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서재에서 밝혔던 것 같은데 나는 올리버 색스의 열혈 팬이다.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고, 심지어 그의 연인 빌 헤이스의 책까지 다 찾아 읽었다. 올리버 색스의 부모는 모두 의사고 집안의 사돈의 팔촌까지 의사가 하도 많아서 그가 영국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이름이 뭐냐 물어서 "올리버 색스"라고 이야기하자 대번에 "아, 그 의사들 많은 집안."이라고까지 얘기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미남에 키도 크고 신경과 의사에 뛰어난 필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샀다. 그런 그가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고 장기간 싱글로 보내는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눈이 높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실제 성적 지향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죽기 몇 년 전에야 세상을 향해 커밍아웃을 했고 그건 그의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귄 연인 빌 헤이스에 기댄 바가 크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의 진지한 연애는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오랜 시간 함구했고 억눌렀다. 비교적 동성애에 관대하고 열린 곳이라 여겨지는 서구권에서도 그런 고백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그의 커밍아웃은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이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의사 어머니의 반응은 대단히 차가웠다. 심지어,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돼."라고 아들에게 말함으로써 아들이 거의 육십 년 동안 자신의 성정체성을 억압하고 사랑을 포기하게까지 한다. 이 말은 얼마나 사무쳤던지 올리버 색스 노년까지 맴돌았다.


내가 감히 성소수자의 어려움과 소외감에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올리버 색스에 기댄 바가 크다. 백인 남성, 의사, 영국인, 저명한 작가의 타이틀을 가지고도 고백할 수 없었던 자신의 진짜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그 힘겨움이 전해져 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외모, 인종, 성별, 직업, 학벌 등 여러 차별과 서열화의 위계가 작동한다. 모든 기준을 충족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누구나 차별 받고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역이 있다. 심지어 여러 부분에서 다층적인 측면에서 약자로 소외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노출하는 데에는 대단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 존재성을 노출하는 데에는 그럼에도 사랑받고 지지 받을 거라는 무한 긍정의 믿음이 필요하고 그건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서열화 본능, 주류에 대한 집착성을 생각한다면 그런 사회가 단기간에 올 것같진 않다.



















"우리 가족은 완전 엉터리였다." 앨리슨 백델의 가족의 남에게 드러난 정상성을 교묘하게 비틀어 고백하는 은밀한 서사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우아한 영어 교사이자 조부 때부터 소유해온 장례식장의 상속자인 아버지, 배우인 어머니들과 두 명의 남동생들. 겉으로 봐서는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아니, 오히려 저마다 예술적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가족이다. 어느 누구 하나 약물 중독자도 지속적인 폭력도 일탈도 없다. 


앨리슨의 대학 시절,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은 사고사 같기도 하고 자살 같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그 이전의 이 가족의 진짜를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나름대로 애도하는 과정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어머니는 이혼을 청구했고 앨리슨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한다. 그러나 이 두 일격은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타격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게이였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아내는 눈치챘다.) 이성애자인 것처럼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은 것이다. 그가 지향했던 그 모든 우아함, 예술, 문학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세상에 드러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의 뒤안길에 대한 강박적인 보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앨리슨은 어린 시절 그리 가깝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딸에게 거의 무관심했고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딸이 성장하며 이 부녀는 놀라운 교감의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아버지는 앨리슨이 남성적인 것에 경도되는 것과 자신이 여성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위대한 개츠비>, <율리시즈>를 현실에 데려와 딸과 만나며 소통한다. 문학의 텍스트를 통해 부녀는 겉으로 차마 드러내어 놓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고백하고 경청하고 공감한다. 그건 다른 형태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앨리슨은 갑자기 막 웃었지만...(이 대목은 그림을 꼭 같이 봐야 하고 죽음에 대해 일반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앨리슨 형제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가족 안에서는 흔히들 치유와 위로와 격려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내가 진정한 내가 되기 가장 어려운 공간일지도 모른다. 거리가 가깝기에 우리는 쉽게 심판하고 단죄한다. 그 사람이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 분노하고 정상성의 공간으로 억지로 몰아넣는게 때로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때로 "가족 희비극"을 연출하게 된다. 사랑은 그렇게 거짓말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결국 세상에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위한 부모의 욕망을 자녀들에게 투사, 투영한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틈새에서 우리는 때로 영혼을 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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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06 1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블랑카님의 찐 팬심(?)과 흠모의 마음에는 비하기 어렵겠지만, 제게도 활자로 느꼈던 가장 매력덩어리인 인간 개체가 올리버 색스였던지라 이 글 넘 좋아요.
올리버 색스를 백델의 자전적 그래픽노블과 엮어 써주시다니,와우~^^ 연결이 되네요. 생각 못해봤는데..

올리버 색스가, 커밍하던 날 어머니의 반응이 깊고 깊은 내상을 아들에게 입혔던 것 같아요....앨리슨의 아버지는 솔직히, 호감 들지 않더라고요. 가족을 너무 힘들게 해서

blanca 2022-10-06 13:58   좋아요 1 | URL
앨리슨 아버지는 정말 제가 이때까지 봤던 모든 픽션의 캐릭터들을 다 떠올려봐도 능가할 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특이한 캐릭터인 것 같아요. 나쁜 것 같은데 또 나쁘지만은 않은, 그렇다고 좋은 아빠라기엔 너무 결격 사유가 많은...올리버 색스가 커밍 아웃하는 대목은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지금 나는 무척 떨린다, 아마 제 기억으로 이렇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정말 용기를 막 그러모은 느낌.

coolcat329 2022-10-06 1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도 앨리슨 백델의 책 모두 읽어보고 싶네요. 가족...‘진정한 내가 되기 가장 어려운 공간‘ 너무 공감이 갑니다.

blanca 2022-10-06 13:59   좋아요 1 | URL
가족이란...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가족만의 특수한 폐쇄성이 그 가족만의 아늑한 안식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어마무시한 위협의 공간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책읽는나무 2022-10-06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의 <온더무브> 앞부분 조금 읽다 중단했었는데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앨리슨 백델의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아 둔지가 오래구요...^^

blanca 2022-10-06 14:00   좋아요 2 | URL
<온더부므> 꼭 다 읽어 보세요. 저는 정말 마지막 장 덮고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감동이 몰려오더라고요. 올리버 색스가 정말 작심하고 자기 인생을 언어로 적나라하게 형상화하기로 결심하고 만든 고백서 같았어요. 약물 중독 경험도 정말 놀랐어요. 누구나 자기 인생을 미화하고 합리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그걸 뛰어넘었더라고요.

다락방 2022-10-06 14:36   좋아요 1 | URL
저 올리버 색스 아내 모자.. 그 책만 사두고 안읽었는데 온더무브 읽어봐야겠어요.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