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 After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이 있으니

2. 외로운 가요 당신은 외로운 가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 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

( 작사: 조동진 / 출처 : 가사집 http://gasazip.com/1232 )

중학교 때 골백번 듣고 또 들었던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 어제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온 뒤, 보는 내내 철학적인 주제 때문에 묵직했던 머리는 하루가 지나자 제껴지고 오늘 오전에는 내내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드니, 이건 또 웬 조화인가 싶지만, 기실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기가 또한 이런 것. 슬플 만 하면, 어둡게 가라앉을 만 하면, 깊은 생각에 빠질 만 하면, 툭 하고 뭔가를 끊고 가볍고 건조한 일상으로 슬쩍 되돌리거나 비장한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인생 뭐 별 거 있니 또 이런다. 이런 감독의 말투(영화 속에서 하는 거지만)는 상당히 내 취향이다. 그래서 아마 다들 조금쯤은 지루하다고 할 만한 부분에서도 나 혼자 좋아라 하는 지도 모르겠고, 생뚱맞게 저런 옛날 노래를 떠올리는 지도. 

영화는 꽤 자극적이고 흥미로울 것 같은 주제 - 우리가 죽고나면 죽기 전에 일주일 동안 자신이 일생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 기억 외의 다른 모든 기억은 사라진 채 행복하게 저승으로 간다는 설정 - 를 선택했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내용은 기억에 관한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게 할 만큼 상상력의 발화점이 높지도 않다. 그저, 관객들도 거기 나오는 22인과 비슷한 추억, 비슷한 생각, 비슷한 꼴통스러움, 비슷한 망설임을 가지고 저 중에 나는 몇번 타입일까 유추해 볼 정도로 평범하게 흘러간다.  

이 영화에서처럼 일주일을 유예기간으로 삼는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인간은 어쩌면 세 가지 부류로 나뉠 지 모르겠다. 

1. 행복한 기억 따위 상관하지 않고 사는 사람  

2. 행복한 기억이 소중한 사람 

3. 불행한 일들만 기억하는 사람 

그런데, 나, 오늘 아침에 내가 2번 부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고,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런 사람은 아닐지언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나, 계속 행복해도 되는 사람 아닐까? 기분 좋은 목요일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urnleft 2010-03-1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우연이. 요즘 [순례자의 책] 읽으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는데 말이죠.
저는 이 영화 극장에서 봤어요 :) 일본 영화답게 사건보다는 잔잔한 감정선의 흔들림을 예민하게 잡아내던걸로 기억되네요.

치니 2010-03-19 09:00   좋아요 0 | URL
[순례자의 책]은 또 뭔가, 검색해보고 왔어요. :) 흠흠, 흥미롭네요. 다 읽고 재미있었나 알려주시기.

아, 저도 이 영화 극장에서 봤답니다. 요새 다시 개봉했던 건지, 아니면 알라딘에서 이벤트 성으로만 한 건지, 아무튼. ^_^ 왠만해선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게 젤 좋드라구요 ~ 그죠?

참참, 만드신 어플 잘 쓰고 있어요. 저는 밑줄긋기는 타이핑의 구찮음 때문에 못하겠고 ㅋㅋ 메모 기능 잘 쓰고 있어요.

rainy 2010-03-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영화를 보았건만.
이렇게 똑떨어지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붙여 풀어내는 솜씨라니.
나는 영화의 여운이 생각보다도(각오했건만) 더 묵직해서
마음속에 잡생각만 뭉게뭉게 ^^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제프^^
낼 봐아~

치니 2010-03-19 13:42   좋아요 0 | URL
그 뭉게뭉게 잡생각 좀 풀어보시구려. 흐, 궁금한데.

오늘은 지붕킥 마지막회를 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제프백의 음악을 들으며 자야겠어. 오예 ~ 즐거운 금요일.

