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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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은 필독서처럼 읽게 되는 책이 있다. <파브르 곤충기>다. 파브르가 50세부터 92세까지 42년 동안 곤충을 관찰하며 집필했다는 책. 10권이나 되는 책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었던 듯 하다. 파브르가 곤충을 관찰할 때 길가에 엎드려 들여다보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곤충에 대한 <충선생>의 작가에게서도 그에 못지않은 애정이 느껴진다. 파브르의 곤충기는 곤충의 생김새나 일생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곤충 한마리를 예를 들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동양사상부터 세계사까지, 속담부터 사자성어까지, 아울러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약간은 색다른 주제로 다가오는 에세이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무래도 곤충의 이름으로 나와 있던 한자였다. 蟬..삶 전체가 단순함으로 만들어졌다는 곤충 매미, 蜂.. 곤충의 가장 봉우리 벌, 蝶.. 나뭇잎을 닮은 나비, 螢.. 맑고 깨끗한 곳에서만 빛을 낸다는 반디불이, 사마귀를 뜻하지만 바퀴벌레도 뜻한다는 螂, 문자를 아는 모기 蚊, 의리를 안다는 개미 蟻, 이름속에 황제를 품었다는 방아깨비 蝗, 그런데 거미이름 蛛 에는 왜 붉은 색이 들어갔을까? 이외에도 벌레충자 하나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글자가 정말 많았다. 한자속에 품은 뜻이 재미있다. 그나름대로 해석을 하며 곤충마다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정성도 대단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익선관翼蟬冠'은 매미로부터 온 것이고, 뜻한바를 향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들고 일어나는 '봉기蜂起'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벌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왔으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말 '換骨奪胎'는 나비로부터 온 말이다.

그리 오래전의 이야기도 아닌데 이 책에서 이름을 보고 무척 반가웠던 게 있다. 땅강아지다. 지금 아이들이야 이름조차 들어볼 일이 그다지 없을 땅강아지. 작가처럼 어렸을 적에 그 땅강아지를 잡아 같이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땅강아지에게 그렇게나 많은 재주가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쇠똥구리가 사라진 세상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안타깝다. 어디 쇠똥구리뿐일까? 인간의 미욱함으로 멸종되어버린 수많은 동물과 식물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땅이 없어진 대신 우리는 콘크리트와 시멘트길 위에서 산다. 그리고 수많은 질병에 시달린다. 소를 풀어놓고 키운다는 호주도 소똥처리를 위해 쇠똥구리를 남아프리카에서 수입했고 그 결과 소똥으로 망가져가던 초원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소중한 이름들은 잠자리, 매미, 꿀벌, 나비, 귀뚜라미, 반딧불이, 쇠똥구리, 사마귀, 땅강아지, 방아깨비, 개미, 거미, 지네, 모기, 파리, 바퀴, 메뚜기, 개구리, 두꺼비, 지렁이, 뱀이다. 이 소중한 이름들을 통해 들여다본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의 제목이 <충선생>인 것은 곤충으로부터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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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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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경제학이란 용어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행동속에 경제학이 숨어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걸 하나하나 따져가며 살아가기에는 너무 복잡한 세상이다. 일상적으로 경제학이란 국민소득이나 고용수준, 물가수준이 어떻게 결정되며 국민소득 중에서 얼마가 소비되고 저축되는지, 또 투자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거시경제학을 말한다고 한다. 최근 인간의 실제적인 행동을 심릭학과 결부시켜 그로 인한 결과를 연구 분석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합리성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경제적 인간을 전제로 한 주류 경제학에 한계가 있음을 발견한 심리학자들이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론 체계를 정립했다고 한다. 경제학을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은 경제학이념이 나온다. 그많은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책을 펼친 건 아니었다. 똑똑한 사람들도 비이성적인 선택을 거듭한다는 현실과 경제학 모형의 괴리를 입증하고자 했다는 이 책의 소개글때문이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사기 위해 마켓에 가면 ~990원, ~9990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게 된다. 도대체 이런 가격표를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가격표를 볼 때마다 바보취급 당하는 것 같아 껄끄러웠던 기억도 많았다. 과연 저 가격은 정직한 가격일까? 오히려 의심마저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정가제라는 걸 믿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거기에서 시작하는 심리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속에 심리전의 내막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광고 역시도 심리전이다. 광고를 하는 사람과 광고를 보는 사람사이의. 이쯤에서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과연 공정함과 합리성이 들어있기는 할까? 우리 삶의 형태는 공정함과 합리성을 갖지 못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말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공정과 합리는 우리가 꾸는 꿈의 일부일 뿐. 할인을 좋아하고 1+1 상품을 좋아하는 것은 뭔가 하나라도 손해볼 수 없다는 심리가 깔려 있을 터다. 자신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단지 할인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품을 샀다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만큼 우리는 심리전에서 밀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억지일까? 이 책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보같은 행동에 대해 단 한줄로 요약해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이처럼 책이 두꺼워지지는 않았을 거다.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용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어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다양한 실험의 예를 들어가며 자신이 연구했던 과정을 따라오라고 한다. 그많은 연구 자료를 보게 되면 모르는 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어떤 행동에 대해 원인과 결과만을 간단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쉽게 생각했다면 이 책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장황한 설명의 연속인 까닭이다.


