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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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준에 따라 지능이 높은 동물을 순서대로 말한다면 침팬지, 돌고개, 돼지, 코끼리, 까마귀, 문어, 쥐, 고양이, 개, 개미라고 한다. 이 책에서 각 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의하면 그렇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과학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개미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첫작품 <개미>는 상당한 반응을 불러왔었다. 그 때가 1991년이니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걸 보면 참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첫작품 <개미>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고양이에 관한 특성을 많이 엿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비록 인간의 기준이지만 지능이 높은 동물에 고양이가 속해있는 걸 보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싶다. 아무래도 반려동물로써 인간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동물이 고양이였기에 더욱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았을까 슬며시 짐작해 본다.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고, 테러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라는 소설의 배경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혀버린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속의 인간은 조연에 불과하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어버린 쥐와 그들로부터 인간과 고양이를 구원하여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고양이의 전쟁이다. 의인화된 동물은 너나할 것없이 인간 중심의 사회를 규탄한다. 하지만 의인화된 동물들의 마지막이 어땠는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머릿속을 채웠던 것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나스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었다. 또한 이 책속에는 그야말로 잡다한 지식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듯 하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암컷 고양이 바스테드와 수컷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이집트 여신과 수학자의 이름이다. 이름만으로 그들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피타고라스는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실험실의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머리에는 USB를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알아낼 수 있다. 여신 바스테드 옆에서 그를 보좌하는 역할로 충분하지 않은가? 게다가 바스테드 옆에는 늘 함께하며 돌봐주는 인간 집사 '나탈리'가 있다! 전염병을 피한 소수의 인간과 고양이 무리를 이끌고 시테섬으로 피했지만 그들은 곧 쥐들에게 포위당하게 된다. 쥐떼를 이끌고 있는 쥐들의 우두머리 흰쥐의 머리에도 구멍이 있다. 그 역시 실험실의 쥐였던 까닭이다. 피타고라스보다 좀 더 넓은 지식의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흰쥐의 이름은 티무르. 중앙 아시아 최대의 정복자인 몽골제국의 티무르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는 세계사를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것처럼 쥐떼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시테섬에 갇힌 자신의 무리를 구하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섬을 탈출한 고양이 바스테드와 피타고라스, 그리고 나탈리는 과연 그들 무리를 구할 수 있을까?

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양이 바스테드는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도 구멍을 뚫었었다. 저들은 그 구멍을 제3의 눈이라고 부른다. 동물조차 인간의 지식을 모아놓은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는 설정이 조금은 우습게도 보이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만큼 잘난 존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스테드 일행이 시테섬을 나와 모진 고초를 겪는 과정이 흥미롭다. 멸망해가는 인간의 세상속에서 저들만의 무리를 지어 살아남은 존재들이 있었으니 또다른 고양이들, 개, 돼지등이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지능이 높다고 책정했던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가 실험대상 동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우두머리의 머리엔 하나같이 제3의 눈이 있었다. 인간의 오만과 교만이 반격을 당했다고나 할까? 그들은 모두 인간이 저지른대로 고스란히 돌려주기를 원한다. 마치 지금 세상을 반격하고 있는 기후처럼. 책을 읽으면서 내내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서히 파리를 점령해나가는 쥐떼의 습격앞에 처참하게 무너지던 문명의 세계와 시체더미들을 그린 장면은 페스트 그 자체였으까. 인간에게 샹그릴라나 유토피아와 같은 세계가 있기는 한 것일까? 쥐떼에게 쫓기던 저들 모두가 연합하여 싸웠지만 결국 패한 것과 같이 페스트나 전염병은 여전히 우리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이 책속에서 각 장을 이어주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중 하나라고 한다. 일곱 살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베르베르가 살면서 알게 된 지식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하니 다루고 있는 부분은 방대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게 문명은 어쩌면 희망일수도, 어쩌면 불행일수도 있겠다고. 주인공 바스테드는 꿈꾸었던 고양이만의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모든 종이 함께 소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중심의 세상이 아닌 문명을 꿈꾼다는 게 그야말로 꿈일 것만 같아 하는 말이다. 이 와중에 바벨탑에 관한 일화가 떠오르는 건 뭐지?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했던 인간들의 오만함을 심판하기 위해 신은 본래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여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야만적인 힘과 약육강식의 법칙만을 내세운다는 쥐떼들의 모습속에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인간과의 DNA 일치율이 97%라는 침팬지보다 95%에 불과한 돼지가 장기 이식 수술에 더 적합하다고 한다. 더구나 돼지는 성격도 인간과 흡사해서 가족 개념도 있으며 정을 느끼고 마음을 주기도 한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책을 읽고 딱 한문장을 더듬어가며 다시 찾아 읽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207쪽) 이 책의 제목이 문명인 것은 어쩌면 또하나의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읽게 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었지만 변치않은 그의 필력이 경이로울 뿐이다. 물론 번역의 힘도 있었겠지만.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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