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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
호시 요리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을 그려내고 싶었다." <오늘의 네코무라 씨>, <아이사와 리쿠>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만화가 호시 요리코가 신작 <B&D>를 발표하면서 밝힌 작품의 의도다. 작가의 의도대로 이 만화는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다.
등장인물은 2살짜리 천재 치치와 주변의 형들이다. 총 41편의 단편과 2편의 새로 그린 단편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시시껄렁한 농담 수준의 일상을 담고 있다. 형들이 어떤 여자가 찾아왔는데 오른쪽 어금니가 금니였다느니, 커피 젤리 위에 프레시 크림을 얹어 먹으면 더 맛있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꼬맹이 치치는 학교에 입학한다. 한참 나이 많은 형, 누나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척척 풀고, 백 점 맞은 시험지를 형들에게 나눠줘서 의도치 않게 곤란한 상황을 만드는 걸 제외하면 대체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오늘의 네코무라 씨>, <아이사와 리쿠>를 뛰어넘는 독특한 만화인데, 그렇다고 아주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어떤 형이 치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아빠처럼 부모님 회사의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걸 해라'라고 하시더라고." 멋대로 아빠의 꿈은 자신이 회사를 이어받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아버지의 진짜 꿈은 '가족이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니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꿈을 강요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자식이 부모의 꿈을 멋대로 넘겨짚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이시다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썼던 '스무 살이 되어서 해낸 일 20가지'라는 작문을 읽고 해낸 일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고 좌절한다. 스물이 넘었는데 영어도 못 하지, 자동차 면허도 없지, 비행기도 탄 적 없지, TV에도 나간 적 없지, 그런 자신에게 정이 뚝 떨어진다고 하자 친구들은 초4인 네가 너무 높은 꿈을 꾼 것뿐이라며 위로한다. 이어지는 이시다의 말. "하지만 한 게 하나밖에 없었다고! '의자 없이도 냉장고 위를 볼 수 있다.'" 친구들의 말. "큰 거 했네," ㅋㅋㅋ
호시 요리코의 만화가 으레 그렇듯이 빵 터지게 재밌지는 않지만 묘한 매력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그나저나 2년 가까이 나오지 않고 있는 <오늘의 네코무라 씨> 신간은 언제 나오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