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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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한다.(-355쪽)

정말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에는 숨겨왔거나 몰랐던 자신의 본 모습이 그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을 가려줄 장막이 걷히고나면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오죽하면 힘든 일을 겪어봐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생겼을까? 이 소설의 탄생배경이 시선을 끌었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의 기억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은 주제가 추운 날씨처럼 살갗을 파고 든다. 뭔가 아릿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라면, 만약에 당신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느냐고. 평소에는 한가족처럼 지냈던 두 가족이 겨울 스키 캠핑을 떠난다. 그리고 얼어붙은 도로는 그들을 참혹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교통사고로 인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핀'이 그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운전을 했던 아버지는 중상을 입게 된다. 열명의 인간과 한마리의 개... 날씨는 급격히 추워지고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추위를 막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다.


죽은 '핀'의 입을 통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가장 먼저 구조요청을 하러 가겠다고 나섰던 사람은 언니의 남자친구였다. 냉철한 성격의 엄마는 모두 모여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언니마저 남자친구를 따라 나선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엄마가 결국 카일과 함께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떠난다. 그들은 과연 어둡고 추운 숲을 벗어나 구조요청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남은 사람은 다시 찾아올 밤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버지는 희미한 입김만으로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고 혹한의 추위를 생각치못한 '모'의 옷차림으로는 그 밤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 자신에게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는 한켤레의 장갑과 어그 부츠를 향한...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절박한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과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생각할 수 있을까?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양심에 자신을 맡길 수 있을까? 나보다 힘겨워보이는 상대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겨우 하룻밤뿐이었는데도.


삶은 순간순간의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살아갈 정신적 삶의 안위가 결정된다. 그 선택의 순간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은 길게 지속되고, 부끄러운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만회할 '다음'이란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옮긴이의 말)

이 소설은 절박했던 순간보다 구조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자신의 모습에 힘겨워하는 심리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 순간에 자신이 했던 선택으로 인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두 가족의 모습속에서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고 이전부터 곪아있던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죽을지도 모를 상황속에서 나의 가족보다 먼저 남의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작가는 친구 엄마의 입을 빌려서 누군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하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었는데 어째서 내 딸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얼었는데 당신의 딸은 멀쩡한지 나는 그게 궁금하네요... '핀'의 이모를 향한 '모' 엄마의 원망 섞인 목소리는 가슴 한쪽을 송곳으로 찌르듯 저릿한 아픔이 느껴지게 한다. 특별하진 않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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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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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정말 여자 아이의 이름인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꽃이름이라고 나온다.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우리가 흔히 루드베키아Rudbeckia라고 부르는 꽃이다. 루드베키아가 가득 피어있던 들판을 본 적이 있다. 꽃의 화려함이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그 꽃들 속에서 16세의 테사가 발견된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들의 뼈와 함께. 그것도 산채로. 텍사스의 어느 지역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다. 발견된 테사는 자신이 왜 거기에 버려져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뼈들과 유일하게 살아남은 테사. 사람들은 테사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고. 단지 테사를 발견했던 곳에 그 꽃이 많이 피어있었다는 이유만으로. 16세의 테사는 이제 성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버릇처럼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았다. 이 책은 범인을 찾는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는 걸. 열린 결말처럼 보이지만 왠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마치 진짜 범인이 과연 누구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듯이. 전체적인 이야기는 현재의 테사와 16세의 테사가 함께 범인을 향해 달려가는 구성이다. 상당히 촘촘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현재의 테사가 범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16세의 테사는 범인을 가두기 위해서 존재한다. 뼈들과 함께 발견된 16세의 테사는 정신과의사와 상담을 하며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테사의 증언으로 범인은 감옥에 수감되지만 현재의 테사에게는 다시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가 그녀의 침실 창 아래쪽에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을 잘못 잡았다는 뜻일까? 테사의 증언으로 사형수가 되어버린 그 남자가 정말 범인이 아니라는 말일까? 이야기가 새끼줄처럼 꼬인 것도 아닌데 왠일인지 주변만 뱅뱅 돌고 있는 느낌이다. 책의 장르가 스릴러로 분류되어있지만 팽팽하게 긴장된다거나 어떤 두려움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범인의 윤곽이 밝혀지는 순간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크나큰 반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마무리한 듯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도대체 왜?


