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파밍을 시작합니다 - 주방에서 버려지는 채소 과일 허브 다시 키워 먹기
폴 앤더튼.로빈 달리 지음, 고양이수염 옮김 / 스타일조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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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해 봤을 양파키우기. 양파의 뿌리를 적실만큼 컵에 물을 부어 그 위에 양파만 올려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고나면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양파의 푸른 순이 쑥쑥 자라나는 걸 볼 수 있어서 무척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키운 양파줄기를 요리에 사용한다는 게 왠지 좀 껄끄러웠다. 대파가 한참 비쌀 때 채소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렸더니 파를 집에서 길러 먹어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었다. 내심 귀찮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채소라는 건 땅의 기운을 흠뻑 받아야 제각각의 영양분을 채울 수 있는 거라고 믿는 탓도 있다. 우리 집 건물 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그 밭에 올 해는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고추, 상추,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화분에 반려식물을 키워보기는 했지만 텃밭에 뭔가를 심어본 적은 없었기에 조금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다. 모종을 심고 다행히 그 다음날 비가 내려서 이 녀석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보인다. 홈파밍이라 하길래 그런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집 안에서 화초 대신 먹을 수 있는 채소나 허브를 재배하는 것을 홈파밍이라고 한단다. 그것도 버려지는 부분을 되살려먹는 것이다. 접시에 물적신 스펀지류를 놓고 자른 고구마를 올려놓으면 고구마순이 나오는 걸 볼 수가 있다. 덩굴식물인 고구마순이 예쁘다고 그렇게 고구마순을 키워 거실을 장식했던 친구가 생각난다. 예쁘게 올라오는 푸른 싹이 좋아서 그렇게 해봤던 적은 있지만 그런 것들을 먹기 위해서 키워본 적은 없다. 고구마순을 좋아하면 이것도 잘라 먹을 수 있을까?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부제는 '주방에서 버려지는 채소 과일 허브 다시 키워 먹기'다. 며칠이면 쑥쑥 자라서 먹을 수 있는 것부터 더디게 자라는 것까지... 생각해보니 자라는 동안은 바라볼 때마다 기분좋게 하는 식물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아 살짝 욕심이 나기도 한다. 그런 식물들을 어떻게 키우면 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책만 보고도 따라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식물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빨리 자라는 작물 : 파, 새싹, 채소, 마늘, 민트, 청경채, 셀러리. 보통 속도로 자라는 작물 : 로메인, 비트, 펜넬, 릭, 고수, 당근, 레몬그라스. 천천히 자라는 작물 : 버섯, 아보카도, 파인애플, 토마토, 생강, 감자, 양파. 흠~~ 천천히 자라는 식물군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 듯 하다. 감자나 양파를 작은 박스에서 키운다는 건 좀 욕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왜 자꾸만 홈파밍이라는 말이 눈에 걸리는 거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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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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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건강식품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20세기에 들어선 뒤부터이다.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으면 병에 걸릴 일이 없다'라는 표어가 나타났다. 금주운동때문에 사과 판매량이 감소할까봐 사과 생산자들이 내건 표어였다.(-66쪽)

꽃은 본성적으로 은유적인 의미의 거래를 한다. 그래서 야생화가 무성하게 피어있는 초원은 인간이 부여하지 않은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원에서는 이런 의미들이 더욱더 많이 넘쳐난다. 정원에 피는 꽃들은 벌이나 박쥐 혹은 나비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좋은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온갖 인식들을 겨냥해서 자기 의도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꽃과 인간이 거래를 텄고 이 결합의 결과, 즉 서로의 욕망이 경이롭게 공생함으로써 나타난 것이 바로 정원에 피는 꽃들이다. (-135쪽)

