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은  몇 달 전에 처음 와서 꽤나 버벅거리며 사소한 실수도 곧잘 저지르다 그새 일을 익혀 갈 때마다 여유있는 태도로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이십 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항상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듯 손님들과 이런 저런 일상사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특유의 그 생기가 전염되는 것 같아 덩달아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난 그 나이 때 그런 생기를, 그런 친절을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녀의 커피는 그래서 특별하다. 찰스 부코스키가 우체국의 젊은 예쁜 여직원을 보려 실없이 그 우체국 갈 일을 만드는 이야기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해리포터를 읽고 있다. 5학년 딸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기 보다는 엄마가 먼저 읽는 모습을 보여주며 같이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지만 현실은 음, 내가 1권을 잡고 있으니 아이가 시작도 못하고 있다는 반전. 해리 포터의 판타지 세계에 몰입하기엔 내가 너무 나이들어 버렸지만 이따금 잠자고 있던 동심이 깨어나 흠뻑 빠질 때에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다니는 듯한 착각에 현실을 잊게 된다. 해리가 고아였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앎은 새롭다. 11살. 한국나이로는 12살 혹은 13살이었을 내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해리포터가 있었다면 조금쯤 더 수월하게 그 시기를 통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 마구잡이의 판타지가 아니라 그 또래 아이들의 교우관계, 가족들 안의 상처, 학업 스트레스, 상실 들이 군데군데 들어와 잠자던 그곳에 공명한다. 완독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 조금 아는 척은 할 수 있겠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 아쉬운 것들 투성이인 늦가을도 이제 예외없이 한 해의 말미에 묻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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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0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11-2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해리포터를 안봤는데... 이제 좀 봐야 할까요?
읽으시며 리뷰도 남겨주세요, 블랑카님. 블랑카님의 리뷰가 궁금해요.

blanca 2018-11-30 03:57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ㅋㅋ 저도 제가 해리포터를 읽게 될 줄은 ... 몰랐어요. 솔직히 어떤 의무감도 있고 대체 뭐길래? 어떻길래? 뭐, 이런 반발심도 좀 있었어요. 제가 과연 그 두꺼운 책 7권을 다 읽을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 읽으면 반드시 리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psyche 2018-11-30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 포터는 정말 저와 딸의 추억의 작품이에요. 큰아이 또래가 해리포터와 함께 성장한 세대거든요. 새 책이 나오는 날 서점에서 밤새 줄 서 있다 사왔던 일, 영화가 나올때마다 가서 보면서 책과 다른 점을 지적해가며 흥분했던 일들. 아 옛날 생각나네요. 저에게는 최고의 작품중 하나지만 마법, 환타지 이런 거 안좋아하시는 분들은 별로이실 수도 있을 듯.

blanca 2018-11-30 03:59   좋아요 0 | URL
아, 프시케님, 줄 서 있다 사온 추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달콤하고 설레잖아요. 딱 그 세대라니 축복받았네요. 저는 사실 환타지는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것 읽으니 현실의 머리 아픈 문제는 다 저리 가는 묘한 위안이 있네요. 좀 더 힘을 내어 열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스피 2018-11-30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 시리즈 넘 재미있지요.그런데 처음에는 아동용 도서로 시작하다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자 성인들까지 아우려고 하다보니 나중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좀 어두워지더군요.뭐 그게 대박난 이유기도 하겠지만요.

blanca 2018-11-30 03:59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배경은 몰랐어요. 사람의 머리 안에 이런 상상력의 확장이 가능하다니 놀랍기도 해요. 어두워진다니, 각오 좀 해야겠습니다.

