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등산이라고는 동네 뒷산도 가뭄에 콩나듯 오르는 내가 등산을 소재로한 영화나 책에 관심을 가질리가 없다. 어려서부터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했고 한라산을 지척에 두고 살았지만 학교에서 다같이 오르는 행사때 말고는 산 근처에 가지도 않았던 나다.

산을 좋아하기는 한다. 차로 갈 수 있는 범위까지만! 차로 가서 경치를 즐기고 차나 한잔 마시고 다시 차를 타고 내려오는게 내가 산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래서 한라산 1100고지에 있는 전망대 찻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의 묘지가 있다. 아직도 그가 정상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태극기를 품고 찍은 사진이 기억에 생생하다. 게다가 그가  제주도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왜 그리 자랑스러웠는지! 검색해보니 그는 1977년에 등정에 성공했고, 세계 최초로 기상조건이 안좋은 9월 몬순기간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를 떠올리며 영화 <에베레스트>를 보았다. 에베레스트는 내가 오를 엄두를 내지도 못할 산이니 이런 기회에나 봐야한다.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던 등반대중 1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 사건을 다룬 실화였다. 영화는 담담하게 두달여간의 등반일정을 보여주는데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산을 오르는 듯한 전율과 공포를 느꼈다.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그들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는 내 폐까지 쪼그라들게 했다. 영화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나는 영화 속 장면 몇가지가 이해가 안가는 점도 있고 해서 검색을 하다가 그 때의 일을 기록한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 푹 빠져들었다. 마치 로브 홀의 어드벤쳐 컨설턴트 등반대의 일원이 되어 그 여정을 함께 하는 듯 했다.

 

 

에베레스트! 세계 최고봉! 그런 산을 오른다는 건 분명 목숨을 건 도전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의 늘어가면서 어느새 '힘들지만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누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으니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일반인들이 돈을 내면 등반을 도와주는 상업등반대들이 등장한다. 로브 홀은 전문산악인으로도 아주 훌륭했지만 자기 직업의 장기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산악인들이 기업체들로부터 후원을 얻으려면 판돈을 자꾸 높여야 한다. 즉 다음 등반은 먼젓번 등반보다 좀더 어려운 것이어야 하고 극적이라야 한다. 그건 일종의 악순환이라서 결국 위태로운 사고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산악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산 등반을 하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기로 한다. 당시엔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강렬할 때였으므로 돈은 많지만 높은 산을 제힘으로 오르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몽상가들로 이루어진 미개척 시장을 노린 어드벤쳐 컨설턴트라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의 성공을 계기로 이런 회사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에베레스트라는 성지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장이 되어가고, 누가 정상에 더 많은 사람들을 올리느냐 하는 경쟁의 장이 되었다. 미국인 스콧 피셔가 마운틴 매드니스라는 회사를 차려서 로브 홀의 경쟁자로 이날 등반에 함께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아웃사이드>잡지의 기자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상업적 등반대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취재하기 위해 로브 홀의 등반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그토록 많은 준비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엄홍길 대장의 16좌 정복! 이런 기사를 보면서도 힘들었겠구나 생각만 했지 이 정도인줄은 몰랐던 거다. 뭐든지 상업화가 된다는 건 경쟁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이 책에서 그 실상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었다. 안좋은 점만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전문 산악인들만 산을 탈때보다 더 산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좋은 면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정상에서 병목현상이 생겨서 위험해지는 문제점이 가장 크다.

 

 

높은 고도에서는 두통과 피로에 시달리는 것 말고도 높은 고도로 인한 뇌수종, 폐수종,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설맹이 올 수 있고 뇌세포의 파괴로 정신적인 착란이 일어나거나,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너무 심한 추위속에서 강풍을 경험하면 오히려 몸의 온도가 올라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서 옷을 다 찢어버리고 사망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강인한 체력과 산악 경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전하기 어려운 곳이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만큼 안전에 또 안전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또 산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적정 시간을 넘기면 산소부족으로 힘들어질 수 있어서 시간관리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한 산에는 여러 팀의 등반대원들이 몰려 있었고, 산을 오르려면 마트에서 줄 서듯이 늘상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악조건 속에서 곳곳에서 한시간 이상씩 대기 해야만 하는 상황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정상을 눈앞에 두고서라도 포기하고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 로브 홀은 굉장히 꼼꼼하게 모든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어서 그의 리더쉽은 누구보다 빛났지만 그도 많은 등반대의 의견을 다 조율하기에 힘이 부쳤다. 홀 팀은 그 어느 팀보다 안전에 힘썼지만 역설적이게도 다른 팀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가 에베레스트에서는 일반적인 도덕윤리를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나 스스로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가령, 조난자를 만났는데 정상 정복을 위해 혹은 내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그를 도와줄 것인가.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고 그를 돕다간 나도 같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데 버려두고 갈 수 있을까. 저자가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동료의 죽음이 내 책임처럼 느껴지는 거다. 책을 읽다보면 그들 하나하나의 죽음이 다 개별적으로 안타깝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것처럼 그것은 12명이 사망한 한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열 두개의 사건이었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도 포기 할 줄 알았던 세명의 대원들이 멋있어보였다. 그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정상을 향해 몇발자국 더 가는 일 보다 뒤돌아서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백만장자 샌디 피트먼의 민폐등반은 나를 자주 분노하게 했다. 아마 이 책이 나왔을때 가장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이 책은 그날의 일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하는데 힘쓰고, 이 일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한가지 이유로 원인을 말할수도 또 대책을 강구할 수도 없어보인다. 영화속에 등장했던 대사처럼 이 일은 인간과 인간의 경쟁이 아니다. '인간 모두와 산의 경쟁'이며 언제나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산이다. 에베레스트는 그만큼 냉혹하고 엄정하다.

