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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까맣게 잊을 수 있을까'요. 완전히 잊고 있던 추천신간 페이퍼, 늦어서 죄송합니다.

 

1. 시쿠 부아르키 [부다페스트]

  • 시쿠 부아르키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브라질에서는 아주 유명한 뮤지션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까지 하다는데, 브라질에서 유명한 이 작가가 '부다페스트'라는 제목으로,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노래도 그렇고 영화나 소설의 제목도 그렇고 특정 도시를 제목으로 삼는 경우 이상하게 매혹 당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다녀간 그 곳을 어쨌든 한 곡의 노래 안에, 한 편의 영화와 소설 작품 속에 담는 거니까요, Beirut의 '낭트'나 Coldplay의 '암스테르담' 같은 곡들은 아마 나중에 낭트나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저절로 떠오르겠지요, 무려 10년 전 잠시 다녀온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웠습니다. 부다페스트에는 매력적인 두 개의 도시가 모두 등장한다고 합니다. '모국 브라질에서 성공한 대필 작가 주제 코스타가 낯선 나라 헝가리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의 기묘한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익명의 그늘 아래 숨죽여 살아야 했던 유령 작가의 불완전한 자기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독특한 필치로 그려냈다.'는데, 기대됩니다.
  • 2. 롭 리이드 [이어 제로]

책의 저자 역시 다른 직업이 있었습니다. 아이튠스가 등장하기 최고의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스템이었던 랩소디(Rhapsody) 개발자이자 리슨닷컴(Listen.com) 설립자로, 음악 IT업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활동을 해왔지만 소설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음악을 못하다가 음악에 빠지면서 크나큰 변화를 맞는 은하계의 고등생명체 이야기라니. 과연 아이디어로 그치는 유치해빠진 이야기가 , 유수 언론에서 호평했듯 '특유의 기발함과 신선함, 재미와 독창성을 갖춘 소설'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3. 그레임 심시언 [로지 프로젝트]

 

신기하게도 이 책 역시 소설가가 본업이 아닌 컴퓨터 과학자의 작품입니다. 이전에는 컴퓨터 모델링에 대한 책을 썼던 그레임 심시언의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요. 작년, 미발표 원고를 대상으로 빅토리안 프리미어스 문학상을 받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른 작품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연애 DNA가 부족한 39세 유전학 교수가 주인공인데, 작품 소개를 읽어보니 마치 '빅뱅이론'의 쉘든이 떠오릅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4. 아베 코보 [불타버린 지도]

 

마지막 책은 [모래의 여자]로 알려진 아베 코보의 작품입니다. [타인의 얼굴]이라는 작품과 함께 '아베 실종 3부작'이라고 하는데요. [모래의 여자]는 최근 읽은 이재찬의 [펀치]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인용돼 다시 한 번 읽는 기분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아베 코보의 실종 3부작은 모두 영화화되어 각종 상을 휩쓸었다고 하는데요.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다시 찾는 것 역시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통적인 모티프인데, 소위 대작가라 불리는 아베 코보는 이것을 어떻게 그려냈을지요.

 

쓰다 보니 4작품 중 위 3개의 작품은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소설입니다. 재능 있는 사람은 소설 쓰기에까지 재능을 가진 걸까요.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부다페스트
시쿠 부아르키 지음, 루시드 폴 (Lucid Fall) 옮김 / 푸른숲 / 2013년 11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2013년 12월 17일에 저장
절판

이어 제로
롭 리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2013년 12월 17일에 저장
절판

로지 프로젝트
그레임 심시언 지음, 송경아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3년 12월 17일에 저장
품절

불타버린 지도 (양장)
아베 고보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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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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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책 속의 글자들이 연결된다는 것

제가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는 'iReadItNow'입니다. 읽은 책과 좋아하는 구절,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아서 스마트폰 사용 후부터는 꾸준히 이곳에 저의 책읽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웹과 싱크를 해두지 않은 상태로 중간에 핸드폰 업데이트를 한 번 하는 바람에 초기 데이터를 싹 날린 적이 있지만, 이제는 싱크를 해둬서 만에 하나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데이터는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반드시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읽는다'는 언제, 왜 세웠는지도 모르는 원칙을 버리고 책 여러 권을 함께 읽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유야 다양합니다. 먼 길 가는 내내 읽어야 하는데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든지,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다든지 하면 다른 책을 집어들고 나오기도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가끔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받은 책은 먼저 읽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 다 읽은 책은 페터 회의 [콰이어트걸]입니다. 앱의 기록을 보니 지난 9월 7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어제 새벽에 다 읽었으니 무려 2달 보름이 걸린 셈입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읽으면서 [콰이어트걸]을 봤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도 그 정도 기간, 혹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던 것 같습니다.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는 비교적 단숨에 읽었지만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콰이어트걸]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이상하게 빨리 읽어지지 않고, 천천히 읽어서 더 좋기도 했습니다.

