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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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propaganda)이란 원래 '잘 설명해서 널리 알린다'란 의미의 중립적인 단어였다.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저자는 자신을 PR전문가보다는 '선전가'로 불리길 원했다. 그는 선전을 통해 일반 대중이 선량한 엘리트 집단의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선전의 의미는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의 역사에서 선전은 피바람을 부르기 위한 일종의 물밑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정권과 그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였다. 괴벨스의 선동을 발판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잇단 전쟁을 치른 독일은 혈육과 이웃사촌을 잃은 뒤로는 더 이상 선전을 신뢰하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전 세계인들 역시 이 부분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버네이스의 이상은 현실 세계와 달라도 한참이 달랐던 셈이다.

 

이런 인식이 발달하면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쉽게 정권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 예로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각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정권 홍보물인 '대한뉴스'를 틀었다. 독재 정권의 서슬 퍼런 통제 아래 사람들은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영화가 끝나면 술자리 안줏감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소극적인 저항이었지만 어두운 시대에 대중이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행동이었다.

 

버네이스는 선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확언한다.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일관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반응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특히 선전의 일부인 기업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 선전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더욱 교묘하고 절대적이다. 음식을 필요로 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려는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전의 효과는 유효하다.

 

 

 

물론, 이 책에는 어떤 용어나 행위가 아무리 가치중립적이더라도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 의해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80년이 지난 지금의 복잡한 사회경제구조에는 버네이스가 제시한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선전 전략이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은 설사 그 도구가 잘못 사용될 위험이 있을지라도 질서정연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분야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달성하려면 선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대의 선전은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 대중은 선전을 통해 변화와 진보에 길들여진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이러한 선전을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할 책무는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있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은 결국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소수 지식인들의 활발한 선전 활동에 달려 있다.

 

 

 

선전에 기만당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다고 믿지 않는 역설. 버네이스의 시대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도배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선전과 선전 아닌 것을 구별해 낼 재간이 없는 대중은 힘 있는 정부와 기업이 설파하는 교묘한 선전 논리를 곧이곧대로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 소수의 지배 권력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과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대중을 압박한다. 80여 년 전 버네이스의 자신감은 현대로 올수록 더욱 유효해지는 불편한 탁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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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의 힘 - 아이의 학력, 인성, 재능을 키워주는
박찬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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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의 ‘학교’는 정말 희망이 없는가? 

 

우리나라 ‘학교’의 현 주소는 무엇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의 학교는 붕괴되었고, 희망은 없는 것일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기업의 변화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현재의 학교체제는 10마일에 불과할 만큼 가장 변화에 둔감한 조직이라고 했다. OECD에서는 미래에 ‘학교’라는 제도는 붕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학교’는 이렇게 총체적으로 무능한 조직이며, 척결의 대상인가?

 

한국의 교육을 벤치마킹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교육 사랑’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입시과열을 보고, 오히려 ‘한국교육을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돌아간 스웨덴 정치가가 있다. 15번의 대학입시 개혁으로 세계적으로 유래를 보기 힘든 ‘입시 강국’, 전 국민의 교육열이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 OECD에서 주관하는 PISA 시험에서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대한민국! 이러한 명예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교단 붕괴,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로, 현재의 학교는 정상 가동이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기관으로 우리사회에서 암암리에 치부되고 있다.

 

다양한 정서와 특성을 지닌 청소년기 학생들. 나만의 장점과 어려움을 동시에 갖춘 아이들이 갖는 학교 선택권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관계 회복과 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경우는 기존 학교 환경에서 공부하기에는 그 한계 또한 뒤따른다.우리의 ‘학교’는 정말 희망이 없는가?

 

 

 

 Scene #2  폐교 위기 직전의 산골학교의 변신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부모들은 대안학교에서 교육의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대안학교를 꿈꾸고 찾아다닐까.

