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는 2주일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0
플로리안 부셴도르프 지음, 박성원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주일 동안 '핸드폰 없이 살기'를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과감하게 2주일 동안 '핸드폰 없이 살기'를 학생들에게 제안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 의견에 동참한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아이들의 반응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제비뽑기를 통해 반은 핸드폰 없이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아이들이 핸드폰 없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핸드폰이 있는 사람과 핸드폰이 없는 사람의 차이를 통해 핸드폰이란 첨단기계에게 우리가 빼앗기는 일상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핸드폰에 의존하는 삶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하지만 핸드폰이 마냥 나쁜 것만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좋은 의도로, 좋은 일을 만들어낼 때 첨단기계가 주는 기쁨과 긍정적인 면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독일어와 음악을 가르쳤으며, 현재 베를린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과 연구 책임자로 근무중이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쓴 소설이라 학교 수업 활용도가 아주 높다고 한다. 독일의 각급 학교에서 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라는 말도 보인다. 얇은 책에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의 문화를 살펴보면 레트로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나 물건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듯 하다. retro풍이라는 것은 과거의 체제나 전통 따위에 향수를 느껴서 그것을 따르려는 복고주의를 말함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좋다는 최첨단시대에 우리는 왜 복고풍에 열광하는 것일까? 느껴보지 못한 문화이기 때문에?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와도 속내를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의 외로움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서로 만나 얼굴보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거기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마음없는 형식적인 대화가 너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인의 잣대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는 가면속의 내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누가 강요한 적은 없다. 그러니 지금의 현실과는 다르게 조금이나마 사람냄새나는 retro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더 좋아하고, 디지털보다는 아나로그를 더 좋아하는 까닭에 개인적으로는 핸드폰과 같은 첨단기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잠시라도 핸드폰과 떨어져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거나 하는 것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불안하기보다는 불편하다는 게 맞는 말일 듯 싶다. 시계 기능이나 사전기능, 음악을 듣는 기능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카톡기능도 많은 사진을 여러사람에게 한번에 보여줄 수 있어서 좋을 뿐 카톡으로 수다를 떠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출시에는 와이파이가 꺼져 있는 까닭에 문자전송이나 전화통화만 가능하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짜증섞인 목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왜 카톡을 보지 않는거냐고. 그러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다음부터 연락이 필요할 때는 전화나 문자로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민폐 아니냐고? 카톡에 글 남기는거나 문자로 그냥 전송하는 거나 도대체 뭐가 다른거지? 핸드폰도 그렇고 navigation도 그렇고 최첨단 기계들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물론 필요할 때 좋은 의도로 사용한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도 없을테지만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훨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런 책에서 주는 메세지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거짓된 세계에서 숨막힐 듯 불안하게 살고자 한다면 지금처럼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림, 조선의 586 -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586세대라는 말은 단순히 1960년대생이 아니라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운동권에 몸담았던 경우만을 지칭했던 말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세대차이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생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자녀들이 지금의 2030세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아픔은 있다. 등에 빨대를 두개 꽂힌채 살아가는 세대라는 말과 함께 끼인세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러가지로 시대의 혜택을 받기도 했겠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끼인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세대로도 그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현재 정치권을 쥐고 흔드는 586세대를 향해 일갈하고 있다. 하긴 60년대 초에 태어난 나조차도 현재 정치권의 기득권자들이 물러나 줬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저자의 말처럼 586의 나라가 되었다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불안하고 막연하기까지 하다. 마치 지금을 위해 그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무슨 보상심리에 싸여 눈에 뵈는 것없이 행동하는 저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저들의 모습속에서 조선시대 사림의 모습이 보인다는 건 오로지 저자만의 생각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무엇을 믿고 저리도 방자한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40대가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사림들과 현재의 정치인들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백퍼센트 공감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게다. 그들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40대에게 간곡하게, 그야말로 진심을 다해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혀져 책을 읽는 내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586을 조선사림의 귀환이라고 말하겠는가.