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산
겐유 소큐 지음, 박승애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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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11 대지진은 가까이 있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잊혀져 가던 체르노빌을 소환한 것도 이때쯤이었는데,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고 방사능 오염의 실상에 살떨렸고 그런 비극이 다시 되풀이된 것에 대해 분노했다.

당장 우리에게도 경주 핵 방폐장 문제나 노후한 원전 재가동 문제 등 핵발전의 위험성이 항상 노출되어 있는데 그제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일본산 수산물이 오염되었다고 했고 일본산 맥주 화장품 심지어 생리대까지 불매운동이 일어났으며 매일 우리가 사는 곳의 방사능 수치가 계산되어 나왔고 음식물의 방사능 오염정도를 측정하는 기계까지 불티나게 팔려서 '저걸 나도 사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모든것이 그렇듯이 서서히 잊혀져갔다. 일본에서는 정부에서 스리슬쩍 국민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원전을 재가동했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고 재난의 결과는 후쿠시마 주변의 사람들만의 문제가 되었다.

 

이 책을 고른 건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 소개되는 '후쿠시마 이후 문학'이기 때문이다.

대재해와 원전사고를 겪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차마 죽음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궁금했다.

 

작가 겐유 소큐는 후쿠시마 현내에 있는 사찰의 주지스님으로  3.11 당시 재난의 중심에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생생한 재난의 실상을 표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들의 치유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모두 여섯편의 단편을 통해 재난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굉장히 비극적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삶의 희망을 붙잡아보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책을 읽다가 조금 불편해지는 대목이 있는데, 저선량 피폭에 대한 견해에 관한 것이다. 무턱대고 방사능을 무서워하고 피하는게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접근 금지구역이 아니라면 얼마간의 방사능 측정치는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나올 수 있는 수치니까 괜찮다는 태도가 많이 보였다.

 

심지어 [빛의 산]이라는 단편에서는 할아버지가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에서 나온 방사능 쓰레기들을 자기 마당 한 곳에 모아둔다. 다들 자기 동네에는 쓰레기 가설 처리장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점점 할아버지의 마당에는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쓰레기까지 쌓여서 이상한 빛을 내는 방사능 산을 이루게 되는데,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 그 곳을 자신의 화장터로 삼고, 삼십년이 지난 후에는 그곳이 방사능 투어 관광지가 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었다. 그 산에서는 매시 10마이크로시버트가 넘는 방사선이 나오는데, 완전 벨라루시 수준이라고 질겁한 아들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체르노빌 사고 나고 이십팔년이 지나서야 벨라루스는 그 정도로 내려갔다지. 그래도 죽 사람들이 살고 있었잖냐? 그런데 삼 년 전 같은 방사선량이 나온 이이타테무라는 마을이 통째로 피난을 갔잖냐."(185쪽)

 

뭐야, 방사능 좀 쐬도 죽지 않으니 호들갑 떨지 말라는건가 하고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좀 이상했는데 마지막에 이 단편 [빛의 산]에서 아들의 입을 빌려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한다.  

 

실로 많은 학자들이 양극단의 이야기를 하면서 절대 양보를 안 해. 어떤 사람은 자연 방사선량의 십만배까지는 몸에 좋은 거라며 우주 비행사도 모두 건강하지 않느냐고 주장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몇 조 엔 씩이나 써가며 미량이라도 전부 제거해야 한다고 기를 쓰잖아. 아마 호르메시스(다량의 방사선은 생물체에 피해를 주지만 소량의 방사선은 오히려 생명체의 생리활동을 촉진해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성장 촉진 또는 종양 발생률 저하 등 유익한 효과를 준다는 주장)파와 예방의학파라고 했던가? 양쪽 다 차분하게 대화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부부만 해도 그게 안되더라고.(189쪽)

 

작가가 이 단편을 책의 제일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그렇고  아마도 그곳 후쿠시마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가 제일 심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학자들이나 정부에서 명확히 밝혀준다면 그들도 혼란이 적을텐데 자기들의 체면만 중시하고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니 결국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결정은 오로지 주민들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가족들은 재해로 세상을 떠서 해체되었거나 방사능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고향을 버리면서 해체되거나 극심한 우울증으로 서로 소통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힘을 모으고,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고, 마을의 축제도 열리고 새로 결혼하는 커플도 생긴다. "뭐야,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냐고..."하면서도 "안돼, 안돼. 끝까지 노력해야지. 포기라니 말도 안돼." 라고 한다. 그들이 후쿠시마 이후를 살아가는 모습이 이 한마디에 녹아든것 같다.