 

대안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은 제각기 지만, 모두 아이들을 공교육에 맡기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학교들이다. 배움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학교가 경쟁과 재 없는 시험 준비로 매몰되어 버린 현 상황에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도록 새로운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교육은 국가가 모든 국민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간주하는 교육내용을 차별 없이 균형 있게 제공하기 위해 만든 대중교육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공교육이 사회적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좋은 학교 출신들이 좋은 직장을 가게 되고 그러면서 학교간 서열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선발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운영되는 학교는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균형감 있게 다뤄주기보다는 획일적인 지식을 기준으로 서열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나 교사들 모두가 학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들어와 더욱 심화되었고 자연스럽게 공교육이 아닌 대안을 스스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작은 학교의 미래』를 쓴 저자 박찬영 선생님도 15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는데 처음 교직 생활을 한 곳이 충남 논산에 위치한 도산초등학교였다. 저자가 처음으로 부임했을 당시 도산초는 전형적인 농산촌형 벽지학교로 인근에 학교 외에 교육관련 시설이 전혀 없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은 학생 수 감소로 이어져 2009년에는 폐교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선택한 자구책은 방과 후 활동 특성화였다. 학교는 자체 예산으로 방과 후 교육 활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우수한 강사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도산초는 도시에서도 배우기 힘든 골프와 승마 강좌를 비롯해 발레, 축구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과목별 캠프, 수월성과 창의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참여율을 높였다. 도산초는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협력해 농촌형 방과 후 학교 모델을 성공시킴으로써 2009년 전교생 37명에서 2012년 107명으로 학생 수가 증가하는 등 3년 전 폐교 위기의 산골학교에서 명품학교로 변신했다.

 

도산초는 기존의 학교 교육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교사는 적은 수의 전교생 한 명 한 명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도와준다. 즉, 모든 학생들 다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활동 프로그램에 배제되는 일이 없다. 이러한 교육 방식 덕분에 학생들은 자존감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동기 부여도 높여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 공부는 성적을 얻기 위한 지긋지긋한 시간이 아니라 좋아서 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다.

 

도산초와 오늘날의 교육현장을 비교하면 지금까지 익숙했던 공교육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들이 눈총을 받고, 교사의 권력이 휘둘러지는 교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서울대에 가기 위해서 친구를 밟고 올라가라고 속삭이는 학교, 학습능력이 평가의 잣대가 되어 다양성을 꺾어버리는 학교, 지식과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모범 정답을 가지고 “너는 뭘 몰라, 틀렸어.”라고 말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사고는 닫히고, 창의성과 자발성과 자존감은 죽어간다.

 

작은 학교는 현재의 아이들 그러니까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갈 미래의 어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화해조정을 받지 못한 학교의 기억이 순간순간 아픔으로 떠올라 우리 안에 울고 있는 아이들, 과거의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자기 자신과의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알고, 자기분야에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알고,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다른 존재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 가치나 환경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자기 세계를 창조해갈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Scene #3  교육의 ‘대안’이 아닌 좋은 교육의 학교로 발전해야 할 때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냈다가 여러 가지 부적응을 보여서 다시 대안학교 문을 두드린 부모들은 대안학교에 대한 기대가 더 클 수 있다. 특히 학습보다도 친구나 교사와의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아이라면 대안학교에 가면 그런 상처들을 안 받으리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사들, 무엇보다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제일 강조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라면 아이 상처도 치유되고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리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일반학교에서 대안학교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겪고 있던 문제들이 해결되기도 한다. 학습 스트레스에서 풀려나서 교사와 친구들과 더 깊은 소통을 나누며 충분히 놀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이에게 치유가 된다. 그러나 대안학교에 보냈다고 모든 아이가 다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대안학교가 일반학교보다 더 나은 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문제가 부각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안학교마다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인격수양을 강조하는 학교도 있고, 자유학교를 지향하는 곳도 있고,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하고, 경건한 신앙을 강조하기도 하고, 지역과 함께 하는 시민정신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회적 비판정신을 강조하기도 하고, 심지어 대학진학을 강조하는 곳도 있다. 그러니 자녀들의 특성에 맞춰 아이들이 희망하는 학교를 함께 찾아보고 상담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학교 아이들과도 수시로 만나면서 내 아이의 특성 및 상처받기 쉬운 면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다 보면 서서히 내 아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번에 될 리는 없다. 대안학교는 아이의 성장과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부모 교육 및 모임을 계속 열면서 공동체를 통해 지속적인 도움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수적인 만큼 특히 부모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맡기는 교육에서 참여하는 교육으로 학부모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며, 학구제의 제한을 풀어야 하는 행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는 공교육의 ‘대안’이 아닌 좋은 학교로 발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열정의 불씨를 다시 살리고파 하는 간절함이 교사들에게 있고, 교사의 관심과 칭찬을 먹고 사는 맑은 눈망울의 학생들이 여전히 우리 학교에는 많다. 이제는 학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큰 희망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작은 열정과 감사의 불꽃들을 찾고 살려야 할 때이다. 숨 막힌 공교육이 아닌 정작 공교육에 숨 막힌 학생들 숨통을 틜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작은 학교, 즉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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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 (외) 범우문고 269
안중근 외 지음 / 범우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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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올해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우익의 망령은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쾌거였다. 최근 일본의 우익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로 한일 간의 불신의 골이 갈수록 깊어가는 시점에서 안 의사의 거룩한 순국정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아울러 시대를 훨씬 앞서 일본의 군국주의가 동양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경고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안 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다. 그의 거사 목적은 보다 크고 넓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의 구현에 있었다. 그는 뒷날 재판정에서도 이렇게 당당히 진술했다.

