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누구의 것인가 - 인구 감소 시대의 토지 문제와 활용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가라시 다카요시 지음, 윤재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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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기 전에 더 궁금한 점은 토지는 언제부터 소유의 대상이 되었는가였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토지가 소유의 개념을 가졌다는 게 이채롭게 다가왔다. 이 시대를 가리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구 감소와 지방의 소멸을 염려한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다가왔던 기시감이 있었다. 이것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작금昨今의 한국을 보았을 때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그러나 확실한 차이점은 있어 보인다. 일본은 그에 맞춰 법을 개정해가며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어떤가. 일본의 버블경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지 못한다. 일본처럼 우리도 빈집이 늘어나고, 지방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소멸 - 도쿄 일극집중이 초래하는 인구 급감>은 책 제목이다. 됴쿄를 서울로 바꾼다면 무엇 하나 달라질게 없다. 서울로, 서울로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부처별 행정의 조율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 심각한 것은 국가와 지자체 사이의 관계이다. 토지 관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자체는 평소에도 재정과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으므로, 빈집 해체처럼 번거롭고 비용이 드는 귀찮은 일을 더는 떠넘기지 말아 달라는 것이 본심이다. 한편 국가는 빈집 · 불명토지 · 미등기 같은 문제는 모두 지역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곧 지역의 문제이므로 본래 지자체가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91쪽) 이것 역시 한국도 복사하여 붙여넣기를 하듯이 똑같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명확한 지방자치제를 펼치고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지 않아도 누구나 말 뿐인 지방자치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지방의 소멸, 대도시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자본주의의 이익만 내세우고 있으면서 밝은 미래를 꿈꾼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저명한 생태학자의 말을 빌려 보더라도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인구 감소를 줄이는 건 어렵다. 동물이 그럴진대 인간이라고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이 책에서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더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고.

토지가 인류(생물)의 생존과 생산의 기반이며 자연환경의 일부로서 일상생활과 깊이 얽혀 있다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104쪽)

도쿄 일극집중이 일어나는 까닭도 결국 도쿄 전역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용적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거꾸로 보자면 그렇게 높은 용적률이 매겨지는 까닭은 그만큼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용적률은 다름 아닌 '도시계획'으로 결정된다. 사권私權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토지소유권이 사실은 무색투명하고 평등한 권리가 아니라, 이렇듯 도시계획에 따라 또렷이 등급이 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덧붙이자면, 거품경제와 정반대 방향에 놓인 토지의 방치 또한 이 용적률을 비롯한 도시계획의 손길로 --여러 정책을 짜 맞추는 방식으로-- 개방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하면 땅값이 다시 살아나고, 매매와 이용이 트인다. 곧 방치의 해소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179쪽)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소유권을 인정했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공격을 당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일본에 천황이라는 권력 구조가 등장했고, 온 나라의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은 곧 토지의 국유화였던 까닭이라고 한다. 토지는 모두의 것이다,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토지는 도시계획에 따라 그 이용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도시가 온전히 지자체의 권한 아래에 놓여 주민의 처지에서 모든 플랜이 결정되고 실행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주민의 처지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을까 싶다.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사고는 일본 뿐 만이 아니라 한국의 병폐도 된다. 그린벨트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점도 일본과 한국은 똑같다. 이 책에서 바라본 해결점에 '전원도시'가 있었다. '전원도시'는 그저 풍경 좋은 것만 바라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전원도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어쩌면 그 좋은 제도조차 우리에게 닿기까지 많은 오류와 변질을 낳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탕은 '이윤' 획득을 좇는 경쟁이며, 진 자는 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구 환경의 보전이나 빈곤의 해소처럼 당장의 '이윤'을 낳지 않는 일에는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도 끝내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이윤을 좇는 마음과 더불어 사로 돕는 도덕 위에서 살아왔다. 누구나 인권을 가지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은 홀로 살 수도, 홀로 죽을 수도 없다. 끝없이 이윤을 좇는 경쟁은 이러한 인류 보편의 도덕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이긴 자와 진 자로 갈라놓고 만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334쪽) 처음에는 그저 궁금해서 일기 시작했던 책이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숙연해졌다. 일본과 한국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책 속에서조차 느껴진다. 일본의 도쿄집중과 한국의 서울집중은 결코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토지 문제를 생각하면서 시작되었던 문제는 우리 삶의 일상으로까지 파고 들었다. 일극집중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눈을 떼지 못했던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흑자'가 필요하다.(-361쪽) /아이비생각

