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이라는 칼 문학과지성 시인선 573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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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인은 사물주의자이다.”라는 송승환의 평가는 적확하다. 『사무원』, 『소』 등의 시집을 읽으면서 김기택에게 매료된 건 건조한 시선과 상상력 때문이다. 사람을 빗겨 간 자리에 사물이 놓인 게 아니라 사물이 존재의 그림자가 되어 인간의 실존을 드러낸다. 즉물적 태도에서 벗어나 오히려 삶의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배어 있는 사물들. 그렇게 무심한 듯 사물을 통해 생의 단면을 벤 시들이 좋았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사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장인 정신에 공감했다.

낫과 칼은 만듦새와 모양새가 다른 듯 같지만, 같은 듯 다르다.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 채 누군가를 안고 싶은 외로운 낫은 잘 벼린 칼날, 군더더기 없는 직선과 같을 수 없다. 김기택은 매번 그렇게 사물을 통해 내 안에, 아니 우리에게 잠재된 날것의 욕망과 감정을 끌어낸다. 거역할 수 없는 사물의 몸짓으로.

안쪽으로 날이 휘어지고 있다

찌르지 못하는

뭉툭한 등을 너에게 보이면서

심장이 있는

안쪽으로 구부러지고 있다

팔처럼

날은 뭔가를 껴안으려는 것 같다

푸르고 둥근 줄기

핏줄 다발이 올아가는 목이

그 앞에 있다

뜨겁고 물렁한 것이 와락 안겨올 것 같아

날은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읽는 김기택의 시는 세월을 담았다. 동시대 시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만큼 쓸쓸한 일이 있을까. 소설가 조세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이청준, 박경리, 최인훈이 떠날 때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인 오규원, 조태일이 떠나듯 노년과 죽음에 다가선 시인들의 시는 세월을 담아낸다. 명랑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사유가 부딪히던 자리에 부드럽고 느린 시선이 머문다. 그것은 시간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 뿐, 오호의 감정이나 비평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 혹은 생활 감각에 대한 시적 사유는 나이와 무관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당연히 이전과 다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 거리낌 없이 나이브한 말과 행동은 미성숙의 지표다. 그러나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지나간 모든 것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 그간의 경험과 기억이 현재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시인도 아기 앞에서 입 벌리고 헤벌쭉 웃지 않았을까. 그렇게 멍때리는 순간보다 더 나은 일이 없다는 듯.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 아닌가.

아기 앞에서

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이 생겼는지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유아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

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

아기가 다칠 것 같다

내 눈빛에서 튀어 나가는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

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

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내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것이 있다

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

표정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입 벌리고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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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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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사회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중에서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 관계, 사회적 시선에 따라 사자死者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노사이드, 전쟁, 천재지변, 교통사고, 여객선 침몰, 비행기 추락, 교량과 백화점과 아파트의 붕괴에 이어 압살 사고를 목도하고 난 후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꽃다운 나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은 모든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 원인과 결과 사이를 미끄러지는 말들은 칼날이 되어 산 자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함부로 뱉은 말은 휘두른 주먹보다 가학적이다. 우리 주변에만 존재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누구이며, ‘미끄러지는 말들’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나는, 그리고 당신은?