 

한.일 두 나라의 친선을 저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이 바로 이토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그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일본 천황의 취지와 같이 동양 평화를 이루고 5대주에도 모범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바이다. (‘최후 공판기록①’ 중에서, 47~48쪽)

 

이토가 한일 간의 진정한 우의뿐 아니라 나아가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처단했다는 것이다. 안 의사가 이미 백여 년 전에 이렇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안 의사의 의거 이후 조선을 강점하고 중국을 침략하고 마침내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간이 흘렀는데 또다시 군국주의,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한 우익교과서 채택 흉계와 독도 영유권 억지주장이 이를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Scene #2  동양평화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에 글도 많지만,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같은 글이 있을까.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후 사형선고를 받고, 항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집필시간을 얻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일주일 만에 사형을 당했다. 아쉽게도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前鑑) 두 부분만 쓰인 채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글은 단순한 민족주의론이나 타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일본적 아시아주의론을 넘어,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운 것이다.

 

안 의사가 여순(旅順)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유럽의 철과 석탄의 산지 루르. 자르 지역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루르. 자르 지역에 대한 장악 경쟁이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2차대전 후 유럽철강석탄동맹으로 공동관리한 결과 유럽경제공동체(EEC)로,유럽연합(EU)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 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의 거점이기도 하며, 당시 구 만주지역 전체의 향방과도 맞물려 여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다. 지금 이러한 여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한반도인 셈이고, 한반도가 동북아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안중근의 국제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동북아 각국의 개별적 노력과는 별도로 동북아 공동의 국제적 접근을 중시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동안보체제 혹은 국제평화군의 유지와 연결시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안 의사가 일찍이 주창한 동북아개발은행 구상도 매우 주목된다. 북한 개발은 동북아 전체의 개발구상과 연계하는 것이 좋고, 그 경우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각국 정부자금과 함께 세계의 유휴자본을 끌어들여 개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개발수요자금을 국제은행 등에서 지속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일이고, 정부 역시 특정 재벌그룹을 통한 방식 같은 것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미국정부 또한 직접지원 방식보다 개발은행을 통한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동양평화회의는 각국 정부도 참여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각 국가와 인민을 구별해 시민참여형 공동평화회의를 상정한다. 고대문화의 공유나 인종주의적 아시아론이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인민 혹은 시민세력이 주도하는 동양평화회의다. 한·중·일 시민 수억 명이 가입하고 1인당 회비 1원씩 내면 수억 원을 모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구미 제국주의와 시민을 구별해 구미 시민들과 제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평화의 주체를 일본으로 보고, 일왕을 신뢰하는 등 사상적 한계점 역시 드러낸다. 사형집행을 앞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시간동안 집필했기 때문에 현실성 떨어지는 공상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에 대한 지론은 현 시점에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로 말미암아 ‘중국의 아시아’ 혹은 ‘일본의 아시아’가 될 위험성이 크다. 그것을 안중근이 구상한 ‘아시아의 중국’, ‘아시아의 일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연결시키는 아시아보다 세계 시민을 연결시키는 ‘시민적 아시아’, 양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가 아니라 다자주의적 접근의 아시아를 구상한 안중근의 탁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cene #3   동양의 평화,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

 

안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이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의지가 있었다.