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을 '후조선'이라고까지 말하겠는가.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조선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는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는 이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배웠던 조선 사림의 뒷면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유성운이란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고 나온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기자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는 걸 보면 그가 느꼈을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가 어땠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시선과 그런 안타까움이 모여 이런 책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권은 어떤가?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HELL조선이라고 말한다. 노력해도 안되는 현실앞에서 좌절하고, 웬만한 것은 다 포기해야 하는 그들을 N포세대라고도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거기에 내 집마련의 꿈까지 무너져버렸고,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말이다. 그런데도 두 눈 크게 뜨고 LH사태를 바라봐야 했고, 허울좋은 주택정책으로 인해 작은 집마저 살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을 쳐야 했다. 그래놓고는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도 안되는 충고만 지껄여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서글픈 단어가 노오~~~~~~력이란 말이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의 反面敎師 라는 옛말이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지금의 집권세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보여진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국민들에게는 임대주택도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만들어주기 바쁜 그들이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는 말에 자신있게 아니라고 말 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저들의 모습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만들어주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백성들이 문자를 알고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갖게 되면 다루기 힘들어진다는 오직 그 한가지 이유로 한글창제를 반대했으며 상업을 천한 것으로 매도했던 조선의 사대부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를 자신들만의 잔치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처연하다. 일전에 보았던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섬에 들어와 만난 청년 창대에게 자신이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해 주던 모습.. "주자의 힘이 강하구나!" 그러면서 또 이런 말도 했었다. "나는 이 가슴에 서양학을 포함한 세상을 품었건만 이 나라는 이 한가슴조차 품지 못하는구나!" 상당히 강한 느낌을 전해주었던 말이다. 이런 책을 읽게 되면 우리가 배웠던 역사가 얼마나 편협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다보면 열받는 정치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말이 길어졌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강 혁명 - 당당하고 품격 있게 나이 들고픈 어른들을 위한
김소형 지음 / 성안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세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요즘이다. 환갑의 나이면 아직 청춘이라는 말도 이제는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환갑잔치라는 말이 없어진 듯하여 하는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니 예순이 넘은 나이인데도 청년회장을 해야했다고.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돌아가신 친정엄마는 버릇처럼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었다. 사람도 물건처럼 유효기간이 있어서 적당한 때가 되면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 적당한 때라는 것이 70세정도라고. 그러면 그 말에 동의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었는데... 아프지않고 오래 산다면 그건 축복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몸과 마음으로 늙어지는 게 아닌 까닭에 오래 산다는 걸 그다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해도 일단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는 찬성이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아프지 않고 사는 건 정말 축복일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운동에 빠진 사람도 많다. 운동뿐인가? 건강보조식품은 또 얼마나 먹어대는지.


나이들면서 우리의 몸은 말한다. 젊은 시절에 함부로 대한 것에 복수라도 하듯이. 60년 가까이 사용한 몸이니 이제 슬슬 고장날 때도 되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짜증난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마음은 여전히 20대인데도.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오십견 후유증으로 고생중인 내 주변을 훑어보게 된다. 좋은 것만 찾아다니며 먹기보다는 평소에 즐겁고 편하게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육식보다는 채식, 흰밥보다는 잡곡밥으로. 한두정거장 정도는 기본적으로 걷는다. 건강보조식품에 그다지 관심도 없는데 운동조차 걷기만 하고 있으니 문제라면 문제일까? 갱년기증상의 하나라는 불면증으로 오랜 동안 고생을 하고 있지만 병원에서도 특별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형식적인 말만 늘어놓는다. 그러니 스스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노력중이다. 혈압약도 그래서 먹기 시작했다. 혈압약을 먹으면 고지혈증약도 함께 먹게 된다. 당뇨는 아직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의사의 처방이라고는 하지만 속으로 불안한 게 사실이다. 이 나이에 이걸 이렇게 먹어도 되는건가 싶어서. 아마도 이 책은 이렇게 건강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모양이다. 나이들면서 찾아오는 대표급 병마들을 앞세우고 있는 걸 보면. 숨은 당뇨라는 인슐린 저항성, 만성 위장병인 식적, 뇌속의 시한폭탄이라는 미니 뇌졸증, 갱년기증후군, 혈탁, 폐 건조증, 혈액순환장애로부터 오는 냉기, 화병, 전신 비만보다 위험하다는 뱃살, 퇴행성 관절염을 방치하면 큰 병이 되는 건강 10적이라고 말한다. 뭐 그렇게 새로울 건 없어보이지만 새삼스럽긴 하다. 늘 우리 주변에서 들어왔던 까닭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이걸 먹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는 건강보조식품도 엄청나게 많다. 저런 것들을 젊을 때부터 챙겼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말이다. 한두번 해 먹는다고 무슨 효과를 볼까 싶지만 그래도 안먹는 사람보다는 낫겠지 한다.