카스피 2018-11-30 10:38   좋아요 0 | URL
뭐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아무래도 어린이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요^^ 재미있게 읽으시고 괜찮으시면 DVD도 함 보세요.해리와 친구들의 성장을 볼수 있는데 이건 책에선 도저히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요^^
 

알라딘에 처음 글을 쓴 게 이십 대 후반 무렵이다. 아, 2019년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나이가 된다. 내가 이 나이의 사람으로 이렇게 여기 지금 존재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계속 그럴 테지만 어렸을 때 나의 엄마의 나이로도 적잖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나이가 내가 살아온 생의 나이테라니... 이런 속도로 나이가 든다면 십 년 정도는 눈 깜짝할 새가 될 듯.  나이와 함께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소회도 진화한다. 삼십 대 중반에 알라딘에서 온 책을 언박싱하는 일은 낙이었다. 새로운 책을 책상 한 귀퉁이에 쌓아놓고 책등을 쓰다듬는 일은 아아, 회상만으로도 설렌다. 하지만 이제 실물의 책을 구입하는 일에 왠지 저어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이제 내가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이 추상이 아니라 하나의 실재로서 다가오는 중년이 되었기 때문일까? 글쎄, 모르겠다. 되도록 전자책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고 그것마저 없다면 신간을 무조건 사서 쌓아놓는 일은 신중하게 된다. 그런 만큼 읽는 일의 퇴적은 눈에 보이지 않고 독서의 지형도는 예전처럼 체계적이지 않다. 전자책은 한꺼번에 정렬하는 기능을 실행하지 않으면 책장을 둘러보며 독서의 궤적을 살피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할 수는 없다. 수많은 영상들, 그 사이의 활자들조차 실물이 아닌 가상의 영역에서 혼재되어 때로 어그러지고 뭉그러진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리즘일까, 4차 혁명의 충실한 소비자로 거듭나는 일일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2018년도 연말에 읽었던, 내 마음대로 특별하게 갈무리하고 싶은 책들을 정리해 둔다. 나중에 이곳을 찾아올 나를 위하여. 


문학은 때로 더욱 드라마틱한 나와 내 주변의 일들로(주로 예기치 않은 비극) 그 서사성이 때로 시큰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근사해서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럴 때 읽는 일이 여전히 참 좋다.




아, 건축 설계소의 아침을 묘사한 문장을 읽다보면 그냥 책장을 찢고 그 속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사각사각 모두가 연필을 깎는 그 아침. 이 생생한 하루 하루 청춘의 이야가 결국 노년의 초입에서의 회고로 안길 때는 이야기는 이렇게 쓰고 읽는 거구나, 싶다. 문장이 언어가 이미지를 동영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정연한 대답을 찾는다면 이 책이 될 것 같다. 읽는 동안 참 행복했다. 











SF소설과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테드 창은 처음이고 더불어 과학 단편 소설집도 이 단편집이 완독한 유일한 이야기다. 작위적이거나 너무 미래지향적인 설정에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내가 아, 이런 거구나, 싶게 만들었던 책. 결국 미래를 이야기해도 공상의 영역으로 가도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이 깊고 진하다면 공명하는 부분은 두렵지도 낯설지도 않다는 깨달음. 을 준 이야기. 내 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상의 공간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재구성하고 더 나아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가능했던 이야기들의 여운이 길다.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면서도 다시 그 삶을 기꺼이 경험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쩐지 좀 근사하다.









이 책을 읽기 이전에 내가 상상한 <키스>의 클림트와 이후의 그의 모습은 천양지차다. 실망도 경외감도 함께 왔다. 클림트가 나고 자랐던 시공간 속에서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과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그가 남긴 작품이 가지는 서사적 맥락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다. 기회가 되어 그의 그림 앞에 직접 설 수 있다면 이 책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갈 그 날을 꿈꿔 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이렇게 슬프고 처연한 이야기인 줄 몰랐다. 자신을 만든 자를 끝내 파멸시킬 수밖에 없었던 피조물의 비극은 십대 소녀와 유부남 시인의 사랑의 도피 행각에서 탄생했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보다 더 질곡어린 서사를 직접체현했던 그녀의 삶과 죽어서도 딸의 삶에 불가항력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대를 앞선 여성학자 어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하면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저력의 근원지를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어린이용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난 딸아이도 무섭다기보다는 너무 슬픈 이야기라고...




