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과 가벼움이 조화를 이루기란, 몸매는 섹시하고 얼굴은 청순하며 지적인 여성을 앞에 두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곤란하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잡탕의 미학을 실현한 작가를 결국 너무 늦지 않게 만나고야 말았다. 깔깔대고는 웃다가 지나치게 야한 장면에서는 괜히 응큼하게 심호흡을 해보다가 결국 질질 짜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당혹감이란. 독자를 이렇게 무장해제시키고 괜히 민망해서 얼굴을 쓰다듬게 만드는 작가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최후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끝을 맺자 온 밤이 질퍽해졌고...  p.135

유물론자가 뭐요? 코스메가 입게 거품을 물고 말했다.
"장미와 통닭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때 항상 통닭을 집는 사람이죠." p.103  

그 순간 잔잔하던 바다에 반짝이는 고기 떼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달이
마리오를 환하게 비추었다. 베아트리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순간 '영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p.91

검은 물이 바다를 바라보는 네루다의 집과.  역시 물로 화해 버린 유리창 너머로 지금 떠오르는 물의 집과, 사물의 집이었던
시인의 눈과, 말의 집이었던 시인의 입술을 복되게 적시고 있었다. p.157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인 이 작품은 칠레의 작은 어촌에 있는 단출한 우체국에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받을 편지만을 배달하게 된 한 젊은 집배원이 사랑에 빠지고 시를 알아가고 마침내 시인이 투신한 사회적 가치에 발을 담그게 되는 얘기다. 새벽이 다하고 포도주가 바닥날 때까지 휘어 감고 탱고를 추고픈 허리의 소녀에게 대시인의 훈수를 받아 사랑의 작전을 펴나가는 청년의 무모한 열정과 그 열정을 적절하게 밀고 당기며 세상을 보는 프리즘에 대어 주는 시인의 사랑스러운 노련함은 작가의 재기발랄하고 걸쭉한 입담으로 투명하고 끈적끈적하고 반짝거린다.  

실제 노벨 문학상을 받고 칠레의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파블로 네루다에게 바치는 오마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이 작품은 잡탕의 미학을 실현한 것으로 자평했던 작가의 익살스런 눈으로 또다른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비틀즈의 <우체부>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노시인의 모습을 묘사한 풍경은 절경이다. 문자 텍스트로 영상의 애드벌룬을 띄우는 비법을 작가에게 전수받고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들은 살아서 꿈틀대며 냄새를, 소리를, 이미지를 뿜어낸다. 그러니 인내심을 손톱 만큼도 발휘하지 않아도 이 소설은 무난하게 읽어내려 가게 된다.  

집배원 마리오가 프랑스의 대사로 떠난 네루다를 위하여 바람에 울리는 작은 종들의 소리부터 사랑의 결실이 태어나는 소리까지 작은 포구 마을의 모든 소리를 세심하게 녹음하는 장면의 서정적 아름다움과 군부 쿠데타로 감금되다시피 한 노시인의 죽음을 지키는 장면의 처절한 진지함은 안토니오 스메르타가 실현한 문학적 성취를 방증한다. 결국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눈물을 닦으며 문을 닫고 나오게 만든다.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라며 세상 모든 사물을 메타포로 이해하는 그 거대한 은유의 미학까지 넌지시 찔러 준 후 결국은 인간의 잔인한 권력욕에 스러지고 마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농밀한 응시까지를 체험하게 되면 또다른 그의 작품을 찾아 헤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지구별 볕뉘에서 몸을 데우는 소외된 자들이 꿈을 꾸고 마침내 이루었다 생각하고 그러다 스러져 가는 이야기이다. 감옥에서 사면되어 나온 미소년 좀도둑이 삼류 극장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발레를 사랑하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꿈의 실현을 몰래 기획하고 조력하고 또 함께 출소한 소위 기품있는 대도인 베르가라 그레이와 멋지게 한탕하고 '한탕은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는데 대체 난 왜 죽는 거지?' 자문하며 죽어가는 얘기다.^^ 

신파적 요소와 누와르적 분위기가 물씬한 이 소설의 특별한 지점은 시원하고 드넓은 태평양을 지척에 두고도 스모그에 둘러싸여 득시글거리는 가낭뱅이들과 독재에 반대하다 머리를 잘린 아빠를 둔 소녀의 절망과 독재시절 기업가들로부터 받은 검은돈을 금고에 보관하고 떵떵거리는 파렴치한 인간에 대한 분노가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고도 정작 소외된 이들의 체념과 맞물려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르메타는 언제나 진지하고자 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이 텍스트의 빗장을 열고 사회적 현안을 치열하게 응시하고 비판하고자 하는 책임감을 등에 지고 다니는 것 같다. 이런 그의 윤리의식은 그의 이야기를 지루하고 건조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되레 생동감 있고 적당히 달콤한 슬픔의 독특한 기류를 흐르게 한다. 

마지막 젊은 앙헬과 나이 든 베르가라가 금고의 돈을 터는 장면에서 등장한 레이먼드 카버의 <노란 장미 세 송이>의 체호프의 임종을 그린 작품에 대하여 주고받는 얘기들은 부조화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잔상이 남는다. 인생이란 마치 이런 것이라는 듯한. 또 예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한. 도둑질하며 위대한 체호프를 연호하고 죽으며 난 잘했는데 왜 죽는 거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 지구별에 대한 시원한 조망이 가능한 그런 얘기다. 

지구는 수많은 행성들 사이에서 저만의 꿈을 꾸며 자전하는 미친, 그러나 다정한 별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지나치는 것들 하나하나는 모두 위대하고 바꿀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p.449 

자전하는 미친, 그러나 다정한 별에서 이런 작가의 얘기를 듣는 행복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는 독자를 존중하고 추어줄 줄 아는 정말 드문 작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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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눈으로 읽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감상이 흘러나오나 봅니다.
내 블랑카님의 눈을 직접 봐야겠어!

blanca 2010-07-25 16:26   좋아요 0 | URL
마기님~그 날 너무 실망마세용 ㅋㅋㅋ

굿바이 2010-07-25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작!!!!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작정하지 않아도 작가의 호흡과 리듬을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쿵쾅쿵쾅거리다 털썩 주저앉게 하는 이 책은 살덩어리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제 책장에 꽂혀 있었던 것을 잊고 있었는데, 너무 반가워요~^^

blanca 2010-07-25 16:27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읽으셨군요. 살덩어리로 태어나다, 이 표현 넘 와닿습니다. 정말 흥겨운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굿바이님과 그 느낌을 공유하게 되어 기뻐요^^

비로그인 2010-07-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글이 마치 잘 짜여진 광주리 같아 너무 좋습니다.