책속의 책으로 딸려 있는 <김소형 박사의 예방과 치유의 음식 황금비율 레시피 36>이라는 부록에서 건강청과 조제밥에 대해 알려준다. 이런 것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은 듯 하여 열거해 보겠다. 가정상비약 ‘생강청’, 당뇨에도 좋은 ‘호박조청’, 숨 면역력을 높이는 ‘무조청’, 기관지 특효약 ‘도라지청’, 맛있는 ‘아로니아청’, 활용도 만점 ‘매실청’, 환절기 보약 ‘인삼조청’, 천연 신경안정제 ‘대추청’, 새콤달콤 ‘오미자청’, 장에 좋은 수박 시럽 ‘서과당’ 등이 건강청이다. 또한 조제밥으로는 혈당 낮추는 ‘당뇨밥’, 미세 먼지 잡는 ‘방풍나물밥’,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식도염밥’, 가래, 기침에 좋은 ‘기침밥’, 식적 해소에 좋은 ‘위편한밥’, 혈압을 낮추는 ‘고혈압밥’, 냉기 잡는 ‘냉증약밥’, 피부 열 내리는 ‘아토피밥’, 굶지 않고 살 빼는 ‘다이어트밥’이 있다.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해먹었을 법한 것들로 보여진다. 과연 한의사다운 처방이다. 이런 걸 다 해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을까?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낵 인문학 - 간편하고 짤막하게 세상을 읽는 3분 지식
타임스낵 지음 / 스테이블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보고 과자이야기인줄 알았다. 과자에 얽힌, 아니면 과자와 연관있는 바삭한 역사이야기쯤? 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버린 것이다. 간편하고 짤막하게 세상을 읽는 3분 지식, 이라고 저렇게 표지에 버젓이 나와있는데도 그걸 못보고.... 커다란 과자봉지를 보여주면서 세상 편한 자세로 과자 먹으면서 보세요, 라고 하는 말에 현혹되었나? 스낵컬처Snack Culture라는 말이 있단다. 과자를 먹듯 5분~15분정도로 짧은 시간에 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뜻이란다. 한마디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인기있는 웹툰이나 웹소설, 웹드라마등이 대표적이라 한다. 일단은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친다. 다루고 있는 부문이 방대하다. 역사, 과학, 예술, 심리, 경제, 상식까지 그야말로 잡학사전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고개를 갸웃거렸을법한 주제들이다. 알아두면 언젠가 한번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


나우루 공화국에 관한 이야기는 방송에서 한번 보았던 듯 하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인구가 만명도 안되는 나라. 새똥섬이라고도 불렸으며 지폐를 휴지처럼 사용했고 모든 국민이 수퍼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유했던 나라였지만 방만한 생활태도로 인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들에게 돈이 되었던 인광석이라는 자원이 고갈되었는데도 편하게 놀고 먹던 습성을 버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우루 공화국의 최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 대부분이 예전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것도 있다. 빨대의 구멍은 몇개일까? 한번도 빨대의 구멍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보면서 함께 생각하게 된다. 0개인가? 1개인가? 2개인가? 1개이든 2개이든 저마다의 이유를 대며 설명을 하고 있는데 모두 일리있게 들린다. 그런데 누가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한거야?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이 떠돈지는 꽤나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죽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거야? 게다가 라면을 왜 수돗물로 끓이면 안된다는거야? 뭐, 이런 종류의 상식적인 이야기도 많다는 말이다. 세상이 좋아지니 사람들이 오래 살기를 원한다. 안그래도 백세시대를 살면서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태어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6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다시 깨어날 확률은 없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오호! 그런거였군. 자동차보다 빠른 기차에 안전띠가 없는 이유를 알았다. 이런 건 알아둬도 괜찮을 듯하다. 페트병 바닥에 써진 7가지 숫자라는 주제인데 그 페트병의 재질을 말하는 것으로 재활용이 가능한지, 환경호르몬이 있는지 없는지, 인체에 유해한지 무해한지 등을 알려주는 숫자라고 하니 상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으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스크림 붕어빵 싸만코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격이 싸고 양이 많고,에서 왔다고 한다. 돼지바는 그것이 만들어진 해가 돼지해였기 때문이고, 요맘때란 이름은 요거트가 반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이란 뜻이다. 원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스낵컬처라는 말도 배웠고, 어찌되었든 재미있게 읽었으니 되었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기준에 따라 지능이 높은 동물을 순서대로 말한다면 침팬지, 돌고개, 돼지, 코끼리, 까마귀, 문어, 쥐, 고양이, 개, 개미라고 한다. 이 책에서 각 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의하면 그렇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과학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개미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첫작품 <개미>는 상당한 반응을 불러왔었다. 그 때가 1991년이니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걸 보면 참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첫작품 <개미>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고양이에 관한 특성을 많이 엿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비록 인간의 기준이지만 지능이 높은 동물에 고양이가 속해있는 걸 보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싶다. 