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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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말하고자 하는 욕망, 문장력, 머릿속 가득한 이야기들. 소설가에게 필요한 걸 정세랑은 다 가지고 있다. 따뜻한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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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19-07-1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놓고 못 읽고 있었는데, 역시 좋은가 보네요.

다락방 2019-07-15 14:42   좋아요 0 | URL
동시대에 정세랑 작가가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얼음장수 님.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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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당황스러웠다. 뭐랄까, 평소에 늘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방법이 좋다는 자기 확신이 없는 채로 쓴 글 같다고 해야하나. 이 책을 위해 만들어진 방법의 느낌이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이현' 작가의 [동화 쓰는 법]이 자연스레 떠올랐는데, 이현 작가의 책에서는 작가가 분명히 알고 있고 또 확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깨닫고 그걸 본인이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이다혜의 책에서는 그런 게 없고 스스로도 자신이 말한 방법을 딱히 자신이 쓰는 것 같은 느낌도 아니라 내 경우엔 글쓰는 데 별 도움 안되는 책.


무릇 책이란 언제나 읽는 자의 몫이려니,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쓰기 방법 책이 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내 경우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이현 작가의 책을 추천하겠다.


이 책에서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딱히 얻은 건 없지만, 좋은 책들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얻었다. 다이어리에 몇 권 메모해두었고, 오늘은 그중 한 권을, 다른 책들을 사면서 구매했다. 이다혜 작가는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책에 대해서 말하는 쪽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본인도 그걸 더 좋아하는 것 같고.









방법1. 장소만들기
식탁일 수도 있고 커피숍일 수도 있다. 여기 앉으면 글 쓰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작업실을 만든다. 물론 이렇게 커피숍에 가서 영원히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안 돼! 그러면 안 된다! - P44

인간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자평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는 않는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멋진 성취에 대해서라면 칭찬하는 말을 고르고 골라 전한다. 책이나 영화에 대해 쓸 때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는 좋다고 헌신적으로 말하도록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흔하지 않은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진심으로 고민한다. - P109

지금의 나를 가장 고통스럽고도 기쁘게 만드는 일은,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는 일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해 밤늦게 새벾까지 읽어 끝을 본 뒤 어디로든 힘껏 달려가고 싶은 기분에 빠진다. 책 한 권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처럼. 지저분한 방을 싹 뒤엎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보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온통 뒤범벅이 된다. 있는 힘껏, 내가 무엇이 될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 아주 좋은 책과 아주 좋은 여행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보통의 책과 보통의 여행도, 나쁜 책과 나쁜 여행도 나를 조금씩, 하지만 영구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리라고. 나빴다고 생각한 일이 나중에 더 좋은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을 구경하며 깨달은 것을 내가 경험으로 배운다. - P125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가 생기면 꼭 하는 당부가 있다. 악플을 쓰지 말라고. 당신이 쓴 글을 세상 누구도 안 읽을 수 있지만, 당신 자신은 읽는다. 그 말은 다른 사람에게 향하기 전에 당신 자신을 향한다. 물론 악플을 쓰지 말라는 이유는 몇 가지가 더 있다.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벼르는 재능은 없느니만 못하다. 남이 어떤 말에 아파할지 궁리하며 에너지를 쓰지 말자.
악플러를 잡고 보니 가까운 사람이더라는 경험담을 듣게 되기도 한다. 아는 사람에 대해 익명으로 악플을 단다는 말이다. 잘되는 게 배가 아파서, 하는 짓이 기분 나빠서, 혹은 그냥 날이 궂어서. 그런 이들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뾰족한, 아프게 하는 악플을 달기 마련이라, 고소하고 보면 아는 얼굴이라는 말이다. 로버트 그루딘은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에서 "범죄 가운데 가장 만연하고 많이 재발하면서도 좀처럼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근거 없는 헐뜯기, 즉 중상이라는 달콤하고 사교적인 공격이다"라고 말했다. - P131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이것은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멋진 이유가 된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퍼붓는 노력이 있고, 더디지만 더 나은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에 충실한 나 자신이 먼저 안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 P133

어떤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제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 P157