백승주를 사회언어학자로 명명한 게 누구든 발화 의도와 목적에 맞는 의미를 차자고 그 말들이 흐르고 흘러 닿는 곳에서 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급식체와 인테넷 약어, 비속어 등 우리말과 글을 가꾸고 지키자는 PC한 잔소리도 아니고 혐오와 차별의 언어 사이사이에서 공동체의 도덕심을 고양할 목적도 없다. 어쩌면 백승주는 자기 삶을 더듬고 일상을 살피며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과 고민들이 자기 언어 안에서 어떻게 고이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게 아닐까.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울림을 가지려면 특수성 안에서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 구체적 경험은 생각을 통해 단단히 벼려지고 타인에게 닿아 온기를 전하거나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 그 원인과 대책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자연재해도 아니고 교통수단에 의한 사고도 아니며 이기적 목적의 살육전쟁도 아닌 저 수많은 죽음 앞에서 그들의, 아니 우리들 혀에서 미끄러지는 말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와 세상을 향한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했든 사고에 대한 반응,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백승주는 표준어와 일상어, 폭력과 재난 혐오와 차별의 현장에서 미끄러지는 말들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한국어 교실에서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언어 너머의 의미를 더듬는다. 여러 글들을 모은 책으로 체계와 구성이 단단하지는 않으나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결국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문화, 전통,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가끔, 사람들은 ‘말실수’라며 눙치고 넘어가거나 오해를 풀라고 하고 양해를 강요한다. 그러나 대개 그 실수는 무의식의 반영으로 평소 생각과 태도 자신의 신념이 고스란히 드러난 말들이다. 감추고 싶거나 입 밖으로 내뱉지 말아야 할 말들이 혀에서 미끄러졌으니 급정거하는 버스 안에서 타인의 발을 밟는 진짜 실수와 구별되는 가짜 실수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하나의 세계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 보내는 메시지, 써놓은 SNS, 심지어 메모와 낙서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미끄러지는 말들이 우리의 생각이며 태도이고 자기 정체성이 아닐까. 말과 글을 조심하고 삼가야 하는 게 아니라 평소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성찰할 일이다. ‘마인드 리딩Mind Reading’과 ‘공감Empathy’능력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과 노력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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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공구 - 공구와 함께 만든 자유롭고 단단한 일상
모호연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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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렌치와 육각 렌치를 집어 든 건 자전거 때문이었다. 타이와 튜브를 갈고 안장 높이와 브레이크를 손보며 공구를 손에 들기 시작한 건 부끄럽지만 최근의 일이다. 거의 쓸 일 없이 구비했던 망치는 캠핑용 팩을 박을 때만 사용하다 보니 트렁크에 던져뒀고, 그나마 전동 드라이버와 택배 상자를 여는 칼과 가위 정도가 자주 사용하는 공구의 전부다. 평생 책장만 넘기던 희고 고운 손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이삿짐을 나르고 에어컨을 설치하고 나물을 다듬고 농사를 짓는 분들의 손을 가끔씩 훔쳐볼 때마다 슬그머니 내 손은 주머니를 찾았다. 카센터, 재래시장, 이삿날, 시골 들녘과 바닷가 수산시장에서 거칠고 투박한 손을 훔쳐볼 때마다 이유 없이 부끄러웠다. 용접하는 손이든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이든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노동자의 손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반려 공구는 손이다. 


모호연의 이야기는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목적이 뚜렷하다. 마치 드라이버와 망치의 길이 다른 것처럼. 공구는 동물이 아니지만 ‘반려’의 수식을 받아 재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아 새로운 가치로 거듭난다. 책상 위 필통에 꽂힌 커트와 드라이버, 공구통의 다양한 공구들이 생명을 부여받아 한 사람을 위해 헌신한다. 감정 소모나 배려와 소통도 필요 없다. 묵묵히 언제나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 의미를 부여하고 정성을 쏟는 건 생물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자는 각 공구의 쓰임새와 종류,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살뜰하게 설명한다. 익숙한 도구도 많지만, 수동 샌딩기, 타카, 실리콘건처럼 가정에서 잘 활용하지 않는 도구도 소개된다. 허나 DIY 가구에 관심이 있거나 각종 기계류, 잡다한 물건을 만들고 수리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타인의 공구 사용법과 나만의 노하우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실용주의는 자본주의의 동생쯤 사촌 동생쯤 되지 않을까. 인간은 ‘쓸모’를 찾아 성장하고 교육받고 진로와 직업을 고민한다. 그런 면에서 공구는 행복하다. 분명한 쓸모와 제각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정확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자연과 사물을 곁에 두는 사람들의 속내는 저마다 다르겠으나 예측 가능성에 바탕을 둔 자연과학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순리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작용이 발생하는 공구는 그런 면에서 실용주의의 출발이자 종착역이다.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에세이가 되겠으나 저자의 감정과 생각보다 공구에 관한 깊은 관심과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자기계발서로도 손색이 없는 전형적인 실용서다. 유튜브와 인터넷이 잠식한 자리에 여전히 텍스트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웅변하듯 공구의 사용법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정서, 인생에 관한 비유, 글쓴이의 일상 등이 고루 다뤄지고 있어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매뉴얼 같은 실용서가 기존 책의 성격과 범주를 넘나든 지 오래다. 운동, 요리는 물론 공구에 이르기까지 바야흐로 모든 사람이 크리에이터로 기능하는 시대다. 누구든 쓸 수 있고 모든 게 컨텐츠다. 