아무래도 반려동물로써 인간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동물이 고양이였기에 더욱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았을까 슬며시 짐작해 본다.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고, 테러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라는 소설의 배경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혀버린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속의 인간은 조연에 불과하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어버린 쥐와 그들로부터 인간과 고양이를 구원하여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고양이의 전쟁이다. 의인화된 동물은 너나할 것없이 인간 중심의 사회를 규탄한다. 하지만 의인화된 동물들의 마지막이 어땠는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머릿속을 채웠던 것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었다. 또한 이 책속에는 그야말로 잡다한 지식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듯 하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암컷 고양이 바스테드와 수컷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이집트 여신과 수학자의 이름이다. 이름만으로 그들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피타고라스는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실험실의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머리에는 USB를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알아낼 수 있다. 여신 바스테드 옆에서 그를 보좌하는 역할로 충분하지 않은가? 게다가 바스테드 옆에는 늘 함께하며 돌봐주는 인간 집사 '나탈리'가 있다! 전염병을 피한 소수의 인간과 고양이 무리를 이끌고 시테섬으로 피했지만 그들은 곧 쥐들에게 포위당하게 된다. 쥐떼를 이끌고 있는 쥐들의 우두머리 흰쥐의 머리에도 구멍이 있다. 그 역시 실험실의 쥐였던 까닭이다. 피타고라스보다 좀 더 넓은 지식의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흰쥐의 이름은 티무르. 중앙 아시아 최대의 정복자인 몽골제국의 티무르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는 세계사를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것처럼 쥐떼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시테섬에 갇힌 자신의 무리를 구하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섬을 탈출한 고양이 바스테드와 피타고라스, 그리고 나탈리는 과연 그들 무리를 구할 수 있을까?

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양이 바스테드는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도 구멍을 뚫었었다. 저들은 그 구멍을 제3의 눈이라고 부른다. 동물조차 인간의 지식을 모아놓은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는 설정이 조금은 우습게도 보이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만큼 잘난 존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스테드 일행이 시테섬을 나와 모진 고초를 겪는 과정이 흥미롭다. 멸망해가는 인간의 세상속에서 저들만의 무리를 지어 살아남은 존재들이 있었으니 또다른 고양이들, 개, 돼지등이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지능이 높다고 책정했던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가 실험대상 동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우두머리의 머리엔 하나같이 제3의 눈이 있었다. 인간의 오만과 교만이 반격을 당했다고나 할까? 그들은 모두 인간이 저지른대로 고스란히 돌려주기를 원한다. 마치 지금 세상을 반격하고 있는 기후처럼. 책을 읽으면서 내내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서히 파리를 점령해나가는 쥐떼의 습격앞에 처참하게 무너지던 문명의 세계와 시체더미들을 그린 장면은 페스트 그 자체였으까. 인간에게 샹그릴라나 유토피아와 같은 세계가 있기는 한 것일까? 쥐떼에게 쫓기던 저들 모두가 연합하여 싸웠지만 결국 패한 것과 같이 페스트나 전염병은 여전히 우리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이 책속에서 각 장을 이어주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중 하나라고 한다. 일곱 살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베르베르가 살면서 알게 된 지식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하니 다루고 있는 부분은 방대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게 문명은 어쩌면 희망일수도, 어쩌면 불행일수도 있겠다고. 주인공 바스테드는 꿈꾸었던 고양이만의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모든 종이 함께 소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중심의 세상이 아닌 문명을 꿈꾼다는 게 그야말로 꿈일 것만 같아 하는 말이다. 이 와중에 바벨탑에 관한 일화가 떠오르는 건 뭐지?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했던 인간들의 오만함을 심판하기 위해 신은 본래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여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야만적인 힘과 약육강식의 법칙만을 내세운다는 쥐떼들의 모습속에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인간과의 DNA 일치율이 97%라는 침팬지보다 95%에 불과한 돼지가 장기 이식 수술에 더 적합하다고 한다. 더구나 돼지는 성격도 인간과 흡사해서 가족 개념도 있으며 정을 느끼고 마음을 주기도 한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책을 읽고 딱 한문장을 더듬어가며 다시 찾아 읽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207쪽) 이 책의 제목이 문명인 것은 어쩌면 또하나의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읽게 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었지만 변치않은 그의 필력이 경이로울 뿐이다. 물론 번역의 힘도 있었겠지만. /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