나는 타인을 공격하는 자유를 보호하기보다는 부당하게 공격받지 않는 권리를 먼저 보호하자는 주의의 사람이다. 의도와 무관하게 ‘그러하게‘ 읽힌다면 글을 잘못 썼을 가능성이 높다. 글을 써놓고 글쓴이의 의도를 따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글을 잘못 썼다.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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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스토리콜렉터 34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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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이 스파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할머니의 삶이 켜켜이 할머니에게 쌓인 덕분이다. 다정한 마음, 친절한 태도, 이것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 할머니의 지혜. 폴리팩스 부인의 그동안의 삶이 축적해온 온전한 할머니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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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단발머리 님께서 작성하신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보았고, 내친김에 나도 좀 읽다 자야지 하고 지난번 읽던 곳의 다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데, 아니 글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옹호》에서 '루소' 에게 반박한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루소를 까는거다! 그러면 왜 까는가? 깔만하니까 깐다..루소, 남자여... 루소도 걍 남자로구나.



루소는 선언하기를 여자는 결코, 단 한번도,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천부적 교활함을 발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고, 남자가 쉬고 싶어할 때면 언제든지 더 매혹적인 욕망의 대상, 더 달콤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애교덩어리 노예로 변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 주장들을 자연의 섭리에서 이끌어냈다고 내세우면서, 한 술 더 떠서 여성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복종이라는 큰 가르침을 철두철미하게 주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 미덕의 주춧돌인 진실과 강인함의 함양에도 어느 정도는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넌지시 말하기까지 한다. (p.59)



나는 그동안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여겨져온 남자들이, 지혜롭다고 혹은 선견지명이 있다고 여겨져온 모든 남자들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이 서로 오구오구 우쭈쭈 해주고 천재 학자인 듯 떠받을어준 모든 남자들이,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에서만'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 세상을 보는 눈이나 좀 더 깊이 사유할만한 능력은 안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이 남자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 편협한 시선을 갖고 있어도 당대의 지식인으로 여겨졌었지.



나는 어디, 루소를 얼마나 가열차게 까대는가 보자, 까대는 것에 연대하리라!(응?) 하며 책장에서 오랜동안 잠자고 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를 꺼내가지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아니, 그런데 대실망인 것이, 쩝... 옮긴이가 쓴 <들어가는 말>에 보면 내가 읽기로 선택한 이 책이 전문을 번역한 건 아니라는 거다.



《여성의 권리옹호》는 전체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문고본인 이 책의 성격상 다 싣지 못하고 중요도를 고려해 1,2,5,6,9,12,13 장을 선별해 번역했다. 2장과 유사한 주제를 논하는 3장과 4장,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노함으로써 전체 주제와 비교적 거리를 두고 있는 10장과 11장을 배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정숙함에 대해서 논하는 7장과 좋은 평판을 유지하느라 소홀히 취급되는 도덕성의 문제를 지적한 8장을 빼는 것은 아쉬운 결정이었다. 아울러 여성을 폄하하는 여러 작가들을 비판하는 5장과 여성들이 쉽게 범하는 여러 오류를 지적하는 13장의 경우, 각각 한 명의 작가와 한 가지 오류만 선택했고, 13장에서는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6절을 포함시켰다. (- 여성의 권리옹호, 들어가는 말, 옮긴이 문수현, p.12)



음, 이게 전체를 다 번역한 게 아니라 일부라니, 음, 난 그것도 모르고 덜컥 사버렸는데. 제대로 읽으려면 다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살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일단 읽기로 했다. 나한테 필요한 건 조금 더 과격한 책들일테니, 이건 이것대로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여성폄하 작가들을 비판하는 5장을.. 읽고 싶다... 누구를 가열차게 까댔는지 궁금해. 자고로 사람이 친해지려면 뒷담화를 같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제1장 인류의 권리와 연관된 의무들을 고찰함>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자들을 깐다. 루소를 언제 까려나 했더니, 걍 1장부터 까버려. 루소만 까는 게 아니라 남자는 그냥 다 깐다. 루소를 비롯해서 모든 직업군의 남자들을 그냥 죄다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하는 일이라고는 여성을 유혹하는 것뿐이고, 세련된 태도 덕분에 화사하고 장식적인 의복 밑에 추악한 부도덕성을 감춤으로써 사악함을 더욱 위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게으르고 천박한 일군의 젊은 남성들이 간혹 시골에 체류하는 것보다 더 시골 마을 주민의 도덕성을 침해하는 것은 없다. (여성의 권리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p.27)