현재의 테사는 어쩌면 자신의 증언이 엉뚱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향한 의문의 협박과 같은 일들로 인해 끝없이 고뇌에 빠진다. 현재의 테사와 함께 하는 변호사 빌과 법의학자 조애나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법의 의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들, 심리적인 면에서 바라보게 되는 인간의 단면들... 기억은 때로 조작되어지기도 한다. 뇌의 착각에 의해. 혹은 주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뇌의 보호장치에 의해. 현재의 테사와 16살 테사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에 답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러나 우리는 가끔 망각한다. 때로는 우리의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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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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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경영학을 전공했다.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책 기사를 주로 썼지만 학창시절에 관심이 많았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하게 이어와 2011년 결국 문화재 기자가 되었다. 박물관과 유적지 답사를 다니며 얻은 지식과 체험을 바탕으로 칼럼도 쓰고 책도 출간했다. 현재도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는 그의 저서를 살펴보니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한국사 스크랩>등 다양한 역사 교양서가 있다고 한다.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일으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박종인의 땅의 역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부러 찾아보았던 프로중의 하나였는데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기자의 발길이 참 좋았었다. 그 프로를 보고 찾아갔던 유적지가 꽤나 있다. 흥미로운 예능의 형태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속에서 유추해보는 우리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프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우리 문화유적 발굴 역사 최대의 오점이라는 무령왕릉 출토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연히 발견되어 우리의 앞에 모습을 보였던 무령왕릉을 발굴하는 현장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또한 관리 부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반구대 암각화를 보며 옛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백제의 뛰어난 예술미를 지녔다는 '금동대향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재가 보인다. 논산의 관촉사를 찾아가면 볼 수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니 반가웠다. 그 외에도 고려불화나 고려청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고려불화는 세계에 160점이 남아있다. 그 중 130점이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는 13점밖에 없다. 오래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전을 보았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세번을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해설사에 따라 그 느낌이 달랐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었다. 그 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작기법도 특이하지만 비단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선명한 색채감이나 그 섬세함은 정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국보'다. 우리나라의 국보1호는 숭례문이다. 그런데 왜 국보와 보물이 다를까? 국보의 뜻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우선 만들어진 지 오래되고 그 시대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 제작 기술이 우수하며 흔하지 않은 것, 이름난 사람이 만들었거나 유서가 깊은 것, 역사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국보로 지정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제가 우리의 문화재를 상대적으로 낮춰 보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지정된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 번호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일제의 흔적이라고 본다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옳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국보에 붙은 숫자 1, 2, 3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은 해도 줄세우기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1호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숭례문이 국보1호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2호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점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문화재에 얽힌 옛사진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초 불국사 3층 석탑의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 4~6세기 야마토 시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의 증거를 찾기 위해 가야 유적 발굴에 혈안이었던 일제가 조선인 인부를 동원해 고령 지산동 고분군 22호를 발굴하는 모습, 일제강점기 경복궁 경회루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과 향원정 연못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석굴암 본존불의 무릎에 올라가거나 첨성대에 개미처럼 들러붙어 사진을 찍은 사람들과 탑평리 7층석탑위에 올라가거나 기단위에 참깨를 말리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1910년 벼락맞은 미륵사지 석탑이 무너진 모습도 그랬다. 미륵사지 석탑도 석굴암도 시멘트를 발라놓은 일제에 의해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모습을 찾아주어야 할 우리의 문화재는 아직도 많다. 신윤복의 호 '혜원'에 얽힌 이야기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혜원'은 '혜초정원蕙草庭圓'을 줄인 말인데 혜초는 콩과 식물로 여름에 작은 꽃이 피는 평범한 풀이라고 한다. 스스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를 빗댄것이라고 하니 그 시절 혜원이 가슴에 품고 살았을 한이 느껴진다. 당대에는 무명화가에 불과했던 신윤복이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일제에 의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재미만을 앞세우는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사찰 직원이 훔쳐 달아났다가 되찾았다는 국보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과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부석사 전설속 선묘낭자의 모습을 실제로 한번 보고싶다. /아이비생각



