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 1997
저자 : 미치 앨봄
역자 : 공경희
출판 : 세종서적
작성 : 2007.10.15.




“인생의 스승을 찾아서.”
-즉흥 감상-




  꼭 읽어야만 한다며 추천 받게 되는 책들은 이상하게도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 중에 간혹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짐에 만나게 되는 책들이 있게 되는데요. 이번에 조금 소개의 시간을 가져볼 책이 바로 그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그럼 스승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스승이 되어보고자 결심을 새우게 한 이번 책을 열어봅니다.




  책은 이번의 기록이 실제 있었던 것을 재구성 한 것이고 영상물로도 제작된바 있으며, 이 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말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졸업식 대신 선생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 저자가 회상하게 되는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을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다시 만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또 세월의 공백을 두고 다시 만난 선생님과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에 대해 말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아. 이번의 기록들은 제가 평소에 즐기는-각각의 어떤 작은 이야기들이 그저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되면서 얽히고설키며 거대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에세이 형식으로 매주 화요일마다 있었던 은사님과의 인생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기록되어 있었다보니 조금은 두루뭉술해도 전체적인 내용을 위와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짧게 짧게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보니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적당하다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러면서도 수록된 내용들이 위의 즉흥 감상을 이끌어낼 정도로 멋진 스승을 한분 만나 뵌 것 같은 행복함을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스승이라.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최근 들어 ‘스승의 날’이 아니고서는 거의 못 들어본 것 같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에게는 ‘선생님’과 비슷한 의미로서 설명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선생님보다 더 높은 존재로 인식되는 이 명칭에 대해서 아직 제 인생에 적절한 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 인생에 있어 감히 선배님이나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몇 계시기는 하지만 스승님이라, 그저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모리 선생님도 국내의 환경 속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비쳐질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일단 저자의 심정이 되어 접근해본바. 언젠가 모리 선생님과 같은 멋진 스승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랄까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님의 명대사로 꼽히며,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떠올리게 한 분이라면 설명이 잘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일단 그렇다 치고, 고등학교를 가기위해 중학교 생활을 했었으며, 대학교에 가기 위한 고등학교 생활에 이어, 이제는 취업을 향한 대학 생활을 해줄 것을 부탁받고 있는 제 삶을 되돌아본다면, 물론 이 책의 저자 분 또한 이것과 비슷하게 졸업 후 그저 바쁜 나날의 삶 속에 체이며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머지 어느 날 북극성을 잃어버린 뱃사공이 되어서야 노 은사님을 찾아뵙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싶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꿈을 쫓아라 응원을 받으면서도 또 다른 쪽으로부터는 그저 안정적인 삶을 준비하라면서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 인양 교육을 받아왔다 판단중인 저로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그저 희망사항일 뿐 감동만을 받을 만큼의 그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는데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의 가르침을 주실 스승을 만나 뵙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간 기분이 들어 새로 사온 사과를 우적거리며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덮어둔 이번의 책을 다시 넘겨보니 ‘죽음’이라는 단어가 시야에 포착 되었는데요. 
  죽음이라. 이번 책에 등장한 모리 선생님은 척수신경이나 간뇌의 운동세포가 서서히 지속적으로 파괴되면서 이 세포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위축돼 힘을 못 쓰게 되는 질병인 ‘루게릭 병’으로 본의 아닌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질병은 유명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으로 인해 처음 알게 된 질병인데요. 그렇게 죽음으로의 인생 여정 속에서도 항시 웃음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건강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해보고자 노력하시는 모습은 당장의 삶이 괴롭다고 심심하면 고통 없이 저세상으로 가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생각하곤 하는 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병에 걸리시기도 전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시며 웃음을 동반한 긍정적인 생활을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정작 자신이 때 이른 죽음으로의 길을 걷게 되면서부터는 많은 이들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리셨던 분. 그리고 죽음으로의 마침표를 통해 나아가야할 지표를 찾는 방법을 남겨주신 모리선생님과 같은 분이 또 없으실까 주위를 둘러보지만, 으흠.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의 기록들만 하나 가득 보이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책 또한 시작 부분에서 묻고 있는 것이지만, 저의 이번 기록을 혹시 읽어보시는 분들에게 자신만의 ‘스승’을 옆에 두고 계신지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 ‘부모님’을 거론하실 분도 있을 것이지만, 이 질문은 일단 가족을 벗어난 범주로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군요. 
  일단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저는 대학 진학을 미대로 생각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래서 화실도 다니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었다지만, 그 당시 학교 미술선생님의 반응은 ‘꿈도 꾸지 말라!!’였습니다. 어떤 일말의 가능성으로의 제시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 식의 반응하며, 외부로부터 상을 받아와도 학교에서부터 무시를 받았던 학창시절 이었다보니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시는 분들 옆에서 간혹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는 점에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군요. 그래도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꿈꾸며 그리워하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앞으로 열어 나아가야할 인생을 위해 노력해보고자 하는 생각은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그 밖에도 국어 선생님만 두 번이나 담임이었던 그 당시,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교지에 실린 글 등에 칭찬을 들어봤었던 저로서는 학창시절에 과연 무엇을 했었는지에 대해 아직까지도 ‘배신감’의 이름표가 붙은 높은 벽을 새우고 있던 저를 발견해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덕분에 ‘형식의 틀을 부수자!!’을 외치며 살아가게 되었다지만 무엇을 하던 간에 평균 사회로 복귀할 것을 강요받아왔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으니 이거 참 그저 답답한 기분입니다. 
  그래도 지나간 과거로 인해 현재의 제가 존재한다 말할 수 있으며, 다 말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암울한 시기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바. 오늘도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감상기록을 계속할 뿐이로군요.




