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시쯤에 팀 회의를 했다.
팀장은 무척이나 회의를 좋아한다.
회의 횟수로는 단연 "짱".
communication 기술로는 "삐꾸".

중요한 착각도 하고 있다.
자신은 "open mind" 라나? 

이건 정말.....치명적이다.

그 흔한 공주병.
좋다.자신감을 가지고 삶을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 가끔 "따"가 되더라도.

그 흔한 왕자병.
좋다. 컴플렉스에 쌓여서 베베 꼬인 것 보다 100배 낫다.

그런데..... "open mind"라는 착각은
주위 사람들을 멍들게 한다.

주위에서 보기엔 귀를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파도 
사오정 수준이 겨우 될 것 같은데 
"open mind"라니...

울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 난 항상 열려 있는 사람이야."

차라리 태평로 노숙자 아저씨가
"난 식물과 대화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게 보다 설득력이 있을 거 같다.   
 
어제 팀 회의에서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정보공유를 한다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팀장이 말했다.
"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우리 사업부에 05년 과장 진급 대상이 5명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5명 모두가 진급할 수 있도록 상무님을 비롯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말 왜 하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지?
역시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본론은 뒤에 나왔다.

" K 대리의 경우, 내후년 진급대상입니다.
 그 동안 내년 진급 대상자들 우선으로 고과를 주느라 K 대리는 항상 C를 받아 왔습니다.
 고과가 계속 나빠서 이대로는 내후년에도 과장 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OOO상 수상자로 K대리를 추천, 선정되었습니다.
  OOO 수상자는 상금 500만원과 특진을 하게 됩니다. "

사람들 뜨악한 표정.
잠시의 침묵....

" 모두 다함께 축하해 줍시다."

힘 없고 뜨악한 박수..... 짝짝짝. 

동료가 상을 받으면 기뻐해 줘야 한다.
암..... 내 일처럼 기뻐야 줘야지.
그런데..... 난 투명인간인가?

난 영광(?)의 OOO상 수상자인 K대리와 호봉이 똑 같다.
즉, 나도 06년 진급 대상자다.
05년 진급 대상자가 5명인 덕분에 나도 쭈~욱 C를 받아 왔다.
그런데 K 대리에게 OOO상을 주고 특진까지 시키면 나는 뭐지?

나는 고과 C를 비타민 C를 선물 받듯이 감사하게 받으며
K대리를 K과장님으로 불러야 하는가?
나는 울 회사 영업사원 중 유일한 여자다.
고로 나는 쭈~욱 C를 받다가 시집가면 된다는 건가?

어제 회의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뚜껑 열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찍 퇴근했다.
오랜만에 수경이를 만났다.
대화 중에 수경이가 말했다.

수경 : 야. 내가 니 홈페이지 맨날 들어간다.
       근데....너... 글들 진짜 솔직하더라. 너네 팀장이라도 보면 어쩌려구?
       회사 사람들 안 들어 오냐?
수선 : (머쓱하게) 뭐....친한 사람 몇 명 들어오긴 하는데....
       몰라....

그렇다. 모른다.
open된 공간인 만큼 아무나 볼 수 있다.
그런데....
고과가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다. 우하하.

분노, 허탈함, 부끄러움... 이런 저런 감정들이 
엄마가 제사 음식 남은걸 처리하기 위해 끓이는
잡탕찌개처럼 막 섞여 있다.

지진과 해일로 55,000명이 죽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삶의 기반을 잃었다.
이 와중에 "No Problem!"을 되풀이 하는 Dina를 욕하며,
아픔을 함께 나누자고 외치던 수선.

그들의 그 엄청난 아픔 보다
나의 고과에 더 연연해 하며
팀장의 만행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이중성이여....

상상 속에서 난 팀장과 상무님에게
온갖 깐죽 거리는 말들을 하며
속 시원하게 따지고 안녕이라고 말한다.

현실은?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안 들어서 오전 내내 태업을 하다가
답장해야 할 수 많은 메일과 발표 준비에
꼬리를 내리며 일을 시작한다.