신분 혹은 재산을 가진 남성은 이해관계에 의지해 출세하게 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변덕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흔히 말하듯이 자신의 재능으로 출세해야 하는 궁핍한 신사는 비굴한 식객 혹은 비열하게 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된다. (여성의 권리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p.274)



선원들과 해군 장교들도 같은 범주에 해당되지만, 그들의 사악함은 경우만 다르지 더 심한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에 해당하는 의식 절차들ceremonials을 이행하지 않아도 될 때는 더욱 철저하게 게으르다. 이에 비하면 육군 병사들의 하찮은 배회는 적극적인 게으름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남성들끼리의 사회에 보다 국한되어 있는 해군은 유머와 심한 장난을 선호하게 된다. 반면에 행실이 얌전한 여성들과 빈번히 어울리는 육군 병사들의 경우 감상적인 위선적 말투가 몸에 밴다. 그러나 그들이 너털웃음을 짓건 예의 바른 억지웃음을 짓건, 지성이 의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여성의 권리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p.27-28)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울스턴크래프트는 한마디로 남성들의 지성을 의심했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처한 상황에서 처한 환경에 따라 지성이 의심스러워. 1장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번 루소를 까주고 마치는데, 자, 까는 걸 또 얼마나 문학적으로 까댔는지!



루소가 그의 탐구에서 한층 높이 올라섰거나, 혹은 그의 눈이 그가 거의 언제나 호흡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안개 낀 대기를 궤뚫어 보았다면, 그의 활동적인 정신은 참된 문명을 확립하고 인간의 완성을 숙고하는 데로 돌진했을 것이다.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말이다. (p.30)



정말이지,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간다니!! 무식하다는 표현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하다니. 울스턴크래프트 진짜 반할만한 사람인 것이야. 너무 좋은 표현이다. 어떻게 이렇게 무식하다는 걸 세련되게 표현했을까.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가는 오, 루소여!!



그래도 루소 궁금해져서 루소도 읽고싶어졌다.




















최근에 SNS를 통해서 윤김지영 선생님의 논문을 다운받았다. 논문의 제목은 <페미니즘의 지각변동: 새로운 사유의 터, 페미니즘 대립각들> 이었다. A4 영지로 70장이 출력되던데, 앞에 몇 장만 잠깐 읽어봤다. 아니, 근데, 선생님은 초반부터 하이데거..를 데려오는 것이다. 하이데거요??



페미니즘은 섣부른 화해와 평화의 수사, 고고한 윤리적 우월성의 현시가 아니라 존재론적 폭력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터를 열어젖히는 각축의 장인 것이다. 여기서 "존재론적 폭력"(Zizek, 2008: 68) 이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Introduction to Metaphysics(형이상학 입문)(2000)에서 도입하는 개념으로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말해지지도, 생각되지도 않았던 것들을 드러내고 전개해나가는 쟁투"이자 "창조자들과 시인들, 사유하는 자들, 위대한 정치가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Heidegeer, 2000: 65) 이다.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존재론적 폭력을 구사하는 이들은 사유(思惟)의 시작점을 여는 이이며, 페미니스트들도 이에 속한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세계의 문법을 발명하고자 하는 이들이자 기존의 남성 중심적 문법을 뒤틀어버리는 시인들이자 사유의 대전제와 공리들의 임계점을 드러내며 끝 간 데 없는 질문의 역량을 퍼 올려 철저히 사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지각변동: 새로운 사유의 터, 페미니즘 대립각들, 윤김지영, p.9)



아, 또 하이데거 궁금하잖아요, 여러분? 다행히도 나에겐 하이데거 입문서에 대한 정보가 있다. 한 달전이었나, 만화로 빌려왔다가 안읽고 반납했었지. 아하하하하. 하이데거는 이 만화로 존재한다! 꺄울 >.<
















음... 그렇지만.....음....이거 한 권 읽는다고 존재론적 폭력...에 대해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 용어상으로 그리고 윤김지영 선생님이 페미니스트들을 존재론적 폭력에 비유함으로써 그 의미가 뭔지 잘 알겠다.