 

 

엠마누엘 르파주가 그린 <체르노빌의 봄>을 보면, 시종 무채색이던 그림이 어느 순간 화사한 색을 입는다. 참사를 증언하러 간 작가는 오히려 눈부신 생명력을 보고 온다. 죽음의 땅에도 결국 봄은 왔고 그곳에는 그 땅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그림이 화사해지면서 삶의 희망이 느껴지던 그 순간처럼 후쿠시마에도 환한 생명의 빛이 퍼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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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0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우리 나라는 아니지만 멀지 않은 이야기라서 관심있게 리뷰를 읽었습니다,
작가 이름이 낯설어서 소개를 읽었는데, 아쿠타가와 수상작가더라구요,

오로라님, 편안한 밤 되세요^^

살리미 2015-11-03 21:33   좋아요 1 | URL
저에게도 무척 낯선 작가였어요.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라해도 그런 상이 있나보다~ 했는데 이제 보니 라쇼몽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념하는 상인가봐요^^ 서니데이님 덕분에 하나 또 챙겼어요^^
고마워요!! 서니데이님도 좋은밤 되세요^^

에이바 2015-11-03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글을 읽고 떠올랐어요. 이 뉴스를 대학로에 있는 돈까스 집에서 들었어요. 말 그대로 돈까스 먹다가요... 잊고 있었던 기억들...

살리미 2015-11-03 22:05   좋아요 1 | URL
그때 일본에서는 누군가 그렇게 일상의 순간과 단절되어 버렸겠죠..... 그런일이 내게 닥쳤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면 너무 무서워져요. 그리고 제가 아무리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해도 그 아픔을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챔피언 2015-11-0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사능 오염이란것이 현대판 문둥병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잘 몰라서 더 무서운, 그래서 더 배척하는. 오염 지역은 거대한 소록도가 되어버리는. 오염 지역 사람들의 입장에서 방사능을 생각해본적이 없기때문에 특별한 시선울 빌려주는 소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리미 2015-11-04 00:40   좋아요 1 | URL
방사능 오염은 정말 보이지 않는 공포죠. 저도 어느정도까지의 방사선량을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논의 보다는 무조건 원전을 막아야한다는 논리에만 치우쳐 첨엔 좀 불편하게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오염지역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게 시급한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신경 쓸 겨를이 그들에겐 없더라고요. 당장 눈에 보이는 질병이 아니니까 방사선량은 무시하고 살아가는데 급급한 사람도 있고, 그 보이지 않는 공포에 질려서 가족도 다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원하는게 과연 무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2015-11-0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후쿠시마 이후 문학...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제가 워낙 둔감하고 무심한 편이어서 일본에 사는 사람들의 공포가 어떨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비오는 날 같이걷던 친구가 ˝야, 방사능 비다!˝ 이러면 ˝응?˝ 이러고 뒤통수나 긁을 줄 알았지..

맨날 북플로만 돌아다니다가 인터넷으로 오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요. 메인 사진도 크고, 인삿말도 걸려있고.. 메뉴도 다양하고... 신기방기

살리미 2015-11-04 01:10   좋아요 0 | URL
로그인을 안하셔서 누구신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거의 북플을 이용해서 가끔 인터넷으로 접속하면 어색해요^^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디언밥 2015-11-04 01:12   좋아요 1 | URL
앗 머야 언제 로그아웃 됐지;; -_-

서재 이름 잼있어요 ㅋㅋ 아주 book적book적한 나날들 ㅎ_ㅎ

살리미 2015-11-04 01:13   좋아요 1 | URL
앗!! 인디언밥님.... ㅋㅋㅋㅋㅋ

해피북 2015-11-0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의 글은 정말 글 맛도 좋지만,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눈 댓글을 읽는 맛도 참 좋은거 같아요 ㅎㅎ 인디언밥님 처럼 저도 서재로 들어오는데 `아주 북적북적한 나날들`이라는 서재이름보고 참 좋아했던 기억도 나구요 ㅎㅎ

지난번 다락방님 서재에 놀러갔다가 오로라님과 나눈 댓글을 본 적 있는데 시사인에서 발췌된 기사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거든요. 오로라님은 다양한 분야(사회적인)까지 두루 두루 생각하시고 견해도 넓으시다는 생각을 했는데 원전에 관한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깊으시다는걸 느끼게 되었어요 ㅎㅎ 저도 오로라님처럼 촉수를 다양하게 뻗어서 다양한 관심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이 샘솟습니다. 저도 차분히 찾아 읽어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ㅋㅁㅋ~~

살리미 2015-11-05 16:46   좋아요 0 | URL
아고~ 제가 뭘 알겠습니까 ㅎㅎ 다 이웃분들이 좋게봐주시니 멋모르고 까불고 있는건 아닌지.. ㅎㅎ
제가 원래 팔랑귀라 이쪽 저쪽 들여다보길 좋아하고요~ 책을 읽다보면 요즘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나 걱정이 될 때도 많고 그렇더라고요. 저도 아직 내공이 한참 모자라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더 많이 읽고 더 공부해야죠^^

2015-11-05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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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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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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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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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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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독서단을 보는데 조승연 대신 이우성 시인이 나왔다. 아!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쓰는 그 시인이구나. 근데 그가 책을 소개하며 운다. 남자의 눈물은 흔한 법이 아닌데, 그는 무슨 사연으로 우는걸까.
그가 소개하는 책이 솔깃하다. 알고보니 저자와 이우성 시인은 친구사이였다. 저자의 삶을 잘 알고 있으니 한구절 한구절 가슴에 꽂힐테지. 갑자기 서효인이란 사람의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도 있었지만 빌려보니 않을테야! 저 책은 무조건 사야겠다. 이건 내가 서효인을 응원하는 방법이다.