시적 은유, 삶이 가져다 주는 또 다른 의미의 선물인 아이러니.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나봅니다.

더 많이, 보았던 것을 다시 보게 하는 시선, 오늘 아침을 풍요롭게 하는 생각들. 오늘은 이런것들을 담아 갑니다.

blanca 2010-07-25 16:2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안그래도 저 오늘 이쁜 담양 광주리 사가지고 들어왔어요^^;; 감사합니다. 이 책 한 번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바람결님도 분명 아주 좋아하실 것 같아요. 참, 그런데 혹시 유진 프리즌이란는 첼로리스트 아세요? 뉴에이지로 가긴 한 것 같은데...완전 뜬금없는 댓글들이지요^^;;

비로그인 2010-07-25 19:39   좋아요 0 | URL
네 꼭 말씀처럼 잊지 않고 다시, 전해주신 얘기생각하면서.. 깊게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진 프리즌.. 지금 검색해서 그의 곡 하나 듣고 왔습니다.
퍽이나 짧아진 여름 저녁만큼 아련하니 좋네요. 오늘은 이곳 저곳에서 첼로 소리나 많이 나는 날이네요.

주말 잘 마감하세요 ^^

후애(厚愛) 2010-07-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캡쳐 이벤트>하는데 참여하세요~ ^^
알라딘 마을에 소문내고 다녔더니 부끄럽고 재밌고.. ㅎㅎㅎ

blanca 2010-07-25 16:28   좋아요 0 | URL
옙! 후애님 갈게요. ^^

순오기 2010-07-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하는 미친, 그러나 다정한 별... 제목만 보곤 뭔가 했어요.^^
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멋진 글로 풀어내는 걸 보면 정말 감동스러워요!

blanca 2010-07-26 21:3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리뷰 읽고 구입한 겁니다. 순오기님이 좋다고 한다면 그건 확실하다 싶어서요.^^ 고마워요. 이 책을 읽게 해주셔서....

마녀고양이 2010-07-25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일 포스티노가 그리 좋다면서요... 아직도 못 봤어요.

진지함과 가벼움의 조화,,, 블랑카님. 양파처럼 그렇게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 되고픈 생각을 해여.
항상 "저건 양파다...." 하고 알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면서도, 또한 다이내믹하고픈 맘은 너무 큰 욕심일까요?

blanca 2010-07-26 21:33   좋아요 0 | URL
마녀 고양이님, 양파 같은 사람. 진짜 매력적이에요. 마녀 고양이님 양파 같은 여인 아니었어요? 이미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중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원하긴 했었지만 막상 '이천'이라는 도시로 직장 발령이 나자 문득 아연해졌었다. 스물 아홉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었다. 두렵고 답답하고 돌아나오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이천 집으로 퇴근하며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가슴은 두망망이질치고 버스는 종점으로 종점으로 저무는 해와 언제까지나 어디에나 가버릴 듯 털털거리고 또 털털거리며 가고 있었다. 

이윽고 종점. 승객은 나혼자. 울어버리고 싶었다. 스물 아홉의 여자가 집에 못 가 울어버리면 기사는 집에 데려다 줄 것인가. 나의 집 주소를 읊었다. 바보처럼. 기사는 걱정스레이 나를 시내까지 데려다 주고 거기에서 집에 가는 방법을 신신당부했다.  

타박 타박. 그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년. 나는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이천에 있었는데, 이천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며 마치 그곳이 나의 고향이었던 듯 되뇌인다. 

나는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종족이었다. 연고도 없는 타향에서 이 년을 묵으며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스레이 그 타향에 녹아 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조금은 고민했었다고 한다면 가소롭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으로 출발하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나 그곳이 고향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자만하게 되는 그 허수룩한 몽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 시점 나는 새로운 곳에 낯선 이로 섞여 들어가 하나의 삶을 튼다는 것이 가지는 매혹에 매료되게 된다. 

 

하물며 마흔이 넘은 동양 여자가 스웨덴의 웁살라라는 중세의 흔적이 떠도는 도시에 역사학 석사 과정에 들어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터키, 미국, 스웨덴에서 온 나어린 이방인들과 투닥거리고 어울리고 이해하고 오해하고 눈물흘리는 얘기는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얼마나 다이나믹할 것인가. 

이 책은 스웨덴 그 자체에 대한 감상과 이해도 뭉근하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젊은이들이 서로의 시선을 맞추고 때로는 가치관을 조율하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공감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인상깊고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이방인과 이방인이 각자 자신의 민족과 국경의 그 허구적이고 공고한 철책을 들어 깨고 교감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과장되어 있지도 않고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않게 딱 그 만큼 적절한 수준의 감정의 파고를 유지하며 나아가고 있다. 무조건 친해지고 무조건 이해하고 위아더 월드를 외치는 소설적 허구 대신 인간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대의 기대치의 어긋남 뒤에 한시적인 화해, 때로는 끝까지 어긋나 평행선을 긋는 관계 등으로 담담함을 끝까지 간직한 그녀의 관계들은 되레 '너를 알고 있다',가 아닌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진지함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강조되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스웨덴에서 만나는 수많은 프레이야의 딸들의 아름답고 당당하고 오히려 성적 정체성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전환적 계기를 맞는다. 한국인이자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녀는 평등을 자유와 같이 가지고 가기 위해 가진 것들을 기꺼이 양보할 줄 아는 그들의 간소함과 품위에 매료된다. 극빈자도 최상의 부자도 없는 사회 시스템은 그들을 사회민주주의의 정체성으로 자본과 노동의 화해를 주선하게 되는 것이다. 극도의 개인주의적인 문화일 것 같은 그곳이 기실은 가장 타자들을 의식하고 배려한 체제라는 것은 역설 같으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본적인 안녕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알기 위해 떠난 곳에서 내가 누구인가, 또 그것을 묻기 위해 네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함을 알고 귀환하는 그녀의 모습이 간소하고 품위있어 보였다.  

