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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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음악가들에 대한 극찬을 본격적으로 하는 책에는 마음이 확 줘지지가 않습니다. 이미 은퇴를 했거나, 죽었거나, 아니면 누가 뭐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오랜 경력의 음악가들에 대한 극찬을 대하는 태도와 다릅니다. 아마도 아직은 그들의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고, 마음이 좁아서 동시대의 비슷한 또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편협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에세이나 다른 글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나 이 노래가 좋아' 하는 글과 '이 노래는 (보편적으로) 훌륭한 노래야' 혹은 '이 음악가는 (객관적으로) 훌륭해'라고 누군가가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제 경우 후자는 뭔가 마뜩지가 않습니다. 그러려면 글쓴이의 안목과 글쓴이가 칭찬하는 대상과 또 그 이유에 모두 공감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강현 기자가 쓴 이 책은 서문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의 인디음악에 대해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독자로서, 저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이 책 전체를 읽었습니다. 뜻하는 바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모르지는 않으나 어쨌든 홍대에서 음악을 하고 있어야 한국인디음악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다고 하는 부분은, 아무리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도, 어쨌든 책이 되어서 나왔으므로, 신중하지 못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가지 여건 상 홍대에서 공연을 하지 않아도 훌륭히 자신의 음악을, 자신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 이들은 분명 있을테니까요.

 

또한 인터뷰집이라면 충분히 그 뮤지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보통 어떤 취향을 갖고 있더라도 중간은 가는데, 이 책은 개인적인 생각 위주로 풀어내고 있어서인지, 그 노래를 알고 있어도 크게 공감이 되지 않고, 그 노래를 모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공감도 갖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서문에서 내린 정의 때문인지 읽으면서도, 여기에서 소개된 밴드나 음악들 중에는 저도 좋아하는 밴드나 음악이 많음에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음악들은 세상의 많은 음악들 중 하나고 좋아, 하는 느낌으로 음악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인디음악의 명곡과 명밴드를 선별하겠어, 하는 태도가 보이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역시 저의 선입견인가요? 물론 전자가 맞고 후자가 틀리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후자의 경우, 그런 작업과 말과 평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들었던 생각입니다.

 

저 역시 편협한 취향을 갖고 저만의 호불호로 음악을 듣긴 하지만 워낙에 한국인디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저 자체가 편협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암튼 이 책을 처음 펼 때의 기대와는 달리,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그저 이 책이 나는 이런 음악을 듣고 이런 음악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들과 친분도 있어, 하는 젠체하는 책으로의 인상이 강합니다. 곡해한 것이라면 작가분께는 사과 드립니다. 그 와중에도 몰랐는데 들어보고 싶어진 곡이나 밴드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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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쇼와 전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28
황병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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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부엌이 지저분하면 엄마가 아프대
ㅡ엄마가 아프면, 부엌이 지저분해지는 거겠지
ㅡ......죽기 전에, 할머니가 그랬어, 할머니는 엄마 때문에 지지리 고달픈 인생을 살았지, 뜨거운 피를 물려받아서, 엄마는 집안일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대, 뭐랄까, 굉장히 사회적인 여성이랄까, 암튼 동부에선 꽤 알아주는 골든 바의 매니저였지
ㅡ지금은 뭘 하시는데?
ㅡ뭘 하긴, 나 때문에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지

페이지 : 26

 

인생은 고달프고,

 

순박한 시골 처녀여
나에게 손을 흔들지 마오
내가 탄 마차가 지나가면
당신은 흙먼지를 뒤집어쓴다네

(중략)

거짓으로 사랑하였으나 목 놓아 울었네

이 계절이 다 가도록
세느 강에 똥물이 흐른다 해도
세느...... 이 아름다운 발음을 멈출 수는 없겠지
페이지 : 45

 

지나가는 마차를 향해 순진하게 손 흔들어봤자 마차가 지나가고 나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거짓으로 사랑한 자의 울음소리가 가장 크고,

 

그 옛날의 당신은
난생처음 보는 해변을 지나고 있었고
커다란 물고기가 모래사장에 올라와
펄떡이는 것을 보았지
프랑스에서였다
당신은 모래밭으로 달려가
죽어가는 물고기를 바다에 던져 넣었고
당신은 꿈에서 깨어났지
한국에서였다
페이지 : 68

 

똥물이 흘러도 아름다운 발음을 멈출 수 없는 바로 그 세느강이 있는 해변의 꿈을 꿔봤자 현실은 이 땅이고,

 

