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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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라는 단어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태극기다. 건곤감리(乾坤坎離)는 주역의 팔괘 중 네 괘 이름으로, 태극기 네 모서리에 있는 4괘를 뜻한다. 각각 하늘·땅·물·불을 상징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질서를 나타낸다고 설명된다. 건(☰)은 하늘을, 곤(☷)은 땅을, 감(☵)은 물을, 리(☲)는 불을 뜻한다. 이 책의 16쪽 '8괘 한눈에 보기'라는 표에도 나와 있다. 각각의 괘가 상징하는 방위도 다르다. 건은 북서쪽을, 곤은 남서쪽을, 감은 북쪽을, 리는 남쪽을 가리킨다. 끊기지 않은 긴 막대기 하나를 양효라 하고, 가운데가 끊긴 막대기 하나를 음효라고 한다. 양효는 나아감·강함·펼침을 나타내고, 음효는 물러남·부드러움·거둠을 나타낸다. 이 두 기호를 세 개씩 쌓으면 팔괘가 된다. 즉 이 여덟 가지가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며, 하늘·땅·우레·바람·물·불·산·못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陰陽五行說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여덟 가지가 세상을 읽는 언어라고 말하며, 춘추전국의 영웅들이 이 언어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어렵다. 그래서 다시 찾아보니 주역의 64괘는 미래를 단정하기보다 현재의 구조와 변화의 방향을 읽어 판단을 돕는 상징 체계로 소개된다는 말이 보인다.

주역이라는 단어를 보면 명리학이 생각나고, 명리학이란 단어를 보면 사주팔자가 생각난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말들이다. 주역은 64괘로 되어 있다. '괘'는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 체계를 상징하는 유교용어라고 나온다. 命理學은 ‘명(命: 삶·운명)’과 ‘리(理: 원리·이치)’를 결합한 말로, 四柱八字를 통해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흐름을 함께 살피는 방식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이라고도 한다. 四柱八字는 인간의 운명을 알아보는 네 가지 요소와 그를 표현하는 여덟 글자다. 사람이 출생한 年月日時를 사주라 하고 간지가 각각 두 자씩이므로 팔자라 한다. 사주는 陰陽과 五行을 따져 좋은 일이 있을지 나쁜 일이 있을지를 따져본다. 우리가 보통 점을 본다거나 하면 가장 먼저 사주를 먼저 물어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사람의 일생을 운명론적으로 보는데서 나온 말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관념으로 자리잡은 사상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때는 자식의 좋은 四柱八字를 위해 제왕절개를 택하는 엄마들도 많았었다.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생각했던 은근한 기대감을 가차없이 날려 버린다. 마치 四字成語에 관한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결국 모든 것의 근본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될테니 말이다. 책표지에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이라는 말이 보인다. 뭐 아는 게 없으니 그저 공자 왈 맹자 왈이다. 자기계발서가 그리 많아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실천은 없이 이론만 따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일흔 살을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70부터 老人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고, 그만큼 사람의 일생도 길어졌다. 게다가 변화의 속도마저 빠르다. 어느새 한 갑자를 훌쩍 넘어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不惑이니 知天命이니 하는 말들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세월을 살았다. 그런데도 이런 주제에 시선이 간다. 남은 삶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아직 살아야 할 날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싶은 까닭이다. 이 책은 不惑의 세월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책인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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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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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있지만 대한민국에도 각종 문학상이 있다.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도 기대되지만 세계일보가 주관하는 세계문학상도 꽤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지금은 유명해진 작가의 이름들이 이런 공모전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긴장하기는. 기대하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그냥 빠져들고 말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멋있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넘기는 순간마다 마치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궁금해서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만들다가 어느새 소설까지 마수를 뻗친 생태계 교란종. 하, 소개글이 꽤나 재미있다. 《커미션》이라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는 말도 보인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 민속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었다. 1994년생이다.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샤머니즘이라는 말이 있다. 원시적인 종교의 한 형태로 대한민국에서는 무속신앙이라고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원시적인 의식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한, 중, 일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는 수목 신앙과 가택 신앙을 다루고 있다. 수목 신앙은 마을 어귀에 있는 '당나무'를 모신다거나 오래된 나무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중에서 아이를 낳은 집 대문에 금줄을 치는 것도, 장독대 항아리에 금줄을 치는 것도 가택 신앙의 일종이다. 한옥을 지을 때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하는 상량식도 가택 신앙이고, 풍수지리를 보는 것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옥을 지을 때 가택 신앙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가택 신앙이 등장했었다. 한쪽에서는 전통이라 하고, 한쪽에서는 미신이라고 하는 우리의 민속문화다.