  그건 그렇고 며칠 전부터 저희 집으로 큰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더니 언젠가부터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끈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 소리로 인해 집중력이 생성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보니, 문득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말해지는 동물들일 경우 단지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존재인가에 대한 다소 엉뚱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을 할 줄 아는 동물인 ‘사람’일지라도 방향성과 목적성이 상실되어버릴 경우 그 ‘생각’이라함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이어볼 수 있었는데요. ‘생각-사고를 할 수 있기에 편안한 삶보다도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표에 위에서 잠깐 언급한 ‘카르페 디엠’의 의미에서처럼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재를 살아갈 줄 아는 자세는 오히려 이런 동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결론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그것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이 말은 지인 분들의 이런 저런 고민을 듣던 중 정작 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혼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중얼거리기 시작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현재의 방향성을 잃고 그것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금방금방 지치곤 하는 저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고 있기도 한데요. 이번의 책을 통해서는 스승을 찾기 위해 방랑의 길을 걷기 보다는 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간의 불신감정 부터 어떻게든 허물어야겠는데, 누구 도움주실 분 없으신가 모르겠습니다. 
  그럼 마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이야기가 나왔으니 다음에 볼 영화로 챙겨보며 이번 감상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522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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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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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들의 천국, 1976
저자 : 이청준
출판 : 문학과지성사
작성 : 2007.10.12.