 

각설하고, [콰이어트걸]을 읽으며 바하 '샤콘느'에도 같이 빠져 있다가 다음으로 집어든 책은 데이비드 J. 린든의 [고삐 풀린 뇌]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읽다가 또 괜히 저 혼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콰이어트걸]에서 돈은 아주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카스퍼가 종종 그 돈에 대해 얘기할 때 덴마크의 500 크로네짜리 지폐에 있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언급합니다. 아마 아래의 얼굴이겠죠.

 

 

 

암튼 그 닐스 보어에 대한 이야기가 [고삐 풀린 뇌]에 떡하니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두뇌, 특히 쾌감을 관장하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니까 물리학자가 등장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읽어보면 닐스 보어는 물리학자로서 관련 이론을 갖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LSD를 먹은 시험을 앞둔 한 학생의 환각 속에 등장합니다.

 

 

역시나 이런 우연이 저에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아무것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건지 또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과 이야기와 마음들은 이렇게나 다 신기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별 것 아닌 연결들이 왠지 저를 흥분케해요.

 

오늘은 금요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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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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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는 여고생 방인영이 세상에 한 방 먹이는 내용입니다. 평범해 보일 여고생이 저지른 패륜이라는 것, 그리고도 전혀 반성의 기색 따위 없다는 것 때문에 펀치의 충격은 작지 않습니다.

 

당돌하고 냉소적인 10, 혹은 그보다도 더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그간 꽤 있었습니다.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은희경 [새의 선물], 심지어 여섯 살짜리 화자들이 주인공인 낸시 휴스턴의 [여섯 살] 등입니다.

 

어린 화자가 어린 화자답게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앞에 언급한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나이에 비해 성숙한, 조숙한 화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그들은 웬만한 어른보다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진실을 더 잘 꿰뚫어보기도 하며, 그래서 다소 냉소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삶과 미래에 대해 헛된 희망이나 별다른 기대 따위는 품지 않고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펀치>의 여고생 방인영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미래에 대한 비관과 주변 사람에 대한 냉소는 비관과 냉소를 넘어 분노와 혐오 수준입니다. 앞에 언급한 어린 화자들보다 나이가 좀 더 많기도 하지만 그들보다 더욱 과격합니다. 아무래도 시대가 또 조금은 달라졌고 방인영은 이제 곧 사회로 나갈 경계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주변인에 대한 애정과 반성입니다. 방인영은 주변인은 물론이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습니다. 보통 미움의 감정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방인영이 부모에 대해 갖는 감정은 미움보다는 혐오나 증오입니다. 물론 그 엄마에 대해서는 연민의 감정도 갖고 있지만 이 애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혐오가 결국은 비극을 낳고 맙니다. 그래서인지 그 후에는 반성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소설 속 주인공들이 기본으로 갖고 있는 애정과 반성(양심) 모두를 갖추지 않고 있어서 방인영은 낯설고 새로운 인물입니다. 반면, 많은 소설 속 캐릭터들이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변화를 보여주는 입체적 인물이라면, 방인영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평면적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물론 지금의 가치관’, ‘현재의 성격(혹은 인격)’을 형성하게 된 배경들을 작가가 틈틈이 보여주긴 합니다.

 

이재찬 작가가 만든 방인영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괴물입니다. 자신의 부모를 청부 살인하는 데까지는 겨우겨우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한다고 해도, 그 이후의 행동들을 보면 정말 괴물그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이 괴물은 누가 낳은 걸까요. 자신의 딸에게 늘 방 변호사로밖에는 불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낳은 걸까요, 얼굴은 예쁘지만 머리는 텅 빈 엄마가 낳은 걸까요.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괴물 한 마리를 낳고 방인영이라고 이름 지은 걸까요, 평범한 아이를 낳아 방인영이라고 이름 붙이고 키워보니 괴물이 된 걸까요, 그들이 괴물로 키운 걸까요.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에 의해 정리하면 방인영을 괴물로 만든 것은 가족, 학교, 종교의 변태적 시스템입니다. 정서적 교감 없이 물질적 등가교환만 바라는 아빠, 삐뚤어지고 일방적인 모정을 보여주는 엄마, 목적도 기능도 모두 잃은 학교, 이 모든 변태적인 시스템과 가장 멀어야 하지만 오히려 가장 집약적으로 변태된 교회,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에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주변인들에 대해 방인영은 거침 없이 논평합니다

 

현정이는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현정이는 사회가 원하고 사회를 위해 소비되는 노예가 되고 싶다는 거다. 사회가 개인에게 꿈을 주입하고 개인은 자신의 비용을 들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열매는 사회가 가져간다. 개인은 소비 능력을 얻지만 그건 사회에 헌신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중학교 때만 해도 현정이는 누구보다 피자를 좋아했다. 그땐 지금처럼 말라깽이가 아니었다. P.29

 

이 발랄한 논평이 특정 행위로 이어지기 전, 말로만 존재할 때까지는 독자로서 굉장히 속시원하고 즐겁습니다. 물론 뜨끔하기도 합니다.