이 책은 우리 문화유적 발굴 역사 최대의 오점이라는 무령왕릉 출토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연히 발견되어 우리의 앞에 모습을 보였던 무령왕릉을 발굴하는 현장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또한 관리 부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반구대 암각화를 보며 옛문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백제의 뛰어난 예술미를 지녔다는 '금동대향로', 세계 최고의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재가 보인다. 논산의 관촉사를 찾아가면 볼 수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니 반가웠다. 그 외에도 고려불화나 고려청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고려불화는 세계에 160점이 남아있다. 그 중 130점이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는 13점밖에 없다. 오래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전을 보았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세번을 가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해설사에 따라 그 느낌이 달랐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었다. 그 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작기법도 특이하지만 비단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선명한 색채감이나 그 섬세함은 정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국보'다. 우리나라의 국보1호는 숭례문이다. 그런데 왜 국보와 보물이 다를까? 국보의 뜻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우선 만들어진 지 오래되고 그 시대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 제작 기술이 우수하며 흔하지 않은 것, 이름난 사람이 만들었거나 유서가 깊은 것, 역사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국보로 지정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제가 우리의 문화재를 상대적으로 낮춰 보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지정된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 번호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일제의 흔적이라고 본다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옳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국보에 붙은 숫자 1, 2, 3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은 해도 줄세우기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1호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숭례문이 국보1호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2호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점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문화재에 얽힌 옛사진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초 불국사 3층 석탑의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 4~6세기 야마토 시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의 증거를 찾기 위해 가야 유적 발굴에 혈안이었던 일제가 조선인 인부를 동원해 고령 지산동 고분군 22호를 발굴하는 모습, 일제강점기 경복궁 경회루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과 향원정 연못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석굴암 본존불의 무릎에 올라가거나 첨성대에 개미처럼 들러붙어 사진을 찍은 사람들과 탑평리 7층석탑위에 올라가거나 기단위에 참깨를 말리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1910년 벼락맞은 미륵사지 석탑이 무너진 모습도 그랬다. 미륵사지 석탑도 석굴암도 시멘트를 발라놓은 일제에 의해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모습을 찾아주어야 할 우리의 문화재는 아직도 많다. 신윤복의 호 '혜원'에 얽힌 이야기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혜원'은 '혜초정원蕙草庭圓'을 줄인 말인데 혜초는 콩과 식물로 여름에 작은 꽃이 피는 평범한 풀이라고 한다. 스스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를 빗댄것이라고 하니 그 시절 혜원이 가슴에 품고 살았을 한이 느껴진다. 당대에는 무명화가에 불과했던 신윤복이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일제에 의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재미만을 앞세우는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사찰 직원이 훔쳐 달아났다가 되찾았다는 국보42호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과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부석사 전설속 선묘낭자의 모습을 실제로 한번 보고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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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축의 전환 -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
마우로 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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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풍족하게 살 확률이 50퍼센트뿐인 최초의 세대"이며,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경제상황속에서 이들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100쪽)

많은 정치가가 이제 노년층이 자신의 앞날을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60세이상의 노년층 숫자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특히 X세대와 밀레니얼세대등 젊은 납세자들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연관시키기 시작한다면 말이다.(-98쪽)