침묵이 우리의 죽은 손을 움직여 가렵지 않은 얼굴을 긁게 만들 때까지,
페이지 : 90

 

견딜 수 없는 침묵에, 뭐라도 해야 해서 가렵지도 않은 얼굴을 긁고,

 

절벽이 없다면 산을 깎아서라도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으로
페이지 : 94

 

그러니 없다면 산을 깎아서라도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 되고,

 

결심 끝에 나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교회의 종탑에 올라가 뛰어내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났지요. 이마가 깨졌고 어금니 두 대가 부러졌으며 한쪽 어깨와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채,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내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의 놀라고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투신이라니...... 이 조용한 마을에서,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나는 더럽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피범벅이 된 얼굴로 부서진 다리를 질질 끌며 더러워진 정원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지 : 134

 

실제로 뛰어내려봤자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아 더럽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나 때문에 더렵혀진 정원을 직접 치워야 하고,

 

안경을 쓰면 안경알이 보이지
페이지 : 157

 

안경을 쓰면 안경 너머 세상이 더 잘 보이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안경알이고,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쓸모없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페이지 : 164

 

세상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시인은 이런 세상을, 그리고 다양한 실패를 보여주고 했지만 결국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마저 실패하고,

독자들에게 쓸모없다 욕을 퍼붓고, 어디에 있었냐고 원망하고,

 

여자는 도시 사람답지 않게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내가 좁은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끄적거리고 있을 때면
여자는 차와 간식이 담긴 쟁반을 건네며 덜떨어진 미소를 짓고는 했었지요
페이지 : 171

 

여기에 역설이 있다해도 어쨌든, 순박하고 정이 많은 여자가 짓는 것은 덜떨어진 미소가 되고,

 

아무도 우릴 막아서지 않아
우리가 악몽의 주인이니까!
페이지 : 173

 

우리는 삶에서 오직 악몽만을 가진 악몽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황병승 시인이.

 

또 쓸데 없는 생각이지만, 황병승 시인의 이름은 필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의도한 바가 있었을 거라고. 각설하고.

 

현실을,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을, 냉정하게 지독하고 끔찍한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황병승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도 저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시인이 이 세상을, 이 삶을 엄청나게 애정하는 것 같다는. 시인은 철저하게 세상을 외면하거나 완전히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도 아닙니다. 아직 애정이 남아서 아직 그것을 버리지 못했기에, 그것이 더욱 세상을 향한 냉정한 표현과 냉소를 불러온 것 같습니다.

 

사랑했고, 사랑받고 싶었고, 그러나 그것이 내게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들을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처절하게 겪어봤을 겁니다. 사랑한 대상에게 원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받았다면 황병승 시인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겠죠. 그리고 삶은 언제나 받은 사랑을 똑같이 돌려주지는 않으니까 계속해서 황병승 시인과 같은 작가들이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육체쇼와 전집'은 뜨겁습니다. 차갑다는 느낌보다는 표지의 저 선명한 선홍색처럼 팔팔 끓고 있습니다. 때로는 숨도 안 쉬고 이 세상에 욕을 퍼붓는데, 무섭기보다는 애잔합니다. 왜 욕을 하냐고 뭐라고하기보다는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그게 그저 '쓸모없는 독자'인 저는 그렇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황병승의 시를 읽고 있으면 오히려 내 고통과 분노와 억울함과 설움은 제쳐두고 그의 등을 쓸어주고 싶은 마음이 됩니다. 그는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별로 상처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쓸모없는 독자'라고 욕해도, 손을 뿌리쳐도,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그가 쓰는 글자들을 읽고, 어디에 있었냐고 다그치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곁을 지키고 싶습니다.

 

만약에 시인이 싫다는데 왜 그러냐고 정말로 화를 내도, 제가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거라도, 저는 눈치가 없으니까, 그냥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황병승 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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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병모 [파과]

 

단편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보고 구병모 작가를 읽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문장들은 차고 깊은 물 같다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섬뜩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그녀의 상상력은 저를 자극했습니다. 같은 작가라도 장편과 단편은 또 다른 만큼 그녀의 장편도 궁금합니다.