파가(破家) - 집을 허묾, 개기(開基) - 집터를 닦음, 열초(列礎) - 주춧돌을 놓음, 선목(選木) - 나무를 고름, 벌목(伐木) - 나무를 벰, 입주(立柱) - 기둥을 세움, 상량(上樑) - 대들보를 올림, 생가(生家) - 생명의 집... 목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전 대통령의 생가가 불에 탔다. 그러나 그 집을 지은 도편수는 그 집을 절대 복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하지만 생가를 관리하는 쪽에서는 집의 복원을 원한다. 한옥이라는 게 아무나 지을 수도 없었으니 또한 아무나 복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죽은 도편수의 아들이 그 집을 복원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 집을 훑어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주 오래된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전한다. 태어난 집 生家가 살 수 있는 집 生家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치밀하게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한조각씩 맞물린다. 무속신앙과 역사가 교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찾아오는 공포감이 꽤나 쫄깃했다. 인간의 욕망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무엇때문에 영생을 꿈꾸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은 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의 원한이 서려있던 집 한채. 그 원한을 먹고 살았던 악령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흠칫했다. 얼마전에 <동궁>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미스터리 오컬트 사극이라고 소개했는데 꽤나 흥미로운 느낌을 전해 받았었다. 혹시라도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면 그에 못지 않은 드라마가 될 듯 하다. 이렇게 멋진 소설을 써 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말 멋진 소설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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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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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처음으로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에 대해 찾아 보았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었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그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는 말이 보인다. 그 때의 경험이 그에게는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 역시도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다는 말을 보고 그의 첫 작품이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배경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나 현실적인 문체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 책을 택하게 되었던 것은 <백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읽어본 기억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용이 궁금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에 줄거리 속 두 남녀의 대화가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작가에게 사랑에 관한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생애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힘겨운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아마도 그가 꿈꾸던 유토피아를 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로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게 되었지만.

학창 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줄 알았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읽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기를 시도해 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왜 그토록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물론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있었고, 다시 읽기를 시작하면서 의외의 재미를 느낀 책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와 함께 19세기 러시아의 문호로 일컬어진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단편 <백야>,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이 실려 있다. 다소 엉뚱한 상황 전개 속에서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은 문장과 내용들이 살짝 껄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과 작금의 사람들은 무엇이 다른가. 시대만 다를 뿐 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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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은 스스로를 베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현자병법 1
항우 지음 / 블랙라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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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를 읽은 건 오래 전의 일이다. 진시황이 죽고 폭정과 혼란이 계속되자 항우와 유방이 분연히 일어선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항우는 무력을 내세우고, 유방은 올바르게 인재를 등용했던 인물로 비춰진다. 결국 유방의 승리로 끝난다. 그 마지막 결전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유래가 되었다. 항우가 해하에서 한나라 군대에 포위되자 한나라 측이 초나라 병사들의 고향 노래를 사방에서 부르게 했다는 심리전이다. 이 노래를 들은 초나라 병사들은 절망에 빠져 탈영이 늘었고, 항우도 이를 듣고 탄식하며 전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이 바로 초나라의 항우다. 서초패왕西楚霸王은 항우가 스스로를 자칭했던 말이기도 하지만 항우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많다. 조조를 다시 보았고, 놀부를 다시 보았고, 계백을 다시 보기도 했던 것처럼. 그처럼 저자의 시선은 난세를 살아내야 했던 항우의 결단과 타협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자기계발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누구보다 큰 뜻을 품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인물이라는 말도 보인다. 이 책은 그의 삶에서 드러난 과감한 결단력, 두려움을 압도하는 용기,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감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인생의 크기는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에서 결정된다고. 그렇지만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어떤 기준보다 환경이 더욱 더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서 그 말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덕을 강요한다. 친절해라, 양보해라, 둥글게 살아라, 누구도 미워하지 마라, 이 말들은 그 자체로는 아름답다. 그러나 이 말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무형의 압력은, 사람을 한 마리 길들여진 초식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풀밭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누가 와도 도망갈 줄 모르고, 결국 자기 운명을 누군가의 손에 맡긴 채 끝나는 짐승. 그것이 군중의 도덕에 길든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다.(-99쪽)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타인의 잣대를 들이민다. 몇 살에 무엇을 이루어야 하고, 어떤 자리에 도달해야 성공이며, 어떤 모습으로 물러나야 품위 있는 퇴장이라고. 이 잣대들은 너무 촘촘해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우리의 선택을 대신 내려 버린다.(-205쪽)

