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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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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은 러시아의 대문호로 칭송 받는, 그러나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서는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 미하일 불가꼬프의 중편 소설입니다. 미하일 불가꼬프는 오래 전 읽은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상세한 내용들이 다 떠오르진 않지만, 러시아나 공산주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전에도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쓰여진 작품은 많았겠지만 미하일 불가꼬프의 상상력은 남달랐습니다. 영화 장르로 말하자면 흡사 컬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재미와 긴장감과 어이없음과 발상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사회 비판이나 지나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비틀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두 편의 중편 <개의 심장>, <악마의 서사시>가 실려 있는 [개의 심장]도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대했던 <개의 심장>보다 <악마의 서사시>가 더 읽기에 즐거웠는데, 그 이유는 이 글을 쓰면서 차차 정리해볼까 합니다.

<개의 심장>은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소개글을 읽어보셨다면 다들 아시다시피, 떠돌이개에게 사람의 뇌하수체와 생식선을 이식한 의사와 그의 조수, 그리고 그 의사의 이웃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이 풍자소설, 사회비판소설로서의 명확한 꼴을 갖고 있다 보니 많은 부분들이 풍자와 은유의 대상입니다. 각 인물들과 그 이름들 역시 그 시대의 사회상과 특정 계급의 대표성을 지니죠(러시아어를 잘 안다면 훨씬 더 많은 함의를 읽어내고 언어유희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 남는 이유입니다).

먼저 개 샤릭을 사람 샤리꼬프로 변신시키는 의사 필립 필리뽀비치 쁘레오브라젠스키는 '변형시키다'라는 러시아어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샤릭이 샤리꼬프로 변신한 후에 이웃인 쉬본제르가 지어준 이름은 뽈리그라프 뽈리그라포비치입니다. 이는 '복사기'에서 따온 말이라고 하고요. 잘은 모르지만 젊은 의사이자 필리뽀비치의 충실한 조수인 보르멘딸리라는 이름이나 쁘롤레따리아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쉬본제르라는 이름 역시 아마도 그냥 지은 이름은 아닐 겁니다.

이는 <악마의 서사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하나 나름 인뗄리로서 성냥 공장 사무직에서 일하던 주인공의 이름은 까로뜨꼬프입니다. 까로뜨꼬프는 어느 날 회사에 불어닥친 경영난과 정리해고(?)의 위험에 맞서 소장에게 항의를 하려고 하다가 바뀐 소장의 이름 '깔리소네르'를 '깔리손(속바지)'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결국 해고를 당하고 맙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깔리소네르는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까로뜨꼬프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납니다. 까로뜨꼬프는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까로브꼬프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게 되지만, 까로브꼬프를 고용한 사람들이나 그의 동료들조차도 까로뜨꼬프와 까로브꼬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결국 까로뜨꼬프는 '나는 까르보꼬프가 아니야'라고 절규하고 맙니다.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이름 외에도 제가 미처 알 수 없는 언어유희들이 가득할 텐데 그것을 다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개의 심장> 같은 경우는 1925년에 집필을 마쳐서 1987년에 발표됐으니 무려 52년이라는 시간이나 묵혀져 있던 작품입니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러시아 정세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스딸린 체제와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의구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이 쓰여졌던 1920년대 러시아에서는 생식 기관의 이식에 의한 인간 본성의 교정 및 우생학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의사 출신의 작가는 자신이 잘 아는 이 소재를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아주 적절히 사용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그리고 웬만한 해답은 직접 주기도 하죠).

필리뽀비치는 처음부터 샤릭을 사람으로 변신시키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더 젊게 만들 수 있을지를 보려던 것이죠. 미하일 불가꼬프는 동물에게 인간의 뇌하수체와 생식선을 이식하면 더 젊고 더 건강하고 더 똑똑하게 만들 수 있는가, 동물이 본성을 버리고 인간과 같아질 수 있는가,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면 평범한 엄마들도 천재 아이들을 낳을 수가 있는데 이런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현명한가, 급진적인 변화와 무조건적인 분배가 타당한가 등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혹은 작가의 생각)은 작품 속에서 대부분 드러납니다. 이것이 스딸린 정부 이후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이 책이 출간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사람의 꼴은 갖추었으나 아직 사람으로서의 사회성을 다 익히지 못한 샤리꼬프가, 책 속에서는 비판의 대상인 쁘롤레따리아 간부 쉬본제르의 조종을 받으며, 결국은 길거리의 고양이 등을 잡는 청소과 과장으로 취직을 하게 되는 장면은 흥미롭습니다. 이 때 샤릭은 이미 샤리꼬프이지만, 왠지 경찰복을 입고 있는 개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 역시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사람의 형상은 갖추었지만 하는 행동은 여전히 완전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게 묘사해두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를 사람 몸에 개의 얼굴을 한 모습으로 상상하게 되니까요(저만 그런가요?=_=).

