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세계문학 5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제목을 보면 이 책속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 뻔한 주제를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했다. 동화처럼 순수하게 그렸을까?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아버린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라는 저자의 이름이 낯설어 찾아보니 프랑스 출신의 독일 작가라고 한다. 책의 소개글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환상소설이다. 페터 슐레밀이라는 남자는 회색빛 코트를 입은 사람이 주머니에서 무엇이든지 꺼내는 것을 보게 된다. 망원경부터 양탄자, 심지어 말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꺼내는 모습이 처음엔 신기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두려움이 느껴져 페터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회색빛 코트를 입은 사람이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페터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의 주머니안에 있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으니 그 대신 당신의 그림자를 팔라고. 그의 제안에 페터가 선택했던 것은 마법의 돈주머니였다. 그림자를 판 대가로 엄청난 재물을 갖게 된 페터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면 살게 된다. 그러나 그림자가 없는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그는 당당하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이다. 돈은 많지만 단지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고통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자 그는 다시 그림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색빛 코트를 입은 사람을 기다린다.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페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나게 된 그 사람에게 페터가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말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저는 보잘것없는 악마입니다. 탁월한 기예를 주어도 친구들로부터 배은망덕만을 되받는 학자이자 물리학자처럼 보이는 그런 악마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약간의 실험을 즐기는 것 이외에는 이 지구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즐기지 않는 악마입니다." 그리고 그 악마는 페터에게 다시 제안을 한다. 어쨌든 당신의 그림자를 돌려드릴테니 여기에 서명을 하시겠습니까? 페터는 두번째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소설은 페터의 두가지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고뇌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는 것,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두번째 삶을 보면서 환상적이라기보다는 조금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살짝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자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나서야 어쩌면 그의 자전적 소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샤미소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귀족의 특권을 박탈당해 베를린에 정착하게 된다. 그 후, 아버지는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아들은 독일인으로 남았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던 샤미소는 포로에서 풀려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부모는 죽고 그의 성은 폐허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독일인으로 대했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간 샤미소는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당시 <그림자 없는 사나이>의 원고를 친구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몇년 후, 샤미소는 러시아 북극 탐험선에 승선하여 대항해에 나선다. 그때의 모든 일정들이 페터의 두번째 삶에 그려지고 있다. 날아다닐 수 있는 장화를 얻게 된 페터의 바쁜 일상으로. 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식물학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어찌되었든 뻔한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이 이채롭게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꽃, 어디까지 알고 있니? - 꽃쟁이 혁이삼촌이 들려주는 풀꽃들의 새로운 비밀
이동혁 지음 / 이비락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봄이 오면 괜시리 흥얼거리게 된다. 좋아하는 색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이기도 하고.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연녹색을 엄청 좋아한다. 이제 막 움트는 새잎의 색깔, 그 연녹색을 보면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 때도 있다. 잎이 그런데 하물며 꽃이야 말해 뭐할까. 계절에 맞게 피는 수많은 꽃을 보면서 저마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생각, 한번쯤은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까? 한때는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 식물도감을 옆에 끼고 살기도 했었다. 다만 우리가 그 이름을 모를 뿐이지 세상에 잡초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책을 받고 잠깐 품에 안아보았다. 너무나 좋아하는 풀꽃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벅차올라서. 이 책속에는 산에서 만나는 풀꽃, 들에서 만나는 풀꽃, 물가와 바닷가에서 만나는 풀꽃, 그리고 마당에서 만날 수 있는 풀꽃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또한 풀꽃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어쩌면 한번씩은 스쳐갔을지도 모를 풀꽃의 얼굴을 보면서 그 때 내가 너의 이름을 알고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보다 잎이 노루를 닮아서 노루귀, 꽃보다 꽃봉오리가 족두리를 닮았다는 족도리풀, 한국의 에델바이스라는 산솜다리는 산에서 만나는 풀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특산식물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소중한 한국식물임에도 일본인에게 이름을 빼앗겨 버린 금강초롱꽃의 아픈 역사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앞서기도 한다. 옛날에 임금이 죄인에게 내렸던 사약의 원료가 투구꽃이었다. 보통 우리는 死(죽을 사)藥으로 알고 있지만 賜(줄 사)藥이 맞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뚱딴지라는 풀꽃의 이름을 보면서 그에 못지 않게 특이한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어본다. 세상에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이제 벚꽃 시즌이 끝나고 철쭉이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산책하기 좋은 날, 천천히 걸으면서 눈을 맞추며 이름 불러 줄 친구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민들레, 제비꽃, 애기똥풀, 달개비, 괭이밥, 마타리.... 여기저기서 보라색 제비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제비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가끔은 부르지 않아도, 가라고 하지 않아도 때맞춰 오고가는 계절이 신비롭기도 하다. 산책을 하면서 많이 볼 수 있는 가시박은 더이상은 어떻게도 할 수 없이 번져버린 외래식물이라고 한다. 단풍잎 돼지풀과 막상막하라는데 돼지풀보다 더 강한 놈이라 아주 골치 아프다고 하니 생태오염이 아닐 수 없다. 7월 중순쯤이면 물가를 화사하게 수놓는 연꽃들. 연꽃 구경을 그리 많이 다니면서도 대부분이 미국연꽃이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진을 통해 한국연꽃을 보았다. 저리 예쁜 꽃을 볼 수 없다니. 게다가 한국연꽃을 아예 볼 수 없다는 말에 서글픔이 앞선다.

