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집에서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은 채 살던 난, 이사를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서울에서 전학왔다고 서울말을 쓰던 얼굴 하얀 지영이는 전학 온 첫날부터 우리 반 남녀 모든 학생들에게 공주 대접을 받았다.
완도 어디서 전학왔다던 인숙이는 전학오자마자 중간고사에서 전교2등을 해서 학교에 소문이 쫙 퍼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공주대접도 받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아직도 거기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이사. 원을 풀었다. 결혼하고 10년. 지금부터 이사내력을 풀어볼까 한다.
1994년 가을, 결혼하자마자 시댁에서 보름쯤 살았고, 그 다음엔 친정에서 일주일, 그리고 서울 반포의 신혼집에 입성했다. 집 뒤로 고속도로가 난, 무지무지 시끄러운 집이었다. 낡아서 방음도 엉망이었다. 몰라서 얻은 거였다. 거기서 6개월.
1995년 봄, 역시 서울이지만 정 반대쪽인 북쪽의 태릉선수촌 부근으로 이사했다. 남편 직장이 그쪽으로 옮긴 탓이었지만,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난 정말 좋았다. 전세값을 조금 보태 평수를 두배로 늘렸다. 신혼때, 전세값 천오백 올리느라 허리가 휘었다.
1년 살고 났더니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랜다. 그래서 1996년 여름, 그 옆동으로 이사했다. 거기서 1년 반.
1998년 봄, 남편이 난데없이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그래서 부산으로 이사해 1년 반. 부산엔 사고무친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부엌에서 바다가 내다보였다. 아침에 밥을 하고 있으면 바다에서 해가 떴다. 아이들 데리고 하루종일 해운대에서 살았다.
1999년 여름, 이번엔 남편이 전라도 정읍으로 발령이 났다. 그래서? 또 이사했다. 친정 가까워 좋았다. 서울-부산-정읍이니 강원도 한번 갔다가 제주도 한번 갔다가 서울 가면 기막히게 별을 그리는 거라고 웃었다.
2001년 봄, 강원도와 제주도를 건너뛰고, 곧바로 서울로 발령이 났다. 물론 이사했다. 전세 2년 계약이었는데, 계약할 때 2년 반쯤 살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흥, 그런데 집주인은 늘 자기 맘이다. 2003년이 시작되자마자... 집주인의 며느리에게 전화왔다. 2년 되었다고 나가라고. 자기 어머니는 차마 말 못하니 자기가 전화했단다. 법대로 하잔다. 헉...
그래서 2003년 봄, 일산으로 이사했다. 부랴부랴 골라 이사한 집은... 좋았지만 좁았다. 전세값을 2천만원이나 올려서 왔는데, 평수는 6평이나 줄었다. 그리고 이제 이사가 지겨워졌다. 내 집에서 살고 싶었다.
2003년 가을, 조금 무리해서 내집을 마련했다. 그래서 이사했다. 꽤 비쌀 때 사면서, 더 오르기 전에 지금이라도 사자고, 빚내가면서 샀는데, 계약하자마자 무슨무슨 부동산대책을 대통령님이 몸소! 발표하시면서 집값은 떨어졌을 것이다. 어차피 내집이니 신경 안 쓰기로 했다.
결혼하고 9년만에 8번째 집으로 이사하면서(물론 시댁 친정에서 산 것 빼고), 이제 이사 그만 하자고 생각했다. 내년에 남편이 또 지방발령이 난다는데, 적어도 올해, 2004년은 이사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런...데...
도서실이 이사한다. 4층의 도서실을 2층으로 옮긴다. 이번주일 내내 짐을 쌌다. 책만 몇백 박스다. 집의 이사는 포장이사 맡기면 되는데, 학교 이사는... 사람도 안 불러줘서, 기사아저씨 두분과 공익요원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다 했다. 어제까지 짐 싸고, 오늘은 내내 서가를 닦았다. 사서교사가 고상해보인다고? 실상은 노가다이다.
다음주엔 옮기고 짐 푸느라 또 다 가겠지...
팔자다. 내 팔자에 역마살이 없댔는데, 그래두 팔자인 모양이다. 누구를 탓하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가다에 어울리는 몸매를 가졌다는 점이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