<개의 심장>이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각각의 인물이나 상황 묘사가 현실에서의 무엇을 은유하는지가 비교적 명확하게 대입되는 작품이었다면 <악마의 서사시>는 작가의 좀 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도드라지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을 불도 붙지 않는 불량 성냥으로 주던 성냥 공장에서 해고 당하고, 지갑까지 잃어버려 신분조차 증명하기 어려워진 까로뜨꼬프가 처한 혼란스러움을 주로 다룹니다. 수염이 있는 깔리소네르를 금방 여기서 봤는데 또 금방 저기서 수염이 없는 깔리소네르가 나타난다던가, 불만처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서랍 속에서 등장한다던가, 뜬금 없이 자기를 바치겠다고 하는 여자가 나타나 까로뜨고플를 당황하게 한다던가 하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패닉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과 <지구를 지켜라> 같은 한국의 컬트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이 마구 뒤섞여있는 것 같은 작품이랄까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는데, 그 상황을 까로뜨꼬프와 함께 따라가다 보면 저도 같이 정신이 없어집니다. 숨이 차고 마음이 급해지고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하고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는 동시에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말이죠. 미하일 불가꼬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거장과 마르가리따]와 비교하자면 <개의 심장>보다는 오히려 <악마의 서사시>가 더 [거장과 마르가리따]의 뿌리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까로뜨꼬프가 정작 자신이 잘못한 것 없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 이상하게 시달리다가 결국은 정신병자로 오인 받고 그러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 역시 명확하게 그 당시 사회에 대한 불가꼬프의 비판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높은 곳에 올라가 스스로 투신하고 마는 까로뜨꼬프가, 실제로는 땅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머리가 바닥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건물들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끼는 장면은 굉장히 짠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개의 심장>에서 주는 인상과는 달리, 작가는 쁘롤레따리아 계급에 특별한 비판을 한다기보다, 러시아 사회를 그러한 분위기로 몰고간 정부에 더 큰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까로뜨꼬프가 불만처리사무소(?)에 가기 위해 찾아간 건물은 흡사 배명훈 작가의 <타워>와 비슷한 인상을 주는데 배명훈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바와 미하일 불가꼬프가 보여주고자 하는 당대의 분위기나 현실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원래 시기가 흉흉하고 검열이 심할수록 문학에서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하지만, 1920년대에 이같은 상상력의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다는 점은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하일 불가꼬프에 견주어 비슷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작가나 작풍은 흔치 않으니 말입니다. 굉장한 개성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현대의 많은 컬트무비나 B급무비 감독들이 미하일 불가꼬프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감독들을 만나면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혹시 미하일 불가꼬프의 작품을 좋아하냐고 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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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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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후감을 쓰다 보면 느낍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은 선입관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서평을 쓰는 일은 그래서 저 스스로에 대한 발견을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할 때 검열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문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문장을 처음 쓰는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원래잠언집이나 명언집이나 자기계발서나 암튼 이렇게 분류되는 책들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읽게 된 후 감상을 쓸 때는 으레 저런 식의 문장을 썼던 것 같습니다.

 

연애를 하는 상대와 다투게 될 때 나는 원래 이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해버리면 그 때부터는 대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원래 어떻다라는 대화나 타협의 여지를 차단하기 쉬우니까요. 이리하여 저는 <나만 위로할 것>의 서평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자기반성을 합니다.