 

2. 베른하르트 슐링크 [여름 거짓말]

 

이번엔 반대로 장편소설만 읽어본 작가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영화를 보고 책을 봤는데, 영화도 좋았지만 역시 영화를 통해서 읽을 수 없었던 그와 그녀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알고 봐도 또 놀랍고 비통했습니다. 이번에는 동일한 주제를 가진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라고 합니다. '여름'을 배경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삶의 '거짓말'을 하는 일곱 명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고 하니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미하일 불가코프 [개의 심장]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반영한 사실적인 소설 안에서 또 희한하고 기괴하고 환상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러시아 소설에 대한 편견을 깨줬던 작품이었습니다. [개의 심장]은 제목만 봐도 뭔가 좀 더 직설적으로 훅 찌르는 작품들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이 작품을 발표하고 반소비에트 작가로 규정돼 이후 전 작품의 출간과 공연이 금지됐다고 하니 그를 [거장과 마르가리따] 같은 작품경향으로 이끈 이 작품집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4. 다니자키 준이치로 [열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탐미주의의 거장'이라는 내용과 무려 70세에 쓴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출판사 소개글을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파장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인데다 판화까지 삽화로 들어가 있다고 하니 비록 원서로 읽는 것은 아니지만 원서의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네 작품을 골라놓고 보니 더욱 두근두근합니다. 어떤 책을 보게 될까요, 저는!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열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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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11,800원 → 10,620원(10%할인) / 마일리지 5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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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거짓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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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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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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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참으로 스릴 있는 스릴러 소설을 읽었습니다.

<눈알수집가>라는 제목은 너무 직접적이어서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별명은 소설 속에서 언론이 연쇄살인마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쉬우면서도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기 좋아하는 언론이 실제로 만들었을 법한 별명이어서 책 제목으로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저의 유치한 연상 하나를 보태자면, '제바스티안 피체크'라는 이름도 뭔가 스릴러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도 '피'라는 글자 때문이었나 봅니다. 역시 유치합니다만 어쨌든 멋있는 이름입니다. 이런 장르소설을 잘 쓸 것 같은 이름이랄까요.)

실제로 잘 썼더라고요! 오랜만에 긴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궁금해하면서 조마조마해하면서 읽은 것 같아요. 스릴러 소설을 읽는 재미가 바로 이런 건데, 단순한 범죄 소설에서는 웬만해서 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던 차였습니다.

스릴러 소설 속 대부분의 살인자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고 가족을 통해 사랑보다는 상처를 받은 경험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실은 '알고 보면 나도 피해자야'라는 식의 뻔한 흐름이 지겨웠는데 '눈알수집가'의 이야기나 후반부에 밝혀지는 범죄 동기는 그렇게 상투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상처를 저도 모르게 동정하고 그가 원망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같이 원망하게 됐달까요.

미미여사의 소설처럼 <눈알수집가> 역시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계기로 봐서는 일종의 '사회파 추리소설'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범죄나 범죄자를 통해 어떤 아픈 깨달음을 주니까요. 그 깨달음은, 저조차도 한 번 저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앞으로 이 작품을 읽게 될 분들 때문에 자세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왜 막상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눈알수집가가 비난하는 바로 그 선택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을까, 실제로 그게 더 중요한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자들의 뿌리깊은 선입관들을 툭툭 건듭니다. 물론 그 선입관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더욱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이렇게는 생각 안 해봤지?!'하고 놀래켜줄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추리소설들이 이런 방식을 많이 취합니다만 이미 너무 익숙한 클리셰인 경우가 많아 신선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들이 더 많죠. 피체크가 건드는 부분들은 좀 다릅니다. 좀 더 교묘하달까요. 작가는 상대방을 만지면 그 사람의 과거를 보게 되는 영매의 존재나, 주인공 알렉산더 초르바흐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모두를 통해 한 번씩은 독자를 놀라게 합니다.

뒤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솜씨, 인물과 인물을 엮고 그리는 관찰력,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진지함, 그리고 대부분은 허무하거나 뻔히 예상가능한 결말을 뒤집는 방식까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요즘 같이 끈적끈적 꿉꿉 후텁지근한 날씨에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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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 노재희 소설집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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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라는 소설집의 제목을 보고, 너무 좀 대놓고 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건 사실입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고독 속으로, 다른 이도 아닌 너의 고독 속으로, 그것도 '달아나라'고 명령을 하는 책 제목이라니요. 심지어 책의 표지는 빡빡 민 머리의 뒤통수입니다. 마치 머리를 밀고 산 속으로, 절로 들어가는 스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죄수 같기도 하고요. 절이든, 감옥이든, 아마 고독하기는 할 겁니다. 


