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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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충격을 주었던 장면은 팀추월 스케이팅 경기였다. 팀추월 스케이팅 경기는 세 명의 선수가 함께 달려 마지막 선수가 도착하는 시간을 기록으로, 팀워크를 가장 중요시하는 스포츠이다. 그런데 두 명의 선수가 한 명의 선수를 따돌리고 들어왔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은 경기였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빙상연맹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선수들을 성적 위주로 줄세우고,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을 철저히 배제시키는 빙상연맹의 시스템이 이런 경기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언제부터 스포츠가 이렇게 인간미가 없어지는 경기가 되었을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지 빙상연맹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학교부터 스포츠, 연예계까지 모두 승리와 성공만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승리만 한다면, 성공만 한다면 무엇인든 허용된다는 논리가 점점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승리와 성공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점점 잔인한 인간으로 만들어 간다.

[베어타운]은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다. 데뷔작인 [오베라는 남자]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되고, 이 작품이 영화화 되어서 더 유명해진 작가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베라는 남자]와 함께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라는 작품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프레드릭 배크만은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현대화되고, 개별화된 세상에서 그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위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다. 이번 작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베어타운은 한때 아이스하키로 유명했던 도시이다. 그러나 이제 옛 영화는 사라지고, 쇠락한 춥고 황량한 시골마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아이스하키에 열광한다. 베어타운에게 아이스하키는 여러 스포츠 종목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 마을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단 하나의 스포츠이다. 그들은 자신이 베어타운 출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이스하키에 열광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남자이며, 베터타운의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아이스하키가 열리는 날이면 함께 뭉치며 "우리는 곰이다!"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이제 이 마을이 다시금 아이스하키로 뜨거워지고 있다. 베어타운의 청소년팀이 전국 준결승까지 오른 것이다. 이제 이들로 인해 다시금 마을이 활기가 넘친다. 그리고 그 활기의 중심에는 팀의 에이스인 케빈이 있다. 마을은 이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에, 그리고 케빈에게 자신의 모든 기대를 건다. 청소년팀과 케빈은 베어타운의 전부가 된다.

소설의 중반까지는 아이스하키 준결승전에 포커스가 마쳐져 있다. 베어타운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이자, 이제는 베어타운 A팀(성인팀)의 단장인 페테르 역시 이 경기를 기대한다. 페테르에게는 마야라는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 베어타운의 청소년팀은 다비드라는 훌륭한 코치 밑에 하나로 뭉쳐서 준결승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캐빈과 단짝 친구 벤, 그리고 새롭게 들어 온 아맛의 환상플레이로 승리한다. 여기까지는 읽으면서 이 소설이 스포츠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스하키를 잘 모르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현장의 열기가 그대로 소설을 통해 전해지면서 중간까지 쉬지 않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소설의 중반부터 갑자기 소설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준결승전 승리를 자축하는 날 아이들은 케빈의 집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청소년들이의 파티라고 보기에는 조금 과하게 술과 여자친구들, 그리고 마리화나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그곳을 놀러간 마야가 케빈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결국 이 사실은 페테르까지 알게 된다.

결승전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케빈은 마을의 영웅이고, 물질과 권력으로 보호해 주는 부모님까지 있다. 아무도 마야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마야가 케빈이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하면 마야와 그 가족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마야는 끝까지 감추려 한다. 그러나 결국 페테르와 아내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감추는 대신 싸우기로 결심한다. 이제 온 마을이 페테르 가족의 적이 된다.  

이 소설은 스포츠 소설이며 동시에 페미니즘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다. 후반부에는 상처입은 페테르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가족소설이나 성장소설의 느낌까지 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이 소설이 스포츠 소설도 아니고, 페미니즘 소설도 아니고, 가족 소설이나 성장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소설이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단지 스포츠에 열광하고, 그 승리만을 전부로 여기는 존재일까? 또 인간의 삶의 가치에 대해서 질문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들을 짓밟아도 되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페테르와 마야를 비난하던 아이스하키 이사인 프락이 자신의 아들을 붙들고 절규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인간으로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야 이 꼴통아, 그 충전기 네 것도 아니잖아, 내거잖아!" 아이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쾅 닫는 누나한테 대고 외친다.
프락은 무슨 말을 하려고 아이에게 손을 뻗지만, 아빠를 아직 보지 못한 아이는 방문을 발로 차며 고함을 지른다.
"충전기 내와, 이 개 같은 년아, 통화할 남자도 없잖아! 따먹히는 게 네 소원인데 너를 따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 다들 안다고!"
그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프락은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한다. 얼리자베트가 뒤에서 그의 팔을 결사적으로 잡아당기던 것만 기억한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큼지막한 손에 붙들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서 겁을 질린 표정을 짓고, 그 아들은 계속해서 벽에 패대기치며 고함을 지른다. - 중략 - 그는 아들을 끌어안은 채 드러웁는다. 둘 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 명은 공포 때문이고 다른 한 명은 수치심 때문이다.
"너는 그런 인간이 되면 안 돼,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너는 아빠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야지....."
프락은 아들을 끌어안은 채 그의 귀에 대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 P 550)

