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은 책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온몸을 흔들던

설렘

마음 졸이며

한 장 한 장 넘기던

즐거움

온 마음을 사로잡아

이것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던

마지막 장을 읽고

덮었을 때,

마음에 차 오르던 벅찬

감동.

 

이제

낡은 책꽂이 한 쪽에

눈에 띠지 않고

손길도 닿지 않고

서서히 잊혀 가는데……

 

어느 날 문득,

눈길이 닿아 펼쳐 본

.

순식간 다시 차오르는

그 때 그 마음

손길과 관계없이

이미 내 몸이 되어버린

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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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건축 이야기
김원 지음 / 열화당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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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있는 중.

 

전혀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건축에 요즘 관심이 가는 이유는, 내가 사는 공간을 이해하고,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 삶을 엮어가는 장소로 만들고, 그 장소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지니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요즘은 건축은 전문가들만이 하는 일이고, 자신은 주어진 공간에서 지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이 떨어져 나와 객체로 지내게 되는 현상. 이것이 바로 현대의 건축이고,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눈에 띠는 대로 건축에 관한 책을 읽어서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냥 관심 있는 읽기만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몇 권을 읽다보니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건축가들이 있다.

 

이 책을 쓴 김원도 그 중의 한 명.

 

멋있는 건축, 훌륭한 건축을 이야기할 때 가끔 등장하는 이름이었기에, 중고서점에 나온 그의 책을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선택을 한 것.

 

1999년에 쓴 책이니, 지금으로부터 15년이 넘게 지난 옛일이긴 하지만, 건축이 기본 100년이 간다고 하면 그가 한 고민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데는 다른 의견이 없다.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 전통가옥을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없애버린 것에 대한 분노에는 나 역시 동감하며,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드날릴 기념비적 건축을 하는 것보다는, 자연과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건축을 하는 것이 더 좋고, 자신은 그런 건축을 하고 싶다는 그의 자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여기에 그가 성공회대성당을 증축할 때 원 설계자의 의도를 따르는 과정이 나와 있는 글을 읽으면, 그는 건축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보다는 건축 속에 자신을 감추는 쪽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한강성당을 건축할 때의 이야기는 이 책에 두 번 나오는데... 감동적이다. 종교 건축이 건축에 종교를 흡수하는 것이 아닌, 건축이 종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 건축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건축보다는 그 곳에서 종교적인 행위가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도록 건축가의 의도를 숨겨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 생각할 만하다.

 

여기에 독립기념관과 국악당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도 참조할 만하며, 무엇보다도 그가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는 국립중앙박물관(구 중앙청, 구 조선총독부) 철거에 대해서는 그의 주장에서 생각할 것이 많다.

 

지금은 사진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조선총독부 건물, 경복궁 내에 그 건물이 있는 것이 민족 정기를 훼손시키는 일이었다면 그 건물을 분해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조립해 놓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이것이 파리의 유대인 레지스탕스 기념관에 있는 문구라는데... 일본의 식민통치를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그들의 진정한 반성이 있다면,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는 강자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를 했다고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잊지 않기 위한 행위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남겨 놓자는 얘기도 나왔었는데.. 지금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이런 일에도, 동강 댐 건설 반대에도 건축가들이 관여를 한다. 아니 관여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축가의 사명이다. 그들의 책무다.

 

이런 말을 김원은 이 책에서 하고 있다. 건축가는 단지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 아니다. 건축가는 사람들의 삶을 설계하고 살아가게 하는 장소는 마련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장소를 마련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 자연에 대한 인식... 한 마디로 건축가는 철학자여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은 느낌이다. 첫 시작을 풍수 사상에서 시작하는 것... 풍수 사상이 사라져야 할 미신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배우고 고민해야 할 학문이라는 것. 여기에 과학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참,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우리나라 건축이 걸어온 길을, 김원이라는 건축가를 통해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나라 건축가들 중에서 기억해야 할 건축가가 또 한 명 늘었다. 나중에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해주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같은 문외한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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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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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반 정도 넘게 읽으면서 니체가 생각났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 제목이.

