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 결별과 부재의 슬픔을 다독이는 치유에세이
조앤 디디온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피처 에디터:
문화,트렌드,인물,새로운 정보 등 잡지의 읽을 거리를 다루는 에디터.
새로운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서 전해야 하므로 세상의 모든 일에
오감을 열고 있어야 하며,감칠맛나는 글솜씨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디디온의 직업이다.
일종의 기자와 칼럼리스트를 섞어놓은듯한 느낌이 든다.
정말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예고없이 닥친 시련과 싸워나가는
일년의 과정을 사실 그대로 그렸다고 한다.
<상실>이란 제목에 이끌렸고 실제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몇장을 읽으면서 내가 과연 그녀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싶었다.
크리스마스날 외동딸이 심각한 폐렴과 패혈성 쇼크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닷새 뒤 딸의 문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급성 중증 심장병으로 숨을 거둔다.
한꺼번에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둘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픔이 너무 갑작스레 찾아오면 그 아픔을 처음엔 느끼지 못하듯이
그녀 역시 처음의 슬픔을 느끼지 못한채 남편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작업실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나머지 신발들을 처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그곳에 서 있다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돌아오면 신발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루고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남편의 부재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거다.
갑작스러운 이별앞에서 아닐거라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하지만
이내 그녀곁을 떠도는 남편과의 시간들, 이미 지나가 추억이 되어버린 일들이
그녀에게 찾아와 인정해야만 한다고 되뇌이던 순간 그녀의 비통함이라니!
비통에 젖은 사람에게는 어느 누구도 무언가를 강요하면 안된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적으로 접근을 삼가야 한다. -- 주변 인물들은 '필요없다'는 말을 듣거나
환영을 받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말아야 한다.

이제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녀는 힘겨워하지만 그렇게 있을수만은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딸이 아직 병원에 있는 까닭에.
병원으로 달려가 딸의 곁에 머물며 그녀는 끝도 없이 말한다.
괜찮아질거야. 엄마가 있잖니. 늘 곁에 있어줄께.
그리고 그녀는 딸의 병에 관한 전문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하고
그것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내 의사와의 원활한 소통을 꾀한다.
행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인하여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여.
"엄마 언제 갈거야?"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외동딸 퀸태나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함께 떠날 수 있을때까지 곁에 있을거라고 대답했다.
그아이는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슬픔과 비통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삶의 힘겨움은 그녀를 억누르고
언뜻언뜻 다가오는 두려움에 그녀는 몸을 사린다.
그럴때마다  곁에 두었던 책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그녀의 강인함 앞에서
나였다면 과연 저렇게 의연하게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주 교묘하게 슬픔과 슬픔사이를 비켜다닌다.
나는 스스로를 동정하는 야생의 생물을 본 적이 없다.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죽은 조그만 새도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D.H. 로렌스

40년을 함께 부부로 지냈던 사람과 3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던 딸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겨주었을까?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시련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이 책을 쓰며 그녀가 겪었던 슬픔과 비통함이 어떤 것인지를,
그때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어떤 식으로 자신을 힘겹게 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곧잘 말한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픈 것처럼.
그리고 그 아픔을 오직 나만이 갖고 있으며 나만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어디 그런가? 속속들이 제 속을 다 드러내놓고 살지 않는 까닭에
오직 나혼자만이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책을 읽는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雪上加霜이란 말이 있다. 시련은 겹으로 온다고 했던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막막함을 느꼈다던 역자후기를 읽으면서
과연 그 느낌이 제대로 전해진 것인지를 나는 내게 다시 물어야 했다. /아이비생각

<이 책은 슬픔과 비통에 관한 심리학처럼 정리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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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좀 황당하다.
뭐야?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거지?
사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다. 거기에다가 그림도 많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속에서 나는 정말이지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버린 듯 하다.
몇 장을 읽다가 다시 책표지 안쪽으로 돌아온다.
작가의 프로필을 읽기 위해서다.
마르탱 파주...1975년생.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과 엽기 발랄한 유머 감각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이 책을 만들어내서 프랑스 독자를 열광시켰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이 열광하였다는 말이 도무지 와닿지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뭐지? 왜 나는 이렇게 헤매고 있는거지?
이런 표현을 은유적이라고 말하기엔 좀 억지스럽지 않을까?
느닷없이 광고카피가 하나 생각났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뭐 그런 광고가 하나 있었다.