 

"어떤 사람들은 큰 꿈들을 갖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작은 꿈들을 갖고 있어. 네가 어떤 꿈들을 갖고 있든 간에 중요한 건 꿈꾸기를 그치지 않는 거란다."  더그 한센이 초등학생 바네사에게 쓴 엽서다.

65000달러나 하는 에베레스트 등반 비용을 대기 위해 목수와 우체부로 일하며 돈을 모은 더그 한센은 티셔츠를 팔아 후원금을 모아 준 근처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산을 오른다. 그리고 그는 세번째 도전인 그날의 등반에서 에베레스트에 영원히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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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0-30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 이 책 있는데 아직 안 읽었습니다. 어디 쳐박힌 줄도 모르겠네요....
요거 영화로도 나오지 않았나요 ?

살리미 2015-10-30 06:46   좋아요 0 | URL
네^^ 영화 <에베레스트>가 얼마전에 개봉했어요. 저도 그 영화를 보고 이 책 읽게 된건데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더욱 실감이..... ㅎㅎ

붉은돼지 2015-10-3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읽고 저 책을 구입했었던 것 같은데....물론 읽지는 않았고요....곰발님 처럼 저도 집구석에 찾아 보면 어디 있을듯 한데.....함 찾아봐야겄어요 ㅋㅋㅋ

appletreeje 2015-10-30 11:53   좋아요 1 | URL
아흑, <마운틴 오딧세이> 저도 좋아서 막 선물하곤 했어욤...^^

살리미 2015-10-30 14:02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제가 고를만한 책이 아니었을텐데... 너무 재밌어서 저도 의외였어요 ㅎㅎ 갑자기 마운틴 오딧세이도 땡기네여.... 이러다 산타러 다니게 되는건 아닌지 ㅎㅎ

boooo 2015-10-3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조금 읽다가 멈췄네요. 최근에 에베레스트 보고 책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리미 2015-10-30 14:07   좋아요 0 | URL
영화 보셨군요^^ 재미있으셨나요? 평소에도 사진을 통해 봤지만 영화 속에서 본 피라미드 모양의 에베레스트 정상이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영화만 봤을땐 처음에 좀 지루하다고 생각되었던 부분이 책을 읽으니 자세하게 잘 설명이 되어서 영화가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봤어요^^

물고기자리 2015-10-3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던 영화예요. 근데 영화도 영화지만 한라산을 지척에 두고 사셨다는 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살리미 2015-10-30 14:10   좋아요 0 | URL
한라산이 가까이 있을땐 좋은줄도 몰랐어요^^ 제주도에서는 고등학생때 무조건 한라산 등반을 한번 하는데 그때 정상까지 올라간 거 말고는 한번도 산을 걸어서 올라본 적이 없을정도니까요^^ 그래도 심심할때마다 버스를 타고 천백고지가서 차마시고 오곤 했는데 이젠 이렇게 멀리와서 자주 가지도 못하네요^^

hope 2015-10-3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책!

살리미 2015-10-30 14:12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저도 책 읽으며 진짜 많은 걸 느끼고 메모도 많이 하곤 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의외로 힘들더라고요. 아직은 제 글솜씨가 그 감동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인가봐요 ㅠㅠ

린다 2015-10-30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ㅎㅎ 책진짜 스릴넘치고 재미있을거같네요! 이책을 보면서 재미도 느끼겠지만 사람에 대한 또다른 무언가를 느낄수 있을거 같습니다ㅎㅎ 리뷰 진짜 맘에들어요!! 감사합니다ㅎㅎ

살리미 2015-10-30 17:35   좋아요 0 | URL
저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죠... 아니 대체 왜 그고생을 하면서 거길 그렇게 올라... ㅉㅉ... , 또는 이번에 개봉한 하늘을 걷는 남자처럼 아니 대체 왜 그 높은데서 줄을 타는거야..... 하는 뭐 그런.... ㅎㅎ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들 곁에 조금은 다가가 있는 느낌이었달까요?? 허접한 글 맘에 들어해줘서 눈물나게 고마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