니코틴과 같은 몇몇 식물성 독성 물질은 자기를 갉아먹는 해충의 근육을 마비시키거나 경련을 일으키도록 만든다. 카페인과 같은 물질은 신경체계를 손상시켜 입맛을 잃게 만든다. 독말풀과 사리풀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식물에 들어있는 독성물질은 동물을 미치게 만든다. 이 풀을 먹은 동물의 머릿속에는 끔찍하고 산만한 영상들이 마구 펼쳐져서 결국 이 동물은 식욕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플라보노이드라는 물질은 몇몇 동물들이 혀에서 느끼는 맛을 아예 바꾸어 버린다. 달콤한 열매를 신맛이라 느끼고 신열매를 단맛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식물이 의도한 결과이다. (-196쪽)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강한 유혹을 느끼게 한다. 발도 없어서 제 스스로는 움직일 수도 없는 식물이 욕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정말 놀라웠던 까닭이다. 책을 펼쳐보면 아주 단순하다. 단 네가지의 식물만으로도 그렇게나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더 놀라게 된다. 사과를 통해 달콤함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바라보았고, 튤립 한송이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들춰냈으며, 대마초를 통해 도취에 대한 욕망을 다루었고, 지배의 욕망을 감자를 통해 드러냈다. 다시 말한다면 식물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교수이자 환경론자라고 나온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욕망하는 식물>, <세컨 네이처>, <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등의 저서가 있으며 모두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말도 보인다. 또한 자연, 정원, 식물, 음식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통해 정치, 경제, 문화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환경과 역사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완벽한 예시를 이끌어내는 놀라운 솜씨를 갖추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 공감되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식물을 통해 인간의 역사에서 잘못되었던 것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끝도없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사건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만나게 된다. 중세 네널란드에 불었던 튤립전쟁이 그 하나의 예다. 희귀종 하나만 키워낼 수 있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은 사실 귀족층으로부터 시작된 투기 과열현상이었다. 그 꽃이 좋아서, 그 꽃이 특별히 예뻐서가 아니라 오로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욕망뿐이었다는 말이다. 장미가 인간이 길들인 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면 튤립은 역사가 가장 짧은 꽃이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튤립이라는 이름은 원래 터키말 '터번'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花無十日紅 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아름다움과 덧없음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는 꽃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다.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태만때문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의도때문에 모든 자연이 길들이기라는 과정 안에 포섭되었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허술한 지붕 아래로 편입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야생의 동식물도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이 만든 문명에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31쪽)... 인간은 다른 생물종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 '길들이기'라는 표현이 암시하듯이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을 우리는 과대평가한다(-42쪽)... 현재의 인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일까 호모 아페티투스일까?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지만 호모 아페티투스는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단언컨대 나는 지금의 인류를 호모 아페티투스라고 정의하는 게 옳다고 본다. 뇌신경의 카나비노이드 체계는 허접쓰레기들을 버리고 해야 할 일들을 위하여 하루 일을 무사히 마치는데 꼭 필요한 것들만 기억하도록 한다는데 그것은 결국 정신 건강의 많은 부분이 망각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망각의 욕망을 대마초를 이용해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망각의 기술과 힘은 현재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의식 바깥으로 몰아내고 또 의식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라고 니체는 말했다. 대마초만큼 길들이기 쉬운 식물도 없을 것이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두가지의 전혀 다른 인간욕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유일한 식물이 바로 대마초다(-256쪽)...

감자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다. 유전자조작 식품의 허상을. 유기농재배가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것인가를. 유기농재배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물의 흐름을 인간의 편리대로 직선화시킨 후 우리는 수많은 자연재해를 당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운 곡선의 물줄기를 다시 찾으면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 모를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해야만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아무도 세상밖으로 들어내려하지 않는 까닭이다. 감자잎마름병이 덮쳐 주식이었던 감자의 흉작으로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왔었다. 100만여명이 굶어 죽었으며 대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 총 인구수의 25%가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로인해 감자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맥도날드의 프렌치프라이의 감자칩은 유전자 조작 감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든 식품이라는 것을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봄이 되면 씨앗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런 세상이 올까봐 정말로 두렵다. 특정 기업의 배만 불리워주는 그런 세상이 어쩌면 이미 와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서두에 이런 말이 보인다. '인간꿀벌'... 얼핏 보면 그럴듯 해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정 무서운 말이 아닐수가 없다. 언젠가 다큐프로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인간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되고 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인간과 더 멀어지거나 아니면 인간의 문명속에 들어가 거기에 맞춰 살아가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생물체가 멸종되거나 원래의 모습을 잃은 채 살아남을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단순히 식물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 제목에 유혹당해서 읽게 된 책이지만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아이비생각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선험적 지식이나 비유라는 여과기로 걸러진 모습을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268쪽)