놀랄 것도 없다. 좌절할 것도 없다. 이미 우리 앞에는 그런 세상이 펼쳐져있으니까. 오래전부터 우리가 예상했던 것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출생률이 늘어나는 것도 출생률이 줄어드는 것도 사회적인 현상이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했던 것이 정부의 역할이었을 뿐. 솔직하게 말해 지금의 세상은 젊은세대에게 아이를 낳아 키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세대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그 바뀐 세상의 사회나 문화는 그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세대에 맞춰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지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세대간의 격차를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흥미있는 것은 정부의 많은 혜택과 복지정책이 있다면 아이가 없는 성인보다 아이가 있는 성인이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만 보더라도 젊은 세대가 아이를 싫어해서 출생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결과로 노년층이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인데 그것을 정치가들이나 세상을 이끈다는 소수의 집단에서 몰랐을까? 해결책이 없어서 매일처럼 이러니 저러니 문제점만 들춰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바라보는 미래는 같을 수 없다.


기후변화가 멈추지 않으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800만 가지 동물과 식물의 종들 중 100만 가지이상의 종이 향후 몇 십년 만에 멸종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기온이 오르고 있으므로 도시거주자들은 지옥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195쪽)

전세계의 많은 거대 도시가 비인간적이고 영혼이 없으며 소외된 곳으로 바뀌고 있다.(-197쪽)

게다가 도시는 탄소가스배출의 주요 원인이고 기후변화와 물부족 현상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214쪽)

도시 인구의 폭발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움직임이 없는 도시라는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 2030년이 되면 기아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보다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말은 이미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비만인구가 불러올 각종 질병들에 대해, 그들이 불러올 사회적인 변화가 여성들과 빈곤층에게 좀 더 강력하게 미칠 것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움직임이 없는 도시를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지독한 자본주의에 치우친 우리의 현실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움직임이 없는 사회도 비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도 모두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을 포기할 수 없으면서 늘 이렇게 한탄만 하고 있다면 2030년이 되어도 세상은 똑같을 것이다. 공유경제의 예로 들었던 우버나 에어비앤비를 보면서 얼마전 보았던 다큐가 생각났다. '플랫폼'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허울좋은 겉모습속에 감춰진 현대인들의 아픔을 깊이 들여다 본 프로그램이었다. 공유경제는 이 세상을 더 평등하게 만들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공유경제가 불러온 불평등의 속내를 이 책은 외면하고 있다. 지금 당장 한국의 배달업만 하더라도 AI의 횡포에 허덕이는 현실을 볼 수 있는데. 자동차 공유는 환경 파괴로 인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공유해야 할까? 단순히 소유하기 위해 자동차를 가진 사람과 삶의 방편으로 차를 움직이는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기분이 더 좋아질까? 연결을 통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까? 알 수 없다.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으며 그들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여기서 우리는 '플랫폼'의 역기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다수의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양 선전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소수만 배부르게 하는 기능일 뿐이다. 지금보다 더 심한 불평등의 세상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여성들이 식료품과 식품의 낭비를 줄이면 전세계의 탄소가스 배출을 10퍼센트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옷을 버리는 여성의 대부분이 입지도 않은 옷을 버리지는 않는다. 극히 일부의 여성들에 한한 일을 마치 대부분의 여성이 그런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도 억지스러운 일임에 분명해 보인다.


