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마흔의 나이에 현대아동문학상, 계몽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 향이는 이후 1994년 <달님은 알지요>로 삼성문학상을 받고 이 작품이 모 방송국의 책읽기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그 이름이 더욱 널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지나간 시간을 배경으로 하든 요즘을 배경으로 하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김 향이 그녀만의 아이들이라는 색깔을 지니고 있다. 악착같지 않고 아이다운 순수함이 살아있는 아이들.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지 않는 차이점이라면, 그녀의 작품 속의 아이들은 부자연스럽게 꾸며진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전히 작가의 머리 속 구상에 의해 탄생된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작가가 오래 알고 있는 어떤 인물을 옆에서 지켜 보며 그려낸것 같은 자연스러움이랄까. 그것은 주인공 인물 뿐 아니라 작품 전체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럴 때 빠지기 쉬운 딜레마라면, 쉽고 빠르게 읽히는 반면에 극적인 효과가 적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 안읽어봐도 결말이 뻔히 예상이 된다거나 그래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데, 아마 김 향이의 작품도 그러했다면 나도 한 두 작품 읽어보고 더 이상 계속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이런 글도 쓰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억지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가면서도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작가로서 자리매김하는데 하나의 넘어야 할 턱이 아닌가 싶다.
2005년에 나온 저학년 동화집 <붕어빵 한개>를 보자.
이 책은 92쪽 짜리, 글씨도 큼지막한 저학년용 동화집인데 다섯 편의 단편 동화가 실려있고 모두 사랑이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가 먹으려고 했던 붕어빵을 실수로 땅에 떨어뜨리자 아이는 먹기를 포기하고 집에 가버리지만 그것을 고양이가, 그리고 늙은 쥐가, 참새가, 개미가, 마지막으로는 땅속 풀잎에게까지 좋은 먹이와 영양분이 되어 준다는 내용의 <붕어빵 한개>. 우리가 사는 세상엔 우리 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며 이들도 우리처럼 먹고 숨을 쉬며 살아있음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다락방에서 나온 오래된 물건들을 소재로 쓴 <다락에서 나온 보물>에는, 할머니가 아빠를 키우며 모아놓으신 벼라별 물건들이 다락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되는데 그것들은 더이상 아무데도 쓸모 없는 물건들일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모아놓은 아빠를 위한 일종의 '타임캡슐'이라고 새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보물과 고물을 재치있게 연결한다. <선물>이라는 단편에서의 아이 마음은 또 얼마나 아이다운가. 아끼는 분홍신을 신고 개울에 간 아이는 신발을 고이 벗어놓고 개울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나온다. 나와보니 신발 한짝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을 알고 낙심하며 여기 저기 찾아보던 아이가 마침내 신발 한 짝을 찾아낸 곳은 갈대밭 사이. 참새 한 마리가 그 속에서 곤히 잠이 들어있는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했을까? 참새가 깰까봐 조심조심 돌아나와 신발을 한짝만 신고 집에 돌아오며 다른 한짝은 참새에게 그냥 선물로 주기로 한다. 큰 사건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이 감동을 받은 이유는, 예상을 깨고 아이의 중요한 것의 우선 순위가 바뀌는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내게도 귀한 신발이지만 참새의 잠자리가 되어주고 있는 것을 본 순간 참새에게 나의 귀한 것을 내어 주는 마음. 어른이 닮아야 할 아이의 마음 아닐까?
다음에 이어지는 <마술의 비밀>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스무살이나 되었지만 정신 지체인 축복이. 불편한 손 대신 입으로 종이 접기를 하여 아이들을 재미있게 해준다. 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축복이가 기울였을 노력과, 자신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을 때 행복해 하는 축복이를 보며, 모르던 것도 아닌데 '아, 이런 것이 행복이고 보람이지.' 하며 새삼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랑이네 집 화분 이야기<선인장과 나팔꽃>에서는 예쁜 꽃을 피운 나팔꽃에 기죽어지내던 선인장이, 나팔꽃이 지고 마침내 씨만 남게 되자 나팔꽃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때를 후회하며 꽃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선인장꽃을 피운다는, 마치 무슨 선문답이 들어있는 듯한 내용의 동화이다.
이보다 먼저 나온 책인데 역시 초등 저학년 대상의 동화집으로 <우리집 보물> 이 있다.