하나의 컵이 있고 그 곁에 수많은 거울이 있을 때, 진짜 컵은 하나지만 우리는 거울에 비친 수많은 컵을 본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사물들도 바로 이런 모습들이다. - 플라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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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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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영국의 대표 문인이자 스릴러의 대가로 인간 실존과 신의 관계를 깊이 고찰한 가톨릭 소설가. 세계대전 중에 첩보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함. 당대에 대중의 인기와 문단의 찬사를 동시에 누린 희귀한 작가라는 말도 보인다. <브라이턴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 <사랑의 종말>등 25편의 장편소설과 에세이, 문학평론 등 6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살인자와 아마추어 탐정의 대결이라는 추리소설 형식으로 가톨릭의 선과 악의 관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차원의 소설로 승화시켰다는 말과 함께 카톨릭을 주제로 한 대표작이라고 나온다. 그린이 쓴 최초의 진지한 소설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작가 자신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라면 아마도 그 책속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 괴롭힘과 우울증으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말이 이 소설의 분위기와 묘하게 맞닿아 있는 듯 하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안고 있다. 마치 기분나쁘게 어둑한 뒷골목을 걷고 있는 듯한 그런 분위기다.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의 한 방편으로 권유받은 글쓰기가 작가에게 있어서는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자기만의 방식이었다는 말이 눈에 띈다. 종교문학으로 평가된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조차 갖지 못한 치기어린 소년을 통해 어떤 악을, 어떤 선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어른의 행세를 해야만 했던 치기어린 소년은 모든 것이 버거웠을 것이다. 어느날 자신을 데려왔던 사람이 죽음으로써 대신 그사람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천당과 지옥이라는 두 관념이 끝없이 대립하는 것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그 어린 소년의 입을 통해 '인생은 감옥'이라는 말을 뱉어낼 때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돈을 구하려 해도 어디 가서 구해야 할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가 겪어내기엔 너무나도 처절한 현실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자신은 무너질 수 없으며,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야만 했던 소년 핑키. 어느날 문득 자신앞에 나타난 소녀 로즈는 또하나의 갈등으로 다가올 뿐이다. 살인을 저지른 핑키의 모든 정황을 알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핑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맹세한 소녀 로즈에게 핑키를 향한 '구원'이라는 굴레를 씌우기엔 뭔가 서걱거린다. 완전한 '악'이 될 수 없는 소년 핑키에게 어설프게 다가서는 '구원'의 잣대는 그에게 또다른 의심만을 불러오는게 아닌가 싶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영 찜찜했다. 뭔가 어설프게 짜맞춘듯한 설정이 마지막까지 시선끝을 따라왔던 까닭이다. 자연사로 처리되어버린 핑키의 살인. 그리고 죽은자와 스치듯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눴던 여인 아이다는 자연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다라는 여인을 통해 거짓은 들통날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세상이 정말 그런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지는 의문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핑키의 몸부림이었다. 자신을 데려왔던 사람을 위한 복수라고 생각했던 살인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던. 자연사로 판명났으나 자신의 살인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불안을 느껴야 했던 핑키는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 불안함과 흔들림에 관한 묘사는 묘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핑키의 불안과 흔들림은 살인에 가담했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고 그것은 또다른 불신을 낳는다. 그런 설정들이 정돈된 날줄과 씨줄처럼 보이지 않고 마구 엉킨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끝내는 마지막부분의 해설에 가서야 정돈되어지는 씁쓸함이라니. 냉혹한 살인자와 그를 추적하는 탐정의 대결을 그렸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하겠다. 숨막히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마치 한편의 성장소설을 본 것 같다. 카톨릭의 교리와 도덕과 신앙에 대한 물음을 담아냈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 언저리만 뱅뱅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어찌 할 수가 없다. 소년 핑키를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덜 익은 과일을 먹은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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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즐겁게 - 우리말의 어원과 유래를 찾아서
박호순 지음 / 비엠케이(BM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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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어원과 유래를 찾는다는 말이 시선을 끌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 중에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하며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탓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그토록이나 방대한 우리말의 어원을 이 책에서 다 배울수는 없을거라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채롭게 다가왔던 말들은 많았다. 우리말의 어원이나 유래를 알고나면 어라, 이 말이 거기에서 온 말이라고? 하며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이 많았기에 이 책은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사자성어를 배우다보면 그 사자성어가 나오게 된 배경을 공부하며 역사의 단면을 알게 된다. 또한 속담을 공부하다보면 시대의 생활상이나 문화를 엿보게 되기도 한다. 게다가 어려운 우리말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하니 어찌 마다하겠는가 말이다.


'개밥에 도토리'라는 말이 있다. 도토리는 보통 다람쥐가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도토리의 어원이 돼지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돼지가 좋아하는 열매가 바로 도토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수도는 서울이다. 그런데 그 '서울'이란 말이 '도읍'이란 뜻으로 옛날부터 민간에서 통속적으로 쓰였던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서울은 언제 정식적인 수도 명칭이 된 것일까? 광복이후부터라고 한다. 아울러 곁들여주는 속담 이야기가 재미있다. '서울 가 본 놈하고 안 가 본 놈하고 싸우면 서울 가 본 놈이 못 이긴다'라는 속담속에서 그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태극기'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였다고 한다. '조선 국기'라 불렀던 것을 일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태극기'라고 부르자고 약속을 하면서부터였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런 사실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우리의 풍속에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붉은 색을 쓰는 경우가 많다. 동지팥죽처럼. 하지만 이 또한 수많은 모순점을 낳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전해온 이야기가 우리 풍속에 잘못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라의 국호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22대 지증왕때였다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으며, 옛날의 왕이 자신을 일컬어 '과인'이나 '짐'이라는 말을 썼지만 '짐'이란 말은 온 백성이 모두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썼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임금의 얼굴을 '龍顔'이라 불렀던 것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의 얼굴 생김새가 용을 닮아서 그때부터 사용했다. 참고하라고 보여주는 유방의 초상화를 보니 우락부락한게 과연 용이다. 하긴 용이란 동물도 우리의 상상속 동물이니 그럴만도 하겠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였단다. 그런데 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공자를 비롯한 중국 사람들이 한민족을 일컬어 한 말이라 한다.