서로 의논하고 자료를 모아 가는 결 속에서, 새삼 또렷이 짚게 된 것이 있다. 도중에 무심코 흘러나온 한마디가 사고의 자라남에 큰 보탬이 된다는 것, 디지털만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맺어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현대총유의 뿌리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신의 두터운 어우러짐---은 '연의 공유(緣の共有)'에서 비로소 자라난다는 것이었다.(-377쪽 역자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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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 - 민주시민을 위한 뉴스 리터러시 교양 참고서
김성재 지음 / 싱긋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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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라는 말이 보인다. 쉽게 말하면 문해력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굳이 영어로 이야기하는 건 왜일까? 깨어있는 민주시민을 위한 교양 참고서라 한다. '사실, 공정, 균형을 잃어버린 한국 언론의 민낯' 이라는 말도 보인다. 그런데 대한민국 언론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다만 잘못된 뉴스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묻느냐의 차이일 뿐. 대한민국에서 잘못된 것들이 언론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본다. 나는 뉴스를 보고 있는가? 그 뉴스를 믿고 있는가? 솔직하게 말한다면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이고, 편파적이고, 편향적이고... 이게 내가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그렇다.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듯 하다. 쉽게 말하면 낚시성 제목이 너무 많다. 좀 더 중요한 사안을 앞세우지 못하는 점도 있다. 그저 관심을 끌 만 한, 혹은 일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사안이 항상 먼저 뜬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을 하라고? 이건 마치 기업은 강 건너 불구경인데 소비자 개인들에게만 환경을 생각하라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우리나라 여러 주류언론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식의 보도를 해온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권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말바꾸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많은 시민들이 언론이 '두 개의 혓바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고 위안이다.(-137쪽) 정말 그럴까? 이쯤에서 저자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저자는 경제학과 언론학을 공부했다. 기자 생활도 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나랏일을 많이 했다고 나온다. 늘 고민하는 것이 언론개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잘 알지 않을까? 정치가 언론에게 막중한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걸. 하지만 정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그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입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연합뉴스가 '국가기간통신사'라는 걸. 정부로부터 연간 300억 원대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지정됐다는 말도 보인다. 연합뉴스는 정부나 기업체, 다른 언론사들로부터 구독료를 받고 뉴스를 판매하기 때문에 '언론의 언론', '뉴스 도매상'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국민을 위한 공영언론이라기보다는 정권을 위한 관영언론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는데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럴려고 세금 부어가면서 만든 거 아닌가?

언론의 자유? 개같은 소리다. 모두가 이익 앞에서 무너지는 자본주의시대를 살면서 孤高하게 살라고 하면 그게 바로 탁상공론이다. 이토록이나 첨단기술로 만들어지는 산업 시대에 나쁜 뉴스를 걸러내지 못한다고? 정치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데 무엇인들 달라질 수 있을까? 문득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책을 읽는 내내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 읽고 나니 묻고 싶어진다. 이 책은 공정한가? 편향적이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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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위한 리딩 메커니즘 - 보이지 않는 규칙 편
널리즘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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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면서 떠올랐던 영화가 있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층수를 나누어 사람이 있는 배경이었다. 푸짐하게 가득 차려진 음식상은 맨 위층부터 시작된다. 정해진 시간안에 자신이 먹을 수 있을만큼 먹는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렇다면 가장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자신의 발아래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만 윗층의 사람들은 그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견디다 못한 아래층 사람들은 윗층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그 다음은 예상했던대로다. 그들이 윗층에 올라간다고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왜 그럴까? 저자가 묻고 있다. 당신은 세상의 몇 층에 살고 있는가.