그런데 그 고독은 나의 고독만은 아닐 겁니다. 산 속은 온통 고요하니, 나의 고독이, 도인의 경지에 오른 다른 스님의 고독이나, 물의 고독, 산 속 공기의 고독, 새들의 고독에 묻힐 지도 모릅니다. 감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수 그 자신도 고독하기는 참 고독하겠지만, 더 오래 형을 산 다른 죄수나, 그들과 씨름해야 하는 교도관이나, 열악한 화장실이나, 좁은 방에 놓인 침대의 고독을 이기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얼핏 보면 머리를 빡빡 민 이 뒤통수는 참으로 고독 속으로 처연히 걸어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속은 오히려 자신의 고독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군요, 저로 하여금.


이런 제목과 표지를 가진 노재희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는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단편은 이러한 제목을 가진 소설집의 첫 작품에 걸맞게 <고독의 발명>이라는 작품입니다. 남부럽지 않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처자가 있는 엄복태는 마음 속에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습니다. 시인이 되려면 고독이, 마음껏 고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지만 알다시피 평범한 직장인, 가장, 생활인에게는 사실 그 필요한 것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요? 어쨌든 엄복태는 그 주어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스스로 고독을 '발명'해냅니다.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고, 아내가 있는 남자가 고독 속에 잠기자니, 당연히 아내는 그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래도 엄복태는 굉장한 용기와 강단으로 그것을 꿋꿋이 견뎌내고 시를 씁니다. 비록 여전히 누군가의 영향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시를 쓰니 썩은 동아줄인지는 모르나 기회도 찾아옵니다. 엄복태는 과연 꿈에 그리던 등단을 해서, 시인의 아내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던 프로포즈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그랬다면 이 소설은 현대소설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어쨌든 그 와중에도 스스로 고독을 발명해내고, 적극적인 시도를 한 엄복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또 모르죠, 소설 밖에서는 결국 엄복태가, 황지우도, 이성복도 벗어내고, 엄복태 자신의 시를 쓰는 시인이 될 지도.


   "행복하지?"
   이제 혀가 꼬부라진 김형철의 말은 거의 '항복하지?'로 들렸다.
   "이 새끼, 넌 좆나게 행복한 거야."
   있지도 않은 자신의 행복을 발명해준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김형철은 테이블 위에 두 팔    
   을 포개더니 그 위에 이마를 살포시 얹고 엎어져버렸다.
P.19


두 번째 단편은 <누구 무릎에 꽃이 피나>입니다. 참으로 따뜻한 상상력과 또 작가 특유의 현실 인식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 정도면 참으로 뻔뻔하다고 해도 무방한 아들 부부의 아이, 그러니까 큰 손자에 작은 손자까지 돌보느라 잠시도 허리 펼 틈 없는 춘복 씨는 무릎이 늘 아픕니다. 소설 속 춘복 씨까지 무릎이 아파 잠을 잘 못 주무신다하니,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왜 우리네 엄마들은 세월의 무게를 온통 무릎으로 받아내는 걸까요.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거라면 왜 우리는 그토록 무릎이 아파 잠도 못 이룰 지경이 되기 전에 그만 애 쓰거나 그만 살거나 할 수 없는 걸까요. 어쨌든 그런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춘복 씨의 이야기를 읽는데, 어라! 어느 날 춘복 씨 무릎에 꽃이 핍니다. 이건 조금도 비유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무릎에 꽃이 핀 겁니다. 거짓말 같이 통증은 사라졌지만 무릎에 꽃이 폈으니 무릎을 접을 수 없고 무릎을 접을 수 없으니 걸을 수 없습니다. 다들 이게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라지만 춘복 씨는 내심 기쁩니다. 끔찍하던 고통이 사라졌으니 좋고, 두 손자를 돌보는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어 좋습니다. 춘복 씨는 무릎에 핀 꽃 때문에 움직일 수 없고 그로 인해 찾아온 평화와 고독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 내외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꽃을 꺾어버리면, 무릎에서 뽑아버리면, 비록 고통은 다시 돌아오지만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과연 우리의 춘복 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번 뽑고 나면 다시는 무릎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춘복 씨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만약 우리 엄마 무릎에 꽃이 핀다면 나는 엄마한테 어떤 말을 하게 될까요.


