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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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경찰이 사건을 발표하며 했던 말,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말 중의 하나다. 그 때는 그야말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거리를 휩쓸었다. 그 때의 그 현장에는 나도 있었다. 학생 시위대들이 전철을 점령하기도 했고 거리의 보도블럭을 뜯어내 던지기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전철을 세우고 점유했으나 학생들은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한쪽으로는 시민들을 인도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정치의 시대였다. 그 때의 인물이 바로 박종철과 이한열이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집권층의 공개적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고, 군사적 통치에서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냈다. 지금의 우리는 그들을 열사 혹은 시민운동가라고 부른다. 30년 후, 그 시대를 그린 <1987>이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의 혼란스러움은 여전하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나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 상황이 나타났다. 오늘날 중국의 젊은 세대 가운데 1989년의 톈안문 사건에 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설사 아는 사람이 있다해도 아주 모호한 반문만 던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면서요?" (-36쪽) 지금의 대한민국 젊은세대는 다를까?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혁명은 누군가가 앞장을 서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나 역시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後代는 先代의 희생으로 얻어낸 사회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위화는 근현대 중국의 역사를 열 개의 단어로 말하고 있다.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가 그것이다. 중국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국가가 과연 인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전해준다. 위화는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발치사)로 일하다가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작품으로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가랑비속의 외침>,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형제>등이 있다. 자신의 피를 팔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의 힘겨운 현대사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위화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광두와 송강이라는 배다른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형제>에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던 역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소설이지만 <형제>로 다시한번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미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4쪽) 작가의 독서 이력을 설명한 글이다. 독서를 하면서 저런 느낌을 갖는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전 한 TV프로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작가는 어떤 것을 숨겨놓고 그것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위대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나를 이끌어준 다음, 혼자 걸어가게 했다는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책읽기를 하면서 가끔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곤 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이렇게까지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 오래된 질문에 작가가 이렇게 대답해 준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이것이 바로 문학(- 108쪽) 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리속에 오버랩되었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다. 어디든 사람사는 모습은 같다, 라는 말과 함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덩치만 커져버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중국의 근현대사는 다르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톈안문 사건을 지나면서 중국은 참 많이도 흔들렸다. 그리고 참 많이도 변했다. 열개의 단어 중 풀뿌리는 나라와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던 민간기업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불러온 산채라는 말은 모방을 의미한다. 산채라는 말에는 모조품과 해적판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단어 홀유라는 말은 속임수나 헛소문 같은 단어에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입힌 말로 인터넷으로 인한 昨今의 이상한 세태를 꼬집고 있다. 그 말에는 과대선전이나 오락과 같은 의미도 담겨있다. 일본과 한국과 중국은 서로 비교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걸어간 길을 한국이 걸어가고 한국이 걸어간 길을 또 중국이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중국의 근대와 현대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우리도 그와 같은 일들을 겪어내면서 살아왔던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나라가 겪어낸 격동의 모습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게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옮긴이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사회적 산물이기도 한 문학이 예술인 것이지 문학의 생산자들이 예술인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지식인 집단으로 여겨지는 문인 계층, 즉 시인과 작가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예술로서의 문학에만 침잠해 있다고. 중국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침묵을 문제 삼을 수 없다면서 했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위화의 이 책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를 이끌어줄 시대의 어른이 사라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아이비생각

 