책을 펼쳤다. 작가가 이야기한다. 나와 밤새 야구 얘기 할래요?
나는 좋다고 한다. 야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 남편이 야구보는 걸 제일 싫어하지만 왠지 당신의 이야기는 밤새 들을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기가 시작된다. 삶이 시작된다.

˝시작은 되는 것이 아니야. 하는 것이지.˝

아! 이사람, 벌써 좋아진다.

그는 야구를 핑계로 인생 이야기를 한다. 어릴적 엄마가 두고 간 외가집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철이 들었고, 외삼촌이 들고온 라디오에서 야구중계를 첨 듣고는 야구장은 요강처럼 동그랗다고 상상하던 소년. 글을 모르던 할아버지와 야구장에 갔던 추억을 되새기며 아직도 시를 쓰면 혹 할아버지가 들을지도 모르므로 반드시 소리내어 읽어보는 사람. 그는 야구용어를 인생용어로 바꿔놓는 재주가 있다. 하긴 삶이랑 야구랑 비슷한 면이 있긴 하다. 세상이라는 팀과 싸우는 우리는 거의 지고 가끔 이긴다. 그래도 괜찮다. 야구경기는 내일 또 있고, 우리는 내일 또 기회가 있으니까.


— 하지만 당신이 세상에 둘러싸여 대거리를 주고받을 때, 내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갈게. 어깨를 걸칠게.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살아왔고, 우리 모두는 그걸 잘 안다. 나는 당신의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 어디든 마음으로, 혹은 정신으로, 끝내는 몸으로, 우리는 같은 편.
광포한 무리들에 맞선 지금, 우리는 벤치클리어링 하러 간다.
당신과 나의 동해바다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의식. 이를 줄여서 `벤치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32쪽)


이런 다정한 말을 하는 책을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하는 말은 왠지 다 들어주고 싶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려본 그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야구를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멋진 홈런을 한방 날리는걸 보고 싶다. 하지만 그는 `번트`를 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번트는 공을 달래야 한다. 자신을 숙여야 한다. 주자를 살려야 한다. 파울라인을 살펴야 한다. 주위를 배려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아! 야구가 이렇게 멋진 운동이었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울고 웃었다.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우리의 시간은 아직 마지막이라는 글러브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이런 말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58쪽)

— 수많은 청춘들이
삶의 드래프트, 그 현장에서
묵묵하고 뜨거운 이닝을 함께 버티고 있다.
그 이닝의 끝에 있을
`역전만루홈런`을 기대한다. (133쪽)

—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서 끝내 응원할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나는 죽지 않고 태그를 피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동작은 반짝이게 마련이다. 유니폼은 더러워지겠지만, 뭐 어떤가.
그런 반짝반짝한 더러움을 `런다운`이라고 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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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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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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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5-11-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살리미 2015-11-02 17:27   좋아요 0 | URL
이제 2015년도 한달밖에 안남았네요... 왜이리 시간은 훌쩍 지나가는지... 후애님도 남은 한달 보람차게 보내시길 바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0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겠네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살리미 2015-11-02 17:28   좋아요 0 | URL
야구를 좋아하신다면 더욱 공감하실까요?? 전 야구는 하나도 모르지만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2015-11-05 15: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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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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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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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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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끌려서 보게 된 책이다.
작가 김탁환이 `왜 소설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한다. 다양한 글씨체가 뒤섞인 <임경업전>의 말미에 짧은 필사 후기가 덧붙었는데,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서는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버지는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필사를 마치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나는 공들여 필사를 마친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마지막에 아버지가 쓴 글을 읽을 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무심한 듯 다정한 저 문장! 그 한마디에 아버지의 정이 그 어떤 다정한 말보다도 더 깊이 느껴진다.

소설이 이렇게 인간과 인간을 잇는 선물이라면 평생 소설쓰는 일에 매진할 만 하다고 작가는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김탁환의 마음을 움직인 책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서평과는 좀 다르다.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그 생각의 한귀퉁이에 한두권의 책을 슬쩍 소개한다. `책은 누가 부여한 생명이 아니라 제 생명으로 거기 있다. 김탁환의 산문집은 책의 생명록이다.` 황현산 선생님의 책소개 또한 멋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이 책 표지를 펼칠 수가 있게 디자인 되어, 표지를 펼치면 작가가 얘기했던 책들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책에 대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와 술한잔 하며 그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 되었다. 팟캐스트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대한 글에서는 같은 대목을 듣고 같은 부분을 공감한다는 반가움에 건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책을 읽다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어 포스트잇에 써서 딸 책상에 붙여놓았다. 카네기맬런대 랜디 포시 교수는 그를 눈물로 부서지게 했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 167센티미터의 장벽, 사랑하는 여인 재이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재이는 끝내 이별을 통보했다. 그 순간 체념하고 돌아섰다면 재이를 아내로 맞이하는 행복은 없었을 것이다. 상처받은 후에도 그는 재이를 따뜻하게 감싸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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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0-30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정말 책표지 독특하고 좋았어요.^^
표지를 벗겨 쫙 펼치면 52 권의 책들이 도표처럼
멋지게 나타나지요~~