어쩌면 공구의 사용은 세상살이와 유사하다. 모든 사람에게 스물과 서른이 처음이듯, 예순과 여든도 처음이다. 아빠 연습을 해본 적이 없고, 이혼을 예상하지 않았으며, 부모와 자식 잃은 슬픔은 두 번 경험할 수 없다. 모든 공구의 사용도 마찬가지다. 익숙해지기까지 시행착오를 겪고 각자의 손 모양, 악력, 신체 조건에 따라 다르게 활용해야 한다. 처음이 제일 어렵다. 익숙해지면 그런대로 견딜만한 슬픔과 고통처럼 공구도 빈도에 따라 어깨에 힘을 빼고 사용할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을 준다.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 남은 첫 나이들, 첫 경험들, 그 모든 ‘첫’들을 위해 반려 공구가 곁에 있다면 좀 위로가 될까?

그러니 기억하자. 망가진 드라이버는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뿐,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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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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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은 주문하지 않은 택배다. 아무도 늙기를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과 외로움이 덜해지지 않는다. 밤에 우리 영혼은 평안과 안식을 원하지만 오히려 철저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친밀한 가족 관계, 애틋한 연인이 곁에 있는 사람이 노년에 그들과 이별한다면 상실감과 외로움은 배가 된다. 켄트 하루프의 마지막 소설의 주인공 애디와 루이스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인생을 살다 혼자가 된 여, 남 노인이다. 


“우리 같이 잘래요?” 용기를 낸 건 여성인 애디다. 성별이 바뀌었다면 아마 이 소설의 성격이 달라지고 또 다른 논쟁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라면 먹고 갈래요?” 보다 직설적이나 전혀 애로틱하지 않은 돌직구는 루이스에게 가 닿는다. 44년간 한집에서 산 70세 여성 노인의 제안에 47년째 가상의 도시 홀트 시에 거주하는 남성 노인은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한다. 저녁에 건너가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오는 일상이 이웃과 타인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그들의 외로움보다 관계를 규정짓는 일반적 시선과 각자의 도덕적 기준이 이 소설을 혼란스럽게 바라보게 한다. 혼자 사는 두 남녀 노인의 만남에는 문제가 없으나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따른 현실적 문제들 ― 이를 테면 유산 상속과 자녀들과의 관계 등 ― 앞에서 노인들은 절망한다. 아니, 쉽게 포기한다. 애디도 마찬가지다. 손자를 이기는 할매는 없다. 자식이 가로막는 노년의 위로와 행복이라니. 지나치게 현실적인 결말 앞에 모임에 참석한 분들의 의견이 갈렸으나 두 사람이 찰떡같은 티키타카는 환타지에 가깝다. 그들의 대화, 정서적 공감, 따로 또 같이 나누는 일상 등 이상적 연인의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 굴복하는 관계 양상이 소설의 결말을 흐릿하게 한다. 