Tomek 2010-03-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는데, 몸이 아파 보질 못했어요...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데뷔작은 한동안 만나기는 힘이 들 듯... 치니님의 글로 그 아쉬움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

치니 2010-03-22 14:30   좋아요 0 | URL
앗, 많이 아프세요? 요즘 날씨도 궂고 황사에...감기 조심하셔야 될텐데.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군요! 전 그것도 몰랐어요. ^-^

stillyours 2010-04-0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았던 기억 하나만을 붙들고, 그 행복한 시간만을 기억하고,
천천히 흐르던
이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

치니 2010-04-05 19:53   좋아요 0 | URL
아앗, moon님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요?!
그렇담 제가 뒤늦게라도 챙겨보길 참 잘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아프긴 했지만 이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가 가장 좋았어요)
 
밀크 - Mil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속의 숀펜은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영화 '밀크'에서 숀펜은 하비밀크이지만 하비밀크는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숀펜은 이전에 영화 '아이엠샘'에서 장애인이었지만 그 장애인은 역시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즉, 숀펜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 숀펜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숀펜을 보지 않고 밀크를, 샘을, 그냥 그 사람 그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연기자라면 무조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과서적인 바람을 충족시켜(실제로 그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이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기해보면)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진부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저절로 내뱉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숀펜이 택한 이번 영화는 마침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일찍부터 소문이 난데다가 작년에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거머쥔 바, 모두의 기대가 2년이나 지속되어 이제야 개봉한 지라, 극장 안은 숨소리조차 신중한 듯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보고싶은 영화는 조그만치의 스포일러도 접근하지 않고 감독 혹은 배우의 이름 정도만 알아둔 상태에서 거의 무정보 상태로 보는 걸 고집하는 터에, 나는 이 영화가 동성애 혹은 인권운동을 다루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구스반산트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그 중에 나를 실망시킨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무조건 궁합이 잘 맞는다는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이고, 과연, 나무랄데 없는 전기 영화였다.  

그 위대하고도 안타까운 실화가 이미 내포한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을 부러 가벼이 하지도 않았고, 인간 밀크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았으며,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좀 봐라 이사람들아 라는 식의 강요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객관적인 리얼리티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이 천재 감독이, 광기나 극단 혹은 기이함 등을 내세우지 않고 극도로 차분한 균형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반가운 마음이다.  

그나저나, 하비밀크는 이미 영웅인데,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동성애 영화를 접해도 유명한 정치인은 커녕 연예인 홍석천은 여전히 가끔씩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 참 갈 길이 멀겠구나 싶어서, 내 앞 줄에 중간중간 박수를 치던 어떤 분(아마도 밀크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을)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헤아려지고 이것이 비단 동성애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토록 잘 만든 영화를 보고도 가슴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더라.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3-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간 숀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오! 남우주연상을 타야 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구스 반 산트는 아,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영화 감독을 잘 모르고 감독 취향이라는 것도 없는데, 구스 반 산트만은 예외에요. 포스터의 느낌과 그 밑에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만 보고 [엘리펀트]와 [파라노이드 파크]를 조건없이 봤어요. 아무런 내용도 모르는채로 말이죠. 아 정말 구스 반 산트 사랑해요. 최고에요. 구스 반 산트 만세 ㅠㅠ

치니 2010-03-02 15:07   좋아요 0 | URL
영화를 같이 본 친구와 저는, 숀펜도 숀펜이지만 그런 숀펜과 결혼까지 했던 마돈나가 더 대단하다! 고 수다를 떨었드랬죠. 뭐랄까 좋아한다 싫어한다 호불호로 말하기 이전에 그냥 대단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스반산트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감독 취향이라는게 있고 ^-^ 이 감독이 저에겐 딱이에요. 사랑해요. 최고에요. 만세 ~ 히.

라로 2010-03-0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추천이 왜 두개 뿐이야!!!!!!!버럭
저 영화 정말 좋았지!!!!
이 리뷰도 너무 좋고!!!!!!
숀팬은 천의 얼굴,,,또는 유리가면을 쓰고 있는거 아니야???저 영화보고 소름끼쳤다는ㅎㅎ
자야하는데 이러고 있다,,ㅠㅠ
이 댓글을 마지막으로 정말 자러간다!!!!!

치니 2010-03-04 09:35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다렸다 본 보람이 있었어요.
숀펜 같은 남자는 보통 때, 그러니까 연기를 안 할 때는 어떨까요. 영화 속의 인물로 완벽히 변신하니까 원래 그의 모습이 더 짐작이 안되어서 그런지, 자꾸 궁금해져요.