살리미 2015-10-30 09:10   좋아요 0 | URL
생각지도 못했다가 깜짝 놀랐어요^^ 마치 책 52권을 선물받은 느낌이랄까 ㅎㅎ 참 좋은 아이디어에요^^

해피북 2015-10-3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얏. 정말 표지도 멋지구 내용도 뭉클하네요 ㅎㅎ

살리미 2015-10-30 14:18   좋아요 1 | URL
ㅎㅎ 아마 저 책 사놓고도 표지 안펼쳐보실 분이 계실까봐 일부러 사진까지 찍어올렸어요^^

2015-10-30 14: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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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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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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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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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라고는 동네 뒷산도 가뭄에 콩나듯 오르는 내가 등산을 소재로한 영화나 책에 관심을 가질리가 없다. 어려서부터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했고 한라산을 지척에 두고 살았지만 학교에서 다같이 오르는 행사때 말고는 산 근처에 가지도 않았던 나다.

산을 좋아하기는 한다. 차로 갈 수 있는 범위까지만! 차로 가서 경치를 즐기고 차나 한잔 마시고 다시 차를 타고 내려오는게 내가 산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래서 한라산 1100고지에 있는 전망대 찻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의 묘지가 있다. 아직도 그가 정상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태극기를 품고 찍은 사진이 기억에 생생하다. 게다가 그가  제주도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왜 그리 자랑스러웠는지! 검색해보니 그는 1977년에 등정에 성공했고, 세계 최초로 기상조건이 안좋은 9월 몬순기간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를 떠올리며 영화 <에베레스트>를 보았다. 에베레스트는 내가 오를 엄두를 내지도 못할 산이니 이런 기회에나 봐야한다.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던 등반대중 1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 사건을 다룬 실화였다. 영화는 담담하게 두달여간의 등반일정을 보여주는데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산을 오르는 듯한 전율과 공포를 느꼈다.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그들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는 내 폐까지 쪼그라들게 했다. 영화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나는 영화 속 장면 몇가지가 이해가 안가는 점도 있고 해서 검색을 하다가 그 때의 일을 기록한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 푹 빠져들었다. 마치 로브 홀의 어드벤쳐 컨설턴트 등반대의 일원이 되어 그 여정을 함께 하는 듯 했다.

 

 

에베레스트! 세계 최고봉! 그런 산을 오른다는 건 분명 목숨을 건 도전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의 늘어가면서 어느새 '힘들지만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누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으니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일반인들이 돈을 내면 등반을 도와주는 상업등반대들이 등장한다. 로브 홀은 전문산악인으로도 아주 훌륭했지만 자기 직업의 장기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산악인들이 기업체들로부터 후원을 얻으려면 판돈을 자꾸 높여야 한다. 즉 다음 등반은 먼젓번 등반보다 좀더 어려운 것이어야 하고 극적이라야 한다. 그건 일종의 악순환이라서 결국 위태로운 사고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산악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산 등반을 하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기로 한다. 당시엔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강렬할 때였으므로 돈은 많지만 높은 산을 제힘으로 오르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몽상가들로 이루어진 미개척 시장을 노린 어드벤쳐 컨설턴트라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의 성공을 계기로 이런 회사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에베레스트라는 성지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장이 되어가고, 누가 정상에 더 많은 사람들을 올리느냐 하는 경쟁의 장이 되었다. 미국인 스콧 피셔가 마운틴 매드니스라는 회사를 차려서 로브 홀의 경쟁자로 이날 등반에 함께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아웃사이드>잡지의 기자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상업적 등반대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취재하기 위해 로브 홀의 등반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그토록 많은 준비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엄홍길 대장의 16좌 정복! 이런 기사를 보면서도 힘들었겠구나 생각만 했지 이 정도인줄은 몰랐던 거다. 뭐든지 상업화가 된다는 건 경쟁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이 책에서 그 실상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안좋은 점만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전문 산악인들만 산을 탈때보다 더 산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좋은 면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정상에서 병목현상이 생겨서 위험해지는 문제점이 가장 크다.

 

 