가수 이상은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 매력 때문이라고 얘기하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 모습이 TV에 흐른다. 여행의 순간에는 자기 자신보다 더 강해진다는 정혜윤의 말은 이런 면에서 겹친다. 항상 '너'와 '그것'에 치이다 갑자기 '나'를 응시하게 되는 그 기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선물받는다. 나에 대한 질문이 난무하는 그 새로운 곳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러니 모든 곳을 타향으로 느끼는 사람은 완벽한 존재의 꿈을 꿀 수 있다. 땅에서 발을 살짝 들어 도약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아름답고 견고하게 착지하는 법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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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버스 아저씨는 물었지, 집이 어디냐고 -
    from 아, 여름, 외계인 살려 - 2010-07-17 18:28 
            【기억 재생기】 다시 보고 싶은 20세기        1996년경, 봄과 여름 사이           마음 잡고 공부 좀 하겠다고, 친구와 공부방에서 공부를 한 후 늦은 밤, 글쎄 11시가 넘었을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
 
 
잉크냄새 2010-07-1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천,,,전 스물 일곱에 들어가 서른 여덟에 그곳을 떠나왔군요.
제가 경험한 여행은 그 여행의 과정에는 제가 없는듯 했어요. 무엇을 찾고 무엇을 버려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어느 순간 사라지더군요.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그 길을 다시 돌아오는 어느 언저리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stella.K 2010-07-17 21:36   좋아요 0 | URL
헉, 잉크냄새님 그럼 지금 나이가...?!
사실은 그럴 줄 알았어요.ㅋ
이천 사신다는 건 서재질 초기에 알았지만 결국 떠나셨군요.
언제 떠나셨나요?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시고
여행을 떠나셨던 그때...?

blanca 2010-07-17 22:05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그러면 어쩌면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온데를 다 휘젓고 다녔었는데요 ㅋㅋㅋ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더 드신 것 같기는 하네요^^ 아, 여행하면 잉크냄새님한테 얘기를 들어야지요. 지금도 여행중이신가요. 여행의 과정에서 강박을 버려야 한다는 것! 예...그 경지까지 가봐야 겠습니다. 아직은 저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다 기억하고 다 기록하고 새로운 것을 얻어가겠다는...그것도 욕심이 되겠지요.

L.SHIN 2010-07-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의 이야기가 좋아져 버려서, 성급한 마음에 추천부터 누르고 이 좋은 글을 다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댓글을 쓰고 있습니다.(웃음)
덕분에 흐믓한 기억이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기억 재생기]를 하나 돌리기로 했습니다.^^

blanca 2010-07-17 22:07   좋아요 0 | URL
엘신님, 읽고 왔어요^^ 엘신님이 그렇게 수줍어하시는 부분이^^ 저는 고맙다,를 좀 남발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그것도 과히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울 때 나의 고맙다,는 말이 가볍게 치부되니까요.

stella.K 2010-07-1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아무래도 저를 위한 책 같기도 하네요.
저는 어쩌면 그리도 집 떠나 모든 곳을 타향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인지...
지금은 앞으로 얼마간은 내 집이란 거 두지 않고 여기 저기 조금씩 살아보다가
60 넘으면 다시 안착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blanca 2010-07-17 22:0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는 요새 왜이리 붙박이에 집착하는지 다 늙어버린 것 같이 그래요. 어디서든 언제든 떠나고 적응하고 즐겁게 그렇게 살아야 할텐데...점점 새로운 곳을 더 피하게 되고. 이러면 안되겠죠...

stella.K 2010-07-18 14:31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러고 살았다는 거 아닙니까?
달도 차면 기운다나 뭐라나...
이젠 좀 떠돌이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 한 번 사는 건데 세상은 저렇게 넓구요...^^

다락방 2010-07-1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개인적인 경험담과 맞물려 진 책에 대한 이야기라니. 책에 대한 흥미가 확 일어나는데요. 보관함에 넣어두고 갑니다. 글 좋아요, blanca님.

blanca 2010-07-18 21:5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글 좋아요, blanca님이라는 댓글이 왜이리 기분이 좋으면서 다락방님의 말투가 상상이 갈까요? ㅋㅋㅋ 이런 말투 너무 특이하고 좋아요^^

꿈꾸는섬 2010-07-18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글은 늘 좋네요.^^

blanca 2010-07-18 21:5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늘'이라는 말이 이렇게 소중하게 들리다니. 고맙습니다.^^

하이드 2010-07-18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천에는 미란다 호텔 온천이 좋고, 쌀이 맛있으며, 도자기 굽는 곳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외가가 거기에 있어서, 발걸음 한지는 오래되었지만, 어린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박혀 있는 곳이에요.

주말마다 가는 강기사를 보자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blanca 2010-07-18 21:53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외가가 그쪽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미란다 주민 할인이 20프로인가 되서 거의 공중 목욕탕 가듯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금요일 퇴근하고 노천탕에서 하늘 보며 좋아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테르메덴이 생겨서 인기가 덜해지긴 했지요. 하이드님 외가가 이천에, 또 원래는 사당동에 살았던 거. 이래저래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참 신기해요.

후애(厚愛) 2010-07-19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 잘 쓰세요. 너무 부러워요.^^

blanca 2010-07-19 14:14   좋아요 0 | URL
후애님~ 한국 오신다니 괜히 막 제가 다 설레어요. 감사합니다.^^

마녀고양이 2010-07-2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카모메 식당>이 떠오르네요... 너무 더워여.
책 표지의 여자를 보니, 어딘가 길바닥에서 여유롭게 헤매는 "나"를 떠올리게 되어 여행이 더욱 그립네요.
아흐흐.........

blanca 2010-07-20 16:28   좋아요 0 | URL
마녀 고양이님, 저는 지금 또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읽으며 흐억 하고 있어요. 궁둥이에 날개 달았어요. 돈은 없고 아이는 있고 떠나고만 싶고 ㅋㅋㅋ카모메 식당! 아, 맞아요. 표지랑 그 영화랑 분위기가 참 비슷하네요.

