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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의 동물원 - 조선 선비들의 동물 관찰기 그리고 인간의 마음
최지원 지음 / 알렙 / 2015년 8월
평점 :
내가 왜 이 책을 사게 됐을까? 사실 조금은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열하일기를 읽으며 박지원의 문장들을 보면서 새삼 놀랐던 적이 많았기에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라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옛 고전들을 읽기는 쉽진 않은데, 고전을 읽다보면 의외로 재미있어서 누군가가 엑기스들만 모아놓은 책을 읽으면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선비들, 동물을 관찰하며 인간의 고통을 이야기하다! 라는 광고가 내 구미를 당겨 클릭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쳤는데,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분명히 한글로 써 있건만 주~욱 읽다가 으...응? 하게 되는 곳이 많았다. 하마터면 책을 덮을 뻔 했다. 게다가 재밌는 소설을 함께 읽던 터라 자꾸 소설책으로만 손이 가고, 이 책은 내가 돈 주고 샀으니 무조건 읽어야한다는 각오로 숙제를 하듯 하루 몇페이지씩 정해놓고 읽지 않으면 도무지 끝까지 갈 수 없을 듯 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가끔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희안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결국 마지막까지 왔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알라딘책소개에 매우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오늘은 불친절한 리뷰가 될 것이다.) 내용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어서 내가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알라딘 책소개를 보고 아~ 이런 내용이었군! 할 정도였으니...@@
저자의 생각을 그때 그때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유학자들의 동물관찰기가 아주 흥미롭기도 했지만 사실 책을 덮은 지금 저자가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 마치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풀어줄 땐 잘 알겠는데 니가 나와서 풀어봐라 하면 막막해지는 느낌.... 이렇게 한계를 절감하며 리뷰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문득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벌레와 짐승은 자연의 도구라는 자신의 숙명을 모른다. 도구의 숙명을 아는 아는 도구가 사람이다. 방 안에 갇힌 숙명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방을 나와 다른 방을 구경할 수 있다. 바로 다른 짐승의 방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벌레, 고양이, 새의 방을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리며 기계의 숙명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유학자들이 말하는 '습성이 천성이 되는' 상태이자 인간성이라는 기술의 한 방법이다.(341쪽)
인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유학자들은 방 안에 갇힌 숙명을 깨달은 사람처럼 이방 저방, 즉 다른 동물들, 하찮은 미물까지 다 들여다보며 인간성에 대해 탐구를 했다. 그들의 관찰은 지금의 과학자들이 본다면 비웃을 정도로 너무나 소박하고 때론 너무나 엉뚱하지만 둥물을 관찰하며 배우는 철학은 매우 심오하고 깊다. 그나저나 방 안에 갇힌 숙명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방을 나올 수 있는 것처럼 한계를 깨달은 나는 여기서 포기 할게 아니라 이 책 저 책 더 열공해야 하겠지....까불지 말고 더 많이 읽어라! 이 책이 내게 주는 교훈이다.
심오한 철학으로 포장하긴 어렵지만 나름 재밌었던 부분들을 적어보자면,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육식에 대한 생각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육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날의 채식주의자와는 또다른 입장에서 육식을 조심하는데, 무엇보다도 조선에서 소 도축을 금지하고 소를 먹지 말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말똥구리에 대한 관찰로 유명한 파브르보다 100여년이나 더 앞서서 이익이 성호사설에 말똥구리의 도둑질을 관찰하고 적어 놓은 것이 있는데 이익은 말똥구리만이 아니라 온갖 동물들을 다 아우르는 정말 훌륭한 관찰자다. 그의 암평아리 이야기에서는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탄했던 대목 중 하나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실린 쥐의 계란 쟁탈 특공작전이다.
한 마리 쥐가 닭장에 침입하여 네 발로 계란을 안고 누우면 다른 쥐가 그 쥐꼬리를 물어 당겨서 닭장 밖으로 떨어진다. 그리고는 그 쥐꼬리를 다시 물어 당겨서 쥐구멍으로 운반한다. 또 병에 기름이나 꿀이 있으면 병에 올라 앉아 꼬리로 묻혀내어 몸을 돌려 그 꼬리를 핥아 먹는다. (......) 가령 한마리 쥐가 알을 안고 눕더라도 다른 쥐가 그 꼬리를 물고 끌 줄을 어떻게 아는가. (244쪽)
닭장에서 계란을 훔치는 쥐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몸으로 감싸고 몸으로 감싸느라 기동력이 없어진 쥐를 옮겨줄 다른 쥐와 협력한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자 관찰이다.
리뷰를 정리하려는데 자꾸만 이 책에 정이 든다. 재미난 부분을 꼽아보자니 한도 끝도 없는데 손가락이 아파 다 못쓰니 아쉬울 따름이다. (응? 아까 분명 어렵다고 징징댔는데??)
정리하는 의미로 내가 관찰한 동물이야기를 하나 써보자면,
집 앞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바닥에 떨어진 사과 한조각을 발견한 비둘기가 다가왔다. 부리로 콕콕 사과를 쪼는데 어떻게들 알고 비둘기가 한마리씩 모여든다. 세마리가 모여 사과를 사이좋게 콕콕 찍어 먹는데 어디선가 까치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와 비둘기를 다 쫓아냈다. 그리곤 사과를 먹을 줄 알았더니 입에 물고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 근처 나무밑에다가 숨겨놓고 나뭇잎으로 덮어 두는 것이다. 그리고 휙~ 날아 올라서 근처 삼층 건물 옥상에서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거기서 지켜보다가 먹을것이 있는 걸 감지하고 훔치러 온것이다.
우와~까치가 동네 대장이구나! 근데 그놈 참 얄밉다. 지가 먹을 것도 아니면서 비둘기들 못먹게 하려고 사과를 뺏은건가! 닭둘기라고 미움받는 비둘기도 참 살아가기 힘들겠구나. 그후 나는 까치의 못된 행태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곤 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이익이 먹을 것을 숲속에 숨기는 까마귀와 까치의 습성을 관찰하여 적어두었다는 것을 알았다.사과를 숨긴건 까치의 습성이었던 것이다.
아깝다! 나도 이익처럼 "이는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아낸 것이다."라고 할 수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