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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2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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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부림치며 눈을 감고 기도하듯 등을 구부렸다. 피부가 벗겨져 세상과 직접 스치는 양 고통스러워서, 자신의 윤곽선보다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물러나고 싶었다. 몸속 깊은 곳에 조그맣게 웅크려 몰래 숨어버리고 싶었다. p.9

 

2권의 아주 초반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막내 아들은 죽고 맏아들은 그 살인범으로 의심받고 남편은 세상과의 끈을 자꾸 놓치는 상황에서 가즈코가 느끼는 고통을 묘사한 문장입니다. 이 짧은 세 개의 문장은 1권 후반에서 2권의 마지막까지 가즈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등장인물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물리적인 몸피가 온 세상과 스치는 듯한 고통, 그 몸통이 차지하는 크지도 않은 공간조차도 부담스러워서 그 안으로, 조금이라도 더 안으로 웅크리고 숨고 싶은 마음.

 

누군가가 죽으면 죽는 것은 그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료이치 역시 살해된 이후 많은 것들이 함께 죽습니다. 료이치의 아내 요시에가 다카시에 대해 갖고 있던 지성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는 그렇다쳐도, 료이치의 부모님이 서로에 대해 느끼던 소원함은 그렇다쳐도, 료이치와 다카시의 엄마인 가즈코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마저 함께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에 대한 힌트는 1권 초반에 등장합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료스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즈코는 다카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다카시에게서 느껴지는 정체 모를 거리감, 혹은 섬뜩함을요. 그것은 대부분 감정이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다카시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껴지지만, 사람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상이나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 가즈코도 바로 그러한 점을 느낀 것이겠지요. 부모라고 해서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깊은 이야기는 좀 다르지만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의 엄마인 에바도 역시 그랬습니다. 케빈이 엄마와 아빠 앞에서 하는 행동이 달랐다고는 해도 똑같은 자식을 두고 엄마와 아빠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달랐죠. 또 사이코패스를 다룬 많은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어릴 때 주로 동물을 해하는 자녀의 행동에 불길한 섬뜩함을 느꼈다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자기 핏줄에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을 애써 부인하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가즈코가 다카시에게서 느끼는 감정의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 다카시는 어릴 때 눈에 띄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차분했습니다. 가즈코는 아마 그것이 낯설고 두려웠을 겁니다. 엄마인 자신 앞에서조차 보통의 어린 아이들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아들'이라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느껴지는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들이기 때문에 더욱 거리감을 생생하게 경험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응석 부리지 않고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해서 엄마인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들, 입 댈 데 없이 완벽해서 차갑게만 느꼈던 맏아들. 그런 다카시가 그와는 완전히 달랐던 막내 아들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을 받게 되니 가즈코는 더욱 괴로워집니다. 아들의 잘못 앞에 부모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 "제 아이는 그런 아이가 절대로 아니에요!"라는 확신에 찬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작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냐고 되묻는 도모야의 엄마와는 완전히 반대의 경우입니다. 도모야의 부모, 특히 엄마는 항상 치마폭에 감싸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맙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아들을 보지 않고 자기의 의식 속 아들만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학교에서 사고를 일으켜도 그 일을 일으킨 도모야의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않고 다른 엉뚱한 것을 원망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무의미한 체벌을 한 후 그냥 덮어버립니다. 어쩌면 너무 두려워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문에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식의' 도모야의 대한 무모한 믿음은 결국 큰 비극을 낳고 맙니다. 전적으로 부모 탓이라고는 못해도, 도모야의 부모가 제대로 된 엄마, 아빠의 역할을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악마의 부재를 못 견디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 자신이야! 인간은 내면의 위험에 말을 부여해 밖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그것을 자기 자신과 혼동해버리는 참으로 딱하고 비참한 동물이야. 살인범, 강간범, 방화범, 절도범, ••••••자신이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믿으려면 자신 외의 그런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게 바로 악마야! p.331

 

작가는 이런 식으로 악마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선언을 여러 차례 적지 않은 분량에 걸쳐 씁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것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런 악마들의 철학에는 그럴듯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서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하는구나 싶다가도 계속 얘기를 듣고 있으면 맞는 말 같이 느껴집니다. 거짓말도 진짜라고 믿으면 진실로 바뀌고, 상대방이 강하게 말할수록 그말에 설득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러한 망상, 악한 철학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의식, 나를 지탱하는 중심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머리를 털고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자신이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믿'기 위해 '자신 외의 그런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섬뜩한 '악마'의 이야기를 보면 이제는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자신이 악마가 아니라고 믿기 위해 다른 악마를 필요로 하기 전에, 자신이 악마는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 그를 좀 더 인간적이고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줄 누군가가 부재했다는 뜻이니까요.

 

[결괴 2]는 이렇게 잔인한 살인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속을 아주 깊숙이 들여다봅니다. 피해자인 료이치의 가족과 가해자인 도모야의 가족, 그리고 또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들. 그 중에서도 살인자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그 누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다카시의 고통은 끝날 듯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결괴]를 통해 이토록 잔인한 고통을 끈기 있게, 어쩌면 가즈코가 다카시에게서 느꼈던 것처럼 그런 섬뜩한 냉정을 유지하면서 끈기 있게 들여다 봅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죠? / 네 가족이 살해됐다고 살해됐다고 생각해봐 /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요. 그러면 죽여도 되나요?

 

라는 식으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우리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왜 사람을 죽여서 안 되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대답하겠죠. 목숨은 소중하고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앗아갈 수 없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거나. 일상에서는 이런 원론적인 답 너머로 깊이 들어가볼 기회가 많지 않고, 거기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목숨이 왜 소중하며 누군가가 죽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왜 고통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이런 악마는 대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란 것일까요. 책을 덮고도 계속될 이 의문이 히라노 게이치로가 저에게 던진 가장 큰 화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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