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 조선의 586 -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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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86세대라는 말은 단순히 1960년대생이 아니라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운동권에 몸담았던 경우만을 지칭했던 말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세대차이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생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자녀들이 지금의 2030세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아픔은 있다. 등에 빨대를 두개 꽂힌채 살아가는 세대라는 말과 함께 끼인세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러가지로 시대의 혜택을 받기도 했겠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끼인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세대로도 그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현재 정치권을 쥐고 흔드는 586세대를 향해 일갈하고 있다. 하긴 60년대 초에 태어난 나조차도 현재 정치권의 기득권자들이 물러나 줬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저자의 말처럼 586의 나라가 되었다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불안하고 막연하기까지 하다. 마치 지금을 위해 그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무슨 보상심리에 싸여 눈에 뵈는 것없이 행동하는 저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저들의 모습속에서 조선시대 사림의 모습이 보인다는 건 오로지 저자만의 생각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무엇을 믿고 저리도 방자한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40대가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사림들과 현재의 정치인들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백퍼센트 공감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게다. 그들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40대에게 간곡하게, 그야말로 진심을 다해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혀져 책을 읽는 내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586을 조선사림의 귀환이라고 말하겠는가.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을 '후조선'이라고까지 말하겠는가.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조선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는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는 이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배웠던 조선 사림의 뒷면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유성운이란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고 나온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기자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는 걸 보면 그가 느꼈을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가 어땠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시선과 그런 안타까움이 모여 이런 책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권은 어떤가?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HELL조선이라고 말한다. 노력해도 안되는 현실앞에서 좌절하고, 웬만한 것은 다 포기해야 하는 그들을 N포세대라고도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거기에 내 집마련의 꿈까지 무너져버렸고,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말이다. 그런데도 두 눈 크게 뜨고 LH사태를 바라봐야 했고, 허울좋은 주택정책으로 인해 작은 집마저 살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을 쳐야 했다. 그래놓고는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도 안되는 충고만 지껄여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서글픈 단어가 노오~~~~~~력이란 말이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의 反面敎師 라는 옛말이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지금의 집권세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보여진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국민들에게는 임대주택도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만들어주기 바쁜 그들이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는 말에 자신있게 아니라고 말 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저들의 모습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만들어주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백성들이 문자를 알고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갖게 되면 다루기 힘들어진다는 오직 그 한가지 이유로 한글창제를 반대했으며 상업을 천한 것으로 매도했던 조선의 사대부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를 자신들만의 잔치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처연하다. 일전에 보았던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섬에 들어와 만난 청년 창대에게 자신이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해 주던 모습.. "주자의 힘이 강하구나!" 그러면서 또 이런 말도 했었다. "나는 이 가슴에 서양학을 포함한 세상을 품었건만 이 나라는 이 한가슴조차 품지 못하는구나!" 상당히 강한 느낌을 전해주었던 말이다. 이런 책을 읽게 되면 우리가 배웠던 역사가 얼마나 편협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다보면 열받는 정치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말이 길어졌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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