비로그인 2010-07-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타향에 대한 동경이...타향에 대한 향수로...
난 그럴 때가 있더라구요.
그니까~~타향이 고향같은 뭐 그런 역설적인...
말이 안되는 소릴 아침부터 지저귀는 마기는 지금 수면부족으로 정신이 아득한 상태입니다.
이해바람!

blanca 2010-07-20 16:30   좋아요 0 | URL
마기님! 요즘 마기님 시랑 짧은 글귀 보고는 정말 시인 같다, 하며 감탄중입니다. 타인에 대한 향수. 맞아요. 맞아요...그런 것도 있어요^^

2010-07-20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7-21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참 힘들지요~
어디든 마음을 열면 녹아들어갈 수 있게 되더라는...
나를 만나는 여행을 꿈꾸지만 훌쩍 떠나는 게 쉽지 않지요, 더구나 엄마라면요.ㅜㅜ

blanca 2010-07-21 09:3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혹시 전라도는 고향이세요? 저는 요새 이곳에 관심이 많아요^^

순오기 2010-07-21 19:38   좋아요 0 | URL
94년 대선이든가~ 그때 호남인의 정서라는 걸 눈물겹게 동감한 후로
광주는 이제 내 고향이나 다름 없지요.^^
충남 당진에서 15년, 인천에서 15년, 그리고 광주에서 20년이 넘었지요.

blanca 2010-07-21 21:35   좋아요 0 | URL
아아. 순오기님이 당진, 인천에서도 그렇게 오래 사셨군요. 순오기님..꼭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노을을 봤어. 정말 감동적이더라... 

나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던 그 사람은 스페인을 가보고 싶어했던 나에게 이렇게 알함브라의 인상을 전해주었다. 거진 십 년이 흘렀나 보다. 나는 여전히 가보지 못한 알함브라 궁전의 낙조를 꿈꾼다. 

나에게 스페인은 눈물이다. 대학시절 힘겨운 시간들, 단짝친구와 스페인에 가는 꿈을 얘기하며 버티곤 했다. 왜 하필 스페인이었냐고 묻는다면, 우연히 제2외국어로 택한 그 언어에 대한 마력과 그냥 듣는 것만으로 가슴결에 물방울을 퉁기는 것같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대한 막연한 이끌림이었다고밖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생살을 나눈 것 같이,가슴을 꺼내 펼쳐 서로 보여준 것 같이 교감했던 나와 절친은 이제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걷는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스페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드문 드문 안부 전화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의 꿈은 각자의 길로 나뉘어 날아가 버렸다. 당연히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고 꿈꾸었던 알함브라 궁전행은 아마도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으로 아니면 그마저도 아득히 먼 곳으로 밀려가고 말았다. 

노을빛으로 물든 조용한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광장에는 오후 무렵이면 거대한 토파즈로 변하는 금빛 성당이 있다. 고성에 올라 밤의 전주곡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쓸쓸한 들판을 바라본다. 저 안쪽 언덕 위에는 누군가가 피워 놓은 빨간 모닥불이 희미하게 떨리고, 들판 위로 노란빛을 띤 꽃가루가 하늘거리며 날아다닌다. 도시는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고 교회에서는 저녁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시는 꿈결 같은 분위기에 젖어든다...... 밤이 서서히 세상 위로 내려 앉는다. 소나무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망루에 둥지를 튼 황새들은 종루 위로 날아오른다...... 곧 달이 뜨면 온 세상이 은빛으로 물들어 가리라.
-p.24 

스페인의 여정에는 이 책을 반드시 가지고 갈 것이다. 로르카. 우리는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이어야 한다고, 모든 것을 보고 또 모든 것을 느껴야 한다고 목소리를 돋구었던 이 시인의 기행문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독자들의 몸에 화인처럼 눌러 넣는다. 죽어 있는 문자들은 시인의 초혼에 응답하여 이윽고 일어나 뚜벅뚜벅 책장을 걸어 나온다. 스페인 남부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지방을 스승과 함께 여행한 대학생의 여정에 우리들은 무임승차하여 그가 불러주는 노래와 그가 그려주는 그림과 그가 읊어대는 시에 혼곤하게 취하고 만다. 문장 하나 하나를 자꾸 돌아가 되짚게 된다. 너무 예뻐서 너무 아까워서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 보고 어루만지게 된다.  

해가 뜨자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던 고요한 새벽하늘에 찬란한 빛이 퍼져 나가 알함브라의 오래된 탑들이 빨간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상처 입은 듯 벌걿게 물들어 가고, 그늘진 곳은 초록빛으로 화사하게 반짝거린다.
-p.136 

시인이 붙잡아 펼쳐 준 알함브라의 여명은 그것의 낙조만큼이나 매혹적이다. 그가 돌올하게 서는 지점은 빨간 별처럼 빛나는 알함브라의 뒤에서 상처 입은 듯 벌겋게 물들어 가는 하얀 집들에 대한 응시다. 상처 입은 듯 벌겋게. 유럽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의 찬연한 번영이 처절하게 이지러져 가는 지점에서의 그라나다에 대한 그의 묘사는 흘러가는 풍경을 우리의 몸에 심고 그 속에서 스러져간 생명들을 추모하는 하나의 경건한 제례같다. 

그의 풍경에는 눈물 흘리는 소리가, 빛깔을 계속해서 갈아 입는 슬픔이 뭉근하게 배어 있다. 시간이 훑고 지나가 그 무자비한 권력으로 모두 황폐하시키고야 말 그 유한한 아름다움을 더듬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하나의 삶의 은유 같다.  우리는 다 어쩔 수 없는, 어쩌지 못하는 것들을 더듬더듬거리며 삶을 살아 나가지 않는가.

그리스도교라 불리는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가엾은 이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선을 알리고 평화를 전해야 한다.
-p.44 

로르카! 그는 자신의 글을 몸소 풍경으로 구현한다. 반파시스트 운동을 하다 고향 그라나다에서 프랑코 정권의 극우 민족주의자에 의하여 사살되어 서른 여덟의 청년의 모습으로 영원히 정지하게 된다. 그의 풍경은. 그리고 나의 인상은. 

이 책을 가지고 알함브라로 가는 그 날 아마도 마침표를 찍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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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르카.