 

사실 처음에 쓰려던 저는 원래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에는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플로베르의 <플로베르의 나일 강>이나 기형도 시인이 쓴 <짧은 여행의 기록> 같은 여행기는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원래 동시대의 나름 유명인이 쓴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쓰면 좀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근데 또 생선 작가는 제가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은 아니니까 그것도 좀 애매하긴 합니다. 각설하고 그래서 결론은 <나만 위로할 것>은 생각보다 좋았다는 겁니다. 그것이 꼭 제가 곧 아이슬란드에 여행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곧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갑니다. 작가는 무려 180일을 아이슬란드에 보냈는데 저는 그 기간의 18분의 1 정도로 짧은 여행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가고 싶었고 곧 가게 될 나라에 나보다 먼저, 나보다 오래 머물다 온 사람의 글과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더 마음이 열린 것도 아마 맞을 겁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작가가 일을 그만두고(그만두어지고?) 아이슬란드로 떠난 나이와 지금의 제 나이가 같습니다. 또 이 책은 저와 같은 나이의, 생선처럼 아이슬란드가 좋아서 2번이나 다녀온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기도 합니다. 사실 친구는 책을 선물하면서 제목의 뉘앙스를 패러디 해 그림만 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저는 글자까지 빠짐 없이 읽었습니다.

 

<나만 위로할 것>의 좋았던 점은 이 책은 정말 아이슬란드 관광 가이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래 머물면서 거의 4계절을 모두 경험했던 작가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또 그곳에 본의 아니게 감금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의 몇 대 관광지만 잔뜩 찍어서 싣지도 않았고, 그저 아이슬란드에 가서 그곳에 있는, 혹은 그곳에 간 자신에 대해서 썼습니다. 간혹 간지러운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그런 간지러운 부분들도 제가 충분히 자연스럽게 읽어 넘길 정도였습니다. 간지러운 것은 작가가 이 나라를 정말 애정하고, 또 아직은, 그렇게 좋아하던 나라에 가서 그 정도 감상에는 빠져도 되는 나이(저와 같은 나이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더 나이 들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ㅠㅠ)인 듯 합니다.

 

만났던 사람들, 머물렀던 공간들, 그리고 그 틈틈이 비치는 실직자로서의 불안감들을 지나치게 꾸미지 않고 풀어놓았습니다. 누구나 갖고 살 그 불안감은 단순히 실직에 대한 불안감만은 아니기에 그만 위로할 수는 없지만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습니다.

 

특히 레이캬비크에서 매일 가던 커피숍에서 같은 제품 시리얼키 때문에 만났던 여성(이름을 잊었습니다)에 관한 얘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이고, 또 인생의 신비지! 그랬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규어로스의 헤이마’ DVD를 보던 그 때부터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그 나라, 너무 멀다고 생각했던 그 도시의 이야기여서 보는 내내 기분 좋은 설렘을 줬습니다. 책은, 어떻게 갖게 되어서 언제 어떤 마음으로 읽는가 하는 것도 굉장히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생선 작가님, 저도 곧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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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 - 7집 Soony Seven [3단 디지팩]
장필순 노래 / 푸른곰팡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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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맴맴>을 듣고, 멜론에서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무중력>을 들었어요. 정말 기다렸던 앨범에서 좋아하던 장필순 냄새와 제주도 냄새까지 같이 맴맴 나네요. 나나나매앰매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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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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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는 일본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받은 아사이 료의 데뷔작이라고 합니다. 아사이 료는 89년생으로 2013년 나오키상을 받은 것이 전후 최연소 수상 기록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젊은 작가입니다. 그 점이 아직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쓰는 데 보탬이 됐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제목은 전형적인 ‘낚시’입니다. 소설 속에는 기리시마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리시마라는 배구부 주장 친구가 동아리를 그만 두고 종적을 감추면서 여러 친구들의 일상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열일곱 살이라는 주인공들의 나이로부터 한참 멀어져 있는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이 굉장히 섬세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해서 그 점을 많이 기대하고 읽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 그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긴 하지만 기대만큼의 섬세함이나 디테일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놓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배구부 주장이었던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둠으로써 그 포지션에서 늘 후보였던 친구가 기회를 얻게 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간접적인 영향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읽는 것은 재미 있습니다.