웽스북스 2010-03-08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비슷한 느낌을. ㅎㅎㅎ 저도 전혀 그런 영화인줄 모르고 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잘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적으로 이봐라, 대단하다, 편들어라, 동성애자도 알고보면 똑같은 인간이다, 뭐 이런 진부한 말 하려고 우격다짐하지 않고, 그냥 흐르듯 연출한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숀펜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았던 건 몰랐어요. 정말 연기라는 느낌 안들게 연기하는 대단한 아저씨.

치니 2010-03-08 09:38   좋아요 0 | URL
웬디님도 봤구나 ~ 제 주변에 보신 분들이 꽤 많아서 왠지 므흣합니다. :)
구스반산트의 그 겉으로는 무심하고 흐르듯이 보이는 연출이 지독하게 세밀한 관찰과 계산 하에 이루어졌으리라, 막연히 짐작해요. 그래서 늘 감탄하고.

쎈연필 2010-03-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 평들이 참 좋더라구요. 못을 박으시는군요. 오늘 집에 가자마자 봐야겠습니다.
^-^

치니 2010-03-08 12:33   좋아요 0 | URL
제랄님, (어릴 때 친구들이랑 지랄이란 말을 차마 못할 때 제랄이라고 했었던 기억 때문에 부르기가 송구스러운 닉네임 ㅋㅋ)
꼭 보시길. 멋진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쎈연필 2010-03-08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지랄과 제랄의 어감을 생각하면서 고민 좀 했었죠. 결론은 그것도 매력이라는... ㅎㅎ
 
전우치 - Jeon Wooch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단지 보이지 않는 와이어에 의존해 이리저리 순간 이동을 할 수 있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며 손을 그림 속에 쑥 넣으면 그 장소로 가고 부적을 뿌리면 먼 이국의 바닷가로 갈 수 있는 그런 것일까. 내가 아는 상상력이란 고작 그런 것에 불과하진 않을 것 같아서 최동훈 감독에게 실망했다.  

연기를 잘 한다는 건 또 무엇일까. 인물에의 몰입도가 뛰어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인물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한 나머지 원래 인물은 잊어버리고 그 배우만이 각인될 정도가 되면 좋은 걸까. 스파이더맨과 홍길동과 허경영을 섞은 듯한 캐릭터에 조각 같은 얼굴에 악동스러운 미소를 그려 넣었는데도 강동원이 멋지지 않다. 한마디로 그의 연기를 보다보면 연기하느라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전우치라는 인물에 빠져들 수 없었기에, 강동원 아직 날지 못하는구나 한참 멀었네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팔색조 연기가 필수였던 과부이자 스타일리스트이자 배우지망생이자 피리의 주인이었던 임수정은, 역시 이번에도 똑 소리 난다. 제 역할에 대하여 이해를 아주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분명히 연기구나 싶게 흘리는 눈물이 또로롱 구르는 모습이 사람 마음을 괜히 흔들어 놓는 묘한 매력이 그대로 발현되었다. 백윤식, 유해진, 아귀(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타짜에서 아귀 역이었던 이 사람), 신선으로 나왔던 3인 모두 한 연기 하는 조연들이었는데다가 임수정이 이런 판국이어서, 예의 강동원이 괜히 상대적으로 폄하 되었는 지도.  

보고나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굳이 기억하자 해도 몇 몇 장면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정도인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아마도 영화관에 가기 전에 거기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냐에 따라 다르겠지. 하지만 온전히 영화 속 게임과 눈요기만 즐기겠다는 심뽀로 가도 100프로는 주지 못하는 전우치. 내게는 허허실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가 다 별로였지만 이번에는 괜찮으려나 하고 갔다가 결국 내 취향은 안 바뀐 것만 확인한 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치 2010-01-0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치니님, 아귀 이름을 모른다고 하면 네꼬씨가 여기 와서 행패 부릴지도 몰라요. 김윤석,이에요 ^^

치니 2010-01-05 16:32   좋아요 0 | URL
앗, ㅋㅋㅋ 네네, 김윤석 -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많이 했는데 이 사람 이름은 왜 이리 안 외워지는지 몰라요. 네꼬씨에게 비밀이야요 ~