그가 살았던 시대는 칼로 승부를 내는 시대였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시대의 무대장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망설임속에서 썩어가지 말 것, 남의 잣대에 자신을 맡기지 말 것,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무능을 숨기지 말 것, 패배할 지언정 변명하지 말 것. 이 모든 가르침은 칼이 없는 시대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아니, 칼이 사라진 시대일수록 더욱 절실하게 살아 있다. 보이지 않는 칼날들이 우리의 일상을 더 촘촘히 베고 있기 때문이다. (-213쪽)

미움 받을 용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때가 있었다. 그만큼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말 일터다. 책을 읽고 정리를 해보니 저자가 보았던 항우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군중의 도덕이라는 망에 걸려 든다. 그 망을 찢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어떤 이는 튄다 하고, 어떤 이는 부럽다고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군중의 도덕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자신만의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일 것이다. 주도권을 자신이 쥐는 삶의 태도를 배우라는 저자의 말은 여운이 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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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시간여행 - 수채화로 길어 올린 추억의 풍경 여행길 그림책 2
최명옥 지음 / 인문산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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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이름이 ‘맑은 개울’이라는 청계천은 한양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모습과는 판이한 청계천 판자촌을, 똥덩어리 떠다니던 청계천을 기억한다. 가리봉동의 쪽방촌만큼이나 서러웠던 곳이 청계천 주변으로 늘어섰던 판자촌이었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철거된 삼일고가도로도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 시절에 유명했던 곳이 평화시장 끝자락의 헌책방 거리였으며 황학동 벼룩시장이었다. 그 황학동 벼룩시장이 지금의 동묘앞 서울풍물시장의 전신이다. 우리는 보통 지나간 것을 추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래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달동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을 반추하며 추억하기보다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던 까닭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옛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울이면 연탄재를 하나씩 들고나와 깨뜨리며 언덕길을 내려와야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다행이 남아 있었지만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듯 우리의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기에는 너무 빠른 듯 하다. 그래서 수많은 부작용도 생겨난다. 수채화로 길어 올린 추억의 풍경! 이 책이 시선을 잡았던 이유다. 답사를 다니면서 어렴풋하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현재 연필화를 배우고 있다. 추억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해 낸 일상의 느낌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곳들을 많이 가 보았다.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도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변화의 흐름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다. 종로조차도 젊은 시절에 거닐었던 그 거리가 아닌데 하물며 다른 곳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성북동 북정마을, 홍제동 개미마을은 이상하리만큼 정겹게 느껴졌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레트로 감성이니 뭐니 하면서 새롭게 보고 있긴 하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많은 아픔이 느껴지는 장소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의 그림속에서 상투과자를 보고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센베이 과자, 상투 과자는 그 당시 참 고급스러운 과자였었는데... 지나간 시간들이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아이비생각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오만한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이 이르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신 것이다.

<보왕삼매론>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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