침대보를 하나 사러 갔는데 할인행사중이었다. 더블 사이즈는 15,000원, 퀸 사이즈는 20,000원, 킹 사이즈는 25,000원이었다. 필요한 것은 더블 사이즈였지만 킹 사이즈를 사고 말았다. 왜냐하면 더블 사이즈의 가격으로 킹 사이즈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득을 본 것일까? 손해를 본 것일까? 그와 같은 사례를 이 책에서 많이 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가질 때의 기쁨과 잃을 때의 고통중에서 무엇이 더 크게 다가올까? 소유효과와 손실회피, 현상유지 편향이라는 말이 시선을 끌었다. 심리계좌와 자기통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시선을 빼앗겼다. 어려운 공부를 너무 쉽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 자책하게 된다.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리차드 H.탈러는 <넛지>의 저자이기도 하단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넛지Nudge'는 편견 때문에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들을 부드럽게 ‘넛지’함으로써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라 하는데 이 책을 읽기전에 먼저 읽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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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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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전통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찾아보면, 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하지만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 구조 또는 예술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전통은 무엇일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화나 행사, 놀이등 일정한 생활 모습이나 행동을 뜻한다고 한다. 그 비슷한 말로 풍습이 있다. 정의하자면 문화라는 게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면서 당연시 되어있는 생활방식, 즉 풍습이 아닐까 싶다. 한번 더 들여다보면 그 전통이나 풍습 모두가 문화에 속하거나 문화 역시 전통이란 말로 아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에게는 대중문화라는 말도 있다.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다녀오거나 영화나 뮤지컬 혹은 오페라등을 관람하는 것을 문화생활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화라는 개념이 바뀌었다는 말일까?


저자 태리 이글턴의 이력을 살펴보면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라는 말이 보인다. 마르크스주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마르크스주의라는 말을 찾아보면 '과학성'이니 '계급성'이니 '혁명성'이니 하는 말들이 보인다. 이 책에서도 그런 말들은 많이 보인다. 하~ 무슨 철학을 공부하자는 것은 아닌데.... 이런 생각이 덜컥 들었던 것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에 얽힌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에서다. 떠도는 지식으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아일랜드도 우리처럼 오랜 시간 영국의 식민지로 지냈다. 우리가 일제에 대항했듯 아일랜드도 끝없는 독립을 꿈꿨다. 식민지의 한이라는 공통점말고도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성도 비슷하고 대가족 전통과 자녀를 향한 교육열도 두나라가 몹시 닯았다고 들었다. 이 책의 저자 태리 이글턴이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까닭인지 많은 의견속에 그런 의식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책속에 엄청나게 많은 철학자, 시인, 문학가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이 했던 말이나 작품속의 글들이 수없이 인용되고 있다. 너무 장황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마치 교수에게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준비한 글처럼 팍팍하게 읽힌다.

어찌되었든 이 책의 주제는 문화의 개념이 아닐까 싶다. 눈을 껌벅이며 장황한 느낌의 글을 읽다가 '사회적 무의식'이란 부분에서부터 조금씩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긴 시간을 들여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이 떠올랐다. 그처럼 어떤 계층에 의해 전통인듯 아닌듯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문화인양 아주 당연시되는 과정도 분명히 있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산업화 이전까지는 문화가 문화로써의 제 모습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만나면서 오로지 '이득'만을 위하는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 문화의 개념조차 바뀌어버린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변해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문화를 평가하고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중문화라는 말은 제대로 된 말일까? 하는. 작지만 꽤나 무거운 책이다./아이비생각

인간은 서로 종이와 인장으로 묶여 있지 않다. 인간은 유사성으로, 순응으로, 공감으로 결부된다. 법, 관습, 풍습, 생활 습관끼리의 유사성은 나라와 나라 사이를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끈이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조약의 강제력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다. 이것들은 마음에 기입된 의무기 때문이다.(~84, 85쪽)

