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시끄럽다. 국회법으로 말들이 많다.

말들이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고 소음으로 들린다. 시끄러움이다.

 

이 시끄러움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이끌기 위한 시끄러움이면 좋겠지만, 왜 자꾸만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힘겨루기로 느껴질까?

 

이들의 시끄러움 속에는 국민들을 위한 소리는 없다. 그냥 시끄러울 뿐이다. 너 잘났다 나 잘났다, 그러면서 네가 잘못했다, 아니다, 네가 잘못했다...

 

다 잘못한다. 국민들이 보기엔.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만은 잘했다고 한다. 잘못은 상대방이 했다고 밀어부친다. 오로지 자신은 대의를 위여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는 듯이 시끄럽다.

 

이 시끄러움... 그것은 좋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닐까? 이런 시대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정치권도 시를 읽고 마음을 다스렸으면 좋겠다.

 

산과 더불어 산이 되고 싶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성선 시인(1941-2001). 그의 시집을 펼쳐들었다. 내 마음이라도 따스하게 하고 싶어서.

 

예전에 청록파로 불리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뒤를 잇는 그런 시들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나태주, 이성선, 송수권 시인 등은.

 

그가 1991년에 펴낸 "절정의 노래"라는 시집엔 청록파, 특히 박목월을 연상시키는 시들이 많다.

 

자연을 인간에게 들여오고, 인간이 자연에 들어가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그려진 시들이 많은데... 그래서 읽으면서 한 폭의 수채화,동양화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마음이 평안해 지는데...

 

그런 시들 중에 요즘 세태와 맞물려 '산을 찾으며'란 시의 일부가 머리에서 계속 맴돈다.

 

'좋은 산은 함부로 / 좋은 사람은 더욱 함부로 /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

 (이성선, 절정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1991년. '산을 찾으며' 부분. 101쪽)

 

무슨 노이즈 마케팅아니고,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저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며... 제발 이 시 좀 봐라 하고 싶어졌다. 정말 좋은 사람은 제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좀 알라고.

 

그래서 깨끗한 영혼을 지닌 사람을 만나고 싶다.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그의 곁에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의 말은 시끄러움이 아니라 음악이다. 우리 마음을 울리는.

 

 깨끗한 영혼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 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이성선, 절정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1991년.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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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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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한 시집이다.

 

'밤 미시령"

 

미시령 하면 눈이 생각나고 추위가 생각나고 교통통제가 생각나는데, 황동규 시던가, '미시령 큰바람'이라고 바람도 있는 그런 고개.

 

고개는 이곳과 저곳을 가르기도 하지만,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이곳과 저곳 모두를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미시령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위압감도 대단한데, 여기에 '밤'이라는 말이 붙었다. 밤의 미시령이라, 무언가 캄캄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 무슨 시일까? 궁금증이 인다. 읽어봐야지... 하고 시집을 펼쳐 읽는데... 위압감보다는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들어온다.

 

  밤 미시령

 

저만큼 11시 불빛이 저만큼

보이는 용대리 굽은 길가에 차를 세워

도어를 열고 나와 서서 달을 보다가

물소리 듣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 밤 딸그락,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듯

시동을 걸고

천천히 미시령으로 향하는

밤 11시 내 몸의 불빛 두 줄기, 휘어지며

모든 차들 앞서 가게 하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음, 기척을 내보지만

두려워하는 천불동 달처럼 복받친 마음

우리 무슨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 하는지

생수 한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저 허공에 주지 않을뿐더러

-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고형렬, 밤 미시령, 창비, 2009 초판 5쇄. 74-75쪽.

 

꽉 채운 것이 아닌, 비워둠으로써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11시라는 시간도 12시를 향해 가지만, 아직 12시를 넘기지 않은, 마치 고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저 쪽을 향하지만 발은 이 쪽에 담그고 있는.

 

11시에 미시령에 올라 앞쪽을 바라보면 불빛만 있다. 사람은 없다. 고요한 적막. 그 적막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자신의 길을 생각한다. 그리고 비워낸다. 이제는 다시 생각지 않고, 다시 오지 않는다 다짐을 한다.