 

니체는 그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잘 들어라! 나는 이러한 사람이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보아선 안 된다." (니체, 이사람을 보라, 박영문고141. 1983 중판 10쪽)

 

버나드 루이스.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차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중동 문화와 역사에서는(엄밀히 말하면 중동이라고 지역적인 이름을 쓰면 안된다. 그는 이슬람 역사와 문화를 연구한 것이지 중동이라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 책의 작은 제목에 따라 중동이라고 쓴다. 중동이라는 말을 이슬람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무방하다.)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이슬람 하면 우리나라에서 이희수 교수만 알고 있었는데,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 붐이 일 때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이고, 그가 쓴 책을 한 권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중동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버나드 루이스는 빼먹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최초의 중동에 관한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중동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각 나라의 언어를 공부해 그 나라의 언어 자료들을 읽을 수 있게 된 사람.

 

2차 세계대전 때는 정보 분야에서 일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다시 대학에 들어와 학자로서 인생을 보내기 시작한 사람.

 

1970년대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겨와 미국시민으로서 생의 후반부를 살아간 사람. 그는 중동 역사를 알게 하는 많은 책들을 썼으니, 그의 삶과 중동의 역사는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1916년 생이니 올해로 100살이다. 이 책이 그의 나이 95세 때 나왔다고 하니, 그 나이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장점은 외국어 습득능력에 있다. 다양한 언어를 읽을 줄 알게 되었기에, 1차 자료를 읽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구체화할 수도 있었고.

 

이런 결과로 미국의 정치가들에게 중동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니체의 첫 말처럼 그는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볼 필요는 없다.

 

이 책에 나오듯이 그는 역사학자일 뿐이다. 정치가들에게 조언을 했다면 그것은 그가 연구한 사실들을 토대로 정보를 제공한 것일 뿐이다. 정보 제공과 정책 결정은 전혀 다른 몫이고, 학자는 정보 제공을 하지만, 정책 결정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책 결정에 관해서 학자에게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의 정보를 토대로 정책 결정을 했을테니, 그가 제공한 정보가 사실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는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어떻게 공부했고, 중동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으며, 그러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한 사람의 전기이지만,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현대사에서 이슬람 국가와 다른 종교를 지닌 국가들의 갈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슬람 역사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가 있게 된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의 주창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그의 차이가 이 책에 잘 드러나 있으니... 한 번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책의 중간중간에 교육제도에 대하여, 또 역사학자들의 태도에 대한 글들도 나와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또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중동 지역의 유명한 사람들과 얽힌 일화도 나오니... 재미도 있고 쉽게 잘 읽히기도 하는 책이다. 그가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더니, 그런 문체의 힘이 이 자서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공부는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낸 책도 다시 검토해서 개정판을 꾸준히 내고 있는데... 이렇게 끊임없는 학자로서의 태도가 그를 중동역사 전문가로서 존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토대로 중동 여러 나라들의 역사나 문화, 또는 이슬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더 깊은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버나드 루이스라는 사람. 바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렇게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잘못 알고 있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며...  

 

덧글

 

고맙게도 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IS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중동 역사, 또는 이슬람에 대해서 서양인의 삶을 통해 개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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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시끄럽다. 국회법으로 말들이 많다.

말들이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고 소음으로 들린다. 시끄러움이다.

 

이 시끄러움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이끌기 위한 시끄러움이면 좋겠지만, 왜 자꾸만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힘겨루기로 느껴질까?

 

이들의 시끄러움 속에는 국민들을 위한 소리는 없다. 그냥 시끄러울 뿐이다. 너 잘났다 나 잘났다, 그러면서 네가 잘못했다, 아니다, 네가 잘못했다...

 

다 잘못한다. 국민들이 보기엔.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만은 잘했다고 한다. 잘못은 상대방이 했다고 밀어부친다. 오로지 자신은 대의를 위여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는 듯이 시끄럽다.

 

이 시끄러움... 그것은 좋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닐까? 이런 시대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정치권도 시를 읽고 마음을 다스렸으면 좋겠다.

 

산과 더불어 산이 되고 싶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성선 시인(1941-2001). 그의 시집을 펼쳐들었다. 내 마음이라도 따스하게 하고 싶어서.

 

예전에 청록파로 불리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뒤를 잇는 그런 시들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나태주, 이성선, 송수권 시인 등은.

 

그가 1991년에 펴낸 "절정의 노래"라는 시집엔 청록파, 특히 박목월을 연상시키는 시들이 많다.

 

자연을 인간에게 들여오고, 인간이 자연에 들어가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그려진 시들이 많은데... 그래서 읽으면서 한 폭의 수채화,동양화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마음이 평안해 지는데...