높은 고도에서는 두통과 피로에 시달리는 것 말고도 높은 고도로 인한 뇌수종, 폐수종,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설맹이 올 수 있고 뇌세포의 파괴로 정신적인 착란이 일어나거나,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너무 심한 추위속에서 강풍을 경험하면 오히려 몸의 온도가 올라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서 옷을 다 찢어버리고 사망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강인한 체력과 산악 경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전하기 어려운 곳이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만큼 안전에 또 안전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또 산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적정 시간을 넘기면 산소부족으로 힘들어질 수 있어서 시간관리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한 산에는 여러 팀의 등반대원들이 몰려 있었고, 산을 오르려면 마트에서 줄 서듯이 늘상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악조건 속에서 곳곳에서 한시간 이상씩 대기 해야만 하는 상황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정상을 눈앞에 두고서라도 포기하고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 로브 홀은 굉장히 꼼꼼하게 모든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어서 그의 리더쉽은 누구보다 빛났지만 그도 많은 등반대의 의견을 다 조율하기에 힘이 부쳤다. 홀 팀은 그 어느 팀보다 안전에 힘썼지만 역설적이게도 다른 팀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가 에베레스트에서는 일반적인 도덕윤리를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나 스스로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가령, 조난자를 만났는데 정상 정복을 위해 혹은 내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그를 도와줄 것인가.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고 그를 돕다간 나도 같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데 버려두고 갈 수 있을까. 저자가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동료의 죽음이 내 책임처럼 느껴지는 거다. 책을 읽다보면 그들 하나하나의 죽음이 다 개별적으로 안타깝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것처럼 그것은 12명이 사망한 한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열 두개의 사건이었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도 포기 할 줄 알았던 세명의 대원들이 멋있어보였다. 그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정상을 향해 몇발자국 더 가는 일 보다 뒤돌아서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백만장자 샌디 피트먼의 민폐등반은 나를 자주 분노하게 했다. 아마 이 책이 나왔을때 가장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이 책은 그날의 일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하는데 힘쓰고, 이 일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한가지 이유로 원인을 말할수도 또 대책을 강구할 수도 없어보인다. 영화속에 등장했던 대사처럼 이 일은 인간과 인간의 경쟁이 아니다. '인간 모두와 산의 경쟁'이며 언제나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산이다. 에베레스트는 그만큼 냉혹하고 엄정하다.

 

"어떤 사람들은 큰 꿈들을 갖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작은 꿈들을 갖고 있어. 네가 어떤 꿈들을 갖고 있든 간에 중요한 건 꿈꾸기를 그치지 않는 거란다."  더그 한센이 초등학생 바네사에게 쓴 엽서다.

65000달러나 하는 에베레스트 등반 비용을 대기 위해 목수와 우체부로 일하며 돈을 모은 더그 한센은 티셔츠를 팔아 후원금을 모아 준 근처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산을 오른다. 그리고 그는 세번째 도전인 그날의 등반에서 에베레스트에 영원히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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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0-30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이 책 있는데 아직 안 읽었습니다. 어디 쳐박힌 줄도 모르겠네요....
요거 영화로도 나오지 않았나요 ?

살리미 2015-10-30 06:46   좋아요 0 | URL
네^^ 영화 <에베레스트>가 얼마전에 개봉했어요. 저도 그 영화를 보고 이 책 읽게 된건데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더욱 실감이..... ㅎㅎ

붉은돼지 2015-10-3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읽고 저 책을 구입했었던 것 같은데....물론 읽지는 않았고요....곰발님 처럼 저도 집구석에 찾아 보면 어디 있을듯 한데.....함 찾아봐야겄어요 ㅋㅋㅋ

appletreeje 2015-10-30 11:53   좋아요 1 | URL
아흑, <마운틴 오딧세이> 저도 좋아서 막 선물하곤 했어욤...^^

살리미 2015-10-30 14:02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제가 고를만한 책이 아니었을텐데... 너무 재밌어서 저도 의외였어요 ㅎㅎ 갑자기 마운틴 오딧세이도 땡기네여.... 이러다 산타러 다니게 되는건 아닌지 ㅎㅎ

boooo 2015-10-3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조금 읽다가 멈췄네요. 최근에 에베레스트 보고 책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리미 2015-10-30 14:07   좋아요 0 | URL
영화 보셨군요^^ 재미있으셨나요? 평소에도 사진을 통해 봤지만 영화 속에서 본 피라미드 모양의 에베레스트 정상이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영화만 봤을땐 처음에 좀 지루하다고 생각되었던 부분이 책을 읽으니 자세하게 잘 설명이 되어서 영화가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봤어요^^

물고기자리 2015-10-3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던 영화예요. 근데 영화도 영화지만 한라산을 지척에 두고 사셨다는 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살리미 2015-10-30 14:10   좋아요 0 | URL
한라산이 가까이 있을땐 좋은줄도 몰랐어요^^ 제주도에서는 고등학생때 무조건 한라산 등반을 한번 하는데 그때 정상까지 올라간 거 말고는 한번도 산을 걸어서 올라본 적이 없을정도니까요^^ 그래도 심심할때마다 버스를 타고 천백고지가서 차마시고 오곤 했는데 이젠 이렇게 멀리와서 자주 가지도 못하네요^^

hope 2015-10-3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책!

