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일년만에 고향을 찾게 되는 사진작가 다케루.. 기일임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이 인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형 미노루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삭여야만 했던 미노루의 속깊은 서글픔까지도.. 일년만에 찾게 된 고향에서 다케루는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치에코를 만난다. 극의 흐름으로 옛연인인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왠지 두 사람 사이엔 상당한 간격이 벌어져 있다. 그 치에코를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형 미노루는 치에코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는데 돌아온 동생 다케루는 치에코의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그들이 함께 어울려 찾아갔던 그곳에서 일이 벌어진다. 사진을 찍던 다케루는 우연하게 다리위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치에코의 장례식.. 미노루의 재판..

어쩌면 그것이 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다케루는 자신이 보았던 일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부터 묘하게 변해가는 형 미노루의 태도는 다케루에게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거듭되는 재판 과정에서 마지막 증인으로 나섰던 다케루의 증언.. 결국 그때문에 미노루는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그들 서로가 숨겨야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미노루가 출소를 하루 앞둔 날 미노루와 함께 일했던 주유소 직원이 찾아와 형을 찾아가 주길 부탁하지만 형을 거부하는 다케루를 보고 그가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고...

항상 그렇다. 형은 언제나 희생자여야 했고 아우는 언제나 저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렇다고 부모의 사랑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쳤던 것도 아니었을 게다. 왜 형에게는 늘 희생을 강요해야 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왜 형이라는 자리는, 장남이라는 자리는 굳이 희생을 하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형이었고 동생이었기에 빼앗고 뺏긴다는 것과 믿음과 배신,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라는 전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서로가 서로를 가해자라고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형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아우는 가졌다. 갖고 싶은 걸 다 소유할 수 있는, 자유분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지만 그는 외로웠다. 모든 것을 빼앗기기만 하지만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순응해가며 살지만 내면으로는 고통을 맛보아야했던,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형의 자리..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는 자신의 앞날을 걱정했다는 거다. 살인자가 될 형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최소한 줄이고 싶었다는 거다. 아주 철저하게 자기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던 아우의 존재였다.

형은 형대로 힘들어했고 아우는 아우대로 힘들어 했다. 도대체 그 날 다리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머니의 유품속에서 어린시절의 한때를 바라보던 다케루는 결국 출소하는 형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 영화속에는 끈끈하게 젖어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묘하게 흔들리는 심리상태를 배우들이 잘 표현해주고 있는 듯 하다.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형 역할을 맡았던 배우의 내면연기가 참으로 멋졌다. 자신을 버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을 지켜내기도 싫었던 형의 입장을 아주 잘 표현해준 배우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평가하려고 하지.. 때로는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은 순간이 누구나에게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저만이 그럴거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지..

괜찮은 영화라는 평을 많이 보았었다. 진즉부터 한번은 봐야지 했었는데 이렇게나마 만나게 되니 참 좋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소재였지만  영화속에 담겨진 메세지는 많았다.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겨준 영화였기에 OFF버튼 누르기를 잠시 보류해 두기로 한다. 욕망에 대하여,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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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포스터를 찾아보니 참 많기도 하다. 배우 하나하나를 클로즈업 시켜서 보여주는 포스터도 있고, 배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전체적인 설정만 보여주는 포스터도 있고.. 그런데 나는 이렇게 환하게 웃는 포스터를 선택한다. 왜일까? 포스터 하나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비록 배우였을 뿐이지만 그들에게도 나는 포스터와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당신도 국가대표입니다!' 이런 영화에 함께 동참하게 된 배우들 당신도 국가대표입니다!.. 정말 멋진 영화였다. 아웃사이더들의 서글픈 승리였다. 없는 자들의, 사회의 구석진 곳을 채워주던 자들의 애끓는 절규였다. 우리 사회의 모진 부분들을 가감없이 보여주던 설정이 참으로 좋았다. 친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입양아 차헌태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와 약간 모자란 동생을 두고서 군대에 갈 수 없었던 강칠구, 한때는 그래도 꿈이 있었으나 이제는 꿈을 버린 채 되는데로 살아가는 일회성 인생의 최흥철이, 그리고 아버지의 그늘밑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삭혀야 했던 마재복... 이들에게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던 방코치조차도, 피라미드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어쩌지 못하는 삶을 살아내던 방코치의 딸 수연이도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였다. 그랬던 그들에게 단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잠깐의 국가대표 제안은 정말이지 떨쳐버릴 수 없었던 악마와의 거래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못하는, 아니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절박한 현실이 있었기에.