1989년 톈안문 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미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톈안문 사건이 중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정치체제 개혁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중국 정치체제 개혁의 발걸음은 경제체제 개혁에 비해 다소 뒤처졌지만 여전히 개혁 과정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톈안문 사건이 발생한 뒤로 정치체제 개혁은 완전히 정체되고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인들은 이로 인해 곧장 갈등만 가득한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쪽에는 보수 세력이 진을 치고 있고 한쪽에는 급진 세력이 버티고 있으며, 한쪽에는 정치군력이 집중되어 있고 한쪽에는 경제적 이익이 개방되어 있는 형국이 되었다. 한쪽은 교조주의가 점령하고 한쪽에서는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며, 한쪽에서는 규범을 잘 지켰지만 한쪽에서는 방탕과 무질서가 판을 쳤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사회의 발전은 전면적인 발전이 아니라 단편적인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편적인 발전은 이미 사회가 마땅히 갖춰야 할 건강을 해치고 있다. (-301,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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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一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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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를 찾아가면 나는 법정스님보다 먼저 어느 시인을 사랑했다던 여인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남편과 사별하고 생존을 위해 기생이 되었다는 여인. 그 후로 시인 백석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신분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고 말았다. 분단이 되고 백석은 북으로 갔다. 그 여인을 향한 사모곡까지 있었을 정도라 하니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성공하게 된 여인 김영한은 끝내 백석을 잊지 못했다. 1000억원이라는 돈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고 하니. 원래는 고급요정 '대원각' 이 있었던 곳이다.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나서 감명을 받은 노년의 그녀가 '대원각'의 부지와 그에 속했던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모두 시주하고자 했다. 극구 사양하던 스님께 10년동안 찾아가며 뜻을 밝히자 스님께서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려주셨다고 한다. 그만큼 글의 힘은 위대하다. 그 감동이 얼만큼의 크기였는지 감히 누가 알 수 있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가끔 한줄의 글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끔 한 줄의 글귀에 위안받기도 한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윤동주의 시, '개'다. 단 한줄속에 저렇게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 굳이 은유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장면이 다가온다. 이런게 詩다. 나에게는. 굳이 어려운 말로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 것보다 이렇게 바로 다가오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런 글이 나는 좋다. 책속의 그림은 쓸쓸하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詩는 왠지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정월, 이 한겨울에 따스함을 안고 싶었기에 시집 한 권을 손에 들었는데 오히려 더 춥고 외로워진다. 겨울은 그런 계절인가 보다. 그래서 화롯불이 필요하고, 그래서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운 것일게다. 앞에서 언급한 윤동주의 詩를 행을 바꿔서 쓰면 또다른 느낌이 든다.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내렸네, 라고 중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처럼 다가온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이 시화집에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함께 들어있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소년시절을 영국의 항구 도시인 르 아부르에서 보냈으며 18세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묘사에 관한 기초적인 화법을 배웠다. 인상파의 시작이 모네로부터였다. 그의 작품으로 <카미유(녹색옷을 입은 여인)>, <정원의 여인들>, <인상, 일출>, <수련 연못위의 다리>, <수련>등이 있다. 사진으로 보면 아하, 할 작품들이 많다. 시인으로는 윤동주外, 백석, 정지용, 변영로, 노천명, 박인환등의 작품이 실렸다. 그 중에서도 전작과 같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하이쿠였음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겨울 햇살이 지금 눈꺼풀 위에 무거워라 / 다카하마 교시의 작품과, 색깔도 없던 마음을 그대의 색으로 물들인 후로 그 색이 바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라 / 기노 쓰라유키의 작품이 실려있다. 기노 쓰라유키는 헤이안 시대의 가인이고, 다카하마 교시는 하이쿠 시인이자 나쓰메 소세키에게 영향을 받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하이쿠는 접하면 접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 윤동주의 '눈' 이다. 이 詩을 읽으니 불현듯 함민복의 '성선설'이란 詩가 떠오른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녹이려 가장 먼저 찾았던 따뜻한 아랫목의 이불속같은 따스함을 그려본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라고 윤동주는 '못 자는 밤'을 말했지만, 하나, 둘, 셋, 넷..... 밤은 길기도 하다, 고 나의 밤은 말한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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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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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하다. 그야말로 읽을수록 쫄깃한 맛이 제대로다. 숨가쁘게 읽다보니 두툼한 책이 어느새 중반을 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밤을 새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수는 없지. 이 쫄깃한 맛을 좀 더 느끼고 싶으니까. 1978년의 베아트리스와 1998년의 아이리스는 같은 공간에 있다. 과거와 현실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 여자가 겪어내는 일이 똑같다. 그렇다면 20년전의 상황이 20년 후인 지금까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일 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해답은 '데드키'만이 알고 있다. 