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 소설가의 활력 갱생 에세이
유이카와 케이 지음, 신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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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어깨너머의 연인>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유이카와 케이의 산문집.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것도 무리일 만큼 저질체력이었던 저자가 별안간 등산의 매력에 빠져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기까지의 일들을 그린다.


저자가 등산에 빠진 계기를 이야기하려면 저자의 첫 반려견 '루이'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린 시절 저자는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요제프를 무척 좋아했다. 요제프와 같은 세인트버나드 대형견을 키우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2000년 10월 마침내 저자는 세인트버나드를 반려견으로 맞았다. 루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문제는 혹한의 스위스 산악 지역 출신인 세인트버나드가 도쿄의 더위를 버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름이 오자 루이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침까지 흘리면서 온종일 누워 있었다.


고민 끝에 저자는 루이를 위해 가루이자와로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여름철에도 시원해서 피서지로 유명한 가루이자와라면 루이도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예상대로 루이는 가루이자와에서 건강하게 잘 살았다. 세인트버나드치고는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는, 9년 5개월을 살고 2010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루이가 세상을 떠난 후 저자는 하루하루를 맥없이 멍하니 보냈다. 루이와 함께 걸었던 산책로, 루이가 뛰놀던 산과 들을 볼 때마다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집 근처에 있는 아사마 산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저자가 너무 저질체력이라서, 근처에 있는데도 차마 오를 생각을 못 했던 산이었다.


등산이라면 끔찍할 정도로 싫었지만 이상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의 고통이 루이를 잃은 상실감을 잊게 해줄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오른 아사마 산이 의외로 좋았다. 물론 몸은 엄청 힘들었다. 숨이 가쁘고 한 발짝 한 발짝이 고행이었다. 하산할 때는 구르듯이 내려왔다. 이튿날부터 근육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오를 거야.' 그렇게 저자는 등산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후 저자는 후지산을 비롯한 일본의 유명한 산들을 차례로 정복한다. 2015년 9월에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기도 했다.