 

문학도 근본적이지 않아요?"
"
문학은 빈곤한 뒷담화야
."
"
미술은
?"
"
미술은 이미지고. 이미지는 허상이지
."
"
성형외과는 왜 의대에 있어요? 미대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
과외가 침묵했다
.
"
역사는
?"
"
안중근이 어떤 마음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쐈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
안중근은 알겠지
.
"
안중근이 민족을 위해서 쐈는지, 김구한테 잘 보이려고 쐈는지, 아니면 자기 안의 폭력성을 위해서 쐈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수학은 명백해. 재론의 여지가 없거든. 증명이 되면 그게 바로 정답인 거야. 너도 수학의 세계를 알면 좋을 텐데
."
"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
"
그게 너의 문제야.” P.33

 

변태적 사회에 대한 방인영의 극단적 조치와 그로 인한 결과는, 현실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걸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낱 여고생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아무리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산되었다고 해도 허점이 있습니다. 특히 사건이 일어난 후의 그녀의 행동은 누가 봐도 충분히 의심스럽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경찰 수사가 허술해도, 아무리 여고생이 자신의 부모를 청부살해 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렵더라도, 범인을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완전범죄는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다만, 끝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고 범인은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것에도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는 있어 보입니다. 사회는 그렇게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가정에서 자란 여고생이라면 혐오에 의한 살인을 할 리가 없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살인동기가 없다고, 섣불리 짐작하는 거죠. 또 대신 범인으로 몰려 거짓 자백까지 하고 마는 인물은 충분히 살인의 동기, 살인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 살인을 하기 이전에는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해 그럴만하다는 사회의 인정을 받는 셈입니다. 개별적 존재가 각각 가진 개성,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 부족한 것을 얻기 위해 감수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에 대한 인정이 없는 겁니다.

 

방인영은 나름대로는 남부러울 것 없을 듯한 환경에 있다는 것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지만 그녀는 개별적 존재로서 불행합니다. 가질 만큼 가졌는데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1등급이 아니라서 좌절하고 분노한다는 점에서는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1등급이 아니고 앞으로도 모든 것이 1등급인 사람과는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좌절감 자체가 한 개인을 삼켜버리지 않도록 하는 가정의 사랑이나 학교의 교육이나 교회의 위안 중 그 무엇도 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변호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방인영이 이 변태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이 속한 현재를 꿰뚫어보고 독야청청 인간성을 유지하는 고고한 인물이거나 자신이 비판하는 시스템이나 인간의 전형과 반대에서 세상에 경고를 날리는 선구자적 인물인가 하면 둘 다 아닙니다. 그녀 역시 분명 그 변태적 시스템 속에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안착할 만한 기회와 그럴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고 앞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자 또 다른 형태의 변태가 되어버린 것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런 지점에 소설 [펀치]가 갖는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물이 옳고 그르다는 논쟁이나 판단 이전에, 실제로 이토록 충격적이고 폭력적이며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 충분히 존재 가능하며 앞으로는 더 많이 등장할 가능성을 예고한다고 할까요. [펀치]가 정말 아픈 것은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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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2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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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부림치며 눈을 감고 기도하듯 등을 구부렸다. 피부가 벗겨져 세상과 직접 스치는 양 고통스러워서, 자신의 윤곽선보다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물러나고 싶었다. 몸속 깊은 곳에 조그맣게 웅크려 몰래 숨어버리고 싶었다. p.9

 

2권의 아주 초반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막내 아들은 죽고 맏아들은 그 살인범으로 의심받고 남편은 세상과의 끈을 자꾸 놓치는 상황에서 가즈코가 느끼는 고통을 묘사한 문장입니다. 이 짧은 세 개의 문장은 1권 후반에서 2권의 마지막까지 가즈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등장인물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물리적인 몸피가 온 세상과 스치는 듯한 고통, 그 몸통이 차지하는 크지도 않은 공간조차도 부담스러워서 그 안으로, 조금이라도 더 안으로 웅크리고 숨고 싶은 마음.