어제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그리고....이렇게 한 해가 지나간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4-12-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만행이로군요. 그의 처사!

자기 입으로 오픈 마인드 외치는 사람치고 정말 오픈 마인드인 사람

못 봤어요.

고과 C를 비타민 C 받듯이...

수선님의 유머는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잃지 않습니다.^^

kleinsusun 2004-12-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하도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다리가 다 저려요.

답장을 기다리는 메일들이 밀려 있는데 정말 일하기가 싫어요.

화내면 저만 손해겠죠? 기운 내야쥐.아자!


세벌식자판 2004-12-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그래도 글을 마음껏 쓰시다가 그분(?)들이 다 보면 어떻하시려구...

기분 푸세요. 저는 [내 서재] 챙겨 쓰다가 혹시나 주변 사람들과 관계있는 글을

쓰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던데...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여기를 자주 들락거리진

않을까 하구요.



아무튼 기분 푸세요~~~

kleinsusun 2004-12-2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벌식 자판님, 감사합니다.

근데요..... 은근히 그분(?) 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ㅋㅋ

야클 2004-12-2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수선님답게 Cool하게 웃고 새해 맞이하세요.  ^^

다른데 가시더라도 대한민국직장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겠어요? ^^

 




kleinsusun 2004-12-29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 또다른 그색히.....

맞아요. 어데가나 그색히가 있죠. 허무한 웃음.ㅋㅋ

바람돌이 2004-12-3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인사도 안하고 댓글만 한 두번 올린 것 같은데 쩝... 어쨌든 안녕하세요. 님의 글은 항상 생기가 넘치네요. 이렇게 열받는 상황을 얘기할 때도요.

일반회사생활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저에겐 수선님의 생활글을 보는게 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수준이예요.

전 학교에 있는데 학교라는 공간이 인간관계면에서는 1차 집단의 특징을 많이 보이죠. 아이들과는 오로지 1차집단, 동료들과는 구분지어서 1차집단과 2차집단으로 분류.

여기도 사람사는데라 님이 말하는 그런 사람들 많지만 또 좋은건 승진에 관심을 끊을 수 있다는거죠... 거기에 관심끊고 살면 내 할말 다하고 맘에 안드는 사람 형식적인 관계 유지하고 그러는게 가능하다는게 저같이 어리버리한 사람에겐 좋은곳인것 같아요. 학교는 약간 정지되어 있는 느낌이 들때가 많죠. 그리 새로운 일들이 많지는 않거든요. 일상의 반복이죠..

오늘 수선님의 글을 보니 세상이 전쟁터라는게 새삼스럽게 실감나네요

힘내세요. 세상이 치사해도 뽄대나게 이기세요. 세상이 아무리 치사해도 난공불락은 아닐거예요

kleinsusun 2004-12-3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 바람돌이님의 말을 들으니 힘이나요!!!

세상이 치사해도 "뽄대나게" 이기세요. 네, 항상 당당하게! "뽄대나게!" 살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구요? ㅋㅋ 넘 재미있는 표현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제 아침 항상 그렇듯이 겨우 일어났다.
부시시 눈을 뜨고 물을 마시러 나갔는데,
엄청난 해일로 다 떠내려간 태국 해안을 보고
아직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엄청난 지진과 해일,그렇다...대재앙이 일어났다.
갑자기 Dina가 생각났다.
Dina가 무사할까?

어제 이스라엘 거래선인 Dina가 미팅을 하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막바로 오는게 아니라 푸켓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어제 아침에 도착하는 거였다.
Dina는 2주일간 크리스마스 휴가를 푸켓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데,
하루 시간을 내어 한국에 와서 미팅을 하고 당일 저녁에 푸켓向 대한한공 직항을 타고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즉, 무박 출장(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 일을 하고,당일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빡센 출장), 보통 체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 싱가폴에 무박 출장 갔다가 몸이 망가진 적이 있다.)
Dina 아줌마(49년생이다) 참 억척스럽다.
그렇게까지 해서 올 필요 없다고 말렸는데 꼭 오겠다고 했다.