일곱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우리 집엔 형만 있고 나는 없다>란 작품에서 형은 맏이라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병약하기 때문에 엄마와 할머니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데 동생은 그것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형, 동생 가릴 것 없다. <이번 한번만> 에서, 동생 동이가 감기를 자주 앓자 할머니께서는 잉어를 잡아다가 손수 달여주시며, 달여지는 동안 정성껏 손주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리신다. 자기를 가지셨을 때 아무 태몽도 안 꾸었다는 엄마의 말에 실망이 이만 저만 아닌 아이에게, 잠자면서 꾸는 꿈은 진짜 꿈이 아니고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면서 가꾸고 키워가는 꿈이 진짜 꿈이라고 가르쳐 준다는 내용의 <진짜 꿈>, 어느 날 집의 처마 밑에 제비가 새끼를 낳고 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동이는 재미있게 지켜보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 새끼들이 자라서 마침내 둥지를 떠나게 되자 그것에 대한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른이 된다는 것, 성장, 그리고 독립에 대한 것을 배워간다는 내용의<동이네 아기 제비>, 동생이 없는 대신 엄마가 사다주신 강아지 방울이를 열심히 돌보는 동이를 그린 <내동생 방울이>, 새 물건을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효은, 영은 자매에게 할머니는 곡식을 부드럽게 갈때 쓰는 돌을 뜻하는 '확독'의 의미를 알려주시면서, 오래 써서 반질반질 손때 묻은 물건이 바로 우리 집의 보물임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우리 집 보물>, 오 헨리의 마지가 잎새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의 <소녀와 아기나무>에서 아기 나무는 소녀가 입원해있는 병동의 시멘트 벽 틈으로 자라나고 있었는데 하필 넓은 땅을 두고 이런 위치에서 자라게 될 게 뭐냐고 비관하는 나무와 아픈 소녀가 서로 의지가 되어 주다가 소녀가 퇴원하는 날 아기 나무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의 동화집이면서 김 향이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한 <쌀뱅이를 아시나요>에는 총 일곱 편의 동화가 실려 있는데, 동화이기도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이야기 들이다. <너무너무 사랑하니까>에 등장하는 아이 홍점이는 이마에 빨간 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그것때문에 아이들로부터 놀림감이 될 뿐 아니라 동생 홍주마저도 친구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길 꺼려할 정도로 언니를 창피해한다. 속상한 홍점이는 어느날 우연히 목발을 짚고 있는 마을 아저씨를 만나서, 홍점이 이마의 점은 하느님이 먼데서도 홍점이를 금방 알아보시려고 해놓은 표시라는 얘기를 아저씨로부터 듣고는 구겨진 마음을 펴게 된다. 하느님이 홍점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얘기이니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가 한줄 한줄 정성들여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려 애썼다는 느낌이 전해져 오는 작품이었다.
우리 나라 전통 문화로서 판소리가 등장하는 작품 <소리하는 참새>. 갓 태어난 아기 참새들을 조용한 곳에서 안심하고 키우고 싶은 아빠 참새는 마침 빈집을 발견하여 기뻐하며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이사를 하는데, 밤에는 조용하던 집이 낮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 들여 시끌 벅적해지자 당황하게 된다. 알고 보니 그 집은 신재효 선생의 생가로서 낮 동안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 낭패라고 생각하는 대신 아빠 참새는 이 집에 사는 동안 사람들의 판소리를 배워 아기 참새들에게 가르치자고 엄마 참새와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의 소개를 이야기로 꾸며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으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쌀뱅이를 아시나요>란 제목을 본 순간 누구나 '쌀뱅이'가 무슨 뜻일까 궁금해 했을 것이다. 얼굴이 쌀처럼 하얗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백인 혼혈 소녀 쌀뱅이를 양색시 출신 엄마가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난 후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나라 미국으로 보내진다.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쌀뱅이를 안됐다고 생각하고 더 친절하게 대해주며 친하게 지내려고 하던 순애는 그 이후로 쌀뱅이와 연락이 끊긴채 어른이 되는데, 어느 날 고국을 찾은 쌀뱅이와 해후하게 되어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고향을 돌아본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작가는 나와 다른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남의 상처를 비웃을 것이 아니라 서로 감싸주고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책 표지의 노란 원피스를 입고 노란 머리를 한 쌀뱅이와 치마 저고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순애가 서로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그림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한동안 눈 앞에 어른거렸다.
다음 작품은 <막둥이 삼촌>이다. 발달 장애와 정신 지체를 갖고 있는 막내 삼촌을 데리고 시골에서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동우 아버지는 혼자 남게된 삼촌을 서울 집으로 데려오기로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동우네 식구들과 함께 서울로 가는 자동차에 오르고 나자 삼촌은 울고 불고 하며 할머니를 목놓아 부른다. 남들보다 모자라는 삼촌을 끝까지 사랑으로 돌봐주시던 할머니를 대신해서 많이 많이 사랑해주리라 생각하는 동우. 어린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어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다만 경험한 것이 어른에 미치치 못할 뿐 오히려 더 순리대로,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계산없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어린이들을 사사건건 가르치려고 드는 어른들이란.
<마음이 담긴 그릇>에서는 도자기를 굽는 일로 생계를 삼고 있는 형제 사이의 갈등과 경쟁 심리를 그리고 있는데 역시 결말은 갈등과 경쟁심보다 더 큰 형제애로 그 벽을 허물어뜨리며 맺는다. 이런 것이 김 향이 작품의 하나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갈등과 불만, 대립을 내세우지만 결국 사람 사이에는 그것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정, 사랑, 배려라는 것들도 숨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 쉽게 절망과 슬픔으로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드러내보이는 것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기술보다 정신을 앞세워야 한다는 예술가의 자세에 대해서도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데 형을 앞지르기 위해 혼자 어떤 비법을 알아냈다고 신나하는 동생이 결국 원하는 빛깔의 도자기를 굽는데 실패하자 형이 동생을 위로하며 하는 말, 정성을 모으면 언젠가 뜻을 이루게 될거라는 것이다.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이 이야기 속에서는 왜 그리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서 닿던지.
