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가느라 그런다지만 갈수록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아이와 요즘 자주 부딪힌다.
며칠 전엔 학교 다녀오더니 그런다. 아무래도 xx 선생님께서 자기가 글 쓰는 방식을 안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xx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특수 과목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쓰라는 식으로 쓰지 않는다고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써도 잘했다는 말씀을 안하신다는 것이다.
"왜 선생님께서 쓰라고 하는 대로 쓰지 않았는데?"
물었더니, 세상에나, 아이 하는 말, 자기는 선생님이 쓰라고 하는 그 방식이 마음에 안든단다. 아니, 선생님이 시키시는 것에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어디있어? 학생이??
어제는 오전에 아이가 일주일에 한번 축구 교실에 가는 날이다. 나는 집에 있었고 남편이 데리고 갔다 온 후 점심을 먹는데, 아까 축구 끝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배가 아팠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런데 왜 아빠한테 말을 안했어?"
내가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이 하는 말,
아빠한테 얘기해도 그때 차 안에서 아빠가 자기한테 해 줄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아이라면 일단 어디가 아프면 옆에 엄마나 아빠한테 아프다고 말하게 되지 않나?
이렇게 아이는 커가고 있는데 나는 자꾸 아이를 아이로 보려 한다. 아이의 생각보다는 내가 생각하는게 더 나을거라고 보고 지시하고 따를 것을 요구한다. 거부하면 화가 난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 올레>
벌써 언제부터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제주 올레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제 열 세살 된 아들을 데리고 걸으며 저자인 엄마가 풀어낸 생각에 너무나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이제사 이 책을 읽고 있다.
자꾸 읽고 싶어지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잠도 안오고 그 일부분을 베껴쓰는 것 부터 하고 다른 일 좀 하다 자야겠다.
-아이 키우기, 때때로 밀려드는 그 막막함-
제주 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이 쓴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을 읽다가 눈물을 콱 쏟은 대목이 있다. 바로 큰아들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인 놈이었다. 기자 노릇 하느라고 엄마 노릇 못한 죄값을 이자까지 보태서 치르게 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노상 선생님께 불려 다녔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유리창을 깼다,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안 가져왔다, 선생님에게 말대꾸하고 반항했다 등등.
중학교 3학년 때는 기술 선생님에게 혼이 난 뒤 사흘을 가출해서 애간장을 다 녹였다. 아파트 경내의 정자에서 휴지처럼 구겨져 자는 아이를 발견하는 순간 엄습한 감정은, 반가움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막막함뿐이었다. 이 질풍노도의 계절이 끝이 날까, 대체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서명숙 이사장이 산티아고를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남편은 그동안 나돌아다니느라고 애들도 못 돌봤으니 이제부터 집에 들어앉아 살림이나 제대로 하라고, 어머니는 다 늙은 여자가 무슨 배낭여행이냐고 펄쩍 뛰었단다. 20년 넘게 뼈 빠지게 일하면서 휴가도 변변히 못 써본 서명숙 이사장이 '분하고 서러워 거실에서 어린애처럼 대성통곡'할 때 그 '애간장을 다 녹인' 큰 아이가 어린애 달래듯이 등을 토닥그리며 속삭이더란다.
"엄마 걱정 마요. 엄마는 여행갈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
'엄마학교'를 만든 서형숙씨는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향해 활짝 웃어주기만 하면 된단다. 일하는 엄마들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집에 들어오는 아이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 (중략)
"스스로 해야지, 스스로! 대체 언제까지 엄마가 도와줘야 하지?"
아마 우리 아이는 기어다닐 때부터 듣지 않았을까 싶다.
(86, 87쪽 중에서)
아이를 야단친 날은 일찍 잠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