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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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19C 말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독립운동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미국이 세력 확대를 위해서 쿠바의 독립을 노골적으로 지원했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넘겨 주게 되었다. 독립은 했지만 경제적으로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토지가 미국 자본과 쿠바인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재정권의 부패가 심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빈부격차도 심해졌다. 여기에 쿠바 수출의 80%를 차지하던 설탕의 가격이 1950년대 내내 요동치면서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자연스레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쿠바 혁명을 먼저 알게 되면 훨씬 더 이해하기 좋을 거라는 말이 보인다. 쿠바,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체 게바라나 피델 카스트로라는 이름이다. 쿠바 혁명은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알베르트 바요등의 혁명가들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키고 사회주의를 수립한 것을 말한다. 그 덕분에 쿠바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쿠바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 책의 배경이 그 어수선한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검은 그림자가 스멀거린다. 주인공 워몰드는 영국인으로 아바나에서 진공청소기를 팔고 있다. 주체성도 없고 소극적인 사람인 듯 하다. 그에게는 예쁘게 생긴 딸 밀리가 있다. 잘 풀리지 않는 아버지의 사업과는 무관하게 밀리는 사치를 즐긴다. 그러니 늘 빚에 허덕인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을 찾아온 한 남자에 의해 느닷없이 비밀정보요원이 되어버린 워몰드. '우리 사람'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음과 동시에 그에게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워몰드였지만 딸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워몰드. 딸의 승마 클럽 회원들을 살펴보던 그는 그럴싸한 거짓 요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아바나의 우리 사람'들을. 하지만 소설같은 일들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마치 현실의 일처럼.

국내 초역이라는 책의 소개글이 시선을 끌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정보 전쟁을 소재로 하는 스릴러.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스릴러적인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풍자적인 요소가 더 짙게 다가왔다.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갈등,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등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사람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들고 다니는 세구라는 경찰이자 고문기술자다. 자신에게는 고문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고문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강대국 사람들과 정치인이나 지주층들은 고문을 할 수 없는 부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고문을 할 수 있는 부류라는 그 말에서 시대적인 배경이 읽힌다. 가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으며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워몰드는 여러번 고민을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제어하지 못한 채 그 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조금은 이채로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책날개에 적혀있던 저자의 이력을 보았더니 격변의 20세기를 살면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로 시대와 인간을 기록했던 영국의 문인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글쓰기를 권유받았다고 하는데 결국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한때 공산주의에 빠져들기도 했고, 세계대전 중에 비밀정보부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인지 이 책에서도 사상이나 이념,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깔린다. 자신은 무교이지만 딸아이만큼은 절실한 가톨릭신자로 키우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딸의 미래를 위해 어설픈 정보요원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저자의 독특한 이력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고문기술자 세구라가 실존 인물이었다고 하니 왠지 서늘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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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없는 삶 -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날 용기
고명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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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브랜드 없는 삶은 없다. 이름이 브랜드인 까닭이다. 단지 유명하다, 유명하지 않다로 달라질 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몇 퍼센트가 유명 브랜드 제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영위하고 나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있어 브랜드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느냐가 중요하다.(-9쪽) 살펴보니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워지는 것들은 없어도 그런데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제품들이 제법 있다. 동네시장에서 사지 않는 한 어느 정도는 이름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품의 이름보다는 그것을 만든 기업의 이름을 우리가 알고 있는 까닭이다. 명품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런 것에 그다지 많은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쩌면 어떤 게 명품인지 잘 모른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이름난 제품들을 보기는 했지만 쓸데없이 비싸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유행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기 때문인지 트렌드라는 말에도 심드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트렌드라는 말이 감춰둔 속뜻이 변덕이라는 말에 웃음이 났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 시대의 상황에 맞게 변한다고는 하지만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말장난일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 소비를 추구하며 사는 현대사회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일 게다. 누군가에게 유행을 따르라고 강요받은 적 없을 것이다. 단지 자신이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휘둘릴 뿐. 소확행을 추구해본 적도 없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자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세상을 떠도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인데 더러는 특이한 사람이라느니, 혼자 잘났다느니 하는 말들을 들을 때가 있었다. 어쩌면 유행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물질에서 벗어나 내면에 집중하자는 행복론이 도대체 어떻게 물질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자본주의 시장의 목표물이 될 수 있었을까? 행복을 위한 삶의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주관적이며, 열거한 행복론은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두가 대중의 관심을 얻어 트렌드가 되면서 극단적으로는 웰빙과 미니멀리즘, 소확행, 욜로의 방식대로 살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103쪽)