이 논문은 <문화와 사회 2019 27권 1호>에 실린것 같은데, 이 책은 어디서 구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논문은 파일로 제가 가지고 있으니 원하시는 분은 말씀하시면 이메일로 쏴드리겠습니다. 푸슝-



실비아 페데리치 덕에 마르크스 읽어야 됐고 파이어스톤 덕에 헤겔 읽어야 됐는데, 하하하하, 마리 루티 덕에 라캉 읽고 싶어졌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덕에 루소 읽고 싶어졌고, 윤김지영 선생님 덕에 하이데거 읽고 싶어졌다. 헤겔과 하이데거 라캉이라니.. 아니, 나는 살면서 내가 이들을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이렇게 툭툭 마주치게 되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는 거 진짜 너무 좋다. 지금 고정 멤버는 사실 몇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정 멤버가 있다는 건 완전 큰 힘이 된다. 꼬박꼬박 같이 읽고 글 써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밀려서 시간도 못지키고 글도 못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시간을 넘겨서라도 읽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큰 힘이 된다. 나로 하여금 계속 이걸 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달까. 내가 '하자'고 제안한 사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퍽 다행이었다. '하자'고 한 이상, 해야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야말로 그 덕분에 꼬박꼬박 매달 해당도서를 완독하고 있다. 몇 권은 정말이지, 혼자 읽었다면 결코 다 읽을 수 없는 책들이었던 거다. 게다가 이렇게 읽다보니 되게 재미있고 즐겁다. 책 내용이 웃을 수 있는 내용인 건 아니지만, 고달픈 역사를 알게되는 것, 그것들을 표현해내는 글을 읽는게 새로운 깨달음인거다.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써줘서, 그리고 철학자들을 언급하고 그들의 책들을 인용해서 자꾸자꾸 더 재미있어진다. 어렵지만 재미있는 거. 내 능력이 딸리는 것 같아 몹시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여성주의 책 같이 읽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작년에 내가 한 일중 가장 잘한 게 이 일이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윤김지영 샘과 윤지선 샘이 함께 저술한 책이 나왔다. 만세!! 이름하여, 《탈코르셋 선언》!! 아니, 엊그제가 월급날이었는데 어제 통장이 초토화 되었고..나는 7월 한 달 책 안사기..운동을 혼자 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윤김쌤 책이 나와버리면 내적 갈등이 오져버리는 것이여..



















이제 단팥빵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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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1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하이데거? 하아......

다락방 2019-07-12 09:02   좋아요 0 | URL
나 어떡해요? 😔

syo 2019-07-12 09:21   좋아요 0 | URL
🐒 : 체감상 하이데거가 제일 빡센 자식은 아니었어요(당연히 원전 아니라입문서 기준)

박찬국 선생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일단 권하구요, 무난히 읽히면 역시 박찬국 선생님의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로 복습 및 심화학습 해 주세요.

다락방 2019-07-12 09:22   좋아요 0 | URL
입문서 추천 겁나 받고 있는데 언제 다읽죠? 저 제 의욕대로 다 읽었으면 이미 대학교수... 🤪

syo 2019-07-12 09:26   좋아요 0 | URL
🙉 : 드릴 말씀이 없다. 그저 화이팅....

다락방 2019-07-12 09:31   좋아요 0 | URL
화이팅 접수합니다... (그러나 한숨)

단발머리 2019-07-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방에서 나 혼자 혼잣말)
하이데거, 반사!!!

다락방 2019-07-12 10:15   좋아요 0 | URL
자, 우리 하이데거도 같이 파봅시다. 루소도, 라캉도....(끌어들이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9-07-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의 말년작은
에...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징징댐이 지나칩니다
정신승리(?)같은 그 글을 읽으면
화가 나가는 커녕 쯧, 측은해 지... 아니죠, 너그러워 질 필욘 없죠! 까대야합니다. 말년작은 후져요.