잠옷 입고 일하면 업무에 방해가 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
그럼 왜 안되냐고요? 간단합니다. 잠옷을 입고 일을 하면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20쪽>
참으로 엉뚱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그런 거!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나보다 하다가는 이내 또다시 길을 잃고 만다.
도대체 내가 느끼고 생각해야 할 부분은 어디쯤에 있을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눈을 부릅뜬다.
그래도 역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나의 관심속에 있었다.
날마다 자살을 꿈꾸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광고글 때문에.
죽음을 다루는 작가들의 그 세계를 한번쯤은 비교해 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까닭에.
그러나 나는 무참히도 짓밟히고 말았다.
요즘 애들말처럼 이건 아니잖아! 였다.

그래도 가시밭길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간다. 내가 가야 할 길이기에.
문득 이건 뭐지? 반가운 마음이 드는 길 하나를 만난다.
감정곤충을 말할 때는 아하 멋진 표현이군!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가장 아름다운 곤충은 가장 좋고, 흥겹고,지속적인 감정이다.
그 곤충들은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옷자락을 휘날리는 환상적인 나비처럼 화려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가.
가장 보기 흉한 곤충은 비열하고 못된 감정이다.
그것들은 남몰래 숨어서 바닥을 기어 다닌다.
그리고 발육 부진에다가 허약한 상태로 지내는 곤충은
불행한 감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항상 위축된 채로 살기 때문이다.<93쪽>
나는 차라리 그냥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오랜만에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낸 듯 싶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히 찾아낸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들이 애완동물을 산책시킨다.
사무실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출근하는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애완동물은 다름 아닌 억압,궤양,경쟁,두려움,식은땀,야망,복통
따위의 짐승들이다.
애완동물의 주인들은 녀석들을 줄로 잘 묶어서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다.<97쪽>

이쯤에서 나는 다시 책표지의 작가 프로필로 되돌아간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낸 작가는 대학에서 심리학,언어학,철학,사회학,예술사,인류학 등을
전공했다.접시 닦기, 야간 경비원,기숙사 사감,페스티벌 안전요원등으로 일하며....
아하! 그래서 이토록 자신을 숨기는데 명수가 되었구먼?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이야기라고.
아니면 세대차이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겪었던 느낌과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옮겨 자전적인 성격이 있는 글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숨겨놓은 책이다.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처럼 나 찾아봐라 하며서 요리죠리 피해다니는 느낌처럼.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내 수준이 얕은 것인지 작가의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인지.
아니면 문화의 차이가 이토록 먼 것인지.
어찌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같기도 하다.
배배꼬인 꽈배기처럼 비틀린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왠지 나의 선택이 미워지는 순간
이 짧은 책을 읽는데 소요되었던 그 기나긴 시간들이 생각났다./아이비생각
 
인생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난 단지 아가미가 달린 인간일 뿐이다 -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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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오르한 파묵은 진짜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지적인 게임,꿈처럼 아름다운 세계,가히 마법이다.
매우 지적이다. 그럼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등등
이 책을 평한 글들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랬을까?
몇번을 생각해봐도 나는 잘 모르겠다.
오르한 파묵이란 이름보다도 하얀성이라는 제목을 먼저 알게 된 책.
그러고나서 노벨문학상 후보에 우리의 작가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오르한 파묵이란 사람에게 넘겨줘버리고 말았다는 소식속에서
나는 이 책의 작자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터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던 듯 하다.
딱히 이것이다,라고 기억나는 책이 없는 걸보면.
그것도 아니면 나의 책읽기 수준이 아주 바닥일테다.아마도.
저토록 수많은 격찬을 받은 책이라면 어떤 책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려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던 듯 하다.
하얀성...
그 성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그 성에는 과연 누가 살까?
왜 하필이면 하얀성일까?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실상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18쪽>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안개속을 헤매고 있었다.
마치도 거울의 방에 들어앉아 마주보이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불행하게도 그 마주보이는 누군가는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똑같이 따라하기만 하고
내가 그속에 동화되어가는 것인지, 그가 내 속에 동화되어가는 것인지 조차를 알지 못한다.
마주보이는 그 존재가 나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채
마치도 타인을 대하듯 내 자신과 이야기를 하며 화를 내고 웃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지만
결국 들리는 것은 메아리처럼 되돌아 오는 목소리뿐.
우연히도 같은 외모를 한 채 한사람은 노예로 한사람은 주인으로써 마주친 두사람.
그러나 같음을 인정하기까지 그들은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사실상 서로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인양 그렇게 받아들인다.
떠나야 할 사람은 남고, 남아야 할 사람은 떠나버리는 인생의 아이러니.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되묻고 있다. 과연 그가 정말 나였을까?

