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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구입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책이라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읽으려는 시도를 몇 번 하기는 했다. 번번이 겉장도 넘기지 못하고 두께에 압도당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이번의 시도는 독서 모임의 강제성이 아니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일이었다. 제목만 보고 내용이 총, 균, 쇠 등 세 분야로 나뉘어있으리라 지레짐작했다. 비장하게 모임 도서를 정하고 753쪽을 한 달 안에 소화하기에는 급격한 멘붕이 오리라 예상되는바, 두 달에 걸쳐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첫 달에는 어디까지? 총까지 읽자, 균까지 읽고 나머지는 다음 달에 읽자 말들이 오갔다. 목차를 검색해보고야 우리의 의논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3종이 묶여있는 세트였던 거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니 첫 달 모임에서는 2부까지만 읽기로 했다. 지난 10월 말의 일이다.
11월, 심호흡을 하고 드디어 『총·균·쇠』의 본문을 영접하였다. 한데, 그리 어렵게만 보이던 태산도 한 걸음씩 걸으니 가속이 붙었나 2부를 지나도 걸음을 딱 멈출 수가 없었다. 드라마도 아닌 것이 투 비 컨티뉴드가 이토록 궁금할 일이더냐! 언제부터 인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사회나 역사 분야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인물과 지명과 고대에 사용되던 석기와 도구들을 검색하며 보고 있는 거다. 후반부에 가서는 아예 책장 구석을 뒤져 먼지를 먹으며 연명하던 사회과부도를 찾아냈다.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동남아시아·유럽·오스트레일리아·남북아메리카 지도를 펼치면서 도시와 섬 사이를 손가락으로 누벼댔다. 있는지도 몰랐던 도시와 나라들이 손끝에 닿는 점자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책은 인류의 발전이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된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힌 책이다.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4부에 걸쳐 체계적으로 증명이 되어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큰 건가. 우수한 문명이고 나발이고 원초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궁극적인 원인은 식량 생산이다. 『문명과 식량』(루스 디프리스, 눌와, 2018.2.)의 확장 디테일 버전인 듯 자세한 근거가 제시되어있다.
식량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문명의 발달이나 존속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이를 둘러싼 다양한 수단들이 등장한다.
첫째, 식량 생산을 도와줄 가축이다. 원래부터 그곳에 살았던 가축에 따라,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집단의 운명이 갈린다.
둘째, 식량을 생산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총, 균, 쇠, 문자 등이다.
셋째, 이제는 식량 생산을 위한 정보력과 기술력의 싸움이다. 자체 보유력도 중요하지만, 사방팔방에서 흡수하는 외부의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다양한 유형·무형의 것의 전파속도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지리적 환경이 등장한다. 유라시아는 대륙 축의 방향이 동서 방향으로 길고,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 방향으로 길다. 남북 방향의 대륙은 위도를 넘나들어야 하므로 적도에 사는 인간들이 극지방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 모양새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거다.
넷째, 식량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야생 먹거리가 작물화로 되기까지의 과정 역시 기후, 지형 등 환경적 요인이 크다. 수렵 채집민과 식량 생산민의 경쟁력의 차이도, 정치 체계도 마찬가지다.
먼저 시작했다고 더 발달하는 건 아니다. 인류의 기원지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상황처럼. 또, 백인이냐 인디언이냐에 따라 개척자와 침략자로서 자리매김된다.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세계사를 보면서 100%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중립에 선 듯하다.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글은 명쾌하다.
인구 밀도에 따라 대륙별로 인간이 그려진 그림을 본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호주는 2명 정도가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땐 막연하게 거긴 넓어서 참 살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했던 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는 땅덩어리에 적은 수의 인간이 거주할 때는 그에 합당하는 이유가 있었으리라는 사실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환경과 인구 몰빵 지역 사이의 차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면서 이제껏 참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내왔구나 싶었다.
가축화 및 작물화된 야생동식물의 종류와 수의 차이, 기술혁신과 정치제도의 확산과 이동속도의 차이, 대륙 면적과 인구의 차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결론은 단순하다.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생태적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 원래 그리 태어난 게 아니라 우연히 주어진 환경들이 인류의 문명에 대한 운명적인 큰 그림을 그려냈던 거다.
백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푸른 눈에 하얀 피부 고급진 옷을 입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흑인을 연상할 때면 칙칙하고 축축한 할렘가의 악취가 어둠과 함께 떠올려졌다. 타고난 유전자의 차이인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다.
사람의 유전은 연구하기가 까다로운 분야이다. 개체 수가 많지 않고 한 세대가 길며 형질이 복잡할 뿐 아니라 마음대로 교배하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간접적인 방법이 동원되는데 그중 하나가 쌍둥이 연구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타고난 유전적인 특징이 똑같으니 이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형질이 있다면 환경 탓이라고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유전과 환경의 차이를 연구할 때 유용한 방법이다.