 

이 쪽 저 쪽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 선 사람이 자신을 그 곳에 내어 맡긴 모습... 그냥 그렇게 이 시는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시집 전체의 시들 중에서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와 박힌 시가 있다. 바로 '4월'

 

      4월

 

죽은 것들이 돌아오느라

죽은 것들이 눈이 멀어 돌아오느라

줄기 부르트고,

꽃으로 애쓰던 잊은 것들 찾아오느라

살아 있던 날을 기억하려고

다른 '나'로 빠져나오려고

허연 죽음의 중심 목질부를 만지려고

물을 찾아 다시 움을 틔워 일어나느라

구름을 모아 문을 열고 달려가느라

접혔던 부분 하염없이 펴느라

가장 빛나는 생명의 꿈을 따르느라

좁을 길을 풀고

기억할 수 없는, 복제할 수 없는

형상을 입느라 자기 하나 옷을 만드느라

천지는 눈 시리게 숨쉬기 바쁜,

안 보이는 이름을 찾아내느라

한줄기 목숨을얻어 끊어진 길 이으려고

길을 대고 처음 생에 닿느라

아 이름 부르며 부스러진 티끌들 모아

안 지치고 기쁘게 찾아오느라

 

고형렬, 밤 미시령, 창비, 2009 초판 5쇄. 80-81쪽.

 

4월이라는 달은 이 시집의 제목 속에 나오는 미시령과 닮았다. 4월은 봄이 시작되었지만, 완전한 봄은 아닌,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겨울을 딛고 봄으로 나아가는 달이다.

 

생명들이 약동하고, 눈부신 5월을 향해 가는 4월. 이 4월은 생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시에서 말하는 많은 생명들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람들로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들의 역사에서 우리들도 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지내왔는데... 꽃피는 5월이 왔는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힘들게 우리를 고개까지 올려준 4월에 미안해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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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창간호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99호다. 곧 100호가 된다. 꾸준히 나왔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우리나라 교육에 아직도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이 좋아진다고 해도 책은 필요하다. 교육에 관한 책은 현실을 넘어 다른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늘 현실의 교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00호가 되면 무언가 느낌이 다를까?

 

"민들레"는 꼭 그럴 것 같지 않다. 지금의 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교육을 향해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들레"는 각 호 하나하나가 다 교육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민들레" 과월호가 계속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의 특집은 "놀이와 놀이터"이다. 참 중요한 문젠데, 그냥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는데, 민들레에서 다뤄주고 있다.

 

아이들이 놀 줄 모른다고 한탄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아이들은 놀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놀 시간이 없는 것이다.

 

놀 시간이 없기에 놀아본 경험이 없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아 놓고도 어른들은 아이들 탓만 한다.

 

여기에 대형사고들은 가진 자들이 일으키고 책임은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지운다.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한다.

 

조금만 위험해 보여도 아이들의 접근을 막는다. 도대체 아이들이 모험을 할 수가 없다. 모험을 하지 않은 아이들... 어떤 어른이 될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어른이 아니라, 나이 먹어서도 누군가가 지시해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어른, 몸만 어른이고 정신은 아이인... 아니 이런 식으로 가면 아이만도 못한 어른이 되기 십상이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보라. 아이들에게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무한한 놀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시간을 빼앗으면 아이들은 놀지도 못한다. 놀라고 공간을 만들어 주어도 놀 수가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아이들 놀이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문제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어야만 한다. 심심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정말 심심할 시간... 그런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여기에 어른들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어른들은 그냥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요인들만 제거해주면 된다. 위험요인들을 제거해야지 모든 위험을 제거해서는 안된다.

 

(이런 내용은 이번 호에 실린 편해문이 쓴 '위험한 놀이터에서 삶을 배운다'에 잘 나와 있다. 영어 단어로 Hazard와 Risk를 구분해서 어른들은  Hazard를 살피고, 아이들은 Risk를 만나야 한다는 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 아이들을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교육'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다.