서글픈 얘기지만 일찍부터 세상이 공평하거나 공정하다고 믿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꿈꿀 뿐이라고. 사람은 같은 세상을 살지 않는다,라는 주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지능 발달 지연인 1단계부터 초월자인 10단계까지.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초월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다. 각각의 단계를 거쳐왔지만 모든 과정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죽음을 앞두었거나, 나름 성공했다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공통점은 하나다. 소소한 것들에게서 행복을 찾지 못했다는 것.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베풀지 못했다는 것. 세월을 먹으며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다. 그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이 책의 분류를 보면 인문 교양이라고 나온다. '오직 너만을 위한 맞춤형 지식 교양 시리즈'라는 부제가 있는 것만 봐도 인문은 맞다. 하지만 교양이라고 하기엔 좀... 차라리 심리서나 자기계발이 더 어울릴 듯한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그렇고, 선택은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그렇다. 유사성 효과, 미러링 효과, 헤일로 효과, 희소성 효과... 보이지 않는 법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렇다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는 듯 하다. 선택은 환경이 미리 그려둔 밑그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렇기에 마케팅이 성립될테니 말이다. 결국 성공의 법칙인가? 밑그림을 잘 그려야 성공할 수 있다는? 준비되어 있는 자는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이유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건 진리다. 사람이 다 똑같은 걸 추구하는 세상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昨今의 세상은 혼돈의 세상이며,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을 안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비생각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매번 완벽하게 빛날 필요는 없다. 인간의 뇌는 한번의 강렬한 매력보다, 여러 번 이어지는 평범하고 변함없는 모습에서 더 큰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 자주 마주쳐도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억지로 존재감을 키우기보다 숨 쉴 틈이 되는 것, 그건 대단한 기술이나 말솜씨로 되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속도와 마음의 경계를 살피면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태도에서 나온다. (-154쪽)

결국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내렸던 평가들은 상대의 진짜 모습이 아닐 때가 많다. 단 하나의 돋보이는 장점에 시선이 쏠려 만들어진 결과인 경우가 흔하다. (-233쪽)

환경의 지배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강요나 억압처럼 불편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경이 조용히 유도하는 선택들은 우리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타당한 결정처럼 느껴지지 쉽다. 은은한 조명이 그곳에 머무는 시간을 기분 좋게 늘리고,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가 우리의 시선을 아주 자연스럽게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식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인 고민을 거쳐 판단하기보다, 환경이 미리 깔아둔 여러 심리적 효과를 기꺼이 따라가게 되는 셈이다.(-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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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페이허이스 지음, 미리내공방 옮김 / 정민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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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니체의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의 말은 그 시대를 향한 비판이기도 했고, 또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기도 하다. 니체를 검색하면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현대 인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철학자라고 나온다. 특유의 공격적인 문체로 인해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말도 보인다. 흔히 괴팍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성격은 온화하고 유머를 좋아했으며 사교성이 있었다고 한다. 실존주의는 키르케고르와 니체에서부터 출발했다. 어떠한 원리나 인생의 교훈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아포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는 진리를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경험이 부족한 당신도, 아직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당신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라. 스스로 존중할 때 비로소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 비열한 행동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멋지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바로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23쪽) 이 책의 주제는 총 12강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LESSON 1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이다, LESSON 8 인간관계를 더 조화롭게 만든다, 라는 주제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살아 온 길 돌아보니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했다는 것과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녹치않은 일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습과 제도를 몸에 익히며 자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삶보다는 남의 시선에 어울리는 삶을 좇는다. 그래서 자기만의 삶을 산다는 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이제는 안다. 불평은 나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결코 공정과 공평을 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 오직 나만의 삶을 추구하려고 할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을.