살리미 2015-10-30 14:12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저도 책 읽으며 진짜 많은 걸 느끼고 메모도 많이 하곤 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의외로 힘들더라고요. 아직은 제 글솜씨가 그 감동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인가봐요 ㅠㅠ

린다 2015-10-30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ㅎㅎ 책진짜 스릴넘치고 재미있을거같네요! 이책을 보면서 재미도 느끼겠지만 사람에 대한 또다른 무언가를 느낄수 있을거 같습니다ㅎㅎ 리뷰 진짜 맘에들어요!! 감사합니다ㅎㅎ

살리미 2015-10-30 17:35   좋아요 0 | URL
저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죠... 아니 대체 왜 그고생을 하면서 거길 그렇게 올라... ㅉㅉ... , 또는 이번에 개봉한 하늘을 걷는 남자처럼 아니 대체 왜 그 높은데서 줄을 타는거야..... 하는 뭐 그런.... ㅎㅎ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들 곁에 조금은 다가가 있는 느낌이었달까요?? 허접한 글 맘에 들어해줘서 눈물나게 고마워요ㅠㅠ
 
유학자의 동물원 - 조선 선비들의 동물 관찰기 그리고 인간의 마음
최지원 지음 / 알렙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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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책을 사게 됐을까? 사실 조금은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열하일기를 읽으며 박지원의 문장들을 보면서 새삼 놀랐던 적이 많았기에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라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옛 고전들을 읽기는 쉽진 않은데, 고전을 읽다보면 의외로 재미있어서 누군가가 엑기스들만 모아놓은 책을 읽으면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선비들, 동물을 관찰하며 인간의 고통을 이야기하다! 라는 광고가 내 구미를 당겨 클릭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쳤는데,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분명히 한글로 써 있건만 주~욱 읽다가 으...응? 하게 되는 곳이 많았다. 하마터면 책을 덮을 뻔 했다. 게다가 재밌는 소설을 함께 읽던 터라 자꾸 소설책으로만 손이 가고, 이 책은 내가 돈 주고 샀으니 무조건 읽어야한다는 각오로 숙제를 하듯 하루 몇페이지씩 정해놓고 읽지 않으면 도무지 끝까지 갈 수 없을 듯 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가끔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희안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결국 마지막까지 왔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알라딘책소개에 매우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오늘은 불친절한 리뷰가 될 것이다.)  내용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어서 내가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알라딘 책소개를 보고 아~ 이런 내용이었군! 할 정도였으니...@@

 

저자의 생각을 그때 그때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유학자들의 동물관찰기가 아주 흥미롭기도 했지만 사실 책을 덮은 지금 저자가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 마치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풀어줄 땐 잘 알겠는데 니가 나와서 풀어봐라 하면 막막해지는 느낌.... 이렇게 한계를 절감하며 리뷰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문득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벌레와 짐승은 자연의 도구라는 자신의 숙명을 모른다. 도구의 숙명을 아는 아는 도구가 사람이다. 방 안에 갇힌 숙명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방을 나와 다른 방을 구경할 수 있다. 바로 다른 짐승의 방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벌레, 고양이, 새의 방을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리며 기계의 숙명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유학자들이 말하는 '습성이 천성이 되는' 상태이자 인간성이라는 기술의 한 방법이다.(341쪽)

 

인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유학자들은 방 안에 갇힌 숙명을 깨달은 사람처럼 이방 저방, 즉 다른 동물들, 하찮은 미물까지 다  들여다보며 인간성에 대해 탐구를 했다. 그들의 관찰은 지금의 과학자들이 본다면 비웃을 정도로 너무나 소박하고 때론 너무나 엉뚱하지만 둥물을 관찰하며 배우는 철학은 매우 심오하고 깊다. 그나저나 방 안에  갇힌 숙명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방을 나올 수 있는 것처럼 한계를 깨달은 나는 여기서 포기 할게 아니라 이 책 저 책 더 열공해야 하겠지....까불지 말고 더 많이 읽어라! 이 책이 내게 주는 교훈이다.

 

심오한 철학으로 포장하긴 어렵지만 나름 재밌었던 부분들을 적어보자면,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육식에 대한 생각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육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의 채식주의자와는 또다른 입장에서 육식을 조심하는데, 무엇보다도 조선에서 소 도축을 금지하고 소를 먹지 말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말똥구리에 대한 관찰로 유명한 파브르보다 100여년이나  더 앞서서 이익이 성호사설에 말똥구리의 도둑질을 관찰하고 적어 놓은 것이 있는데 이익은 말똥구리만이 아니라 온갖 동물들을 다 아우르는 정말 훌륭한 관찰자다. 그의 암평아리 이야기에서는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탄했던 대목 중 하나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실린 쥐의 계란 쟁탈 특공작전이다.

 

한 마리 쥐가 닭장에 침입하여 네 발로 계란을 안고 누우면 다른 쥐가 그 쥐꼬리를 물어 당겨서 닭장 밖으로 떨어진다. 그리고는 그 쥐꼬리를 다시 물어 당겨서 쥐구멍으로 운반한다. 또 병에 기름이나 꿀이 있으면 병에 올라 앉아 꼬리로 묻혀내어 몸을 돌려 그 꼬리를 핥아 먹는다. (......) 가령 한마리 쥐가 알을 안고 눕더라도 다른 쥐가 그 꼬리를 물고 끌 줄을 어떻게 아는가. (244쪽)

 

닭장에서 계란을 훔치는 쥐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몸으로 감싸고 몸으로 감싸느라 기동력이 없어진 쥐를 옮겨줄 다른 쥐와 협력한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자 관찰이다.

 

리뷰를 정리하려는데 자꾸만 이 책에 정이 든다. 재미난 부분을 꼽아보자니 한도 끝도 없는데 손가락이 아파 다 못쓰니 아쉬울 따름이다. (응? 아까 분명 어렵다고 징징댔는데??)