우리가 누구이며,무엇을 원하며,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에 관한 자기 성찰적인 소설이라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지만 정말 난해한 책임엔 분명하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마다 나는 책장을 덮고 책표지의 그림을 한참씩 쳐다보곤 했다.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표지그림의 제목이다.
성위의 정사각형을 빙돌아가는 두 줄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란히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보며 걸어가고 있다.
몇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그 다음엔 또 몇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그런 그림.
그러니 그 두줄의 사람들은 제각각의 길에서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를 번복하고 있다.
그림속에 나를 집어넣고는 걸어보게 했지만 답답한 심정을 어쩌지 못하고
그안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멍하니 시선만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해"<227쪽>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것과 앞으로 해야 할 것이지요"<229쪽>

물음과 대답이 한자리에 공존하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거울의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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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애덤 매퀸 지음, 이지오 옮김, 오석균 감수 / 가치창조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해피앤딩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해피앤딩.
그러나 그 전형적인 해피앤딩으로 끝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수많은 힘겨움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감정들로부터의 탈출....
그런 것들을 이겨냈기에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해피앤딩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주인공 역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 이상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마음은 평온해졌다고.
이어서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는데, 무척 생소하고 낯설어서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빨려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만큼.
그리고는 끝내 울컥하고 올라오는 그 무엇을 안겨주고 간다.

하멜른에 쥐떼가 나타났다.
그 쥐떼를 몰아내기 위해 정의와 자비를 상징하는 다색의 바지를 입고 나타난 도제 요하네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이미 하멜른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이다.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쥐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에 의존하여 자행되어지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아직은 어린 도제 두명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하멜른이라는 도시에 이미 머물렀던 안셀름과 그 안셀름으로 인하여 도제가 된 요하네스.
어찌보면 안셀름과 요하네스는 동일체다.
우리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善과 惡을 그렇게 나누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惡은 항상 善보다 한발 앞선다. 그리고는 뒤따라 오는 善을 방해한다.
그러면 그 善은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그 惡을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분신인 그 惡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리라.
요하네스와 안셀름의 가슴속에 자리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그들의 惡을 키운다.
자신을 부정했던 부유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채 떠나야 했던 안셀름과
자신에게 한없이 나약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모든 일에 대해 포기만을 일삼던 아버지를
사랑으로 다시 만나는 요하네스.
어찌보면 구도는 뻔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둘의 내면세계를 꾸밈없이 진실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접어야 한다.
이 책은 이미 그 이야기에서 멀리 떨어져나와 또하나의 성을 만들고 있는 까닭이다.
옛날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로 시작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사실인듯도 싶은 배경들이 끝내는 나를 사로잡아버리고 말았다.
이 책에서는 6월 22일 요하네스가 하멜른에 도착하던 날부터
6월 26일 하멜른이 평화로운 마을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긴박했던 5일간을 다루고 있다.
그 5일동안이라는 시간을 빌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게 느껴진다.
아니 내가 찾아내기 전에 벌써 내 앞에 와 서있곤 한다.
요하네스가 아버지를 용서하는 대목에서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아버지,이제 충분히 오랫동안 당신께 화를 낸 것 같습니다.당신을 용서합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고 있는 두개의 세상이 참으로 신비롭다.
피리속 세상과 현실에 머무는 세상.
피리속 세상에서 우리는 과거를 만난다.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힘겹게 했던 과거.
어쩌면 그 과거들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기도 하겠지만
그 버팀목하나만으로 버텨내기에는 현실속 세상의 물결이 너무 센지도 모르겠다.
원리원칙대로만 살아지는 것이 正道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내가 속한 것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 나를 제외한 타인의 세상도 인정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이 아닌 피리속 세상에서 겉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만나는 요하네스와 안셀름의 모습에서
어른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찼던 그들의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하여 너무나 아파하던 두 영혼의 서글픔을 보았다.
책을 읽는내내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그건 아니라고, 그래서는 안되는거라고.
이 책에서는 안셀름을 따라갔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다.
아이들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이요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자는 묻고 있다. 정의는 무엇이고 자비는 무엇인가를.
물론 그 판단의 몫은 책을 읽은 나에게 돌아오겠지만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동화였지만, 그것도 이미 알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동화속 이야기였지만
내게는 가슴으로 읽혀진 책이 아닌가 싶다.
옮긴이의 말처럼 나도 한동안은 피리속세상에서 살아질 것 같다.
만들어 낸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왠지 곁에 머무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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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존에 사는 사람들을 아마조네스라고 부른다.
아마존이 고대 라틴어계열의 그리스어로
'아(없다)'와 '마존(가슴)'의 합성어이니까.
합쳐보면 아마조네스는 가슴을 도려내여 없앤 여인들을 뜻한다.<196쪽>