 

기리시마가 배구를 그만 두고 종적을 감춘 후, 늘 함께 농구를 하던 다른 남자친구를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짝사랑하던 친구를 덩달아 보기 힘들어진다는 에피소드가 특히 그랬습니다. 늘 적극적이고 어른스러웠던 기리시마 덕분에 빌려 쓰던 연습공간을 쓰지 않게 됨으로써 다른 친구들이 재회하거나 그 공간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거나 하는 이야기들도 간적적인 영향력이긴 했지만, 방금 언급한 에피소드야말로 ‘아- 이런 경험은 정말 내가 지나와버린 시간대의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갓 지나오지 않았다면, 혹은 웬만큼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면 포착하기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만들어져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2013)에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그래서 저는 영화가 좀 더 기대가 됩니다. 풋풋한 청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들처럼, 왠지 이 이야기도 영상과 만났을 때 그 시절만의 느낌을 더 잘 전달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가 봅니다.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기리시마와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관둔 이유를 독자 혹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점 또한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우리는 별 것 아닌 이유로 중대한 결정으로 하기도 하고 굉장한 아픔을 의연히 넘기기도 하며, 또 생각지도 못하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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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 개정판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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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는 등단한지 꽤 오래됐는데도 얼마 전 나온 소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두 책이 출판된 시간차가 무려 13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두 책의 느낌이 사뭇 달랐던 것도 당연합니다. 같은 엄마 두 자식, 이랄까요.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들은 풍문에 의하면 이 두 책 사이에 나온 책들은 또 다르다고들 하더군요. 쉽게 말하자면,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가 전작들에 비해 많이 읽기 쉬워진 편이라고 말이죠. 어쨌든, 이런 정보들과 함께 가장 최신작을 읽은 후 접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생각과 좀 달랐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을 때는 저도 어떤 무언가가 슬슬 지겨워지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주인공 유경과 나이도 꼭 같고 말입니다. 그래서 작가가 제기한 당돌한 질문, 그리고 반항, 또는 남들 다 하는 연애나 가족제도에 편입되기 위한 그렇고 그런 일에 청춘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겠다는 선언, 그저 그렇게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친구들을 향한 냉정한 시선들이 크게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지금 이 시기의 저에게는 현실이기도 하고, 이 나이쯤 되면 소설 속 주인공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지금의 나와 꼭 같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 ‘이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학습해온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당돌한 생각들은 10년 전에 비하면 훨씬 보편적인 생각들이 돼버리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 책이 나왔을 무렵, 딱 스무 살이었던 그 때, 그리고 아직은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들이 훨씬 더 많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또 달랐을 것 같긴 합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는 항상 새로운 시도, 그 전엔 쓰여지지 않은 것들을 쓰고자 하는 것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출판된 그 당시의 관점으로 읽자면, 배수아 작가는 꽤 도발적인 신예였을 것 같습니다. 유경이 진정 하고 싶은 건, 어서 빨리 나만의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멋지지만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남자에게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하고 말하는 것이라니 말입니다.

 

유경이 길과 교진 사이에서 나름의 갈등을 하는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길은 미래의 남자고 교진은 과거의 남자입니다. 둘 다 현재의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갈등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길 같은 남자가 미래의 남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는 모든 걸 갖춘 매력적인 남자지만 앞으로가 너무 뻔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교진 역시 다시 한 번 연애를 해볼 수도 있지만 이미 과거에 만났다 헤어진 남자이므로 과거의 남자입니다. 과거도 새드엔딩, 미래도 새드엔딩인 거죠. 이럴 때 보통은 더 맹렬히 현재의 남자를 찾을 겁니다. 그러다 안 되면 둘 중 세게 당기는 쪽으로 끌려가겠죠. 여자들은 남자에 의해 선택 받는 것에 익숙하니까요. 그렇지만 유경은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길과 쿨하게 연애하자고 마음 먹은 것도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유경은 그저 연애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습니다. 물론, 이런 마음으로 길과의 즐기는 관계에 뛰어든 유경이 결국은 울고 불고 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지 어떨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배수아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결국 유경이 둘 중 일단 급한 대로 아무나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탈연애를 본인의 의지로 선택했다는 점인 듯 합니다. 지금 와서는 탈연애라는 말도 다소 치기 어리게 느껴지긴 하지만, 서른 셋의 시집 안 간 여자가, 어쨌든 자신이 좋다면 자신을 좋아할 남자 두 명 사이에서 그 어느 누구가 아닌 어떤 개념을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작가의 근작은 미로와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뭔가 빨려 들어가듯이 사람을 매혹하는 매력이 있다면, 초기작인 이 작품은 어쨌거나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습니다. 과거의 남자와 직장 내 유부남,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촌 등의 등장인물이나 유경의 다양한 친구들은 다소 빤하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 갔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도 쭈빗대지 않고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녀가 중간중간 심어놓은 질문과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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