각각의 은행에는 대여금고가 있는데 그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이용되지 않으면 그걸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은행은 데드키를 이용해 죽어버린 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꾼다. 중요한 것은 그 대여금고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 죽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 소설은 D.M. 풀리의 데뷔작이다. <데드키>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구조공학자로 일했던 작가 자신의 직업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구조공학이 뭘까 궁금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하나인 생활환경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건축공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 작가는 지금도 건물의 구조 문제를 조사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사설 컨설턴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버려진 건물을 조사하는 동안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대여금고들로 꽉 찬, 지하의 금고실을 발견했고 그중 특별해 보이는 금고 하나가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채 하나의 미스터리를 창조해냈다고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소설의 배경은 클리블랜드다.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

 

1998년의 아이리스는 작가의 직업과 마찬가지인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그녀의 직장은 입사한지 석달밖에 되지않은 신입사원에게 어떤 프로젝트를 맡긴다. 오래된 은행, 이미 파산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오래된 은행의 구조를 살펴 스케치하라는 것. 스케치하기 위해 은행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중 의도치않게 보게 된 낡은 은행거래기록과 당시의 은행 비서에 관한 이상한 파일을 보게되고 그것들은 이내 아이리스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한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진흙탕에 발을 디디게 된 아이리스. 1978년 은행이 파산하기 직전, 자신의 모든 신상기록을 거짓으로 채우고 비서로 고용된 10대의 소녀 베아트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돈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돈의 목적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한다.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모순이 우리 주변에는 수두룩하다. 뉴스에, 신문에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 더러운 진흙탕속에서 어쩌다 '데드키'를 손에 쥐게 된 두 여인의 운명은 과연 어찌되려는지. 20년동안 은폐되었던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는지. 금고를 향했던 탐욕스러운 손길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실종되거나 시체로 발견되었다는데... 다른 시간, 같은 공간속에서 같은 일을 겪어내야 할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주 조금은 예측해 볼 수도 있는 결말이라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상처받았던 이들이 치유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 때도 있는 까닭이다. 손가락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함이 대단하다. 진짜 흥미로웠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힌 여러개의 반전이 가져다 주는 맛도 괜찮았다. 장장 650쪽에 달하는 분량을 채우고 있으면서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만큼 단단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 /아이비생각

 

"넌 이게 어떤 일인지 모르지? 너무 천진난만하면 안돼, 베아트리스! 이건 돈이 걸린 문제라고.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굶주리고 누군가는 굶주리지 않게 돼. 누군가는 좋은 집에 살고, 누군가는 허름한 집에서 살아야 하지. 누군가는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더러운 늙은이와 잠을 자야 한단 말이야. 이건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누구의 목줄을 죄고 있는지, 누가 이 모든 것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라고. (중략)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주민들의 집을 빼앗고, 지역을 망치고, 이 도시를 찢어발긴 놈들 말이야.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폭로하고 싶었어." (- 568, 5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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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 - 부부, 가족, 가까운 사람들과 잘 지내는 관계 심리학
이남옥 지음 / 북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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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작가 소개부터 해보자. 부부가족상담치료의 대가이자 국내 최고 권위자. 30년간 3만 회 이상의 상담 경험을 통해 부부, 가족 등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와 분노의 심리적 원인을 짚어내고, 절망을 희망으로 이끄는 따뜻한 화법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다시 건강한 삼으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 중국 등에서도 부부 및 가족상담 전문가 교육을 위한 사회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독일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따뜻한 화법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힘을 주었다는 것이 가장 시선을 끈다. 조용히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을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 각자의 일방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주고 싶은 사랑을 줄 뿐이었다. 마치 사자와 소의 사랑처럼 사자는 소에게 열심히 고기를 가져다주고 소는 사자를 위해 풀만 주고 있는 형상이었다. (-158쪽) 우리가 사랑한다고, 사랑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것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보다는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을 주면서 왜 내 마음을 모르는거냐고 묻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사랑이 어렵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는 거다. 