등산의 등 자도 몰랐던 저자가 등산 전문가 못지않은 등산 마니아로 거듭나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저자가 마치 도장 깨기 하듯 도전하는 일본의 산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의 집 근처에 있는 아사마 산은 2004년 9월에 분화한 적도 있는 활화산이다. 분화 후 화산재가 심하게 날리는 바람에 숨쉬기가 힘들어 한동안 방진 마스크와 보안경을 쓰고 다녀야 했다. 가루이자와에 있는 또 다른 산인 하나레 산에는 야생 멧돼지를 비롯해 곰, 원숭이, 양 등 온갖 동물들이 살고 있다. 산에서 멧돼지나 곰을 만나는 건 한국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쳐도 원숭이와 양이라니! 언제 한 번 나도 일본에서 등산을 해보고 싶다.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등산가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다베이 준코. 1975년 여성 산악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다베이 준코는 남성 일색이었던 산악계에 큰 공적을 남겼다. 등반팀이 여성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점도 놀랍다. 이후 다베이 준코는 여성 최초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비롯해 첫 등정, 첫 등반의 기록을 무수히 남겼으며, 국내외 훈장, 영예상, 공로상 등을 수없이 받았다. 네팔에 쓰레기 소각로 건설, 사과나무 심기 등 세계 산악 환경 보호 운동에도 앞장섰다. 저자가 쓴, 다베이 준코의 삶을 그린 소설 <준코의 정상>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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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1 - 마오마오의 후궁 수수께끼 풀이수첩
쿠라타 미노지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유유리 옮김, 휴우가 나츠 원작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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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생이 샀길래 읽어보니 재미있어서 다음 권부터는 내가 사기로 했다. 휴우가 나츠의 대히트 라이트 노벨이 원작이며, 만화보다 라이트노벨이 더 재미있다는 의견도 많아서 라이트노벨도 읽어볼 예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오마오' 원래는 유곽의 약사였는데 유괴되어 후궁에 팔려왔다. 몸값을 다 갚을 때까지 얌전하게 지내자고 다짐하지만, 황제의 자식들이 연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동한다. 마오마오는 주변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 후궁을 감독하는 환관 '진시'의 눈에 드는 데 성공하고, 호기심과 정의감, 약사의 지식을 살려 몇 건의 사건을 해결하는 공을 세운다. 이로 인해 마오마오의 신분은 허드렛일을 하는 말단 궁녀에서 더 높은 지위로 상승하고, 점점 더 어렵고 중요한 사건을 맡게 된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물이라는 점이 좋고, 여성인 주인공이 자신의 외모나 성(性)을 이용하지 않고 순전히 지식과 기지를 발휘해 살아간다는 점이 좋다. 가장 비중이 높은 남성 캐릭터가 환관이라서 주인공과의 로맨스가 있을지 없을지 애매하다는 점도 매력 있다. 쿠라타 미노지의 깔끔한 작화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벌써 3권까지 국내에 정식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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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2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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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읽고 홀딱 반했는데 2권 읽으니 역시 재미있다. 일 년 반에 한 권씩 나오는 속도로는 제 명에 다 못 본다는 유키 할머니 ㅠㅠㅠ 할머니 마음 저도 다 알아요 ㅠㅠㅠ 부디 이 만화도 쭉쭉 정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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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조한진희(반다) 지음 / 동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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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부모님도 나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앞으로 병원 신세 질 일이 더 많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마음이 무겁다 못해 무섭다. 일단 병 걸리면 아플 테니 무섭고, 아픈 걸 고치려면 돈이 많이 들 테니 무섭고,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입원비에 간병인에 돈들 일이 많아질 테니 무섭다. 나도 동생도 비혼이고, 한 명은 밥벌이가 위태로운 비정규직이고 다른 한 명은 프리랜서인데 앞으로 어떡하나. 부모님이 떠나고 우리 둘만 남으면 그때는 또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읽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저자 조한진희(반다)는 2000년 여성민우회를 시작으로 여러 사회단체에 몸담은 바 있는 사회단체 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비혼주의자이자 채식주의자이자 1인 가구다. 2009년 갑상선암을 진단받은 저자는 병 자체로도 고통받았지만 병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 때문에 더 고통받았다. 저자는 아픈 몸이 되고서야 비로소 한국 사회가 '건강 중심 사회'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 사회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배제하듯이,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의 우위에 서는 사회, 아픈 사람을 실패자, 루저 취급하는 사회임을 알게 되었다.


일단 병원에선 병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바로 수술하자고 재촉했다. 의사든 간호사든 누구 하나 저자의 증세와 통증의 원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병이 있다고 주변에 털어놓자 너나 할 것 없이 간섭과 잔소리를 해댔다. 저자가 빈혈로 고생한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날것의 소 지라(비장)와 생달걀을 매일 먹어보라고 조언했다. 저자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 같아서 거절하자, 그는 "아직 덜 아픈 거 아니냐"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저자가 약통을 책상 위에 꺼내놓은 것을 보고 아프다는 걸 전시해놓은 것이냐고 물었다. 병 때문에 일터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지 못하고 승진과 봉급 인상의 기회를 놓치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아픈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전제 아래 시도 때도 없이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과 비슷하다. 문제 제기를 하면 성찰하거나 사과로 답하는 게 아니라 '네가 예민한 거'라고 충고하거나 근엄하게 공격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몸이 아프다는 건 대체로 '여성성'에 가까운 속성으로 치부된다. 마르고 연약한 여성이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천생 여자'로 추켜세워지고, 반대로 넉넉하고 건장한 체격의 여성이 '여성답지 않다'고 '희화화'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저자가 만난 어떤 여성은 폐암이 '남성스러운 병'이라며, '여성스럽지 못한' 병에 걸린 자신을 비난했다.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길 바란다. 거듭 말하지만, 질병의 개인화는 아픈 몸에게 질병의 책임을 전가시켜 죄책감으로 고통받게 만든다. 아울러 질병에 대한 관점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아픈 몸이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질병을 몸에서 삭제해야 하는 배설물 같은 존재로만 본다면, 만성질환자를 포함해 질병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아픈 몸은 불행한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다. (10~11쪽)