 

그런 시들 중에 요즘 세태와 맞물려 '산을 찾으며'란 시의 일부가 머리에서 계속 맴돈다.

 

'좋은 산은 함부로 / 좋은 사람은 더욱 함부로 /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

 (이성선, 절정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1991년. '산을 찾으며' 부분. 101쪽)

 

무슨 노이즈 마케팅아니고,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저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며... 제발 이 시 좀 봐라 하고 싶어졌다. 정말 좋은 사람은 제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좀 알라고.

 

그래서 깨끗한 영혼을 지닌 사람을 만나고 싶다.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그의 곁에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의 말은 시끄러움이 아니라 음악이다. 우리 마음을 울리는.

 

 깨끗한 영혼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 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이성선, 절정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1991년.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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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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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한 시집이다.

 

'밤 미시령"

 

미시령 하면 눈이 생각나고 추위가 생각나고 교통통제가 생각나는데, 황동규 시던가, '미시령 큰바람'이라고 바람도 있는 그런 고개.

 

고개는 이곳과 저곳을 가르기도 하지만,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이곳과 저곳 모두를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미시령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위압감도 대단한데, 여기에 '밤'이라는 말이 붙었다. 밤의 미시령이라, 무언가 캄캄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 무슨 시일까? 궁금증이 인다. 읽어봐야지... 하고 시집을 펼쳐 읽는데... 위압감보다는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들어온다.

 

  밤 미시령

 

저만큼 11시 불빛이 저만큼

보이는 용대리 굽은 길가에 차를 세워

도어를 열고 나와 서서 달을 보다가

물소리 듣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 밤 딸그락,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듯

시동을 걸고

천천히 미시령으로 향하는

밤 11시 내 몸의 불빛 두 줄기, 휘어지며

모든 차들 앞서 가게 하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음, 기척을 내보지만

두려워하는 천불동 달처럼 복받친 마음

우리 무슨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 하는지

생수 한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저 허공에 주지 않을뿐더러

-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고형렬, 밤 미시령, 창비, 2009 초판 5쇄. 74-75쪽.

 

꽉 채운 것이 아닌, 비워둠으로써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11시라는 시간도 12시를 향해 가지만, 아직 12시를 넘기지 않은, 마치 고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저 쪽을 향하지만 발은 이 쪽에 담그고 있는.

 

11시에 미시령에 올라 앞쪽을 바라보면 불빛만 있다. 사람은 없다. 고요한 적막. 그 적막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자신의 길을 생각한다. 그리고 비워낸다. 이제는 다시 생각지 않고, 다시 오지 않는다 다짐을 한다.

 

이 쪽 저 쪽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 선 사람이 자신을 그 곳에 내어 맡긴 모습... 그냥 그렇게 이 시는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시집 전체의 시들 중에서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와 박힌 시가 있다. 바로 '4월'

 

      4월

 

죽은 것들이 돌아오느라

죽은 것들이 눈이 멀어 돌아오느라

줄기 부르트고,

꽃으로 애쓰던 잊은 것들 찾아오느라

살아 있던 날을 기억하려고

다른 '나'로 빠져나오려고

허연 죽음의 중심 목질부를 만지려고

물을 찾아 다시 움을 틔워 일어나느라

구름을 모아 문을 열고 달려가느라

접혔던 부분 하염없이 펴느라

가장 빛나는 생명의 꿈을 따르느라

좁을 길을 풀고

기억할 수 없는, 복제할 수 없는

형상을 입느라 자기 하나 옷을 만드느라

천지는 눈 시리게 숨쉬기 바쁜,

안 보이는 이름을 찾아내느라

한줄기 목숨을얻어 끊어진 길 이으려고

길을 대고 처음 생에 닿느라

아 이름 부르며 부스러진 티끌들 모아

안 지치고 기쁘게 찾아오느라

 

고형렬, 밤 미시령, 창비, 2009 초판 5쇄. 80-81쪽.

 

4월이라는 달은 이 시집의 제목 속에 나오는 미시령과 닮았다. 4월은 봄이 시작되었지만, 완전한 봄은 아닌,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겨울을 딛고 봄으로 나아가는 달이다.

 

생명들이 약동하고, 눈부신 5월을 향해 가는 4월. 이 4월은 생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시에서 말하는 많은 생명들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람들로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들의 역사에서 우리들도 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지내왔는데... 꽃피는 5월이 왔는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힘들게 우리를 고개까지 올려준 4월에 미안해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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