소설 서두에서 애디는 루이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는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로 자신의 남은 생을 이야기한다. 작지만 분명하고 주체적인 삶의 계획이다. 이 결심은 소설 중반에 다시 반복돼 애디의 결심을 재확인한다. 그러나 결국 자식과 손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을 갖는다. 200쪽이 안되는 중편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든 독자들은 또 각자의 입장에서 노년의 성과 사랑, 자식들과의 관계, 현실적인 문제 등 다양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상찬하거나 비난하는 소설보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면에서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개성있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드러내는 장편 소설과 달리 중, 단편의 미덕은 칼날처럼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묵직한 한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애디의 파격적 제안으로 시선을 끌었으나 과정과 결과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해피엔딩의 환상도 없고,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갈등도 없이 너무 쉽게 자식 앞에 무너지는 애디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전화기를 붙잡고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뱉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애디의 “당신, 거기 지금 추워요?”는 “우리 같이 잘래요?”라고 제안할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위로로 갈음되지 않는다. 루이스의 입장에선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 혼자 사는 일상의 장단점, 노년을 위한 준비와 가족 관계, 자기 욕망과 삶에 대한 적극적 용기 등 이 소설은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노년을 위한 고민을 담은 켄트 하루프의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평양 건너 미쿡이든 한국이든 늙고 병들어가며 삶의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사람들의 태도와 삶을 대하는 자세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밤에 우리 영혼은, 그보나 낮에 우리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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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572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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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낮달이 선명하다. 흰 손톱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달의 모습이 기이하다. 별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나 밤과 낮,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시선에 닿을 때도 있고 잊혀질 때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러하다.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던 20대 여성의 죽음은 처참하다. 전날 먹은 파리바케트 빵조각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목이 멨다.


현실은 한 번도 인간의 욕망을 이긴 적이 없다. 자본의 논리와 탐욕을 앞선 어떤 ‘-ism’이 있었을까. 그 간극을 좁히려는 부단한 이상주의가 시詩의 본령이 아닐까. 오랜만에 읽는 진은영의 시집에도 예외 없이 슬픔과 고통이 주인공이다. 삶을 사랑하는 시인의 눈에 타인의 고통과 모순된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자연의 아름다움, 사랑의 위대함, 철학적 진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은영의 좋은 시들은 대체로 라임rhyme과 리즌reason의 절묘한 교직물이다.”(신형철 해설, 「사랑과 하나인 것들 : 저항, 치유, 예술」, 113쪽) 


언어로 표명된 눈부신 아름다움 너머엔 반드시 리즌이 자리한다. 라임에 천착한 시의 본질에 닿아 있는 시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맡겨질 수는 없다. 치열한 일상과 생의 비극을 노래한 시들 사이사이에 놓인 진은영의 고백이 아프게 새겨진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에 오랜만에 나온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사랑 노래가 아니다.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시집 한 권을 읽고 몇 편을 필사할 때가 있다. 서시에 첫 구절이 시집 제목이 되었다. 사랑은 잘 팔리기 때문이지만 진은영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종류와 방법을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기만의 사랑과 타인의 사랑이 다를 때 우리는 늘 ‘태도’를 본다.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청혼이 남아 있을까.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 숱한 의문이 떠오를 때쯤 「사랑의 전문가」가 나타난다. 


사랑의 전문가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연쇄적 반응과 충돌의 메타포가 뒤섞인 사랑은 결국 슬픔과 망각이다. 영원히 섞이지 못하는 너와 나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상대를 향한 비난으로 자기 사랑이 마무리된다면 사랑의 아마추어다. 사랑의 전문가는 마법을 부리는 대신 타자를 변화시킨다. 스스로 열망하는 세계로 잠입하는 데도 불구하고 상대를 전문가라 칭하는 아이러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계절을 사랑하고 한 생을 사랑할 시간도 많지 않다는 조언과 충고들을 흘려듣다가 거울을 본다.


도둑맞은 가을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침이 고이는 귤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기다리면 된다. 금세 여름비가 시원할 테고 또다시 낙엽이 질 때 우리도 무지개처럼 각자 다른 빛깔과 모습으로 사라질 것이다. 때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건 운명을 수용하는 겸손 때문이 아닐까. 보이지 않고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낭만적 사랑과 감정적 사치를 허용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만 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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