문화와 전통은 보존적 힘뿐 아니라 파괴적 힘이 될 수 있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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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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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스톡홀름의 크레디트 은행에서 6일간에 걸친 인질극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서 인질들은 묘하게도 인질범들과 정서적으로 밀착되는 현상을 보였고, 인질범들이 체포된 후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범죄심리학자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74년 2월 4일 당시 19살의 퍼트리샤 허스트는 소총으로 무장한 좌익 과격파인 공생 해방군(Symbionese Liberation Army)에 의해 납치되었다. 퍼트리샤를 납치한 SLA는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다. 두 달 후 SLA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을 습격하여 현금 및 귀중품 등을 훔쳤는데 당시 은행 CCTV에 찍힌 영상에서 소총을 들고 은행 직원과 고객들을 협박하고 있었던 퍼트리샤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한 달 후 FBI가 이들의 근거지를 급습하여 6명의 SLA 단원을 사살하자, 도주한 퍼트리샤는 타니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조직의 일원이 되었음을 밝힌다. 공공연하게 자신의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반감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오기도 했다. 납치 사건이 벌어진 지 1년 반이 지난 후 퍼트리샤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퍼트리샤는 자신은 협박을 당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 역시 그녀가 세뇌당했다고 말했지만 배심원들은 그녀에게 징역 35년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가석방 허가를 받았다. 이 실화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녀가 언론 재벌이자 백만장자의 상속녀가 아니었다면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퍼트리샤가 이후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도 쓰고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는 말에 왠지 씁쓸한 뒷맛이 전해진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말그대로 인질이 범인들에게 정서적으로 동화되어버리는 현상이다. 풍족한 집안에서 부족할 것없이 사랑을 받으며 자랐을 퍼트리샤가 SLA에 납치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세뇌되었다기 보다 인간의 본성에 의해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려고 하는 심리상태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17일 동안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쓰는 임무를 맡은 두 여자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뒷면을 한번 파헤쳐보고 싶어하는 듯 하다. 30대 미국인 진 네베바와 10대 프랑스인 비올렌은 그 사건을 다룬 기사를 하나하나 스크랩하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퍼트리샤의 심리상태를 추측해본다. 이 사건은 세뇌를 당했는지, 아니면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느낄 결말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었다면 기성사회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높다는 뜻일테니 말이다. 더구나 풍족하게 자란 백만장자 상속녀의 당당한 선택이었다면 그만큼 더 큰 파장을 불러왔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나섰을 터다. 그런데 글 속에서 세뇌를 당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이었을거라고 믿고 싶어하는 듯한 분위기가 은근하게 풍겨져 나온다. 마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이라도 있는 것처럼 페미니즘에 관한 말들이 책속에서 많이 보인다. 페미니즘도 좋고 페미니스트도 좋고 다 좋은데 제3자의 시선으로 처리된 것이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가 되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유분방한 영혼의 진 네베바와 뭔가 답답한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비올렌의 시선뿐만 아니라 마지막 부분에서 뜬금없이 또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자가 등장한다. 세대간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진 네베바와 비올렌의 경우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메세지가 있는 듯 한데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 아이비생각