다락방 2019-07-12 14:08   좋아요 0 | URL
제가 뭐 말년작까지 읽게 될것 같진 않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라캉도 못 건드리고 있기 땜시롱 언제가 될진 모르고 이렇게 읽을 책은 쌓여만 갑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나저나 나도 참 귀여운 아이였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쓸쓸했지만 아주 행복한 애였어. 지금도 쓸쓸한 것은 똑같지만, 나는 참으로, 참으로 쓸모없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고 있구나. 그러자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제라늄 화분을 내놓으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을 때였다. 난간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지금 딱 한 걸음 허공을 내디뎌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단 한 가지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뾰족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날 옥상에 올라온 가버라는 젊은이가 그녀를 보고 "무슨 일이세요, 폴리팩스 할머니! 당장 뒤로 물러서세요!"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순순히 뒤로 물러스는 그녀를 보며 가버는 후들후들 떨었다. 의사에게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다.

인생에 변화가 필요했다. 안 그러면 이제 겁이 나서 제라늄 화분에 햇볕을 쏘이지도 못할 텐데, 부인은 하필 제라늄을 참 좋아했던 것이다. (p.13-14)


















폴리팩스 부인은 굳이 살아야할 이유같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딱히 또래보다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도 없었고. 부인이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 뭐였는지 물어보고 폴리팩스 부인은 웃으면서 '스파이' 라고 답한다. 그런 그녀가 정말(!) 스파이가 되고자 한다. 살아갈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 것.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 그러나 하지 못했던 그 일, 스파이!


그렇게 그녀는 무작정 워싱턴의 CIA 본부로 찾아가 '나 스파이가 되고 싶어' 라고 말한다. 물론 스파이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을 바로 스파이로 취직시켜줄 순 없다. 그러나 타이밍과 오해가 폴리팩스 부인을 정말(!) 스파이로 만들어버리고, 그렇게 단조로운 삶을 살던 폴리팩스 부인은 중요한 임무를 띠고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부인은 해외여행도 처음이고 비행기도 처음이다. 자식들이 다 커서 손주들까지 생긴 이 때야, 그녀는 비로소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로 날아가는 것이다!



폴리팩스 부인은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기 보다는, 이만큼 살아온 자신의 나이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그녀는 지혜롭고 다정하다. 19일에 방문해야 할 서점에 미리 방문하는 게 영 내 성격에 안맞았는데(왜 지시대로 하지 않는거야!!), 그러나 그마저도 그녀에겐 행운이었다. 그녀는 서투른 스파이었지만, 해야할 일을 정말 잘 해내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간에!

그녀는 여행지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혼자인 시간도 즐긴다. 포로로 잡혔지만, 함께 포로로 잡힌 스파이에게 다정한 벗이 되어주고, 그녀를 포로로 잡고 있는 적들에게도 아주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고, 아픈 곳을 안마해주는 친절한 부인이 되어준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지혜는 계속계속 쓸모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물처럼 거친 액션이 계속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걸 몹시 싫어하는 폴리팩스 부인이 자신의 탈출을 위해 적들을 어쩔 수 없이 아프게 한다. 심지어 총을 쏘기도 해! 할머니 스파이물이라니, 뭔가 거짓말 잔뜩에 가벼울 것 같지만, 정말이지 읽는 재미가 있다. 중간중간 삶에 대한 부인의 생각을 읽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아마 부인도 그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다르게 펼쳐지는 일들을 맞닥뜨리며 더 많이 인생이라는 것의 재미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나타나는 게 참 좋다. 