 

“내가 불공평한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도 공소권을 포기한 것은 복죄(복죄)했다고 생각지 마시고. 나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상급법관 역시 일본인이니 그 결과가 뻔한 것 아니겠소.” (7쪽)

 

선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인간적 배경, 암흑의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고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매우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까지 그의 무덤과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글을 널리 읽혀지지 않고 있다. 과연 안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이 미완의 생각을 기억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안 의사를 동양평화론의 창시자보다는 이토를 죽인 위인으로만 기억한다면 선열의 순국 정신을 제대로 되새긴다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우리는 참으로 못난 후손이다. 아직도 극일은커녕 일본의 거듭되는 망언망동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안중근 의사께 면목이 없다. 안중근 의사 같은 선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처럼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건만 그동안 우리 못난 후손들은 무엇을 했던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커녕 무덤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남북으로 갈라져 헛된 싸움질만 되풀이하며 통일도 못 이루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역사를 낳은 지정학은 바뀔 수 없다. 오늘의 한국이 대한제국일 수는 없으나, 오늘날 한반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방안은 구한말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조국의 분단을 낳았으며, 분단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져 그 후유증으로 한반도 재통합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불가에 문자반야(文字般若, 만물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란 말이 있으나, 안 의사의 글은 문자천고(文字天鼓, 글이 천둥소리라는 뜻)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글은 영원한 미완성이며, 우리 후인들이 두고두고 완성해야 할 영원한 정신이다. 안 의사가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무언의 교훈은 한민족이 하나 되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특정 패권국가가 좌지우지하는 동양평화가 아닌 한중일이 협조하여 공동선의 체계를 이루어 가는 새로운 ‘동양평화’를 창조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양평화론의 근본 취지는 강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주권국가가 상호 협조하여 공존 공영하는 동북아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은 이토가 말하는 서구의 방식을 흉내 낸 국권침탈을 통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이토는 평화의 약탈자였다. 그의 저격은 테러가 아닌, 지금도 살아있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목숨 바쳐 염원한 동양평화는 100년 전 어느 독립운동가의 이념만이 아닌,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다. 옥중에서 못다 이룬 평화주의자로서 안 의사의 생각의 숨결을 살려야할 때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못난 나라, 역사의 뼈저린 교훈을 망각하는 정신이 썩은 겨레에 무슨 밝은 미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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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2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 일본이 망언망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사람은 아직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이런 '일본말'을 '전문용어'라고 여기곤 하기도 하고,
교과서에도 신문방송에도... '일본 말투'는 널리 나타나요.

말을 슬기롭게 깨우치지 못하니
역사도 제대로 못 보지 않느냐 싶습니다.
굳이 프랑스나 덴마크나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들 나라는 '제 나라 말'을 지키면서 '제 나라 역사'를 함께 지켰으니까요...

cyrus 2014-03-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함께살기님. 맞습니다. 여전히 일제 시대부터 생긴 잘못된 일본말이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죠. 선진국의 역사 인식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
김현미 지음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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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다문화사회의 허상


결혼이주이든 노동이주이든 국제 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도 더욱 개방되고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문화사회의 등장이다. 최근 대두된 다문화사회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다문화에 대한 요란한 구호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한국문화의 입장에서 다른 문화를 보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여튼 서로 다른 문화, 도덕, 신념, 관습,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다문화사회를 이루면서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다문화 사회를 긍정하는 사람은 다문화사회가 단일문화사회였던 한국사회에 자비로운 혜택을 줄 거라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한국사회의 자산으로 보면서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편협한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문화사회가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가령 다문화 배경을 지닌 애플의 스티브 잡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같은 인물을 한국이 낳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기도 한다.