부모가 되는 일은 참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과제인데 그 과제를 수행하는 중에 일어나는 온갖 변수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스스로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의 조언도 각자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갇혀 있기 쉽다. 여기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간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자식을 키우면서 어떻게 자신의 삶도 방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부모로서의 영향력과 보호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은 꼭 기억해 두고 싶다. 구체적인 상황이 이 이야기와 꼭 겹치지 않아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니 가족 중 누군가의 힘든 일로 함께 아파하고 있다면 이 책이 큰 위로이자 지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2월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2018년의 독서의 허술한 기록을 마무리하는 지금이 한 해의 깔끔한 갈무리가 될 거라 믿지 않지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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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1-26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은 오래 그곳에...>는 저도 읽어 본다고 해 놓고
못 읽었네요. 저도 브랑카님과 비슷한 이유로 책 사기를
절제하고 있는데 아마도 얼마남지 않는 올해 안에 읽을 것 같지 않네요.
물론 알라딘에서 적립금 빨리 사용하라고 하고,
책이 마침 중고샵에 나온 걸 본다면 모를까.ㅎ

부모되기.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려운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죠. 제가 어렸을 때 병약했던 관계로 부모님의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거든요. 젊었을 땐 그게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저도 중년이 되고 보니 중년의 부모님은 이러셨겠구나. 저러셨겠구나.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물론 미처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남은 한 달은 후딱 지나갈 겁니다.
서서히 정리가 필요한 시기죠. 잘하셨습니다.^^

blanca 2018-11-27 04:07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남은 한 달˝이라는 말이 왜 이리 와닿죠?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또 오는 해를 맞는 기분이 묘해요. 부모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이게 순리인가 싶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참 많이 오고가요. 스텔라님 감기 조심하시고 한 해도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Nussbaum 2018-11-27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왠지 알라딘 서재가 점점, 아주 조금씩 쓸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시대는 변하는데 나는 그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blanca님 오래오래 남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blanca 2018-11-27 14:32   좋아요 0 | URL
아... 어떤 얘기인지 알아요. 저도 느끼는 바고요. 그런 생각하면 참 쓸쓸해지죠.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왠지 무언가 저만치서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요. 생각하게 멈추게 만드는 댓글 고마워요...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정리된 방에서 예정된 계획대로 예상되는 경로로 하루를 사는 것과 대척점에 서는 것만 같다. 기대는 어긋나고 예상은 나가 떨어진다. 장담했던 일들도 주장했던 나의 가치관도 때로 무색하다. 아이는 천방지축이고 때로 너무 다정하고 의도치 않게 무례해서 나를 겸연쩍게도 한다. 사과할 일도 생기고 으쓱할 날도 있다. 한마디로 예측불허의 부모로서의 삶을 살다보면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회한을 겪게 된다.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가 현재로 달려든다. 그러니 함부로 장담할 일도 도덕군자연하는 일도 이제 물건너 갔다. 

















뷰티풀 보이. 십년 전에 출간된 책이 최근 영화화된 모양이다. 표지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버지와 십대의 아들.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들은 약물 중독자다. 강력한 메타암페타민. 저자 셰프는 약물에 중독되기 전 사랑스럽고 명민했던 아들 닉과의 추억을 시작으로 연대기식으로 닉이 어떻게 약물중독에 삶 전체를 저당잡히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버지는 읽고 쓰면서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전도유망했던 닉의 삶은 반복되는 가출, 거리의 삶, 가택침입, 절도, 체포, 재활원 생활로 점철된다. 감정이 이입되다 보니 지치지도 않고 아버지와 가족들을 배신하는 닉의 모습에 차마 계속 책을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들은 아버지를 시험한다. 계속되는 거짓말, 허언들. 이번에도? 이번에는 아닐 거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나도 마치 들어오지 않는 가족의 일원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닉의 무사귀환을 고대하게 됐다. 


