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우리가 1,000년 동안 햄버거를 먹는다면 우리는 금발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금발이 되면 우리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327쪽) 새로운 쇠고기 우상의 힘을 포착한 맥도널드의 일본 영업소 소장 덴 푸지타가 한 말이란다. 기 막히지 않은가! 어떻게 저렇게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어떻게 저렇게 바보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을 찾아가 다시 한번 더 묻고 싶어진다. 원래 인간은 채식을 주로 했다. 그럼에도 昨今의 우리는 육식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왜일까? 그것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육식의 종말>이다. 昨今의 우리가 어째서 이토록이나 육식을 욕망하며 살게 되었는지를 이 책은 아주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다.

오래전에 <옥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수퍼돼지를 산골 소녀 미자가 분양받아 키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옥자'라는 이름으로 미자와 함께 10년을 살았던 돼지는 다시 기업에게 끌려가고 가족같은 '옥자'를 구하기 위해 어린 미자가 동물보호단체와 힘을 합쳐 대그룹과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옥자'가 앞으로의 식량위기를 대처할 수퍼돼지였다는 거다. 끝도없이 육식을 탐하는 인간의 입을 위하여 유전자를 조작, 수퍼돼지를 만들어낸 기업이 이윤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현대의 쇠고기는 실용주의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살아 있는 표본이나 마찬가지(-328쪽) 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때문에 그토록이나 육식을 탐하는 것일까? '단백질 사다리'나 '소고기 클럽'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을 통해 그런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미국이 만들어낸 용어다.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 축산산업을 더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 19세기까지만 해도 육식을 가장 좋아했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이 1위에 올라섰다. 햄버거의 위세다. 그 햄버거 패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지구의 환경이나 기후 온난화를 걱정하는 환경론자들조차 소에 의해 망가지는 지구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고 있다니 말해 무얼할까 싶다.

영국이 평원의 공짜 목초와 중서부 곡창 지대의 잉여 옥수수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1억 600만 에이커에 달하는 미국 농경 지대에서는 2억 2,000만 톤의 곡식이 소를 비롯한 다른 가축들을 위해 재배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축들, 그것도 주로 소가 소비하는 곡물은 전국민이 소비하는 곡식의 두 배에 육박한다. 전세계적으로는 6억 톤의 곡식이 가축들, 그 대부분은 소의 먹이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가축 사료가 아닌 인간이 직접 소비한다면 지구상의 10억의 사람들이 곡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열량이 높은 곡물을 다량으로 먹이는 것이 소의 생리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열량이 높은 곡물은 혹위의 정상적인 미생물 기능을 방해하며, 그 결과 일련의 소화기 질환들이 발생한다. 가장 흔한 질환으로는 '혹위-간 농양 합병증'이 있다. (-122쪽)

미국 공중위생국에 의하면 살모넬라균 발병 사례의 과반수 이상은 육류와 가금류의 섭취에서 기인한다. 살모넬라균과 같은 식중독으로 해마다 2,000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이 입원하며, 그에 따른 보건비용과 부차적인 다른 비용으로 수억 달러가 지출된다. 전국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일부 도축장들의 위생 상태에 대한 검사관들의 기록은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그들은 공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심장도 뛰지 않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암소들을 도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런 주검들의 몸 안에는 녹슨 쇳가루, 부러진 이빨, 손톱과 발톱, 고리, 꼬리표, 송진 등의 이물질이 가득 찬 해 그래도 해체 공정을 따라 이동한다.(-169쪽)

방목지와 농경지로 전환된 열대우림 지역이 재차 사료 작품 재배지로 전환되면서 시골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호할 어떤 수다도 없이 설자리를 빼앗긴 채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대적 육우 사육은 고도의 자본집약적 산업인 동시에 노동 절감 산업이다. 농업에서는 때때로 1평방 마일에 농부를 100명까지 고용할 수 있지만, 열대우림 지역의 축산 목장에서는 평균적으로 소 2,000마리에 인부 1명을 고용하는데, 이는 기껏해야 12평방 마일에 인부 1명이 고용되는 수치이다. 토지도 없이 절망에 빠진 수백만의 농부들은 하찮은 일자리라도 구하기 위해서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대부분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구호물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길거리나 도시 외곽의 임시 판자촌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181쪽)

미국에서 '쇠고기는 왕'이다. 자그마치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 또한 일주일에 미국 전체 가정의 91%가 쇠고기를 구입한다... 현재 미국인들은 전세계 쇠고기 생산량의 23%에 달하는 양을 소비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미국인들의 연간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평균 65파운드이다...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쇠고기를 좋아하도록 길들여진다. 이런 통계 수치는 가히 놀랄 만한 수준이다... 사실상 지난 반세기 동안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는 국민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육류 소비, 특히 쇠고기 소비가 증가했다. 그 점에서 OECD회원국들은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 소득 수준 향상과 육류, 쇠고기 소비 증가의 관계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쇠고기 소비는 부와 지위를 드러내주는 특권의 한가지 형태이다. 또한 국가간에서도 쇠고기 클럽은 권력을 상징하며, 국가의 탱크와 함선 보유 숫자나 산업 생산력의 상승 수지 못지않게 모든 면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쇠고기 소비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입맛'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인류의 가장 복잡한 문제인 사회 정의와 평등의 차원으로서까지 확장된 것이다.수백만 인구가 최소한의 일일권장 칼로리를 섭취하지 못하는 가운데 극소수의 특권층이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를 소비하는 현상은 현재 우리 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범지구의 식량 전쟁과 식단 정치에서 국제 쇠고기 클럽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인류 생존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필수적이다. (-187~189쪽)