네꼬 2010-01-1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딱이야 1. 오래간만에 서재 마실 다니다 치니님 집에 왔더니, 지금 보려고 벼르고 있는 <전우치> 평이라 깜딱 놀라 스크롤을 재빨리 내렸어요. 치니님 평을 읽으면 꼭 그대로 영화도 보게 된다능 ㅠㅠ

깜딱이야 2. 그랬더니 또치님, 네꼬씨 행패 발언이 정면에! 아니아니 아니아니 아니아니 대한민국 최고 섹시배우 김윤석을 왜 모르시는 거죠?????????? 비밀로 한다고 모를 네꼬씬가요????????????? (아으 생각해보세요. <타짜>에서 나쁜놈 장례식장에 들어올 때 김윤석 아저씨의 짐승같던 자태... 어머, 떠올리기만 했는데 얼굴이 빨개지네, 나는.)

치니 2010-01-12 10:10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깜딱이야, 고양이 몰래 사람들끼리 말한 내용 다 들켰네, ㅋㅋ
김윤석 섹시 동감 100%, 연기력 끝내줌 인정! 아흑 그런데도 이름 안 외워짐, 양해해주삼. 전 이래뵈도 옛날 옛적에 이 아저씨가 티비 일일드라마(이것도 역시 제목 기억 안나지만)에서 전혀 눈에 안 띄는 무능한 가장 역할 할 떄 이미 눈여겨 본 사람이라고요 ~
 
웰컴 - Welco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랑하는 여자를 보러 가기 위해서 프랑스에서 영국까지 도버 해협을 건너는 17세 남자와 그 남자에게 수영을 가르쳐 준 프랑스 전직 수영 금메달리스트의 이야기'.  

과연, 자극적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자. 사랑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할 때, 그 사랑 때문에 울고 불고 난리를 칠 때, 우리가 언제 무모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 자극적인 내용으로 관객을 선동한다는 의심을 받을 지 모르지만, 이 한 줄로 요약되는 영화의 내용은 사실 그다지 사랑에 대해서 섣부르지 않다. 의심하고 견제하고 조율하고 자기 것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경계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수영 코치이자 프랑스 백인 사회의 평범한 남자 역시, 막상 이혼하게 된 전처에게 다시 사랑을 구하고자 결국, 17세 소년의 무모한 사랑을 따라하고 만다. 이라크 불법 체류자를 재워주고 수영을 해변에서 가르치고 잠수복을 빌려주고 전처의 반지까지 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무모함에 동조한다.  

영화를 다 보고난 뒤, 비단 이 사랑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전쟁을 방조한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전쟁 혹은 다른 불가항력의 이유로 난민이 된 사람들,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 책임을 전가 시키는 행위에 대해서 우리가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보너스처럼 느껴지는 것은, 감독의 또 다른 역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로이스트 - The Soloi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눈물이 흘렀다.  둘러보니 나 말고도 눈물을 흘리는 여성 몇이 보인다. 눈물을 훔치면서 '내가 왜 울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풀어 생각하면, 이성적으로는 울 만한 장면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은 울고 있었다는 뜻.  

그것은 음악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악에 미친 사람을 보기 때문이었다. 음악은 두고 두고 내게 그런 존재다. 윈도우미디어에서 봄직한 울렁울렁 야릇한 천연색 화면들처럼(실제 이런 화면을 극장용 영화에서 쓰는 건 처음 봤다) 무언지 알 수는 없는데 계속 시선을 붙잡고 있는 어떤 것처럼, 그것을 느끼고 만지고 보듬고 내치는 사이, 그 중 어떤 하나에 꽂히면 문자 그대로 '미.치.게.만.드.는.것.'  

잔인하거나 무식한 말이 될 지도 모르지만 한 마디 한다면, 대체 음악 혹은 예술이 미치지 않고 제대로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적어도 우리가 오래 전부터 명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은 일찍 죽어버리거나 결국 미쳐서 죽었다.

나다니엘은 미쳐 있었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가진 그 자신에 비해 또 다른 의미로 미쳐 돌아가는 LA라는 도시에서 순수하게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만을 붙들고, 베토벤 동상을 도시의 천사 삼아서, 혼자 응집되어 외부의 그 어떤 것과도 연관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 

그런 그도 외롭다.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서의 친구란, 기브 앤 테이크. 서로 줄 것이 있어야 하고 받을 것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서로가 원하지 않는 선물을 주어서 속으로 불만스럽더라도 그것을 용인해 내어야, 헤이 마이 프렌드! 하며 어깨를 투닥거릴 수 있다. 