그럼에도 끝까지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과연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자문과 부모라는 존재가 자녀에게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천착으로까지 나아간다. 시적이고 철학적이고 숭고하기까지 한 그의 도착 지점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니 만큼 하나의 삶을 포용하고 성장시키는 부모로서의 입장은 항상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거쳐 완벽한 행복을 누리게 되거나 언제까지나 이어질 안정적인 착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도 아들 안에 남아 있는 아직 손상되지 않은 아름다운 구석을 여전히 응시하고 쓰다듬을 수 있는 아버지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결국 닉은 그런 아버지에게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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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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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이 읽고 싶으면서도 왠지 피하고 싶었었다. 이유는 몇 년 상간으로 가족들이 실제 중병에 걸려 투병하는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아픈 이야기 하나를 더 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삶의 일회성, 유한함, 상실, 넘치게 공부 중이라고 생각해서 이 이야기를 읽고 더 힘들어지거나 슬퍼지면 어쩌나 싶어 짐짓 물러섰다. 하지만 결국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저자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우울해졌나고 묻는다면 더 마음이 무거워졌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아니다.' 안타깝고 또 제발 저자가 건강하게 기자로 복직하여 더 깊이 있고 울림 있는 기사들을 써주기를 바라지만 시종일관 담담하고 간결한 그의 백혈병 투병 일기를 읽다 보니 그가 바랐던 것처럼 내 가슴에는 의미 있는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그 파문은 마냥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내 삶과 그리고 내 삶을 스쳐가는 수많은 타인들과 의미 있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밀도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가능케 한 생산적인 파문이었다.


11년 동안 방송 현장의 의욕적인 기자였던 저자는 2015년 불시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쉽지 않았던 투병의 과정을 SNS에 올리면서 이 책은 태어나게 된다. 항상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만들어내던 저자의 취재 현장은 본인이 주인공이자 관찰자가 된 의료현장으로 옮겨가게 된다. 인생의 시련은 누구나 관찰자의 시선에서 급작스럽게 당사자가 되는 그 지점에 예고없이 서게 되는 것으로부터 전개된다. 백혈병 진단으로부터 생면부지의 타인으로부터 골수이식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 재발의 이야기에서 저자의 시선은 환자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의료 시스템의 보완할 점,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에게 흔히 저지르게 되는 실수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힘듦이 남기는 유의미한 이야기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으로 나아간다. 절망 앞에서도 다시금 일어서는 어린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에 지척의 교정을 거닐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더욱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친밀감에서 이 시련을 부디 훗날 뒤돌아 볼 때 더 풍성하고 진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독하지만 불가결했던 소재로 딛고 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누워있으려고만 하는 작은 아이를 간호사의 조언대로 휠체어에 태워 몇 번이고 병원 복도를 돌며 울음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벽원 복도에 두건을 쓰고 병색이 완연한 환자들이 링거폴대를 끌면서 배회하는 것이 회복을 향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그때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것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지친 몸을 일으켜 운동에 나서는 작가의 이야기에 그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은 말로 옮겨 담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경의였다. 힘들다고 함부로 '죽고싶다'는 말을 남용하거나 조금 부정적인 소식에 '암유발'이라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뱉어내는 것에 그래서 나는 거부감이 든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폄하되고 무심코 거론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작가를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현장에 돌아와 좋은 기사를 써 주기를 성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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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옆 협탁을 정리하다 우연히 에메랄드색 예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노트는 기대보다 작아 몇 달을 쓰다 그만 둔 채 뒷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 일상의 짧은 단상이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낯설어 놀라웠다.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였다니... 무언가를 끄적거린다는 게 그리 쉽게 폄하될 일은 아닌 듯싶다. 그마저도 없다면 과거는 형체 없이 가뭇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말 그대로 주인공 알렉세이 아르세니예프가 스무 살까지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서술하는 형태의 인생의 압축이다. 묘사의 밀도가 어찌나 촘촘한지 간만에 문장이 그려내는 풍경 안에 직접 초대 받은 느낌이 황홀했다. 작가 이반 부닌이 볼셰비키 혁명에 반하여 망명한 프랑스에서 집필한 이 장편 소설에는 많은 부분 작가 본인의 인생의 경로가 투영되어 있어 쉽게 장르를 규정짓기 어려보인다. 이반 부닌은 러시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니 생각보다 우리나라에 덜 알려져 있는 셈이다. 