다문화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애써 목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다문화사회가 사회통합을 위태롭게 하고 사회경제발전을 돕기는커녕 방해한다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적 차이를 사회 내부의 적(敵)으로 본다. 이주자들이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원래 속한 공동체성원이라는 감정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B국으로 이주한 A국인이 여전히 A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을 B국 시민으로 보지 않으면서 B국 사회에 고립돼 살고 있다.

 

 

 

 Scene #2  그들이 집을 떠나게 만드는 세상  


유엔은 12개월 이상 특정 국가에 체류한 사람을 '이주자'라고 분류한다. 한국은 유엔의 분류에 따라 지난 20년 동안 외국인 이주자 유입이 가장 많이 증가한 나라 중 하나로, 현재 이주자 비율은 전체 국민의 3%에 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주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다뤄진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국은 이주자 송출국에서 이주자 유입국으로 변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정책적으로 제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당시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 없거나 임금 상승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제조업체는 더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을 받아들인 것도 한국내 이주민이 증가한 큰 이유다. 가족중심인 한국은 언제부턴가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결혼시장의 성비 불균형 등으로 지속적인 가족 관계망 형성이 어려워졌다. 이처럼 인구학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한국사회가 이를 외부수혈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3년 무용수로 한국에 왔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한 러시아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주자 연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10년 동안 이주자들을 인터뷰하며 한국인의 '상식' 이나 '관습'에 익숙한 자신이 다른 상식과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해의 장을 만들어갔다고 토로한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이주자의 현실은 참담 그 자체다. 한국인 남편들은 베트남 부인 집에 송금하는 것을 결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잣대로 이용하거나 자신의 자원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아내의 배반행위로 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에 대한 비용을 긴 노동시간, 열악한 근로환경, 폭력, 인간적인 배신감 등으로 치러야 하고,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글로벌 이산민처럼 떠돈다.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누구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나 이주자 신분이 될 수 있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주민 2세들은 한국에서의 지위를 인정하며 꿈을 조정해야 하는 슬픈 현실에 직면한다. 노동력 부족,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스스로 이주자를 필요로 하게 된 한국 사회는 이주자의 당연한 권리는 부정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Scene #3  우리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 


물론 외국인을 무조건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장기체류와 정착이 가져올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강조하는 점이나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외국인을 대하는 정책과 의식에는 자성할 점이 많다. 외국인을 노동시장 교란 주범이라거나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는 시각에서 과장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그리고 범죄자 이미지가 외국인에 대한 적대 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 본질 문화와 가짜 문화라는 이중기준에 기초한 인종차별과 민족차별의 잣대와 같은 논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수직적 질서를 당연시해 왔다. 우리들에게 내재된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결혼이주자와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가족들을 배제하는 논리와 편견의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닌지 자성할 때다.


글로벌화는 필연적으로 다문화 시대를 초래한다. 다문화에는 서로 다른 언어, 기억, 가치, 관행 등의 존재와 그에 대한 저항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습, 편견, 무지가 뒤섞여 충돌과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주자를 한국 가족과 사회 내에 편입시키기 위해 빠른 동화를 통한 한국화라는 목적에 얽매이다 보니 다문화주의 논의는 ‘다문화 가족’ 정책으로 환원되었고 여전히 정체돼 있다. 이 같은 정책은 다문화 가족 전체를 취약계층과 동일시하면서 영구적인 주변부 계급으로 고착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만들어냈다.