프레드릭 배크만은 항상 소설을 통해 현대사회 속에서 개인화 되고 관료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그의 외침은 더 강렬해진다. 마치 변해가는 세상을 향해 마지막 절규하는 것 같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요즘들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 성공의 길만을 올라간 재벌3세가 아버지뻘의 사람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파트를 명품 아파트를 만들겠다고 택배차를 못 다니게 한다. 부녀회들은 단합해서 자신의 아파트를 싸게 내 놓았다고 부동산을 협박한다. 그럼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은... 소설의 구절처럼 어른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서로 패거리를 만들고, 상대를 왕따시킨다. 여중생들이 친구를 벌거벗겨서 실신할 때까지 때리고, 친구가 자살을 할 때까지 왕따로 몰아붙인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어느 순간 베어타운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벌써 우리는 인간이 아닌, 그들이 외치고 있는 곰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에서 프락이 베어타운의 일부가 되어 가는 아들을 붙잡고 울부짖는 것처럼,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을 붙잡고 울부짖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 그렇게 변해갈지라도, 나도 그렇게 변했을지라도, 너만은, 너만은 그래서는 안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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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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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다시 출간되는 하루키의 작품이네요... 이번엔 짧지만 더 강렬한 하루키의 감각을 그림과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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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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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항상 제도화된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 봤다. 톰소여 와 허클베리핀처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 그런 생각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선뜻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물질 때문이다. 과현 현대 사회에서 물질이 없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요즘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도 보험료나 기본적인 공과금은 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과연 현대 사회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든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은 저자의 현대 문명과 제도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알고 보니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이 먼저 출간된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물론 쓰이기는 [미국의 송어낚시]가 먼저 쓰였으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해,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이 먼저 출간되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1960년대 미국의 비트 세대의 작가답게 소설에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자연 속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유로운 성관계와 마리화나 같은 소재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주인공인 제시가 빅서에서 온 '리 멜론'이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리 멜론은 꽤 미남이지만, 이빨이 대부분 빠져서 틀니를 끼고 다니는 조금의 괴짜인 사람이다. 일을 하기 싫어서 무위도식을 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 특이한 것은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남북전쟁에서 유명한 '오거스터스 멜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오거스터스 멜론이란 인물은 남북 전쟁의 기록이나 역사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소설에서는 과연 그런 인물이 실제 했는지조차 아리송하다.

도시 생활에서 견디지 못한 리 멜론은 결국 고향이 빅서의 산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짓고 산다. 그리고 매일같이 제시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조른다. 결국 제시는 리 멜론의 빅서의 오두막집에서 같이 생활한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던 전원생활의 실제는 궁핍하기 짝이 없다.

- 그날 저녁 우리 저녁 식사는 별로였다. 고양이도 안 먹는 음식을 어떻게 우리가 먹는단 말인가? 우리는 먹을거리 살 돈도 없었고, 돈이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그럭저럭 살고 있다. 지난 4,5일 동안 우리는 누군가가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와주기를 기다렸다. 여행자가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그러나 사람들을 빅서로 끌어당기는 이상한 힘이 여러 날 동안 작동하지 않았다. - 중략- 날마다 전복만 먹었기 때문에, 앞으로 또다시 전복을 먹어야 한다면 나는 아마 죽고 말 것이다. 전복을 한 입만 물어도 내 영혼은 치약처럼 빠져나가서 영원히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P 84)" -

결국 이들은 지나가던 청년을 협박해 6 달러 72센트를 빼앗고, 그것을 가지고 도시로 나간다. 그곳에서 제시는 일레인 이란 여자를 만나고, 리 멜론은 엘리자베스라는 여자를 만나 함께 빅서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생활한다. 거기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반쯤 미쳐버린 로이 얼이라는 사업가까지 함께 살게 된다.

소설의 내용은 현실적이면서도 또한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다. 마치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몇 달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지만, 부자인 로이 얼이 백 달러 지폐를 바다에 뿌릴 때면 말리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준다. 이 장면에서 저자는 물질문명에 대해 비틀어주기식의 비판을 한다.