어제 아침,
TV에서 그 괴물 같은 파도를 보았을 때,
Dina가 생각났다. 무사할까?

출근했는데 Dina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다.
대한항공에 전화해보니 비행기는 떴다고 한다.
약속시간은 11시 30분.
만나기로 한 플라자 호텔까지 걸어가면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로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두리번 거렸다.
곧 Dina가 큰 소리로 날 불렀다.
" Susan ! "
우리는 hug를 하며 인사를 했다.
Dina는 걱정했던 바와 전혀 다르게 아주 유쾌한 표정이었다.
가족들은 무사하냐고 물어봤다.
자기 가족들은 다행히 해변 바로 앞 호텔이 아니라
해변에서 상당히 떨어진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은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Dina는 "No Problem!"을 연발했다.
그런데.....Dina의 " No Problem!" 을 듣고 있자니 참....기가 막혔다.
사실 화가 났다. Dina가 Buyer만 아니었으면 화를 냈을 꺼다.

No Problem이라니....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천명이 실종되고
수백만 명이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날렸는데,
가족들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폐허가 된 해안에서
가족들의 시체를 찾고 있는데....

자기랑 자기 가족이 무사하다고 그렇게 "No Problem!"을 연발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 오고 나서 상무님한테 인사를 할 때도,
팀장님하고 식사를 할 때도,
무사하냐고 물어보면,
오늘 푸켓에 다시 가도 되냐고 물어보면,
계속 " No Problem!"이라고 대답했다.

1월 2일까지 계속 푸켓에 있으면서 휴가를 "즐긴다"고 했다.
그 엄청난 재앙의 한 복판에서 휴가를 즐기겠다니.....
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하던지....
그 너무 멀쩡한 표정에 화가 났다.

어제 미팅이 끝나고 Dina는 다시 대한항공 직항편으로 푸켓에 갔다.
실종된 가족들을 찾으러 가는 망연한 사람들 외에 텅 빈 비행기를 타고.....

뉴스를 봐도 화가 난다.
2만명이 넘게 죽었다.
수천명의 실종자들에,
스리랑카나 인도 같은 못사는 나라에서
침수지역에 콜레라나 말라리아가 돌 수 있는걸 생각하면
실제로 사망자는 3만명이 넘을 꺼다.
이 판에 한국인 관광객 소식만 계속 전하는,
일본 관광객은 몇 명 죽었는데 한국은 피해가 덜하다고 말하는 태도.

나만 무사하면,
내 가족만 무사하면,
내 나라만 무사하면 No Problem인가?

정말 화가 난다.

Dina 아줌마!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
아줌마 가족이 무사하다고 해서 "No Problem"이 아니예요.
아줌마의 휴가도 중요하겠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휴가를 "즐기지" 마세요!

이 엄청난 재앙.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말레이지아, 방글라데시....
못사는 나라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아니예요.
수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를 잃고 울고 있어요.
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시체를 못 찾아 눈물을 삼키고 있어요.
한 순간에 삶의 기반을 모두 날려 버린 가난한 아시아 여자들이 울고 있다구요.

Dina 아줌마,
"No Problem!" 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파도가 집어 삼킨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해요.
Dina, Please....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4-12-2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 왈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만남이 없는 세계다. 당구공처럼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접촉만이 있을 뿐....

"No Problem"까진 많이 생각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준다해도 다시 그곳에서 휴가를 즐기겠다니 이건 정말 아니네요

님 말대로 그곳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일이라도 뭘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네요

kleinsusun 2004-12-2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어제 다시 푸켓으로 가는 Dina를 보고 씁쓸했어요.

나만 무사하면, 내 가족만 무사하면, 내 국가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들...

Dina와 그 가족들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길 바래요.

No Problem!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야클 2004-12-2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네요. 점심 먹으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해주기 보다는 파도의 높이나 해일의 속도 같은 것만 화제에 올린걸 보면요. 저도 또다른 Dina였나 봅니다.

kleinsusun 2004-12-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은 항상 저를 부끄럽게 하시는군요.

