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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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표지. 어멋! 대놓고 짐승이래. 제목과 표지의 콜라보는 자정을 맞이한 시침과 분침인 듯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지어 이토록 든든한 분량이라니! 으흐흐. 침을 꼴까닥 삼키며 겉장을 넘겼다.

오리너구리는 오리인가 너구리인가. 오리와 닮은 부리와 물갈퀴를 지니고 있지만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르는 동물. 두 종류의 특성이 섞였다는 점에서 시조새스럽다. 분류학적으로 오리너구리는 포유류에 속하니 뒷부분에 악센트가 실리리라. 오리를 닮은 너구리랄까.

이 책의 제목을 보니 오리너구리가 떠올랐다. 인간 짐승. 오리너구리 화법대로라면 인간의 형상을 한 짐승이 되나. 불어의 어법을 몰라 당당하게 외치려니 살짝 소심해지지만, 원제의 ‘humaine’과 영어의 ‘human’을 대응시켜 직역한다면 짐승 인간인데. ‘짐승을 닮은 인간이랄까. 짐승 인간이라책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보다 적절한 제목일 터이다. 한데 뭔가 어색하다. 강조를 위해 제목을 도치시킨 걸까.

어쨌든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제목을 통해 다가오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이토록 간결하고 깊이 있는 제목이라니! 내용을 접하기 전의 이미지가 단순한 골짜기라면 내용을 지나온 다음은 태평양 가장자리의 마리아나 해구로 다가온다. 주제가 깊은 느낌표로 선명하게 찍힌다.

 

원래 등장인물들이 피 질질 흘리고, 지지직거리는 저질 흑백 TV를 연상케 하는 배경은 딱 질색이다. 취향이 아닐뿐더러 거부감조차 있다며 부르짖곤 했던 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무색해졌다. 631쪽을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유머스런 구석이 전혀 없는 범죄 소설에 이토록 몰입할 일인가! 책장이 정신없이 넘어갔다. 사전에 올라 있는 표현이 아니므로 국립국어원에서는 답변이 어려워 양해를 구하는 두 글자의 비속어와 우연히도 동음이의어인 작가의 이름. 대놓고 말하기에 주춤거리게 하는 어감이지만, 이보다 더 피부에 확 와닿을 수 있는 표현을 찾지 못해 조심스럽게 한 번만 언급하고자 한다. 이 소설, .. 흥미진진하다고.^^;;; 범죄 스릴러는 내용이 드러나면 김빠지는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소설의 내용은 되도록 배제하고 커다란 틀만 적으려 한다. 내가 졸라의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몇 가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첫째, 뻔한 전개가 아니다.

추리 애니메이션이나 어릴 때 읽었던 범죄 소설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대개 나는 술래가 되곤 했다. 나 잡아봐라~하며 작가가 곳곳에 배치한 복선을 따라가며 갖가지 추리를 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 그럴 줄 알았어!’ 내지는 ! 그 인간이 그 인간이었어?’라고. 이런 이유로 전체 열두 장 중 1장까지 읽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십여 페이지 만에 대놓고 범인이 드러나는 설정이라니! 범죄 소설에서 범인이 드러나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소신에게는 아직도 열한 고개와 오백이십 보가 남았사온데 나머지는 어찌 채우시려고?

 

둘째, 모든 서사 구조가 연결된 탄탄한 구성이다.

버릴 내용이 없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름 모를 인간들의 몰살은 제외하더라도 캐릭터가 부여된 등장인물 일곱 명이 시간 차를 두고 죽는다. 죽었는데 또 이야기가 있을까 싶으면 남아있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먹이사슬인 양 꼬리에 꼬리를 문 기차인 양. 한 명이 또 죽으면 남은 이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네버 엔딩 스토리이다. 주인공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에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사건이 마지막에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진행 중이라 끊어지지 않는 쾌변처럼 중간에 책장이 덮어지지 않는다.

 

셋째,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진다.

성선설과 성악설 중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성악설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누구나 마음 깊숙한 공간에 짐승 캐릭터 하나쯤은 품고 있다고.^^;; 이 소설만으로 판단한다면 작가는 성악설에 가까운 듯싶다. 이토록 적나라한 심리 묘사라니! 아름답기만 한 동화 속 공주 이미지의 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야수의 땀 냄새를 훅훅 뿜어낸다.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사람은 합당한 이유에서 살인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은 피와 신경의 충동 때문에, 옛날 옛적 서로 투쟁했던 기억의 잔존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강해졌다는 기쁨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이다.(p516)’ 소설 속에서는 얼핏 사이코패스가 연상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심리 묘사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진짜 저런 인물이 있을까.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다가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강남역에서 여성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범죄 행각을 벌인 20대 남성에 대한 사건(2021. 1. 30일자)이다. 술이나 마약에 취한 상태가 아닌데도 여자만 보면 때리고 싶다는 여성 혐오적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에서 소설 속 인물이 겹쳐졌다. 동물로 분류되는 인간에게 짐승의 기질은 유전자의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걸까.

