쯤 되면 사소함이라는 말을 들이대기가 민망해진다.

멀리 있는 어떤 이에게 사소한 어떤 것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가까이 있다고 의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점이 화룡점정의 선명한 의미가 되려면 가까이에서 오래 자세히 보아야 한다. 사소함은 거리에 인내심의 농도가 합쳐져야 하는 섬세한 개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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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2-1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줄 요약이 굉장히 제 스타일입니다. 나비종님은 상처와 욕망에 집중하셨네요. 상처를 치유하려는게 아니라 감추기 급급하고, 그릇되다 하더라도 원하는걸 얻기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욕망... 겉과 속이 다르면서 내내 고귀한 척하는 누보그룹이 꼴불견이었지만, 과연 이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수 있을지는 모르겠더라구요. 인간은 누구나 기회가 오면 잡으려 할테니까요. 그것이 까만 속내를 감춰주기까지 한다면 누구라도 흔들리겠죠. 나비종님의 글을 보니 그들을 보던 저의 시선이 살짝 달라지네요!

모래그릇의 뜻도 신선하군요. 작중에서는 이렇다할 언급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거든요 ㅎㅎ 불에 구워낼수 없어 형상을 유지할수 없는 모래의 성질은, 결코 완성품이 될수 없는 그릇된 욕망의 소유자들을 잘 말해주는 것 같네요. 근데 참 책보다 리뷰가 더 재미있는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ㅋ

그건 그렇고 경찰 주인공이 너무 매력없던 작품이었어요. 2권이나 되는데 독자에게 힘을 주지는 못할망정 김만 새게 하는 캐릭터여서 아쉽더라구요.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수사는 소설속에나 존재할뿐, 현실은 전혀 다르다 라는걸 말하고 싶은가 했더랬죠 ㅋㅋㅋ 저와는 달리 주인공에게서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셨다고 하니, 나비종님 또한 인간승리인듯 합니다. 그리고 매번 힘든 고비를 넘기는 나물모임도 그러하네요^^

이제 분권 작품은 최대한 뒤로 미뤄야겠습니다. 역시 매월 모임을 해야 좋은거 같아요ㅎㅎ그래야 나비종님의 글을 하나라도 더 읽을수 있으니깐요~! 다음달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비종 2020-02-11 22:12   좋아요 1 | URL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시는군요, 굉장히~ㅎㅎ 저 역시 누보그룹의 페르소나가 가증스러웠지만 그게 과연 개인만의 문제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인 편견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려다보니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며칠동안 제목만 생각하며 보내다 에잇! 그냥 제 식으로 해석해보았습니다.^^;
나만 재미없나 싶었는데 참 재미없었다는 느낌을 공유하니 든든하네요. 책보다 댓글이 더 쏙쏙 들어오며 재미있는 건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이런 이유일겁니다.ㅋㅋ

경찰 아저씨, 너무 MSG가 없어서.. 하이쿠 얘기도 나오다 만 응가처럼 어정쩡하고, 쩝. 맞아요. 매력을 못 찾겠더라구요. 담백한 두부류도 아니고 당최 난감한 캐릭터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두보 그룹의 두 분에게서 제대로 뿜어져 나오더라구요.ㅋㅋ
이렇게 힘든 고비를 넘어주어야 파동처럼 리드미컬한 재미가 있겠죠? 재미있는 다른 책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도 있구요.^^

^^매월 모임이 좋은 거 같긴 하네요~ 물감님의 유쾌한 리뷰도 만나고, 나비종서재의 유일한 댓글러의 친숙한 댓글도 만나고~
다음 달부터는 새학기 시작이라 겁나 바빠질 것 같지만, 그래도 책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려구요. 31일 11시 59분에 간신히 리뷰를 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