지난번엔 전갈인지 개구리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또 다른 Dina라 반성하시고.....

저도 "No Problem"에 발끈해서 Dina를 비난만 했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네요. 부.끄.러.움.

로드무비 2004-12-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나를 만나는 장면에서 박수를 짝짝짝 쳤는데......

그런데 수선님, 세상의 참혹한 일들은 도무지 종류가 끝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이런 종류의 참사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말여요.

kleinsusun 2004-12-2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도대체 왜 이런 참혹한 일들이 끝 없이 일어나는건지....

그것도 그 가난한 나라들을 그렇게 풍지박살 내면 어떻하라는건지...

스리랑카에 가 본 적이 있어요. 그 아름다운 나라가 지금쯤 얼마나 멍들었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파요.

icaru 2004-12-2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말은 그렇지만.... 참.... 이상하지요~ 희귀병은 가난한 집 치료비를 댈 수 없는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잘 생기고... 수해나 물난리도 해마다 겪는 사람들이 또 겪고....이런 자연 재해도...꼭 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많이 닥치는 것만 같아서요...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도...답답하고..슬프네요...

2004-12-28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4-12-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미국인 관광객이 몇명 죽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몇명 죽었다 하며 자기나라 사망자 수만 챙기고 있기에, 스리랑카,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10개국 이상에서 당한 "재앙"은 너무도 커요. 콜레라나 말라리아 까지 돌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이번 한 주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몸을 너무 혹사 시켰는지,
그래서 몸이 제발 신경 좀 쓰라고 반항을 하는건지,

어쨌든......아.프.다.

목이 아프다. 편도선이 퉁퉁 부었다. 심술 처럼....
열이 난다.으슬으슬 떨린다.
자꾸만 콧물이 난다.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쓸 것 같다.

아프다.
그리고...... 외롭다.

누가 만화책이랑(펑펑 울 수 있는 순정만화)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다 주면 좋겠다.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만화책을 보고 싶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참 애교가 많으시네요. 막내예요?"

난 첫째다.
딸만 셋 중에 첫째.

난 참 책임감이 강하다.미련할 만큼.
엄마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려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더 까부는 것 같다.
까불 까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촐싹거림.

아프다.
자꾸만....센티해 진다.

얼마 전에 만난 시 하나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올 겨울엔 나도
빨랫줄에 간신히 매달린 흰 치마 같은
금욕의 처절함을 해제하고
이글이글한 정사를 치뤄볼 것이다.

어떻게 - 슬픔의 체위를 바꾸면서
어디서 - 헤어지지 않을 곳에서
누구랑 - 헤어지지 않을 사내랑
왜 - 헤실헤실 웃는 아기를 가질까 해서
뭔가 꽉 잡고만 싶어서.

-<립스틱과 매니큐어> 중에서,신현림



아프다.
나도....뭔가 꽉 잡고 싶다.

아프다.
싸구려 감상이 뭉개 뭉개 피어난다. 담배 연기 처럼.

아프다.
누구한테 막 징징거리고 싶다.

아프다.
내가 밍키라면 아기로 변신하고 싶다.

아프다.
빨리 이 지랄 같은 우울함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11-2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신현림 시는 이글거려요... 해질녘 마다 아픈 몸들이 많은 걸 알고는 시집으로 내놓고... 아플때 잘 아프시구요, 낫거든 많이 즐거우시길... 즐찾하고 자주 오겠습니다~ ^^

kleinsusun 2004-11-2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근데 이 글을 보고 친구가 아이스크림이랑 삼계탕, 만화책 10권을 주고 갔어요.

감동했어요. 크리넥스 한통을 다 쓰면서 골골 거리는 토요일 오후도 아름답네요.ㅋㅋ

야클 2004-11-2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바쁘게 사셨나봐요. 푹쉬세요. 그나마 내일이 일요일이라 다행이군요. 근데.... 열나고 몸이 으슬으슬할때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세요? 신세대네요. *^^*

kleinsusun 2004-11-20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감기 들고 집에 있으면 아이스크림이 넘 먹고 싶어요.ㅋㅋ

크리넥스 한통과 베스킨라빈스 한통을 다 비우는 토요일.

