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위로 - 제19대 대통령에서 ‘깨어 있는 시민’으로 되돌아가며 드립니다
더휴먼 편집부 엮음 / 더휴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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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필요로 해 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의심해 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나는 더 정직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나는 더 소신껏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미워해 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어려운데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모두 내게 유익이 됩니다.

눈앞의 문이 꽉 닫혀 도저히 열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오. 닫힌 문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뒤를 돌아보거나 옆을 바라보십시오. 또 다른 문이 열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 호주머니 속엔 인생을 열어 갈 열쇠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신이 나를 못 듣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들으라는 뜻이고, 신이 나를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온전히나 자신만 바라보라는 뜻이다.

원래 그런 거야.
성격이 원래 그래.
원래부터 못 살았어.
원래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포기이고 게으름이고 복지부동입니다.
세상엔 원래 어려운 일도, 원래 불가능한 일도 없습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입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 이 시를 인용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참 많은 벽들이 있습니다. 이념의 벽, 불신의 벽, 지역의 벽, 학력의 벽, 남녀의 벽, 불평등의 벽, 남북의 벽…….모두가 허물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벽들을 주저앉게 하는 것은 망치가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함께 손잡고 끝까지 기어오르면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신념만 있다면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닙니다.

겨울을 보내는 방법은 턱 괴고 앉아 막연히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꽃을 그리고, 꽃밭을 그리고, 그 꽃밭을 사랑하는 사람과함께 걷는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꽃향기에 취해, 사랑하는사람의 향기에 취해 겨울을 견디고 겨울을 이길 수 있습니다. 꿈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첫눈에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투, 손짓,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닌데 잘생겨 보이고 미소가 지어집니다.괜히, 아무 이유 없이 믿음이 갑니다.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그는 당신과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입니다.평생을 함께 걸어가도 좋을 사람입니다.
그냥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입니다. 저에 대한 배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가 한없이 커 보였습니다. 낮추려 하면 높아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친구 곁에 서면 발뒤꿈치를 살짝 듭니까? 아니면 친구가 돋보이도록 무릎을 살짝 굽혀 줍니까?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아쉽게도 제겐 유머 감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도 자랑이 하나 있습니다. 눈가에 주름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이 웃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웃음도 하품처럼 전염됩니다.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게 됩니다. 저는 사람을 웃길 줄 모르는 대신 그들에게웃음을 전염시키는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웃습니다.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생기도록.

미국 수영선수 토레스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마흔한 살의 나이, 역대메달 리스트 중 가장 고령으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그녀. 그녀는열여섯 살 선수와의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대답했습니다.
수영장의 물은 선수의 나이를 모른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새는 왼쪽과 오른쪽 날개로 납니다.
강물도 좌우로 굽이치며 바다로 나갑니다.
한쪽 날개로는 날아오를 수 없고
한 물길만 고집해서는 바다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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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삶의 빛나는 정수만을 간절히 체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에. (…) 나는 삶의 골수 깊은 곳까지 모조리 빨아들이고 싶었고, 스파르타인처럼 강인하게 살아가며, 삶이아닌 것은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싶었다.

걷고 또 걷다 보면, 내 열망과 걱정으로부터, 내 슬픔과 집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는 점이 좋다.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목이말라 물을 찾게 될 때까지 걷다 보면, 어느덧 나를 괴롭히던 그 문제가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던 나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만 같았던 세계를 한없이 낯설게, 끝없이 설레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산책의 또 다른즐거움이다.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사이일지라도, 우리가 이 드넓은 세상에서 무려 한 번이나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행복을 빌어준다면, 스쳐 지나가는 행인이었던 우리는 저마다 아름답고 소중한 타인으로 변신한다. 산책을 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나는 단 하나의문제에 집착하던 마음의 시선을 내려놓고 정신의 근육을 이완시킬수 있게 된다. 산책은 오직 ‘내 고민, 내 생각에만 빠져 있던 뇌를더 깊고 풍요로운 사유의 바다 속으로 밀어주는 산들바람 같다.

소로는 고향길을 산책하며 매일 새로운 전망을 얻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매일 오후 산책을 할 때마다, 그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전망을 얻게 된다고 했다. 오후의 산책은 언제나 어김없이 소로를 낯설고도 신기한 나라로 데려다주었다. 처음 마주치는 낯선 농가가 위대한 왕국의 영지처럼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 작년 이맘때보았던 야생화가 정확히 같은 날짜에 작년과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피어나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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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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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 말과 같아요.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한 말이죠..

문제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 ‘생태를 보호해야지‘라거나 이제다른 생명체를 파괴하지 말아야지‘ 같은 각오마저 힘들게 한다는 데있어요.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 없어요. 그래서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에서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ity, 1908~1961 얘기를 한 거예요. 우리는 ‘순진무구‘와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어딘가를 선택해야 해요. ‘폭력의 종류‘ 혹은
‘폭력의 정도‘를 선택하는 것뿐이죠. ‘무엇이 최소한의 폭력인가‘의문제란 말이에요. 간혹 채식주의자들 중에서 자신이 순진무구를 선백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고기를 먹지 않으면 뭐해요,
식물들은 모두 뜯어 먹으면서.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말에따르면 어차피 우리는 신이 아니거든요. 다른 외적인 것, 타자적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자족성이 없다는 말이에요. 다른 것을먹어야 되는데, 최소한으로 먹는 거죠. 그런데 자기가 식물을 먹었다고 자기를 순진무구로 본다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식물을 먹는행위가 최소 폭력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죽어가는 물고기에 대해서고통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물고기는 죽이지 않고, 최소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가겠죠. 죽여야만 고기를 먹잖아요. 식물 같은 경우는잎사귀를 따도 죽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뭐가 최소인지는나오는 거죠. 그렇다고 식물 먹어서 당당하다, 이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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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레나타 살레츨Renata Salecl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2014, 후마니타스)에서 지나친 선택의 자유‘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고도로 발달한 소비사회를 사는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합리적 선택의 문제로 인식한다. 마치 더싸고 좋은 상품을 찾아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처럼,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기만 한다면 완벽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살레츨은 말한다.
"우리는 현시점에서의 완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완벽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선택은 훨씬 힘들어진다. 선택은 압도적인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선택을 잘못했을 때 발생할 죄책감과 불안, 후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모든 것이 선택의 독재적 측면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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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침내 그랜트가 오브리를 그녀 앞으로 데려오려는순간, 피오나의 기억 하나가 깜빡이며 불이 들어와 남편을 알아보게 된다. 그녀는 그 순간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날 버릴 수도 있었는데, 지켜주어서 고마워요……."
이 영화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병들어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다 해도인간의 뇌에 마지막까지 남는 기능 하나는 바로 사랑이 아닐까. 이영화는 인간이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일화는 피그말리온 사랑이 가지는 함정을 보여준다.
피그말리온 사랑은 자기가 창조한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내포한다. 과연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갈라테이아가 진짜 살아있는 여성이 되었을 때, 그녀가 독립된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여성과의 관계를 그녀와 정상적으로 맺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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