스톡홀름신드롬까지는 아니겠으나 1988년 10월에 있었던 지강헌사건은 거기에 좀 가깝지 않을까 싶다. <홀리데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사건이다. 탈주범들이 일반 가정집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였지만 그들이 잡히고 난 후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有錢無罪無錢有罪' 였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인질이 되었던 사람뿐만이 아니라 많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가슴으로 느꼈을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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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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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표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최초의 도시 우르크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문명을 꽃피웠던 26개 도시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4000~1900년에 세워졌다는 고대의 도시는 이미 잘 다듬어진 터전이 아닌 곳에서 시작되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을 모아놓았다고 도시는 아니다. 다른 정착지들과 달리 도시는 인간활동을 촉진하는 곳이었다. 서로 협력하고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118쪽) 도시의 역동성은 주로 관념과 상품, 사람의 지속적 유입에 따른 결과였다. 대부분이 저임금노동자들이긴 해도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들의 인구분포율을 보면 적게는 전체 주민의 35%~51%가, 많게는 62%와 83%가 외국태생이었다는 말이 보인다.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서로의 문화에 눈뜨게 되었던 것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었다는 말일 터다. 기원전 507~30년에 만들어진 고대 도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보면 특징이 있다. 길거리 토론을 이끌어냈던 아고라는 아테네를 대표한다. 반면 알렉산드리아는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한 도시였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까지 반하게 했다는 알렉산드리아는 훗날 로마에 영향을 미쳤다. 세상의 모든 민족 출신 주민들이 살고 있는 성채였다고 표현되었다던 로마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도시였다. 배수시설이 좋지 않았던 아테네에 비해 로마는 목욕탕속의 쾌락을 즐기는 도시로 불리워졌다. 지속적인 투자와 재건 활동과 시민의식이 없으면 도시는 정말 순식간에 허물어진다.(-191쪽) 향락의 도시 로마가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새로운 도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로마가 기원전 30년~서기 537년의 도시라면 그 다음으로 537~1258년에 번성했다는 바그다드가 뒤를 잇는다. 이슬람교의 무슬림들은 로마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이 남긴 영토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중국과 인도의 변경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도시화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도시에 잘 적응했다. 중세내내 세계 20대 도시중 19개가 이슬람 도시였을 정도로 많은 교역의 중심에 바그다드가 있었다. 또한 여러 민족과 종교를 포용했던 바그다드는 부의 도시이기도 했다. 각각의 민족들이 서로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 길거리 음식을 팔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음식을 사먹는 행위가 도시 사교성의 시작이기도 했다. 길거리 음식의 역사는 도시 역사의 그 자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근대 이전에 일어난 3대 과학 혁명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알렉산드리아나 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가 바그다드였다. 그 세도시의 공통점은 새로운 관념과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바그다드도 몽골족에 의해 무너졌다. 책장을 넘기는 틈새마다 말의 어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예를 들면 'bourgeois부르주아'가 '요새'를 뜻하는 게르만의 단어 'burg'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bourgeois'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의미였다는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부르주아라는 말의 의미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부유한 도시였다해도 군사력이 없으면 경쟁도시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교황과 황제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며 군사적 측면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중세 도시들이 탁월했던 분야는 조선술이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며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간다. 도시는 주로 무역과 상인들에 의해 번성했다.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한 도시의 번영이 끝나갈 즈음에는 이미 한 도시가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도시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하나씩은 갖고 있는 듯 했다. 변화하는 도시에 맞춰 그들의 생활상도 달라졌다. 도시의 거리는 위생적으로 변했고 가정에서부터 질서와 미덕이 실천되었다. 그중에서도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청결과 위생은 까다롭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1226~1491년의 도시 뤼벡은 전쟁을 통해 자유를 얻었고, 1492~1666년의 리스본, 암스테르담은 당시의 상업과 교역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1666~1820년, 커피점들로 인해 런던은 새로운 도시가 되었다. 카페인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커피점 문화는 세련된 사교, 예의가 있는 사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상업화된 도시문화를 불러왔다. 1830~1914년, 공장이 즐비했던 공업도시 맨체스터와 시카고에는 공장노동자들의 지옥같은 삶이 있었으며 개조된 도시 파리와 뉴욕의 개조과정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때는 아시아가 서양의 도시를 따라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서양의 도시들이 아시아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말이 눈길을 끈다. 그런가하면 폴란드 바르샤바를 통해 나치에 의해 어이없이 파괴되어버리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도시는 사람들이 버리지 않는 한 다시 태어났다. 바르샤바가 그랬고 도쿄가 그랬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부서진 잔해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내어 다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서진 도시의 잔해위에 또다른 도시가 재건되었던 것이다. 신도시라는 틀에 맞춰 자급자족형 도시공동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호모 우르바누스, 즉 도시인류에 의해 동물들의 활동범위는 줄어들고 멸종위기 동물들이 늘고 있다. 인류가 숨막히는 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 고밀도지역들로 도시가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불러온 또다른 재앙이었다.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에 도심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사람들로 인해 심각한 기후변화를 초래했다. 도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모든 것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물론 인류가 만들어낸 도시에 나름대로 정착하여 삶의 기로에서 벗어난 동물도 있긴 하지만 도시화되어가는 동물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건축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불러왔다. 기후를 생각하여 변화를 추구하는 도시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미미한 단계에 불과하다. 우리의 '청계천'과 '서울로7017'이 하나의 예로 들어진 것이 조금은 특이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그만큼 녹색도시를 만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멀리 돌아와 인류도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버린게 아닌가 싶다. 도시를 통해 인류의 문명사를 쫓다보니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그 두께에 깜짝 놀랐다. 도시의 생성과 번영, 그리고 몰락의 길을 돌아보면서 살짝 지루한 감이 있긴 했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들의 모습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도시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는 말에 어느정도 공감하게 된다. 많은 시간을 들여 읽긴 했지만 흥미로운 주제였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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