알함브라. 두 기억을 갖고 읽고, 음악 한 곡 남겨 두고 갑니다 :D


blanca 2010-07-11 09:59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이 제 페이퍼를 완성시켜 주시네요^^ 이 책도 바람결님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거 기타로 연주하실 수 있으세요? 생각보다 쉽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저도 이거 때문에 클래식 기타를 배워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0-07-11 10:3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대학 고전기타동호회 할적에 왜 기타 많이 배워 두지 않았나 하는건데요.
당시에 선배들이 기타 하나 안치고 맨날 딴짓하는 저를 참 고맙게도 잘 받아 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함브라.. 이게 저 트레몰로를 정확하게 치려면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압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 기억으로는 카르카시 교본(?)에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기타를 제일 잘 치는 사람들도 겨우 연주하곤 했었으니 말이죠..

클래식기타 저도 언젠가는 꼭 배우고 말겁니다. ^^

느린산책 2010-07-10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에게 알함브라는 첫번째 로망이거든요.
알함브라 라는 단어만 나와도 무조건 구입입니다~ ㅎㅎ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도 아주 환상적이었답니당^^

blanca 2010-07-11 10:00   좋아요 0 | URL
가슴뭉클님, 어빙의 <알함브라>를 찾아 보았는데 분량이 만만치가 않네요^^;; 이 작가 덕분에 지금의 알함브라궁이 복원될 수 있었다니 꼭 한 번 용기를 내보아야겠습니다. 가슴뭉클님 덕분에 어빙의 알함브라를 읽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0-07-1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권해주시는 책은 모두 품격이 느껴져요.
이 책도 당장 보관함에 담아가요^^
스페인!! 저도 정말이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에요.

blanca 2010-07-11 10:0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 책은 바람결님 서재에 갔다가 알게 되었어요. 프레이야님도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정말 한 줄 한 줄 줄그으며 읽에 되더라구요. 시인이 쓴 산문이 참 매혹적인 것 같아요. 번역의 한계를 넘어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어요.

2010-07-11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1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7-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눈에 화악 그려지는 리뷰예요~. 저는 대학생 때 그리스 섬나라의 일곱 빛깔 바다를 그리 보고파 했습니다. 언젠가는 이루고 싶어요... 그런 꿈을 가진다는 건 참 좋아요~ 살고 싶게 하잖아요.

블랑카님,, 신랑들이 해외 여행을 내내 거부하면 우리 둘이 홀랑 떠날까요? ^^

blanca 2010-07-11 10:0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그리스 산토리니의 그 하얀 마을! 포카리 스웨트! 맞아요. 저, 거기도 꼭 가보고 싶어요. 어딜 가고 싶다고 꿈꾸는 것 참 좋은 것 같아요. 진짜 마녀 고양이님이랑 여행 떠날 날이 올 수도 있을까요?^^

stillyours 2010-07-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천천히, 정성들여 읽었어요.
늘 그렇듯:)
그러고 나서 바람결님이 올리신 음악을 재생시키고 또 한 번 읽었답니다.
아직은 고요한 일요일 아침.
두 분 덕에 여행지에서 눈뜬 아침 같아요.

blanca 2010-07-12 12:32   좋아요 0 | URL
moon님, 감사합니다. 답글이 늦었습니다. 제 글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성들여 읽어주신다니 기분이 참 좋네요.

비로그인 2010-07-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근래 읽은 가장 멋진 리뷰였어요, blanca님. ^^ 책 표지도 근사하군요. 여행서보다 이런 책 한권이, 보는 것보다 느끼는 여행을 만들어 주겠지요. 꿍하니 앉아서 일을 하다가, 저도 문득 스페인 남부의 거칠고도 고풍스러운 풍광을 그려봅니다..

blanca 2010-07-12 12:34   좋아요 0 | URL
Manci님, 어제 안그래도 커피숍에 갔다 옆에 아가씨가 여행 서적들 좌악 펼쳐놓고 행복해하며 읽는 모습 보니 또 부럽더군요. 그녀는 벨기에 관련 책들을 보는 것 같던데..

여행은 삶의 쉼표 같은 것 같아요. 한 번 갔다 오면 정말 마음에 시원한 바람 하나를 품고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 Manci님 토지도 완독도 아주 멋진 여행을 갔다 오신 것과 같은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부러워할게요.^^

穀雨(곡우) 2010-07-1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잠시 스페인어를 배웠어요. 영어보다 훨씬 쉽다는 선배의 꼬임에 빠져 언어는 뒷전이고 스페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지요. 음...aqui llueve mucho.(여기는 비가 많이 왔어요.^^) como estas? (어떠세요?)
기억이 전혀 안나네요. 그때 배운 허접 스페인어로 제아이디 중 대표는 항상 siempre로 쓴다는...^^
블랑카님, 스페인, 알함브라궁전에 가시길 바랍니다. 리뷰가 바람처럼 마음을 내어 모네요. 쵝오..

blanca 2010-07-12 21:23   좋아요 0 | URL
곡우님, 우아, 여기는 비가 많이 왔어요,라를 기억하신다니 대단하세요. 저는 기억이 안나는데요^^;; 그렇죠. 정말 매력적이고 공부하는 만큼 앞으로 쭉쭉 나가는 맛이 있는, 제대로 구사해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방학때 스터디도 해보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곡우님, 그렇죠. 이렇게 말로 뱉어 놓으면 꼭 이루어지더라구요. 그걸 노리기도 한거같구요^^

잉크냄새 2010-07-1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궁전이 클래식 기타 선율로 유명한 그 궁전이군요.
세상은 발디디고 싶은 곳이 넘쳐나는군요.

blanca 2010-07-13 16:48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의 여정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어젯밤에 가수 이상은이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얘기가 참 와닿더라구요.
 

찰랑이는 20미터의 인공호수 한가운데에 빛의 십자가는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 십자가를 응시하며 결혼서약을 맺을 신랑 신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종교적 의미에서라면 그 십자가에는 젊은 예수가 지상의 인간들의 대속을 위하여 그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지점이었다. 그 지점에서 다시 지상의 인간들은 유한의 존재에게서 무한의 가치를 기대하며 서로에게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개구리들의 악머구리 끓듯 울어대는 절창들이 약간은 음산한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다.  



인공호수, 십자가, 그리고 신자석, 통로를 밝혀주는 촛불. 건축가 안도 다타오가
이것들을 통하여 말하고 싶어했을 것들과, 정작 우리가, 내가 느끼고 받아들였을 감흥들은
영원히 비껴갈지도 모른다.  종교적인 신성의 대목일 수도 있겠고, 삶과 인간에 대한 냉연한
관조나 응시일런지도 모른다. 자연과 인간의 삶과 인공물의 순간적인 조응을 얘기하고 싶어했을 수도 있을까.