 

넷째, 시공간적 배경과 사건의 어우러짐이다.

사건은 모두 기차와 연관된 공간에서 발생한다. 기차 안이거나 철로 위이거나 기찻길 주변의 집이다. 작가는 왕복하는 기차 주변의 공간을 정밀묘사로 스케치한다. 기찻길 주변의 고립된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기차를 타고 가는 인간들을 묘사한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기차 안에 앉아있는 이들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의 입장으로 보면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움직이는 그림처럼 스쳐 지나가니. 운행 시간과 계절에 따라 배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으스스하거나 평화로운 색채에 따라 사건의 긴박한 분위기는 극대화된다. 증기기관차의 운행 기작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석탄의 투입에 따라 달라지는 증기압과 속도감이 선명한 테두리가 되어 사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사건은 시간적 배경과도 어우러진다. 소설 속에서는 시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등장인물들은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시계 역할을 하는 물체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여 역을 통과하는 기차이다. 기차 시간은 사건의 긴박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이용된다.

 

다섯째, 기차에 생명을 불어넣은 점이다.

왜 하필 기차인가. 집필이 이루어진 시대적 상황을 보면 당시 기계 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던 대상 중 하나가 기차였다고 한다. 작가가 기차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차는 현대적인 문명의 상징이면서도 저돌적으로 달리는 야생적인 짐승을 연상케 한다. 인간의 짐승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대상으로 보인다. 이게 기차인지 기차의 모습을 한 인간의 모습인지 구분이 애매한 장면들이 묘사된다.

기차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뱀이 연상된다. 직장 내에서의 사이코패스를 양복을 입은 뱀이라 일컬으니 작품 속 등장인물과도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다고 판단된다. 사건의 출발점이 된 반지부터 뱀 모양이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에는 소름이 돋는다. 도시의 양 끝을 왕복하며 뿜어내는 하얀 증기, 시뻘건 석탄을 품고 달리는 기차는 설경 위에서 시커먼 뱀처럼 움직이며 동물의 본성을 지닌 인간과 동일시된다.

 

여섯째, 진실을 향하여 던지는 물음이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는 사법 체계의 비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상이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필요한 경우 그 진실을 보다 효과적으로 은폐하기 위해서였다.(p142)’ 재판 현장에서는 진실을 말해도 거짓으로 치부되는 웃픈 현상이 나타난다. 모순투성이이고 허술한 진실과 완벽하게 짜인 퍼즐 조각 같은 거짓. 이 둘의 대비가 빚어내는 아이러니는 진실이란 명제를 향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얼마나 현혹되고 있는가. 누가 봐도 범죄자 같은 사람과 어디를 봐도 범죄자일 리 없어 보이는 사람. 범인을 알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의 흐름을 바라보는 독자는 작가의 경고메시지를 분명하게 읽게 된다.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

 

일곱째, 마지막 장면이 주는 메시지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대개 방탄조끼를 입지 않은 채 총알받이가 되어도 불사신이다. 어쩌다 주인공이 죽는 작품은 잡고 있던 고무줄의 한끝이 갑자기 끊어진 듯 허탈감을 안겨준다. 한데 이 작품은 많은 인물이 죽었는데도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 분명 해피엔딩은 아닌데 팽팽하게 당겨지던 활시위에서 화살이 쏘아지면서 마무리되는 듯 깔끔하다. 열린 결말 포스를 풍기는데 그게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가면서도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군인들. 그들을 싣고 기관사도 없이 무한 질주하게 된 기차는 기계의 탈을 쓴 한 마리의 짐승을 연상시킨다. 누가 죽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달려가는 장면에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 후련하다.

 

한번 야만적인 짐승은 영원히 야만적인 짐승일 뿐이야. 훨씬 더 나은 기계를 발명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야만적인 짐승들은 그 밑에 어쨌든 여전히 존재할 텐데.(p68)’ 살인도 피도 잔혹한 묘사도 다 증발해버리고 처음 부분에서 읽었던 문장이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외설적인 묘사는 거들 뿐이다. 묵직한 해일로 다가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 평소 환장하며 읽던 장면을 너무도 가볍게 덮어버린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외설적인 내용이 무로 돌아간 듯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 표지의 그림조차 짠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웅크린 태아를 연상케 하는 뒷모습이 인간 본성에 던지는 민낯의 물음표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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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1-31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졸라는 졸라짱이라죠 ㅋㅋㅋ어색해하지 마세요...다들 그만한 표현이 없다고 할거에요.
오리너구리라, 괜찮은데요?ㅋㅋㅋㅋㅋ포유류냐, 조류냐 정체성혼란ㅋㅋㅋㅋㅋㅋ
정말 버릴내용과 장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떻게 이럴수 있는지, 재미는 재미대로, 주제는 주제대로 퍼펙트하더군요. 말씀하신것처럼 네버엔딩 스토리... 와 후덜덜합니다. 작가가 마음먹고 쓰면 계속 이어갈수도 있겠던데요...이런 책은 1000페이지여도 즐겁게 읽겠어요^^