프레이야 2004-11-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에 열나고 목이 타니까 아이스크림 먹고 싶겠네요. 전 억지로 따뜻한 걸 마셨지만요^^ 어서 낫기바래요. 몸이 알아서 쉬어가라고 붙잡나봐요.

kleinsusun 2004-11-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럴까....몸한테 미안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12-28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학교 땐가?

아마도 사회 시간에 1차 집단과 2차 집단에 대해 배웠다. 1차 집단과 2차 집단의 구분은 중간/기말고사,각종 모의고사 등 온갖 시험의 단골 출제문제였다.

1차집단 - Gemeinshaft(공공사회) 2차집단 - Gesellshaft(이익사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참고 : 중학교 때 공부 디따 잘했다.)

1차 집단은 구성원 간의 대면 접촉과 친밀감을 바탕으로 결합되어 구성원들이 전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집단(예:가족)을,

2차 집단은 구성원 간의 간접적인 접촉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결합되어, 구성원들은 전인격이 아닌 인격의 일부만을 토대로 의식적, 인위적 상호 작용을 하는 집단(예: 회사)을 말한다.

내가 신입사원이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97년 1월 부터 IMF가 터진 11월, 10개월 동안 난 회사가 왜 2차 집단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적어도 구성원들의 "친밀감"에 관해서는...,

우리팀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우리팀은 일명 "카츄샤"라 불렸다. 왜? 다른 팀과 달리 멋대로였다. 한마디로 "헐렁했다".

우리팀에서는 아무도 "대리님", "과장님" 이런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 "형"이라고 불렀다. (예외 : 팀장한테는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여자 사원이었던 나. 아무도 나를 "성수선씨"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 "수선아!"라고 불렀다. 오버하는 선배들은 "우리 수선이"라고 불렀다.

술먹고 지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의 지각이란 의미는 5분,10분 이런게 아니라, 오전 10시~11시를 일컫는다.)

술먹고 지각하는 사람들이 허다했는데, 별로 뭐라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였다. " 누구 아직 안왔어? " " 네.전사한 것 같은데요."

지각한 사람은 멋쩍게 들어오지도 않았고, 장렬히 전사한 지난 밤의 기억을 뽐내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들어왔다. 그리고....점심시간에 다함께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퇴근시간이 지나면 사이 좋게 사무실에 남아서 "전투 테트리스"를 했다. 비슷한 실력끼리 파트너가 되어 "전투 테트리스"를 피 터지게 하고, 어깨동무를 하고(드라마 <야인시대> 처럼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술을 마시러 갔다.

나는 최초의 여자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여움"을 받았다. 내가 가끔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하거나, 돌출행동으로 팀장을 놀라게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선배가 없었다.

그저 "허허" 또는 "하하".

그런데.... 그렇게 "단란"하던, 1차 집단의 "친근감"을 우습게 여기던, 형님과 동생들만 있었던 우리팀은 11월에 진정한 2차 집단으로 탈바꿈했다.

IMF가 터지면서, 우리팀은 "부도 사고"를 당했다. OEM(위탁생산)으로 당시 우리팀의 제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에서 부도를 냈다. 와장창.

액수가 작지도 않았다. 금액도 기억한다. 13억.

우리팀은 13억을 날렸다.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모두들(신입사원이었던 나만 빼고) 업체 찾아 가고, 감사팀에 불려가고....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감사팀에서는 왜 "담보" 없이 거래를 했냐고 추궁을 했다.

이 때, 나는 2차 집단이 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담당 임원, 팀장 다 오리발을 내밀었다. 몰랐다고 했다. (듣는 내가 더 놀랐다. 모르긴...)

그 당시 담당 과장이었던 사람은 사고가 터지기 얼마 전,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했다.

그래서.... 그 과장을 "형님"이라 부르며 시키는 일만 묵묵히 했던 대리가 "독박"을 썼다. 그 착하디 착한, 미련하기까지 했던 대리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회사 사람 모두, 적어도 우리팀 사람은 모두, 그것이 "부당한 처사"라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침묵했다.