 

정리하는 의미로 내가 관찰한 동물이야기를 하나 써보자면,

집 앞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바닥에 떨어진 사과 한조각을 발견한 비둘기가 다가왔다. 부리로 콕콕 사과를 쪼는데 어떻게들 알고 비둘기가 한마리씩 모여든다. 세마리가 모여 사과를 사이좋게 콕콕 찍어 먹는데 어디선가 까치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와 비둘기를 다 쫓아냈다. 그리곤 사과를 먹을 줄 알았더니 입에 물고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 근처 나무밑에다가 숨겨놓고 나뭇잎으로 덮어 두는 것이다. 그리고 휙~ 날아 올라서 근처 삼층 건물 옥상에서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거기서 지켜보다가 먹을것이 있는 걸 감지하고 훔치러 온것이다.

우와~까치가 동네 대장이구나! 근데 그놈 참 얄밉다. 지가 먹을 것도 아니면서 비둘기들 못먹게 하려고 사과를 뺏은건가! 닭둘기라고 미움받는 비둘기도 참 살아가기 힘들겠구나. 그후 나는 까치의 못된 행태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곤 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이익이 먹을 것을 숲속에 숨기는 까마귀와 까치의 습성을 관찰하여 적어두었다는 것을 알았다.사과를 숨긴건 까치의 습성이었던 것이다.  

 아깝다! 나도 이익처럼 "이는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아낸 것이다."라고 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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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26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소설에서 까마귀에 대한 묘사를 해 놓은 걸 보고 완전 반한 기억이 있어요.
그 녀석이 두뇌가 엄청 좋기도 하지만 재치가..거의 사람 수준...이랄까.. (약간 오버인지 몰라도)암튼 걔들 셋이 덤비면 꼼짝없이 사람이 바보..되기 좋구나..알았네요
까치는 우리 나라만..유독 호조라..하는데..동화의 잘못된
와전이 아닐까..생각을 가끔해요. (음...어딘가의..누군가에 의한 의도적 변환 ..이랄까?)

살리미 2015-10-26 13:12   좋아요 1 | URL
저도 다큐멘터리에서 까마귀의 행동을 보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치만 제주도에 유독 많았던 건지, 아직도 어릴적 산소에 갔을때 유독 무시무시하게 들리던 까마귀들의 소리가 잊혀지질 않아요. 몇년전엔 제주4.3평화 공원에서 참혹한 심정으로 관람을 마치고 나왔는데 마당에 있던 가지만 앙상한 퐁낭(팽나무)에 까마귀떼가 모여 앉아있는게 마치 슬픈 원혼들 같아서 너무 무서웠던 생각도 드네요. 아뭏든 까마귀는 효를 아는 새라는데 그 겉모습때문에 많이 손해보는 동물임엔 틀림없어요^^ 오히려 까치는 좋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많이 준다고 하고요^^ 생각해보니 이것도 다 외모지상주의때문인가요? ㅋㅋㅋㅋㅋ

[그장소] 2015-10-2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이름 부터 마귀 ㅡㅎㅎ 둘다 까 ㅡ씨인데 참 이상한 일예요.
까치울면 반가운 ..까마귀울면 ..안좋은
까치야 먼저 나서지만 .
까마귀는 지켜보고 나중에 보고하듯 운다고나 할까...
그 애들은 워낙 잡식에..육식에 안가리니..
길들이거나 하면 좋겠어요.ㅋ 한마리 친구 삼아 ㅡㅡ;
비둘기도 되는데..매도 ..까치는 모르겠네요..은혜갚은 까치 말고 뭐 또 있나요? -알고보니 얘도 기억력 좋아 이런건 ..설마...
외모 지상...완전 웃음!

살리미 2015-10-26 13:32   좋아요 1 | URL
앗 ㅋㅋ 마귀 였어요!!!! 까.... 마귀!!!

[그장소] 2015-10-2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ㅡ저도 자연 사랑합니다 ㅡ동물 학대 싫어요!^^
ㅎㅎㅎ ㅡ혹 ㅡ길들이기 때문에 뭐라하시면 울..겁니다.흑!
농담을 다큐로 받으시면...

살리미 2015-10-26 13:3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 책에 비둘기를 길들인 소년에 대한 이덕무의 글이 있어요. 이덕무의 행랑채에 살던 소년이 비둘기를 지나치게 좋아하여 옷입고 밥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는데 하루는 그 비둘기를 개가 물어가버렸대요. 소년이 얼른 쫓아가 비둘기를 뺏었지만 이미 비둘기는 죽어버렸죠. 소년은 매우 슬퍼하며 곧 비둘기 털을 뽑고 구워먹었는데 고기는 꽤 맛있었다고 했대요... ㅋ
유학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애초에 먹을 수 있는 관계에서는 친구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먹지 않겠다는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할 너는 애초에 친구 자격이 없다. 비둘기의 입장에서 너는 얼마나 무서운 존재겠느냐.... 뭐 이런 뉘앙스였는데. ㅋㅋㅋㅋ 죄송하지만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나서^^

괜찮아요^^ 길들이고 사랑하는 걸 누가 뭐라 하겠어요 ㅎㅎ 먹지만 않으신다면야 ㅋㅋㅋㅋ

[그장소] 2015-10-26 13:36   좋아요 0 | URL
아...제가 까마귀 고기를 먹어야 하는 병에 걸리면..어떻하나요?!^^
일단 ㅡ제 선에선 먹을 일이 없으니...누군가 비둘기라고 속여 먹이지 않는 한 (뭥?! 그건 먹..먹는거냐?)
아무래도....
요즘 치킨 집은 확 늘고..도심의 닭둘기 들은 줄었어요......어..어딛니???!!!