벙어리 할아버지를 뜻하는 제목 <버버리 할아버지>에서도 보이듯이 김 향이 작가는 이름도 참 잘 짓는다. 이름을 잘 짓는다는 것은 우리 말에 대한 어떤 감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지으며 사시다가 댐이 생기면서 하루 아침에 농토를 잃고 화병이 나신 할아버지.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온다. 얼마 후 할머니 마저 돌아가시고나자 자폐증에 실어증까지 오게 된 할아버지를 가족들은 가족 회의 끝에 시설 좋은 양노원에 모셔다 드리기로 한다. 아마 비슷한 연배의 노인들과 함께 있으면 덜 외로와 하실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양노원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가족들이 찾아가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가족들을 보아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실 뿐이다. 손자 동준이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과제를 하다가 문득 동준은 할아버지에게 보리싹이 들어있는 화분을 가져다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보리가 새파랗게 자라나오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 말문이 열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시설이 최고인 양노원을 생각해낼때 아이는 보리싹이 자라는 화분을 생각해낸다. 새로운 생명체인 보리싹을 통해 상실한 생명력을 다시 찾아드리려는 동준의 생각이 어른들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아울러 동화를 쓰는 사람 역시 이런 보리싹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일어나세요>에서는 5.18 광주항쟁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소개했을까? 5.18 광주항쟁때 행방불명된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지켜 보는 손녀 순임의 얘기로 풀어간다. 할머니는 아예 절에서 수십년 째 공양주로 기거하면서 삼촌을 찾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리며 지내고 계신다. 할머니를 뵈러 절에 간 순임은 누워 있는 와불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가서 부처님이 일어나시기만 하면 세상이 바뀐다고들 하니, 제발 우리 할머니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게 부처님이 이제 그만 일어나시라고 빈다. 이 작품의 제목 <부처님 일어나세요>는 그래서 붙여진 제목. 5.18을 어린이 수준의 동화로 무리없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을 보고 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일곱 개의 작품 하나 하나가 제각기 정성스레 빚어진 수작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고학년 동화이자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이고, 아마도 작가가 낸 책들 중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할 <달님은 알지요>는 1994년에 처음 나온 책이다.
무당인 할머니와 함께 사는 열두살 소녀 송화의 이야기의 모티브는 칠성당 할머니를 포함하여 작가가 어릴 때 살던 마을 사람들을 회상하며 얻어왔다고 한다. 이야기를 지어낼 때 작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기는 것처럼 주의해야 할 일도 없다고 하던데 작가는 경험에서 빌어오되 그것을 다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실어 재구성함으로써, 글이 자연스럽게 살아있으되 추억담처럼 처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얼굴도 모르는 송화는 달, 강물, 풀, 나무 등 자연을 벗으로 삼고, 그런 대상들을 말 못하는 무생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로 삼아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다. 우리는 왜 이게 안될까? 열두살 송화도 할 수 있는 것을 왜 우리 어른들은 못하고서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네, 말 할 상대가 없네 하며 외로움을 하소연할 상대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마을의 단짝 친구 영분이네가 서울로 이사가는 장면은 처음 보는 장면도 아닌데 어쩌면 그렇게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던지. 마치 내가, 살던 곳을 떠나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또 송화의 입장이 되어 형제나 다름없던 친구를 먼곳으로 보내며 남은 자의 슬픔에 빠져드는 기분이 되기도 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엄마 아빠의 보살핌 없이 살고 있고 남들이 평범한 눈으로 보지 않는 무당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송화의 상처, 술 먹고 들어와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못 견뎌 엄마가 갓난 쟁이 아기까지 두고 집을 나간 영분이의 상처, 어린 나이에 혼인을 하고 얼마 안되어 남편과 헤어지고 전쟁 통에 죽은 아이를 낳고 큰 놈마저 잃고는 실성하다시피 하여 무당의 길로 들어선 할머니의 상처,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그런 아픔과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건드리지 않으며 아름답고 곱게 살아가는 모습이 눈물겹다. 우리의 삶을 힘들고 아프게 하는 것은, 나만 상처을 입어서가 아니구나, 내 상처가 더 특별하고 더 깊어서가 아니구나, 또 배운다. 그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훨씬 쉬운 일,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상처와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여전히 내 앞에 놓여진 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구나, 이런 깨달음.
작가는 워낙 우리 말 사용법과 서정적인 묘사법에 뛰어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정서 속에 푹 빠져들게 한다. 책 뒷표지에 권정생 작가가 언급했듯이 우리 아동문학에 이만한 작품이 나오기는 참 오랜만이라는 말에 의의를 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작품이었다.
우리의 소설, 우리의 동화가 세계적인 어떤 트렌드를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어가고 있던 요즘, 김 향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쉬며 안심이 되었다. 일종의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마치는 지금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