삶의 굴곡과 현실의 바퀴는 정말 모질었다. 모질고 모질어 내 어머니를 찾았으나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모질고 모질어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와 모자란 동생을 위해 곁에 있어줄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파트는, 군입대 면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실함이었을 게다. 그들처럼 그들에게 다가서야 했던 방코치의 새로운 삶의 도약조차도 어쩌면 허상이었을게다.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꿈에 대한 허상.. 우리가 매일처럼 바라보고 쫓아가야만 하는 것도 어쩌면 허상일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부분부분마다 나는 크게 박수쳐주지 못한 것을 지금에야 후회한다. 관객의 눈치를 보면서 내 가슴속의 열기같았던 성원의 박수를 한두번으로 만족해야 했던 그 순간이 나는 너무도 미웠다. 

눈물을 짜내자고 만든 영화도 아니었고, 이런 것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그런 영화도 아니었다. 단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묻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속삭여 주었다. 그 영화 괜찮다고, 그 영화 볼 만하다고.. 정말 괜찮았다. 그리고 정말 볼 만했다. 크게 떠들지 않아도 이렇게 가슴 한켠을 싸아하게 만드는 느낌을 전해줄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지만 허울과 형식에만 치우치는 우리의 사회를 보는 것만 같아 떨떠름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뒷모습만큼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내면에 충실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이 영화속에 압축되어져 있는것만 같아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전반적으로 골고루 스토리라인이 잘 설정되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제작과정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노고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실제 선수들과 합숙훈련을 했다는 배우들의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칠구의 모자란 동생으로 나왔던 봉구가 실제로도 그렇게 선수명단에 올랐었는지는 모르겠다. 극의 흐름을 위해서 설정된 거였다면 조금은 아쉬웠던 부분이다. 꼴찌를 하고도 애국가를 부르던 그들의 모습이, 애국가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나? 서로 묻던 그들의 가슴속 열정이, 영화였지만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들이 진정 국가대표였다고... 스치는 재미와 일상의 가벼움만을 느끼고 싶어하는 세대들에게는 그다지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가벼움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 가끔씩은 이렇게 가슴 밑바닥까지 젖어드는 영화를 만나보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스크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한 줄의 글귀가 참으로 아팠다. 현재 우리나라의 스키선수로 등록되어져 있는 사람은 5명뿐이다... 골프붐이 일고 있는 스포츠계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유행어를 빌어 한마디 하자면 이렇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하나를 진행시키더라도 내면으로부터 차오르는 그 무엇인가가를 가슴속에 키워야 한다고. 내가 살고 있는 안양시에는 세계대회를 치루었던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있다. 덕분에 궉채이라는 선수의 이름도 우리가 알게 되었던.. 그리하여 한때는 인라인 스케이트 붐이 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스케이트장에는 바람만이 머물고 있다. 단 한번을 위해서 그렇게해야 했던 것일까? 힘겹게 시작했으나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뒷심부족이 너무 허탈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일면이기도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달라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좋을텐데...

어찌되었든 이 영화는 나도 지금 전달중이다. 아주 조용히. 그 영화 괜찮아, 그 영화 볼 만 해.. 거기 나오는 배우들이 연기도 정말 잘하더라.. 영화를 보다가 혹시라도 박수를 치고 싶은 생각이 들면 크게 박수를 쳐주고 와.. 나처럼 눈치보지 말고.. 아주 쬐끔 슬픈 장면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하지는 마.. 측은지심만으로 마무리하기엔 좀 그렇거든.. 마음을 열고 보면 더 좋을거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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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정 사랑했을까?  남자를 향해 여자는 외쳤지. 나도 누군가의 가슴속에 기억되고 싶었다고. 그남자는 그녀를 기억해줄까? 그토록이나 애절한 여자의 마음을 뒤에 두고서 어둠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그 남자는 과연 그 여자를 기억해줄까? 알 수 없지.. 사람의 마음이란 건 정말로 장담할 수 없는 것일테니...

빨간망또 이야기는 참으로 많기도 하다. 같은 맥락으로 뻗어나가는 줄기가 너무도 많은데 그들이 얘기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신기할 정도로 너무 다른 것 같아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느낌 또한 색다르다. 패전후 다시 일어나기 위한 일본이란 나라의 절실함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약간은 환타스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철저하게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매력이지만 조금은 무겁게 다가온다. 그 무거움을 삭혀주기라도 하듯 후세와 그녀의 짧은 사랑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내게 안겨주고 갔다.