어쨌거나 누구의 인생에서건 미래의 모습이며 형태며 방향은 자기 손을 벗어난 것이며, 순전히 우연이나 운명, 또는 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오게 마련이다. 이제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결말은 누구도 몰라. 폴리팩스 부인은 생각했다. 바퀴 달린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 안으로 밀려 들어갈 때 보이는 천장을, 그리고 천장이라는 것 자체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P.243)




지혜롭게 나이들고 싶고 건강하게 나이들고 싶다.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은 그다지 큰 게 아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다정한 벗들과 함께하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일. 특히나 여행에 대해서라면 더 그러한데, 먼 곳에 가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다, 라고 생각하며 '언젠가'로 미루다가는 아예 이루지 못하게 될 확률이 크니까. 시간과 돈이 생겼을 때는 내가 건강과 체력적으로 힘겹게 될지도 모른다.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장 가서, 조금이라도 그곳을 보고 느끼고 오자고, 그런 자세로 살고 있다. 나중에 훨씬 더 나이들었을 때, '이제는 가고싶은데 갈 체력이 안되네' 같은 말을 하며 가지 못한 시간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하면서 살고 싶다.




폴리팩스 부인이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CIA 본부로 들어가 '나 스파이 하고싶어!' 라고 말하고 또 정말 스파이를 하게 되는 이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좀 더 즐겁게 살고픈 욕망을 느꼈다. 나중에, 아주아주 나이가 많아졌을 때, '사실 이런거 하고 싶었는데' 같은 거 생각하며 젊은 날을 아쉬워하지 않아야지. 지금 당장은 알라디너 몇 명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는 거 진짜 너무 좋고!! 덕분에 계속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더 들면 글자 읽기도 힘들어질 때가 올텐데, 지금 부지런히 열심히 읽어둘거다. 글도 열심히 열심히 쓰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술도 많이 마실거야. 요가도 놓지 말아야지. 그래야 좀 더 오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테니까. 가고싶어지면 휙- 하고 먼 데로 날아갈거다. 지금은 그게 가능하고, 가능할 때 해야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좋아한다는 말도 아주 수시로 해야지. 나중에 '그 때 내가 좋아했었는데..'같은 거 후회하지 않게끔. 



삶의 매 순간에 충실하며 그 순간순간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성숙한 여성의 이야기라니, 정말 좋다.


"어쨌든 당신에 CIA 쪽에도 쓸 만한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 않겠나? 능력 있는 젊은이 대신 목숨을 바칠 만한 사람 말이야. 좀 신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난 목숨을 바쳐도 상관없어. 그런 각오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 P23

폴리팩스 부인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절며 뛰어가는 패럴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이토록 필사적인, 가엾은 인생이라니.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 끈질기게 목숨을 붙들고 매달리는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일을 해내는지! 그러니까, 몸뚱이에 붙은 목숨 말이다. 영혼의 목숨을 부지하기는 훨씬 까다롭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 P317

지니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무엇을 선택하든 알 수 없는 것에 도박을 거는 일이지요.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우리는 인간인 거고요. 우리에겐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인생이란 지도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방향도, 경로도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니까요." - P352

문득 요란한 핏빛을 띤 붉은 해가 떠올라 그들이 지나온 절벽을 환히 밝혔다. 안개로 어둑했던 풍경이 선명해졌다.
"새로운 아침이구나!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어!"
잠시 동안 부인은 인생이 얼마나 마법 같은지, 덧없는지, 그리고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부인은 새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멀리 눈 덮인 산꼭대기가 보였다. 그보다 가까이 있는 절벽은 짙은 보랏빛 그늘이 드리워진 황갈색이었다. 조금 전까지 회색으로 얼룩덜룩하던 안개는 빛을 받아 진주처럼 반짝이는 부드러운 연분홍색 구름이 되었다. 시원한 공기에서는 축축한 흙과 젖은 풀 냄새가 났다. 그들이 탄 배를 지나쳐 흐르는 강물에는 하늘과 태양과 강변의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폴리팩스 부인의 마음속에서 거의 신비스럽기까지 한 어떤 감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아주 짜릿한 자유의 감각이었다. - P359

그 순간, 마치 세상의 모든 법칙과 관습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삶의 한가운데 서서 삶의 박동을 느꼈다. 부인은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에서 새벽을 맞았다.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여태 살아 있었다. 놀라움과 감사, 피로와 허기가 뒤섞였고, 위험 속에서 느꼈던 온갖 감정들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결코 충족되지 않는 열망이 뒤섞였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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