“나 또한 자유라는 감옥 안에서 우상을 만들고 있진 않았는가?”
-즉흥 감상-




  아무리 하고 싶던 일이라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면 있던 의욕도 상실되어 만사가 그저 귀찮게 되고, 심하게는 짜증이 났던 경험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해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기분으로 임하곤 하는데요. 그나마 이번에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그 대상으로서 감상기록에 누락되어있다는 사실에 이렇게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고등학교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만나게 된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나병 환자들의 섬인 소록도에 새로운 원장으로 부임해 들어오는 한 남자와 때마침 섬을 탈출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탈출 사고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섬을 둘러보게 되는 새 원장이 선대 원장들과 이 섬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 등 많은 생각 끝에 우선은 ‘축구’로서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한 계획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렇게 장로회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힘쓰던 원장은 결국 소록도 주민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기 위해 ‘오마도’라고 불리게 될 섬을 만들고자 바다를 매립하게 되는데요. 여기서부터 의도치 않았던 과거의 망령이 부활하려는 조짐이 일어나게 되자 섬사람들과 뭍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하게 된 원장은 연이어지는 시련을 경함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러한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던 보건과장마저 섬을 나가버리게 되자 상황은 절정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줄거리는 일단 2부까지 적어둔 것이기에 긴장감이 고조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3부에 들어오면서 ‘해소’로의 과정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하나의 답을 내놓기 보다는 나름대로의 ‘희망’이라는 마침표를 내놓게 되는데요. 일단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책을 읽어들어 가면서 오랜만에 차분한 마음으로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동을 받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자유로의 선행’의 모습에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자기 딴에는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례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지만, 결과를 향한 과정 자체가 타인의 시점에서는 전혀 반대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해온 원장은 소록도주민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겠답시고 축구팀을 만들고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농경을 위한 섬을 만들기에 노력을 하게 되지만, 그 모습 자체를 지난날의 앞선 원장들의 모습과 다를 것 없으며 악몽이 되풀이 되는 과정을 답습할 뿐이라는 소록도주민의 또 다른 시각으로의 모습에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선입견’의 무서움이라는 것을 발견해볼 수 있었는데요. 
  다른 사람이 보기는 그저 하기 싫고 귀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으악! 귀찮으니까 빨리 해버리자!!”를 외치며 일에 덤벼들고, 남이 보든 말든 해야만 할 일이라 판단이 서면 주위에서 뭐라고 말하건 간에 일단 끝장을 봐왔던 저에게 훗날 돌아온 비난의 화살을 저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게는 내가 하고 싶어서였고, 크게는 모두 다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했던 일이었다지만 과정과 결과가 아무리 좋았어도 돌아오는 것은 집단의 외면이었다는 경험을 이번 책의 소록도주민과 새 원장의 모습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소록도주민의 마음에 대해서도 요즘처럼 어떤 목적의식 없이 사회라는 시스템의 좀비마냥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느껴지는 현재에서는 ‘보이는 자’의 모습이 되어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 말하는 자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아니꼽게 보이기 시작했는지, 1인자의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을 보좌해주던 2인자의 시절이 오히려 그립게 생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선입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그만 개인적인 이야기로 궤도를 이탈해버리고 말았군요. 아무리 선입견 없이 살아간다 할지라도, 각 위치에서의 입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판단기준’이라는 것은 제각각 그 위치와 범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실감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최근 들어 조용히 살고 있는 편이라고 말해도 여러 모임을 전전하면서 그 조직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타인이 바라는 행동양식과 개인적으로 실행하는 행동양식에 가치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일종의 ‘선입견’이 발동하는 순간이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인데요. 그것이 집단성을 띠게 될 경우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사라져 엄청나 힘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까지 작품에 멋있게 담겨져 있었습니다.




  소록도라.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당시에도 명확하진 않지만 감동을 받은 다음 친구들과 대화의 시간이 있었고, 유독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가 그 책을 빌려 읽은 다음 소록도에 가보고 싶다 말한 것이 기억에 있어 조사를 해보니 소설 상에서만 나오는 섬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라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소록도주민을 위한 천국으로 시설이 만들어져감에 결국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천국으로 완성되어버렸다는 기록도 마음에 걸리고 또한 소록도 방문에 대한 최근 기록들도 같이 검색되는 것을 보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친구들과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유라는 강철의 날개를 달았다.”

 

  이 말은 ‘자유’라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제가 간혹 사용하는 말인데요. 그렇듯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과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낙원’의 구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유’를 위한다는 것이며, 이번 작품에서는 ‘오마도 간척사업’을 통한 자급자족 체계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치권을 가진 ‘독립’을 상징한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 결과로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다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던 뭍사람들과 뒤 늦게나마 간첩 사업을 통해 생성될 수 있을 어떤 가치를 통해 이득을 보려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통해 ‘공짜’를 통해 ‘자유’를 꿈꾸며 ‘책임’이라는 것을 ‘회피’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추악한 일면 또한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힘 있는 자가 아닌 힘없는 자로서의 실감을 경험하며 변화되는 원장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배워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두려움’에 대한 것인데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용기백배의 일정이 어느 한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자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 두려움에 잠식되던 중 죽음으로의 공포까지 맛보게 되는 원장의 모습이나, 그 당시만 해도 암이나 에이즈에 필적할 정도로 공포의 질병이라 할 수 있는 문둥병, 아니 나병, 아니 최근에는 한센병으로 불리기도 하는 질병으로 인해 격리조취 된 것이나 다름없는 섬에 대한 공포와 불신의 모습을 보이는 뭍사람들-건강인, 그리고 변화보다도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현재에 머무르고자하는 섬사람들의 모습들에서 각각의 두려움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하신 작가님에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볼까 합니다. 거기에 책의 두께만 보고 읽어 들어감에 엄두를 못 내시는 분들께는 한번 빠져들게 되면 정신없이 읽을 만큼 스릴 만점의 작품이라 감히 추천장을 내밀어 볼까 하는군요. 
  아.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서 또 옆길로 빠져버렸군요. 개인적으로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불 위에 얹고 봐야한다는 점에 비유하여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그 자체로 ‘낭비’라는 생각 때문인데요. 물론 꼭 거창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비나 다름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가 판단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3부에서 확연히 사람이 변한 그리고 더 이상 원장이 아니게 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라는 것에 대한 긍정적의 마침표를 만나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원대한 마침표를 향한 여정이라기보다는 단지 “무한 감상의 영광을 위하여!!”를 외치며 접하는 작품마다 대부분 감상기록을 쓰고 있는 편인데요. 그러면서도 간혹 다른 채널을 통해 만나는 분들이 제 기록들의 흔적을 통해 ‘괴물’이라는 이미지를 연상해왔다고들 하시니, 의도치 않게 이 작품에서 말하는 ‘우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번 감상기록까지 공식으로 521회라지만 저보다 많이 쓰신 분들을 보면서 생각해왔었던 것을 이렇게 또 다른 분들의 시선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원장님을 통해 동질감을 느껴버린 바. 무슨 일을 하건 순수한 열정으로 하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여파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짐해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 
 