이 애니메이션의 포스터를 언뜻 바라본다면 <로보캅>이 떠오른다. <로보캅>처럼 무지막지한 그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배재시킨 인랑이 주인공이긴 하다. 인랑.. 인간 늑대.. 늑대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면서 늑대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후세의 아픔은 그 당시의 일본과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다.

반정부세력인 '빨간두건단'의 어린소녀를 차마 사살하지 못하고 자폭하게 만들어버린 후세의 마음은 다시한번 그를 늑대로써의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강요한다. 무리지어 살지만 철저하게 혼자인 것이 늑대의 속성이었을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울부짖음이었을테지만 어찌되었든 우리가 겪어내야 할 현실은 냉혹하다. 냉혹할 수 밖에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선택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이다. 몰랐을 게다. 서로를 속고 속이던 만남속에서 사랑의 싹이 돋아날거라는 것을. 그들이 그것을 알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을게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현실이니까.

빨간두건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렇게 귀가 커요?
빨간두건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렇게 입이 커요?
거기 있는 고기를 먹으렴.. 창가에 작은 새가 날아와 말했습니다. 그건 네 엄마의 살이야..
거기 있는 물을 마시렴.. 어디선가 작은 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건 네 엄마의 피야.. 

빌딩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아름답다. 불빛이 휘황하게 빛나는 그곳은 마치도 환상적인 미래같다. 그녀는 그 환상적인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을게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던 마음 깊숙한 곳의 소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춥다고 점퍼를 벗어주던 남자와 함께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함께 떠나요... 그녀의 말에 도리질 했던 후세는 결국 기억되고 싶었다고 울부짖던 그녀의 마음을 버려두고 가버렸지. 왜냐고 묻지 않아야 한다.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일테니.. 

그리고 늑대는 소녀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쏘았습니다... 그녀처럼 울부짖으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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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와같은 소리가 참 좋다. 상여메고 나갈 때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는지.. 있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 소리를 그리워한다. 산사의 처마끝에 달려 바람소리를 대신 전해주는 풍경소리처럼 가슴 한쪽을 싸아하게 만드는 소리..  어여~ 어여~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여~ 어여~ 어렸을 적 하얀 종이꽃으로 치장을 했던 할아버지의 상여를 지금도 기억한다. 상복을 입고 줄을 지어 따라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빛바랜 기억속에서 그것들이 안고 있었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세월들!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너무 멀리 보내버린 것들이 많아져서 어쩌면 우리가 이토록이나 각박한 세상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놈의 젊은소, 옆에 있다면 그 궁둥짝을 찰싹찰싹 소리나게 때려주고 싶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했던 첫마디였다. 정말이지 그 젊은소가 너무도 미웠다. 그 큰눈을 씀벅이며 묵묵히 할아버지의 동행이 되어주던 늙은소가 울던 날 나도 눈물이 났다. 젊은 소와 그 젊은소의 어린 소를 위하여 두배로 일을 해야 했던 늙은 소는 아마도 왼쪽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길들여지지 않기 위하여 할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젊은 소안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대, 그리고 나의 다음 세대들이 들어 있었다.

"이 소가 없어져야 아버님이 일을 안하시니까 소를 파세요 아버님! " 
나는 묻고 싶었다. 만약에 정말로 소를 판다면 그 뒤에 남을 아버지의 모습에 대하여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본 적은 있느냐고...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 있었으니까 많이 늙었다고 소를 보며 말하던 우리들은 과연 아버지의 늙음에 대하여 얼만큼이나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웃어요, 웃으라니까요! "
당신 몸이 아프셔도 그저 아파, 아파라고만 말씀하셨던 할아버지께서 병원엘 다녀오시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할머니와 사진을 찍으실 때 굳어진 표정을 보고 사진사가 말했었다. "웃으세요 어르신!"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게는 오로지 늙은소의 목에 걸린 워낭소리와 할머니의 투정 섞인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행복하셨을 게다.