상대방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애쓰며 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부족하거나 아픈 나의 어떤 것을 바라보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사는 까닭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상대방이 처했던 어떤 상황을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그것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힘겹다. 보통은 들어주려고 하는 마음보다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예전에 불면증때문에 정신의학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의사앞에서 펑펑 울어버렸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 내안에 숨겨둔 속울음을 누군가 앞에서 크게 한번 울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나의 생활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어떤 것을 한번은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라는 위안을 받았을 뿐이다. 그 때 의사가 나와 대화를 시도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면 아마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겠지만 그런 기회까지 내게 오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러웠던 것은 누구나 말하지 못하는 아픔이 많다는 거였다. 얼마만큼의 크기인지, 얼마만큼의 깊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상담가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냥 그렇게 넘겨버리고 만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나는 맞고 남은 틀리다는 자기만의 상자에 갇히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 있어', '나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라는 상자 밖에서의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한 치의 빈틈없는 논리보다 어설픈 공감이 삶을 일으킬 때가 많다. 그것이 심리가 가진 오묘한 이치이다. (-172쪽) 사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그 일의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감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아프다고 하는데 왜 아프냐? 뭐가 그렇게 아프냐? 다른 사람도 다 아프다, 이렇게 말한다면 정말 속상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픔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냥 다독여주면 되는데, 그냥 괜찮아질거야 하면 되는데.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말에 공감하며 어깨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책을 읽고나니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타인의 아픔을 다독이면서 울고 있는 내 안의 아이도 조금은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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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7일 완성 손글씨
유제이캘리(정유진) 지음 / 진서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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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筆揮之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잘 쓴 글씨가 아니라 글씨를 힘있게 잘 쓰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붓글씨는 한번에 다 써야지 그은 자리에 다시 그으면 안된다는 말에서 나왔다는데 一筆揮之는 고사하고 글씨체도 엉망이니 그게 문제다. 세상에 떠도는 글씨체가 엄청나게 많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글씨체도 많고. 블로그 글쓰기만 열어도 고딕체, 명조체, 굴림체, 돋음체, 궁서체는 기본으로 쓸 수가 있다.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한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펜글씨교본도 있었다. 그리고 서예를 위한 수업시간도 있어서 무거운 벼루나 먹, 붓, 한지를 챙겨가야 했었다. 한글뿐만이 아니라 한자도 여러 글씨체가 있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오죽했으면 옛날 선비들은 文房四友라해서 종이, 붓, 벼루, 먹을 서재에 꼭 챙겨야 할 품목으로 보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글씨를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똑같은 모양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글씨만 잘써도 그 사람이 달라보이는 게 사실이다. 글씨를 써서 達筆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면 왠지 모르게 어깨를 추켜올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글씨를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어느정도 대중화되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예쁜 손글씨라거나 캘리그래피라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처음에는 캘리그래피라는 게 뭔지 몰라 당황했었지만 나중에야 붓글씨를 말한다는 걸 알고 아하, 했었다. 한마디로 말해 손으로 아름답게 쓰는 글씨다. 글씨도 멋을 부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건 아마도 광고가 많아진 탓도 있겠지만 뭔가 저만의 개성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낸 듯 하다. 그런데 딱봐도 정말 예쁜 글씨가 많다. 특히 詩의 한구절 한구절을 그 의미에 맞게 그림처럼 예쁘게 쓴 걸 보면 저절로 시선이 간다. 그만큼 글씨의 매력이 크다는 말일 터다. 그러니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겠지... 책을 펼치니 저자의 어머니께서 아니 지금같은 세상에 무슨 글씨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셨다는 말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각설하고 세상에 7일만에 글씨를 어떻게 잘 쓸 수 있느냐고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은근히 속상함이 밀려왔다. 무엇을 하든 꾸준함이 필요하다. 바른 자세에서 예쁜 글씨가 써진다는 말에 공감한다. 글을 쓸때마다 잘쓰려고 해도 항상 삐딱하니 옆으로 기울어져 마치 음계를 따라 올라가는 것처럼 써지는 게 싫었었는데 그게 모두 바르지 못한 자세때문이었다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바른 자세에서 모든 것은 비롯된다. 글씨체도, 건강도. 이 책은 나처럼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도전해 볼 만 하다. 7일에 완성이 되든 미완성이든 그게 중요할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보는 게 더 멋진 일이다. 하루 10분 연습이라는 책의 말처럼 꾸준함을 잃지 말고. 책이라기보다는 연습장에 가깝게 느껴져서 손맛이 괜찮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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