저자는 국립수목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안도현 시인에게 ‘시 쓰기와 시 읽기’ 수업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풀꽃, 나무 이름을 공부하다가 본격적으로 식물 공부 및 사진 촬영 길을 걷게 되었다는 말도 보인다. 역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일맥상통하나? 작품도 많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야생화 바로 알기>, <한국의 나무 바로 알기>는 한번 보고 싶다. 수목원과 식물원을 많이 찾아다니고 있지만 더 많이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 방송국 PD의 살아 있는 인문학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천형(天刑)을 받은 시시포스가 불행한 이유는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시시포스에게 오늘은 파란 공을, 내일은 노란 공을 들어 올리라고 했다면 아마도 덜 불행해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시시포스의 불행은 돌을 들어 올리는 힘든 노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시포스는 불행의 근원인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즉 ‘변화’를 위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의사가 있는 걸까? 러셀은 “그렇다”라고 답하고 파스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결정이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물론 정답은 시시포스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45쪽)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에게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저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느낌을 불러온다. 공연스레 책제목에 딴지를 걸면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인간인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마도 생활밀착형 성찰이라는 말이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게다가 방송국 피디가 쓴 살아있는 인문학이라고 하니 상당히 매혹적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인문학이라는 건 뭘까? 인문학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사람에 관한 학문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 것은 사람과 연관되어져 있는데 어째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난 것인지 그게 또 궁금하다. 그저 말하기 좋아하고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을거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피식거린다. 책을 펼치기 전 책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온갖 형식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적어도 생활밀착형 성찰이니까.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불편해하는 사실들이다. 삶의 여정에서 큰 일을 몇 번 겪으면서 휴대전화의 연락처가 줄어들었다. 그냥 '아는 이름'들은 그 때마다 지워버렸던 까닭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늘 '언젠가는'이라는 말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듯 하다. 언젠가는 쓸지도 몰라,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몰라, 언젠가는... 그래서 버리지 못하고 지우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꼭 필요한 것들만 곁에 두고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1장에서 바라본 사람의 거리라는 주제가 많은 화두를 던진다. 인문학이 인간의 가치와 표현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으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문학이나 역사도 만날 수 있고 아주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인간의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자신과 타인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방면에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묻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했겠느냐고. 상처를 받은만큼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진실보다는 거짓을 더 많이 앞세웠을 것이다. 생각과 말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존재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자신에게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은근히 즐기는 인간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알고 있는가? 인간의 관음증은 고대로부터 있어왔다는 걸. 수많은 욕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도 드러낸다. 이쯤에서 한국만큼 찰진 욕을 쓰는 나라도 없다는 말이 떠올라 실소를 터트린다. 어김없이 신에 대한 물음도 던지고 있다. 탈종교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과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지만 그 의미조차도 무의미하다는 말은 한번 더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인간의 죽음은 태어남과 함께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는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책을 덮으며 묻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왜 우리는 시시포스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찌보면 인간은 완벽하게 세뇌당한 채 살아가는 존재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지음 / 북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년 전 너희 삼인방이 한 짓을 이제야 갚을 때가 왔어.' 죽은 자의 입속에서 쪽지가 발견되었다. 도대체 누가? 왜? 선혁은 긴장한다. 그리고 다시 떠올린 9년 전의 사건. 그 때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야영을 온 다른 학교 학생을 겁주다가 싸움끝에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냥 지갑만 빼앗으려고 했을 뿐인데... 그리고 그 시체를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렸다. 이미 9년이나 지난 일을 우리말고 누가 또 알고 있다는 말인가. 고등하교 2학년, 원택과 필진 그리고 선혁은 삼인방이라고 불렸다.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기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학창시절이었다. 그 삼인방중에 원택이 죽었다. 그리고 발견된 쪽지. 불안감에 선혁은 필진과 만나기로 하지만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서 선혁을 맞이한 것은 필진의 시신이었다. 다시 발견되는 쪽지, '이제 한 명 남았다.' 선혁은 그 한 명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살기 위해 살인자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번의 살인이 또 일어났는데 자신은 살아 있다. 무슨 일일까? 어김없이 발견된 쪽지, '한 명이 더 있었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를 만든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말하곤 한다.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고. 