 

하다못해 청소년들에게 멍때릴 시간을 확보해주는 일부터라도 해야 한다. 교육이라고 해서 꼭 학교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민들레"는 이렇게 교육에 대한 생각을 확장한다. 그리고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교육에서 배움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배움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계속 "민들레"는 이렇게 배움에 대해서 고민하고, 더 나은 배움을 이룰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민들레 99호"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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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 우리 시대 일상 속 시각 문화 읽기
강홍구 지음 / 황금가지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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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시시한 것들이란, 작은 것, 또는 남들에게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 중심에 있지 못하고 주변에 위치한 것들일텐데, 이들에게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고,

 

스티브 잡스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그에게는 시시한 것이란 없는 셈이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문을 읽는데, 어, 좀 이상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이 내 기대와는 조금 빗나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책의 제목과는 달리 <시시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부분이 추악한 것임일 밝히는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추악함이란 결국 우리가 생산해 낸 것이고 보면 특정인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누구나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5쪽)

 

그렇다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들이 우리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을 알려준다는 말로 해석을 하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생활에서 필요하다는 쪽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에 있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들이 아름답게 우리 곁에 존재할 때 우리들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은 자연스레 높아져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전신주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광고에서부터 시작한다. 요즘은 광고를 붙이지 못하게 뾰족한 플라스틱 비슷한 것으로 전신주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렇다고 광고를 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넘쳐나는 광고 속에서 예전에는 손글씨라는 자신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컴퓨터의 발달로 이나마도 획일적으로 변했으니... 이 책이 나온 지가 14년이 넘었는데... 이런 시시한 것들은 아름다움 쪽으로 가지 못하고, 오히려 획일화로 갔으니... 그 점이 안타깝다.

 

간판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는 간판의 변천사가 나오지만, 어느 순간 간판은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대상이 되었고, 지자체에 따라 거의 같은 유형의 간판이 정비라는 이름으로 걸리게 되었다.

 

그냥 미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정보 제공으로서의 간판만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듯이, 획일적인 디자인이 오히려 미적 감수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나마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보다 미적으로 진일보한 것이 인도에 나와 있는 의자들이 아닐까 싶다.

 

공공장소나 길거리에 나와 있는 의자들, 앉을 수 있게 만든 의자들은 이제는 실용성과 더불어 예술성도 확보하고 있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하지만 반대로 의자(벤치라고 하는 긴 의자) 가운데에 칸 막이 비슷한 것을 설치했는데, 이것이 서로 다닥다닥 붙지 말라는, 좀 거리를 두고 앉으라는 배려 같기도 하지만, 취객이나 노숙자들이 그 의자에 눕지 못하게 하는 기능도 하니,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 의자들도 아직 많다.

 

여기에 이제는 사라져 가는 이발소가 많은데, 이발소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향수를 자극한다. 이발소에서 한 번쯤 보았음 직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간 그런 그림들.

 

여기에 우리가 늘 접하지만 그것에서 권력을 발견하지는 못하는 대상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대상들은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경외의 대상이고, 그것이 바로 권력이 추구하는 바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돈, 담, 묘지, 길거리 신호들, 운동장, 표어, 만국기, 사무실에 대해서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고쳐가야 할 그런 대상으로, 이런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우리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이 높아질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했는데...

 

책은 품절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과거의 이야기가 된 것들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이 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단 생각이 든다.

 

현대에 맞는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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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꺾인 꽃을 기리며

     - 2006년 미군에게 죽임을 당한 이라크 소녀 아비르 카심 함자(15),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 야만이 없어지기를.

 

아름답지 말 것을,

약한 나라의 아름다움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인 것을.

 

삶의 꽃을 피워

화려한 자태를 뽐내어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단 번에 꺾여버리는 것을,

혼자만 꺾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 또한 짓밟히게 하는 것을.

 

약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인 것을,

모두를 죽이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데도.

 

아름다움이 잘못일 리 없음에도,

지켜줄 울타리가 없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슬픔을 안고 태어난

약한 나라 소녀

아름다운 소녀.

 

미군에게 짓밟힌

가족, 그리고

이라크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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