살리미 2015-10-26 13:3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아.... 그런 상황을 다 고려하시다니!! 역시 그장소님이세요^^ 그럼 일단 비상용으로다가 까마귀는 길들이지 마세요.....(뭐... 뭐래니....)
치킨집과 닭둘기의 관계라.... 신종 음모론인가요???

[그장소] 2015-10-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건 저 아닌 다른 분들이 까마귀고길 드셔서 모른다고 할겁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자꾸 모른다고 하는 걸 보면....뭔가...음...
비상용 말고 상비용 으로...아니지..
이러다...비상식 ㅡ량 되는 게...아이구 ...

살리미 2015-10-26 13:48   좋아요 1 | URL
아.... 까마귀의 충효를 보고 배우랬더니 ..까마귀 고기를 드신 걸로 짐작되는 분들이 계시시는구만요.... 역시.... 그들다워요...
항상 모든 문제는 기 승 전 정치 ㅋㅋㅋ 일단 까마귀에게 애도를^^

[그장소] 2015-10-26 13:50   좋아요 0 | URL
아..식량문제..미래식량 문제로 우리 얘기중 아녔...쩝! (뭐..먹은..게냐!)

살리미 2015-10-26 13:51   좋아요 1 | URL
앗! 그렇죠? ㅋㅋㅋ 어제 먹은 치킨이 수상해요......

[그장소] 2015-10-2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치킨대전 ㅡ할때....슬슬 조짐이..보였어..욤..
그럼 불쌍한 녀석들 위해 애도를 해야하니..니네치킨에 시킬까요?

살리미 2015-10-26 14:02   좋아요 1 | URL
ㅠㅠ 애도를 위해 니네치킨을..... 저는 프라닭으로 할게요.... ㅠㅠ

[그장소] 2015-10-26 14:04   좋아요 1 | URL
그럼 각자..취향입니까!존중해드립니다 ㅡ로...^^

꼬마요정 2015-10-26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쓰신 리뷰도 흥미진진한데 댓글은 더 재미납니다~ 까마귀에서 통닭 대전까지.. 각종 음모론에 미래 식량 ㅋㅋ 재밌게 보고 갑니다. 이 책 은근 땡기네요~~

살리미 2015-10-26 16:33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이 워낙 센스넘치셔서요^^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책의 내용과는 좀 동떨어지는 리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나름대로 이해한거라서요^^

후애(厚愛) 2015-10-26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댓글이 재미있어요.^^
웃으면서 읽었어요~ ㅎㅎ
책도 궁금한데 담아갑니다~
편안한 오후되시고요, 즐겁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살리미 2015-10-26 19:14   좋아요 1 | URL
저도 한참 웃었답니다^^ 후애님! 맛난 저녁 드세요^^

해피북 2015-10-29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오로라님의 리뷰와 아래 재미난 댓글을 읽으니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그런데 발췌해놓으신 글을 읽어보니 왜 진도가 팍팍 안나가셨는지 이해가되는것 같아요. 이 책도 일종에 번역본이라서 아마도 그런면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오로라님의 글에 맛깔스러움이 또 책속에 등장하는 `이덕무` 때문에 꼭 살펴봐야겠어요 ㅋㅋ 아! 그리고 저는 만화에서만 쥐들이 꼬리로 음식을 먹는줄 알았는데 정말 꼬리를 사용해서 음식을 먹기도 하는군요 ㅋㅋ

살리미 2015-10-29 15:02   좋아요 0 | URL
동물에 대한 얘기인줄 알았는데 철학얘기였어요. 유학자들의 심오한 철학을 풀어낸 저자의 글이 제가 이해하기엔 오래걸리더군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라는 책에 동물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이덕무의 얘기도 많이 인용돼요. 안그래도 읽다가 전에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좋았다는 해피북님 얘기가 생각나서, 해피북님 보시면 좋아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갑자기 날이 추워졌어요! 감기조심하세요^^

나하나 2015-11-2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읽다보니 점점 나도 모르게 자꾸 빨려갑니다. 많이 사색하게 하는군요. 감서 합니다. 또 다시 멋진 책이 나와 주기를 기대합니다.

살리미 2015-11-29 15:29   좋아요 0 | URL
읽고나서 많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겠죠? 흥미롭게 읽은 책도 덮어놓고 보면 기억이 안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은 읽을 땐 잘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되짚어 볼 때마다 좋았던 구절들이 생각납니다.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주신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