日曜日을 일요일날, 驛前을 역전앞, 牛頭를 우두머리, 大蝦를 대하새우, 靑天을 청천하늘, 生栗을 생률밤, 黃土를 황토흙이라고 하는 것을 저자는 우리민족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우스개소리로 광화문의 세종대왕께서 도대체 이 곳이 어디냐고 물으실만큼 우리 말과 우리 글이 홀대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너무 심하게 줄여쓰는 말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도 엄청 많았다. 적어도 뉴스를 다루는 사람들만큼은 우리말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뉴스는 유행을 따라야 하는 매체도 아니고, 또한 어떤 이익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세대가 저희들만의 소통방법으로 만들어낸 말들이 어느틈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마치 그런 말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굳이 자막으로까지 보여주면서 그런 말을 써야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가 안스러울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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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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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면 딱 떠오르는게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정조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시대만을 말하지 않는다. 열하로 가기 전 조선의 상황과 열하로 가야만 했던 당시의 상황을 함께 그리고 있다. 조선은 영조대에 이르기까지 명의 부활을 꿈꾸었다. '百年河淸' 이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게 된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명을 바라보며 살수 있었을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망해가는 명에 매달리다가 새롭게 부상하는 청에 '삼궤구고두'라는 치욕을 겪었으면서도 복수라는 일념으로 황하의 흐린 물이 맑아지기만 기다렸다는 걸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론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일테지만 역사속에 나타나는 조선의 관료들은 분명 변화를 두려워했던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뭐,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지만.


최부의 중국 표류기 <표해록>이나 강항의 일본 포로시절을 적은 <간양록>과 비슷한 기행록이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그다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아니었다. 이 책으로 인해 <열하일기>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울러 <열하일기>가 세상으로 나와야 했던 이유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인조의 '삼궤구고두'를 겪으며 조선은 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조공의 형태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정조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하게 남아 있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처럼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하나를 주면 그것을 받는 나라에서는 서너개를 주어 보내는 게 원칙이었기에 조공을 그렇게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책속에 나타나는 조공의 형태는 적자무역에 해당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명분에 맞춰 일년에 4,5 차례에 걸쳐 청에 사신을 보내야했던 조선의 입장에서는 그 공물을 마련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던 듯 하다.


박지원은 정조의 고모부 박명원이 청황제의 생일축하를 하기 위한 사신단의 일원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그 여정에서 보았던 일들을 적은 것이 바로 <열하일기>인 것이다. 사신단을 한번 꾸리면 300~500명의 인원이 움직였다고 한다. 실제적인 관리들보다는 거기에 따라나서는 보따리장사, 즉 지금의 말로 말한다면 무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사신단이 움직였던 시기가 6월~ 8월 사이라고 하니 한여름의 행군이었을 것이다. 무더위와 장마가 겹치는 계절에 그 많은 행렬이 어찌 움직였을까 싶다. 청이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기 전에는 심양까지만 가면 되었지만 이제는 베이징까지 가야했다. 압록강을 건너 심양까지는 일주일의 거리였지만 베이징까지는 족히 한달이 걸리는 거리였다. 사신단이 돌아오기까지 석달이 걸릴 정도였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여정이 아닐수 없다. 베이징까지 갔지만 청황제는 거기에 없었다. 조선에서 축하사절단이 왔다는 연락을 받은 청황제는 빨리 열하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고 부랴부랴 조선의 사신단은 중요한 사람들만 추려 열하로 향했다. 그러니 박지원이 열하까지 다녀오는 여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건이 있었을거라는 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내용을 재미있는 강의로 들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진진하다. 마치 그 무리에 속한 사람처럼. 대접을 잘 받고 돌아온 박명원은 열하에서 판첸라마를 만나 불상을 받아왔다는 이유로 '奉佛之使'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유교의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곤란한 상황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열하일기>였다는 말이다. 박명원과 박지원은 팔촌지간으로 한집안 사람이었으니 박지원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열하일기>속의 내용에 거짓이 있었다는 반전이 존재하니. 어찌되었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몰입도가 좋은 책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열하일기>를 한번 더 읽어야 할까 고민중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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