다음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샘소나이트 가방을 차곡차곡 모으더니 어느 날 떠나버린, 아니 그것까진 좋은데,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를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감탄이 탄성이 되어 터져나왔습니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생활인 엄복태의 이야기에서 엄복태가 고독을 발명해내는 방식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고목에 꽃이 핀다'는 비유적 구절이나 노름판에서 오래 노름을 한 사람 무릎에는 꽃이 핀다는 낭설 혹은 근거 없는 비유적 소문에서 실제로 무릎에 꽃이 피는 상상을 해냈을 작가에게 또 한 번 감탄했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고독할 수도 없고 고독해서도 안 되는 한 집안의 가장이 어떻게 그 비고독의 상황에서 탈출해 자신만의 고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샘소나이트 가방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에게 경탄했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작가 자신이, 아마 역시도 고독할 수 없었거나 그래선 안 됐을 상황에 놓여있었을 작가가, 얼마나 작가가 되기 위해, 혹은 작가로 남기 위해, 고독을 찾을 방법을 모색하고 또 결국은 그것을 해냈는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배신감, 그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보다는 가방을 들고 달아난 아버지에게 느끼는 공감이 더 크도록 이 소설이 설계되어있다는(저만의 느낌일까요) 점 자체가 작가의 명백한 의도라고 믿고 있거든요. 아마 그것도 내 아버지가 아니라 남의 아버지니까 가능한 공감이겠지만요.


"이런 얘기 아니? 이 우주의 대부분의 에너지는 자기를 막아서는 어떤 것을 만났을 때 그 속으로 흡수되거나 혹은 그대로 소멸되는 대신 방향을 바꾼다는 거야. 그럼 어느 쪽으로 방향을 바꾸느냐, 자신의 안쪽으로 바꾸는 거지. 나선형을 그리면서 자신의 안쪽으로 점점 말고 들어가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나선의 중심이 탄생하는 거다. 그렇게 생긴 나선의 중심이 어떤지 아니?"
"......."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주 고요하단다, 아주."
"......."
"태풍의 눈을 생각해봐라. 같은 이치지, 그래서 그 중심을 고요한 눈이라고 한대."
"고요한 눈이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요한 눈. 나는 그 고요한 눈이 자기 안에 똬리를 튼 우주라고 생각한다. 멋지지 않니?"
"......."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되게 커지는 것 같잖니."
"안 그래도 크세요."
P.135


네 번째 단편은 <시간의 속>입니다. 이 작품 역시 작가 특유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시간 더 드립니다'라는 노래방에 갔다가 바깥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 속에 잠시 살게 된 젊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노래방에서 똑같은 돈을 내고 우리는 서비스로 시간을 더 받습니다. 그 서비스 시간을 주지 않는 노래방은 인정머리 없다고 흉을 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노래방 주인이 우리에게 준 서비스 시간만큼 우리는 노래는 더 부르지만 다른 것을 할 시간은 빼앗기는 셈입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니까요. 노래방에서 쓰는 이 '시간 더 드립니다'를 갖고 이런 작품을 쓰는 노재희 작가님의 상상력과 통찰력과 감각은 이야기를 이렇게 바꿔 놨습니다. 시간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 시계를 선물하고 떠난 애인, 그리고 병이 걸렸다는 걸 알고 순식간에 돌아가신 아버지, 그들에게서 어쩔 수 없이 떠나 그가 들어간 세계에서는 시간을 거꾸로 살고 있는 노망난 해맑은 노인과 그를 계략 속으로 끌어들인 노인이 삽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시간을 좀 더 얻은 대가로, 노인이 해맑은 노인에게 투자해야 할 시간을, 내가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죠.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회의를 품습니다. 그 시간 속에 있으면 그 시간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지만 그 밖으로 나와버리면 얼마든지 거스를 수 있는 것이 그 이상한 공간 속 시간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두 노인의 시간이 아닌, 과거 시계를 선물한 애인 해진의 시간도 아닌, 자신의 시간을 살아야하는데 말입니다.


다섯 번째는 <그날 저녁, 그는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누구 무릎에 꽃이 피나,나 시간의 속,처럼 이 단편에도 기이한 경험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는 역시 버스기사로 월급을 받으며 가족을 보살피는 생활인입니다. 운전 중 배가 너무 아픈 영환은, 동료가 알려준 화장실에서 급한 일을 해결하고 시원하게 물을 내립니다. 물을 내린 후에야 물을 내리면 모든 걸 다 쓸어가버릴 거라는 경고 글을 보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럴 겁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 보면 우선 버스가 없습니다. 도저히 스스로 없어질 수가 없는 버스가, 마치 물에라도 휩쓸려간 것처럼 흔적을 감춥니다. 버스를 찾기 위해 회사를 찾아가지만 당연히 회사도 없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던 사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자기와 똑같이 걱에 버스를 대고 화장실로 가는 동료기사를 발견합니다. 그는 그에게 경고하려하지만 실패하고, 그는 그래서 이미 물을 내려버린 그 동료기사의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봤어야하지만 역시 실패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고를 무시하고, 얼마나 많은 신호를 놓치고, 또 얼마나 많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걸까요. 그날 저녁, 그는 어디로 갔을까요.