백인은 잘났고 흑인은 못났다는 편협된 생각이 언제부터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걸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가지고 있는 지도 몰랐던 잘못된 생각을 일깨우며 나를 부끄럽게 했다.
우연의 산물로 얻어진 것치고는 선택된 이들이 걸어온 길이 너무 불공평하고 냉정하지 않은가. 환경으로 인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다양한 대륙의 인간들. 때로는 억울하고 심지어는 억울한 줄도 모른 채 일생을 마쳤던 수많은 영혼의 무게가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 꽤나 가까이했던 교과서류는 사회과부도였다. 세계 지도를 펼치고 나라 이름 찾기, 수도 이름 맞추기를 하며 놀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과부도를 뒤적거리며 위치를 찾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여행에 지도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두 가지 정도를 준비하면 훨씬 알차게 읽을 수 있겠다. 사회과부도와 핸드폰이다. 전자는 나라, 도시, 섬 등의 위치 찾기용이고, 후자는 용어, 인물 등의 검색용이다. 처음에는 핸드폰을 옆에 두면서 수많은 나라와 도시의 위치를 수시로 검색했는데 직접 해보니 위치 찾기에는 차라리 사회과부도가 편했다. 검색하려는 나라 하나만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 나라들의 배치도 덩달아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한글이 언급될 때에는 반가웠고 덩달아 한글의 우수성에 자부심도 느끼게 되었다. 언어라는 게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는 사실을 새삼 음미했다. 언어의 존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이 사용하던 수많은 언어의 생성과 전파와 파생과 소멸의 과정을 집요하리만큼 파헤친 작가의 집중력이 놀라웠다. 언어를 통해서도 문화 전파의 방향을 짐작하다니! 인류의 문명 정도의 메가톤급 주제를 다루려면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연결되어야 하는 걸까.
가독성이 좋아서,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벌써부터 좋았다. 한 달도 안되어 완독하게 되었다. 외국인의 저서라는 생소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정신없이 따라갔다. 마지막 참고 문헌의 기술 방식까지 흥미로웠다. 참고 문헌의 도서명과 인용된 영문은 읽지 않았지만, 문헌이나 발췌 문장을 소개하는 방식까지도 허술함이 없었다.
이런 장르의 책에 매력을 느낄 줄 몰랐다. 그만의 특이점은 과학적으로 역사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생태지리학, 생태학, 유전학, 병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냉철함과 통찰력에 속이 후련했다.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5년의 연구 결과라는 말에는 경외감까지 들었다.
2020년 6월, 서울 시장과의 코로나 관련 대담을 실은 뉴스 기사도 찾아보게 되었다. 1937년생이면 80대의 우리 부모님 정도의 연세이신데. 책날개에 실린 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맑아서 총명함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이 책을 뉴기니인 친구와 스승들에게 바친다며 그들을 혹독한 환경에 대한 전문가로 여긴 서두의 문구에서는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엿보여서 이 또한 좋았다.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하루가 담겨있는가 하면 이 책에서처럼 인류 전체의 시간이 담기기도 한다. 역사가 담긴 책을 만날 때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호흡이 느려지고 길어진다. 1만 3천 년이라니! 빅뱅 이후 흘러온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시간이지만 하루를 24시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로서 이 시간은 아득하기만 하다.
노래가 2~3분의 시간에 임팩트 있는 이야기로 쉽표처럼 짧은 휴식을 준다면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동안 식량 생산을 모두 마치고 나서 겨울철에 화롯가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로 노곤한 몸을 천천히 풀어주는 휴식에 어울린다. 크로키와 정밀묘사의 차이처럼.
1만 3천 년 모든 대륙의 역사를 700여 쪽으로 압축한 책. 캐나다의 버제스 셰일이 쪼개지면 조각조각에 숨겨져 있던 화석이 나타나듯 내가 넘어온 책장의 낱장 낱장에 화석이 담겨있는 듯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화석이랄까. 인류의 거대한 역사가 켜켜이 종이에 담겨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입체 카드처럼 펼쳐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읽고 나서 바깥으로 나올 때마다 넓어진 시야만큼 마음이 확 넓어진 듯했다. 1만 3천 년의 역사가 이 한 권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책이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적은 분량 안에 1만 3천 년이 담겨있다며 놀라는 것이 더욱 적절한 반응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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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밑에서 2째줄, p483 마지막 줄: 디프로토돈트 → 디프로토돈
p131 밑에서 5째줄: 탄소14가 붕괴되어 탄소12로 바뀌기 → ~붕괴되어 질소 14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