다문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상대방에 대한 동질성 강요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강조한다. 바람직한 다문화 정책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요구된다. 이주자 고유의 정서와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존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주자가 기본 권리를 누리고 유지하는 것이 한국 국민의 권리를 뺏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출발선을 만들어 주고 같은 과정을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특혜’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 다문화가정 자녀는 소수자이고 소수자를 돕는 일은 늘 더 많은 투자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 외국인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일상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우리가 대비하고 선택하는 방법에는 인간존중과 국민으로서의 외국인주민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 독서모임 인터넷 카페 '달의 궁전'(http://cafe.naver.com/darlgung)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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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 국회 기자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 국회 정치의 모든 것
양윤선.이소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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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슬랩스틱 희극인이자 무성영화 감독 찰리 채플린. 그의 1936년작 「모던 타임즈」는 산업화의 폐단과 그 속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절묘하게 풍자한 역작으로 불린다. 70여년이 넘도록 각기 다른 국가에서 각기 다른 역사가 생성되는 동안에도 항상 현시대의 고민에 투영돼 재해석 되고 있다.

 

영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커다란 시계는 생산과 효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기는 노동자의 삶을 상징한다. 컨베이어벨트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찰리 채플린 분)은 하루 종일 양손에 든 공구로 나사못을 조이는 단순한 일을 반복한다. 자본가인 사장 지시로 작업반장은 기계의 속도를 점점 더 높인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생산성이 증대되고 사장은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공장의 화장실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어 조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동급식기계는 점심식사의 여유조차 사치인 노동자들의 입에 음식물을 투여한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조여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과 작업반장이 컨베이어벨트의 커다란 톱니바퀴에 끼여 이리저리 돌며 쫓고 쫓기는 장면은 그야말로 슬랩스틱의 진수를 보여준다. 중년 여성이 입은 옷의 가슴팍에 달린 단추를 나사못으로 착각해 조이려는 장면에서는 웃음보가 터진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날 멈춰선 채 정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는 국회를 보노라니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과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에 국회의원이란 단어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속한 곳에서 효율성을 제고해야 하는 산업화, 현대화의 산물이라고 보면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리라는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채플린이 나사못을 조이듯 무의식으로 의사봉을 휘두르고, 눈을 치켜뜨며 습관처럼 호통만 치니 말이다.

 

다만 우리와 다른 면이 있다면 둥글게 돌아가는 시간이란 궤적에는 얽매이지 않는 점이랄까. 급한 것이란 없다는 듯 매년 같은 행동을 여유롭게 반복한다. 국민에 고용된 노동자라는 점은 아예 머릿속에 없는 듯 대통령이나 권력자에게 고용된 것인 양, 그들이 급여를 주는 것인 양 착각하고 사는 것 같다.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왜 싸울까?’ 매일 저녁 정치인들이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 채널을 돌리고, 선거 때마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을 하는 건 결코 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만 정치에 관심이 있을 뿐이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 중 정치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마음 깊숙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정치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국익을 위한 정치가 되기를 모두가 소망하고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정치에 많은 불신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 어떤 사람이 해도 ‘정치가 달라질 것이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이 우리 국민이 깨어있지 못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고 이대로 놔두면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고, 정치 자체에 대한 염증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 굳어져버렸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 정치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려 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국회는 또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제대로 알긴 할까.

 

『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의 공저자이자 국회의 24시간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국회방송 소속 양윤선, 이소윤 기자는 국회의원들을 ‘용병’에 비유한다. 나를 대신해 싸워 줄 용병. “국회의원은 지역과 직능을 대변한다. 모든 사람이 링에 올라갈 수는 없다. 대표 선수를 올려 대신 싸우게 하는 이유다. 우리는 코치가 되어 선수를 지도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일은 언제 하나 싶지만 국회의원은 원래 ‘싸우는 사람’이다. 하나의 법안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이를 조율하고 타협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치인들은 그저 싸우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흔히 언론과 브라운관을 통해 본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저자들은 '내 한 표가 무엇을 바꾸겠나'라는 생각으로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치는 미래를 위해 미리 들어놓는 보험이고, 투표행위는 보험료라는 정치인의 말을 인용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악순환될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차선, 차악, 차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점진적인 정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기를 꿈꾸며 바른 민주주의의 정치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얻고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혜택과 국익을 위한 정치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감정을 만든 정치꾼들에게 속지 말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서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잘못된 정치를 바꾸고 진정한 민주주의로 도약하는 귀한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중요한 정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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