TEXT No.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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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오리너구리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여성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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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 : 칸트와 오리너구리 Kant el'Ornitorinco, 1997
저자 : 움베르토 에코
역자 : 박여성
출판 : 열린책들
작성 : 2007.10.06.




“존재란 무엇인가?”
-즉흥 감상-




  사실 즉흥 감상으로 오딧세이아를 인용하여 “나는 ‘아무’로 소이다!!”를 적을까 싶었습니다. 그것도 그렇듯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존재’에 대해 이번 책을 읽으며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논의해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철학자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저는 ‘존재’에 대해‘아무’것도 알아먹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그만 충격을 받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언젠가부터 움베르토 에코님의 기록물들을 따라 가보자 다짐했기에 만났다 할 수 있는 이번 책에 대해 조금 소개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앞서 읽었던 저자님의 책 ‘논문 잘 쓰는 방법Come si fa una tesi di laurea, 1977’은 그나마 논문을 쓰기 위한 논문 형식의 글이어서인지 간추리기 위한 구분이 편했다는 기분이 있었는데. 이번 책에 대해서는 읽어 들어가면서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지막 부분인 ‘옮긴이의 말’에서 보기 좋게 정리되어진 것을 발견해볼 수 있었다보니 이 지면을 통해 한 번 더 정리하기도 죄송하게 되었기에, 여기서부터는 그렇게 정리된 부분에 도움을 받아 빡빡한 글씨들을 읽어들어 가며 생각하게 된 것들로 이어볼까 합니다.




  우선 이번 책이 사실은 칸트와 오리너구리가 만나 어떤 유명한 일화를 남겼노라 식의 기록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서문]에 이어,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칫 말장난으로 ‘존재’를 증명해 나간다고 생각했다가 ‘인식’과 ‘무無’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지게 했던 [1. 존재에 대하여]는 시작부터 참 답답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나의 문장이 어떻게 번역되고 쓰여 지는 가에 대한 미묘한 차이에 대해 분명 폭 넒은 예시를 제안해가며 설명한 것이 그저 말장난 같았다는 것은 일단 그렇다 치고, 지나가다 한사람이라도, 그리고 한번이라도 들어봤을까 의문이 드는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예로들에 기호학적-개인적으로는 끼워 맞추기라 판단된-분석을 시도하는 등 내용이 업치고 겹치기 시작하자 무엇인가 정신없게 작성된 논문이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밝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둠을 이야기 하듯 ‘존재’와 ‘무’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까지 와서는 아직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만 절실히 들더군요.

 

 

  그리고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마크로폴로가 신화나 전설과 같은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일각수’를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발생하는 보편성의 괴리감에 ‘존재의 재구성’을 말하며 시작의 장을 열었다 판단된 [2. 칸트, 퍼스 그리고 오리너구리]에서는 이 책의 제목과는 달리 정체불명의 괴생물체인 오리너구리를 칸트가 만나지 못했음에 사실상 불가능한 만남이 실제가 되었을 경우 일어나게 될 정체성 혼란에 대해 저 또한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오리너구리’와 그 존재성에 대해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양서류 마냥 물 안에서도 물 밖에서 살 수 있으며, 오리와 같은 주둥이에 두더지 같은 몸. 그리고 비버의 꼬리를 달고 있으며,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이는 그런 생물이라는 사실에 제가 얼마나 한정적인 인식의 영역 속에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코믹 ‘포켓몬스터 스페셜’에 나오는 오박사의-겨우 포켓몬의 조사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무렵 더 많은 종류가 발견되었을 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좋을까 모르겠습니다(웃음)