당신을 칭찬하는 사람은 대체로 당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며, 당신 또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칭찬하게 된다. 서로같은 부류가 아니라면, 상대의 잔짜 의도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한다. 이해와 칭찬 그리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자기 인정은 대체로 같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271쪽~272쪽)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해득실을 따지지않는 만남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LESSON 8의 주제가 시선을 끄는 이유다. 적당히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하게 된다. 더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지만 집착하지 않는 관계가 자신을 편하게 만든다.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도 중요하다. 생각해보면 昨今의 세상이 이미 그런 것을 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동호회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일전에 읽은 <단독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다. 자기의 주체성을 확실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간 개인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라고 말했던 실존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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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
박진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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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이 퇴화한 인간들은 이제 거대 시스템과 미디어가 설계한 '가짜 정답'의 포로가 되었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자신의 삶을 경영하지 못하는 '정신적 미성년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심이라는 인간 고유의 권위를 너무나 쉽게 포기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에 넋을 잃고, 유행이라는 이름의 집단 광기에 편승하며, 다수의 의견이 곧 진리라고 믿는 '생각의 외주화'에 빠져 있다. 이것은 명백한 타의적 굴종이다.(-50쪽) 매서운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을 분류하자면 자기계발서다. 사실 자기계발서라는 장르는 넘쳐 흐른다. 그래서일까? 그다지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말이 차라리 솔직할 것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현실성 없는 허황한 말들만 늘어놓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우杞憂가 사라지고 있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경험에서 우러나는 말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세상에서 말하는 '괜찮은' 직업을 때려치웠고, 스스로 바닥으로 걸어갔다는 저자의 발걸음은 꽤나 무거웠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지금처럼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그 이면의 어둠은 곧잘 감춰진다. 아니, 어쩌면 그 어둠을 보고싶어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어찌 항상 빛나는 날만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할 삶이라면 뚜렷한 주체성, 자신만의 생각을 밀어 부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산다는 것처럼 허무한 일도 없다.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된 진리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일찍이 경고했다. 사회의 관습적 틀에만 맞추어 사는 것은 인간의 판단력을 거세하는 행위라고. 학창 시절 시키는 대로만 공부한 우등생들이 예상치 못한 실전 문제 앞에서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이런 상황은 이렇게 돌파한다'는 근육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은 개성이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선택과 훈련을 통해 개발되는 것이라 보았다. 생기 넘치던 아이들이 '우울한 어른'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사회라는 거대한 맷돌에 갈아 넣었기 때문이다.(-66쪽) 백퍼센트 공감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위정자들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문득 위정자들은 백성들의 무지몽매함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니 스스로가 자신을 다그쳐야 한다는 명제가 생겨난다. 자기계발서가 난무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공자 왈, 맹자 왈 보다는 현장에서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처럼 오직 대학이라는 모래성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현실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아픔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교묘하게 주입한 '행복 강박'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매일같이 특별한 이벤트가 터져야 하고, 화려한 음식을 먹어야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어야만 비로소 행복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교의 오래된 지혜는 정반대의 진실을 가리킨다. "불행하지 않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행복은 쟁취해야 할 화려한 전리품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과 불안이라는 노이즈가 제거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우리 삶 본래의 '배경화면'과 같다. 단조롭고, 무료하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우리 인생의 '기본값'임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외부 자극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독자의 평온을 얻는다.(-123쪽) 단독자라는 말을 보았을 때 뭐지? 했다. 單獨者라는 말은 키에르케고르가 최초로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이런 말도 보인다. 단독자인 인간은 '절망'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고 절대자인 신에 대응할 수가 있으며, 진정한 신앙을 얻는다. 이와 같이 고독이나 절망, 또는 불안 등을 매개로 하여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명확히 한다... 세상을 혼자 외롭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실하게 하고 또 그것에 따라 움직이라는 말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시류에 휩쓸려 다닌다.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받고 싶어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한 까닭이라고. 하지만 내가 나만의 삶을 살아낸다고해서 집단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과 같은 것을 경계해야 할 신기루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시장의 파도에 휩쓸려 내 자본을 태우는 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를 태워 빛을 내는 투자가 먼저라고. 도전이 아니라 '설계'된 시스템만이 당신을 구원한다고. 여러 방면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寸鐵殺人!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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