사태는 그렇게 수습되었다.
그 때, 내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래서....회사는 2차 집단이구나....
99년에 회사를 그만 뒀다. 유학을 간다고 설치다가 얼마 안되는 퇴직금을 다 쓰고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

02년에 회사를 또 그만 뒀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설치다가 슬그머니 또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참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 가 있는 지혜, 저 멀리 마드리드에서 정신 없이 일하고 있는 소연 언니, 나의 Morrie 김영하 상무님. 모두 회사가 맺어준 소중한 인연이다.

그렇게 정을 나누고 정을 주면서, 머리 나쁜 나는 자꾸 까먹는다.

회사는 2차 집단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꾸 기대하고, 자꾸 실망하고, 자꾸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서.... 맨날 힘들어 한다.

오늘 팀장하고 면담을 하다가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쓸데 없는 일을 했는지를...

얼마 전에 <천하무적 홍대리>를 보니,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씁쓸한 내용의 만화가 있었다.

출근길의 홍대리는 갑자기 나타난 UFO에 납치를 당했다. 그 UFO는 홍대리를 대전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대전에 홀로 남겨진 홍대리. 서울까지 올라와 사무실에 출근하니 오후 네시. 지금이 몇시냐는, 왜 늦었는지 말하라는 부장의 닥달 앞에 홍대리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홍대리의 처절한 독백.
" 말하고 미친 놈 되느니...."

그래. 홍대리의 말이 맞다.
나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약지 못한 내가 바보지... 그렇게 미련하게 일하고 알아주지 않는게 서운하다고 울먹거리면 뭘 어쩌겠다는거냐?

내가 잠시 미.쳤.었.나.보.다.
욕 먹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건전한 취미생활로 날리면서 그렇게 약게 살아야지....
난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미련할까? 다시 <마피아 경영학>을 읽어야 하는걸까?

오늘의 면담은... 뭐 하나 건진게 없는 밑지는 장사였다. 바보, 바보, 바보!!! 건지기는 커녕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예수님도 유다한테 배신당했다. 하물며..... 인간이 인간한테 기대를 한다는게.... 다른데도 아니고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달라고 한다는게... 말할 수 없이... 진짜로... 진.정. 웃긴다.
우하하하하하!
회사는 2차 집단이다. 기대를 버려라!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야클 2004-11-1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페이퍼의 글과 홈피의 글들 모아서 책 내셔도 되겠습니다. *^^* 구독료는 못드리니 추천한방!

세벌식자판 2004-11-1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어째 섬뜩합니다.

역시나 사회는 무서운 곳... 그래도 뛰어들어야 하는...



에효~~~ 내일 걱정은 내일 해야지!

더마릴라 2004-11-1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회사는 2차 집단. 매번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상처입을때 '기대를 버려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저도 누군가에게는 실망을 안겨줄수도 있겠죠..

에고고.


kleinsusun 2004-11-1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 이렇게 조직생활을 힘겨워 하면서 다른 대안이 없으니 자꾸만 반복해야 하고...힘들다."

친구가 말하길.... " 매 맞는 아내들하고 같은 속성 아닐까?"

그날 친구랑 싸웠습니다.ㅋㅋ

릴케 현상 2004-11-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문입니다!
 

前 회사에 다닐 때,
"또라이" 라 불리는 여자 대리가 있었다.
( "똘아이"가 맞는 표현인지, "또라이"가 맞는 표기인지는 모르겠다. 사전에 없겠지? 아마?)

왜 "또라이"냐구?

일을 못했냐? 아니다.
낙하산이냐? 아니다.
툭하면 사고를 치느냐? 아니다.

그 여자는 명문대 출신에,
얼굴도 이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번듯"하게 생겼다.
아주 날씬하기도 했다.
영어도 잘했고, 일도 깔끔하게 잘했다.

그런데 왜 "또라이" 냐?