- 갈매기 한 마리가 우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옷을 입고 리 멜론과 엘리자베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로이 얼이 그들고 함께 있었다. 내가 놀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들은 모두 파도를 보고 서서 로이 얼의 돈을 태평양에 뿌리고 있었다. 100달러 지폐가 수백 장 그들의 손을 떠나 바다로 던져지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내가 말했다. 여전히 손에서 100달러 지폐를 떨어뜨려 물 위에 떠나니 게 하면서, 리 멜론이 내게로 몸을 돌렸다. "로이 얼이 더는 돈을 원하지 않는대. 그래서 우리가 돈을 버리는 것을 도와주는 거야." "우리도 이 돈을 원하지 않거든."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이 돈이 내게 해 준 일이라고는 나를 여기에 데려다준 것뿐이야" 100달러 지폐가 새처럼 바다에서 날아다니는 동안, 로이 얼이 나서서 말했다. "너도 이 돈을 가질 수는 없어." 그는 파도에게 말했다. "이 돈을 네 고향으로 가지고 가." 파도는 그렇게 했다. (P 212) -

소설에서의 리 멜론과 오거스터스 멜론이라는 남부 장군은 이제는 문명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자연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비록 현실 감각은 없지만, 문명사회를 비웃어 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인물이다. 가끔은 아웅다웅하는 세상에서 리 멜론 같은 인물이 그리워지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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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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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로 찾기 게임이 매우 인기였다. 신문이나 잡지에 입구와 출구만이 확연히 눈에 띄는 복잡하게 그려진 미로들이 있었다. 미로만 보면 볼펜을 들고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선을 그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 젖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을 미로찾기에 비유하자면 이처럼 복잡한 미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 있다. 바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최근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재출간된 작품이다. 하는 일마다 어리숙하지만 자신이 짝사랑 하는 여자 후배의 뒷모습만은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남자 선배와 하는 일마다 똑뿌러지고 불의를 보면 못참고 자신만의 특급무기인 친구펀치를 날리는 여자 후배의 로맨스 이야기이다. 남자는 첫눈에 반한 검은 머리의 여자후배를 좋아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서 우연을 가장해서 그녀와 인사를 한다. 이렇게 많은 만남을 가지면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리하여 나는 가능한 한 그녀의 시야 안에 머무릭 위해 신경을 써왔다. 밤의 기야마치와 본토초에서, 여름의 시모가모 신사 헌책쇼ㅣ장에서, 나아가서는 나날의 행동 범위에서 - 중략- 이제 그것은 우연이라고 할 횟수를 훨씬 넘어 '너희들은 운명의 빨간 실로 칭칭 묶였어!'라고 만인이 보증설 만한 횟수에 달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의하하다. 내가 이렇게 모든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나타날 수는 없지 않은가. 편리주의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중대한 문제는 그녀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지닌 보기 드문 매력은 커녕 내 존재 그 자체에 말이다. 이렇게 늘 마주치는데도. '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대사에 목에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하는 내게,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선배, 또 만났네요!' 그게 다였다. 그녀와 만난 뒤로 벌써 반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P 188)"

그렇다고 남자가 쉽게 여자 후배와 마주치는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매번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봄의 밤거리를 활보하는 그녀를 만나고자 바지까지 잃어버리는 꼴부견을 당하기도 하고, 헌책방에서는 이상한 책방에 끌려가 그녀가 원하는 책을 얻기 위해 매운 것을 먹는 내기를 하기도 한다. 또 대학 축제에서는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 연극 무리에 뛰어 들기도 하고, 감기로 인해 지독한 감기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번 그녀를 만나서 조금씩 그녀의 마음을 얻어간다. 이런 과정에 대한 묘사가 시종일관 유머스러우면서도 기상천외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소설의 내용이 마치 하나의 미션을 완성해 가는 게임과 같기도 하다.

특이한 건 이 과정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3층전차를 타고 가짜전기부랑이라는 괴상망측한 술을 만드는 이백이라는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하고, 기르던 잉어가 하늘로 날라거 폭싹 망한 도도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며, 자칭 헌책방의 신이라고 말하는 꼬마를 만나기도 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년 동안 빤스를 갈아입지 않는 빤스총반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남자는 이 모든 미로같은 사건과 사람들을 헤치고 그녀의 마음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선배는 아마데 강 거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마치 봄날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닏. 선배는 그 햇살 속에서 턱을 괴고 앉아 어쩐지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배 밑바닥에서부터 따스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작은 고양이를 배위에 올려놓고 초원에 누운 기분일까요. 선배가 나를 알아보 웃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리하여 선배 곁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만나 것도 어떤 인연. (P 391-2)"