이 책의 말처럼 옷으로 경쟁하고 차로 이겨서 행복하다면 그렇게 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옷이나 차로 경쟁하고 이긴다 한들 그것은 결코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필요도 없다. 그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 힘들 때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잘 알고 있듯이 타인들은 내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알맹이 없는 관심을 잠깐 받아봤자 남는 건 공허뿐이다.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경쟁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영화와 다른 역할에서의 승리자예요. 우리는 각자 다른 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경쟁할 수 없습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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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타고난 성향인가, 학습된 이념인가
존 R. 히빙.케빈 B. 스미스.존 R. 알포드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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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자의 차이는 크다.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며,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은 각자의 독특함을 더한다. 학계의 견해나 사회적 통념에서는 이러한 개별성이 특별히 지속적이거나 생물학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대다수는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선입견과 타고난 성향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115쪽)

타고난 성향인가, 학습된 이념인가.. 이 책의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궁금했다. 시끄러운 국내 정치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쩌면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찾아낸 하나의 유희는 아닐까, 하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 질문은 우매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타고난 성향과 학습된 이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사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학습되어지는 존재다. 자신만의 가치관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이미 어렸을 때부터 주입 되어진 사상이나 이념들로 인해 환경에 따라 그 차이를 보일 뿐이다. 마치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를 따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이 책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정치'라는 말의 뜻을 찾아보면 현실적 의미와 본질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나온다. 본질적으로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이라고 나오지만, 현실적으로는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그저 궁금할 뿐이다.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여러 사건은 우리를 잠깐이라도 더욱 행복하거나 슬프게도 하지만, 대부분은 낙관과 비관 또는 그 중간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양한 사건의 영향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이는 행복 설정점을 일시적으로 벗어난 현상일 뿐이다. 심지어 절단 수술이나 복권 당첨과 같은 인생의 중대사를 경험하더라도 몇 달만 지나면 놀랍게도, 그 사건을 겪기 이전에 느꼈던 행복함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 성향도 마찬가지다.( -40쪽)

그렇다면 나는 진보주의자일까, 보수주의자일까. 책의 말미에 정치 성향을 테스트하는 부록이 있다. 테스트를 해보니 보수 쪽에 가까운 진보라는 결론이 나왔다. 보수주의자가 강력한 리더를 향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진보주의자는 그 리더에 대한 의심을 보인다. 진보주의자는 평등한 재분배에 대한 기대를 하며, 외부 집단에 대해 개방성을 보인다. 그런 반면 보수주의자는 규범 위반자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원하지만 진보주의자는 관대한 처벌을 원한다. 전통적 생활 방식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보수주의자와는 달리 진보주의자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66쪽에 나와 있는 표를 말한 것이지만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완벽한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는 없다.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쪽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까닭이다.

모두가 정치적 화합을 이루어 내고, 조화의 중심에서 하나 되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여도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환상이다.( -47쪽)

이 책은 정치 성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학문에 대한 실험과 분석이 실려 있는 듯 보여진다. 유전적으로,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생태적으로... 심도있지만 정치라는 말의 의미에 크게 뜻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면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간사하고 얍삽한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작금의 세태가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9장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는 새겨둘 만 하다. 저마다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일 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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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동물보다 잘났다고 착각할까 - 자신만이 우월하다고 믿는 인간을 향한 동물의 반론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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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간도 동물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지구의 모든 생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늘 그것이 궁금했다. 어쩌면 인간은 그런 자만의 힘으로 이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끝없는 자만과 교만이 작금의 인간 멸망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자각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가 그 말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반성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은 반성후의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여기 이 책은 '자신만이 우월하다고 믿는 인간을 향한 동물의 반론'이 담겨 있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인간이라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지. 다른 동물과는 별개로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다는 정의가 있었지만 동물을 통해 연구 분석한 결과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인간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언어나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잔인함과 같은 것은 많은 동물에게서도 나타났다. 서로를 보살피며 가족을 이루는 것과 같은 사회적인 구조 역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물도 인간처럼 노예를 부릴 줄 알고, 동물도 인간처럼 가족의 소중함을 안다. 현재 지구상의 견종이 400종이나 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인간의 필요에 맞게 그리 많은 견종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디 개 뿐일까? 수많은 생태계의 존재들이 인간의 필요에 맞게, 혹은 인간이 다루기 편하도록 새로운 종들이 태어났을 것이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이 책은 많은 연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에 대한 오해를 알려준다. 동물도 인간처럼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죽이며, 동물도 인간처럼 단어를 배우고 기억할 줄 안다.