 

 

  이어서 정복자였던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한 원주민들이 그들에 대한 설명에 대해 객관적 관찰과 주관적 관찰을 통한 인식의 차이와 그 전달 과정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판단중인 [3. 인지유형과 핵 내용]에서는 이때 것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것’에 대해 어떻게 ‘존재’가 형상되며 전파되고 받아들여지는 가에 대해 실험이 펼쳐졌다는 사실에 어려우면서도 흥미를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가까운 예를 떠올려보자면 나이가 70이 다 되신 분이 이때까지 타이프라이터만 사용하시다가 윈도우 비스타를 운영체제로 하는 노트북을 장만하시면서 도움을 요청하시기에 본의 아닌 선생님이 되어버린 제 생활을 우선으로, 일상에서는 경험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사건들을 실제로 경험하며 그러한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설명할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며 책에서 말해지는 이론과 실험을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다시금 말장난 형식으로 ‘산’에 대해 말하며 시작의 장을 열었다 생각된 [4. 오리너구리: 사전과 백과사전 사이의 괴리]에서는 그 존재성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괴생물체 ‘오리너구리’가 발견됨으로서 기존의 분류체계가 혼란을 맞이했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요. 사전적 의미를 말한다 했을 경우 간략한 의미일 경우 ‘사전辭典’을 펴들고 좀 더 상세한 의미를 원할 경우에는 ‘백과사전百科事典’을 펴들었었기에 기록 대상의 설명에 대한 범위에 대한 차이로만 알고 있었다가 ‘사전’이라는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남에 그만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각 사전에 대해 사전적 정의를 옮겨보면 ‘사전’은 ‘[명사]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말광·사림辭林·사서辭書·어전語典’로 나오며 ‘백과사전’은 ‘[명사]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따위의 과학과 자연 및 인간의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부문별 또는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풀이한 책. ≒백과사서·백과사휘·백과전서.’라고 나오는 것이 단순히 단어가 가진 의미와 그것이 어떤 현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남을 확인해볼 수 있어서인지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열게 되었다는 것에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어떠한 대상을 향한 ‘지시’를 하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모호한 영역범위를 일종의 약속으로 통재한다는 실험이 담겨 있다 생각된 [5. 합의로서의 지시 행위에 대한 메모]에서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현상 때문인지 지칭하는 어떤 대상에 대해 이해의 영역이 차이가 나게 되어 대화가 어려웠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동음이의를 말하는 ‘애매성’과 한 단어가 가진 의미의 범위영역을 말하는 ‘모호성’에 대해서 그 예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한 대상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점 속에서 달리 말해질수 있다는 ‘옴니버스’타입의 작품 또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데요.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설명은 이번 지면이 아닌 다른 작품의 감기록에서 따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까지의 내용을 정리한다는 기분으로 만난 [6. 도상성과 하위 도상]에서는, 솔직히 이까지의 내용도 이해가 되었을까 의심이 들었는데 결국 이해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듯한 멍~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글을 쓰거나 친구들과의 어떤 대상에 대한 열띤 대화의 현장에서 말해지는 사소한 걸림돌들을 나름대로 실험과 재미있는 예시를 통해 설명하려 한 저자 분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 의미 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말씀 드리고자 하는데요. 그래도, 정말이지 그동안 제 인생의 독서 선배님들이 던져주시던 ‘경고’ 그 대로 읽어 들어가는 동안에는 참으로 머리가 아팠습니다.