작가의 환타지적 생각이 마음껏 소설에 펼쳐져 있고,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청춘남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같이 들뜨기도 한다. 이런 소설의 이미지들이 만화 영화로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벌써 부터 기대가 크다. 영화도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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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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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기 위해 커피숍이라는 곳을 간다. 항상 조용한 구석자리를 앉지만, 어느새 아줌마 군단에 포위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면 아무리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그녀들의 수다를 듣게 된다. 주제는 딱 두 가지이다. 어떻게 그 많은 대화 내용 중에 주제가 두 가지로 압축되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하나는 부동산 이야기이고, 하나는 교육 이야기이다. '어디 가 얼마가 올랐고, 앞으로 어디 가 오른다더라' 또는 '성적이 얼마나 올랐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올릴 작정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인데, 매번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답답함을 느낀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지는 못해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여유로운 여행기나 자연과 벗하는 삶을 다룬 책들을 보면 저절로 호감이 간다. [신들이 노는 정원]이란 책을 보자마자 이런 호감이 생겼다. 그리고 부제가 더 마음에 끌렸다.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저자는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미야시타 나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양과 강철의 숲]이란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 북단 후카이도의 산골마을인 '도무라우시'에서 보낸 1년을 일기 형식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도무라우시는 '가무이민타라'라고도 불리는데 이 말은 아이누 말로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고 한다.

"도무라우시. 아이누 말로 '꽃이 많은 곳'이란 뜻이다. 한자는 없고, 일본 100대 명산 중 유일하게 가타카나 이름을 쓰는 산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홋카이도 한복판, 즉 홋카이도에서 가장 중심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안의 해발 2141미터,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저체온증으로 등산객이 잇따라 쓰러졌다는 무시무시한 조난사고. 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가무이민타라는 아이누 말로 '신들이 노는 정원'. 그렇게 불릴 정도로 풍경이 멋진 곳이라고 한다. (P 9)"

비록 1년을 사는 것이지만, 떠날 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막대한 지출과 이사비용, 살던 집의 대출 문제, 그리고 가장 심한 것은 주변의 반대이다. 우리처럼 교육열이 높은 일본에서 3자녀를 키우고, 특히 장남이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으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난관을 뚫고 산속 생활을 시작한다. 저자는 망설이지만, 남편이 강력히 원하고 자녀들도 좋아한다. 입학을 위해 학교에 들은 자녀가 학교 운동장에서 사슴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엄마에게 이렇게 전화한다.

"전화 너머에서 차남이 기쁜 듯이 말하고 장남이 전화를 바꾸었다. 그 한 마디 '풍경이 신이야'라고 했다. 신이라, 신이라나니 어쩔 수 없군. 그러나 그렇게 말해주는 어린 남자아이의 존재가 무척 기뻤다. 두 아 들은 홀딱 반했다. 물론 남편도. 다음 날 귀가한 남편은 홋카이도 수사슴의 뿔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끝없이 얘기해 주었다. 산촌 유학생용 주택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내 마음은 그 집 얘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은 쪽으로 기울었다. (P 20)"

그리고 1년의 산속 생활이 시작된다. 자녀들은 10명 안팎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자연과 벗하며 살아간다. 온갖 동물을 만나고, 식물을 접하고,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살아간다.  저자 역시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이기에 자녀들의 학교생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된다. 자녀들이 시골학교에서 학생회장도 하고, 배드민턴 경기도 나가고, 그곳에서 어울리며 산다. 과연 그들에게 그 1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미래의 삶을 살아가는 영양소를 공급하는 저장소와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시간표를 보고 놀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야외 수업이 많다. 삼림 교실, 골프, 수영. 어떤 날은 평일인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낚시였다. 중학생들은 도시락을 들고 산속 계류로 나갔다. 이런 곳을 정말로 가요? 묻고 싶은, 불안해 보이는 조릿대 나무숲을 헤치고 도착한 계류에서, 흐르는 물이 다리를 당길 것 같은 가운데, 중학생 다섯 명과 선생님과 강사인 베테랑 낚시꾼이 종일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고 한다. 옥새 송어, 산천어, 곤들매기 등을 잡아서 돌아왔다. 게다가 손질까지 다 해서 왔다. 물고기를 손질하는 법까지 가르쳐주다니 멋지다. (P 110)"

최근에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안전지대'라는 단어가 기억된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 보낸 시간과 장소가 하나의 안전지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다가 지치고 피곤하면 다시금 마음속에서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와 휴식을 누리고 다시금 힘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자녀들은 산속에서 보낸 1년이 든든한 안전지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가는 삶 속에서 막상 성공을 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조금 더 길게 보고,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은 여유로울 텐데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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