저 십자가 위에서는 가장 장엄하고 비극적인 몰락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 몰락의 지점에서 바로 인간들의 삶이, 그 새로운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는 반전은
결국 진리의 중핵일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해석은 맞다. 저 십자가를 응시하며
결혼서약을 하는 우리들의 행위는 이제 이해될 수도 있겠다. 

여기에 가기 전까지 이 책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평론가 신형철이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지칭했을 때, 그 자신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는 비평이 창작에 대한 열등감을 고루하고 편협한 쪼개기와 버성긴 현학적 어휘와 빈약한 인용문의 짜집기로 호도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정말이지 놀랍다. 읽지 않은 소설들과 읽을 턱이 없는 시들일지라도 그러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영애와 수철이의 사연들일지라도 그들의 굴곡많은 서사를 해석까지 곁들여 전해주는 중간자덕에 그들을 온전하게 알아내고 나와 통하는 지점까지 가게 되는 마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순히 문학작품들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의 소설적 시적인 것들을 건져내어 그것을 때로는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안보이던 것들까지 세세하게 짚어주는 역할까지 덤으로 하고 있다. 오히려 후자가 더 부각될 정도다. 그의 평론을 읽는 일은 그래서 나의 삶의 비평을 읽는 일과도 같았다.  

특히 사랑에 대한 통찰은 물론 라캉의 그것을 참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억해 둘만하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대상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대상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 즉 우리는 상대의 존재보다 더 큰 그 무엇을 길들이기 위하여 분투하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지어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 명민한 평론가는 모든 명명은 어떤 실패의 흔적이라고 덧붙인다.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이 실패한 사랑으로서의 욕망이라고 한다면 그 존재를 초월해 확장해 나갈 수 그 어떤 것에 경도되는 것, 심지어 그것마저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얘기다. 모순 같지만 이끌리는 얘기다. 그에게는 그래서 작별한다,는 능동의 동사가 사랑 앞에서 가능하다.  

"너는 안아도 안아도 다 안을 수 없어 너는 두근거리는 무한이야."(김혜순의 무한특보 중) 

그에게 있어 타인, 자아는 실재가 아니다. 타인의 타자성은 종국에 나의 자아상을 비추고 확장하는 조력물로서 폄하된다. '나'의 근원적인 욕망과 충동에 집중하고 타인의 그것은 무시해 버리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집요하게 걷어내는 관계에 중독되어 있는 우리의 허를 찌르는 대목이다. 우리는 참혹하고 덜 아름다운 주체를 아프게 직시하고, 타인을 대상으로 소비하는 그 습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그는 강변하고 있다. 사회가 부여하는 외재적 습속이 아니라 스스로가 낳은 내재적 윤리의 규준에 근거하여 세계를 스스로 열어야 하고, 바로 그 길목에 문학이 자리한다고 그는 얘기하고 있다. 타인의 자장을 감지하고 그 속의 고통에 연루되는 것을 책임으로 인식하는 그의 모습은 바로 문학을 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닮아야 하는 바로 그 부분이고 또 문학이 떠맡아야 할 가장 긴요한 책무를 보여준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주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는 얘기다. 주체 이전에 먼저 타자가 있고, 존재론 이전에 우선 윤리학이 있다.
-p.165 

작품의 의미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비평 작업이 텍스트가 '창안'하고 있는 어떤 '삶'의 위상을 진단하는 작업과 결합해야 한다는 그의 비평론은 그래서 지극히 윤리적이다. 결국 우리가 얘기하게 되는 것은 '삶'이다. 또한 삶이라는 것 자체가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영위되는 한 그에 대한 얘기는 타자와의 엇갈림, 끌림, 어우러짐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래서 텍스트를 비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녹아든다.  

삶의 좌표를 흔들고 몰락하여 새로운 장으로 뛰어드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문학은 시작된다. 그것은 삶으로 치환되어 해석되도 무방하다. 외형적으로 성공한 삶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성공한 인생으로 상찬되는 사회에서 그 이면을 들여다 보고 참혹하고 덜 아름다워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진리로 걸어들어가는 절절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실재와 진리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 얆은 막을 투과해 들어오는 것들에 시선을 돌리며 이 책을 안내서로 가지고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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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7-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매혹적이네요.^^ 추천 꾸욱~~

blanca 2010-07-06 18:33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특히 저 물의 십자가는 참 멋지더라구요. 저기로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가는 바람에 식겁했습니다.--;; 이제 꿈꾸는섬님 왕자님들은 다들 건강해졌죠?

꿈꾸는섬 2010-07-08 00:53   좋아요 0 | URL
왕자님들 아니고, 현준왕자님과 현수공주님이에요.^^
ㅎㅎ 모두들 건강해요.^^

stillyours 2010-07-0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마 전 배수아 신작 읽고 나서 오늘 아침 <몰락의 에티카> 속 배수아 부분을 다시 펼쳐봤는데!
다시 읽어도, 아무데나 읽어도, 언제고 좋은 평론집. 참 드물고, 그래서 특별한.
블랑카님 페이퍼로 만나니 더욱 좋군요! 저도 추천!

blanca 2010-07-06 18:34   좋아요 0 | URL
아, 배수아 작품을 직접 읽고 다시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원문을 알고 비평을 읽는 맛이 진짜겠죠? 그래요. 이 평론집은 정말 소장가치 백프로인 보기드문 책인 것 같아요. 단순히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정말 뭔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참 부럽더라구요.

stella.K 2010-07-0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능 읽어봐야 할 텐데...아쒸, 죽깠다!ㅠ

blanca 2010-07-06 18:35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ㅋㅋㅋ 천천히 읽으셔도 됩니다. 스텔라님께 꼬옥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조금씩 천천히 읽으시면 글쓰시는 데도 도움이 될 듯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0-07-06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실재와 진리에 대한 추구함을 가지고 있을지, 다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칩니다. ^^ 그런데 저 십자가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아름답고도 처연하네요~

blanca 2010-07-06 18:3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플 수도 있잖아요.
저기는 북해도의 물의 교회입니다. 담에 꼭 한 번 가보셨으면 해요. 코알라양도 참 좋아할 것 같아요. 감동적이더라구요. 역시 저의 꼬맹이는 저 물로 뛰어들려고 금지선을 뚫고 들어가는 저력을 보여주어 안내원의 눈총을 한 몸에 받아주시더군요--;;

마녀고양이 2010-07-06 19:09   좋아요 0 | URL
분홍 공주님 사진 좀 올려보세요.. 아님 한번 델구 나오든지.
너무 귀여울거 같아요, 보고 싶어요. ^^
북해도 물의 교회.... 기억해두겠습니다.

blanca 2010-07-06 22:14   좋아요 0 | URL
마녀 고양이님, 분홍공주는 오늘도 야단맞고 흐느끼며 잠들었답니다. --;; 잘 나온 사진이 있으면 함 올려 보겠습니다.^^;; 참고로 남편과 같은 곰돌이과입니다. 이쁜 여우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흑흑.