  존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증명이라. 물론 이 책에서는 기호학을 기준으로 언어학과 분류학, 각 철학자들의 철학과 다양한 실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심리학과 물리학에 관심을 가져왔었던 지라 ‘존재’에 대해서는 이번 책이 아닌 소설 ‘해인의 비밀, 2001’을 통해 지나가면서 들었던 것을 재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 내용은 원자의 구성이 한 개의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전자로 이뤄져있으며,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단순 파동이며, 또한 여기서의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있으면서도 계속되는 발견 속에서는 쿼크라는 초소립자에서 상태에서 결국에는 점상입자가 아닌 구조를 가진 복합체-파동라는 이론까지 만들어졌기에 다시 그것을 작은 세계가 아닌 축소의 시점으로 바꾼다면, 형체가 없이 파동만 있는 어떤 힘의 결정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 긴 분자의 끈으로 이어져 하나의 어떤 형태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전에 읽었던 도서 ‘니콜라 테슬라TESLA : MAN OUT OF TIME, 1981’에서 나오는 소리굽쇠나 진동자를 이용한 ‘공명현상’으로서 물질 파괴의 이야기까지 더해본다면 우리가 ‘존재’로서 인식하는 세상은 그저 속 좁은 시야의 세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는데요. 그래도 이번 책에서는 그런 물리학적 측면이 아닌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심리학의 양념을 가미한 ‘생각’들이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에 대해 정리된 기분을 받았던지라, 그저 최근 들어 컬렉션 대상이 된 에코님의 책이나 가능하면 출판되어진 순서대로 읽어보고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럼 개인적으로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구요? 
  으흠. 저는 위에서도 적은 물리학적인 측면인 ‘공空’의 개념에 ‘파동 이론’을 존중하긴 하지만, 심리학적 측면에서 스스로 ‘거울과 거품이론’이라 명명하고 있는 생각을 말하곤 하는데요. 그것에 대해서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황하게 이야기해보기로하며 이번 기록은 일단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 바입니다. 아아. 그나저나 ‘존재’라!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공명하는 기분이 들고 있으니 오늘 밤도 편안하게 잠들기는 다 틀렸다는 기분이 듭니다!! 


TEXT No. 519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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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신태라 감독, 황정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 : 검은 집Black House, 2007
원작 : 기시 유스케 소설 ‘검은 집 黑い家, 1997’
감독 : 신태라
출연 : 황정민, 유선, 강신일, 김서형 등
등급 : 18세 관람가
작성 : 2007.10.04.




“그네의 꿈을 꾼 적이 있는가? 당신은.”
-즉흥 감상-




  아아. 드디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 동생이 먼저 보고, 저는 일단 원작을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에 약속예정일까지 돌파해나가던 중 갑자기 일정이 취소되어버려 타이밍을 노치고 말았었는데요. 거기에다가 작품이 제품으로 출시되고 난 다음에는 추석 연휴동안 조부모님 댁에서 본다는 것이 문제가 생겨 결국 추석이 끝나고 나서야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다른 건 몰라도 영상면에서 만큼은 최고 점수를 주고 싶었던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회색 화면으로 아파트로 보이는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는 누군가의 시야와 한 소년의 형에게로의 사과함과 함께 투신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악몽에서 깨어나는 한 성인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새로운 직장으로의 첫 출근을 나서게 된 그는 첫날부터 ‘나일론환자’를 만나게 되고, 상급자와는 달리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대하는 모습에 한소리 듣게 되는군요. 이어서 사무실에 들어와 업무를 처리하던 그는 한 여인의 전화를 받게 되고 고객 상담 매뉴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까지 말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주인공 앞으로 어떤 한 고객의 방문요청을 받게 되고 주인공은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장소로 들어서게 되는데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주인공은 형광등에 목을 달고 죽어있는 한 소년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이상할정도로 보험금에 집착하는 소년의 아버지의 모습에 주인공은 보험금 지급을 주저하며 진실을 추적하게 되지만…….




  음.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원작과의 비교에 한국적 정서에서 잘 부합하도록 잘 만들었다 생각이 들었는데요. 왜 그런 기분이 들어버렸는지는 설명한 자신이 없는 고로, 일단은 두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 차이점을 몇 가지 적어봅니다. 우선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형이 과거 속에서 자살해버린 반면 영화에서는 동생이 뛰어내렸고, 원작에서는 주임이라는 나름대로의 높은 위치였는데 비해 이번에는 신참이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러닝 타임을 생각해서인지 주인공이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짧아져 있었는데요. 그래도 화면 하나만큼은 정말 원작의 느낌을 멋지게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볼까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결말 부분에서 기억하고 있던 작품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던지라 원작을 재확인해볼까 싶었는데, 이런! 지금은 대여 중이었다는 사실에 그만 제 마음속에 잠들어있던 ‘사악’이 꿈틀거리는 줄 알았습니다. 역시나 일단 열심히 공부해보자는 기분에 도서관이라는 무인도에서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을 체험중이다보니, 개인적으로는 누구든 품고 있다 생각하는 이런 어두운 부분이 최소한의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흐음. 그래도 그런 정신 상태는 ‘희로애락’의 감각이 마비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판단중이기에 아직은 제가 보통 인감임을 재확인해볼 수 있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어 보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이번 작품을 만나보았노라 지인 분들과 대화를 하던 중 이미 일본에서도 ‘검은 집黑い家, 1999’으로 영상화 했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동안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완성도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국내의 정서와는 충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만나보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집히는 듯 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의 원작을 쓰신 작가님의 다른 소설들도 국내로 번역 출판되었음을 알게 된바. 컬렉션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연대기목록 확인하기]