아마존이란 말밖에는 사실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저 나체족이 살고, 정글이 우거지고,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자연의 상태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려니 했다.
하지만 문명에 의해 아니 욕심뿐인 사람들에 의해 짓밟혔던 그들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때엔
왠지 숙연해지는 느낌을 전해받았다.
그랬었구나...하면서 고개만 끄덕이기엔 너무도 아팠을 그들의 과거.
자연은 그들을 치유했고 그들은 또 그렇게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도전! 지구 탐험대>라는 프로를 아주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생생하게 보여주던 그 화면들에게 정신을 빼앗겨가며 본 듯 하다.
책겉장의 말미에 씌여져 있었던 임성민 아나운서의 말처럼
매우 불편한 자세로 취재한 아마존 이야기를
아주 편안한 자세로 집안에 앉아서 본 꼴이 되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하면서 삶이 복잡하게 꼬이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늘 내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여 남들에게 보여야 할까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제나 노팬티로 돌아온다던 작가가 다시 돌아왔을 때의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존엔 없는 것도 많다.
욕심이 없고, 중독되어진 삶이 없고, 잘못이 없고, 권력이 없고...
그야말로 우리가 목숨걸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그들에겐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이라는 힘을 내세워 야금야금 아마존을 갉아먹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한도 끝도 없을 인간의 욕심앞에서 서서히 자연이 화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당연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잘 웃는 이들을 보면 나도 웃게 된다. 개인기도 필요없고, 위트와 해학으로
무장한 고급유머도, 어디서 열심히 외워온 말장난도 필요없다.
고갯짓 한번 눈썹 찡그림 한번으로도 그들은 기분좋게 웃어준다.
힘들여 웃길 필요가 없으니 자연히 농담도 쉽게 나오고
나도 별 것 아닌 일에 웃게 된다.<159쪽>

어쩌다 농담한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려워 망설이게 되는 경우.
너무나 계산적으로 변해만 가는 童心의 세계.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늘 남탓만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야말로 어떤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너나 잘하세요! 하면서.
중간쯤에 나오는 미스코리아 손민지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백혈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손민지의 병상을 지켜줬던 것도 아마존의 풍경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촬영을 마치고 돌아올 때 부족민 모두가 이별을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추장은 자신의 손녀에게 민지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그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가졌으면 싶었다.
그 깨끗한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준 그런 사람을 이 지옥같은 세상속에서
건져내 주신 신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나는 과연 행복한가? 그저 이들보다 조금 더 기술적으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명이 만든 굴레 속에서 태초에 받은 자유를 담보 잡힌 채
살아가는 나의 삶은 과연 이들보다 행복한가?'<263쪽>

이 책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옷한벌은 건졌지않느냐던 어느 가수의 노래가 생각난다.
걱정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해 두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벗고 살아도, 손에 가진 게 없어도 만족한 그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너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나의 대답은 단연코 아니올시다 이다.
이미 문명에 찌들대로 찌든 그야말로 병들어버린 내가 거길 가서 어떻게 살겠다고?
지금 아무리 내가 그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며칠전 신문에서 현대판 정글북 이야기가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가 잡혔을(?) 당시 사람의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동물처럼 그르렁거렸다고 한다.
그녀가 잡히지 않았다면 19년동안 적응해 왔던 생활 그대로 잘 살아가지 않았을까?
이제와서 남은 인생을 사람처럼 살아가라고 종용하다면 너무 잔인한 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에게 '내일도 오늘과 같을 거야'라는 보장을 누가 해준다면 어떨까?
우리는 마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빠질까봐 그 추락을 막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닐까.<265쪽>

이 책을 읽는 내내 뭔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애벌레를 잡아 먹고, 아나콘다를 잡아 요리를 해먹고, 개미나 곤충들을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먹는 사진을 보아도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엔 으악! 놀라기도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사진을 찾아서 보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그 모든 것들이 자연속에서 나와 자연속으로 되돌아 간다.
결코 그들은 그들이 살아가야 할 자연을 훼손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할 만큼의 양만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우고 살라고.
그래서 얼만큼씩을 비워내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설령 조금 비웠다해도 비운만큼을 아니 비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채우려하지는 않았는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허전한 우리들 삶의 모습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이런 책을 볼 수 있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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