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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는 제목에서 시사하는 것과 메스컴의 영향으로 작가의 첫사랑을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읽기 시작을 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니 첫사랑은 단지 삶을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고리요, 프랑스 소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처럼 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삶은 살지 않았지만 , 한국판 <여자의 일생>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는 주인공이 6.25로 서울대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미군부대에 취직을 한다. 얼마후 옆집으로 이사온 그남자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을 하지만 백수에 미래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하여 주인공은 결국 탄탄한 은행원 민호와 결혼을 한다. 늘 첫사랑을 가슴 한켠에 묻고 살다가 그남자를 만나 행복한 밀회를 즐긴다. 같이 쇼핑을 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주인공은 남편이나 시부모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이 가는데로 행동을 한다. 이 사실을 남편이나 시부모가 알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은 책을 읽는 내가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혀 들키지 않고 주인공은 활기찬 생활을 한다. 그러나 남자는 실명을 하게 되고, 주인공은 한편으로는 아쉬워 하며, 한편으로는 그남자의 불행을 보면서 나의 안위에 대해 안심을 하고 그렇게 첫사랑은 잊혀져 가고 아이 넷을 낳으며 편안한 삶을 산다.
내용으로 보면 클라이막스도, 숨가쁜 사건 전개도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노련미에서 나오는 여유인가? 전쟁통에 광주리 이고 나가서 물건을 파는 주인공의 설정도 삶에 찌든 모습이 아니다. 그남자가 실명하는 일이나, 옆집에 사는 춘희가 미군부대에서 쫓겨나 양공주가 되고, 결국 미국으로 가버리지만 작가는 이 모든 일연의 사건들을 담담히 관조하는, 회고하는 모습으로 써내려갔다.
그러나 이 책은 가벼운 소설이 아닌 언뜻 작가의 논픽션이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솔직 담백하다. 그러면서 나의 첫사랑도 떠올리게 하고, 내 삶의 지표도 알려준다. 이 책을 읽는동안 여느 소설처럼 가볍지 않아서 좋았고, 가족간의 사랑, 남편과의 관계,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였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성격이나, 추구하는 가치관이 상반되지만 자식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은 한결같다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