비로그인 2010-07-0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도 다다오. 복싱 선수였다가 서점 앞에서 우연히 책을 만나 건축가가 된, 그 분이 맞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그 비평에 대한 내용은 노스럽 프라이의 책 구절과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있는 듯해 반갑습니다.

오늘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blanca 님..^^

blanca 2010-07-07 20:33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이미 알고 계셨군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그의 독특한 이력도 참 생소하게 들리더라구요. 바람결님은 정말 모르는 분야도 없군요^^

아시마 2010-07-0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때로 블랑카님의 글에 대해서 말이죠, 쩜쩜쩜(...) 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오늘처럼.

보관함에 던져넣었어요. 다음 출장자를 기다립니다. ^^

blanca 2010-07-07 20:34   좋아요 0 | URL
아시마님...제가 써놓고도 나중에 읽어 보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 지를 모를 때가 많던걸요^^;; 출장자! 한 번씩 어떤 책 보시는 지 올려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아시마님이 어떻게 생활하시는 지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질 수 있는 곳에 닿을 수 없는 것들을 비비적대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떤 장소든 이윽히 응시하게 되면 기시감에서든, 그곳과 관련된 추억에서든 삶을 물큰 베어물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릉 근처에 짬뽕이 맛난 중국집이 있다는 소문에 용감무쌍하게도 한창 자신의 걸음마능력 과시에 심취하여 있는 아이까지 데리고 물어물어 가게 되었다. 세계의 끝이 있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그럴듯한 지평선 대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좁다란 계단길이 어서 올라와 보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시원한 짬뽕 국물에 별점을 매기는 와중에 아이는 벌써 하늘로 달음질치고 있었다.  

아이를 잡으러 간 엄마는 그 계단 끝에 펼쳐진 세상에 아연했다. 그 계단은 다시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있었고 좁다란 골목길에 아기자기한 삶들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었다. 마치 숨어 있는 엄지공주 동네 같았다. 그 골목 속에 뛰어들려는 찰나 아이는 또다른 곳으로 튀었고 오직 그 아이를 잡으러 다녀야 하는 중대 책무를 잊으면 안되는 어미는 아쉬움을 씹으며 그 동네를 떠났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 숨어 있던 골목길의 사연들이. 

거기 사람들은 터널 아래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느리게 살았다. 어깨 높이의 담장 위를 올려다보면 채반에 무를 썰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푸른 플라스틱 화분에 줄맞춰 심어놓은 고춧대엔 고추가 빨갛게 익어 매달려 있었다.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중 

아이는 절대 전진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다 참견해야 한다. 평상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도 기가 막히게 신기하고 골목길에서 열심히 훌라후프를 돌려대는 열 살 남짓의 언니한테도 한 몫 거들어 봐야 한다. 책을 읽듯 풍경 하나하나를 짚고 해독하려 한다.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는 나에게도 그런 풍경들은 또다르게 흘러들어 온다. 예전에는 나와는 무관한 배경으로 그저 뒷걸음질치는 차창 풍경 같았던 그것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너무나 절절하게 들어와 박힌다. 그리고 그곳의 사연들이, 그곳의 삶들이 궁금해진다.  

 

그런 길들을 섬세하게 뷰파인더에 담고 넘치지 않을 만큼만 참견하고 또 거기서 얻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을 청랑하게 펼쳐 놓았다.  서울 통의동, 부암동, 청파동 만리시장길, 부산 문현동 안동네, 서울 상도동 밤골마을, 논산 황경읍 황산마을 등 이제는 사라져 가는 골목길을 온 몸으로 더듬더듬 읽어 나간 시인의 겸손하고 아늑한 얘기가 다사롭다. 읽고만 있어도 괜히 자꾸 마음에 물기가 차오른다. 

사람들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물건을 버리는 순간 자기 생의 한 부분이 휘발할 것이고 그러면 그 질량 만큼 외로워질 것이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p.102 

나의 헛된 집착을 누군가가 이렇게나 명징하게 해석하여 합리화해 준다면 그 순간은 그 작가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런 작가가 바라 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마다 매달려 있는 삶들은 그 자체로 각양각색의 인생의 은유 같아 묵직하다. 가벼운 책인 것 같으면서도 가슴께가 둔중해지는 까닭이다. 

시인은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지점에 골목을 들이민다. 신산하지만 고달프지만은 않고 약간의 처절함을 안고 있지만 너그러운 이 삶들도 이 시대의 마구잡이식 개발 논리 앞에서 몸살을 앓는다. 이 골목길들은 대부분이 스러져 가는 길목에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것이 최종적 귀착점이 될 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각종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존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통영 동피랑에는 '파고다 까페'가 있다. 어느 방문객이 마치 영화 속 '바그다드 까페' 같다고 한 칭찬을 '파고다 까페'로 해석한 귀가 어두운 구멍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작명 덕택이란다. 바그다드 까페보다 이 파고다 까페에서 아이스케키 하나를 사들고 평상에 퍼질러 앉아 해가 홍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이 삶에서 그 순간 만큼은 정지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져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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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되고 반들반들해졌지만...품위와 기품이 있는 아름다운 골동품같은 블랑카님의 글!

blanca 2010-06-24 15:27   좋아요 0 | URL
마기님, 그 골동품에 마기님의 댓글을 넣어 두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간지럽네요^^;;

