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몇 번쯤이고 자문하는 앞서의 질문들은 사실상 ‘감정‘에 대한 물음이다. "네 마음이 어때?"라는 질문보다
"네 감정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희미하게나마 가닥을 잡는다.
그러나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감정‘을 깊숙이 파묻고 ‘이성‘이라는 널빤지로 못을 쳐놓고 살았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버려야 한다고까지 세뇌 받았다. 감정은 숨기고 다스리고 제어해야 할 작은 악마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자기 삶의 나침반이다.
자신의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리지 않고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으로 구별하고그에 알맞은 어휘를 붙여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후련해진다. 나아가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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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산다. 그 그림들은 어제의 회고이거나, 오늘의 일기이거나, 내일의 희망이거나, 먼 미래의 꿈이다. 산다는 건 수많은 그림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남기는 일이다. 런던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이제 내게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그날의 그림들이 무척 그립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리운 마음이 새로운 오늘을 떠받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벌써 그리워졌거나 언젠가는 그리워질 나날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림처럼 그려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채 새로운 하루를 살고 있을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비슷한 그림들을 품고 산다면, 그 마음들이 이어져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화가의 그림들과 수줍게 써내려간 나의 글들을 전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내 전공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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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것만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 상황이 어둡고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영화 속 예수의 모습에 대해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예수가 영화 속에서 그랬던것처럼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사고를 멈출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삶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힘들고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경범죄로 끝나지 않았다. 흑인들은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들고일어났다.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번진 이러한 움직임은 흑인 인권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흑백분리법 역시 1년 뒤 폐지되었다.
이 사건은 법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옳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법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때론 무고한 사람이 아닌, 살인자를 보호하는 법을 지키는 것이 이치에 맞을 수도 있다. 또한 차별적인법들, 이를테면 젠더 이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거나 전쟁·폭력에 반대해 병역을 거부하고 평화적인 복무 선택권을 주장하며 법에 대항하며 싸우는 행동이 옳은 일일 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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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숟가락에 관한 우화는 너무도 명확하게 삶의진실을 짚어준다.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이라는 점.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 세상의 어둡고 부정적인 것만 확인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사람은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곳 같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천국을 누리고 있다. 인식을 바꾸고 깨달은 사람에겐 지옥도 천국이 된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 중 <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런말을 썼다.
내가 그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도 햇빛 아래 서 있지만 태양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뿐그들은 오직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그 그림자를 자신의 법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 것을.
그렇다면 그들에게 태양이란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 외에 무엇인가?
이 글에서 태양은 마주 보는 자에게 따뜻한 빛을 주지만 등진자에게는 그늘만 드리우는 존재다.

나의 스승인 혜원 스님은 예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다. 인간들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인간은 자신들이 걸어야 할 대지가 날카로운 가시와 돌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걷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신발을 만들어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땅을 부드러운 가죽으로뒤덮는 것이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발에 신발을 착용해야 하는변화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두 번째 방법은 아무런 변화 없이 원래대로 걸어다니면 되었다. 스승님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 세상 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세계가 가죽으로 뒤덮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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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인터넷의 발명으로 책 1권의 가격이 1만 원에서 0원으로까지 떨어지자, 모든 사람이 무료로 양질의교육을 받고, 과학이 대중화되며, 사회가 투명해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 우리가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것은 명백한 진실들이 아니라온갖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다중 현실이지요.

필터 버블이란, 인터넷 서비스 생산자가 이용자의 선호도에 맞추어 이용자에게 정보를 선별적인 제공함에 따라 이용자가 스스로 선호하는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거품은 인간의 본성을 잘 반영하고 있지요.

우리의 경험은 각각 하나의 장소, 하나의 시간에만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날로그 현실에서 우리가 가질수 있는 모든 경험은 우리 자신이 자리한 곳에서만, 특히우리 몸이 위치한 곳에서만 가능했습니다.

늦은 시기에 고향으로부터 벗어나면 우리의 뇌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예를들어, 40대나 50대가 되어 미국으로 이주하는 많은 이들은 미국 사회와 문화를 편안하게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뇌가 기대하는 현실과 경험하는현실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뇌는 손쉽게 도피를 선택하는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노래를 듣고, 한국 친구들과 즐겁게 노니며 소비할 수 있는) 한인타운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뇌의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뇌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편한 곳에 머물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Z 세대의 고향은 아날로그 현실이 아닌 디지털 현실, 즉 인터넷입니다. 다시말해, Z세대의 뇌는 인터넷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지금 한국에서 자라나고 있는Z세대 그리고 그 이후의 알파 세대의 진정한 ‘고향‘은 대한민국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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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꽃을 보지 않는다. 진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너무 작아서다. 그리고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꽃을 볼시간이 없다. (…)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내 눈에 보이는 걸 그리련다. 그 꽃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련다. 엄청나게 크게그려 그 꽃 한 송이를 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면 모두가 놀랄것이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말이다.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창비, 2021)에 인용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크기를 바꾸면 원형이 붕괴되면서 눈과 마음이 깨어난다고.
나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보지 못한다. 세상이 축소해서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좋은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하는 것 같다. 인터뷰이로 어떤 대상을 택하고 어느 부분을 어떻게도드라지게 할 것인가, 이것은 전적으로 인터뷰어의 세계관과 미학에 따른다.
나는 이런 사람을 크게 그리고 싶었다. 모두가 쳐다보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사유를 자극하는 사람들.

좋은 이야기는 존재의 숨통을 틔워준다. 내가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가 나의 세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주위에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광고가 난무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몸의 견적을 내게 된다. 곁에 성소수자 친구가 있는데 동성애 혐오를 외치기는 어렵다.공무원만큼 활동가도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더 자유롭게 본성대로 클 것이다.

이야기는 힘이 세서 견고한 관념을 부순다. 내가 듣는 이야기는 내 감각과 정신의 속성을 천천히 바꾼다. 살아가면서 참조할 수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야, 삶에 대한 질문을 비축해두어야 내가덜 불행하고 남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도 인터뷰를 꼭 과제로 내어주는 이유다.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서 듣는 일보다 더 좋은 글쓰기 공부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보다 더 깊은 쾌락을 나는 모른다. 지배는 단절과 분열의 문화 속에서 가장 잘 기능한다는 말이 있듯이 ‘연결‘은 억압을 벗어나고 해방에 이르는 시작이자 원리다.

"저는 누가 광장에서 운다는 건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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