 

누군가가 죽으면 죽는 것은 그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료이치 역시 살해된 이후 많은 것들이 함께 죽습니다. 료이치의 아내 요시에가 다카시에 대해 갖고 있던 지성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는 그렇다쳐도, 료이치의 부모님이 서로에 대해 느끼던 소원함은 그렇다쳐도, 료이치와 다카시의 엄마인 가즈코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마저 함께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에 대한 힌트는 1권 초반에 등장합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료스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즈코는 다카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다카시에게서 느껴지는 정체 모를 거리감, 혹은 섬뜩함을요. 그것은 대부분 감정이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다카시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껴지지만, 사람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상이나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 가즈코도 바로 그러한 점을 느낀 것이겠지요. 부모라고 해서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깊은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의 엄마인 에바도 역시 그랬습니다. 케빈이 엄마와 아빠 앞에서 하는 행동이 달랐다고는 해도 똑같은 자식을 두고 엄마와 아빠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달랐죠. 또 사이코패스를 다룬 많은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어릴 때 주로 동물을 해하는 자녀의 행동에 불길한 섬뜩함을 느꼈다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자기 핏줄에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을 애써 부인하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가즈코가 다카시에게서 느끼는 감정의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 다카시는 어릴 때 눈에 띄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차분했습니다. 가즈코는 아마 그것이 낯설고 두려웠을 겁니다. 엄마인 자신 앞에서조차 보통의 어린 아이들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아들'이라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느껴지는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들이기 때문에 더욱 거리감을 생생하게 경험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응석 부리지 않고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해서 엄마인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들, 입 댈 데 없이 완벽해서 차갑게만 느꼈던 맏아들. 그런 다카시가 그와는 완전히 달랐던 막내 아들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을 받게 되니 가즈코는 더욱 괴로워집니다. 아들의 잘못 앞에 부모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 "제 아이는 그런 아이가 절대로 아니에요!"라는 확신에 찬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작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냐고 되묻는 도모야의 엄마와는 완전히 반대의 경우입니다. 도모야의 부모, 특히 엄마는 항상 치마폭에 감싸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맙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아들을 보지 않고 자기의 의식 속 아들만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학교에서 사고를 일으켜도 그 일을 일으킨 도모야의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않고 다른 엉뚱한 것을 원망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무의미한 체벌을 한 후 그냥 덮어버립니다. 어쩌면 너무 두려워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문에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식의' 도모야의 대한 무모한 믿음은 결국 큰 비극을 낳고 맙니다. 전적으로 부모 탓이라고는 못해도, 도모야의 부모가 제대로 된 엄마, 아빠의 역할을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악마의 부재를 못 견디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 자신이야! 인간은 내면의 위험에 말을 부여해 밖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그것을 자기 자신과 혼동해버리는 참으로 딱하고 비참한 동물이야. 살인범, 강간범, 방화범, 절도범, ••••••자신이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믿으려면 자신 외의 그런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게 바로 악마야! p.331

 

작가는 이런 식으로 악마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선언을 여러 차례 적지 않은 분량에 걸쳐 씁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것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런 악마들의 철학에는 그럴듯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서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하는구나 싶다가도 계속 얘기를 듣고 있으면 맞는 말 같이 느껴집니다. 거짓말도 진짜라고 믿으면 진실로 바뀌고, 상대방이 강하게 말할수록 그말에 설득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러한 망상, 악한 철학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의식, 나를 지탱하는 중심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머리를 털고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자신이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믿'기 위해 '자신 외의 그런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섬뜩한 '악마'의 이야기를 보면 이제는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자신이 악마가 아니라고 믿기 위해 다른 악마를 필요로 하기 전에, 자신이 악마는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 그를 좀 더 인간적이고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줄 누군가가 부재했다는 뜻이니까요.

 

[결괴 2]는 이렇게 잔인한 살인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속을 아주 깊숙이 들여다봅니다. 피해자인 료이치의 가족과 가해자인 도모야의 가족, 그리고 또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들. 그 중에서도 살인자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그 누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다카시의 고통은 끝날 듯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결괴]를 통해 이토록 잔인한 고통을 끈기 있게, 어쩌면 가즈코가 다카시에게서 느꼈던 것처럼 그런 섬뜩한 냉정을 유지하면서 끈기 있게 들여다 봅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죠? / 네 가족이 살해됐다고 살해됐다고 생각해봐 /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요. 그러면 죽여도 되나요?

 

라는 식으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우리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왜 사람을 죽여서 안 되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대답하겠죠. 목숨은 소중하고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앗아갈 수 없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거나. 일상에서는 이런 원론적인 답 너머로 깊이 들어가볼 기회가 많지 않고, 거기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목숨이 왜 소중하며 누군가가 죽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왜 고통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이런 악마는 대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란 것일까요. 책을 덮고도 계속될 이 의문이 히라노 게이치로가 저에게 던진 가장 큰 화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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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A692006815 이상하게 김연수 작가님 만나는 행사에는 한번도 당첨된 적이 없는데 이번엔 전원초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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