말씀하신 성악설... 저도 요즘은 이쪽으로 기울었어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람은 선한쪽으로 변하지만, 잠깐만 풀어져도 금세 원래의 모습이 나오는 걸 자주 보고 느껴서요. 근데 작품속 고모의 딸의 행동은 100% 악일까 싶긴 해요. 동기를 알고나면 악인의 행동도 이해가 되곤 하는데, 이런 서사를 잘 다루는 작가들을 보면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한건지도 궁금하고요 ^^

이 책이 신기한게 미스터리, 스릴러, 심리, 사회소설의 복합장르를 전부 소화해냈다는 거였어요. 그중 하나만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특히 사법 체계에 대해 고발한 점은 출간 당시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을텐데, 정말 거침 없는 작가였네요. 작품속 법조인들도 짐승이나 마찬가지인듯. 무생물인 기차마저 짐승으로 살린 것을 보면 뭐 인간다운 인간이 세상에 있기나 한걸까요. 에밀 졸라는 정말 화두를 몇개나 던지는건지 ... ㅎㅎㅎ

꽤 분량이 많았는데 이틀만에 읽었다니요, 대단한 독서력이십니다. 전 죽어도 그렇게 못하거든요. 이번달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하셨네요 ^^ 제가 너무 바쁜 사람 붙들고 모임을 강요하는게 아닌건지 ㅋㅋㅋ 1월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월은 얇은 책이니까 파이팅하세요 ㅋㅋ

나비종 2021-01-31 15:58   좋아요 1 | URL
ㅋㅋㅋ그렇죠? 졸라~~ 다만 졸라를 졸라쓰는 인간들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대놓고 쓰기엔 쫌 그랬습니다. ^^; 수년 간 갈고 닦은 네이티브 억양을 소유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세염~ㅎㅎ
오리너구리를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ㅋ 스스로도 오리페이스가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정체성 혼란ㅋㅋㅋ 여기서 이리도 적절한 문구를 끄집어내시다니, 역시 물감님이십니다.ㅎㅎ

예. 저도 성악설 쪽에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험악한 뉴스들을 보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원래 저런건가 싶어서요.
음, 고모 딸에 대한 저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한마디로 ‘질투는 나의 힘?‘ㅎㅎ 억울하게 희생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오랫동안 건널목에서 일하면서 그림처럼 지나치는 풍경들에 무감각해진 것이 아닐까요.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이니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거죠. 폭설 속에서 라리종이 널브러졌을 때 그제서야 집으로 찾아온 몇몇 사람들의 실재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에 대한 연구. 맞아요. 저도 얼마나 깊어져야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으로 연결될까 대륙붕 수준의 글을 쓰면서도 매번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졸라의 졸라 대단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ㅎㅎ

동감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건드리면서도 어찌 그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방대한 깊이로 묵직한지. 처음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잘은 몰랐거든요. 갈수록 창대해지는 문장의 힘에 반해버렸습니다.
작품속 법조인들은 교활하면서도 잇속을 챙기며 꾀를 부리려는 여우 정도였을까요.
기차의 짐승화에 감탄했어요. 처음에는 방울뱀 정도의 스케일로 인식되다가 그 장면 있잖아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거대한 지네스러운 묘사요. 모든 구간에 걸쳐 발을 뻗고 누워있는 거대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순간 빅뱅 수준으로 스케일이 확 커지더라구요.ㅎㅎ
투척하는 화두마다 물에 띄운 꽃차처럼 생명력을 지니게 하는 힘. 저는 그게 탄탄한 구성력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빅픽처를 먼저 그리고 세부적인 그물로 짜고 들어갔던거죠.

이틀의 비결 알려드릴까요? 오랜 시간 단련된 벼락치기 근육의 힘이랍니다.ㅋㅋㅋ 닥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장을 펼치게 하는 놀라운 원동력이죠.^^; 사실 졸업식이 있었던 20일까지는 업무와 생기부 마무리 작업으로 정말 바빴습니다. 숨돌리고 21일부터 원래 하던 독서모임 책 먼저 읽고 하루 근무하고 작은 슬럼프 겪고 나니 오늘까지 나흘 남더군요. 분 단위로 쪼개가면서 하루 죙일 집에 틀어박혀서 밥 먹고 책만 읽었습니다. 졸라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면 어림도 없었던 일이죠.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이리 정곡을 찌르시니ㅋㅋㅋ 바쁘지만 책 읽을 시간을 버릴 정도로 바쁘고 싶지는 않습니다. 2월은 벼락치기 탈출해보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