씨앗과 화학제품, 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도축장과 쇠고기 판매 및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곡물 사료로 사육한 가축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개발도상국가들을 향한 광고와 판매 활동은 순식간에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를 국가의 위상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단백질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성공의 표상이 되었고, 세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 생산자들의 엘리트 클럽에 대한 입장을 보장했다.(-196쪽) 그들은 모두 근대적인 닭과 달걀 생산 시장 -비식물성 단백질을 생산하는 가장 신속하고 저렴한 방법- 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빠른 속도로 돼지고기, 우유, 낙농제품, 목초로 사육한 쇠고기의 순서로 단백질 사라리를 올라가, 마침내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에 도달한다.

다른 국가들에게 단백질 사다리를 올라가도록 권유함에 따라 미국 농부들과 농산업계 회사들의 이익이 증진됐다. 만약 자국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곡물의 2/3가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을 사육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녹색 혁명' 기술로 인해 잉여 곡물이 발생하게 된 농업 열풍의 절정기에 단백질 사다리를 올라갔다.... 절망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의 전환은 역전될 기미가 전혀 없는 채 여러 나라에서 사료 곡물 생산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전환이 인간에게 미친 결과는 1984년 날마다 수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어 가던 에티오피아의 사례를 통해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현재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제3세계 토지가 오로지 유럽의 가축 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재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197~198쪽)

오늘날 미 농무부 동물피해관리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육식동물들이 가축들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육식동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육식동물들은 야생동물들의 개체수가 환경이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음으로써 희생 동물 종들의 번식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서부 방목지에서 수백만 육식동물들의 멸종은 평원 생태계의 불안정을 초래했으며, 사막화의 확산으로 생태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육식동물들이 대량으로 학살되자 서부 평원에는 유해 동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육식동물들이 조절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어떤 지역에서는 토끼, 다람쥐, 캥거루쥐, 땅다람쥐 및 여타 설치류들이 주기적으로 창궐했다. 그러자 정부 관리들은 육식동물과 위해 동물 간에 형성된 예전의 생태학적 균형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독약이 든 곡식을 공중 투하함으로써 설치류의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 했다.

정부 프로그램으로 인한 과잉 목축과 생태계의 불안정은 다시 메뚜기, 방아깨비, 수확개미 및 여타 곤충들의 창궐을 낳았고, 정부의 반응은 당연히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생태계는 더욱 약화되었으며 토지는 사막화에 한층 더 취약해졌다. (-250~ 252쪽)

현대적 축산 단지로 인해 발생한 인류의 희생은 엄청났다. '개발도상국가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소 사육을 위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대부분은 지저분한 도시의 됫골목으로 강제로 이주당하여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쓰레기를 뒤져야 했다. 끊임없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그들은 영양실조로 인한 여러 질병에 걸려 쓰러졌다.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신생아 10명 중 1명은 첫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한다. 용케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런 아이들의 삶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폐해와 이미 손상된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기생충과 잠재적인 질병들로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에 불과하다. (-340쪽)

제1세계의 부유한 소비자들은 곡물 사료로 재배한 쇠고기를 즐기지만 인공적인 단백질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산물을 먹는 대가로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의 육체는 콜레스테롤로 망가지고 동맥과 조직은 동물성 지방으로 질식하며, 그들은 '풍요의 질병'의 희생자로 전락하여 간혹 심장병과 결장암, 유방암, 당뇨병과 같은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간다.(-341쪽)

관계를 생각하고 구성하는 현대적 방식이 환경과 인간에 미친 영향은 거의 재난에 가까운 수준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사회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잠식했다.(-344쪽)

곡물로 키운 소의 쇠고기는 불에 탄 삼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지, 말라붙은 강이나 개울을 희생시키고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그 결과물이다.(-352쪽)

할수만 있다면 이 책을 모두 다 여기에 옮기고 싶은 심정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내용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육식보다는 채식을 좋아한다. 그렇다고해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단지 육류를 즐겨먹지 않을 뿐이다. 이미 서구화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우리의 식단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아시아 혹은 우리나라의 원래 식단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건강보조식품 따위는 필요가 없다. 곡물사료를 먹인 쇠고기를 먹고 각종 병에 걸려 신음하는 서구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을 마치 우리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세뇌를 시키고 있음이다. 우리가 육류로 된 식단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풍요의 질병이라는 그 많은 성인병들도 이렇게까지 만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다. 동양은 서구화되어가는데 이미 그들은 그들의 식단을 버리기 위해 동양의 식단을 넘보고 있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으로, 혹은 기업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촉수를 뻗치고 있는 것이다. 광고를 통해 끝없이 세뇌를 시키면서 말이다. 손에 쥔 햄버거를 놓을 수 없으면서 다이어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는 그들의 딜레마를 우리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남의 떡이 커보여도 내 손에 쥔 떡이 훨씬 맛있는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던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국격과 국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화가 나서. 먼저 산업화의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로, 먼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떳다는 이유로 지구를 황폐화시킨 유럽이나 미국으로 인해 세상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먹기 위한 소를 키우기 위해, 저들의 축산산업을 키워주기 위해 대책없이 사라져가는 열대우림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별점 백만점을 주고 싶은 책이다. /아이비생각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1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