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윤동주의 서시의 한 구절을 입버릇처럼 달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그 구절을 입에 담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가 나 자신의 자화상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스로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이가 있겠는지요. 못난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한없이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 또한 나이기에 어느 순간 밀물처럼 그리움이 몰려들기도 합니다.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나의 얼굴이 우물에 비칠지라도 그 모습 결국 사랑하고 보듬어야하는 것도 내 자신일 겁니다.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직 미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