탄소발자국은 친환경적인 측면에 신경쓸 때만 줄어들 수 있다. 미국의 거대 디지털 기업들은 대부분 자사의 자료보관소를 태양광 및 풍력 발전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340)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미국의 대통령은 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를 했는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3D 프린터를 갖고 있는 세상에는 파리기후협약이 필요없다' 가 아니라 그럴수록 기후협약은 더 필요하다,로 정의했어야 옳다. 기업은 국가의 보호속에서 움직인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에 의해 파괴되어지는 세계의 숲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 눈감고 있다는 걸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세상이 힘의 논리에 의해 순서가 정해지는 것일까?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많은 사람이 크게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멸종되어가는 동물과 식물을 위해서, 움직임이 없는 도시에서 점점 비만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또한 그들이 만들어낼 각종 사회적인 불안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령화되어가는 사회를 위해 먼저 나서야 할 것이 누구인가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변죽만 울리는 것같아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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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용설명서 - 내 품격을 높이는
이미숙 지음 / 이비락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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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말의 쓰임새를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때가 많다. '영끌'이란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서였다. 질문을 받은 장관이 다시 물었다. '영끌'이 뭡니까? 영혼을 끌어모아, 라는 말이라고 한다. 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하다 이제는 제나라 말까지 함부로 쓰고 있구나 싶어서. 마침 뉴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당이 야당에게 좌시하지 않겠다, 라고 말하니 야당도 여당에게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는. 아나운서가 하는 말이 재미있다. 아무래도 오늘의 말은 '좌시座視'가 아닐까 싶다고. 무엇을 그렇게 앉아서 보지만은 않겠다는 건지 궁금하다는 거다.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지는 않겠다는 뜻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한번 해보자고 으르렁대는 꼴이다. 각설하고, (앗, 却說이란 말도 한자어!) 요즘의 언론을 보면 말할 수 없이 한심스럽다. 우리말을 마구 뭉개다 못해 짓이기고 있다. 도대체 듣도보고 못한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줄임말을 쓴다고 크게 시간을 아끼는 것도 아니다. 줄임말을 써놓고는 괄호안에 다시 제대로 된 말을 쓰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 알 수가 없다.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빠르고 편하게 써보자고 시작한 말을 대놓고 뉴스에서 쓰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론이라 함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하는 것이 맞다. 그런 말을 쓰지 않으면 크게 잘못될 것처럼 너도 나도 앞다퉈 쓰고 있는 모양새는 정말이지 꼴불견이다. 目不忍見!


또 한가지, 말끝마다 '~ 같아요' 라는 말을 왜 그렇게 쓰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맛있는 것 같아요, 예쁜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이건 재미있다는 건지 재미없다는 건지, 맛있다는 건지 맛없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그렇다는 건지 안그렇다는 건지....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표현하지 못하는 시절이라서 그런 말을 유행처럼 쓰고 있는 것일까? 세상이 니편내편을 가르고 내편이 아니면 모두가 틀렸다고 말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좋겠다. 어찌보면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우리말인데 우리가 너무 어렵게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책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는 것부터 시작한다. '분'과 '님'이란 말을 예로 들어 우리말의 높임말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상하게 우리는 높임말에 대한 강박이 있는 모양이다. 전화가 오시는 경우처럼 명사뒤에 무조건 '~분'을 쓸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 '분'을 쓰고 어떤 경우에 '님'을 쓰는지 제대로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두번째 장에서 한자어는 잘 알고 써야한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던 '좌시'라는 말을 언급했던 부분이다. 피로는 회복하는 게 아니라 풀어야 한다는 것, 미망인이란 말은 함부로 쓰지 않는것이 좋다는 것 등등 한자어에 대해 알기쉽게 풀어주고 있다. '장사진長蛇陣'이란 말의 어원을 이제사 제대로 알게 된다. 회자되었다, 라는 말도 주의해서 써야겠다. 그 뜻을 제대로 알게되면 왜 그런 말을 쓰고 있었는지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정말로 한자어는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 세번째로는 우리말인것처럼 숨어있는 일본어를 솎아내자고 한다. '땡땡이'나 '십팔번'과 같은 말은 이미 우리말로 많이 순화되었지만 식대, 기라성, 납득, 납골당, 대하 등등 너무나도 많은 말이 마치 우리말인듯 쓰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작금昨今이나 금번今番과 같은 말도 일본식이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식상하다는 말 역시 일본말인 것을 싫증났다는 우리 말을 두고서도 생각없이 가져다 쓰고 있으니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혼인이라는 우리말을 왜 그저 옛스러운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일본식 한자어인 결혼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잠깐 스쳐지나갈 말인데도 너도나도 쓰다보면 마치 원래부터 썼던 말인듯 느껴지기도 한다. 말이라는 건 쓰기 시작하여 자리잡으면 다시 몰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말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노력은 항상 필요하다. 이 책처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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