여섯 번째는 <성가족>입니다. 독실한, 하지만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해 독실한 두 사람이 가족으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쪽에서 보면, 저 사람만 빼면 완벽하고, 저쪽에서 보면, 이 사람만 없으면 완벽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그 성스러운 가족을 이루는데 말이죠. 한 쪽은 그래도 내가 관용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쪽은 역시 내가 많이 참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빼면 완벽할 그 한 사람이 삶에서 빼기로 사라졌을 때, 남은 한 쪽은 내심 기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성스러운 가족에 대한 성스러운 꿈은 무사히 이뤄질 수 있는 걸까요.


이제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생활의 기술>은 철학에 뜻이 있는, 그래서 생활에는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내 대신 장을 보다가 환영을 봅니다. 물건을 하나 고르는 데도 너무 많은 정보가 필요하고 철학적 고민이 뒤따르는 남자입니다.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그 흔한 장도 제대로 볼 수가 없죠. 그래서 생활의 달인인 학원 동료 여선생에게 노하우를 배웁니다. 단순히 감자를 어떻게 고르느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쓸 데 없는 걱정들을 어떻게 날려버리느냐 하는 굉장히 중요한 기술을 전수받게 되죠. 그 때부터 남자는 마치 마트에서 장을 보듯이, 자신의 걱정에도 '그래봤자 얼마' 하는 식으로 값을 매겨 어디론가 팔아넘기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언젠가는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세상에는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풀어서 쓰고 보니 굉장히 뻔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만, 노재희 작가는 대체로 뻔한 이야기들을 뻔하지 않은 이야기 방식으로 보여주는 재주가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입니다. 책 뒤표지에 적혀 있던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그 구절이 어느 작품에 나오나 했었는데, 바로 이 <당신 손목을 붙드는 그림자>였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빛나는 것을 보게 되면 나머지 인생 동안엔 그 그림자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일단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우리는 평생 그 아름다운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진소영은 자석을 갖고 영혼을 이야기하는 엄마를 가진 딸입니다. 그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걸 미안해하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소영은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의 엄마로서, 이혼녀로서,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부자들을 위해 그럴싸한 서재를 꾸며주는 희한한 인테리어로 돈을 법니다. 책이 엄마의 삶을, 엄마의 손목을 끊임없이 붙든 것처럼, 그런 엄마의 영향력이 소영의 손목을 계속 붙들고 있습니다. 놓아주질 않고 계속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억지로 붙잡혀 있다기보다는, 그렇게 잡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그 무언가에 손목이 붙들린 채 그 힘으로, 그 기억으로 인생을 살아냅니다. 그림자가 만드는 그늘은 어둡지만, 그 어두움이 반드시 나쁘거나 불안한 것만은 아닌 거죠.


마찬가지로, 인간이 뭔가에 마음을 뺏기면, 자기의 부속품 하나하나가, 이를테면 그것을 바라보는 눈도 그것을 말하는 입술도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내미는 손도, 모두 그것으로 빨려 들어가서 결국엔 끔찍한 몰골로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무서운 일이지. 자석산 근처엔 가지 않는 게 상책이란 말이야. 자력이 미치는 범위에 들어서면 일단 얘기는 끝난 거라고 봐.
P.336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에 실린 8편의 단편들이 모두 참 좋았지만, 저는 왠지 마지막 <당신 손목을 붙드는 그림자>가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마치 이 소설 속에 자석산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우리 엄마는, 진소영의 엄마처럼,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그래서 이렇게 문학적인 표현으로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스스로 잘못을 말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표현이 다를 뿐 같은 이야기를 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의 영혼과 나의 영혼, 그리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나 사이의 어떤 자력, 그 자력이 영향을 미치는 자장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석처럼 제 마음을 붙듭니다. 


노재희 작가는 진소영의 엄마의 입을 빌려, 친절하게도 '자석산 근처엔 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알려주지만 그것은 마치 버스운전기사인 영환이 동료 기사에게 했던 경고처럼, 이미 소용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책을 읽기 전에 벌써, 훨씬 전에, 그 자석산을 만났고, 빛나는 것을 봤고, 자력이 미치는 범위 속에 들어 있으니까요.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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