하나, 특이한 옷 차림.
- 그 여자는 몸에 딱 달라 붙는 가죽 바지,
회사원치고 너무 밝게 염색한 긴 머리,
아주 강렬해 보이는 날카로운 아이라인,
저런건 어디서 팔까 궁금한 희한한 색깔의 가죽 잠바
이런걸 입고 다녔다.

둘, "꼴초"였다.
- 남자는 담배를 많이 핀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기 몸에 나쁠 뿐이지...
하지만....
여자가 회사에서 담배를 피면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 보다 더 관심이 쏠린다.
그것도 회식 할 때, 팀장 앞에서 담배를 핀다면....

그 여자는 "꼴초" 였다.
절대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아무대서나 담배를 피웠다.
물론 회식할 때도 팀장과 맞담배를 피웠다.

처음엔 말이 많았지만
본인이 워낙 당당하니 그 누구도 그 여자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셋, 남자를 불러 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 회사원들이 회식을 하면 주로 고깃집에서 소주를 마신다.
술잔 돌리고,
".....을 위하여!" 제창을 하고 난리가 난다.
예전엔 등심이나 차돌백이 같은 소고기를 주로 먹었지만,
경기가 나쁜 요즘엔 주로 삼겹살을 먹는다.
그리고 어데를 가느냐?
맥주를 한잔 더 하러 가기도 하고(그러니깐 다들 배가 나오지)
노래방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단란"을 가기도 한다.

보통 영업팀에는 여자 영업사원이 거의 없다.
드물게 한두명씩 있는 팀이 있다.

"단란"을 갈 경우,
팀장 또는 주무가 여자 팀원에게 택시비를 챙겨주며,
"피곤할텐데 일찍 가서 쉬어요." 하며
평소와 다른 친절을 보인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집에 간다.

그런데 그 여자는
"단란"이건 "룸"이건 어데건 끝까지 따라갔다.
남자들이 여자를 부를 때,
그 여자는 당당히 요구했다.

"저는 남자를 불러 주세요!"

"또라이"라 불리던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짤렸냐구?
일도 잘하는데 왜 짤리냐?
눈에 튀는 일을 해도 워낙 당당하면 사람들도 할말을 잃는다.
그 여자는 일 참 잘했다.
그 여자는 지금 그 회사의 해외법인에 주재원으로 나가있다.
거기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신나게 자~알 지내고 있을 꺼다.

오늘 그 여자가 생각났다.
왜냐구?

오늘 내가 "또라이" 같은 짓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팀에서 대규모 환송회가 있었다.
내가 아끼던 귀여운 Girl들 세명이 한꺼번에 회사를 그만뒀다.

난 어제 독일에서 거래선이 와서,
그 닳고 닳은 독일 아저씨와 거의 2시간 동안 신경전을 펼친 후
비싼 일식집에서 밥을 먹고
(유럽 사람들은 스시라면 환장한다.)
환송회 장소로 갔다.

이미 사람들의 혀는 다 꼬여있었고,
냉면까지 다 먹은 후였다.

내가 도착하자 마자 2차 노래방에 갔다.
난 노래방 정말 싫어한다.
특히 회식 끝나고 가는 노래방은....
하지만 분위기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한명이 노래하면
다들 일어서서 탬버린 치고
오버하며 춤 추고, 환호하고 난리가 난다.
나도 뒤질세라 동참했다.

노래방에서 광란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집에 가려했다.
정말 너.무.도 피곤했다.

그런데...
Girl들이 나를 붙잡았다.
자기들의 마지막 날인데 어떻게 그냥 갈 수가 있냐고....
81~82년의 girl들은 나에게 나이트를 갈 것을
애원 또는 강요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girl들과 함께 나이트에 갔다.
올해 두번째다.
girl들과 나이트를 가면 인간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철인경기에 도전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
girl들은 발라드 시간에 잠시 목을 축이고,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춤을 춘다.
그것도 열광적으로....