남들은 용서한 일이지만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그 일에 치여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월이 약일 때도 있지만 때로 세월이 독이 될 때도 있다는 말이다. 과거의 일로 인해 현재의 삶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이 책속에서 보게 된다. 지옥이라는 말이 이럴 때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범인을 찾아내려 하지 마라. 조여오는 몰입감을 따라가다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될테니. 책을 읽고 저자의 프로필을 찾아보았다. 상당히 많은 작품이 보여 놀랐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개글이 눈길을 끈다. 2012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백일청춘>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내가 죽였다>, <더블>, <유괴의 날>, <구원의 날>, <홍학의 자리>, <선택의 날>등 작품중에 굵직한 공모전의 대상이 많은 것도 이채롭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누가 죽였을까? 라고 시작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보통의 미스테리 소설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범죄 현장이 발견되고 이런 저런 실마리를 펼쳐놓으면서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누가 죽였을까요? 를 묻는 게 맞다. 그런에 누굴 죽였을까? 묻고 있다니 조금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어떤 구성은 도입부에서 이미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지만 또 어떤 구성은 가장 마지막에 범인을 밝힌다. 아니면 그럴듯한 반전으로 뜻밖의 범인을 드러내기도 하고. 하지만 이 소설은 굳이 범인을 알아내려고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이미 읽으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또 스스로 묻게 된다. 누굴 죽였을까?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껄끄러운 모든 일에 남의 탓을 해 보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죽이는 것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미터가 우리한테는 그저 열 발자국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작은 곤충에게는 그야말로 구만 리 같은 길일 겁니다. 게다가 시력이 탁월해서 7미터 전방을 내다보면서 “저기 있네” 하고 직선으로 달려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곤충은 양쪽에 있는 식물들을 먹어봐야 해요.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면서 가야 하는 거예요. 굉장한 시간이 걸리겠죠. 그동안 그 곤충이 먹어 치운 그 식물은 또 이파리를 내고 생장합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자연계의 다양성이 일단 확보되면 그게 유지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237~238쪽)

통섭統攝....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 라는 의미라 한다.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을 저술한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사용한 'consilience'를 그의 제자인 이화여대 교수 최재천이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한다. 우리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심비우스'가 되어야 한다고. Homo symbious, 공생하는 인간을 말한다. 슬기로운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그 슬기로움으로 스스로를 묶어버린 꼴이 되어버린 영장류, 인간. 이 지구상에서 이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 누군가는 말한다.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라고. 뭣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말에는 백퍼센트 공감한다. 최재천교수의 말처럼 기후변화와 지구상의 생물들을 멸망에 이끌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다른 생물종과 함께 공생하고 협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작금의 우리를 보더라도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생물의 다양성은 고사하고 인간끼리의 다양성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기심과 오만함이 온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생각이 다르면 적이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가까스로 그 엄청난 공포에서 벗어난 개미들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둥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28~29쪽)

개미들은 불타는 통나무로 왜 돌아갔을까? 애벌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희생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그 희생을 치뤄야만 한다고. 후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는 희생해야만 한다고. 얼마전 우연히 본 기사에서 저자의 말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그 말에 동의 한다. 작은 생명체들도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낳지 않는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래서 저자는 또 일갈한다. 환경을 지키는 일만이 지금의 우리가 살 길이라고. 그럼으로해서 다양한 생물들과 공생할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기후 현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내 손에 쥐어진 편리함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앞만 보고 달려가게 만든 경주마처럼.

최재천 교수는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다. 저자 소개글을 보면 이렇다. 거의 알려진 바 없던 '민벌레'를 최초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연구한 찰스 다윈의 성선택 이론부터 곤충에서 시작하여 거미, 민물고기, 개구리를 거쳐 까치, 조랑말, 돌고래, 그리고 영장류까지 전 생명의 진화사를 인문학과 아우른다고. 저자는 묻고 있다. "인간이 이 지구에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래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최재천 교수가 걸어왔던 발걸음의 흔적이다. 앞서 했던 저자의 강연들과 열림원 편집부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입부를 지나면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치 그의 강연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만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결국 저자의 말은 간단하다.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게 아니다. 모든 생물과 함께 공생하고 협력할 때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거였다. 편리함과 이익만을 따지지 말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가야한다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친 사회는 결국 오래갈 수 없다고.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잡지 못하고, 또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너무 많은 비와 눈이 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작금의 우리가 진짜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책을 읽고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