꿈꾸는섬 2010-06-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물건을 버리는 순간 자기 생의 한 부분이 휘발할 것이고 그러면 그 질량 만큼 외로워질 것이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시 시인이에요.^^

blanca 2010-06-24 15:28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꿈꾸는섬님 원래 시를 잘 안 읽었는데 정말 시인은 소설가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그냥 쓴 문장 하나 하나가 다 예사롭지 않더라구요.

stillyours 2010-06-2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엊그제 이 책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면서 읽었어요.
아득하고 고요한 느낌의 이 책과 블랑크님의 글이 정말 잘 어울리는군요:)

이야기와 기억을 품고 한 걸음 늦게 현재를 따라오는 길들 곳곳
사진들, 구절들, 그 느낌들이 짠-하게 남습니다.

blanca 2010-06-24 15:29   좋아요 0 | URL
moon님 찌찌뿡! 이 책을 읽으셨군요. 괜히 맘이 뭉클해지죠! 진짜 짠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0-06-2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혼자살다보니 저도 자꾸만 물건들에 정을 주게 되는거 같아요.

blanca 2010-06-24 15:30   좋아요 0 | URL
고고씽휘모리님에게는 따뜻한 오이지군이 있잖아요. 닉네임도 넘 이쁘고 달짝지근해요.

무해한모리군 2010-06-25 09:32   좋아요 0 | URL
여기가 내 공간이고 내집이라는 걸 확인시켜줄게 그 시시한 것들 밖에 없으니까요..
오이지군은.. 자기집이 있어요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0-06-2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사진이 이쁜 책이네요. 또 갖고 싶게 만드시네. 저런.

blanca 2010-06-24 15:32   좋아요 0 | URL
저 요새 또 책지름신 와서 엄청 쌓아놓고 있어요...이 책 참 좋아요. 저 딸애 어린이집 가면 이 책에 나온대로 골목길좀 가보려고 해요. 서울에 있는 곳부터.

2010-06-24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10-06-24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스케키 하나를 사들고 평상에 퍼질러 앉아 해가 홍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시적인 표현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해가 홍시처럼 떨어지는 것!
저도 보고 싶은데요.

blanca 2010-06-24 15:33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아직 제대로 석양을 보지 못했어요. 아니면 봤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봐요. 꼭 그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워낙 멀어서요--;;

순오기 2010-06-2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어우러진 블랑카님의 감성적인 글은 늘 감탄하게 만들어요.
무엇이든 버리지 못하는 제게도 합리화의 구실을 만들어주네요.^^

blanca 2010-06-24 15:3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맞아요. 저도 참 못버리겠더라구요. 특히 옷. 책. 조만간 결단을 내려서 정리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그다드와 파고다의 발음...재밌는 사연입니다.

blanca 2010-06-25 15:06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죠! 할아버지가 바그다드를 모르시니 파고다로 해석하셨나 봅니다. 그 사연이 더 멋진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0-06-2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떠한 공간에 나를 세웠을 때 느껴지는 말 못할 기시감의 정체가
블랑카님의 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님의 글이.^^
위의 인용구 102쪽의 글귀는 무릎을 치게하네요.
제가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꾹꾹 눌러재워두었던 것들을 요즘 대거 버리고 있어요.
아, 어쩜 그리도 재워뒀을까요. 버려야 또 신선한 것으로 채워진다는 걸 몰랐어요.
추억을 붙들고 있기보다 그것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줬어야 한다는 것도요.^^
모든 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놓치고 나면 벌써 달아나 버리는 바람같은 것들.

blanca 2010-06-25 15:0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잘 버릴 수 있는 것도 잘 살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어떤 물건을 버리면 그 물건에 얽힌 추억까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우려. 저도 프레이야님처럼 버리지 못한 것들을 잘 정리해서 버리는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穀雨(곡우) 2010-06-2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난데없이 아주 오래전 기억이 불쑥 떠오를때가 있습니다. 그때 뜀박질하던 골목, 다닥다닥 붙은 지붕을 밑으로 구부다보던 야산의 기억. 모든 것이 아련하게 펼쳐질기도 한답니다. 아마 세월이 너무 빨라 공간의 깊이가 마음 속에 채워지기도 전에 변화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니 항상 그때의 기억만 가득 추억으로 자리잡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공상에 잠겨봅니다. 감사...^^

blanca 2010-06-25 15:05   좋아요 0 | URL
곡우님, 저는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자꾸 예전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아련해져요. 왜 그렇게 할머니가 옛날 저 세 살 때 얘기만 계속 했는지도 최근에 제 아이를 보면서 깨달았답니다. 이 때 바로 이 때 아니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왜 지금에서야 깨달아야 하는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 공상이 곡우님을 행복하게 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로그인 2010-06-2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트윗에서 '알라딘서재'에 블랑카님 글 소개해 놓은 글 보고...
블랑카님의 글은 블랑카라는 이름처럼 아름답죠?! 그랬더니....
으악 메피님이 스트리트 파이터의 블랑카를 검색해보라잖아요~~~
나 지금 이르는 거예요!
마기는 고자질쟁이!

blanca 2010-06-25 22:0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마기님 저 쓰러집니다. 개그맨 블랑까도 있잖아요. 예전에 과장님이 저닉넴보면 자꾸 그 개그 연상된다고 바꾸라고 한 적도 있어서 뭐 괜찮습니다.--;;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이건 한 단계 위인데요. 메피님한테 따지러 갈까요?ㅋㅋ

비로그인 2010-06-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저 아릿한 풍경은 또 누군가에겐 고단한 삶의 일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서울에 한해서 요새 각종 재개발(과연 그게 재개발인건지..) 로 이런 풍경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쉽습니다.

blanca 님 올리신 글 읽으며 빨리 실행해야겠지만 올해 안에는 꼭 카메라 들고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음.. 비록 내 보기 좋아도 아무데나, 상처인지도 모르고 렌즈 들이대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요.

blanca 2010-06-28 15:19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마지막 대목 정말 중요한 곳을 짚어주셨습니다. 이 책에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상대의 허락없이 그 삶을 피사체로 마구 잡아버리는. 타인의 삶을 한낱 구경거리로 치부하는 습속. 이런 곳까지 잊지 않고 챙기는 님의 배려가 놀랍네요.^^ 저는 내년쯤이면 조금 자유로워져서 서울 성벽탐험도 좀 나가고 창덕궁 자유관람도 좀 해보고 그럴 꿈에 부풀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