저자는 아픈 사람을 더 고통받게 만드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한편,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중 하나가 건강두레다. 건강두레는 가족이나 친구, 애인 등으로부터 돌봄 받길 기대하기 힘든 1인 가구나 비혼주의자들이 몸이 아플 때 서로를 보살펴주는 건강 돌봄 모임이다. 계절에 한 번 정도 건강두레 구성원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나중에 필요할 때 돌봄을 받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집', '보험', '엄마' 노릇을 해준다면, 대기업에 피 같은 돈을 내주거나 가부장제에 굴복하지 않고도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죽음에 대한 준비다. 저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죽음에 대해 삶처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직접 텃밭을 가꾸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경우가 많다.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은 후 흙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봄이 되면 싹을 틔우는 작물들을 볼 때, 인간의 삶과 죽음이 저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이 밖에도 생각할 거리를 무궁무진하게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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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했더니 살 만해졌다 -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오시마 노부요리 지음, 나지윤 옮김 / 미래타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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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래 제목은 '일부러 둔감해져서 인생을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요즘 워낙 이런 주제의 책이 많아서 내용도 뻔할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눈길을 끄는 사례나 조언이 의외로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원래 극도로 섬세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분노나 굴욕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직장 생활에 지장이 많았다. 그런 저자가 깨달음을 얻은 건, 무심코 텔레비전에서 본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 덕분이었다. 계속해서 상냥하게만 굴던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질투심을 느끼자 별안간 난폭한 맹수로 돌변해 잔인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장면을 본 저자는 모든 인간관계의 원흉은 질투이며, 질투는 동물적인 반응이란 걸 깨달았다. 직장에서 상사가 이유 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나, 자신이 한참 어린 후배를 매섭게 몰아세우며 공격한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질투라는 인간(동물)의 본능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부모도 자식을 질투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집에서 혼자 놀다가 별안간 어머니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나쁜 아이야. 네가 예의 바르게 크라고 엄마가 이렇게 혼내는 거다." 그때 저자는 '집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 아니었다.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다. 저자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집에 돌아온 저자는, 어머니가 트럭 문을 확 열어젖히는 바람에 트럭에서 굴러떨어졌다. 저자가 울고, 아버지가 놀라서 소리치자 어머니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나보다 약한 네(아들)가 그렇게 눈물을 흘려서 남편의 동정을 사려 하다니...!'


저자는 훗날 어머니가 '질투 히스테리'를 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질투 히스테리에 시달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멍청하다', '못생겼다' 같은 폭언을 자주 하는 경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아이에게 "네가 그럴 만한 짓을 했겠지!"라고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렇게 부모의 질투 히스테리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자란 아이는 질투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다. 집 밖에서도 상대의 질투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여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질투 히스테리를 쏟아붓는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런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저지는 질투 히스테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당신에게 질투를 느낀 사람이 폭언을 퍼붓는다. 폭언을 들은 당신은 분노를 느낀다. 분노를 느끼면 뇌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마비시키는 마약성 물질이 분비된다. 이 뇌 내 마약성 물질에 중독된 사람은 분노를 느껴도 제대로 표출할 수 없게 된다. 뇌 내 마약성 물질이 소진되면 금단 현상이 일어나 극도로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러면 또다시 자신을 호구로 만드는 상황을 찾아내 분노를 느끼고 뇌 내 마약성 물질이 분비되길 기다린다.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둔감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나 시비를 거는 사람이나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나의 관심이다. 관심이라는 먹이를 주면 계속 달려들 것이고, 주지 않으면 점점 멀어질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미련한 욕심이고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러니 아무한테나 잘해주지 말고, 누가 나를 싫어하거나 내가 누굴 싫어하게 되어도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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