"이 소가 사람보다 더 나아. 아, 잠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 소가 이 소라니까!"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곧 소의 그 맑은 마음이었으리라.
너무 늙어서, 이제는 고기도 안나올거라고 제 값을 쳐주지 않았던 우시장의 사람들에게 기어코 헐값에는 팔지 않겠노라고 다시 늙은 소를 끌고 오시던 할아버지는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하였어도 그 소를 팔지 못하셨을게다.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그 소를 어찌 팔 수 있을까?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며 좋은 곳을 가라고 빌어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할아버지와 소의 그 끈끈함이 끝내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내 부모와 내 자신과 내 자식이 한데 어울어져 가슴 한쪽을 저미는 듯한 아픔을 주고 갔다.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던 할아버지와 소의 말없는 대화가 너무도 아팠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당신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을라요. 당신없이 내 혼자 어찌 살겠다고.. 자식들한테 갈 수도 없고.. 간다해도 내가 거기서 어찌 살아요.. 그 눈치밥 먹으면서 나는 못사네요..."
소박한 할머니의 투정 또한 질펀한 아낙네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그것 또한 하나의 그리움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저놈의 소가 죽어야지 내만 이리 두배로 심들다.."

저 소가 죽어야 이 영화도 끝나겠구나...
오죽했으면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랬단다. 차마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나였다해도 아마 그랬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표현하기에는 감동적이란 말로도 뭔가 부족한 듯 싶다. 어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람과 소의 관계만도 못한 세상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부모님 세대의 그 끈끈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나 긴 세월을 걸어가고 있던 시간이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이 영화를 관람하던 엄마,아빠의 모습.. 비록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어버린 아들이지만 그래도 얼마나 이쁘기만 한지...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나의 눈이 빨갛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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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다. 정말 오랜만에.. 하지만 이 영화, 볼 때마다 왠지 껄끄럽다. 그리고 섬뜩해진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미리 가 본 시대는 2029년이다. 지금이 2009년. 딱 20년후의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왠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아침 로봇에 지배되는 세상이라는 신문기사를 읽게 된다. 나도 모르게 끄덕거려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컴퓨터라는 기계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그 안에서 살아있던 사람이 죽어버리고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이 그리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 영화가 미리 가 본 시대에서는 만연되어지는 일이 아닐까?  환타스틱이라는 장르 자체에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 호러라는 장르 자체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황당할 것만 같은 냄새를 지독하게 풍겨대는 이 애니메이션에 시선을 고정시켜버린 까닭이 무엇일까?

이 영화는 묻고 있다. 당신은 누구냐고.  너의 영혼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바람처럼 속살거린다. 사이보그가 살아숨쉬는 세상이 되기도 전인 지금 우리가 늘 외쳐대고 있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지금 우리가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아니 잊어가고 있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미 과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2029년의 이 영화가 되묻고 있는것만 같다. 그러니 잃어버리지 말라고, 그러니 잊으면 안된다고 충고해주는 것만 같다. 우리가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네트워크라는 거대 정보의 정체성앞에서 우리는 왜 아나로그적인 정체성을 들먹여야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전자두뇌는 2029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우리 곁에도 전자두뇌는 살아있다. 아주 작은 모습으로 내 손안에 가볍게 들어올 수 있을만큼의 무게와 크기로 나를 이미 점령해버린지 오래다. 아니라고 거부한다면 당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섬뜩하다.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나를 지배하도록 허락해버린 상태이니 이미 내 안의 많은 것들이 하나 둘씩 나를 떠나고 있었을 것이다. 느끼지 못하는 아니 느끼기 싫어하는 그것도 아니라면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미세한 감정들이 이미 오래전에 나를 옭아매었을 것이다.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태되기 싫은 인간의 오만과 욕심. 동료의식을 느끼지 못하면 왠지 바보스러운... 어쩌면 바코드가 내 몸 어딘가에 찍혀져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것들이 참 많다. 기계인간이 되기 위하여 은하철도 999호를 타야했던 철이의 모습이 생각나고 너무나도 앞서버렸던 진화와 진보속에서 스스로가 묻혀버려야만 했던 천공의 성 라퓨타가 그렇다. 풀썩풀썩 썩어버린 것들의 잔재들만이 날아다니던 오염된 세상속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했던 나우시카의 그 마음 하나뿐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도대체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생명을 요구하게 되는 전자 프로그램 인형사의 그 욕심에 허를 찔린다. 사이보그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멈춰버리게 할지도 모를 바닷속을 잠수하는 쿠사나기의 그 공허감에 그만 허탈해진다. 전자프로그램이었던 인형사가 운운했던 자기 의지는 또 무엇일까? 다시 생명이고 다시 사람일바에는 우리 지금부터라도 나우시카의 마음을 배웠으면 좋겠다.  아이덴티티 identity .. 나를 구성하고 있는 육체와 영혼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우습게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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