"마지막 날"이라는 특성상,
나도 girl들의 분위기에 맞추어 열광적으로 춤을 췄다.
태어나서 스테이지에 10번 이상 나가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애들이 지치길,
"이제 그만 가요!"
이 말을 하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애들은 몸을 더 심하게 흔들었고,
시간이 갈 수록 더 신나했으며,
아무도 집에 갈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우리(차장 1명, 과장 1명, 대리 2명)는 계산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그만 가자!"

애들은 대답했다.
"먼저 가세요! 우린 더 놀다 갈께요!"

그 때 울 차장님은 이미 그 시끄러운 나이트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우린 체력의 한계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 그럼 조심해서 놀아! 너무 늦지 말고." 란 말을 남기고
나이트에서 나왔다.

그 때가 2시였다.
출근시간은 8시.
집에서 7시에 나와야 한다.

아침에 나는 필사적으로 결연하게 노력을 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달 넘는 야근으로 이미 에너지의 고갈 상태에 있었고,
그 상태에서 스테이지에 10번 이상 나가는 진기록을 펼쳤고,
심각한 수면부족에 내 몸은 일어나기를 거부했다.

나는 팀장에게 문자를 날렸다.
" 죄송합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반차를 내겠습니다.
오후에 가겠습니다."
( 소심한 성대리, 전화하기가 두려워서 문자를 날렸다.
혹시 팀장이 문자를 보지 않을까봐 동료에게 팀장이 문자를
받았는지 확인해 달라고 확인사살까지 했다. 그것도 문자로.)

그러고는 시체 처럼 잠을 잤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일어나니 15시 30분.
충격적이었다.

나는 얼른 샤워를 하고,
거의 포기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니 5시 15분 전.
꼭 내가 공장의 2교대 근무자 같았다.
들어가기가 .... 쩍 팔렸다.

엘레베터에서 IR 팀장님을 만났는데,
내가 그 때 출근하는건지 상상도 못하시고
" 외근했나봐? " 하셨다.
나는 멋적은 미소로 대답했다.

슬쩍 들어가서 팀장님 자리로 직행했다.
그리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 처럼 고개를 처연하게 숙였다.

팀장님은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하셨다.
생각보다 별 반응이 없었다.
나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내 자리로 가서 컴을 켰다.
그리고 멋적은 표정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내 앞에 앉은 친애하는 Bruce 대리님.
눈이 마주치자 의미 있는 미소를 띄우며
" Susan! 멋있어! " 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세시 반에 일어났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지 알았는데
뭐 별일도 아니었다.

난 항상 "범생이" 컴플렉스에 시달렸다.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친구들에게 잘해줘야 한다,
남보다 잘해야 한다 등등....

끝없는 "Should".
그 많은 강박관념.

그런데...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 욕 좀 먹으면 어떠냐?
가끔 미친 짓 좀 하면 어떠냐?
가끔 망가지면 어떠냐?

나도 "또라이"가 될 수 있다.
뭐 "범생이" 표가 따로 있냐?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나도 "또라이"가 될 수 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0-29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0-2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너무 예뻐요.
그 또라이라는 분 너무 멋지네요.
어젯밤의 수선님도.

겨울 2004-10-3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라이가 되신 걸 축하드려도 될까요? 작정하고 늦은 것도 아니고 늦잠이지만, 그 불안과 더불어 쾌감에 공감합니다.

kleinsusun 2004-10-3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
저의 일탈을 함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릴케 현상 2004-10-3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세상에 수선님이 이런 정도의 범생인 줄은 몰랐네요. 범생이의 삶을 알 길이 워낙 없었는데^^ 재밌어요 글도 참 잘 쓰시네요

kleinsusun 2004-10-3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범생이의 삶을 더 알고 싶으시면 연락주세요!
예를 들어 아직도 저녁을 먹고 3분안에 이를 닦지 않으면,
울 엄마가 잔소리를 해요!

릴케 현상 2004-11-17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닦기에 범생이의 삶의 단면이 있었다니...저는 이 닦으라는 말 평생 못 들어 본 것 같은데...치과에서 이를 몇 개 뽑기 전까지는 이를 닦은 기억이 머리에 입력 안 돼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