반려견의 시대처럼 보이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반려견을 마치 사람처럼 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려견의 의인화는 좋은 것일까? (물론 반려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뉴스를 보다가 얼핏 반려견을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님을 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간에게 어울리는 인간의 삶이 있듯이 개에게도 개에게 어울리는 삶이 있는 거라는 말을 이 책에서도 보게 된다. 공감한다. '동물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와 다름을 존중하는 것' 이라는 말이 큰 울림을 준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떠오른다. 그 작품속에서 '그들은 간사하며 성품이 악하고 배반을 잘 하면서 복수심도 강하며 건강하지만 겁이 많은 정신을 갖고 있다' 고 인간을 묘사했었다 무려 1726년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이 책은 생물 다양성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그것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발전은 더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결국 다시 돌아왔다.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으로. 변화하지 않고 적응한 종은 없었다는 말과 함께. /아이비생각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인간은 하나의 독특한 동물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은 동물심리학 분야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능, 추상성, 언어, 문화, 도덕성 등 지금껏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고 여겨 왔던 요소들조차 다른 포유류에서 발견되었다. (-241쪽)

인간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니다. 우리의 활동과 행동, 즉 지나친 소비주의와 절제 부족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진정한 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에 의존하고 있음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본인 자연을 파괴하거나 과도하게 개발해 이윤을 창출하는 무분별한 경제 시스템으로는 돌아가지 말아야겠다.(-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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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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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 엘리너 캐넌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28세의 나이로 두 작품만에 세계 최고 권위의 맨부커상을 거머쥔 천재 작가라고 소개되어져 있다. 24세에 데뷔작을 쓰고 주목 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필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원서가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부커상 수상작 중에서 가장 긴 작품이라고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상당히 촘촘한 짜임새를 가졌다는 느낌과 열린 결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도입부분에서는 살짝 버벅거렸다. 장황한 듯한 설정이 지루한 느낌을 불러왔던 까닭이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속도감이 붙었다. 이런 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듯 하다.

절친인 미라와 셸리는 게릴라 가드닝 단체 '버넘 숲'에서 활동하고 있다. '버넘 숲'은 일종의 동아리로 버려진 땅에 씨를 뿌리고 거기서 나는 작물을 소비하거나, 이웃에게 선물하거나, 가끔은 팔기도 하는 비영리단체다. 버려진 땅이라고는 하나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닌 관계로 심었던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버넘 숲'의 회원들은 제대로 된 규칙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친환경을 외치며 모였지만 그들에게는 일종의 반골성향이 있다. 쉽게 말해 기존의 권위나 질서에 반항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조금씩 침체되어가고 있던 '버넘 숲'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산사태로 고립된 손다이크 마을의 한 부지를 찾아 답사를 떠났던 미라는 드론 제조업체의 CEO이자 억만장자인 로버트 르모인과 우연히 마주친다. 땅의 주인 몰래 어떤 사업을 하고 있던 르모인과 역시 땅의 주인 몰래 작물을 심어 가꿀 계획을 가지고 있던 미라는 서로에게서 묘한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사업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버넘 숲'을 끌어들이기로 한 르모인은 미라에게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미라는 '버넘 숲'의 회원들을 설득하지만 '버넘 숲'의 일원이었던 토니는 르모인의 이름을 듣자 분노하며 '버넘 숲'에서 탈퇴한다. '우리가 지지하는 모든 것의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미라와 셸리는 씨앗을 심기 위해, 그리고 토니는 르모인의 뒤를 캐기 위해 각각 손다이크로 향한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를 가진 실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발생한 살인 사건과 토니를 쫓는 검은 그림자들. 토니가 알게 되는 충격적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읽으면서 몰입도가 점점 커진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테크놀러지와 자연주의다. 빅데이터등 디지털 기술의 끝없는 발전을 추구하면서 자연이 옛날처럼 우리 곁에 살아 숨쉬기를 소망하는 모순된 관점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미래를 살아가야 할 청년 세대를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기성세대들의 자연 파괴는 미래를 망칠 뿐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빠르고 편한 현실에 젖어들고마는 우매한 삶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점은 과연 그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 두가지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열린 결말을 선택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추진력은 좋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고집 센 미라, 미라에게는 든든한 조력자로 느껴지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재감은 연약한 셸리, 도전 정신은 뛰어나지만 자신만의 논리에 사로잡힌 토니, 이 세 사람이 자신들과는 뜻과는 무관하게 사건에 얽히게 되는 줄거리에서 마치 추리소설 같은 느낌을 전해 받기도 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르모인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어쩌면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미라도, 셸리도, 토니도, 르모인도, 모두가 자신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느껴졌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이 글의 배경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모든 것이 게임이고, 게임에서 이기고 싶으면 자신을 최적화하고 실현하고 이용해서 이점을 가져야 할 테고, 유약함이나 필멸이나 한계나 인간성이나 염병할 시간의 흐름 같은 진짜 인간 경험을 하면 안 돼. 그것들은 그저 집중을 흩트리는 방해물, 결함, 우리가 엄선하고 맞추고 자유로이 선택한 진정한 존재의 걸림돌에 불과하니까. 물론 우리가 우리 인생의 소비자인지 생산물인지 결코 알 수 없지만,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야, 어느 쪽으로건. 시장의 자유!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존재하는 건 그것뿐이라고! -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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