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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ㅣ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평점 :
책을 집어 들면서 마음의 평화가 밀려든다 말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표지를 보면서도 이미 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버졌다.
'누가 오셨나? ' 어느 아낙이 살며시 뭔가 기다리는 듯한 느낌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든다. 또한 나를 포근히 감싸 주고 반가이 맞아줄 누군가가 먼 발치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작은 기대를 갖게된다. '이철수'란 이름만으로도 기대, 설렘으로 충만하다. 이미 몸소 경험하고 축적된 무한한 신뢰 하나만으로도~
'눈빛 든 마루에 앉아, 고마운 봄비 오시네- 새해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는 시각이기에, 이 혹독하게 추운 겨울, 시작의 봄이 먼저 다가와 오히려 들뜬 마음, 설레는 마음, 충만한 기대감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회색빛 창백한 이 겨울 내 마음 절로 풋풋해진다.- , 초록들이 신명 나게 자라네요. 가을 빛에 눈멀면 마음 열릴까' 이렇게 네 마당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 겨울, 봄, 여름, 가을의 느낌이 일기도 한다.
"함부로 흔들리지 않고 꼿꼿한 마음으로 파는 시장도 어디 있으려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듭니다."(33쪽) 예쁜게 만든 초콜릿 주전부리를 통한 단상인데,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숨어있는 듯하여, 뜨끔하였다.
"담배 같은 사소한 것도 매력있어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세상입니다."(48쪽) 후후~ 노력을 다하는 세상, 담배조차도, 그런데 나는? 하고 반성의 시간을 갖아본다. - 이 단상은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듯 하지만, 나는 자기반성의 시간으로 가져볼 밖에.
다들 다른 형편
폭염과 가뭄 끝에, 쏟아지는 비가 시원했습니다.
제 사정은 그렇지만, 그 비에 어려움 겪은 데도 없지 않을 듯은 합니다.
그렇게 다들 다른 형편을 삽니다.
늘 느끼는 건 '동시대'라는 말에 우리 모두가 담아 내기 어렵다는 거지요.
(104쪽)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듯하다. 작은 생명조차도 사랑을 가득 담아 내는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았다. 짧은 단상들, 단순한 그림 속에서 너무도 진솔한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또한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신랄한 비판! 빙~ 돌려 말하는 듯한데 더 아프기만 할 뿐이다. 2008년의 들끓던 열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시점, 이 책을 통해 2008년을 뒤돌아 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다. 일년 동안의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화제(대운하-내년에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쇠고기파동, 삼성 등등)들, 이내 잊고 살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껴본다. 하지만 판화, 드로잉을 통해, 그 속에서 또다른 희망과 열정을 쉬이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농사일, 이웃사람들의 담소들의 작은 이야기들이 훈훈하게 작은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대로 두고도
물길도 길이기는 하지요.
산을 자르고 산을 지우고 산을 뚫어 내는 시대를 살았는데,
이제는 물길마저 자르고 잇고 파려는가 봅니다.
있는 그대로 두고도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35쪽)
어떤 이야길까? 궁금함을 못참고 빨리감기하듯 후다닥 읽어버렸다. 책을 덮으면서 오히려 아쉬움만 커질 뿐이었다. 두고두고 곁에 두고, 오래 두고 볼 책이다. 그리고 며칠 전 마음 아파하던 친구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응원의 메시지를 이 책에 담아 보낼까한다.
산다는 건
산다는 건, 사람으로 산다는 건, 구차하고 잡다한 속에서 견디는일입니다.
살아 보니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애써 고요를 찾고, 마음의 작은 평화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게
또한 삶이었습니다.
(158쪽)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조용히 씻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조금은 엄숙하면서 진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림과 글을 보며 차 한 모금의 그윽한 향에 취하듯, 멈춰, 천천히 조심스레 다가가게 된다. 더딘 속에서 여유로움이 나를 감싸는 정말 이쁜 책이다. 이 책처럼 2009년을 살아가도록 노력할 일이다. 더딘 걸음이지만, 꾸진히 힘차게 내딛으며 살련다!!!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면에서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가 닮은 듯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짤막하게 등장하는 소소한 농사일의 즐거움을 느끼노라면, 전우익 할아버지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미겨'라는 책도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