스티브는 미치지 않았다. 그에게 음악은 나처럼 미치게 만드는 것인 줄 알면서 멀찌기 떨어져 오롯이 감상하면 되는 것이고, 그 감상법에 따라 미쳐 있는 사람이 만든 음악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하고는 있다. 그는, 배운 놈이다. 나다니엘이 쥴리아드에 잠깐 다니기는 했지만 음악 외에 소위 교양이라고는 배울 새가 없었던 것과는 달리 백인 주류 사회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상도 타고 유명세도 떨치는 잘 나가는 사람이다. 

여기서 백인 미국인의 선민의식이 등장한다. 자기보다 겉으로는 하위인데 속으로는 무언가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의식.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도 좋고 나도 좋은데 무엇이 잘못이냐는 의식. 그렇게 함으로써 실은 자신이 또 다른 목표를 상정하고 그 목표에 이르러 결과물을 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다구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그런 의식.  

나다니엘에게 스티브는 유일한 친구. 유일한 친구이기에 그는 아무 때나 스티브의 회사에 찾아와 곤란하게 하기도 하고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 업무를 방해하기도 하고 'I love you'라고 애절하게 외치기도 한다. 정신병자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친구라고는 스티브 뿐이기 때문에. 

스티브에게 나다니엘은 친구들 중의 하나. 하지만 돌봐주어야 하는 친구. 걱정되는 친구.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는 친구. 친구라고 했으니 반드시 자신이 기대하는 것만큼 그 재능을 이끌어 내야 하는 대상. 그리고 자신이 친구를 가지고 상업적인 이용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체 검열을 하느라 피곤하게 만드는 친구. 

이전의 헐리우드 영화에서라면 나다니엘은 제대로 한번 공연을 멋드러지게 하고, 스티브에게 감사했겠지만, 그리고 둘은 해피하게 좋은 친구들로 남았겠지만, 영화 솔로이스트가 적어도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 친구의 함수 관계에 대해서 물음표를 날려준 것은 고맙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그렇기도 하겠고.  

아무튼 나는 눈물을 흘렸고, 음악은 베토벤의 그것이 가진 본래의 위용 때문에 무조건 좋았으나, 음악 자체가 지닌 광기에 별무관심인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지루할 것이 틀림 없으니, <러쉬>류의 감동을 기대하고 표를 끊지는 마시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09-11-2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추천은 그렇게 짜????
난 러쉬류의 감동은 별류야,,,넘 흔하잖아????ㅎㅎㅎ
암튼 나도 이 영화보면서 나도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흘리고 싶어~.ㅎㅎㅎ
참 미스터 다우니 쥬니어의 연기는????연기 잘하는 사람인데 상복은 왜 없을까,,,

치니 2009-11-25 12:04   좋아요 0 | URL
별점은, 그냥 지 맘이에요. ㅋㅋ 제 나름의 감동은 받았지만 왠지 영화 자체에 대해선 투썸즈업이 안되더라구요.
언니도 보면 재미나게 보실 거 같아요.
다우니주니어, 역시 연기를 참 잘했지만 왠지 이번에도 상복 없이 제이미에게 양보할 거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데요. 헤.

토니 2009-12-0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있는 영화를 좋아해서 얼근 가서 봤어요. 깊고 깊은 감동은 아니지만 분명 뭉클한 부분이 있었죠. 하지만 왠지 아카데미를 겨냥한 계산된 영화같아 조금은 씁쓸하더라고요.. 저도 보는 동안 '왜 늘 히어로는 백인인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다우트" 라는 영화 봤어요? 정말 명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이예요. 이것 역시 남동생 추천작. 아직 전이라면 꼭 한번 보세요. 정말 뚜썸즈업이예요!

치니 2009-12-01 12:39   좋아요 0 | URL
아카데미를 겨냥한 영화 같다는 말씀을 듣고보니, 흐음 저 역시 약간은 그렇다 싶은데요? 예리하십니다.
다우트, 예전에 보려고 했다가 놓친 거 같네요. 멋진 남동생님 추천이니 꼭 봐야겠어요, 아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