  

TEXT No.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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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이 SE
김태경 감독, 조안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 : 므이, 2007
감독 : 김태경
출연 : 조안, 차예련 등 
등급 : 15세 관람가
작성 : 2007.10.01.




“이것은 한국판 다크히어로의 탄생이었다!!(응?)”
-즉흥 감상-




  사실 처음에는 “이것이야 말로 현대판 전설의 고향이다!!”라고 적을 까 싶었습니다. 그만큼 앞서 소개한 적 있던 영화 ‘전설의 고향, 2006’보다 더욱 ‘전설의 고향’같다는 느낌을 받아버렸는데요. 결말에 이르러서는 위의 즉흥 감상은 연발하게끔 한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어둠속에서 흥얼거리는 듯한 음악소리와 함께 붉은 옷의 한 여인이 공포에 질려가는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중압감과 함께 무엇인가를 향한 비명을 지르고 맙니다!! 
  그렇게 ‘므이의 전설’에 대한 영상물을 시청중인 한 여자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는 이야기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자 했던 찰나 베트남에 갔었던 친구로부터 받은 영상물에 자극을 받아 직접 현장으로의 자료 수집을 떠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므이’에 대해 조사를 거듭하면 할수록 악몽에 시달리는 등 좋지 않은 어떤 느낌을 감지하게 되고, 급기야는 자신마저 눌러버리려 하는 저주를 풀기위해 발버둥 치게 되지만…….




  별다른 기대 없이 우연히 입수하게 되었기에 일단 보기 시작한 작품은,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소설을 쓴답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모두 자료랍시고 수집했었던 기억이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회상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전설’을 따라 행해지는 사건들 속에서 결국 풀기 위한 저주가 또 다른 모습으로서 완성되어버리는 이 이야기는, 앞서 만나본 영화 ‘캐리carrie, 1976’를 통해서 느낀 ‘평소에 착하게 살 것이지’를 같이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사소하지만 지극히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해 먼 옛날의 ‘원한’이 현대적으로 재구성 되는 모습을 아주 멋지게 담았다는 개인적은 평가를 도출해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냥 떠도는 소문만으로 소설을 써 그것이 책으로 나왔었고 그것이 ‘원한’의 촉매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소설을 쓰면서 ‘책임감을 가질 줄 알아라!!’며 소리 높여 통신망에서 싸웠었던 예전의 기억까지 떠올라버렸는데요. 요즘에는 단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나름대로의 현실적 고증을 동반한 환상 문학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보아도, 그런 현실에서 만약 단지 소문에 의한 첩보를 사실인양 잘못 기술하였을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그 여파는 이 작품에서야 ‘원한’을 통한 저주의 구체화가 진행되었다지만, 현실 적 차원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어지는군요.




  그건 그렇고 ‘한국판 다크히어로’는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요? 후후후후훗. 그건 이 작품의 마지막을 직접 확인해주셨으면 할 따름입니다. 단순히 원한의 대상을 다 처리했나 싶었는데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게 하기위해서인지 따뜻하고도 차갑게 느껴지는 그녀의 미소란, 아아아.




  아. 잠시 저만의 세상에 다녀왔습니다. 흐음. 그나저나 ‘원한’이라. 그러고 보니 ‘원한’하면 바로 ‘지옥소녀 2기地獄少女 二籠, 2006’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라버리는데요. 하나 안타까운 소식은 지금 2기까지 다 본 상태로는 자정에 ‘지옥통신’에 접속하려는 원한 가늑하신 분들에게 더 이상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만 살짝 알려드려볼까 합니다. 네? 그건 또 무슨 소리냐구요? 으음. 뭐 직접 확인해주세요!!




  그럼 이번에는 기어코 보고야만 영화 ‘검은집Black House, 2007’의 감상기록으로 이어볼까 합니다. 


TEXT No. 516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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