나는 또 아름다운 달밤을 기억한다. 달 아래 남쪽 지평선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부드럽고 밝았으며, 드높은 창공에는 보기 드문 감청색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형들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세계이며, 언젠가 우리도 그 세계로 가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이런 밤이면 아버지는 집이 아닌 창 밑의 짐마차나 마당에서 잠을 잤다. 짐마차 위에 건초가 깔리고, 건초 위에 이부자리가 깔렸다. 아버지는 유리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따스하게 잠을 이룰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이 들면서 밤새 달빛과 시골 밤과 낯익은 주변 들판과 저택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대목을 발견하면 나도 어느새 그 아름다운 달밤에 짐마차 위에서 쏟아질 것 같은 감청색 별들을 올려다 보다 까무룩 잠이 드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인식'이 깨어나는 그 순간부터 충실히 복원해 낸 중부 러시아의 몰락한 귀족가문 태생의 소년의 성장기는 그의 눈으로 관찰한 모든 것들의 장막을 뚫고 들어간 예리한 펜이 그려내는 하나의 그림, 움직이는 나날 그 자체다. 두서없이 얘기하는 것 같은 그의 삶에 일어나는 눈부신 모험, 환희, 실망, 사랑, 상실 들의 틈새마다 읽는 이들 나름대로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 단서들이 흩뿌려져 있다. 지나고 나 미처 언어로 형상화하거나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 놓지 못한 수많은 공감의 순간들이 작가의 고백으로 되살아나는 경험은 놀라운 것이다. 


나는 사람의 모든 일 가운데 '글쓰기'라고 불리는 가장 이상한 일을 위해 뭔가를 기대하고 생각해내는 생활이 아니라 예정된 일과 걱정거리로 가득찬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부러워했다.

천부적인 시인이었던 작가의 내심이 투영되어 있는 고백 같다. 전심을 다한 관찰을 통해 그것을 언어로 하나하나 옮겨 보려는 처절한 시도는 때로 화자를 지치게 한다. 재능은 때로 천형이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관찰의 대상이 되는 그들 삶의 일상성에 부러움을 표시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작가가 가져야 하는 태도와 책임에 대하여 각성시키는 부분이다. "써야만 한다!"는 강박은 그가 러시아 민중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들로 끊임없이 돌아오게 한다. 몰락한 집안, 실패한 사랑의 개인적인 삶과 그가 응시하는 조국 러시아의 모습을 끊임없이 왕복하는 이야기는 지루할 새가 없다. 


작가는 이따금씩 이미 늙어버려 조국을 떠난 자신의 현재를 상기시킨다. 그러고 보면 독자는 이 젊은이의 이야기가 노작가 자신의 고백인 건가 싶은 혼란스러움으로 어리둥절하게 된다. 진실은 어디까지인가,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은 감각의 향연들이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재의 언어와 만날 때 비로소 듣게 되는 삶의 지도는 그 누구의 것이든 뭉클하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을 다시 사는 듯한 환각이 결국 현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거리의 탐지 속에서 아득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까운 이야기. 이반 부닌의 이야기를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짧게라도 매일의 단상과 인상을 챙겨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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